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人物] 유고특사로 再起한 빅토르 체르노미르딘 前 러시아 총리

  • : 이용순  ysrhee@chosun.com
글자 크기 조정
  • 스크랩
  • 본문 음성 듣기
  • 글자 크기 조정
URL이 성공적으로 복사되었습니다.
빅토르 체르노미르딘(61) 前 러시아 총리가 갑작스레 동분서주하고 있다. 한동안 활동이 뜸했던 그가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의 유고 特使(특사)로서 베오그라드와 미국, 서유럽 그리고 중국까지 오가면서 「평화의 메신저」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정치인으로서는 좀 어눌한 말투를 지녔다는 그가 「뒷방」에서 벌이는 담판과 설득에는 재주가 있는 모양이다.
 
  체르노미르딘 특사는 지난 5월10일 밤 중국을 방문했다. 체르노미르딘의 돌연한 중국 방문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전폭기의 베오그라드 주재 중국대사관 誤爆(오폭) 사건으로 중국 내에서 격렬한 反美(반미)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뤄져 주목을 받았다. 그의 방문은 이날 오전 옐친 대통령이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과 전화통화를 한 후 그에게 중국 방문을 지시해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체르노미르딘은 지난 5월11일 중국의 장쩌민 주석과 주룽지(朱鎔基) 총리, 첸치천(錢其琛) 부총리 등 중국 지도자들과 연쇄 회담을 갖고 코소보 사태 해결방안을 논의했다. 체르노미르딘 특사는 『나토군의 중국대사관 폭격은 지탄받아 마땅한 침략 행위이며 야만적 행동』이라며 중국측 비위를 맞추고, 『나토의 군사행동은 평화협상을 어렵게 만들고 사태를 막다른 궁지로 빠져들게 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체르노미르딘은 장쩌민 주석으로부터 양국 정상이 전날의 전화통화에서 논의한 비공식 정상회담 11월 개최를 확인받기도 했다.
 
  체르노미르딘은 이에 앞서 5월8일 독일 본에서 게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 유엔 발칸 특사 카를 빌트와 회담을 가졌고, 코소보 알바니아계의 온건파 지도자 이브라힘 루고바와도 만났다. 슈뢰더 총리 등과 회담을 가진 뒤 체르노미르딘은 『문제가 가능한 한 신속히 「정치적」으로 해결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슈뢰더 총리도 『이번 사건으로 코소보 분쟁 해결을 위한 외교적 노력의 필요성이 倍增(배증)하고 있다』며, 나토의 중국대사관 오폭 사건이 코소보 사태의 해결을 향한 진전을 「탈선」시켜서는 안된다는 데 세 사람이 의견을 같이했다고 말했다.
 
  체르노미르딘은 독일 방문 후 당초 예정돼 있던 베오그라드 방문 일정을 전격 취소하고 귀국했다. 그는 서방 선진 7개국(G7)과 러시아 등 G8 외무장관들이 5월6일 합의했던 코소보 평화안을 놓고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유고연방 대통령과 의견을 조율하기 위해 5월9일 유고를 방문할 예정이었다. 그는 4월 말에도 베오그라드를 방문, 밀로셰비치를 만났었다.
 
  그는 중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5월11일 모스크바를 방문한 스트로브 탈보트 美(미)국무부 부장관과 만나 코소보 사태를 논의했다. 체르노미르딘은 앞서 5월3일 미국을 방문,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에게 러시아측 평화안이 담긴 옐친 대통령 서한을 전달했으며,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과도 얘기를 나누었다.
 
  지난해 9월 두 차례에 걸친 러시아 국가두마(하원)의 총리 인준 거부에 따라, 예브게니 프리마코프에게 총리직을 양보해야 했던 체르노미르딘. 2000년 여름의 러시아 대선을 1년여 남긴 상태에서 끝난줄 알았던 그의 「정치 행보」는 다시 재개된 느낌이다.
 
  그가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설 수있는 것은 무색무취한 그의 스타일 덕분이기도 하다. 브레즈네프 시절에 차관, 고르바초프 시절에 장관, 옐친 시절에 최장수 총리라는 경력이 말해주듯, 그는 정치적 색깔이 별로 없는 직업관료 출신이다. 눌변으로 대중적 인기도는 별로 높지 않으나, 「타협적인 실용주의자」라는 것이 강점이라면 강점이다.
 
  체르노미르딘은 우랄산맥 남부 오렌부르그州(주)의 코사크 기병대 출신 집단거주지에서 태어났다. 석유회사 말단 노동자로 출발한 그는 「誠實(성실)」을 무기로 옛 소련 공산당 석유, 천연가스 산업부문 당료 및 직업관료로 출세를 거듭했다. 1989년 세계 최대 천연가스업체인 「가스프롬」 회장직을 맡았으며, 1992년 12월 총리로 발탁돼 1998년 3월까지 재임했다. 그러다 러시아 재정위기에 책임을 지고 30대의 「젊은 총리」 세르게이 키리엔코에게 총리직을 내주었다.
 
  중국대사관 오폭사건으로 코소보 사태가 복잡하게 꼬이는 감은 있지만, 그럴수록 제3자인 러시아의 중재역할은 중요해지고 체르노미르딘의 행동반경은 더욱 커질 가능성이 있다.●
  • 스크랩
URL이 성공적으로 복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