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뉴욕이 세계 경제의 중심이라면 보스턴은 지식의 중심이다. 하버드大, MIT, 보스턴 대학을 비롯한 많은 대학교가 밀집돼 있고 지식인들이 집중된 보스턴은 지난 3주간 토론의 열기로 9월11일 발생한 미국 역사상 최대 최악의 테러사건의 충격을 달래왔다.
이번 가을부터 보스턴의 하버드 대학에서 연구년을 보내게 되어 개강을 기다리던 9월11일, 아침 식사를 하다가 우연히 TV에서 폭파사건을 목격하고 하루내내 얼어붙은 듯 생방송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10여년 간 미국 생활을 경험한 바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과 그 이후 미국사회의 움직임은 미국을 다시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하버드 대학은 사건발생 다음날 새학기가 시작되었는데 전날 e메일로 학교당국은 사건에도 불구하고 예정대로 개강한다는 연락을 보내왔다. 강의는 사건 희생자들에 대한 묵념으로 시작되었다. 이번 테러 사건 이후 적어도 일주일 간은 평소 같으면 길거리에서 노래 부르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던 하버드 광장은 정적 속에 빠졌으며 거리에서는 자동차의 클랙슨(경적) 소리마저 사라졌다.
9월24일에는 하버드 사이언스 센터에서 「2001년 9월11일 미국의 비극: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교수들과 학생들이 토론을 벌였고, 10월1일에는 하버드 유럽문화센터 주최로 「아프간의 역사」라는 세미나가 열렸다.
10월3일 저녁 7시에는 하버드 케네디 스쿨에서 앨 고어 前 부통령이 포럼에 참석하여 『우리가 공격당했을 때 우리는 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면서 反戰을 주장하는 평화운동자들을 비판하고 부시 대통령의 군사대응을 적극 지지하는 연설을 했다.
「우연히 만들어진 대통령」(accidental president)이라는 말을 들었던 부시 대통령을 중심으로 단결된 내셔널리즘을 과시하는 내용이었다. 1960년대 급진적 좌파운동을 주도했던 뉴욕 대학의 토드 기틀린 교수조차도 사건 이후 연구실에 성조기를 게양했다는 얘기다.
같은 날 같은 시각 하버드大 스트라우스 커먼룸에선 국제문제연구소 주최로 새뮤얼 헌팅턴 교수 등 교수 네 명과 학생들이 국제테러와 이슬람 관계에 대한 분석을 주제로 토론을 벌였다.
「문명의 충돌」을 써 기독교와 이슬람의 대충돌을 예견했던 헌팅턴 교수는 이 사건이 문명의 충돌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모슬렘의 의식과 정체성이 강해지고, 정치의식이 높아지고 있는 젊은이를 중심으로 한 人口구조의 변화가 이번 사건과 관계가 있다고 분석했다.
테러 뒤에 찾아오는 정신적 공황
사건 발생 직후 하버드 대학 총장은 e메일을 통해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와 함께 정신적 상담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센터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학생들이 정상적으로 수업을 하고 직장인들이 자신들의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정신적 안정을 되찾는 것이 사회가 정상적으로 가동되는 데 가장 긴급한 요소라는 생각에서다.
국가적 위기는 민족적 감정을 고조시켜 국민들을 애국심으로 단합시켰을 뿐 아니라 위기에 빠진 개인적 관계도 결속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미국의 매스컴은 이 사건 이후 이혼율이 급격히 감소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화염과 잿더미 속에 파묻혀 숨지는 장면을 보고 자신들이 헤어지고자 한 이유가 무엇이었든 간에 개인적 다툼은 너무나 사소한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이혼소송을 포기한 한 커플의 말이 소개되었다. 직업적 성취를 인생의 제일의 목표로 간주했던 사람들이 이 사건 이후 인생은 짧고 인생에는 일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 같다는 전문가들의 분석도 곁들여지고 있다.
그날 사건 이후 미국의 젊은이들은 정신적 충격을 달래기 위해 혼자만의 아파트로 돌아가기보다는 바에서 만난 파트너와의 캐주얼한 섹스를 선택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사건 직후 공포와 두려움에 휩싸인 이들은 육체적 따스함을 확인함으로써 밀려오는 허무와 고독을 잊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앞으로 9개월 후에는 테러공격 사건 후유증의 하나로 일시적인 베이비 붐이 일 것으로 보이지만 이번 베이비 붐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의 그것보다 심하지는 않을 것이라고한다.
군복 차림 유행
전쟁이나 위기는 여성들의 패션도 바꾼다. 이번 사건 이후 뉴요커들의 패션도 달라졌다는 소식이다. 이 사건 이후 출근 때 조깅화를 신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것은 언제라도 무너지는 빌딩으로부터 뛰어나와 가능한 멀리 달려야 하는 상황에 대한 심리적 대비이다.
의상에서도 화려함보다는 밀리터리 룩(군복 차림)이 유행할 것이라고 한다. 미디어를 통해 연일 방송되는 희생적인 경찰과 소방관의 모습은 아이들에게 이들을 자신들의 우상으로 생각하게 만들었고, 지금 장난감 가게에서는 소방관과 경찰을 모형으로한 인형들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TV 드라마 시청률이 방송국의 예상과 달리 상승했다는 통계가 나오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일찍 귀가하는 경향이 있었고 더 많은 시간을 가족과 함께 TV 앞에서 보낸 것으로 집계됐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피자 세일도 증가하였고 비디오 대여율은 30%나 증가했다는 보도다. 이 기간 동안 미국인들이 빌려본 비디오의 종류가 코미디와 액션물이 상위를 차지했다는 것도 흥미롭다.
