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이 출현했을 때만 해도 라디오의 시대는 끝난 것으로 생각됐다. 그러나 케이블 TV에 위성방송, 인터넷까지 등장한 지금도 라디오 채널은 늘어나고 있다. 지난 5월25일자 조선일보 9면에 실린 한 장의 사진이 라디오가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단적으로 증명했다. 그 사진은 나토 공습으로 유고 전역에 전력공급이 중단되자 한 세르비아 가족이 촛불을 켠 채 라디오 방송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모습을 담은 것이었다.
지난번 중부지방 물난리를 보도하면서 언론매체들은 천재지변을 당했을 때 반드시 라디오를 챙겨야 한다고 당부했다.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이 일주일에 한 번씩 라디오 연설을 통해 국민과 만나는 일이 매우 유용하고 효과적이라고 판단해서 이를 활용하고 있는 것도 라디오의 중요성을 대변하는 일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라디오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일부 방송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텔레비전 광고수익으로 운영되고 있어 양질의 프로그램을 만들기가 힘든 형편이며 라디오 종사자의 사기도 저하되어 있다.
라디오는 FM과 AM을 통해 방송되는 데 AM은 주파수 범위가 9㎑이지만 FM은 2백㎑나 된다. 음질이 좋은 FM은 음악위주로, AM은 정보와 오락 위주로 그 역할이 구분되어 있으나 요즘 들어서 FM과 AM의 구별이 거의 사라진 실정이다. 또한 대부분 방송사의 AM은 FM으로 동시에 방송되고 있다.
의자가 서려면 최소한 세 개의 다리가 있어야 하는데 라디오에서는 프로듀서(이하 PD), 진행자(이하 MC), 구성작가가 세 개의 다리 구실을 한다. 그러나 청취자들은 유명 MC만 기억할 뿐 정작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한 곡, MC의 말 한마디를 뒤에서 치밀하게 준비하는 열정적인 사람들에게 별반 관심이 없다. 남이 알아주든 말든 라디오가 너무 좋아 라디오와 평생을 함께 한다는 사람들. 그들을 만나보았다.
國樂을 이어간 韓信平
國樂(국악)을 명절 때나 듣는 음악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우리의 음악이 서양음악에 덮여 소리를 내지 못할 때 집념을 갖고 국악 대중화에 앞장선 KBS 韓信平(한신평·51) 라디오 제작센터장. 1973년 KBS 공채 1기로 입사한 이래 계속 고전음악과 팝 음악을 담당해온 그가 1983년 國樂담당 차장으로 발령을 받았을 때 KBS 라디오에 국악 프로그램이라곤 30분짜리 단 하나밖에 없었다. 그의 노력으로 1990년부터는 하루 네 시간씩 국악이 방송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흥겨운 국악 한마당」 「국악의 향연」 「동창이 밝았느냐」 등의 연주회를 주최해 國樂을 기념일 음악이 아닌 생활 속의 음악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國樂 프로그램이 서서히 자리를 잡아갈 때쯤 더 이상 들려줄 음악이 없다는 문제점이 발생했다. 방법은 음반 제작밖에 없었다.
『국악 관련 전문가들의 추천을 받아 국악인들의 노래를 녹음했습니다. 1980년대 중요 국악인의 노래를 전부 녹음을 했고 그 이전에 활동한 국악 연주가들의 곡도 녹음했죠』
그는 외국 출장 때도 국악 음반 찾는 일에 열심인데 캐나다 CBS 방문時(시) 1972년 김소희 김윤덕 지영희 선생의 미국순회 공연 음반을 찾았다. 이 음반의 발견과 국악인들의 연주곡 녹음으로 국악의 맥이 끊기지 않고 이어질 수 있었다.
때마침 KBS에 최첨단 녹음장치를 갖춘 16스튜디오가 마련되어 국악, 클래식 연주가를 초청해 공연을 한 뒤 특집방송으로 내보냈다. 방송은 곧바로 녹음되어 새로운 자료가 되었다. 우리 연주가들의 변변한 음반 한 장 없는 상황에서 「한국의 전통음악」 「한국의 연주가」 「한국의 작곡가」 「FM신작 가곡」 등 네 가지 음반이 1백 種(종)이나 탄생한 것이다.
그는 우리 굿을 채록하는 데도 관심이 많아 1991년부터 기획 제작한 「서울의 재수굿」과 「진오귀굿」 CD 넉 장을 악보와 함께 작년에 출간했다. 한국의 대표적인 굿 아홉 가지가 담겨 있는데, 이전까지 우리 굿 음악은 일본인이 제작한 「세계 민족음악 레코드 시리즈」에 들어 있는 게 전부였다.
『음악 프로그램을 연출하면서 외국 음악을 소개해 외국 유명 레코드사의 음반을 소비하게 만드는 게 옳은 일인가 하는 자괴감이 들더군요. 그동안 우리는 유럽방송연맹이나 아시아 방송연맹 등에 소속된 세계 29개 나라에서 일방적으로 음반을 받기만 하다가 우리도 음반을 공급하는 위치로 바뀌었습니다. 우리 음반이 외국에 소개되는 것은 신발 한 켤레, 자동차 한 대 파는 것과 비교가 안 되는 일입니다. 문화는 만들어 가는 것이죠』
국립국악원이 KBS FM의 「우리 굿 작업」을 CD음반으로 만들고 악보로 採譜(채보), 辭說(사설)을 정리 기록해 출판했는데 이 작업에 대해 韓信平 센터장은 한국의 중요문화재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다음 세대로 문화를 전승해야 하는 시대적 의무를 완성한 일이라고 할 수 있죠. 한국음악의 寶庫(보고)인 巫俗(무속)음악에 대한 완벽한 정리는 한국 음악문화의 인프라를 구축한 중요한 일입니다』
말과 소리, 그리고 음악이 없어지지 않는 한 라디오는 계속된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다.
민요를 정리한 崔相一
10년째 MBC AM에서 「한국민요대전」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는 崔相一(최상일·42) PD는 한국 民謠(민요)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인물. 그 일로 그는 정부단체를 비롯한 민요 관련 학계나 관련 업계에서 종종 자문 요청을 받는 민요 전문가가 되었다. 농업이 기계화하면서 점점 노동요가 사라지고 있어 민요 採錄(채록)은 늦출 수 없는 일이었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다.
崔相一 PD는 MBC FM에서 7년 동안 음악 PD로 일하던 중 민속악 분야에 제대로 된 음반 한 장 없다는 사실을 알고 사라져 가는 민요 採錄을 결심했다고 한다. 1989년, 제주도를 시작으로 우리나라 全(전) 지역 훑기가 시작되었다.
『제주도 민요 채록은 아주 쉽게 끝냈어요. 제주 MBC의 한승훈 부장님이 제주도 민요를 이미 다 조사해놓아 그 자료를 제공받았거든요. 韓부장님은 회사에서 민요 편성을 해주지 않았는데도 自費(자비)를 들여 퇴근 후 밤 12시까지 자료를 모으러 다녔더군요. 그분에게 큰 감명을 받고 또 민요 채록에 관한 노하우를 많이 전수받았죠』
전라남도 민요 조사부터는 그야말로 가시밭길이었다. 제작과정을 살펴보면 맨 처음 마을 주민들에게 설문조사를 하여 민요를 잘 부르는 주민을 찾는다. 대상자가 선정되면 국문학자나 국악학자를 帶同(대동)하고 찾아가 인터뷰를 하고 노래를 녹음한다.
