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토의 70%가 산? 지형학적으로 산으로 분류될 수 있는 지형은 한반도 42%, 남한 기준 31% 수준
⊙ 물 부족 국가? 수자원 이용률 39.7%… 일본 19.8%, 미국 10.2%보다 높아
⊙ ‘삭막한 콘크리트 도시’ 서울? 1인당 공원 면적은 뉴욕보다 10% 이상 넓어
⊙ 對中 수출은 부가가치 낮고 무역적자…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 낮아
⊙ ‘인터넷 강국’은 허명… 인터넷 속도 34위로 중국(5위)보다 느려
⊙ 가처분소득 기준 ‘지니계수’ 보면 우리 사회는 점점 더 평등해지고 있어
⊙ 국가데이터처 출범… 잘못된 정책 도출하는 ‘잘못된 통계’ 다시 없길
박한슬
1991년생. 차의과학대 약학과 졸업, 연세대 통계·데이터사이언스 석사 / 《중앙일보》 《주간조선》 칼럼니스트, 서울시 청년정책자문단 / 저서 《노후를 위한 병원은 없다》 《숫자 한국》 외 다수
⊙ 물 부족 국가? 수자원 이용률 39.7%… 일본 19.8%, 미국 10.2%보다 높아
⊙ ‘삭막한 콘크리트 도시’ 서울? 1인당 공원 면적은 뉴욕보다 10% 이상 넓어
⊙ 對中 수출은 부가가치 낮고 무역적자…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 낮아
⊙ ‘인터넷 강국’은 허명… 인터넷 속도 34위로 중국(5위)보다 느려
⊙ 가처분소득 기준 ‘지니계수’ 보면 우리 사회는 점점 더 평등해지고 있어
⊙ 국가데이터처 출범… 잘못된 정책 도출하는 ‘잘못된 통계’ 다시 없길
박한슬
1991년생. 차의과학대 약학과 졸업, 연세대 통계·데이터사이언스 석사 / 《중앙일보》 《주간조선》 칼럼니스트, 서울시 청년정책자문단 / 저서 《노후를 위한 병원은 없다》 《숫자 한국》 외 다수

- 서울 한강공원은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의 10배가 넘는 면적을 자랑한다. 사진=조선DB
하지만 긍정적으로 눈여겨볼 대목도 있다. 대표적인 게 10월부터 통계청이 ‘국가데이터처’로 승격한 것이다. 기존에 통계청이 수행하던 데이터를 수집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넘어, 범(汎)정부 데이터를 총괄하고 활용할 수 있게 하는 핵심 기관으로 확대 개편하겠다는 것이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시대에 맞는 긍정적 변화다.
‘물 스트레스’ 국가지만 ‘물 부족’ 국가 아니다
그렇지만 이런 대규모 데이터의 축적과 활용 이전에 필요한 건, 우리 뇌리에 뿌리를 깊게 내린 오랜 오해를 뽑아내는 일이다. 가장 대표적인 게 “우리나라 국토의 70%가 산”이라는 주장이다. 이는 산림청에서 임학적(林學的) 정의에 따라 토지 지목(地目)이 임야(林野)인 곳을 산으로 분류해서 생긴 행정적 착시(錯視)일 뿐, 실제 우리나라에서 지형학적으로 산으로 분류될 수 있는 땅은 한반도 기준 42%, 남한 기준으론 31% 수준에 불과하다는 게 지리학자 탁한명의 연구 결과다. 국가의 3요소 중 하나인 영토 개념에서조차 이런 오해가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면, 새로운 데이터를 발굴하고 활용하는 게 생각만큼의 효용을 내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이런 이유로 이 글에선 우리나라에 분야별로 오래 묵은 수치적 오해들을 바로잡아 보고자 한다. 우리는 대한민국을 얼마나 오해하고 있는 걸까?
