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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추적

‘DJ 정권 실세 금고지기’ 金榮浣의 행로

정몽헌 죽음의 진실 밝혀질까

글 : 김성동  월간조선 기자  ksdh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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對北 송금 판도라 상자의 열쇠는 검찰이 갖고 있다

⊙ 스위스 은행으로 보낸 ‘현대 비자금’ 3000만 달러 집중 조사 받은 듯
⊙ 3000만 달러 수령인은 金正日인가, 金大中 정부 최고 실세인가?
⊙ 對北 송금 특검 직전인 2003년 3월 출국했다 2011년 11월 말 귀국해 검찰조사 받고 출국
⊙ 3000만 달러 스위스로 보낸 현대상선 金忠植 전 사장도 검찰조사 받고 다시 출국
⊙ 스위스 은행 송금 비밀 키를 쥔 3인 鄭夢憲, 김영완, 김충식
⊙ 정몽헌 회장은 3000만 달러 검찰 진술 직후 사망
⊙ 생존해 있는 두 김씨는 정 회장의 죽음을 통해 무엇을 보았는가
⊙ 문건 입수… 금융당국, 김영완의 ‘수상한 금융 거래’ 계속 주시해와
현대 비자금 200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의 재판과 관련, 2003년 11월 21일 서울지법 앞에서 실시된 현장검증에서 법원 직원들이 현금이 든 상자를 다이너스티 승용차에 싣고 있다.
  김대중(金大中) 정부 시절 실세들의 비자금을 관리해 온 것으로 알려진 무기중개상 김영완(金榮浣)씨가 2011년 11월 26일 귀국해 검찰의 조사를 받고 사흘 만에 다시 출국했다. 2003년 3월 대북(對北)송금 특검법이 통과되면서 미국으로 도피한 지 8년9개월여 만이다.
 
  김씨는 대북송금 사건과 현대그룹 비자금 사건의 열쇠를 쥔 인물이다. 그는 2000년 3~4월경 권노갑(權魯甲) 전(前) 민주당 고문의 부탁을 받고 정몽헌(鄭夢憲) 당시 현대그룹 회장의 비자금 200억원을 권 전 고문에게 전달한 혐의로 기소중지된 상태였다. 자수를 했다고는 하지만 기소중지자가 조사만 받고 다시 출국하는, 이례적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2003년 8월 15일 구속된 권노갑씨가 서울구치소로 가는 승용차에 타기 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2년 총선(總選)과 대선(大選)을 앞둔 미묘한 시점에 이루어진 김씨의 귀국과 출국을 놓고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검찰이 “사전 조율은 없었다”고 했지만, 어떤 보장을 받고 귀국했으며 어떤 보따리를 풀어 놓았기에 기소중지자가 조사를 받은 후 곧바로 출국이 가능했겠느냐는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현대그룹 비자금 사건과 대북송금 사건은 일란성(一卵性) 쌍둥이다. 현대그룹이 비자금을 조성해 유력 정치인들에게 돈을 주었고 현대그룹이 대북 송금액도 마련했기 때문이다. 현대그룹 비자금 사건의 개요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권노갑 고문이 관련된 사건과 박지원(朴智元) 민주당 전 원내대표와 연관된 사건으로 나눌 수 있다.
 
  권 전 고문과 관련된 사건은 16대(代) 총선 3개월 전인 2000년 1월 권 전 고문의 요청으로 정몽헌 회장이 비자금을 조성해 스위스 은행 계좌로 3000만 달러를 입금했다는 것과 같은 해 3~4월 경 총선자금 지원 명목으로 200억원을 추가 제공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정 회장이 2000년 4월경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이던 박 전 민주당 원내대표에게 금강산 유람선의 카지노 사업 허가 등을 부탁하며 150억원을 제공했다는 사건이다.
 
  검찰 주장대로라면 김씨는 정 회장이 권 전 고문에게 200억원을 줄 때는 메신저와 전달자의 역할을, 박 전 원내대표에게 150억원을 줄 때는 메신저의 역할을 했다. 또 두 사람에게 전달된 돈의 일부를 맡아 관리하는 비자금 관리인의 역할도 했다고 한다.
 
 
  귀국은 부동산 때문?
 
