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19 기간 출생·성장 아이들은 언어, 인지, 사회성 등에서 낮은 점수 기록
⊙ 사회 초년생도 참여할 수 있는 자영업·요식업 시장 붕괴… 대기업이나 개발자 직군은 임금 부쩍 뛰어
⊙ 코로나19 대유행기(2020년 1월~2023년 8월) 3만5000여 명 사망
⊙ 한국의 코로나19 치명률은 0.10%… OECD 평균 0.81%, 미국 1.19%, 일본 0.22% 수준
⊙ 초과 사망도 OECD 평균의 1/2 수준
박한슬
1991년생. 차의과학대 약학과 졸업, 연세대 통계·데이터사이언스 석사 / 《중앙일보》 《주간조선》 칼럼니스트, 서울시 청년정책자문단 / 저서 《노후를 위한 병원은 없다》 《숫자 한국》 외 다수
⊙ 사회 초년생도 참여할 수 있는 자영업·요식업 시장 붕괴… 대기업이나 개발자 직군은 임금 부쩍 뛰어
⊙ 코로나19 대유행기(2020년 1월~2023년 8월) 3만5000여 명 사망
⊙ 한국의 코로나19 치명률은 0.10%… OECD 평균 0.81%, 미국 1.19%, 일본 0.22% 수준
⊙ 초과 사망도 OECD 평균의 1/2 수준
박한슬
1991년생. 차의과학대 약학과 졸업, 연세대 통계·데이터사이언스 석사 / 《중앙일보》 《주간조선》 칼럼니스트, 서울시 청년정책자문단 / 저서 《노후를 위한 병원은 없다》 《숫자 한국》 외 다수

- 코로나19 시기에 마스크를 쓰고 수업받는 초등학생들. 코로나19 기간 출생·성장 아이들은 언어, 인지, 사회성 등에서 낮은 점수를 기록했다는 보고가 있다. 사진=조선DB
이런 케케묵은 주제를 다시 들추어봐야 하는 이유는, 코로나19 대유행은 끝났어도 그 시기에 우리나라에 찾아온 변화는 내재화(內在化)되어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대유행 당시엔 되레 사태 수습과 방역(防疫) 정책 변화에 눈이 쏠려 전체적인 그림을 놓친 이들이 많을 테다. 그러니 5년을 꼬박 채운 지금에 와서 다시 코로나19 사태를 복기(復棋)할 필요가 있다.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이 왜란을 겪고 《징비록(懲毖錄)》을 남긴 덕에 후손들이 상황을 살필 수 있었듯이, 미욱하더라도 코로나19 시기의 변화를 기록할 의무가 있다고 여겨서다. 코로나19 대유행의 결과를 5년이 지난 현시점에서 숙사(熟思)해 보자.
치명률은 OECD 평균의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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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는 중국 우한에서 처음으로 보고되었다고 해서 발생 초기에는 ‘우한폐렴’이라고 불렸다. 사진=조선DB |
이를 치명률(fatality rate)이라 부르는데, 이 수치 하나만 놓고 봐선 그리 큰 의미가 없다. 귀한 인명(人命)을 숫자로 셈하는 게 부당해서가 아니라, 다른 나라와 비교하지 않으면 맥락을 알 수 없어서다. 우리나라는 코로나19를 잘 막아낸 것인가, 아니면 다른 나라보다 못한 것인가?
비슷한 기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적인 코로나19 치명률을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방역 정책은 성공했다고 보는 게 마땅하다. OECD 국가들의 평균 치명률은 0.81%로 확인된다. 우리나라의 무려 8배다. 실제로 미국은 같은 기간 치명률이 1.19%로 확인되며, 집단 면역을 주장했던 스웨덴은 1.04%, 영국은 0.93%, 독일은 0.46%, 일본은 0.22% 수준이다.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에선 가장 낮은 수준의 치명률을 달성한 셈이니, 우리나라의 코로나19 방역을 두고 성과가 없다는 식의 주장을 하는 건 사실관계에 부합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게 전부일까.
