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세의 溫故知新 | 추위·더위 닥쳐도 아랑곳하지 않는 대나무

  • 글 : 김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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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侖世
1955년생.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연수원(現 한국고전번역원) 졸업 / (주)인산가 회장, 《인산의학》 발행인, 전주대학교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월간조선》 명예기자 / 저서 《빈 배에 달빛만 가득 싣고 돌아오네》 《자연치유에 몸을 맡겨라》 《내 안의 자연이 나를 살린다》 등
사진=게티이미지
我愛竹尊者 不容寒暑侵 年多彌勵節 日久益虛心
  아애죽존자 불용한서침 연다미려절 일구익허심
  月下弄淸影 風前送梵音 皓然頭戴雪 標致生叢林
  월하농청영 풍전송범음 호연두대설 표치생총림

 
  대나무 존자(尊者)를 사랑하는 건 추위·더위가 닥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해가 갈수록 절개는 점점 더 굳건해지며 날이 오랠수록 더욱 마음을 비운다.
  달빛 아래 맑은 그림자를 갖고 놀다가 바람이 불면 청아한 목소리로 법문을 한다.
  하얗게, 새하얗게 머리에 눈을 이고는 나무 우거진 숲속에서 고고한 운치를 드러낸다.

 
 
  대나무는 마음을 비운 ‘무심 도인(無心道人)’이요, 시시때때로 ‘무심 법문(法門)’을 들려주는 존귀한 존재[尊者]다.
 
  수많은 선사(禪師)와 시인·묵객들이 대나무가 들려주는 소리 없는 법문에 귀를 기울여 그것을 다시금 아름다운 시어(詩語)로 빚어내 세인들에게 들려주었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고려 때의 고승 진각 혜심(眞覺 慧諶·1178~1234년)의 이 시(詩)와, 당대(唐代)의 대문호 백거이(白居易·772~846년)의 〈양죽기(養竹記)〉이다. 이 시를 지은 혜심 스님은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의 법제자로서 승주 송광사 16국사 중 한 분이다. 출가 전의 이름은 최식(崔寔)이고 자호(自號)는 무의자(無衣子)이며, 나주 화순현 사람이다.
 

  어머니 배(裵)씨는 하늘의 문이 활짝 열리고 세 번이나 벼락을 맞는 태몽을 꾼 다음 임신해 12개월 만에 혜심을 낳았다. 태어났을 때 태반이며 탯줄이 겹겹으로 얽힌 것이 승려가 가사(袈裟)를 입은 모습과 같았고, 7일 만에 눈을 떴으며, 젖을 먹은 뒤에는 스스로 어머니를 등지고 돌아누워서 부모가 이상하게 여겼다고 전해 온다.
 
 
  대나무 존자의 소리 없는 법문
 
  일찍이 진사에 급제하고 태학(太學)에 들어갔으나 어머니의 병으로 고향에 돌아가 시탕(侍湯)하다가 관불삼매(觀佛三昧)에 들어 정성스러운 기도(祈禱)를 통해 어머니의 병을 낫게 하였다. 이듬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조계산 송광사 보조국사 문하로 가서 스님이 되었다.
 
  고려 희종 4년(1208년)에 스승 보조국사로부터 수선사(修禪社)의 법석(法席)을 넘겨받게 되었으나 끝내 사양하고 지리산으로 숨어 은거하였는데, 그로부터 2년 만에 보조국사가 입적하고 수선사 문도들이 희종에게 혜심을 수선사 법석에 추대해 달라고 요청했다.
 
  희종은 혜심에게 “보조국사의 자리를 이으라”는 왕명을 내렸고, 혜심은 이때 비로소 지리산을 나와서 보조국사를 이어 조계종 제2조(祖)가 되었으며, 입적 후 진각국사로 추존되었다.
 
  언젠가 지리산 금대암의 대(臺) 위에서 좌선할 적에 눈이 내려 이마까지 묻히도록 움직이지 않으므로 사람들이 흔들어 보았지만 무심(無心)한 존재로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더니, 이윽고 붓다 가르침의 깊은 뜻을 깨닫게 되었다고 전한다.
 