서울 종로구 평창동 소재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김영완씨 자택.
  그렇다면 김영완씨는 어떤 인물인가.
 
  김씨는 해외도피 중이던 2003년 8월 정권 실세에 대한 현대그룹의 비자금 전달 과정을 구체적으로 밝힌 ‘자술서’를 검찰에 보냈다. 자술서에서 그는 자신의 학력과 경력에 대해 이렇게 소개했다.
 
  <학력은 1971년경 서울 중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8년 고려대학교 교육심리학과를 졸업하였으며, 경력은 79년경부터 삼진통상이라는 상호로 가정용품 등을 미국, 유럽 등에 수출하는 무역업을 하다가 85년부터 95년까지는 군사용 헬기 등 무기를 생산하는 미국의 휴즈사와 보잉사의 한국 에이전트로 일하면서 헬기 24대 및 레이더를 수입하여 국방부에 납품하는 일을 하였고, 그 후 삼진통상은 그만두고 화남텍(주)이라는 법인을 설립하였으나 국회에서 문제를 제기하여 에이전트를 그만두었으며, 그후 부동산 임대 및 개발업체인 운남매니지먼트(주), (주)맥스 D&I 등의 회사를 설립하여 회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김씨는 자술서 등에서 권노갑 전 고문에게 간 돈의 일부인 50억원과 박지원 전 원내대표에게 간 돈 150억원을 자신이 관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대중 정부 실세들의 비자금 관리인을 자청하고 있는 것이다.
 
  김씨는 세상에는 무기중개상으로 주로 알려졌지만 전국적으로 24개 필지의 부동산을 소유한 부동산 거부(巨富)이기도 하다.
 
  서울에만 최근까지 종로구 평창동에 지하 1층 지상 2층짜리 단독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것을 비롯해 강남 요지인 청담동, 도곡동, 역삼동 등에 빌딩을 갖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4개의 건물만 해도 시가로 1000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이들 건물은 김씨의 학교 후배 등 재산 관리인들이 맡아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확인 결과 대북송금 특검 직전 미국으로 출국하기 전과 2011년 12월 현재 김씨의 부동산 소유 관련 현황은 큰 변함이 없었다.
 
  일각에서는 김씨의 최근 귀국이 부동산 문제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김씨의 해외 체류가 길어지자 관리인 가운데 김씨의 빌딩을 가로채려는 징후가 있어 그 문제 해결이 시급했다는 것이다.
 
  김씨는 1990년 미국 보잉사의 헬기 도입과 관련, 국정감사가 열리면서 당시 국방위원이었던 권 전 고문과 알게 됐다고 한다. 박 전 원내대표와의 첫 만남은 ‘권 전 고문이 소개해서 이루어졌다’는 설과 ‘장관 출신 모 인사가 소개해 주었다’는 설이 있다.
 
  박 전 원내대표와의 만남에 대해 김씨는 자술서에서 “1997년 12월 또는 98년 1월경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 서울 시청 부근에 있는 코리아나 호텔 커피숍에서 대학교 선배인 안기부 간부의 소개로 알게 됐다”고 밝혔다. 이들 외에도 김씨는 정·재계, 언론계 등에 폭넓은 인맥을 형성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 도피해 있으면서도 김씨는 알고 지내던 정치인들에게 골프채를 선물로 보내는 등 자신의 인맥을 꾸준히 관리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의 이름으로 선물을 보내지는 않았지만 받은 사람들은 선물을 보낸 주체가 김영완씨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김씨는 또 자신의 수행비서들에게도 수고비를 100만원씩 수시로 줘 상당히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자금세탁의 귀재
 
2003년 6월 23일 오전 대북송금 특검에 재소환되고 있는 고(故) 정몽헌 회장.
  정권 실세들의 비자금 관리인을 자처하는 김씨는 자금세탁 방법이 전문가도 혀를 내두를 정도의 귀재였다고 한다. 김씨는 현금과 양도성예금증서를 수표로 전환한 뒤, 다시 장기채권이나 어음 형태로 자금을 가지고 있다가, 이를 다시 주식과 채권·현금 등으로 바꾸는 방법을 사용했다고 한다. 자금세탁에는 노숙자 명의의 계좌까지 동원했다고 한다.
 