초과 사망자 수는 7만7000여 명
사람은 죽는다. 사인(死因)은 가지각색이라도 사람이 죽는 일은 꾸준히 발생하고, 몇 년간 자료가 누적되다 보면 통계적인 모델링이 가능할 정도의 수치가 쌓인다. 별다른 변동이 없을 때, 연간 사망하는 사람의 수를 추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별난 현상이 벌어진 해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원래 예정된 사망자 수를 넘는 망자(亡者)가 추가적으로 발생한다. 이를 초과(超過) 사망이라고 표현하는데, 코로나19 대유행 기간에는 코로나19 자체로 인한 사망자보다 늘어난 초과 사망자가 더 많았다. 코로나19로 인해 병원 방문을 꺼려서든, 경제적 요인으로 인한 극단적 선택이든, 대인(對人)관계 축소로 인한 우울증이든 간에 이유를 막론하고 예년보다 더 죽은 사람이 많이 나왔단 얘기다. 다른 나라에서도 일관되게 관찰된 현상이 우리나라에선 어떻게 나타났을까.
경북대 의대 예방의학과 이덕희 교수 연구팀은 코로나19 유행 시기인 2020~2022년 연령대별 초과 사망자를 계산했는데, 코로나19 기간의 초과 사망자 수는 2020년 937명, 2021년 1만2216명, 2022년 6만3907명으로 집계됐다. 코로나19 자체로 인해 사망한 이는 3만5000여 명에 불과하지만, 코로나19 대유행 기간의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 두기 조치와 사회·경제적 변화로 인해 약 7만7000여 명의 사람이 평년보다 더 죽었다는 얘기다.
물론 이 역시 국제 비교를 진행해야, 우리가 남들과 비슷한 것인지 혹은 남들보다 못한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여기서도 우리나라는 비교적 준수한 성적을 거뒀다. 인구 10만 명당 초과 사망자 수가 OECD 평균의 절반 수준이기 때문이다. 방역 성과로서 방역 정책을 비난하는 건 이장폐천(以掌蔽天)일 뿐이다.
오히려 보수(保守) 진영에선 이런 성과를 자랑스러워해야 마땅하다. 문재인 정부 시기에 작동한 강력한 코로나19 방역 조치의 뿌리가 박정희 대통령 시기부터 이어진 장기간의 국가 보건 정책에 있으며, 과거 그런 경험을 통해 생활환경이 개선되는 걸 체험한 중년층 이상 세대가 정책에 적극적으로 순응한 덕분에 방역이 성공할 수 있었다. 성공한 방역 정책의 원류(源流)가 보수 진영에 있는데, 애써 넘겨낸 코로나19 대유행과 그 성과를 두고 볼멘소리를 할 이유가 없다. 그것보단 차라리 과거 성공 사례를 적극적으로 발굴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이던 시기에 이례적인 수준으로 성공적인 방역 정책을 편 일이 많기 때문이다.
채변봉투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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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난하던 시절 기생충 박멸은 국가적 과제였다. 사진은 1970년대 초 서울시청 앞에서 기생충 상담을 하는 보건소 직원들. 사진=조선DB |
문제는 이런 방식으로 농사를 짓다 보니, 분변에 포함된 기생충 알이 밭에서 자란 작물에 묻어 나와, 재차 사람 입으로 들어가는 일도 그만큼 많았단 거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기생충 감염이 많았던 이유고, 근래 탈북민을 진료하는 의사들이 사선(死線)을 넘어온 이들의 몸속을 보고 놀라는 이유다. 이런 사태를 해결한 게 박정희 대통령이다.
우리나라는 1969년부터 1995년까지 전 국민을 대상으로 기생충 박멸 사업을 벌여, 기생충이란 용어를 영화 제목에서나 볼 수 있는 상태로 바꿔놓았다. 연간 1000만 명 이상, 동원된 누적 인원을 꼽아보면 3억 명 이상인 거대한 방역 프로젝트의 성공 덕분이다. 이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게 당시의 학교, 그리고 채변봉투다.
