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섹스왕국」의 8순 여왕 베아테 로터문트의 삶

『사람들은 늘 생각한다. 섹스를 끝내주게 하려면 어떻게 하나를…』

  • : 김창수  cs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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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유럽 證市 사상 최초로 상장된 「섹스주식」 대주주 베아테 로터문트 할머니의 재산은 1백억 달러를 상회한다. 섹스 산업의 개척자·여왕으로 불리는 그녀의 어린 시절 꿈은 비행기 조종사였고 이를 실천했다. 한때 스턴트 우먼도 했던 그는 敗戰 후 섹스용품 배달·판매로 사업을 벌였고 빼어난 수완으로 이제는 세계 최고의 섹스왕국을 만들었다
『물론 놀랐다. 우리는 앞으로 성공을 만들어 감으로써 투자자들의 셈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할 것이다. 지금 무척 즐겁다. 그러나 우리는 더 열심히 해야 한다』
 
  지난 5월27일 유럽 證市(증시) 상장 이래 상종가를 치달으며 상승곡선을 그리는 「섹스 주식」의 발권자 베아테 로터문트(Beate Rotermund)의 즐거운 비명이자 기염이다. 섹스숍과 포르노 영화관, 도색 잡지·비디오·CD , 각종 섹스 용구, 인터넷 포르노 사이트 등 섹스에 관한 것이라면 죄다 손댄 유럽 최대의 종합섹스기업 「베아테 우제」. 섹스왕국에 걸맞게 「性(성)은 상품」이라는 모토를 내걸고 있는 이 별난 회사가 프랑크푸르트 주식시장에 상륙한 지 얼마 안돼 증권가에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유로화 기준으로 발행 당시 株(주)당 7.2유로였던 株價는 5월27일 13.5유로로 마감, 첫날 두 배 가까이 껑충 뛰었고 이튿날 역시 19.8로 마감되는 등 초장부터 엄청난 오름세를 기록했다. 한 시사주간지는 이를 가리켜 「주식시장의 비아그라」 출현으로 묘사했다.
 
  上場 이전부터 주문이 쇄도, 청약 마감기간을 앞당겼던 「우제 주식」은 주식 공개후 불과 두 달 만에 時價총액을 기준으로 9백30만 마르크(75억원 상당) 증가에 2백67.8%의 주가 상승률을 기록, 일찌감치 證市 전문가들의 예상을 훌쩍 넘었다. 시가총액 규모 또한 1억1천40만 마르크(8백80억원 상당)로 前年(전년) 同期(동기) 대비 45.7%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그야말로 「섹시한 주식」으로 객장을 휘젓고 있다. 순수 매출로 따지자면 작년 한 해 베아테 우제 주식회사의 총매출고는 1억6천9백만 마르크. 그런 베아테 우제가 이젠 아무도 넘볼 수 없는 섹스산업의 선두주자로 세계 주식시장에 정식 명함을 내민 것이다. 2003년에 가선 매출고를 5억 마르크대로 끌어올릴 야심찬 스케줄을 짜고 있는 베아테 우제의 오너 베아테 로터문트 회장.
 
  현재 證市에서 나타나고 있는 「우제 주식」의 선풍적인 인기도를 감안한다면 머지 않아 그녀의 재산은 1백억 달러를 상회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섹스 재벌의 총수 자리 오른 팔순의 할머니
 
 
  「섹스왕국의 여왕」 「섹스산업의 개척자」 「오르가슴의 여신」 「불꽃」 등 갖가지 이상한 별명을 지니고 있는 베아테 로터문트는 그러나 독일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친절하고도 평범한 이웃 할머니 얼굴이다. 올 나이 79세. 한국 나이로는 이미 팔순이다. 가족을 보면 세 자녀에 손자 9명을 두고 있다.
 
  현재 독일 成人(성인) 가운데 98%가 이 할머니의 이름을 알고 있고 매스컴도 잘 타는 전국적인 저명인사다.
 
  그녀는 지난 5월의 주식 상장 전 투자자들에게 로드 쇼(투자설명회)를 가질 적에도 「섹스 퀸」답게(?) 세 명의 스트립 걸과 유방을 완전히 드러낸 半裸(반라)의 모델을 帶同(대동), 사진거리를 제공했다. 한번의 사별과 한번의 이혼으로 현재 독신인 그녀는 이젠 늙어서 침대에 남자를 끌어들이지는 않지만 自慰(자위)에 쓰는 自社(자사) 제품의 手淫(수음)진동기는 갖춰놓고 있다고 스스럼없이 털어놓기도 했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금의 내가 아니라면 돌고래 조련사가 제2의 꿈』이라고 말하는 베아테 로터문트는 그녀의 별명처럼 불꽃 같은 인생을 살아왔다.
 