  자금세탁 방법이 전문가도 혀를 내두를 정도라고는 하지만 금융 당국은 김씨의 ‘수상한 거래’를 예의 주시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기자는 김씨가 미국에 도피 중이던 2003년 7월 22일에도 국내 대리인을 내세워 자금세탁을 했다는 정보보고 문건을 입수했다.
 
  이 문건에는 ‘기 제공한 심사분석완료보고서 제○○○호, 제○○○호(대상자 김영완)와 관련된 추가 정보 사항임’이라고 돼 있어 그 이전부터 김씨의 자금세탁 동향을 파악해 왔음을 알 수 있다.
 
  다음은 문건에 적혀 있는 금융거래 내역 부분이다.
 
  <―기 제공한 특정금융거래정보 제○○○호, 제○○○호에서 언급한 한미은행 역삼지점 김영완 명의 계좌에서 출금된 현금 3억원이 동 지점의 대여금고에 입고되어 있는바
 
  ―03.7.22 (주)운남매니지먼트사의 대표이사인 송○○ 및 남자 1인이 한미은행 역삼동 지점 1층에 내점하여 동행한 사람에 대해서는 검찰 직원이라고 소개하고는 가져온 금고열쇠로 대여금고에 있는 현금 3억6700만원을 인출하여 자기앞수표 1매(#바가 11××××××)를 발행한 후 곧바로 동지점 2층 기업금융지점에 내점하여 (주)운남매니지먼트 명의의 기업저축계좌로부터 수표 32억여원을 인출.>
 
  이 금융거래에 대해 문건은 이렇게 분석하고 있다.
 
  <법인으로부터 인출한 자금으로 본인이 이사로 재직중에 있는 제이앤드씨캐피탈이 엔터원의 최대 주주가 될 수 있도록 주식 매입을 도와주고 동 자금 중 상당 부분을 다시 인출하는 한편, 은행계좌를 통해서도 관계 회사나 본인의 자금을 자금세탁하는 등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한 죄로서 횡령·배임과 관련된 자금세탁 행위를 한 것으로 판단되는 김영완의 관계회사인 (주)운남매니지먼트의 금융거래가 추후 발견됨에 따라 수표 추적 등을 통하여 혐의 사실을 구체화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됨.>
 
  이외에도 금융정보 당국은 김씨의 부인 장모씨의 ‘수상한 해외투자’에 대한 보고서를 올리는 등 김씨 주변의 금융거래를 면밀히 주시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유력 야당 당권 주자 흠집내기?
 
2003년 6월 16일 오전 대북송금 특검으로 소환된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 특검 사무실로 들어서고 있다.
  김영완씨의 귀국 문제는 정치권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의 증언이 정치권에 끼칠 파장이 만만찮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노무현(盧武鉉) 정부 시절인 2007년 초에는 정치권에서 “김씨가 2006년 말 귀국해 여권 유력인사를 만나고 다시 출국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2007년 2월에 열린 국회 정보위에서 한 야당 정보위원의 “김씨가 두 달 전 가명으로 국내에 입국한 사실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당시 김만복(金萬福) 국정원장이 “출입국 관리 기록을 보니 그런 사실이 있는 것 같아 조사를 지시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정보위가 열린 바로 그 다음날 국정원이 “여러 가지 형태로 확인해 본 결과 입국한 적이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공식발표를 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명박(李明博) 정부 들어서도 김씨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귀국을 타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에서는 현 정부 들어 이번 말고도 다른 시기에 김씨가 입국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물론 검찰은 이번 김씨 귀국에 대한 사전 조율설을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다.
 
