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벤처기업은 95% 정도가 망한다』
벤처기업의 붕괴를 예언했던 그는 최근 8만 주의 주식을 사원들에게 나눠주었다. 年 150억원 매출에 순이익 70억원의 창창한 회사를 꾸려가면서도 겸손과 自重을 잃지 않는 安사장은 『내가 죽은 뒤에도 살아남는, 혼이 깃들인 기업을 만들겠다』고 했다
2000년의 신데렐라벤처기업의 붕괴를 예언했던 그는 최근 8만 주의 주식을 사원들에게 나눠주었다. 年 150억원 매출에 순이익 70억원의 창창한 회사를 꾸려가면서도 겸손과 自重을 잃지 않는 安사장은 『내가 죽은 뒤에도 살아남는, 혼이 깃들인 기업을 만들겠다』고 했다
안철수바이러스연구소의 安哲秀(안철수·39) 사장은 지난해 연말 賞福(상복)이 터졌다. 정보통신부가 주는 올해의 정보통신중소기업 대상, 국회과학기술연구회가 주는 국회과학기술상, 과학기술부가 주는 벤처기업상 등 7개의 갖가지 상이 그에게 돌아갔다.
상을 휩쓸었을 뿐 아니라 벤처기업에 붙일 수 있는 가능한 모든 찬사가 그에게 쏟아졌다. 『벤처기업 CEO(최고경영자)들이 뽑은 최고의 모범 기업』 『21세기의 꿈』 『희망을 주는 경제인』 『21세기를 이끌 인물』
서울 테헤란 밸리에 투기바람이 극심했던 1999년 말 『벤처기업의 95%는 망할 것』이라는 발언으로 그와 소원해졌던 닷컴기업 사람들조차 그가 「2000년의 신데렐라」가 된 데 대해 당연시하는 분위기이다.
상복 못지않게 그를 뿌듯하게 하는 것은 안철수바이러스연구소가 매출 150억원에, 순익 70억원의 창창한 벤처기업으로 자리를 잡은 일이다. 『한글과컴퓨터처럼 매출 100억원을 넘는 기업만 만들 수 있다면』 했던 1995년 창업 당시의 바람을 넘어, 매출 200억원대를 바라보는, 탄탄한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이런 외형상의 지표만으로 그의 성공을 축하하는 일은 그에게 온당한 대접은 아닐 것이다. 공익에 대한 헌신, 벤처기업의 도덕성에 대한 소신, 국가의 미래에 대한 책임의식 같은, 그가 지난 6년간 몸으로 실천해 보인 벤처기업인으로서의 윤리가 투기 바람과 속출하는 벤처금융사범으로 얼룩진 「2000년 한국 벤처업계」에 샛별처럼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醫士의 대변신
安사장이 국내 PC계에 등장한 것은 1988년이었다. 당시 그는 서울대 의대 대학원생으로 당시만 해도 생소한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을 만들어 냄으로써 매스컴의 주목을 받았다. 그때부터 1995년 창업할 때까지 그는 在野의 아마추어 컴퓨터 마니아로서 지속적으로 백신을 무료로 제공함으로써 초창기 컴퓨터 이용자들의 벗이 됐다. 아마도 우리나라의 컴퓨터 이용자 중에 그의 공짜 백신프로그램을 사용해 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가 촉망받는 의사라는 직업 대신 벤처기업가로서 입신한 것은 1995년 3월. 안영경(핸디소프트 사장), 정철(前 휴먼컴퓨터 사장), 허진호(前 아이네트 사장), 이찬진(前 한글과컴퓨터 사장) 같은 벤처 1세대 인물들이 이미 성가를 날리고 있던 시절이었다.
재야의 화려한 이력이 프로 벤처기업가로서 성공을 보장해 주지는 못했다. 창업 자체도 한컴의 지원이 없었다면 쉽지 않았을 일이었다. 창업 초기 그는 不毛지대와도 같았던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 환경에서 苦戰을 면치 못했다. 그의 말대로 『시장과 공익을 함께 생각하지 않았다면』,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그를 믿고 있는 일반 이용자들에게 돈을 받고 백신을 팔 수는 없었다. 결국 정부기관과 대기업에 눈을 돌렸지만 말로는 그가 하고 있는 일이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실질적인 도움은 외면했다. 요즘 닷컴기업들처럼 한동안 수익모델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이 즈음 벤처기업인으로서 몇 가지 인상적인 장면을 우리에게 남겼다. 그중 하나는 초창기 벤처기업으로서 어려움을 겪던 1996년에 외국 보안업체의 거액 인수 제의를 한마디로 거절한 대목이다. 미국의 맥아피社는 앞으로 확대될 국내 바이러스 백신 시장의 경쟁자를 조기에 제거하기 위해 안철수바이러스연구소를 1000만 달러라는 거액에 인수하겠다고 제안을 해왔다. 하지만 그는 『회사를 팔 생각이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고 한다.