우리나라의 자연환경에 대한 또 다른 대표적 오해가, 우리나라가 ‘물 부족 국가’라는 주장이다. 너무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서 회자(膾炙)된 탓에 진실이 아닐 거란 의심조차 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지만, 실제론 우리나라가 물 부족 국가라는 주장은 허구에 가깝다. 애초에 해당 용어 자체가 공신력을 가진 표현이 아니다. 미국의 국제인구행동연구소(PAI)라는 민간 연구소에서 자체 기준으로 국가들을 분류하며 우리나라를 ‘물 부족 국가’ 군(群)에 넣은 게 시작인데, 해당 단체는 국제적으로 그리 공신력 있는 곳이라 하기 어렵다. 주요 국제기구 중 어느 곳에서도 ‘물 부족 국가’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용어만이 아니라 실질도 그렇다. 우리나라의 연(年)평균 강수량은 1277mm로 세계 평균인 805mm의 약 1.6배에 달한다. 강수량 자체는 세계 평균을 훌쩍 넘을 만큼 많다. 물론 우리나라의 강우(降雨) 패턴은 여름 한 철에 집중되는 경향이 짙다. 그렇기에 실제로 우리가 연간 이용 가능한 수자원은 약 760억 톤 정도에 불과하고, 이를 우리 인구로 나누면 1인당 연간 사용 가능한 수자원이 1470톤 정도라 ‘물 스트레스 지수(Water Stress Index)’ 기준으로 ‘물 스트레스 국가’에 속하긴 한다.
실제로 수자원 이용률을 국가별로 비교해 보면 이런 현실은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우리나라는 수자원 이용률이 39.7%에 달한다. 이웃 나라 일본의 수자원 이용률이 19.8%, 프랑스는 16.5%, 독일 12.1%, 미국 10.2% 수준이니 사용 가능한 물 중 실제로 사용하는 물의 비중은 주요 선진국보다 높은 편이다. 수자원 관리에 힘을 써야 하는 건 맞지만, 물 부족 국가란 건 지나친 과장이다.
한강공원, 센트럴파크 12개 넓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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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산을 비롯한 서울 주변의 산들은 천혜의 공원이다. 사진=조선DB |
그런데 애초에 이 주장 자체가 사실에 기반하지 않았다면 어떨까? 당장 서울시와 뉴욕시만 비교해도 그렇다. 우리나라 서울특별시의 면적은 약 605㎢, 뉴욕시의 면적은 약 783㎢로 뉴욕시가 서울시보다 30% 정도 더 넓다. 그런데도 서울의 1인당 공원 면적은 16.2㎡로, 뉴욕의 1인당 14.7㎡보다 10% 이상 넓다. 뉴욕보다 좁은 땅에 더 많은 인구가 몰려 있음에도 1인당 이용할 수 있는 공원 면적은 서울시가 더 넓은 셈이다.
이런 인식적 괴리가 생기는 이유는 한강이다. 뉴욕 녹지의 상징인 센트럴파크 넓이는 3.4㎢이지만, 서울 한강을 따라 조성된 한강공원은 전체 면적이 40㎢에 육박한다. 한강 둔치를 따라 강 남북으로 조성된 거대한 공원이 센트럴파크 12개 가까운 수준의 녹지를 이미 제공하고 있다. 오세훈 시장이 서울만의 독특한 경관인 한강을 유달리 강조하고 한강을 관광자원으로 개발하려는 이유다.
한강뿐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등산이 인기를 얻은 이유 중 하나는 서울이라는 대도시 근교에 약 77㎢ 넓이의 북한산국립공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통상적인 평지의 공원은 아니지만, 인공적으로 조성한 공원보다 훨씬 더 자연 친화적이고 생물다양성이 높은 천혜의 녹지가 서울 북부에 자리 잡고 있다. 그뿐인가.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통해 서울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한 남산은 물론 서울대가 위치한 관악산이나, 강남구와 서초구에 걸친 구룡산 같은 곳도 중요한 도심 녹지로 기능하는 건 마찬가지다. 서울엔 녹지가 절대 부족하지 않다.
주요 광역시로 눈을 돌리면,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이 조성해 둔 넓은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이 주요 광역시 주변을 에워싸고 있기까지 하다. 후세대를 위한 개발 제한이자, 도시가 무분별하게 팽창하는 걸 막아 주는 경계이기에, 개발제한구역에 관한 법이 개정되지 않는 한 쉽사리 사라질 개연성도 낮다. 막연하게 삭막한 도시라는 인상을 갖는 건 자유지만 그런 인식이 정책 수준에서 영향을 미친다면 오해는 반드시 바로잡아야만 한다.