1966년 ‘기생충 질환 예방법’이 공포되면서 학교장은 매년 2회 학생 검변을 의무화했다. 학교를 대상으로 삼은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협조와 확인이 어려운 성인에 비해 실질적인 전수 조사가 가능하다.
둘째, 학생의 기생충 감염이 확인되면 나머지 가족 구성원에게도 구충제를 함께 보급할 수 있다.
코로나19 대유행 시기, 확진자가 발생하면 밀접 접촉자인 가족에게도 검사를 권고해 감염 여부를 파악하던 것의 원조다. QR코드나 동선(動線) 파악 같은 기술적 조치가 새로 도입됐을 뿐, 수십 년 전부터 하던 일이란 얘기다.
K-방역의 명암
이런 강력한 방역 정책에 힘입어 기생충은 빠르게 박멸됐다. 1971년 제1차 전국 장내(腸內) 기생충 감염률 실태 조사 당시엔 분변에서 기생충 알이 발견되는 비율인 충란양성률이 84.3%에 육박했으나, 1992년 제5차 실태 조사에선 충란양성률이 3.8%로 감소했다.
이런 조사 결과에 힘입어 1995년부턴 학생 분변 검사가 중단됐다. 채변봉투는 물론 계절마다 구충제를 챙겨 먹던 옛 습관마저 사라진 이유다. 개발도상국에서 이 정도의 기생충 방역 성과를 낸 건 우리나라가 거의 유일하고, 이 사업을 이끈 기생충박멸협회는 한국건강관리협회로 명칭을 바꿔 다른 개발도상국의 기생충 퇴치 사업을 돕는 해외 사회공헌 사업을 벌이고 있다. 새마을운동을 수출하는 것과 같은 결이다.
많은 K-방역의 상찬 뒤에, 애초 이런 경험을 수십 년간 집단적으로 축적해 왔으니 우리 국민들은 국가 방역 정책에 대한 순응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기생충 박멸만이 아니다. 당시 또 다른 방역 위해 요인이었던 쥐 역시 쥐 잡기 운동이라는 국민 동원을 통해 효과적으로 퇴치됐다. ‘불주사’로 기억되는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예방접종 사업은 물론 국산화에 성공한 B형 간염 백신 덕분에 B형 간염 역시 극도로 줄이는 데 성공했다. 마스크 착용 같은 간단한 방호 조치에도 반발하던 서구나 북미 국가에선 똑같은 K-방역 정책이 시행되었더라도 우리와 같은 성과가 나올 리가 없다. 자발적으로 마스크를 쓰고, 국가 방역 정책에 협조하던 우리 사회의 기초 방역 역량은 모두 앞선 시기의 경험에서 우러난 것이다. 정견의 차이로 애써 부정할 일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고 K-방역에 대한 모든 걸 긍정할 수는 없다. 실제로 방역의 성과 부분이 아닌 방역의 여파 부분은 비판적으로 봐야 한다. 직접적으로 코로나19 감염으로 인해 사망한 사람보다, 평시의 사망자 수를 뛰어넘는 초과 사망이 발생한 건, 보건 영역에서의 단면일 뿐이다. 코로나19 대응, 그리고 코로나19 기간에 벌어진 일로 인해 우리 사회에 남은 상흔(傷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사회와 경제 부문에 남은 영향 또한 코로나19 대유행이 종식되며 사라지긴커녕 지금도 우리 사회에 진득하게 붙어 있다.