  1919년 10월25일 東(동)프로이센의 봐르게나우에서 베아테 쾨스틀린이란 이름으로 태어난 그녀는 1남2녀 중 막내였다. 사업가인 아버지와 소아과 의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비교적 유복한 환경 속에 큰 그녀는 열다섯 살 여중생으로 투창부문 헤센州(주) 대표로 뽑힐 정도로 운동에 소질을 보였다. 열여섯 살 때에는 영어를 배우겠다는 한 가지 목표로 영국인 집에 들어가 가정부 생활을 한 적도 있다.
 
  어린 시절 장래희망은 엉뚱하게도 비행기 조종사. 1927년 미국인 린드버그가 세계 최초로 대서양 횡단에 성공한 것을 보고 파일럿이 될 결심을 했다는 것. 그런데 결국 그녀는 그 엉뚱한 꿈을 이루고 만다. 1937년 열여덟 살의 나이로 베를린 랑스도르프 비행학교에 입학, 6개월 만에 조종사 자격증을 따냈다. 1938년에 직업조종사로 일하기 시작한 그녀는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좀이 쑤셨는지 영화 스튜디오인 「우파(Ufa)」에 가끔 출몰해 스턴트 우먼 역을 맡기도 했다.
 
 
  독일 敗戰 후 극심한 고생
 
 
  1939년 비행학교에서 만난 선생 한스 위르겐 우제와 결혼. 이때 얻은 베아테 우제라는 이름이 바로 지금의 회사 간판이다. 1944년 독일 공군대위로 出戰(출전)한 남편이 戰死(전사), 4년 후 재혼하지만 아마 그녀는 이 이름을 좋아했던 모양이다.
 
  그녀 역시 나치 조종사로 참가했던 전쟁이 1945년에 끝나고 소련군이 東베를린으로 입성하기 직전 그녀는 외아들 클라우스를 데리고 탈출했다.
 
  베아테 우제 주식회사의 인터넷 홈페이지는 自社의 연혁 맨 첫머리를 이 순간부터 시작하고 있다.
 
  <여조종사 베아테 우제는 두 살배기 아들을 태우고 쌍발 비행기로 독일이 아닌 네덜란드의 北프리슬란트 근처 브라데루프 마을에 내렸다. 終戰(종전) 후 독일 내에서는 비행이 금지된 때문이었다>
 
  잠시 戰犯(전범)수용소에 갇혀 있던 그녀는 얼마후 출소했으나 생계가 막연했다. 전쟁으로 남편은 물론 부모형제도 모두 잃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한 인터뷰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탈출 후 나는 홀로 일어서야 했다. 남편은 전사했고 아버지는 東프로이센에서 소련군에게 사살됐다. 그 직후 어머니도 세상을 등지셨다. 두 살 난 아들과 나만 두고 말이다.』
 
  청상과부의 호구지책으로 자전거 한 대에 장난감과 생필품을 싣고 동네방네 돌아다니는 行商생활이 시작됐다. 훗날 그녀는 당시의 궁핍 속에서 인내를 배웠다고 했다. 그 시절 브라데루프 마을엔 버터도 콘돔도 없었다. 오로지 전쟁포로로 끌려간 남자들의 귀향행렬만 이어졌다. 그런 속에서 마을 여자들의 배는 속절없이 불러갔다.
 
  소아과 의사 어머니를 두었던 베아테 우제는 소위 생리 주기법이란 걸 알고 있었는데 마을 부인들이 도움을 요청해왔다. 이런 곡절을 거쳐 나온 게 피임지침서 「슈리프트 X」이다. 「X 책자」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이 소책자는 그러나 말이 지침서이지 지금으로 볼 땐 그리 대단한 건 아니었다. 말하자면 可妊(가임) 주기를 알아내 性관계를 갖거나 피할 타이밍을 조절하는 정도의 안내서였다. 가격은 당시의 「제국 마르크」로 2마르크.
 
