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侖世
1955년생.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연수원(現 한국고전번역원) 졸업 / (주)인산가 회장, 《인산의학》 발행인, 전주대학교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월간조선》 명예기자 / 저서 《빈 배에 달빛만 가득 싣고 돌아오네》 《자연치유에 몸을 맡겨라》 《내 안의 자연이 나를 살린다》 등
1955년생.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연수원(現 한국고전번역원) 졸업 / (주)인산가 회장, 《인산의학》 발행인, 전주대학교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월간조선》 명예기자 / 저서 《빈 배에 달빛만 가득 싣고 돌아오네》 《자연치유에 몸을 맡겨라》 《내 안의 자연이 나를 살린다》 등
탐명구리만세간 불여파납한도인
籠鷄有食湯鍋近 野鶴無糧天地寬
농계유식탕와근 야학무량천지관
세간에 넘쳐나는 게 명예를 탐내고 이익 좇는 사람들
누더기에, 일 없이 한가한 도인보다 못하다네
닭장 속 닭에게는 먹이가 많지만, 끓는 솥이 가깝고
들녘의 두루미는 먹을 게 적다마는 천지간에 자유롭네!
중국 남북조시대 보지(寶誌·418~514년) 선사(禪師)의 시이다. 보지(保誌)라고도 표기한다. 선사는 속성(俗姓)이 주(朱)씨이고 금성군(金城郡) 사람으로서 세상을 횡행하며 온갖 기행(奇行)과 예언을 일삼은 특이한 인물이다. 어릴 적에 출가하여 도림사(道林寺)에 머무르며 승검(僧儉)에게 사사하였다. 남조 송(宋) 태시(泰始·465~471년) 연간에 홀연 세상에 나타나, 일정한 거처 없이 아무 때나 먹고 마시며 머리카락을 길게 길렀으며, 또 가는 곳마다 가위와 칼·거울을 건 석장(錫杖)을 들고 다녔다. 남제(南齊) 건원(建元·479~482년) 연간에는 며칠을 먹지 않고도 주린 기색이 없었고, 도참(圖讖)과 같은 시를 자주 읊었는데, 이에 사람들이 모두 그를 따르기 시작했다. 제(齊)의 황제인 무제(武帝)는 보지 선사가 대중을 현혹한다고 하여 감옥에 가두었으나, 그는 감옥 안과 저잣거리에 동시에 나타나는 기이한 현상을 보이기도 했다.
‘무슨 까닭에 제왕의 신세로 타락했단 말인가?’
이 시의 ‘농계유식…’ 이하 두 구절은 워낙 유명해서 중국 청(淸)나라 순치제(順治帝·1638~1661년)의 ‘출가시(出家詩)’에서도 인용하고 그 밖에 여러 문인의 시에서도 인용하여 앞뒤로 글귀를 덧붙여 오랜 세월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된 바 있다.
순치제는 다섯 살 때 청나라 제3대 황제로 즉위하여 18년간 재위하다가 23세에 ‘출가시’를 쓰고 오대산으로 출가한 것으로 전해 온다. 장문(長文)의 ‘출가시’ 중 세상에 널리 알려진 대표적인 구절을 음미해 본다.
“세상의 백 년 삼만 육천 일이 / 절집 한가로운 반나절만 못하나니 / 닭장 속 닭에게는 먹이가 많지만, 끓는 솥이 가깝고 / 들녘의 두루미는 먹을 게 적다마는 천지간에 자유롭네! / 나는 본시 서방의 한 수행승이었는데 / 무슨 까닭에 제왕의 신세로 타락했단 말인가?(百年三萬六千朝 不及僧家半日閑 籠鷄有食湯鍋近 野鶴無糧天地寬 吾本西方一衲子 緣何流落帝王家)”
‘지족불욕 지지불태(知足不辱 知止不殆)’
세상 사람들은 시대를 초월하여 나랏일이든 기업의 일이든 관공서나 회사에서 직책을 부여받고 녹봉(祿俸)을 받는 대가로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제약과 속박이 없을 수 없는, 고단하고 위험한 삶을 영위하게 된다. 또한 그로 인해 비명횡사로 이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하지만 정작 이러한 중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그 누구도 예외 없이 명예를 탐하고 재물욕에 눈이 멀어 스스로 위험하기 그지없는 인생 노정(路程)을 선택하여 패망의 길로 들어선다. 불의(不義)와의 타협을 거부함과 동시에 벼슬이나 녹봉에 예속된 삶을 훌훌 털어 버리고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읊으며 초야(草野)로 돌아간 도연명(陶淵明) 선생 같은 이가 역사상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 문제이고, 그런 속박의 삶으로 일생을 보내느라 해탈(解脫)의 자재로운 삶을 꿈에서조차 누리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인 ‘세상살이’다.