  이런 정치권의 반응은 이 사건이 재벌, 비자금, 정치권 실세, 재벌 회장의 죽음 등 사회적 반향을 일으킬 만한 흥미로운 요소들을 골고루 갖추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권노갑 전 고문이 관련된 현대그룹 비자금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권 전 고문이 김씨를 통해 정 회장에게 200억원을 지원해 줄 것을 요청했고, 정 회장은 당시 현대상선 사장이었던 김충식(金忠植)씨에게 200억원을 조성토록 지시했다. 김 사장은 용선료(傭船料·일종의 선박 임대료) 등의 명목으로 비자금 200억원을 조성했다. 이렇게 마련한 돈을 정 회장은 이익치(李益治) 당시 현대증권 회장을 통해 김씨에게 전달해 권 전 고문에게 건네지도록 했다는 것이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 사건의 경우, 박 전 원내대표가 김씨를 통해 정 회장에게 150억원 지원을 요청했고 정 회장은 이 돈을 이익치 회장을 통해 1억원짜리 CD(양도성예금증서) 150장으로 전달했다는 것이다. 박 전 원내대표는 이 돈을 김씨에게 관리토록 했고 필요할 때마다 김씨로부터 돈을 받아 사용해 왔다는 게 검찰 측 주장이었다. 검찰은 증거로 정몽헌 회장, 이익치 회장의 진술서와 김영완씨의 자술서 등을 법정에 제출했었다.
 
  권 전 고문은 200억원 수수와 관련, 2004년 10월 대법원으로부터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박 전 원내대표는 2006년 9월 대법원으로부터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정치권 등 일부에서는 김씨의 귀국이 박 전 원내대표가 무죄 판결을 받은 사건과 관련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김씨의 소환조사설이 알려지자 박 전 원내대표 측이 “이런 민감한 시점에 김씨를 소환조사하는 것은 야당의 유력 당권 주자에 대한 흠집내기를 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반응을 보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박 전 원내대표 사건은 이미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이 됐기 때문에 수사를 새롭게 진행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다만 김씨가 박 전 원내대표의 유죄를 입증할 만한 결정적 증거를 내놓았다면 박 전 원내대표 측의 우려대로 야권 통합을 앞두고 ‘야당 유력 당권 주자에 대한 흠집내기’는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검찰 주변에서는 “김씨에 대한 이번 검찰조사에서 ‘야당 유력 당권 주자 흠집내기’가 부산물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주는 아니었을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검찰 주변 소식통들에 따르면 실제 이번 김씨 소환조사에서 박 전 원내대표뿐만 아니라 권 전 고문에 대해서도 장소, 이동수단 등 돈 전달의 구체적 경로를 확인했다고 한다. 다만 김씨의 진술 수위가 자신이 쓴 자술서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한 검찰 소식통은 “권노갑씨나 박지원씨 연루 사건보다는 스위스 은행으로 보낸 3000만 달러의 행방에 관한 조사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며 “3000만 달러 사건은 그 돈의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엄청난 사회적·정치적 파장이 예상되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鄭夢憲 회장의 진술서

 
대북송검 특검의 조사를 받기 위해 미국에 체류하다가 2003년 5월 7일 새벽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는 김충식 전 현대상선 사장.
  3000만 달러 해외송금 사건은 검찰이 수사는 진행했지만 기소는 하지 않고 넘어간 사건이다. 검찰이 밝힌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1999년 하반기 정몽헌 회장은 총선을 앞두고 권 전 고문의 지원요청을 받았다. 권 전 고문에게 200억원을 건네주기 전이다. 정 회장은 현대상선 김충식 사장에게 비자금 조성을 지시했다. 3000만 달러의 비자금을 조성한 김 사장은 그 돈을 현대상선 미주본부를 통해 김영완씨가 알려준 스위스 UBS은행 계좌로 송금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이 바깥으로 드러난 것은 정몽헌 회장, 이익치 회장, 김충식 사장의 검찰 진술을 통해서다.
 
  정 회장은 사망하기 열흘 전인 2003년 7월 26일 검찰에 출두해 3000만 달러 해외송금 사실을 진술했다. 다음은 그 진술 내용 일부다.
 
  <검: 2000년 1월경과 같은 해 3월경 두 차례에 걸쳐서 현대상선 자금 3000만 달러와 현금 200억원을 권노갑에게 준 사실이 있나요.
 
  정: 네, 그렇습니다.
 
  검: 3000만 달러를 주게 된 경위는 무엇인가요.
 
  정: 1999년 12월 말인지 2000년 1월 초경인지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납니다. 그 무렵 김영완으로부터 권 고문이 나를 보자고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신라호텔 라운지에 있는 커피숍에서 만났습니다.
 