  『물론 그 피임법은 안전하진 못했죠. 하지만 그 시절로 볼 때 속수무책인 것보단 낫지 않은가요?』
 
  어쨌거나 「X 책자」의 등장은 베아테 우제로 하여금 思考의 전환점을 가져다 준다. 무엇보다 책자 구독자인 17명의 마을 여자들은 그녀를 성문제에 관한 한 베테랑으로 인정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신들이 필요한 지식을 은밀히 알려주길 원했고 그래서 그녀는 性에 관련된 상식 등을 담은 작은 카탈로그까지 끼워 배달했다. 나중에는 콘돔이나 섹스서적도 배달 판매에 들어갔다. 그랬더니 제국 마르크가 아닌 정식 마르크화로 값을 지불하는 고객이 늘어났다. 오늘날 섹스재벌로 성장한 「베아테 우제」의 첫 걸음이었던 것이다. 물론 아직은 자전거를 통한 배달 판매였다.
 
  『나는 생각했다. 사람들은 원초적 본능의 문제를 풀고자 한다. 섹스를 끝내주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떻게 하면 남편이 항상 나를 원할까? 그래서 이들에게 그들이 고민하는 문제를 해결할 소포물을 익명으로 보내준다면 훌륭한 「주치의」가 되지 않을까』
 
 
  피임기구 통신판매에 뛰어들어
 
 
  1949년 사업가인 에른스트 발터 로터문트와 재혼한 그녀는 남편이 사는 플렌스부르크로 이사한다. 곧 이어 차남을 낳은 후 産後 조리를 끝낸 그녀는 여기서 피임기구 상점을 낸다. 자전거 이동판매를 그만두고 통신 판매방식을 택하는 등 사업 기법을 획기적으로 바꾸었다. 3년 후인 1951년 시청에 정식으로 사업자 등록도 마쳤다. 지금도 本社를 이곳에 두고 있는 섹스왕국의 뿌리가 내린 것이다.
 
  그러나 일찍 시련이 다가왔다. 한 미혼자에게 콘돔이 잘못 배달되는 바람에 형사고발을 당한 것이다. 그때만 해도 그런 일은 외설방조 혐의를 사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오랜 프로테스탄트 정신이 뿌리내린 독일에서 외설은 당시 분위기로 사회의 公敵(공적)이었다. 베아테 로터문트는 법정투쟁에 나섰다. 性은 인간의 자유에 관련된 기본권이라는 게 그녀의 철학이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문을 닫는 사태로까지 가진 않았지만 이 訟事는 시작일 뿐이었다. 그녀는 그후로 무려 2천여 건에 달하는 訟事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재판에 진 것은 벌금형이 유일하다. 포르노 영화관에서 법에 규정된 가격 이하로 맥주를 팔았다는 것.
 
  하지만 사업 초기 주변의 냉소는 여간 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는 플렌스부르크 골프클럽에서 회원자격을 박탈당하기도 했다. 베아테 로터문트는 훗날 아예 그녀 소유의 골프장을 지어버렸다.
 
  사업자 등록 전후로 사업은 급성장해 1952년 「우리 부부는 모든 것이 잘 맞아!」라는 32쪽짜리 성인잡지 등 50종에 달하는 책자들이 날개 돋친 듯 팔렸다. 20만 고객을 넘는가 했더니 1956년 1백만 권으로 진입했다. 「샤 코켄」 「헬가와 베른트」같은 성인용 잡지가 특히 인기를 끌었다. 「헬가와 베른트」는 단일 잡지로 35만 부를 웃도는 기록적인 판매실적을 올렸다.
 
  1961년 미국을 방문한 그녀는 통신판매와 관련, 세 가지 점에서 새롭게 눈뜨게 된다.
 
  첫째는 컬러풀한 카탈로그가 송달률이 높다는 것, 둘째는 고객들에게 반품권을 1백% 보장하라는 것, 셋째는 우편판매가 잘되는 것은 전시판매 실적 또한 좋다는 것이다. 이같은 판매기법에 착안한 그녀는 1962년 드디어 세계 최초의 섹스숍을 플렌스부르크에 열었다.
 
  이후 사업은 순항을 거듭, 섹스숍 극장·잡지 등은 「증식과정」을 늦추지 않았다. 섹스숍만 해도 오늘날엔 독일 국내외에 50여개 지사와 40여개 대리점을 두고 있다. 현재 해외 지사망으로는 스위스 15군데, 오스트리아 8군데, 마요르카섬 3군데 등이 있다. 특히 내년에 가면 프랑스 영국 헝가리 폴란드 등으로 해외 지사망을 넓힐 계획이며,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도 섹스숍을 열 예정으로 있다.
 
