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2일 김성민 전 자유북한방송 대표의 빈소를 찾았다가 ‘2025 서울 북한인권세계대회’를 준비하는 분을 만났습니다. 그분의 말씀입니다.
“전에 북한인권세계대회를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던 기업인이 있어서 6월 대선 후에 다시 찾아갔더니 ‘미안하지만, 어렵겠다’고 하더군요. 회사 간부들이 ‘그러다가 세무조사라도 받게 되면 어떻게 하느냐’고 아우성을 쳤다는 겁니다. 큰 교회들에 도움을 청해도 ‘장로님들이, 김장환 목사님이나 손현보 목사님처럼 되는 거 아니냐’면서 말려서 안 된다고 하네요. 나라 전체에 공포 분위기가 떠돌고 있는 것 같아요. 나라가, 이 나라가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요?”
이재명 대통령은 9월 11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대한민국에는 권력의 서열이 분명히 있다. 최고 권력은 국민·국민주권, 그리고 직접 선출 권력, 간접 선출 권력”이라고 말했습니다. 논란이 되고 있는 내란특별재판부에 대해서는 “뭐가 위헌이냐?”고 했습니다.
9월 15일 국회에서 절대다수 의석을 점하고 있는 여당 대표는 “대법원장은 직에서 물러나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대통령실 대변인은 바로 “입법부·행정부·사법부의 삼권분립도 있지만, 무엇보다 주권재민(主權在民)이라는 측면에서 헌법 근본정신은 입법부가 가지고 있는 충분한 논의에 대한 존중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호응하고 나섰습니다.
그들의 말대로라면 ‘국민’ ‘국민주권’이라는 이름 아래 입법부와 대통령은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다는 것처럼 들립니다. 논리 구조만 놓고 보면, 언필칭 최고권력이라는 인민주권을 구현하는 소비에트를 최상위에 놓고, 행정부와 사법부를 소비에트에 예속시키되, 그 소비에트는 혁명적 전위(前衛) 정당이 좌지우지했던 시스템이 떠오릅니다. 물론 그럴 리는 없다고 믿고 싶습니다.
어느 여당 정치인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주변에 많은 ‘2찍(국민의힘 지지자들에 대한 멸칭-편집자 주)’들이 살고 계시는데 한날한시에 싹 모아다가 묻어 버리면, 그러면 세상에는 2번을 안 찍은 사람들만 남으니까, 그러면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완전히 성공하고 한 단계 도약하지 않겠습니까.”
“제도는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한다”
아마 많은 분들이 “설마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그렇게 쉽게 망가지기야 하겠느냐?”고 하실 겁니다. 하지만 미국 예일대 교수였던 역사학자 티머시 스나이더는 그의 책 《폭정: 20세기의 스무 가지 교훈》에서 “우리는 제도가 가장 직접적인 공격에 직면해서도 자동적으로 스스로를 지킬 것이라고 추정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제도는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한다”고 경고합니다.
〈제도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 통치자들이 바로 그 제도를 바꾸거나 파괴할 수는 없으리라고 추정한 것은 치명적인 실수였다. 심지어 그들이 제도를 바꾸고 파괴하겠다고 공언했을 때조차 사람들은 그런 오판을 저질렀다. 혁명가들은 때때로 여러 제도를 단번에 파괴하려고 한다. 러시아의 볼셰비키가 바로 이런 방식을 취했다. 때때로 제도는 그 생명력과 기능을 빼앗기고 껍데기만 남기기도 한다. 그 결과 제도는 새로운 질서에 저항하기보다는 그것을 고착화하는 데 기여한다. 이것이 바로 나치가 ‘획일화’라고 부른 것이다. 나치가 내세우는 새로운 질서가 공고해지기까지는 1년이 채 안 걸렸다.〉
스나이더는 또 “일당(一黨) 국가를 조심하라”고 경고합니다.
〈국가를 개조하고 경쟁자들을 억압한 당들이 처음부터 전능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역사적 계기를 이용하여 반대파의 정치활동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중략)
유리한 선거 결과에 대담해지거나 이데올로기의 힘으로 움직이는 정당, 또는 두 가지 경우에 다 해당되는 정당은 안으로부터 체제를 바꿀 수 있다.〉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더라도 침착하라”는 조언도 의미심장합니다.