한국은 제조업이 아니라 서비스업 국가
최근 미국을 축으로 하는 국제적인 무역 분쟁의 여파가 점점 거세지고 있다. 자유무역 질서와 민주주의의 확산이란 대의(大義)를 위해서 경제적 부담을 일부 짊어지더라도 자유세계의 ‘큰형’ 역할을 마다하지 않던 미국의 태도가 변해서다. 이런 변화가 우리 처지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건 맞으나, 그렇다고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 일각의 소위 ‘자주파(自主派)’의 주장을 따르긴 어렵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이란 거대한 세력이 빠져나간다면 우리에게 남는 건 지역 패권국(覇權國)인 중국에 굴복하는 일만 남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런 주장이 힘을 얻는 건 우리나라 경제 구조가 중국 시장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잘못된 인식이 뿌리 깊게 박혀 있기 때문이다.
우선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건, 우리나라가 수출에 강하게 의존하는 국가이긴 하나, 국가경제 전체를 놓고 봤을 땐 이미 서비스업의 비중이 과반(過半)을 훌쩍 넘겼다는 사실이다. 차례대로 짚어 보자.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27.6% 수준이다. 농업이나 어업 같은 1차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2% 남짓이고, 건설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5%, 전기와 가스·수도 같은 공공서비스산업이 2.5% 정도를 차지한다. 나머지 63%를 차지하는 건 서비스업이다. 우리나라 전체 경제의 3분의 2 가까이를 서비스업이 지탱하고 있는 셈이다.
고용으로 눈을 옮겨 보면 제조업 비중은 더 줄어든다. 국내 총 고용 인원의 16% 정도만이 제조업에서 일하고 있을 뿐이며, 약 71%는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다. 어떻게 보든 우리나라의 주된 산업은 이미 서비스업이고,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대 이래 지속적으로 감소해 왔다.
물론 우리나라의 수출 의존도는 주요국 중에서도 높은 편이다. 거대한 내수(內需)시장을 가진 미국(11%)이나 중국(20%)과 비교하긴 어려우나, 일본(20%)의 2배가량인 43%를 유지하고 있다는 건 수출이 우리나라 경제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걸 여실히 보여 준다.
그토록 중요한 수출이 향하는 핵심 국가가 중국이니 중국에 목을 매야 한다는 게 자주파의 주된 논리다. 사실일까?
對中 수출, 부가가치 낮아
실제로 우리나라 제1의 수출국이 수출액의 20%를 차지하는 중국인 건 맞다. 그런데 중국은 우리나라의 최대 수입국이기도 하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수입액과 수출액을 상계해 보면 우리는 2023년부터 대 중국 무역 적자(赤字)를 보고 있다. 쉽게 말해 중국에 수출해 벌어들인 돈보다 수입으로 중국에 건넨 돈이 훨씬 많단 얘기다.
대체 무얼 팔고 무얼 사왔기에 중국과의 무역에서 적자를 보게 된 걸까?
우리나라가 중국에 수출한 주된 품목을 따져 보면, 수출액의 75%가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석유화학 제품과 같은 산업 중간재(中間材)인 게 확인된다. 중국이 우리나라에서 수입한 반도체를 가공해 완제품의 형태로 자국 내에서 소비하거나 해외에 판매하는 구조다. 우리나라 역시 중국에서 중간재를 수입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중국이 가장 앞서가는 분야 중 하나인 리튬이온 배터리다. 중국산 배터리를 수입해 국산 전기차에 탑재하는 식이다. 중간재를 주고받는 독특한 관계다. 그러니 양국은 각자 중간재를 수입해 완제품을 세계 각국에 판매하는 경쟁 상대에 가깝지, 우리가 생산한 완제품을 수출해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형태의 무역 상대국이라 보긴 어렵다. 이런 구조에선 미국 혹은 유럽 국가들이 중국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면, 우리 기업이 중국에 판매하는 중간재 수출은 줄고, 반대로 우리 기업이 완제품 형태로 만들어 다른 나라에 판매하는 수출은 늘어나게 된다. 울산에서 제조된 국산 자동차를 미국에 완제품으로 수출해 막대한 수익을 내는 것과는 전혀 다른 구조다.