 
  1962년, 세계 최초로 섹스숍 열어
 
 
  그러나 외형상의 하드웨어만 늘려간 게 아니다. 1970년대 들어선 사업영역을 확대, 판매가 허용되는 범위에서 성욕 증대 약제의 개발에 나서는가 하면 性 관련 책자와 잡지 소설을 내는 출판사도 정식으로 세웠다. 1970년대 중반 이후 그녀는 영화산업에 눈을 돌려 베아테 우제 영화사를 설립, 본격적인 「블루 무비」 제작에 나선다. 이게 오늘의 베아테 우제 비디오 프로덕션의 前身(전신)이다.
 
  베아테 로터문트의 사업가적 수완을 잘 보여주는 것 가운데 하나가 「동독 공략편」. 그녀는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동독 지역으로 몰아닥칠 자유의 물결이 性 해방의 물결로 이어질 것으로 진즉 내다봤다. 그래서 그녀는 국경이 열리자 채 열흘이 되기 전 12대의 버스에 미리 제작한 60만 장의 카탈로그를 싣고 동베를린을 비롯 라이프치히 드레스덴 등 동독 대도시들을 돌아다녔다. 「性의 사절단」이 순회공연에 나선 셈이라고 할까. 베아테 우제社(사)에 따르면 현재 서독지역은 3백만, 동독지역은 2백여만의 고객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그칠 줄 모르는 그녀의 사업열정이 만든 작품 중 빼놓을 수 없는 게 베를린 중심부에 서 있는 「에로틱 박물관」. 베아테 우제 설립 50주년을 기념해 1996년 베를린 도심 칸트街(가)에 세워진 이 건물은 그녀의 50년 旅情을 총결산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3층짜리 이 건물 안엔 이른바 「섹스 토털 아트」가 통시적으로 집대성되어 있다. 원시시대의 성기 숭배신앙을 읽을 수 있는 石物(석물)이나 목각품들로부터 현대의 각종 첨단(?) 섹스물에 이르기까지 性에 관한 것이라면 모두가 망라돼 있다. 회화 만화 조각 석판화 미니어처 등 전시품이 하나도 빠짐없이 섹스가 표제어이다. 크고 작은 동서고금의 男根(남근)과 성희 장면들이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널려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카마수트라식 인도적 표현이 있는가 하면 중국 소녀경이나 일본 춘화식 표현 등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장르들은 모조리 동원됐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한쪽에는 컴퓨터로 動(동)영상 포르노物을 관람할 수 있게 했고 루돌프 발렌티노, 하인리히 질러, 마그누스 히르시펠트 등 1920∼40년대 감독들의 흑백 고전 포르노가 돌아간다. 물론 이 대목에서도 베아테 로터문트의 商魂(상혼)은 쉼이 없다. 박물관 입구나 출구는 1층 섹스숍을 거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베아테 우제의 생산품이 모두 전시 판매되고 있다. 이 박물관에 있는 全 전시품들은 인터넷 홈페이지(www.beate uhse de.)에 수록돼 있다. 하지만 공짜로 다 들여다볼 수 있길 기대해선 안된다. 「맛뵈기」로 몇 가지 정도 보여줄 뿐 좀더 열심히 살필라치면 이내 크레디트 카드 번호를 대라고 요구한다.
 
  그도 그럴 것이 1992년부터 시작한 전화나 컴퓨터 등 멀티미디어 사업영역에서도 베아테 우제는 짭짤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작년 한 해 총 매출액 1억6천9백 마르크 중 소매부문은 전체의 54%, 통신판매 21%, 도매 18% 그리고 멀티미디어 쪽도 7%의 매출고를 차지하고 있다. 아직은 전체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지만 1천1백90만 마르크의 적지 않은 실적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들어 특히 그녀는 라디오나 TV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그녀 자체가 상품이 되기 때문에 여기저기서 토크 쇼의 단골 게스트로 모셔가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대중들에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잘 나가는 기업인인 때문만도 아니다. 그녀 특유의 性에 관한 시각과 철학이 시청자들을 매료시킨다. 무엇보다 性에 대한 솔직함이 그녀의 최고 자산이다. 그녀의 어록엔 이런 것도 있다.
 
