비지는 콩으로 가공식품을 만들고 남은 찌꺼기를 총칭하는 말이다. 예컨대 두부나 豆乳(콩국)를 만들고 남은 固形物(고형물)을 가리킨다.
찌꺼기라고 하면 대개 쓰레기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이지만, 콩찌꺼기인 비지만은 다른 찌꺼기와 달리 예외다. 비지는 섬유질이 풍부할 뿐 아니라, 두부나 두유와 비교해서도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 영양가가 높다. 우리 조상들은 콩 찌꺼기인 이 비지를 내버리지 않고 다른 부재료를 넣고 끓여 먹었다. 이것이 비지찌개다.
특히 여유가 있는 집에서는 일부러 두부를 적게 만들고 콩국이 넉넉한 비지를 만들어 먹었다. 더 고소한 맛을 내기 위해서다. 또 어떤 집에서는 이 비지를 청국장처럼 펄펄 끓는 아랫목에 이불로 덮어 씌워 발효시킨 다음 찌개를 만들어 먹기도 했다. 냄새는 좀 고약하지만 우리 입맛에 딱 맞는 별미다. 콩을 발효시키면 끈끈한 곰팡이가 생겨 콩을 에워싸는데, 이것을 納豆菌(납두균)이라고 한다. 몽골, 일본, 한국인들이 이런 식으로 콩을 발효시킨 음식을 즐겨 먹는 민족이다. 기동성을 중시하는 몽골군이 말 위에서 생활하면서 영양가를 섭취하기 위해 만들어냈다고 하는 설이 지배적이다.
최근 일본의 연구진에 의해 이 납두균이 血栓(혈전)을 溶解(용해)하는 치료제로 매우 유용하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혈전증은 피가 모세혈관 내에서 굳어지는 증상으로, 뇌졸중이나 심근 경색같은 성인병의 원인이 된다. 연구실에서 만들어진 약제는 치료효과만 있지만, 납두균은 치료 뿐 아니라, 혈전 예방효과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필자도 어렸을 때, 집에서 두부를 만들어 먹어본 경험이 있고, 또 두부를 만들고 남은 비지로 찌개를 끓여먹었던 기억도 난다. 그러나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먹는 문제가 해결되자, 두부를 직접 만드는 집도 찾아보기 어렵게 됐고, 따라서 두부를 만들고 난 후 나오는, 진짜 비지로 만든 찌개도 사라져 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옛날과 같은 비지찌개를 맛보기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한 상태다.
지금도 비지가 있긴 하지만, 수입 콩으로 두부를 대량 생산하는 공장에서 나오는 것이라 맛도 예전같지 않은 데다, 수입 콩은 유전자 조작 시비도 뒤따르는 등 찜찜한 마음이 든다. 수요의 90%를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만큼 국산 콩이라고 주장해도 쉽게 믿기 어렵다.
그런데 옛날처럼 두부를 집에서 직접 만들고 거기서 나오는 찌꺼기를 청국장처럼 띄워 찌개를 끓여주는 집이 서울 시내에 있다. 전철 2호선 뚝섬역에서 동북쪽 출구로 내려 북쪽으로 약 300m 쯤 올라가면 오른쪽에 「강원식당」(주인 李煥淑·49·서울 성동구 성수1가동 13-277 전화번호 464-2072)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이 집이 바로 그 음식점이다.
가게 안에서 직접 두부를 만들기 때문에 못미더우면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도 있다. 여기서 나온 비지를 뜨끈뜨근한 방에 놓아두고 이틀 반 정도 띄운다. 옛날처럼 구들장이 없으니까 전기담요로 섭씨 35~40도 정도의 온도를 유지해주는 것이 옛날과 다른 점이다. 제 맛을 내려면 띄우는 시간도 3~4일 정도 필요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냄새가 고약한 것을 싫어해서 이틀 반 정도만 띄운다고 했다.
이렇게 띄운 비지를 재료로, 익은 김치와 돼지고기를 약간 썰어넣고 끓이면 개운하고도 입맛 돋우는 비지찌개가 된다. 매운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주문할 때, 고춧가루를 넣지 말아달라고 미리 부탁해야 한다. 고춧가루를 넣으면 칼칼한 맛이 있고, 고춧가루를 빼면 시원한 맛이 더한다. 값도 싸다. 3500원. 두부를 먹고 싶으면 두부보쌈을 주문하면 된다. 값 7000원.
좌석은 4인상 여섯 개밖에 안돼 단체가 가기에는 부적합하다. 띄운 비지찌개에 대한 옛 맛에 향수를 간직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한번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강원도 홍천 출신인 주인 李씨는 친정어머니로부터 비지를 맛있게 띄우는 기능을 전수받았다고 한다. 이곳에서만 20년 넘게 식당을 운영해 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