  그때 권 고문은 “총선이 얼마 안 남았는데 현대그룹에서 좀 도와달라. 여당을 도와주어야 대북사업도 잘되지 않겠느냐”는 취지의 말을 하였죠.
 
  그리고 3, 4일 후에 이익치가 제 사무실로 와서 하는 말이 “권노갑 쪽에서 미화(美貨)로 3000만 달러를 달라고 한다”고 보고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줘야 하지 않겠느냐”는 취지의 말을 하였죠.
 
  며칠 뒤에 이익치가 해외의 계좌가 적힌 쪽지를 가지고 와서 하는 말이 “이쪽으로 보내 달란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김충식 현대상선 사장을 불러서 계좌번호가 적힌 쪽지를 주면서 “총선과 대북사업에 필요한 자금이니까 어렵겠지만 보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김충식이 “사업은 어렵지만 회장님이 말씀하시는 거니 해 보겠다”고 말하고 갔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김충식 사장은 송금이 완료되었다고 저에게 보고를 하였습니다.>
 
  하루 전인 7월 25일에 있었던 이익치 회장의 검찰 진술 내용은 3000만 달러 송금과 관련한 정 회장의 진술과 다르다. 정 회장이 “이익치 전 회장으로부터 김영완이 알려준 해외계좌를 받았다”고 주장한 반면, 이 회장은 “정 회장으로부터 김영완의 계좌를 받았다”고 진술하고 있는 것이다.
 
  <검: 3000만 달러를 건넨 경위는 어떤가요.
 
  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2000년 1월경 정몽헌 회장이 불러서 서울 종로구 계동 소재 현대그룹 사옥에 있는 정몽헌 회장의 사무실로 갔었습니다. 정 회장은 “민주당에 미화 3000만 달러를 주려고 하는데, 필요한 계좌를 김영완이 가지고 올 테니 가지고 오면 받아서 나에게 가져오라”고 하였습니다.
 
  그 후 1~2일 지나서 김영완 회장이 서울 계동 소재 현대 사옥의 제 사무실로 찾아와서 저에게 흰 봉투를 주면서 “정몽헌 회장님께 전해 드리라”고 해서 저는 흰 봉투 안에 들어 있는 것이 계좌번호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날은 정몽헌 회장이 부재중이어서, 그 다음날 정몽헌 회장에게 그 봉투를 전해 주었습니다.
 
  검: 그러면 위 계좌는 국내 계좌인가요.
 
  이: 제가 보지는 않았지만, 달러로 입금하는 것으로 미뤄 볼 때 아마 김영완 관련 해외계좌로 생각합니다.>
 
  두 사람의 진술이 계좌를 전해 준 주체에 대해서는 엇갈리고 있지만 비자금 3000만 달러를 조성해서 해외로 송금한 부분은 일치한다. 정몽헌 회장은 3000만 달러 해외송금 진술 열흘 후인 8월 4일 사망했다. 정 회장의 죽음은 자살로 알려졌지만 그의 죽음을 둘러싼 많은 의문이 아직도 풀리지 않은 상태다.
 
 
  3000만 달러 수령인은?
 
  그렇다면 스위스 은행 계좌로 입금된 3000만 달러의 행방은 어떻게 된 것일까. 검찰은 현대그룹 비자금 사건 수사에서 3000만 달러의 행방을 찾아내지 못했다. 3000만 달러의 행방을 놓고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은 4가지다.
 
  첫째는 북한 김정일(金正日)에게 송금했을 가능성이다. 송금 시점이 남북 정상회담과 관련한 협상이 시작되기 직전이었기 때문이다. 대북송금 특검을 통해 정상회담 대가로 북측에 돈을 준 사실이 밝혀진 데서 알 수 있듯이 정상회담 성사를 위한 사전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도 북한에 돈을 주었을 수도 있다는 추론이 가능한 것이다.
 
  게다가 스위스 은행은 김정일이 비자금 수십억 달러를 은닉하고 있을 정도로 애용하는 곳이기도 하다. 2000년 3~4월 싱가포르, 상하이, 베이징 등에서 열렸던 남북 정상회담 예비접촉 회담에 비자금 전달 메신저로, 관리인으로 일해 왔다는 민간인 신분의 김영완씨가 참석했었다는 것도 이 추론을 뒷받침할 수 있는 사실이다.
 