1989년 1월부터 1995년 6월까지 7년6개월간 방문한 곳만 1백39개 郡(군) 9백4개 마을. 채록 민요는 1만4천3백 곡에 이른다. 우리나라의 민요란 민요는 다 채록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제주 밀레질 소리, 함평 방아찧는 소리, 통영 만선소리, 강원도 지역의 밭가는 소리 등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새로운 자료를 많이 발굴했다. 1개 郡에서 보통 3박4일간 묵었으니 1년의 반은 낯선 곳에서 지낸 셈이다. 그동안 뿌린 설문지만도 약 5만 장.
『처음에 채록한 민요를 방송할 때는 젊은 청취자들이 생소해 했어요. 50대 이상 되는 분들은 반갑다며 격려 전화를 많이 해주었어요. 가장 인기 있는 건 상여소리입니다. 각 지역의 상여소리가 방송될 때마다 녹음해달라는 요청이 쇄도해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죠. 모두들 고향에 가서 직접 상여를 멜 때 노래하겠다고 말하더군요』
상여소리뿐만 아니라 새로운 곡이 소개될 때마다 국악 관련 인사들과 일반 청취자로부터 자료 제공 요청을 많이 받는다. 崔PD는 그 많은 민요 중에서 일반에게 전수되고 있는 것이 상여소리와 지신밟기 등 극히 일부밖에 없다는 사실에 아쉬움을 느낀다.
1991년부터 채록곡을 CD에 담아 출간했는데 그동안 발간한 CD가 모두 1백3장에 이른다. 이 CD는 국내외 학계, 교육계, 문화계에 연구 교육 공연자료로 無償(무상) 보급됐다. 그와 함께 「한국민요대전」이라는 제목으로 9권의 책을 출간해 각계에 기증했다. CD를 보내달라는 해외 유명 연구기관의 요청에 따라 많은 기관에 CD를 보냈는데 이로 인해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해외의 인식도 많이 전환되었다고 한다.
『보람이야 말로 다할 수 없지만 그렇게 어마어마한 작업인 줄 알았으면 시작을 안 했을 겁니다』
어마어마한 작업의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민요대전」은 라디오 프로그램으로는 드물게 1995년 한국방송대상을 수상했다.
崔PD는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농사를 지으면서 함께 부르는 집단 노동요가 발달했다고 말한다. 민요를 취재하면서 느낀 한국인의 특성은 「부지런하고 잘 논다」는 것과 「일 잘하는 사람이 놀기도 잘한다」는 점이라고 한다.
지금 崔PD가 수집한 민요는 국문학이나 國樂 분야에서 논문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모은 방대한 자료에 대한 학술적 연구가 이뤄져 민요학이 발달되길 기대하고 있다. 그의 또다른 소망은 북한의 민요를 수집하고 싶다는 것. 북한은 1960년대까지 민요집을 출간했으나 1970년대 이후로는 그런 움직임이 없다고 전한다.
崔相一 PD가 10년간 민요 프로그램을 연출하는 동안 라디오국장이 일곱 번 바뀌었다. 그때마다 프로그램 存廢(존폐) 문제가 거론되었으나 서서히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長壽(장수)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다. 뿐만 아니라 1995년도부터 채록한 민요로 1분짜리 「우리의 소리」를 하루 몇 차례 방송하고 있는데 호응도 좋고 광고수익이 만만찮다.
『라디오는 장기적으로 효과를 발하는 매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발성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 큰 효과를 나타내지 못하는 것과 비교가 되죠. 생활 속에 흐르는 매체이기 때문에 장기적인 기획이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거죠』
10년 동안 방송 시간대가 바뀌고 방송 시간도 변화가 많았지만 「한국민요대전」은 모든 라디오 프로그램 중 청취율 30위권에 들어갈 정도로 청취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귀순을 결심하게 한 방송
KBS 사회교육방송은 북한 주민을 청취대상으로 삼아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특수목적 방송. 短波(단파)와 中波(중파)로 방송되는 사회교육방송에서 북한동포에게 보내는 시간이 편성된 것은 1948년 8월15일의 일이다. 사회교육방송은 하루 24시간 방송되는데 뉴스와 시사논평은 물론 가요, 연예가 중계까지 다양하게 편성되어 있다. KBS 제작본부 라디오 3국 尹東元(윤동원·51) 부주간은 반드시 우리 나라의 좋은 점만 방송하는 것은 아니라고 전한다.
『예전에는 주로 홍보성 뉴스를 내보냈죠. 하지만 3~4년 전부터 우리 사회를 가감 없이 알리고 있습니다. 與野(여야)의 목소리, 정치 쟁점, 시민단체의 비판을 그대로 내보내죠. 그만큼 자신 있다는 뜻입니다』
북한의 각종 도발 행위에 대한 논평도 곁들이는데 西海(서해)교전이 일어났을 때 북한의 잘못된 점을 지적했다고 한다. 현재 사회교육방송 청취자의 90%는 중국에 사는 조선족들. 연변지역뿐만 아니라 중국 全지역 23개省(성) 교포들이 듣고 있다고 한다. 러시아 교포들과 在日(재일)교포들도 주요 청취자. 1990년 9월30일에 한러 수교, 1992년 8월24일에 韓中(한중) 수교가 이뤄졌는데 공산권 지역에 사는 교포들로부터 편지가 오기 시작한 것은 1972년부터라고 한다. 지금까지 온 편지는 약 23만여 통에 이른다.
1979년도에 북한으로부터 첫 편지가 날아들었다. 지금까지 北(북)으로부터 약 6백통의 편지가 왔는데 대부분 중국교포들을 통해 전달되고 있다. 가족을 찾아달라는 내용이 가장 많고 두 번째로 많은 사연은 귀순 요청이라고 한다.
사회교육방송은 귀순자들을 모니터 요원으로 삼고 있는데 지난 6월에 이 방송국에 모인 18명의 귀순자들은 한결같이 북한에서 사회교육방송을 들은 적이 있으며 방송을 통해 한국 사정을 접하고 귀순을 결심했다고 한다. 尹東元 부주간은 가끔 오던 북한 주민 편지가 韓中수교 이후 늘기 시작하더니 1995년부터 부쩍 많아졌다고 전한다. 북한의 경제사정이 나빠지고 중국을 오가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중국과 러시아에서 보내는 편지 내용 중 1순위는 가족을 찾아달라는 것. 그 다음이 韓中사전이나 韓英(한영)사전을 비롯한 책자 요청이 많다고 한다. 또 한국에 연고자가 없는 중국 교포들로부터 故國(고국)을 방문하고 싶다는 사연이 그 뒤를 잇는다.
편지를 보낸 해외동포 중에 1만2천8백 가구가 한국의 가족과 만났거나 계속 연락을 하고 있다. KBS 1TV는 지난 6월부터 사회교육방송이 그간 모은 자료로 이산가족 찾기 방송을 실시하고 있다.
중국 교포들이 북한에 많이 드나들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우리나라 사정이 알려지고 있고, 북한 내에서 라디오를 조립해 中波나 短波로 사회교육방송을 듣는 북한주민이 늘고 있다고 한다. 또 중국이나 일본과 물물교환을 통해 북한으로 라디오가 반입될 때 채널 스위치에 납땜하지 않은 것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간단한 조작을 통해 남한 방송을 듣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사회교육방송에서는 북한 사람들이 몰래 방송을 들을 수 있는 밤 11시부터 새벽 4시까지를 가장 중요한 시간으로 생각해 중파와 단파 9개, FM채널 1개 등 10개의 채널을 통해 방송을 하고 있다.