과거에야 중국이 우리와 중간재 생산을 두고 경쟁하지 않았으나, 지금은 불법적인 기술 유출과 국가 차원에서 막대한 연구개발 자원을 투입하는 투트랙 전략에 밀려 우리와 대등하거나 오히려 우리보다 앞선 수준의 기술력을 갖춘 강력한 경쟁자가 된 게 중국이다. 겉보기 무역 비중을 두고 중국에 대한 경제적 종속이나 우호 필요성을 논할 이유가 전혀 없다.
낡아버린 ‘인터넷 강국’의 허명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초(超)고속 인터넷이 보급됐다. 특히나 초고속 인터넷을 2~3년이란 짧은 기간 내에 전국에 확충하며, 거의 100%에 육박하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인터넷 보급률을 달성하기도 했다. 한일 월드컵을 공동개최한 2002년에 이미 1000만 가구 이상이 초고속 인터넷망에 가입했을 정도니, 세계적으로도 이례적일 수준으로 인터넷 속도는 물론 보급률까지 최상위권을 차지하게 됐다. 김대중(金大中) 정부에서 새천년을 열며 야심차게 추진한 ‘사이버 코리아 21’ 정책의 성과다. 박정희 대통령이 경부고속도로를 놓아 산업 물류의 핵심 활로를 열었다면, 김대중 대통령은 전국을 잇는 광케이블망을 깔아 정보산업의 토대가 될 정보 고속도로를 놓은 셈이다. 그 덕분에 발흥한 정보통신(IT) 기술 기업 중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성공 사례까지 나왔으니, 우리나라가 인터넷 강국이라는 자부심을 갖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닐 테다.
그렇지만 이런 성취도 이미 빛이 바랬다는 게 문제다. 인터넷 보급률은 여전히 세계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긴 하나, 인터넷 속도 측면에선 우리나라가 이미 30위권 바깥으로 밀려나 버렸다. 세계에서 인터넷이 가장 빠른 싱가포르는 도시국가라는 특수한 사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웃 중국(5위)은 물론 국력 차원에서 비교가 어려운 칠레(2위)나 덴마크(7위)보다도 한참 느린 34위란 건 꽤 심각한 수준이다. 인터넷 통신망의 노후화가 진행되고 있음에도 새로 광케이블을 교체하는 등의 후속 설비 투자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깟 인터넷 속도 좀 느린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경부고속도로가 아직도 개통 당시의 왕복 4차로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명목상 고속도로이긴 하나 정체된 노후 도로로 전락했을 것이다. 점점 더 대용량의 자료를 송신하고 수신하는 시대에 상대적으로 느린 인터넷 속도가 병목으로 작용할 수 있단 얘기다.
그런데 이게 오직 인터넷 부문에서만 나타나는 문제일까.
‘첨단 제조업 강국’이라는 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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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12월 10월 이재용(왼쪽에서 두 번째) 삼성전자 부회장(당시)은 네덜란드의 ASML 본사를 방문했다. 사진=삼성전자 |
이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 주는 지표가 바로 ‘기술무역수지’다. 반도체나 자동차 같은 제품의 수출입과 별개로, 특허권 사용료, 기술 라이선스, 노하우 같은 지적재산권 자체를 사고판 내역을 말한다. 실로 한 국가의 기술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지표라 할 수 있다.
안타까운 건 우리나라가 이 지표에서 수십 년째 만성적인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단 사실이다. 2022년 기준 우리나라가 기술 수출로 해외에서 벌어들인 돈은 152억 달러지만, 반대로 기술 수입으로 196억 달러를 지출해 최종적으론 약 44억 달러, 우리 돈으로 6조 원에 달하는 적자를 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매년 조(兆) 단위의 막대한 돈을 해외에 기술료로 순지불하며 생산 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기술무역 적자는 해외 기술 의존도가 높아 발생하는 필연적인 결과다.
우리가 세계시장을 석권하는 반도체산업의 현실을 보자.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소위 초격차(超隔差) 기술을 가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첨단 반도체를 생산하는 데 가장 필수적인 EUV 노광(露光) 장비는 네덜란드의 ASML이라는 단 하나의 기업이 100% 독점 생산한다. 제품 생산과 수율(收率) 관리에서 세계적으로 독보적인 역량을 보여 준다고 하더라도 네덜란드산(産) 노광 장비가 없으면 생산 자체를 할 수가 없다.