〈현대의 폭정은 테러 경영이다. 테러리스트들이 공격해 올 경우, 권위주의자들이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그러한 사건들을 이용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갑작스럽게 닥친 재앙이 견제와 균형을 끝장내고, 야당을 해산시키고, 표현의 자유와 공정 재판의 권리를 중단시킨다. 이것이 히틀러의 책에 나오는 가장 고전적인 수단이다. 속지 말라.〉
“세상을 스스로의 힘으로 이해하라”
이렇게 민주주의 체제라는 것이 ‘민주주의의 적(敵)들’의 공격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경고하면서, 스나이더는 보통 시민들이 그 체제를 방어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알려줍니다. 대개는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가지 말고, 자유인으로서 독립자존(獨立自尊)의 자세를 잃지 말라는 것들입니다.
〈누군가는 해야 한다. 남들을 따라가기는 쉽다. 다르게 행동하거나 다른 이야기를 하면 불편한 기분이 들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불편함이 없다면 자유도 없다.〉
〈세상을 스스로의 힘으로 이해하라. 긴 기사를 더 많이 읽어라. 인쇄 매체를 구독해 탐사 저널리즘을 지원하라. 인터넷에 있는 것들 중 일부는 우리에게 해롭다는 걸 인식하라. 선전활동의 실체를 밝히는 웹사이트에서 정보를 습득하라.〉
〈항의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조직될 수도 있지만, 결국 거리에서 결실을 맺지 않는 어떤 항의도 현실이 되지 않는다. 독재자들이 자신들이 한 짓이 초래한 결과를 3차원 세계에서 느끼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스나이더는 또 다른 형태의 연대 방법들도 제시합니다. 기부도 그중 하나입니다.
〈자신의 인생관을 나타낼 수 있는 단체에서 활동하라. 굳이 정치적인 단체일 필요는 없다. 자선단체 한두 개를 골라 후원금 자동이체를 신청하라. 그럼으로써 우리는 시민사회를 지원하고 다른 이들의 선행을 돕는 선택의 자유를 행사하는 것이다.〉
그가 “시선을 마주하고 작은 대화를 나누어라”라고 권고하는 것도 일상에서의 ‘작은 연대’의 중요성을 달리 표현한 것일 겁니다.
〈억압과 공포 속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이웃들이 자신을 어떻게 대했는지를 기억했다. 한 번의 미소, 한 번의 악수, 한 번의 인사-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진부하게 느껴졌을 제스처-가 엄청난 의미를 띠었다.〉
“사생활을 지켜라”라는 충고도 작지만 꼭 기억해야 필요가 있습니다. “비열한 통치자일수록 우리를 마음대로 다루기 위해 그들이 우리에 대해 아는 것을 이용할 것”이기 때문에 사생활, 특히 ‘전자(電子) 사생활’을 지키고 권력자들에게 약점을 잡히지 않기 위해 주의하라는 얘기입니다.
‘자유를 위해 죽을 각오’
티머시 스나이더는 이 책의 끝 무렵에서 “아무도 자유를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지 않다면, 우리는 모두 폭정 아래서 죽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중유럽 및 동유럽사, 홀로코스트의 역사에 대한 세계적인 권위자입니다. 리버럴 지식인인 그는 2016년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미국에도 1930년대 유럽에서처럼 파시즘의 시대, 폭정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통탄하면서 페이스북에 그러한 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시민의 매뉴얼’을 썼습니다. 그걸 묶은 것이 《폭정》입니다.
조금 맥이 풀리는 얘기입니다만, 《폭정》에서 이렇게 결기를 보였던 티머시 스나이더는 트럼프 2기 정권이 들어선 후인 금년 5월, 올가을 학기부터 예일대를 떠나서 캐나다 토론토대에서 강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사실상의 망명을 떠난 것이죠. 아마 지금쯤 그는 토론토에서 캐나다 대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겠군요.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렇게 쉽게 건너갈 수 있는 이웃 나라 자체가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