  『누구나 섹스를 할 때엔 자신이 최고전문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신의 사랑의 방식을 모든 이들이 준수해야 할 척도라고 생각해선 안된다』
 
 
  『매일매일을 즐겁고 긍정적으로…』
 
 
  1970년대 초 그녀는 뉴욕에서 사귄 25세 연하 흑인과의 동거 스캔들로 손가락질을 받은 적이 있었다. 이때 그녀는 『여자 나이 50대면 TV 앞에서 축구중계 보며 맥주나 마시는 환갑 넘긴 남편보다 쌩쌩한 남자가 훨씬 어울리는 법』이라며 일축했다 한다. 그녀는 또 『섹스숍에서 쇼핑하는 것은 잔디 깎는 기계를 둘러보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性을 즐기는 데 있어 性的(성적) 수치심은 불필요한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상품 자체를 일별하더라도 수치심과는 영 거리가 멀다. 「아빠가 딸과 함께」와 같은 문구가 달린 그림책, 「변태 할망구」 같은 싸구려 비디오도 만들어낸다. 항문성교만 전문적으로 가이드하는 잡지도 있다. 「10대의 항문파워」라는 CD도 나온다. 「진동하는 손」 같은 포르노 소설은 59.9마르크로 값이 비싸지만 베스트 셀러이다.
 
  자신의 역할을 「生(생)의 즐거움과 사랑을 전하는 친선대사」라고 정의하는 게 그녀이다. 하지만 아무리 시절이 변했다고는 하나 오늘날도 그녀의 손자들은 골프나 요트클럽에 가입하려면 애를 먹어야 한다. 그녀 자신이 골프클럽 가입을 거부당하고 또 연방 공로훈장이 기독교민주당(CDU) 의원에 의해 추진됐다가 좌절당한 쓴 경험을 갖고 있다. 이럴 때마다 그녀는 웃고 지나쳤다. 그녀는 그런 경건함을 가장한 위선적인 속물근성이 자기와 자기 회사를 살찌우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한 주제에 全생애 바쳐야 성공
 
 
  그런 그녀의 인생철학은 무얼까.
 
  독일 경제전문지 「주간경제」에 실린 단문 단답형 인터뷰가 잘 설명해주고 있다. 잠시 들어보기로 하자.
 
  ─ 삶의 원칙이 있다면.
 
  『매일매일을 즐겁고 긍정적으로. 그리고 어떤 상황이든 가장 최선의 상태로 만들어 간다는 자세로』
 
  ─무얼 위해 인생을 거나.
 
  『그것은 책상 위에서 나올 수 없다. 그것은 현실에서 나오는 것이며 사람들은 그럴 때 몸을 던진다』
 
  ─ 어떻게 일하나.
 
  『내 일이 나날이 좋아지도록』
 
  ─ 당신은 세계를 더 좋게 만들고 싶지 않나.
 
  『아니다. 내가 젊었을 때엔 그랬다. 그러나 인생은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인간은 개별자로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한 과제를 위해 全인생을 바쳐야만 성취할 수 있다는 교훈이다』
 
  ─ 성공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나 자신이 설정하고 도달할 수 있는 목표』
 
  ─ 당신에게 돈은 얼마나 의미 있는 것인가.
 
  『그것은 삶을 편하게 해준다. 인생에서의 여러 아름다운 것들, 예컨대 휴가, 주택, 낯선 땅으로의 여행 등을 가능하게 해준다』
 
  ─ 여가 시간에는 무엇을 하나.
 
  『골프 테니스 수상스키 정원가꾸기』
 
  ─ 가장 애석하게 생각하는 일은.
 
  『골프를 십대 때부터 일찍 시작하지 못한 것이다』
 
  ─ 일에 실패했을 경우엔 어떻게 하나.
 
  『어떤 잘못이 실패로 치닫게 했나, 다음에 그것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를 깊이 생각해본다. 그런 다음 한숨 자버린다』
 
  ─ 어떤 책을 가장 감명 깊게 읽었는가.
 
  『1947년에 출판된 미국 데일 카네기의 「친구를 얻는 법」이었다』
 
  ─ 젊은이들한테 인생의 조언을 준다면.
 
  『적극적이고 근면하고 열린 마음으로, 그리고 성공의 길에 가기 위해선 많은 인내를 동반해야 한다는 것, 좌절은 금물이라는 것 정도를 말해주고 싶다』
 
  ─ 자신한테 가장 자랑스러운 것은 무엇인가.
 
  『79세란 나이에도 여전히 꼿꼿이 걸을수 있다는 것』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해 간단명료할 정도로 자기 확신에 찬 어조들이다. 「독일의 섹스혁명을 일으킨 인물」로 평가될 만도 한 것 같다.
 
  「섹스주식」의 이번 증시 상장에는 코메르츠 방크 등 독일 내 유수은행들이 대거 컨소시엄에 참여했다. 이 코메르츠 방크의 아하엘 쉬클링은 얼마 전 한 인터뷰에서 자신은 짐짓 경건한 체하는 스타일이 아니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물론 다음의 말은 베아테 우제社의 모토이기도 하다.
 
  『섹스야말로 팔리는 상품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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