비단 반도체만의 문제가 아니다. 기업에서 사용하는 운영체제(MS Windows), 데이터베이스(Oracle), 자동차와 선박을 설계하는 CAD 프로그램 등 우리 산업의 핵심 소프트웨어는 대부분 미국과 유럽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무조건 국산 소프트웨어를 쓰라는 게 아니다. 세계와 경쟁하는 기업들이 억지로 생산성을 깎아 먹으며 국내 소프트웨어산업을 지탱하란 건 말이 안 된다. 이런 원천기술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기초기술에 대한 투자와 자체적 산업 생태계를 만들어 줬어야 한단 얘기다.
우리는 이미 2019년 일본의 수출 규제로 촉발된 이른바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사태를 통해 원천기술이 없는 분야에서 어떤 위기가 발생할 수 있는지를 확인했다. 당시의 위기감 덕분에 국산화 노력이 일부 성과를 거둔 것은 사실이나, 항공우주·정밀기계·바이오 의약품 등 첨단산업의 토대를 구성하는 핵심 소재와 부품은 여전히 일본, 독일, 미국에 기댈 수밖에 없는 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과거 추격형 경제 모델에서는 원천기술을 선도하기보다 이미 검증된 기술을 발 빠르게 따라잡아 뛰어난 생산관리 능력으로 더 싸고 좋게 만드는 게 최선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이제 우리 경제는 그럴 체급을 넘어선 지 오래다. 게다가 강력한 경쟁자인 중국이 우리와의 기술 격차를 좁히며 바짝 추격해 오더니 이제는 여러 분야에서 오히려 우리를 앞서고 있다. 우리만의 새로운 길을 내는 원천기술 확보 없이는 첨단 제조업 강국이라는 자부심도 인터넷 강국의 영광처럼 과거의 유산으로만 남을 것이다.
‘우골탑’ 쌓던 대학의 종말
기술에 대한 낡은 자부심이 미래의 발목을 잡는 것처럼, 우리 사회의 성공 공식도 낡아버렸긴 마찬가지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사회를 지탱해 온 가장 핵심적인 성공 공식은 공부였다. 농촌에 거주하는 부모가 농촌의 주요 생산 수단이자 자산인 소를 팔아 자녀를 대학에 보내면, 자녀는 좋은 대학 졸업장으로 대기업에 취직해 중산층으로 진입했다. 소뼈로 쌓아 올린 상아탑, 대학이 우골탑(牛骨塔)이라 불린 이유다.
그런데 이토록 견고했던 입신(立身) 경로가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건 그만큼 알려지지 않았다. 우선 ‘대학만 가면 성공한다’는 통념은 이미 통계적으로 폐기된 지 오래다. 고등학생의 대학 진학률은 2008년 83.8%로 정점을 찍은 후 15년 넘게 꾸준히 하락하여 2023년에는 72.8%까지 떨어졌다.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 정원이 수험생 숫자보다 더 많은 상황인 걸 고려하면 더욱 심상치 않다.
높은 교육열 덕에 끝없이 오를 것만 같던 대학 진학률이 감소하기 시작한 이유가 뭘까? 근본적으론 대학 졸업장이 안정적인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청년 세대가 몸으로 깨닫고 있어서다. 청년 세대는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 대학을 졸업하고도 극심한 취업난에 시달리거나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선배들의 모습을 이미 봤다. 대학 학위증의 투자 대비 수익률이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는 걸 안다.
현재 은퇴를 앞둔 세대가 사회에 진출했을 즈음엔 스무 살 청년 중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사람의 비율이 17% 수준에 불과했기에 학사학위가 계층 이동의 사다리로 충분히 기능할 수 있었다. 그런데 80%가 넘는 사람이 학사학위를 취득하는 상황에선 대학 졸업자가 상대적 엘리트라고 하기도 민망한 수준이 된다. 학사학위가 더는 계층 이동의 수단이 되지 못하는 시대가 됐다는 얘기다.
점점 더 불평등해지고 있다는 오해
이처럼 전통적인 계층 이동 사다리가 삐걱거리자 ‘헬조선’ ‘수저계급론’과 같은 자조 섞인 담론이 확산되며, 우리 사회가 점점 더 불평등해지고 있다는 인상이 강화됐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역시 오해다. 경제적 불평등을 계량하는 ‘지니계수’ 기준으로 살폈을 때 우리 사회의 불평등은 꾸준히 감소해 왔다.