현재 중국교포 사회에서 사회교육방송에 대한 인기는 대단히 높다. 연변방송, 흑룡강 조선어말 방송 등은 현지 방송보다 인기가 높은 건 물론 그곳 현지 방송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예전에는 현지 방송 아나운서들이 북한 말씨를 썼는데 약 6~7년 전부터 그곳 아나운서들이 서울 말씨로 방송을 하고 있습니다. KBS에서 방송관계자들을 초청해서 연수를 시킨 데다 사회교육방송이 계속 나가면서 부드러운 서울 말씨가 인기를 끌게 된 것이죠』
北주민들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매체
尹東元 부주간은 그곳 대학의 「조선어학과」도 명칭이 대부분 「한국어학과」로 바뀌었다고 전한다. 중국에 북한방송도 들리지만 듣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체제 선전 일색인 데다 무엇보다도 재미가 없어서 듣지 않는다는 것.
북한 귀순자들은 사회교육방송에서 방송되는 뉴스, 脫北者(탈북자) 소식을 비롯해 공산주의의 모순점을 알려주는 「노동당 간부들에게」, 한국 사정을 알려주는 「김삿갓 방랑기」를 통해 한국의 경제 발전상과 정치 민주화를 쉽게 이해했다고 한다.
중국동포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은 프로그램은 전화연결을 통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보고 싶은 얼굴 그리운 목소리」. 노래자랑도 하고 고국 친지에게 소식도 전하는 이 프로그램은 23년째 계속되고 있는데, 이 방송에 참여하려고 조선족들은 돼지고기 세 근 값인 10원짜리 우표를 붙여 편지를 보낸다고 한다. IMF 초기 金(금)모으기 운동을 할 때 사회교육방송을 들은 교포들이 그들로서는 대단한 재산인 금반지를 보내오기도 했다. 또 중국이나 러시아 현지에 가서 공개방송을 벌일 때도 있는데 그때마다 호응도가 뜨겁다고 한다.
『사회교육방송에서 일하면서 라디오의 힘이 크다는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남북한의 텔레비전은 서로 送出(송출)방식이 달라 시청이 불가능합니다. 공산권 교포들과 북한 주민들에게 라디오야말로 우리나라와 세계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매체죠. 사회교육방송은 북한과 東北亞(동북아) 동포들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매체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교통文化 바꾼 교통방송
교통방송의 李政明(이정명·43) 편성제작부장은 교통방송은 정보 전문채널로서 보기 드물게 성공한 경우라고 말한다. 1990년 6월에 開局(개국)한 교통방송은 라디오의 가능성을 입증했으며 라디오의 나아갈 길을 예고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외국에도 종일 교통정보를 알려주는 방송은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시간대별로 교통정보를 알려주는 방송이 있긴 하지만 교통 전문채널은 아직 못 봤습니다. 1980년대 중반 차량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교통문제가 심각해지자 서울시 예산으로 만든 교통방송을 開局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李부장은 기독교 이리 방송국에 근무하다가 1989년 교통방송 公採(공채) 1기생으로 開局 준비부터 맡았다.
『처음 기획단계부터 고민이 많았죠. 主(주) 청취층을 누구로 정하고 교통정보를 어떤 방식으로 전달할 것인가, 오락성은 어떻게 가미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준비팀이 고민을 거듭해 2~3년간을 채널 홍보기간으로 삼고 채널 선택권을 가진 영업용 택시·버스 기사를 主청취층으로 정했죠. 초창기에는 영업용 기사들에게 필요한 교통정보를 주로 방송했습니다』
3년 정도 지났을 때 홍보는 어느 정도 이루어졌지만 내용이 식상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때부터 자가 운전자를 염두에 두고 교통정보에다 생활정보를 가미하면서 오락성도 함께 추구했다. 이런 전략과 함께 정체가 심한 명절 때면 경부고속도로와 중부고속도로에서 일주일간 대대적인 현장방송을 실시했다. 다양한 시도와 노력 끝에 현재 차량 운전자의 62%가 교통방송을 듣는 결과를 낳았다고 한다.
『보통 55%선인데 요즘 62%까지 높아졌습니다. 이런 수치는 非(비)정상적일 정도로 높은 것이어서 부담이 될 정도지요』
李政明 부장은 교통방송이 지속적으로 캠페인을 벌인 결과 우리 교통문화가 많이 나아졌다고 말한다.
『병목구간에서 번갈아 가면서 진입하는 것, 정지선 지키기는 상당히 좋아졌죠. 진행자들이 서울 경찰청 CCTV를 보면서 위반차량을 직접 거명하는 방식으로 방송하기 때문에 좋은 효과를 나타낼 수 있었죠.
횡단보도 신호 지키기, 승하차 질서, 차량 속도 지키기도 좋아졌고 무엇보다도 고속도로 갓길 운행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또 시민이 스튜디오에 나온 서울경찰청 교통시설 담당자에게 불편사항을 건의해 실제적인 조치가 취해진 경우도 많습니다. 교통문화가 나아진 게 꼭 교통방송 때문만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一助(일조)를 했다고 봅니다』
여전히 개선되지 않은 것도 많다고 한다.
『젊은 층의 난폭 운전, 창 밖으로 담배꽁초 버리는 일, 신호가 바뀌자마자 마구 돌진하는 일, 여자 운전자들을 위협하는 일 같은 건 여전히 문제점이죠. 교차로를 비워놓을 정도가 되면 교통문화가 성숙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요즘 가장 큰 문제는 교통사고로 인한 고아가 많이 발생하는 점이라고 한다. 현재 교통 遺兒(유아)가 20만명에 이르는데 해마다 2만명씩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李政明 부장은 교통방송의 가장 큰 성과는 교통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일이며 그것은 라디오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말한다.
「KBS 무대」 45년의 업적
KBS 제1라디오를 통해 방송되는 라디오 드라마 「KBS 무대」는 올해로 45년째 방송되고 있다. 언론 통폐합이 이뤄지기 직전인 1980년도에 5개 라디오 방송에서 내보낸 라디오 드라마는 총 25개였다. 하지만 라디오 방송사가 더 늘어난 지금 드라마를 찾아보기 힘들다. 현재 KBS에서 일일극 1개와 단막극 3개를 방송하고 있으며 MBC는 14년 째 「격동 50년」이라는 정치 드라마를 방송하고 있다. 그외 방송국에서 한두 개의 드라마가 방송되고 있긴 하지만 예전에 비하면 물량이 형편없이 줄었다.
그나마 현재 라디오 전파를 타고 있는 드라마 중에 순수 드라마는 「KBS 무대」하나뿐. 이 프로그램의 책임 연출을 맡고 있는 라디오 2국 趙源錫(조원석·50) 드라마 부주간은 「KBS 무대」가 홀로 많은 역할을 떠맡고 있다고 말한다.
『원로 극작가 車凡錫(차범석) 선생이 「KBS 무대」를 「불 속에서 날뛰는 것 같은 방송 분위기 속에서 한 마리 학처럼 방송문화를 지켜 가는 프로그램」이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그동안 이 프로그램은 방송작가의 登龍門(등용문)으로서, 또 작품성 있는 드라마 발표의 場(장) 역할을 해왔죠. 약 2백여명의 방송작가와 40명의 소설가, 30명의 희곡작가, 또 많은 詩人(시인)들이 이 프로그램에 작품을 발표했고 각 방송사의 聲優(성우) 공채가 있기 전에 대부분의 聲優가 이 프로그램을 통해 배출되었죠』
이 프로그램에 성우로 등장해 영화배우가 된 사람으로는 김승호 최무룡 윤일봉씨를 들 수 있고 극단 산울림 대표 임영웅씨를 비롯해 이 프로그램이 배출한 연출가의 숫자도 만만찮다. 라디오 드라마 全盛期(전성기)였던 1970년대의 유명작가는 대부분 모두 이 프로그램 출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서영명, 최연지, 허숙 등 텔레비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현역 작가의 다수가 이 프로그램 출신이다.