  혜심 스님은 어느 날 문득 대나무 숲속에서 바람결에 들려오는 대나무 존자의 설법을 듣게 된다. 달빛에 아롱거리는 대 그림자를 보다가 때마침 부는 바람으로 인해, 오랜 세월 풍상(風霜)을 겪으며 온갖 시련과 고통을 견딘 끝에 마침내 마음을 비운 대나무 존자의 ‘무심 법문’을 듣게 된 것이다.
 

  혜심 스님은 바람이 요청한 청법가(請法歌)에 따라 들려주는 대나무 존자의 소리 없는 법문을 깊이 새겨듣고 그 법문을 아름다운 시어로 빚어내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 줌으로써 시공(時空)을 넘어 이 시대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의 심금(心琴)을 울려 주고 있다.
 
  북풍한설(北風寒雪)에 모든 나무는 잎을 떨구고 초라한 자태를 숨길 수 없지만 곧은 절개와 고고한 운치를 드러내는 대나무 존자의 모습은 철저히 마음을 비운 혜심 스님의 무심 도인으로서의 진면목(眞面目)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한 폭의 선화(禪畵)다.
 
 
  ‘대나무는 현자와 같은데 왜 그런가’
 
  백거이 역시 〈양죽기〉를 통해 어진 이를 닮은 대나무의 덕스러운 풍모를 예찬하고 있다.
 
  〈대나무는 현자와 같은데, 왜 그런가(竹似賢 何哉)?
 
  대나무 뿌리는 견고하여, 그 견고함으로써 덕을 세우고 있다. 군자는 그 뿌리를 보면서 절대로 뽑기 어려운 훌륭한 덕을 세울 것을 생각하게 된다(竹本固 固以樹德 君子見其本 則思善建不拔者).
 
  대나무의 성품은 곧아서, 곧음으로써 자신의 몸을 세우고 있다. 군자는 그 곧은 성품을 보면서 중심을 잡고 서서 어느 편으로도 치우치지 않을 것을 생각하게 된다(竹性直 直以立身 君子見其性 則思中立不倚者).
 
  대나무 속은 비어서, 비어 있음으로써 도를 체득하고 있다. 군자는 그 빈 속을 보면서 자기의 마음을 비우고 남의 의견을 받아들일 것을 생각하게 된다(竹心空 空以體道 君子見其心 則思應用虛受者).
 
  대나무 마디는 곧아서, 곧음으로써 뜻을 세우고 있다. 군자는 그 마디를 보면서 자기 이름과 행실을 잘 갈고 닦아서 순탄할 때나 험난할 때나 한결같을 것을 생각하게 된다(竹節貞 貞以立志 君子見其節 則思砥礪名行夷險一致者).
 
  이런 까닭에 군자들은 대나무를 많이 심어 정원수로 삼고 있는 것이다(夫如是故 君子人多樹之爲庭實焉).〉

 
 
  세 가지 독, 세 가지 공부
 
  이 시대 많은 이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정치인이나 경제인이나 가릴 것 없이 다 같이 조금만 더 덥거나 추우면 견디거나 버티지 못하고 더위와 추위를 피하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 난리법석을 떤다. 너나 할 것 없이 경망스럽기 그지없는 볼썽사나운 모습은 스스로 제 인내심의 바닥을 보여 주는 부끄러운 짓임에도 별다른 생각 없이 곳곳에서 연출하고 있다. 더위 추위뿐만 아니라 조금만 힘든 일이 있어도 “아이고, 힘들어 죽겠네”를 연발하며 “걸음아 날 살려라”라며 현장에서 도망가 버리는가 하면, 맛있는 먹거리나 황금을 보면 갑자기 눈이 휘둥그레지고 침을 흘리며 달려드는 추태 또한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이 시에서 보여 주는 대나무 존자의 모습은 이에 비해 얼마나 의연하고 당당하며 멋스러운가? 마음속에 끊임없이 생성되어 가득 차게 되는 탐욕(貪)과 분노(瞋)와 어리석음(痴)의 세 가지 독(三毒)을 잘 제어하고(戒) 가라앉히고(定) 밝히는(慧) 세 가지 공부(三學)를 통해 모두 비워 냄으로써 스스로 무심 도인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대나무 존자의 ‘무심 법문’에 귀를 기울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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