  또 하나는 당시 ‘국민의 정부’ 고위층에게 전달됐을 가능성이다. 정몽헌 회장의 7월 26일 검찰 진술서 중 관련 부분이다.
 
  <검: 그러면 그 자리에서 문화관광부 장관에게 좀 잘해 달라고 부탁하지는 않았습니까.
 
  정: 그렇게까지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대북사업이 적자가 나서 어려우니 카지노 및 면세점 허가가 나도록 도와 달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을 뿐이고, 권노갑이 “알았다”면서 “도울 수 있는 대로 최대한 돕겠다”는 취지로 말하였던 것입니다.>
 
  현대그룹은 당시 금강산 관광사업과 관련해 매달 3억원에 달하는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다. 이 적자를 메우기 위해 금강산 카지노 및 면세점 사업을 추진했지만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지 못하고 있었던 상황이다. 카지노 및 면세점 사업 허가를 받기 위해 당시 정부 고위층에게 전달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또 다른 유추는 김영완씨가 가로챘을 가능성과 검찰조사상으로 3000만 달러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진 권노갑 전 고문이 받았을 가능성이다. 하지만 두 유추는 현실성이 낮아 보인다. 김씨의 경우 3000만 달러 송금 사건 이후에도 현대그룹의 비자금을 정권 실세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계속 맡았다. 배달 사고를 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권 전 고문의 경우도 검찰이 3000만 달러 송금 사건과 권 고문의 관계에 대해 수사를 하고도 기소는 하지 않은 점으로 미루어볼 때 가능성이 낮다.
 
 
 
미국에 있다는 3000만 달러 송금영수증

 
  검찰이 이번에 김영완씨를 조사하면서 3000만 달러 해외송금과 관련된 부분을 집중적으로 조사했을 가능성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검찰은 김씨가 조사를 받고 출국한 지 얼마 안 돼 이익치 회장을 소환해 이 부분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자금 사건 당시 현대상선의 자금담당 임원으로 알려진 박모씨도 참고인 자격으로 검찰소환이 통보됐다. 박씨는 스위스 은행 계좌로 3000만 달러를 송금하는 실무를 담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또 권노갑 전 고문도 3000만 달러와 관련해 소환할 계획이라고 한다.
 
  검찰 관계자는 언론사 기자들에게 “3000만 달러 부분은 수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며 “살펴봐야 할 기록도 많고 얘기를 들어봐야 할 참고인도 많다”고 말했다고 한다.
 
  3000만 달러의 행방을 알 수 있는 키를 쥔 사람은 정몽헌 회장, 김영완씨, 김충식 사장 등이다. 정 회장은 검찰조사에서 3000만 달러가 누구에게 갔는지를 밝히지 않았지만 비자금 제공자로서 받는 사람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는 사망했다. 김영완씨는 해외 계좌 번호를 넘겨준 사람이다. 당연히 계좌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알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충식 사장은 현대상선 미주본부를 통해서 3000만 달러를 송금한 사람이다. 역시 계좌의 주인을 알 수밖에 없는 역할을 한 사람이다.
 
  검찰은 3000만 달러 해외송금 사건 수사 과정에서 김 사장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했었다. 김 사장은 검찰조사에서 “정몽헌 회장의 지시로 현대상선 미주본부를 통해 스위스 은행 계좌로 3000만 달러를 보냈다”고 진술했다. 김 사장은 또 “3000만 달러 송금영수증을 미국에 있는 지인에게 맡겨 두었다”고 했다. 검찰은 그 영수증을 가져오라며 김 사장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를 일시 해제했다.
 
  김 사장은 2003년 7월 31일 자신의 변호사와 함께 미국으로 출국했다. 출국 4일 뒤 정몽헌 회장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그는 미국에 머물며 약속과 달리 귀국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송금영수증은 애초 존재하지 않았던 것일까.
 
  김 사장과 동행했던 변호사는 송금영수증의 존재를 확인했다. 다만 송금액이 3000만 달러가 아닌 2500만 달러였다고 한다. 다음은 2003년 8월 5일 작성된 검찰 내부 보고서에 나와 있는 사건 담당 검사와 김 사장과 동행했던 변호사의 통화 내용이다.
 