『유럽의 경우 라디오 드라마는 詩 소설 희곡과 함께 문학의 한 장르로 평가받습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하인리히 뵐, 사뮈엘 베케트, 브레히트 등 많은 작가의 작품이 라디오 드라마로 발표되었다가 다시 소설, 텔레비전 드라마, 시나리오, 희곡으로 再(재)발표되었죠. 최근 유럽에서는 라디오 드라마에 대한 차원 높은 연구와 제작이 새롭게 시도되고 있습니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출반부는 라디오 드라마 평론집과 작가론을 매년 발간하고 있죠. 일본 NHK는 라디오 방송극집을 40권이나 발간했습니다』
趙源錫 부주간은 셰익스피어를 대중적으로 만들 순 없지만 대중을 셰익스피어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는 있다고 말한다.
그는 「KBS 무대」의 경우 청취율이 높진 않지만 파급 효과가 크다고 말한다.
『극본을 보내달라는 요청이 많습니다. 개인보다는 단체에 보내주고 있죠. 학생들에게 들려준다고 녹음해달라는 요청도 많고 학교에서 연극을 하겠다고 대본을 요청하는 일도 많습니다』
그는 현재 라디오 방송에 드라마가 적게 편성된 것에 대해 큰 우려를 하지 않는다.
『1980년도에 양이 많아지면서 연기자 작가 연출가의 질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었죠. 각 방송사마다 특색 있는 드라마를 한두 편씩 방송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불교방송의 「高僧列傳(고승열전)」은 드라마로 방송되고 대본을 10권의 책으로 묶어서 출간했는데 이런 현상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KBS 무대」 드라마 대본도 현재 두 권의 책으로 출간되었는데 앞으로도 계속 발간할 예정이라고 한다. 趙源錫 부주간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치 지향적이어서인지 정치 드라마는 시대를 불문하고 인기를 끈다고 말한다.
『예전에 동양방송에서는 「광복 20년」을, 동아방송에서는 「정계야화」를 방송했었죠. 「광복 20년」은 보수적인 시각, 「정계야화」는 혁신적인 시각이었는데 이 두 프로그램이 해방 이후 광복 20년을 정리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지금 MBC의 「격동 50년」과 KBS의 「그때 그 사건」은 3共(공) 이후를 정리하고 있는데 또 하나의 기록물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千祥炳(천상병) 시인의 詩 가운데 「나는 KBS 제1FM이 있어서 행복하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라디오 프로그램이 지나치게 오락 중심적이고 가볍다는 질책이 일고 있지만 KBS 제1라디오와 1FM이 교양과 고전음악을 방송하면서 무게중심을 잡고 있으니 크게 우려할 바는 아니라고 봅니다』
25년 동안 라디오 드라마 연출을 해온 趙源錫 부주간은 1986년에 등단한 희곡작가인데 라디오 드라마 연출이 연극 연출과 비슷하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낀다고 전한다.
2천 회 넘은 위문열차
대한민국 예비역이라면 누구나 기억하는 「위문열차」가 지난 5월23일 2천 회를 기록했다. 국방부 소속 국군방송에서 제작해 KBS 1 AM과 4FM을 통해 방송되는 「위문열차」가 처음 시작된 것은 1961년 10월27일. 38년간 계속되고 있는 長壽(장수) 프로그램이다. 총알이 빗발치는 베트남 전쟁터까지 찾아간 위문열차는 그동안 우리나라 사단급 부대를 모두 방문했다.
「위문열차」는 장병들의 벗이 되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지만 방송 사상 최초의 쇼로서 우리나라 쇼의 典型(전형)을 만들어온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 당대 최고의 가수들을 참여시키면서 쇼 문화가 만들어졌던 것. 「위문열차」의 첫 사회자는 후라이보이 곽규석씨. 서영춘, 송해, 이대성, 이순주, 이상용씨도 이 무대에서 사회를 봤고 지금은 개그맨 김종석씨가 사회를 담당하고 있다. 가수 나훈아씨는 공군 군악대에 복무할 때 파견 나와서 사회를 본 적도 있고, 그간 내로라 하는 가수들이 모두 이 무대를 거쳐 갔다. 현재 서울 용산구청에서 공익근무 중인 가수 박진영도 2천 회 기념 공연 무대에 섰다.
국군방송 朴誠德(박성덕) 제작부장은 「위문열차」가 新(신)세대 장병들에게도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다고 전한다. 더구나 2년 전에 각 부대의 문선대가 폐지되면서 「위문열차」가 유일한 공연 무대로 남았다.
『각 사단에서 위문공연 요청이 쇄도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일방적으로 연예인들의 공연만 이뤄졌는데 요즘은 장병들이 참여하는 코너가 많습니다. 노래와 춤솜씨가 전문가 못지않은 장병들이 많아요. 이 프로그램을 통해 국민들에게 군인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보여주고 있죠』
여전히 내무반 텔레비전에 관심이 많지만 청소년 시절에 카세트나 라디오를 귀에 꽂고 들으며 공부했던 요즘 군인들은 라디오에 익숙하다고 전한다.
국군방송은 이름 그대로 국군들을 위한 방송이지만 현실적으로 장병들이 방송을 들을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일부 프로그램을 제외하고는 일반인들을 상대로 한 방송을 제작하고 있는데 PD, 아나운서 기술진을 포함해 30명의 인원이 하루 16시간 50분의 방송을 만든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자연스럽게 군인사회를 알리고 있습니다. 입대를 앞둔 분들이 이 방송을 듣고 군대에 대한 정보를 얻고 또 친밀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일반 국민들이 군인사회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죠』
朴誠德 부장은 올해로 21년째 방송되고 있는 일일극 「5분 실화극」을 초창기부터 연출했는데 연극인 박정자씨가 6천3백 회를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해설했다. 북한의 실상을 남한과 비교해 드라마로 꾸며 보여주는 프로그램인데 정권에 따라 프로그램의 내용이 조금씩 변했다.
CBS의 토론 프로
라디오는 일을 하면서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장시간 토론이나 강의가 가능한 매체이다. 토론과 강의야말로 방송사의 의지를 간접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좋은 기회. 요즘 들어 기존 내용에 토론이나 청취자 의견접수, 전문가 의견 등을 가미해 시사 프로그램을 표방하는 프로그램이 늘고 있는데 時事(시사)를 논하려면 CBS를 지나칠 수 없는 일이다.
CBS 시사 프로그램 PD들은 각자 맡은 프로그램과 관계없이 자주 모여 이른바 CBS 정신으로 再무장한다고 했다. CBS AM 丁南鎭(정남진) PD는 CBS 정신을 「바른 시각, 공정한 보도정신」이라고 말한다. PD뿐만 아니라 외부에서 영입된 MC들도 CBS 정신을 전수받아야 한다는데, 이를 위해 프로그램 시작 전에 PD와 진행자가 끊임없이 토론한다. PD와 MC가 時局(시국)을 보는 인식이 일치되었을 때 비로소 방송을 시작한다는데 행여 CBS 정신이 희석될까 봐 구성작가를 기용하지 않고 PD가 원고를 직접 작성한다고 한다.