2030 자영업자들에게 타격 가해
코로나19 대유행 시기, 자영업자들이 곤경을 겪은 건 많이 알려진 일이다. 특히 음식점업·주점업으로 등록된 요식업 부문이 피해가 컸다. 국내 자영업 사업체 수는 630만 개 정도로 추정된다. 이 중 12%인 80만 개 정도가 요식업이니, 국내 산업에서 결코 비중이 작지 않다. 특기할 만한 건 이들 요식업을 운영하는 세대에 2030 비중이 높다는 점이다. 신한카드의 분석에 따르면, 20대 자영업자의 51.7%, 30대 자영업자의 41.5%가 요식업에 종사하는 걸로 확인된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한 피해가 젊은 층을 더 아프게 때린 것이다. 이런 이들이 사회적 거리 두기가 풀리기를 기약 없이 기다리다, 임차료와 인건비를 위해 빚을 내고, 결국은 버티다 못해 폐업하게 됐단 게 그간 논의된 자영업자 괴멸 시나리오의 골자다. 한데 반대 방향에서는 또 다른 현상이 발생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현실 공간에서의 모임이나 바깥나들이가 어려워지니, 사람들은 온라인 공간으로 이동해 활동하기 시작했다. 유튜브나 넷플릭스 같은 영상 콘텐츠 플랫폼의 부흥은 물론 온라인 쇼핑이나 소셜네트워크를 포함한 다양한 활동이 크게 늘며, 관련 서비스를 구축하려는 수요가 폭증했고, 늘어난 수요에 맞춰 개발자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뛰기 시작했다. 개발자의 사관학교라 할 수 있는 코딩 부트캠프(coding bootcamp)가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늘고, 얼치기 수준인 개발 인력도 모셔가는 일이 이 시기 너무도 흔했다. 문제는 경제학적 원리에 의해 이런 임금 상승 여파는 오직 개발자 직군(職群)에만 영향을 주는 걸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비용병 효과
기술 혁신 혹은 수요 폭증이 발생하면 그 분야는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의해 임금이 상승한다. 살펴봤듯 코로나19 대유행 시기 IT 개발자가 그랬고, 같은 시기 배달 라이더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비대면 시기 배달 수요 폭증을 따라가다 보니, 배달업에만 종사해도 월 몇백만원 이상의 고정적 수익을 내는 일이 흔했다. 그런데 인력이 어느 정도 한정된 상황에서 특정 직종의 임금이 올라가면, 다른 직종은 사람을 구하기가 어려워진다. 배달 라이더 수익이 폭증하자 사실상 같은 인력풀(pool)을 공유하는 법인 택시업체가 신입 택시기사를 구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진 게 대표적 예시다. 이로 인해 코로나19 대유행 시기 유독 택시 잡기가 어려웠던 걸 기억할 테다. 이것과 매우 흡사한 일이 개발자 직군과 대기업 종사자들을 둘러싸고도 발생했다.
고급 개발 인력은 주로 이공계, 그중에서도 자동차나 반도체 같은 고부가가치 산업의 핵심 인력으로 일하는 엔지니어들과 인력풀이 겹친다. 그런데 개발자의 몸값이 치솟자, 옛날 같으면 석사 혹은 박사 과정을 밟은 후 대기업 연구개발 인력으로 일했을 이들이 학부 졸업 후 곧바로 개발자로 진로를 트는 게 소득 측면에서 훨씬 유리해졌다. 그 결과 전통 제조업에서 사람을 쓰기 위해선 개발자에 준하는 수준의 임금을 줘야만 하는 일이 발생했다. 개발자 몸값이 오른 건 합당한 이유(수요 증가) 때문인데, 문제는 이와 연관된 직종의 임금까지 생산성 향상이 없는데 덩달아 오른 것이다. 경제학자 윌리엄 보몰(William Baumol)은 이런 현상을 비용병 효과(cost disease effect)라고 불렀다. 생산성이 향상되는 뚜렷한 진보가 이루어지는 영역에서의 비용 증가가 생산성의 증가 없는 다른 영역으로까지 번지는 게 마치 병(病)과 같다는 의미에서다.
노동 시장 이중구조의 극단적 심화
다시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의 상황을 짚어보자. 사회 초년생도 큰 진입장벽 없이 창업할 수 있는 자영업이나 요식업 시장은 붕괴한 데 반해, 상대적으로 고학력·고소득 직종이 몰린 대기업이나 개발자 직군은 임금이 부쩍 뛰었다.
