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홍류계곡에 있는 최치원 선생의 암자다.
신선이 사는 곳의 이름도 유별나다. 동천(洞天)·청산(靑山)·무릉도원(武陵桃源)·옥산(玉山) 같은 것들이다. ‘신선’의 개념이 특별히 없는 서양에서도 신선이 살 법한 곳은 꽤 있다. ‘유토피아’ ‘샹그리라’ ‘아틀란티스’ 등이다. 갑자기 우리의 신선을 찾고 싶어졌다. 김선식 다산북스 사장과 대화하다 신선을 정의해 봤다.
첫째 권력에 초월할 것, 둘째 자신만의 이상향을 구축할 것, 셋째 시서화(詩書畵)에서 일가를 이룰 것 등이다. 우리 선조 가운데 이 조건을 두루 겸비한 사람이 있는가 찾아보니 딱 세 명이 떠올랐는데 김 사장도 같은 견해였다. 먼저 신라시대에 살았던 최치원(崔治遠·857~?)은 신선의 조건을 갖춘 분이다.
홍류동계곡에 은거한 뒤 지팡이 남기고 학鶴 등에 올라 사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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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우람한 나무가 최치원이 심었다는 지팡이에서 피어난 것이다. 합천 해인사 학사대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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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치원 선생이 머물렀음을 알리는 비석이 암자 앞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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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치원이 후학들을 가르쳤다는 가야서당의 전경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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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함양 상림에는 최치원을 기리는 사운정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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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양 상림에 있는 최치원 선생의 흉상이다. |
보길도-금쇄동-녹우당은 윤선도만의 이상향… 신선의 짝 자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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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선도 선생이 보길도에 조성한 세연정의 전경이다. |
권력의 비정함을 맛본 그는 자신만의 이상향을 구축했다. 전남 해남 녹우당은 천하명당이며 바다 건너 보길도 부용동은 한송이 연꽃 같다. 금쇄동은 지금도 인적이 드문 ‘별유천지(別有天地) 비인간(非人間)’의 전형이다. 산태극 수태극의 절정인 이곳 회룡고조혈에 고산이 영면하기 전 심정을 밝힌 시 한 수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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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시열이 윤선도 선생을 기리기 위해 보길도 암벽에 새긴 글이다. |
‘견회(遣懷)’라는 이 시는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개를 통해 죽은 아들 미를 회상하면서 얻음과 잃음의 이치에 눈뜬 뒤 신선의 길을 걷기 시작한 고산의 심정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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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산 윤선도 선생의 종가인 녹우당. 녹우당은 원래 서울에 있던 집을 통째로 옮긴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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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선도 선생이 보길도 산 중턱에 만든 석천동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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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천동실은 책을 읽는 암자와 잠자는 암자로 나뉘어 있다. 음식물은 도르레를 이용해 날랐다. |
김정희의 청산은 세한도, 그림 한 장으로 고운-고산과 맞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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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사의 세한도를 바위에 새긴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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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사 김정희가 유배생활을 했던 집. 추사가 살았던 집은 훗날 지인들의 제보로 유배지임이 밝혀져 복원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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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사 생가는 비교적 잘 보존돼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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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량수각 현판은 원래 대흥사 대웅보전에 걸렸다가 지금은 옆의 건물에 걸려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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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량수각의 전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