『PD는 비판적인 감각과 분석능력이 중요하죠. 판단을 할 때는 선배들이 이전에 했던 일을 거울로 삼고 있죠』
가장 상징적인 사건으로 1987년도 박종철 사건 보도를 예로 들었다. 「고문」이라는 말도 쓸 수 없어 「가혹행위」라고 표현할 때 「고문은 사라져야 합니다」라는 월요특집을 기획했던 것. 방송중단 압력이 들어오고 사장단에서도 방송 不可(불가) 판정을 내렸지만 PD들이 스튜디오 입구에 人(인)의 장막을 치고 생방송을 진행했다. 결국 방송은 1시간 30분 만에 중단되었고 PD들은 나머지 30분을 장송곡으로 채웠다.
CBS는 1980년 언론 통폐합 때 뉴스 기능을 빼앗겨 대신 「월요특집」이라는 시사프로그램을 통해 정세 분석을 했다. 뉴스기능을 빼앗겼을 때 일각에서 「우리는 CBS를 듣고 싶다」는 운동이 일어났었다. 「월요특집」은 요즘 매일 저녁 7시부터 두 시간 동안 방송되는 「時事 자키」의 전신. 지난 10년 동안 한국 사회의 소위 진보적 성향의 論客(논객)들이 다 이 프로그램을 거쳐갔다고 한다.
『같은 사안이어도 CBS는 접근방식이 다릅니다. 聖域(성역)을 파괴하고 누구도 하지 못하는 것을 의제로 설정했죠. 그 의제를 다루는 방법은 우회가 아닌 정면돌파였습니다』
인력과 물량이 다른 방송사에 비해 열악하지만 CBS가 한국 민주화에 기여한 부분은 결코 적지 않다는 것이 丁南鎭 PD의 생각이다.
『청취율은 높지 않지만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듣고 영향력이 확대되어 나갔다는 것이 우리 방송의 특색이죠. 가장 민감한 주제를 정면으로 치고 들어간 CBS가 가장 뜨거웠다는 것은 어떤 방송사에서도 인정할 겁니다』
5,6共 때는 선과 악이 분명해 오히려 프로그램을 만들기가 쉬웠다고 한다. 요즘 金大中(김대중) 정부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점이 고민이라고 한다.
『현재 이 정권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하는 점과 기본적으로 비판은 하지만 개혁을 돕는 역할도 해야 한다는 점, 이 두 가지 숙제를 안고 있습니다. 1년이 지난 지금 이제 어떤 방식으로든 비판을 해야겠죠』
과거 CBS 토론의 최대 임무가 눌린 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어느 한쪽이 아닌 양쪽의 시각을 조명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재벌개혁 문제를 예로 든다면 과거에는 재벌을 공격하는 것으로 끝났지만 이젠 재벌의 목소리도 함께 듣는다. 진보와 보수의 목소리를 가감없이 전달해 공정한 여론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라디오는 TV처럼 일방적으로 내뱉는 것이 아니라 쌍방향이 가능하기 때문에 생명력이 있고 친화력이 있는 매체죠. 마음속 얘기를 털어놓기 좋기 때문에 토론에 아주 적합한 매체입니다. 정보의 질이 높고 고급토론이 가능한 매체죠』
싱글벙글 쇼의 스트레스 해소 기능
MBC AM의 낮 12시 「싱글벙글 쇼」는시사 콩트를 통해 정세를 풍자하는 프로그램이다. 라디오에서는 낮 12시와 밤 10시는 매우 중요한 시간이다. 그 시간대 청취율 1위를 방송사의 자존심으로 여길 정도. 그 시간대에 가장 라디오를 많이 듣기 때문이라는데 30여년 동안 계속되고 있는 「싱글벙글 쇼」는 同시간대 청취율 3위 이하로 떨어진 적이 없다. 강석씨가 15년, 김혜영씨가 13년간 진행하고 있는데 이 프로그램의 또다른 장기 근속자는 14년간 시사 콩트를 쓰고 있는 朴京德(박경덕·41)씨. 그는 시사 콩트를 쓸 때 철저히 서민의 목소리를 대변하고자 한다고 말한다.
『저는 시사 콩트가 비판기능보다는 교정기능이 있다고 봅니다. 풍자를 하는 동안 사람들이 풍자의 대상을 향해 화를 내기보다 「그래 나쁜 놈아!」 하면서 웃어버립니다. 화나는 일을 웃으면서 풀어버릴 수 있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풍자의 대상이 된다고 기분 나빠할 건 없겠죠』
가끔 풍자의 대상이 된 단체에서 항의도 오고 방송 대사의 사투리 때문에 항의하는 사람도 있지만 원고에 대해서 참견하는 사람은 없다고 말한다. 풍자 대상에는 與野가 따로 없지만 국민회의 의원들은 野黨(야당)일 때 이 프로그램을 더 좋아했다며 웃는다.
『원고에 대해 아무런 제약이 없다는 점이 고맙죠. 뉴스를 듣고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아리송할 때 「싱글벙글 쇼」가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잣대가 되길 원합니다』
KBS TV 「사랑의 리퀘스트」 구성작가 일도 겸하고 있는 朴京德씨는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이렇게 비교했다.
『텔레비전은 1시간 반 동안 1억이 넘는 돈을 모금할 수 있는 매체입니다. 라디오에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텔레비전은 만들어서 보여주는 것이고 라디오는 정서적으로 그림을 그리게 하는 매체입니다. 텔레비전은 모든 것이 시스템화되어서 한 작가의 개인역량을 드러내기 힘들지만 라디오에서는 내 의지를 실을 수 있습니다. 텔레비전은 매일 시청률 전쟁을 하기 때문에 감각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라디오는 청취율에 상관없이 꼭 해야 할 것을 할 수 있는 매체죠』
5共 때부터 시작하여 14년간 시사 콩트를 써온 그는 그동안 정치 행태가 바뀐 게 없다고 지적한다. 「세상은 돌고 돈다」는 말로 할 말을 대신하면서 정치 수준은 그대로지만 청취자들은 말도 잘하고 글도 잘 쓰는 수준이 되었다고 전한다. 세상이 여유로워지면서 民度(민도)가 높아졌다는 것을 느낀다는 그는 우리나라 사람의 특성을 「거칠지만 힘이 있다」고 요약한다.
『미국은 미식축구 선수들이 자선 이벤트를 통해 4년 동안 4백만 달러를 모금한 것을 대대적으로 선전했습니다. 「사랑의 리퀘스트」에서는 단 1년 만에 1백억원이 넘는 돈, 즉 1천만 달러를 모금했습니다. 미국과 일본 방송사에서 방문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감탄을 하더군요. 우리 국민은 심성이 좋은데 힘 있는 자들이 황폐하게 만들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는 대통령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 직격탄보다는 우회적으로 풍자한다는데, 청취자들이 현직은 물론 전직 대통령에 대한 풍자에 대해서도 「너무 하는 거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교양프로의 典型이 된 「KBS 자녀교육 상담실」
「가볍다, 시끄럽다, 차별화가 안 된다, 정보가 단순하다」
텔레비전 못지 않게 라디오에 대한 비판의 소리도 높다는 말에 대해 他(타)방송사 PD들도 KBS에서 깊이 있는 방송을 떠맡고 있다고 말한다. KBS 라디오 金惠敬(김혜경·44) 편성부장은 KBS 2 AM과 KBS 2 FM은 다른 방송사와 유사한 형태로 운영되고 있지만 KBS 1 AM은 시사 정보 교양을, 1FM에서는 고전음악을 방송해 公營(공영)방송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전한다.