이러면 원래도 소득 격차가 존재하던 두 집단 간에 더욱 큰 격차가 생기게 된다. 여기에 재택(在宅) 근무가 가능한 사무직 직군에 종사하는지의 여부, 당시 도입한 주(週) 52시간 제도를 얼마나 철저하게 지키는 기업에서 근무하는지의 여부도 대부분 기업 규모에 따라 갈렸다. 그러니 단지 소득뿐만이 아니라 삶의 질까지도 고용 형태에 따라 전면적으로 나뉘게 되는 거대한 균열이 생겼고, 과거와 같이 극복 가능한 수준의 차이가 아닌, 노동 시장 이중구조의 극단적 심화로까지 이어졌다.
공교롭게도 이 시기엔 부동산 실책(失策)까지 겹쳤다. 고소득자들이 치솟는 집값을 보고 부동산 시장으로 몰리면서, 근로자 간 고용 형태에 따른 소득 불평등은 재차 자산 불평등으로 이어졌다. 물론 정권에서 의도한 건 아닐 테지만, 평등과 정의를 추구한다던 진보 정권이 맺은 결실이라기엔 결과가 지나치게 엉뚱하다. 게다가 그 여파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걸 고려하면, 우리 사회도 일종의 코로나19 후유증을 겪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코로나19 후유증이 비단 경제 분야에서만 관찰되는 일일까.
최근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가 무섭도록 빨라지자,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사람 고유의 역할에 대한 물음도 같이 자라고 있다. 그중 하나로 입에 오르내리는 게 감정(感情)의 자연스러운 구사다. 기계는 오욕칠정(五慾七情)을 느끼지 못하니, 감정을 학습할 수는 있어도 자연스럽게 구사하진 못할 거란 희망 섞인 예측이랄까.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인간도 감정을 다루는 법을 학습한다. 단지 그 시점이 아주 어릴 뿐이다. 발달심리학에서는 이런 시기를 민감기(critical period)라고 칭한다. 부모에게 버려져 평생 들개와 함께 지낸 아이를 구출해 봤자 그 아이는 결코 인간의 언어를 익히지 못한다. 언어를 배울 민감기를 놓쳐서다. 이처럼 아이들이 발달 과정에서 민감기에 습득해야 할 지식을 놓치면 그 여파는 평생토록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런데 하필 사람의 얼굴을 인식하고, 얼굴에 깃든 마음을 배워야 할 시기에 코로나19 대유행을 겪었다면 어떨까. 얼굴의 미세한 표정 변화가 마스크에 가려지니, 정서 습득이 더뎌지게 된다.
실제 연구 결과를 살펴보자. 캐나다 요크대 한 연구팀은 2022년 코로나19 전후 학령기(學齡期) 아동의 얼굴 인식 능력을 비교했다. 슬프게도 팬데믹 세대 아이들은 얼굴 인식 정확도가 20%가량 떨어졌다. 마스크로 코와 입이 가려지면서, 얼굴을 파악하는 능력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네트워킹 과정을 통째로 건너뛴 ‘코로나19 학번’
우리나라에서도 그리 다르지 않은 연구 결과가 나왔다. 2024년 《대한의학회지》에 실린 논문을 살펴보자. 국립중앙의료원에서 2018~2021년 사이 영유아 188만 명의 발달 검진 자료를 분석해 보니, 코로나19 기간에 태어나거나 성장한 아이들은 언어, 인지, 사회성, 자조, 소근육 발달 전 영역에서 유의미하게 낮은 점수를 기록했다. 이 시기의 아이들이 말을 더 늦게 배웠고, 낯선 사람 앞에서 반응이 둔했으며, 또래와의 놀이에서 서툴렀다는 뜻이다. 정서를 배우고, 사람과 교류해야 할 민감기에 충분한 학습이 이루어지지 못한 거다.
유아기를 벗어나도 상황이 크게 다르진 않았다. 2020년엔 온라인으로 개학하는 초유(初有)의 사태가 벌어진 데 이어, 몇 년간 온라인과 대면 수업이 코로나19 확산 상황에 맞춰 혼잡하게 병행되다 보니, 첫 친구를 사귀는 초등학교에서도 혼란이 많았다.