이후에도 대만의 백신업체 트렌드마이크로社가 그보다 2~3배나 더 많은 금액을 제시하며 인수의사를 타진했지만 그는 일언지하에 제안이 뿌리쳤다. 백신을 공짜로 배포하던 그 시절 연구소의 매출은 고작 10억원을 조금 넘을 정도.
우리 돈으로 줄잡아 100억원에 가까운 돈을 주겠다는 제안이 얼마나 매력적이었을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하지만 그는 『백신시장이 외국업체에 넘어가는 것이 뻔한데 어떻게 팔 수 있느냐』고 反問했다.
또 하나는 역시 그 즈음 자신이 경영자로서 자질이 부족하다며 2년간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경영공학 석사과정을 밟았던 일이다. 1년에 몇 차례씩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공부와 경영을 병행하는 어려운 과정을 스스로 택했다. 하루 이틀의 사업 성과에 연연해 하지 않고 길게 보겠다는 그의 탄탄한 기본철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정확한 예언이 된 폭탄선언
그의 성공시대는 대체로 1999년부터 열리기 시작했다. 1999년 하반기부터 대만産 CIH바이러스가 가공할 위력을 발휘하면서 우리 사회의 기업들도 바이러스 백신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됐다. 이미 PC가 기업의 중요한 생산도구로 자리를 잡은 만큼 기업들의 백신 수요가 폭증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업이 성공 가도에 오를 즈음, 그는 스스로 자초한 또 한 건의 일로 창업 당시에 못지않은 곤욕을 치르게 된다. 테헤란 밸리의 벤처거품이 극에 달했던 1999년 11월, 『벤처기업의 95%는 망할 것이고 내년엔 벤처금융사범이 속출할 것』이라는 그의 폭탄발언이 중앙일간지 지면을 통해 터져 나왔던 것이다.
1998년부터 시작된 인터넷과 닷컴 열풍은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 벤처를 일으켜 온 다수의 1세대 벤처기업가들에게 허망하고도 절망스러운 일이었다. 집 잡히고도 사업자금을 끌어오기 힘든 험난한 창업 초기를 거쳤던 그들로서는 수익모델도 분명치 않은 닷컴기업의 사업계획서 몇 장에 수십억 원의 투기자금이 몰리는 그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사석에서 닷컴 위기를 우려했다. 저 거품이 꺼지고 역풍이 그들에게도 고스란히 돌아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분노와 절망에 휩싸인 사람도 적잖았다. 하지만 누구도 내놓고 말하거나 극단적인 발언을 하기를 꺼렸다. 그랬다간 시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는 「벤처 보수주의자」나 동업자의 일에 고춧가루나 뿌리는 「배신자」 정도로 치부당하기 일쑤였던 시대 분위기 탓이었다.
그의 발언은 테헤란 밸리에 엄청난 파문을 던졌다. 『당연한 얘기』라고 공감한 사람은 소수파였고 거친 항의와 비판이 빗발쳤다. 일부 벤처업계 관계자들은 전문지에 기고한 글 등에서 이름을 명시하지 않은 채 『벤처 기득권층이 준동하고 있다』는 식으로 공격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파문을 일으켰던 조선일보 1999년 11월11일자 「컴퓨터바이러스硏 안철수 소장의 쓴소리」는 정현준, 진승현씨 등 벤처형 금융사범이 속출한 지난해 하반기의 상황을 족집게처럼 예언하고 있었다. 그의 발언 내용을 정리해 보면 대체로 이러했다.
『요즘 국내 벤처기업들은 재벌과 너무 닮았습니다. 精緻(정치)한 사업계획서나 아이템도 없이 벤처 붐을 틈타 무턱대고 자금만 끌어당깁니다. 내년부터는 아마 벤처기업에 잘못 투자해 자금을 날린 투자가와 사업에 망한 벤처금융사범들이 다수 등장할 겁니다』
『넘쳐나는 돈을 가지고 투자처를 찾지 못해 쩔쩔매는 벤처캐피털, 무조건 돈만 끌어들이는 일부 벤처기업 등 국내 벤처 비즈니스가 거품과 오류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