텔레비전 공채 출신인 金부장이 라디오로 자리를 옮긴 건 올해로 14년째. 그는 1992년 金泳三 정부 출범 때 「생방송 이것부터 생각합시다」라는 프로그램을 제작해 한국방송대상 최우수상을 받았다. 金부장은 라디오를 화려한 겉치레보다는 내용에 충실한 매체라고 말한다. 金부장은 1992년에 「자녀교육 상담실」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라디오 상담 프로그램의 새로운 전형을 만든 장본인이다.
『초점을 자녀에서 자녀를 교육하는 부모, 즉 인간 교육으로 교육의 폭을 넓혔죠. 고정관념을 바꾸자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습니다. 다양한 연사를 초청했고 주제도 색다르게 했죠』
이 프로그램은 교양 프로그램 변화에 작은 출발점이 되었다. 金惠敬 부장은 이후 「특별대담 6부작」 시리즈를 비롯해 대화식 혹은 강의식 토크 프로그램에 주력했는데 각 분야의 차세대 유망인을 초청해서 만든 「한국 知性(지성)과의 대화」도 큰 인기를 끌었다.
『이런 프로그램을 기다렸다면서 격려를 많이 해주셨죠. 再방송을 해달라는 요청과 교육용으로 쓰겠다며 회사와 학교에서 녹음 요청을 많이 했어요. 어떤 사람은 한꺼번에 테이프를 많이 복사할 수 있는 고속복사기를 들고 직접 방송국으로 찾아왔더군요』
金惠敬 부장은 이런 현상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고 전한다.
『그동안 너무 얕은 정보, 감각적인 이야기, 말초적인 이야기만 들어 마음이 갈급해 있던 청취자들이 진지한 얘기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고 생각됩니다.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이 청취자들의 욕구를 너무 외면하지 않았나 하는 반성을 했습니다. 분명히 알아야 할 점은 많은 사람들이 진지한 방송에 목말라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라디오에서 상담 프로그램, 강의식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자 텔레비전으로까지 확대되어 나갔다. 金惠敬 부장은 앞으로 노인 대상 상담·토크 프로그램이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들 앞에서 솔직하게 얘기하는 것을 꺼리는 편입니다. 편지 프로그램이 발달한 것도 그런 연유가 아닌가 싶어요. 한참 지난 뒤에야 얘기를 꺼내는 거죠. 솔직하게 내 생각을 얘기하는 게 훈련되지 않았어요』
정서 순화
朴健三(박건삼·55) SBS 라디오 제작위원은 요즘 희희낙락하는 잡담 수준의 프로그램이 많다고 개탄한다. 좋은 교양프로그램이나 시사 프로그램을 만들 수 없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토론 전문 진행자가 부족하고 토크 프로그램에 광고가 붙지 않고 좋은 토론자를 초빙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각계 전문가들에게 출연을 요청하면 라디오인지 텔레비전인지 물어보고 라디오라고 하면 출연을 거절하는 경우가 있어요. 겉멋이 든 지식인들이 라디오를 경시하고 텔레비전을 통해 과시하려는 거죠. 또 보이지 않는 외부 압력이 많기 때문에 행여 문제가 생길까봐 PD들도 제작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죠. 토크 프로그램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PD들이 더욱 노력해야 합니다』
朴健三 제작위원은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치권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소재를 자유롭게 선택해야 하는데 아예 「알아서 피해가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국민들이 가려워하고 궁금해하는 사항을 시사토크 프로그램에서 다뤄주면 라디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KBS 공채 1기 출신으로 MBC를 거쳐 SBS 라디오 국장을 역임한 朴健三 제작위원은 현재 SBS AM 「봉두완의 SBS 전망대」의 연출을 맡고 있다.
그는 1985년에 음악 프로그램 진행자였던 박경재 변호사를 시사토론 사회자로 변신시키기도 했다.
朴健三 제작위원은 라디오에서 어린이 프로그램이 사라졌다는 것을 가장 애석하게 생각한다.
『요즘은 비디오 세대여서 태어나자마자 텔레비전에 눈이 고정됩니다. 듣는 아이가 없으니 자연히 없어질 수밖에 없죠. 라디오를 듣고 자란 세대들은 다 느끼겠지만 라디오는 상상력과 감성을 키워주는 매체입니다. 어린이 프로그램이 사라졌다는 건 참 아쉬운 일이죠』
그는 1976년 KBS에 있을 때 최초의 노인 프로그램인 「할아버지 할머니 안녕하세요」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노인 인구가 점점 많아지기 때문에 노인 관련 프로그램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朴健三 제작위원은 예전의 라디오 PD들은 마치 천하를 얻은 것 같은 자부심에서 프로그램 제작에 최선을 다했다며 요즘 일부 젊은 PD들이 샐러리맨화 되었다고 안타까워 한다.
『라디오 PD가 소외된 분야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라디오 PD들은 자신이 독립 프로덕션 사장이라는 각오 하에 자신의 명예를 걸고 일해야 합니다』
그는 방송사가 라디오 투자에 인색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국민정서를 위해 목적의식을 갖고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것. 라디오를 「情(정)의 매체」라고 정의하는 朴健三 제작위원은 앞으로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이어진 라디오 르네상스 시대가 다시 오긴 힘들겠지만 라디오는 늘 우리 곁을 은은하게 비출 것이라고 전망했다.
MBC 「즐거운 오후 2시」의 趙廷鮮 PD
요즘 라디오 방송의 두드러진 특징이라면 청취자들을 직접 참여시키는 프로그램이 유난히 많다는 점이다. 라디오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프로그램은 예외없이 청취자 참여의 폭이 큰 프로그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각 방송사마다 전문 조사기관에 의뢰해 일년에 한두 차례 청취율 조사를 실시하지만 방송사마다 결과를 비밀로 하고 있다. 하지만 전체 라디오 프로그램 중에서 몇 개를 제외하고는 MBC가 同시간대 청취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는 건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이다.
MBC 내에서 인기 프로그램 제조기로 소문난 趙廷鮮(조정선·39) PD는 노래자랑 퀴즈 등 청취자 참여가 많은 프로그램이 청취자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말한다. 그는 요즘 MBC AM에서 이택림과 김나운이 진행하는 「즐거운 오후 2시」를 연출하고 있는데, 현재 오후 2시대 프로그램 중에서 청취율 2위를 기록하고 있다. 1위는 자신이 만들어 다른 PD에게 바톤을 넘긴 MBC FM의 「2시의 데이트 이문세」.
청취자 참여가 많다고 무조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노하우는 무엇일까? 趙廷鮮 PD는 「그런 것 없다」면서도 은근슬쩍 공개했는데 요약하면 「프로그램에 가장 적합한 MC 선정」과 「무지무지하게 재미있는 코너를 많이 만들기」이다. 가요 프로그램에서 MC가 차지하는 비중이 80%에 이른다는데 프로그램 성향에 가장 잘 맞는 MC를 영입하여 그 MC가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프로그램 成敗(성패)의 관건이라는 것. 趙PD는 프로그램을 새로 시작한 뒤 첫 달을 임상실험 기간으로 삼는다.
『한 달 동안 여러 가지 코너를 만들어서 계속 방송합니다. 재미 없으면 바로 없애고 재미 있는 코너는 극대화시킵니다. 한 달 정도 지나면 재미있는 코너만 남게 되는 거죠』
재미있는 코너를 만들 때 필수적인 것이 바로 청취자 참여도가 높아야 한다는 점이다. 방송경력 15년의 趙廷鮮 PD는 대부분의 참여자들이 노래는 잘 하지만 말을 할 때는 「떨린다」는 반응을 보인다며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머 감각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오락 프로그램에 자주 편지하는 청취자들 중에 이른바 「편지꾼」이 있는데 이들은 같은 내용의 편지를 여러 프로그램에 보내 PD들을 골탕먹인다. 내용이 일정한 패턴을 갖고 있다는데 언뜻 읽어보면 엄청나게 감동적이지만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꾸며낸 얘기란 걸 알 수 있다고 한다.