2022년에 경인교대 정애경 교수가 현직 초등학교 교사와 협업해 진행한 연구에는 당시 초등학교 고학년 여학생들의 증언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학교에 자주 안 가니 친구들과 친해지지 못하고, 그렇다고 학교 밖에서 같이 놀려면 코로나19를 뚫는 용기가 필요하니, 사실상 친구의 필요성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까지 생기더란 게 연구에 참여한 초등학생들의 증언이다. 오죽하면 등교가 시작되자 “놀이터에서 놀지 않아도 그냥 같은 반에 있기만 해도 저는 좋은 것 같아요. 그냥 (학교 생활이) 더 좋아졌다”라는 말까지 나올까. 중·고등학교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이들이 사회로 나오기까진 아직 몇 년의 시간이 더 필요하지만, 당장 성인기를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보낸 이들도 영향을 받긴 마찬가지다. 캠퍼스의 낭만을 꿈꾸며 대학에 갓 입학한 ‘2020학번’ 새내기들은 강의실이 아닌 집에서 원격 강의를 들어야 했다.
술 좀 못 마신 게 어떠냐고 타박할 일이 아니다. 코로나19 세대 대학생들은 대학이 제공하는 본질적 기능 중 하나인 사회적 자본 축적의 기회를 망실(亡失)했다는 점에서 결코 가볍지 않은 타격을 입었다. 유튜브를 통해 미국 명문대 강의도 들을 수 있는 시대에 왜 학생들이 명문대에 가려 노력하나? 우리나라에서 학연(學緣)이 가진 힘이 그만큼 커서다. 노골적으로 같은 학교 동문끼리 뭉쳐 밀어주고, 당겨주는 문화까진 아니더라도 커피 한 잔 청하며 입사를 원하는 기업의 인재상을 전해 듣는 정도의 네트워크도 사회 초년생에겐 매우 귀중하다. ‘코로나19 학번’은 이 필수적인 네트워킹 과정을 통째로 건너뛴 채 사회로 진출해야 하는 첫 세대가 되었다. 소위 ‘쉬었음 청년’이 부쩍 늘어난 게 그리 놀랍지 않은 이유다.
중세 흑사병 연상케 하는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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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사병 시기 의사들이 입었다고 알려진 괴기스러운 복장은 흑사병 공포를 잘 보여준다. 사진=조선DB |
이처럼 코로나19 대유행이 남긴 후유증은 일시적 상처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체질(體質) 자체를 비가역적으로 바꾼 구조적 변형에 가깝다. 그러므로 이 시점을 계기로 필요한 일은 과거의 방역 성과에 대한 자화자찬도, 모든 후과(後果)를 특정 정부의 탓으로 떠넘기는 정쟁(政爭)도 아니다. 오히려 각 부문별로 축적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어떤 정책이 효과적이었는지, 어떤 집단이 가장 큰 손실을 감내했는지, 그리고 어떤 사각지대가 구조적으로 드러났는지를 차분히 정리하는 일이다.
류성룡이 《징비록》을 통해 성찰하고자 했던 바가 조선군의 분투(奮鬪)가 아니라 복기 과정에서 찾은 뼈아픈 실책들이듯, 우리가 무엇을 잃었는지를 파악하는 게 더 중요해서다.
코로나19 영향 분석이 꼭 필요한 이유
물론 다음 위기는 감염병이 아닌 다른 형태로 우리 사회를 찾아올 개연성이 크다. 그렇다 하더라도 사회적 재난이 노리는 주된 피해자가 코로나19 대유행 때와 달라질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사회적 재난 앞에서 가장 먼저 무너지는 집단은 늘 주변부 노동에 종사하는 이들과 아직 사회적 성원권을 완전히 얻지 못한 젊은 층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국가 차원에서 보다 포괄적인 코로나19 영향 분석이 꼭 진행되어야만 한다. 다음 재난이 오기 전에 이런 작업이 마무리되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