비록 관공서나 직장에서 대가를 받고 일을 하더라도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하고 현명하게 판단한다면 굳이 일터를 떠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속박의 굴레에서 벗어나 청천(靑天)을 가로지르는 두루미처럼 자재로운 삶을 누릴 수 있겠지만,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그저 데면데면 살아가는 안일한 자세가 스스로 불행(不幸)을 초래하는 문제의 본질이라 하겠다.
이러한 현상을 통찰한 노자(老子)는 안타까운 마음에 그가 설한 《도덕경》에서 이렇게 묻고 이어서 근본적 해결책을 제시한다.
“명예와 몸은 어느 것이 내게 더 소중한 것인가? 몸과 돈은 어느 것이 내게 더 가치 있는 것인가? 얻는 것과 잃는 것은 어느 것이 더 문제이겠는가? 심히 아끼다 보면 반드시 크게 허비하게 되고, 너무 많이 저장하다 보면 반드시 크게 잃게 된다. 만족할 줄 알면 치욕스러울 일이 없을 것이고, 적당한 선에서 욕심 부리기를 그친다면 위태로울 일이 없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심신이 건강하게 오래도록 살 수 있는 큰 길이 아니겠는가?(名與身孰親 身與貨孰多 得與亡孰病 甚愛必大費 多藏必厚亡 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도덕경》 제44장)
갇히면 제 명대로 살지 못한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나는 새이든 물속의 물고기이든 우리에 갇히거나 속박되면 제 명대로 살지 못하고 수명이 감축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야생으로 자유롭게 사는 동물과 집안에서 가축으로 사육하는 동물은 그 수명 차이가 적지 않다는 게 대부분 과학자의 견해다. 일설에 따르면, 어린 토끼와 닭을 우리에 가두어 놓고 기르다가 큰 다음에 밖에 풀어 준 실험에서 토끼는 얼마쯤 뛰어가다가 죽었고, 닭은 몇 번 그 자리에서 뛰다가 죽었다. 해부해 보니 토끼는 심장이 파열되어 있었고 닭은 동맥이 파열되어 있었다.
학자들은 동물의 평균수명이 야생 토끼는 15년이지만 집토끼는 4~5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야생 개는 27년이지만 집에서 기르는 개는 13년밖에 되지 않고, 야생 코끼리는 200년 살지만 가두어 기르면 80년밖에 살지 못한다는 걸 확인했다. 또 야생 소는 60년을 살지만 집에서 기르는 소는 20년도 살지 못한다.
히말라야산맥 부근의 훈자 마을과 남미 안데스산맥에 있는 빌카밤바 등 세계의 장수촌(長壽村)에는 100세 이상의 장수자들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이들은 100세가 넘어서도 산과 들에 나가 일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많은 임상 시험에 의하면 같은 나이에도 오랫동안 운동이나 일을 통해 몸 단련을 한 사람들의 사망률은 1.4%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사망률은 6~12%였다.
일반적으로 대부분 사람이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면서 힘겹게 ‘신고(辛苦)의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보지 선사의 시에서 언급한 대로 먹을거리 걱정 없이 닭장 속의 닭처럼 살 것인가, 아니면 먹을거리 넉넉지 않아도 들녘의 두루미처럼 너른 천지에서 자재롭게 살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으리라. 사람은 가축과 달리 얼마든지 스스로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