「전화꾼」도 있다는데 이들은 똑같은 목소리와 억양으로 오늘은 「파주의 간호사」라고 했다가 내일은 「일산의 미용사」라고 말한다고 한다. 자주 전화하는 「꾼」들의 직업과 이름을 칠판에 적어놓아 전화가 오면 얼른 대조해 가려낸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악용해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예전에 盲人(맹인) 안마사라던 사람이 퀴즈에서 1등을 했는데 期末(기말) 장원전 때 방송국으로 나오라고 전화를 하자 갑자기 당황하더니 결국 출연하지 않았다고 한다. 온갖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MC와 제작진은 몹시 허탈했다고 한다.
라디오 프로그램들의 성격이 비슷비슷하고 가볍고 시끄럽다는 지적이 있다는 말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요즘은 시끄러운 시대예요. MBC가 좀 시끄러운 방송이죠. 현대인들은 소음에 시달리다 보니 조용한 걸 참지 못합니다. 청취자들은 권태롭다 보니 뭐든 빨리 끝나는 것을 좋아하죠. 유머를 얘기하더라도 30~40초를 넘기면 안됩니다.
또 대낮에 나른할 때는 시끄러운 것이 활력을 줍니다. 스피디하고 시끄러운 걸 좋아한다고 우려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항상 兩極(양극)은 존재하며 조용한 방송과 진득한 청취자도 있으니까요』
청소년 프로의 鬼才
라디오 프로그램 중에 눈을 씻고 찾아봐도 어린이 프로그램은 없다. 그래서인지 요즘 청소년 대상 음악프로그램에 사연을 보내는 초등학생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라디오에 빠져든다. 라디오 음악프로그램에 청소년들이 높은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대부분 인기 연예인들이 진행을 맡고 있는 데다 최고 인기 연예인들이 이야기 손님(이하 게스트)으로 초대되기 때문이다.
음악대학에서 3년간 강사로 활동했으며 정식 음악평론가로 등단한 SBS 具炅謨(구경모·38) PD는 청소년 대상 프로그램 제작과 라디오 공개방송의 鬼才(귀재)로 불린다. 청소년 대상 오락 프로그램에 대한 비판여론이 비등한 것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비판 세력들은 현실을 모르고 맹목적으로 비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라디오가 교육적이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라디오까지 가르쳐야 한다는 것에 대해 저는 반대합니다. 라디오조차 아이들에게 강요하면 아이들은 갈 곳이 없습니다. 라디오는 그들에게 휴식을 주고 그들의 문화를 만들어 주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죠』
그는 공개방송에 오는 10代들이 건실하고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이라고 말한다. 불량한 학생들은 아예 학교에 가지 않기 때문에 공개방송에도 오지 않는다고. 라디오가 정서적이고 개인적인 매체이기 때문에 귀에 리시버를 꽂고 공부하는 요즘 아이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전한다. 청소년들에게는 교수가 나와서 딱딱하게 말하는 것보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스타의 간접적인 충고가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具炅謨 PD가 연출하고 있는 SBS AM의 「기쁜 우리 젊은 날」은 밤 10시대 청취율 1,2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는 라디오 공개방송을 청소년들에게 문화의 현장이 될 수 있도록 철저한 축제의 장으로 만든다. 그가 연출하는 공개방송은 관중이 5천명 이상 되는 대형무대. 그는 철저한 준비로 쇼를 시작부터 끝까지 한 번의 실수도 없이 물 흐르듯이 이어간다.
『공개방송은 철저히 현장 중심으로 만듭니다. 대형화면과 특수효과 등 무대연출에 만전을 기해 텔레비전보다 더 화려하게 꾸미죠. 텔레비전은 그림을 잡아야 하기 때문에 제약이 있지만 라디오 공개방송은 처음 시작해서 끝까지 한번도 중단 없이 그 열기를 그대로 이어가기 때문에 현장성이 고스란히 살아납니다』
그래서 그가 만드는 공개방송에 10대들이 몰려들고 광고가 많이 붙는다. 그는 지난 5월 한 달 동안 12개의 공개방송을 연출하느라 얼굴이 검게 그을었다.
가수들이 방송 매체를 통해 스타로 발돋움하고 음반 판매가 늘어나지 않느냐는 일반적인 시각에 대해 具炅謨 PD는 반대의 의견을 내놓는다.
『방송이 대중음악 산업을 리드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음악 산업이 방송을 리드해나가고 있습니다. 가수들이 판을 내놓으면 홍보기간에 라디오 출연을 많이 하지만 그런 것이 음반판매에 크게 도움이 된다고 보진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곡이 좋아야 한다는 점이죠. 유승준 2집이 많이 팔린 건 유승준이 유명해서가 아니라 노래가 좋았기 때문입니다』
방송사마다 음악 프로그램 PD들 책상에는 한 달이면 약 3백 장의 새로 나온 음반이 쌓인다.
『새로 나온 음반은 다 들어보는데 음악을 듣는 순간 뜨겠다, 안되겠다는 하는 느낌이 옵니다. 하나의 노래가 히트하기까지는 수많은 경우의 수가 있기 때문에 딱 한 가지로 집어서 말할 순 없지만 뜰 노래는 들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는 곡을 들어보고 노래가 좋다고 생각되면 바로 게스트로 출연시킨다. 그는 SES, 핑클, 지누션, 원타임을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을 때 「류시원…」에 고정 게스트로 출연시켰다. 그들은 자신들을 알아봐 준 具炅謨 PD를 잊지 않고 톱스타가 된 지금도 새로운 음반을 발표할 때면 「류시원…」의 게스트를 자청한다. 요즘 10代위주의 노래가 인기를 얻고 음반이 판매되는 것에 대해 그는 이렇게 얘기한다.
『「애모」 「만남」 「사랑을 위하여」 등의 노래는 10대들을 겨냥한 노래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빅 히트를 했어요. 중년들이 좋아할 만한 노래가 나오면 당연히 팔립니다. 좋은 노래는 반드시 잘 되게 되어 있습니다』
選曲의 鬼才
그는 댄스가수들이 많은 것에 대한 비판을 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온갖 인력들이 몇 년 동안 댄스음악에 힘을 쏟다 보니 노하우가 쌓여 한국 댄스음악이 동남아에서 각광받는 수준이 되었다는 것이다.
SBS FM 「허수경의 해피 투게더」의 洪性美(홍성미·38) PD 역시 라디오가 좋은 음악을 선별해 들려주면서 국민의 음악적 정서를 형성해주는 매체라고 말한다. 일반 대중이 바쁘기 때문에 어떤 음악이 좋은지 선별할 시간이 없을 때 PD들이 좋은 곡을 찾아서 일반에게 알리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는 라디오에서 선별하여 좋은 음악을 들려주는 것으로 국민의 정서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
洪性美 PD는 選曲(선곡)의 귀재로 불린다. 라디오 방송에서 일부 시사 프로그램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프로그램에서 음악은 중요한 구성요소이다. 특히 FM은 選曲이 프로그램의 성패를 좌우할 정도여서 음악 작가를 따로 기용하는 프로그램들도 있다. 그는 1995년도에 MBC 라디오 작가상을 받은 음악작가 출신. 1989년부터 프로그램 음악 선곡작가로 일하다가 1995년에 프랑스 유학을 떠난 그는 1997년 1월 SBS의 프리랜서 PD로 변신했다.