 
  판도라의 상자 열리나
 
  <검: 송금영수증을 확보하고 실제로 확인하였나요.
 
  변호사: 김충식 사장과 함께 영수증을 보관하고 있는 미국인 지인을 만나 송금영수증을 확보하고 제가 확인했습니다.
 
  검: 송금액이 얼마인가요.
 
  변호사: 2500만 불입니다.
 
  검: 3000만 불 아닌가요.
 
  변호사: 송금영수증상 2500만 불입니다. 김충식 사장은 검찰조사서 3000만 불로 알고 그렇게 진술하였는데, 송금영수증상 실제 송금액은 2500만 불이라고 합니다. 2500만 불이 한화(韓貨)로 300억원인데, 그래서 당사자들이 3000만 불로 알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검: 2500만 불 외에 또다른 송금영수증은 없는가요.
 
  변호사: 없습니다.>
 
  검찰은 이후 김 사장의 귀국을 지속적으로 종용했지만 김 사장은 귀국하지 않았다. 그랬던 김 사장이 2004년 11월 비밀리에 귀국해 검찰의 조사를 받았다. 김 사장은 대검 중수부에서 3000만 달러 해외송금 사건과 현대그룹 비자금 사건에 대해 조사를 받았다. 그는 출국 때 약속했던 송금영수증을 가져오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귀국 후 40여 일간 국내에 머물던 김 사장은 김영완씨가 그랬던 것처럼 아무 문제 없이 다시 미국으로 출국했다.
 
  검찰이 아직 수사 중이라는 3000만 달러 해외송금 사건의 키를 쥔 두 사람을 쉽게 출국시켜 준 이유는 뭘까. 은신하듯 외국에 오랫동안 체류하고 있는 두 사람은 ‘정몽헌 사망 사건’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정몽헌 회장은 3000만 달러 해외송금 등을 진술한 후 10여 일 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변했고 그의 죽음 후 송금영수증을 가지러 미국으로 갔던 김 사장은 영수증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 3000만 달러 해외송금 사건과 정 회장의 죽음은 어떤 연관이 있을까.
 
  검찰 소식통은 “검찰이 두 사람의 출국을 허용한 배경에는 3000만 달러 해외송금 사건의 실마리를 확보했기 때문일 것”으로 분석했다.
 
  이 검찰 소식통의 말처럼 어쩌면 검찰이 이미 현대그룹 비자금 사건과 대북송금 사건과 관련한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본 것은 아닐까. 검찰은 진작부터 3000만 달러의 수령인이 누구인지를 공개했을 때의 그 사회적·정치적 파장을 셈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정몽헌 회장은 사망했고 그가 사망한 후 김영완, 김충식 두 사람이 검찰 조사를 받았지만 3000만 달러 수령인이 누구인지는 세상 밖으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김영완, 김충식 두 사람이 침묵하고 있는 건가. 사회적 파장을 고려한 검찰이 침묵하고 있는 건가. 말할 수 없다는 것, 그것은 ‘거대한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정몽헌 회장은 3000만 달러 해외 송금 등 현대그룹 비자금 진술 후 사망했다. 자살? 타살? 그것은 아직도 논란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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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달기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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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한가족2 영화    (2024-01-15) 찬성 : 0   반대 : 0
권노갑과 박지원은 누구의 수족인가 ?
정몽헌회장님께서 단돈 300억원에 자살한 이유는 당연하지 않은가 ?
제대로 발설하면 현대 전체가 무너지지 않겠는가 ? = 전체를 위한 자살 희생플라이
발설했다면 그냥 놔둘수 없는 타살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 = 도저히 밝힐수 없는 당시 최고 존엄
북에 전달 못한 남한의 300억
빤히 다 보이는데 !
우리는 비겁한 관람자 !!
  호구    (2011-12-27)     수정   삭제 찬성 : 347   반대 : 243
뒷돈 대느라고 정몽헌이만 호구가 된거제. 호구의 과부가 김정일 죽응께 평양가서
조문을 했다고 하는디 ...은인이 죽었응께로.. 남편 죽게 만들어 현대가 현씨집안으로
굴러떨어징껑께 은인 아닝게비여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번것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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