이번 사건은 미국인들이 비행기보다 기차를 교통수단으로 다시 선택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건발생 이후 일주일 간 뉴욕의 범죄는 23% 감소했고 마약밀매와 불법이민 등 범죄발생 건수가 놀라울 정도로 감소했다는 통계가 나왔다.
지난 1990년대는 냉전이 종식되고 팍스 아메리카나를 이끌면서 상업주의와 냉소주의가 미국의 언론을 지배해왔다. 이번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여름내내 미국 미디어의 최대 관심사는 실종된 여성 인턴과 스캔들에 연루된 캘리포니아 출신 하원의원의 사생활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언론은 이번 위기를 맞아 상업적 이윤추구를 뒤로 하고 책임 있는 언론의 역할로 되돌아갔다.
모든 방송은 상업 방송을 중지하고 24시간 사건의 진상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미디어는 사건이 발생한 다음날부터 화염에 휩싸인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서 뛰어내리는 사람들의 모습과 폭파된 신체의 부분들이 흩어져 있는 끔찍한 장면 등을 자발적으로 전면 방송 금지하기로 결정했다.
평상시에는 서로 경쟁적이던 방송사들은 정보와 자료를 공유하였다. 10월4일자 워싱턴 포스트가, 그동안 테러리스트에 대한 경고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기자로서 이것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점에 대해 스스로를 비판하고 自省하는 글을 실은 것은 퍽 인상적이었다.
세계화의 종말인가
현재 미국 언론에서는 국가적 안전, 애국심과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쟁이 일고 있다. 고조된 애국심 앞에서 평화를 주장하거나 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이단자들의 행위로 치부되고 신랄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탈레반들이 겁쟁이가 아니라 수만리 떨어진 곳에 미사일을 발사하는 일이 겁쟁이 같은 일이다』라고 말한 토크쇼 진행자 호스트 빌 마는 백악관 언론 대변인의 신랄한 비난을 샀다. 아리 플라이셔 백악관 대변인은 『이러한 시기에 사람들은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하는지 조심해야 한다』라고 말함으로써 표현의 자유에 대한 검열이라는 반대편의 비난을 받았다.
사건 당일 곧바로 워싱턴으로 돌아오지 않은 부시 대통령을 『악몽을 꾼 뒤 어머니의 침대에서 피난처를 찾으려 하는 두려움에 떠는 아이』와 같다고 말한 텍사스 시티 선 신문의 기자와, 대통령을 비판한 오레곤州의 기자가 해고당한 사실은 국가적 위기를 앞세운 정부의 언론 검열이라는 논쟁을 더욱 가열시키고 있다.
이민자 심사 강화 등의 움직임과 관련해 세계화가 종말을 고하고 국경의 시대로 되돌아가게 됐다는 전망이 나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클린턴 정부 하에서 대중의 지지를 이끌어 내는 데 성공하지 못하였던 워싱턴 주재 反세계화 운동본부가 사건 이전 이미 계획된 시위를 反戰 평화운동으로 노선을 변경하여 모임을 가진 것은 흥미로운 점이다.
보수·남성화
「사탄의 詩」라는 소설을 쓴 뒤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테러 대상이 되었던 인도계 영국 작가 살만 루시디는 테러리스트가 파괴하고자 한 것은 단지 건물이 아니라 미국이 상징하는 것, 즉 언론의 자유, 복수 정당 체제, 보편적 성인의 권리, 책임 있는 정부, 여성의 권리, 동성연애자, 유태인, 세속주의, 복합주의, 미니 스커트, 춤, 진화론, 섹스 등이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전쟁이 아니라 아름다움과 최첨단의 패션, 사고의 자유, 사랑, 의견의 다양성, 관용, 문학, 영화, 음악이라는 무기를 갖고 두려워하지 않고 사는 것을 선택함으로써 테러리스트를 패배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문화는 당분간 보수화·남성화될 가능성이 크다. 사건 발생 후 미국인의 영웅이 된 소방관·경찰관들은 거의 거대한 체구의 남성들이었다. 사건발생 후 테러리스트와의 전쟁에서 물러나지 않을 것임을 선언한 부시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내셔널리즘의 부상도 곧 남성적·보수적 미국의 이미지를 상징한다.
미국인들은 절대로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할 것이라는 테러리스트 오사마 빈 라덴의 말은 미국인들로부터 안전감을 빼앗아갈 것이고 또 다른 테러 가능성의 악몽은 미국인의 일상생활과 미국인의 의식 속에 깊숙이 침투될 것이다.
실제로 70%가 넘는 미국인들이 또다른 테러 사건이 발생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여론조사 결과이다. 現 시점에서 표면적인 정상성을 회복하고 이전처럼 생활하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무너지는 월드 트레이드 센터의 이미지가 미국인의 기억에 남아 있는 한 이전으로 돌아가라는 요구는 이미 불가능한 주문인지도 모른다.
미국의 다음 세대는 이 사건에 대한 기억을 오랫동안 짊어지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