냉정하게 말해, 시장소득 기준의 불평등은 심각한 수준이 맞다. 지니계수는 불평등이 적을 때 0에 가까운 값을 가지고, 불평등이 클수록 1에 가까운 값을 갖는다. 외환(外換)위기 이후 악화된 우리나라 시장소득 지니계수는 2022년 0.405였다. 통상 0.4를 넘으면 불평등이 심각한 사회로 간주하니, 소득만 놓고 보면 우리 사회의 불평등이 심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가처분(可處分)소득’ 기준으로 따져 보면 우리 사회는 계속 평등해지고 있다. 월급에서 세금을 떼고, 국가에서 공적으로 지원받는 복지를 더한 가처분소득 기준 지니계수는 0.32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과 거의 유사한 수준이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정도 전인 2010년대 초반 우리나라는 그 계수가 0.34 정도였다. 그러다 2020년대 초반이 되면 0.32대로 떨어진다. 이웃한 일본(0.319)이나 스페인(0.321)과 비슷한 수치고, 영국(0.354)이나 미국(0.394)과 비교하면 불평등 수준이 확연히 낮다. 북유럽의 핀란드(0.258)나 노르웨이(0.253) 같은 나라와 비교하긴 어렵지만, OECD 평균에 근접한 준수한 상태인 건 분명하다. 우리나라의 소득 불평등이 심하다거나 더 심해지고 있다는 건 착시에 가까운 셈이다.
그런데 왜 이런 오해가 생기게 됐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불평등 담론이 확산되던 시기를 고려했을 때 두드러지는 원인 중 하나는 소셜미디어의 보편적 사용이다. 과거엔 너르게라도 지인(知人)이 아니라면, 그리고 생활 영역이 겹치지 않는다면 타인의 부(富)를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손에 든 스마트폰에서 전혀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막대한 부를 과시하는 걸 반복적으로 보면 평등에 대한 의심이 싹틀 수밖에 없다. 주변의 보통 사람이 아닌 이질적 존재라는 걸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평균에 대한 뒤틀린 관념이 불필요한 열패감(劣敗感)을 부르고, 그것이 재차 사회에 대한 불만을 부채질하고 계층 상승의 욕망까지도 좌절시켜 국가의 동량(棟梁)인 청년들을 좀먹는 것이다. 구직활동을 멈춘 ‘쉬었음’ 청년이 계속 느는 걸 고려하면, 국가가 나서서 청년 세대가 영점(零點)을 제대로 잡게 도와야만 한다.
국가데이터처, ‘팩트체커’ 역할 해야
살펴봤듯 우리 사회엔 통계에 대한 다양한 오해가 존재한다. 어떤 오해는 알아차리지 못해도 살아가는 데 큰 지장이 없겠으나, 어떤 오해는 누군가의 의도나 부추김으로 국가 경쟁력을 좀먹는 형태로 해악(害惡)을 끼치기도 한다. 물 부족한 콘크리트 도시라는 자학(自虐), 중국 없이는 살 수 없는 경제 구조라는 패배주의, 낡아버린 영광에 기댄 기술 강국이라는 허상, 그리고 모두가 더 불평등해지고 있다는 절망감까지. 이런 잘못된 현실 인식은 사회적 갈등을 불필요하게 증폭시키고, 국가의 자원을 엉뚱한 곳에 낭비하게 만들며, 미래에 대한 건강한 자신감마저 갉아먹는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 출범하는 국가데이터처의 역할은 막중하다. 단순히 데이터를 수집하고 개방하는 기술적 차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에 굳건히 자리 잡은 통계적 착시를 깨뜨리고, 데이터에 기반한 합리적 토론의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국민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통계를 설명하고, 논쟁적인 사안에 객관적인 데이터를 주기적으로 제공해 사회의 ‘팩트체커(fact-checker)’ 역할을 해야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자면, 부처별로 쪼개어 발표되는 각종 백서(白書)를 종합해 분야별 국가통계를 국민이 이해하기 쉽게 발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테다. 과거 통계청처럼 외압에 굴복해 ‘좋은 통계’로 보답하는 전철(前轍)을 밟아선 안 된다. 진실을 마주하는 것이 때로 불편하지만, 막연한 오해 속에 표류하는 것보다야 아픈 진실이 낫다. 국가데이터처가 그 역할을 바르게 수행해 주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