그는 자신이 選曲한 팝음악을 모아 두 장의 음반을 냈는데 각각 22만 장, 17만 장이 판매되었다. 라디오 PD로서 최초로 시도한 일이었는데 좋은 반응을 얻자 음반업자들로부터 選曲음반을 내자는 제의가 쇄도하고 있다고. 그에게 選曲 원칙을 들어보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서정적인 음악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곡이 아름답고 귀에 거슬리지 않는 것을 좋아하죠. 저는 개인적으로 영국 록 음악과 재즈, 클래식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철저히 대중을 의식해서 選曲을 하죠. 그러면서 기술적으로 새로운 곡들을 선보입니다』
프로그램 첫 곡은 모두가 알 만한 곡을 틀어 귀를 모은다. 처음부터 어려운 음악을 틀면 대중의 관심을 끌지 못하기 때문. 두세 번째 곡은 대중적이면서도 음악성이 가미된 곡을 내보내고, 프로그램이 중간 정도 진행된 다음에는 프로그램의 특성을 살릴 수 있는 음악성을 가미한 곡들과 새로운 음악을 소개한다. 이 때는 다소 어려운 음악도 괜찮다고 한다. 프로그램 마지막 부분과 끝 곡은 또다시 대중들의 귀에 익은 곡을 내보내는 것이 洪性美 PD의 선곡 노하우.
選曲을 할 때 기본적으로 고려하는 것은 DJ의 성격과의 조화라고 한다. 또 밤프로그램은 서정적인 음악을 위주로 하고 출퇴근 시간대와 낮에는 빠른 음악이 먹힌다고.
영화에 삽입된 팝음악이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 라디오 PD들이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이미 유행시킨 곡들이 많다고 한다. 말이 많아진 변형 FM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洪性美 PD는 음악만 원하는 청취자가 많기 때문에 음악전문 FM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또 음악 전문 DJ가 아닌 유명 연예인 DJ가 인기를 누리는 것도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말한다.
한국 가요의 수준을 묻자 『낮다고 비하하고 싶지는 않지만 좋다고 말한다면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다. 현재 대중들이 많이 듣는 팝음악은 주로 미국과 영국 곡이며 유럽과 호주 제3세계 곡들도 호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KBS FM 「가요광장」의 충격
인터뷰에 응한 대부분의 PD들은 음악 전문 채널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 공감하면서도 음악과 대화가 5대 5를 이루는 것을 청취자들이 좋아한다고 말했다. FM의 형식이 달라지기 시작한 진원지를 1993년도에 방송된 KBS FM 「가요광장」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현재 SBS FM 「최화정의 파워타임」 구성작가 金恩先(김은선)씨가 당시 「가요광장」의 구성을 했다.
『당시 최화정씨가 MC였는데 최화정씨의 분위기에 맞게 여러 가지 시도를 했습니다. 우선 오프닝을 서술형이 아니라 광고문안이나 詩처럼 함축적으로 썼고 코믹 콩트 코너를 만들었어요. 두 시간을 잘게 쪼개서 여러 가지 코너를 만들었지요』
이러한 구성이 인기를 끌자 FM방송 전체로 급속히 확산되어 나갔다. 金恩先씨는 인기 프로그램을 만든 공로를 인정받아 1995년도 KBS 라디오 최우수 작가상을 수상했다.
『FM방송이 많이 시끄러워졌다는 얘길 듣는데요, 그게 어울리는 MC면 상관없다고 봅니다. 다만 말장난에 그치면 문제가 있죠』
金恩先씨는 생방송 도중에 밀려드는 팩시밀리를 통해 청취자들의 마음을 읽고 그것을 방송에 반영한다고 전한다. 청취층이 점점 낮아지고 있으며 특히 주부들의 감각이 앞서가는 것도 느낄 수 있다고 전한다.
『선진국화하는 과정이라고 봐요. 큰 것에 대해 가치를 부여하기보다 작은 것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사소한 것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 쪽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고 봅니다. 예전에는 청취자들이 사랑이니 우정이니 하는 큰 주제를 좋아했는데 요즘은 꼭 집어서 제목을 정해주면 더 많은 원고를 보내더군요』
그는 청취자들의 수준이 점점 높아지고 있으며 특히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전한다.
한국방송작가협회 산하 분과인 라디오연구회의 崔桓相(최환상·43) 회장은 라디오에 관한 전문적인 연구가 너무 부족한 실정이라고 말한다.
『지난해 11월 라디오에 관한 세미나를 개최하면서 연사를 찾기 위해 근년에 발표된 언론 방송관련 논문들을 뒤져봤습니다. 논문 제목만 담은 책이 있었는데 수천 건의 논문 중에서 라디오에 관한 논문은 겨우 다섯 편밖에 없더군요. 영향력에 비해 너무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만민중앙교회 신도들의 점거로 MBC 텔레비전의 전파가 중단되었을 때 많은 사람이 충격을 받았지만 최후의 보루인 라디오가 중단되었더라면 어떤 결과가 일어났을지 상상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라디오의 중요성을 여러 가지 예를 들어 설명했다.
라디오는 위기 때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매체
『유고지역 내전이 한창일 때 보스니아 정부에 항거 중인 회교반군들이 버스를 이동식 스튜디오로 개조해서 전파를 발사하여 선무공작과 교란작전을 펼치는 비밀 라디오 방송이 최소한 50여개에 이르렀습니다. 북대서양에 배치된 영국 트라이던트 핵잠수함 함장들은 영국이 선제 핵공격을 당했을 때 BBC 라디오가 중단되는 것을 신호로 총리의 최후 지시가 담긴 봉투를 개봉하도록 되어 있죠. 천안문 사태가 났을 때 중국인들은 중국 내부 사정을 자세히 보도하는 외국방송을 듣기 위해 단파 라디오를 앞다투어 구입했었죠.
미국 정부는 얼마 전 중국에서 미국 국영 「라디오 프리 아시아」(Radio Free Asia)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과거 동서 냉전 당시 동유럽과 소련 주민들에게 소련에서 접할 수 없는 뉴스를 전했던 「라디오 프리 유럽」과 같은 성격의 방송이죠. 「라디오 프리 아시아」는 아시아 국가들의 개방과 민주화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 북한과 미얀마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로 확대해서 현지 언어로 방송할 예정입니다. 북한은 이에 대해 「부르주아 반동사상과 썩어빠진 생활양식을 유포시킴으로써 사회주의를 붕괴시키려는 것」이라며 「달걀로 바위를 깨려는 것과 같은 우둔한 짓」이라고 맹렬하게 공격했다고 합니다』
일단 유사시, 가장 효과적으로 사태를 전달하고 가장 최후까지 남을 매체는 라디오뿐이라고 말하는 崔桓相씨는 라디오야말로 가장 중요한 언론 매체임을 강조했다.
인터뷰에 응한 한 PD는 『인기 프로그램 MC의 한 마디가 대통령의 말보다 위력 있을 때가 있다』고 말했다. 라디오는 힘이 세고 라디오는 영원하다고 말하는 그들은 라디오의 전통을 면면히 이어가는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라디오를 만드는 사람들, 그들이 추구하는 세계는 총천연색의 화려한 영상이 결코 보여줄 수 없는 상상과 감성의 세계이다. 그 세계에서 늘 조금씩 변화가 계속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