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侖世
1955년생.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연수원(現 한국고전번역원) 졸업 / (주)인산가 회장, 《인산의학》 발행인, 전주대학교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월간조선》 명예기자 / 저서 《빈 배에 달빛만 가득 싣고 돌아오네》 《자연치유에 몸을 맡겨라》 《내 안의 자연이 나를 살린다》 등
1955년생.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연수원(現 한국고전번역원) 졸업 / (주)인산가 회장, 《인산의학》 발행인, 전주대학교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월간조선》 명예기자 / 저서 《빈 배에 달빛만 가득 싣고 돌아오네》 《자연치유에 몸을 맡겨라》 《내 안의 자연이 나를 살린다》 등

- 사진=게티이미지
종두남산하 초성두묘희 침신리황예 대월하서귀
道狹草木長 夕露霑我衣 衣霑不足惜 但使願無違
도협초목장 석로점아의 의점부족석 단사원무위
남산 아래 너른 밭에 콩을 심으니
풀은 무성하고 콩싹은 드무네!
새벽이 찾아들면 거친 밭, 김을 매고
밝은 달빛 아래 호미 메고 돌아오네!
초목이 자라 더욱 좁아진 길을 걸으니
저녁 이슬이 내 옷을 적시네
옷 젖는 거야 애석할 게 없지만
농작물 수확에 차질 없기만을 바랄 뿐
“내가 어찌 쌀 다섯 말의 녹봉 때문에…”
동진(東晋) 말기의 은둔 처사로서 오류(五柳) 선생, 또는 정절(靖節) 선생으로 널리 알려진 연명(淵明) 도잠(陶潛·365~427)의 귀거래사(歸去來辭)다. 《도정절집(陶靖節集)》 2권에 실려 있는 ‘귀전원거(歸田園居)’ 시 6수 중 제3수에 해당한다.
도연명은 강주(江州) 심양(尋陽) 출생으로 그 지방에서 뿌리를 내린 시골 선비 집안 출신이다. 그는 29세 때 고향 강주의 좨주(祭酒·교육장)로 관료 생활을 시작했으나 선비의 감성과 기개가 있어 틀에 박힌 관료 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여 사임하고 만다.
이후 41세 때, 팽택(彭澤) 현령(縣令)에 제수되었다. 현령이 된 지 80일쯤 되었을 무렵, 현의 관리를 감찰하는 독우(督郵)의 시찰에 앞서 독우의 부하에게서 ‘자신을 마중 나오도록 하라’는 연락을 받자 “내가 어찌 오두미(五斗米), 즉 쌀 다섯 말의 녹봉 때문에 허리를 굽히겠느냐(我豈能爲五斗米折腰)”라고 일갈하고 사직(辭職)한 뒤 향리로 돌아가면서 읊은 시가 바로 ‘귀거래사’다.
“돌아가리라(歸去來兮)”로 시작되는 첫째 장은 관리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심경을 읊었고, 둘째 장은 고향의 집에 도착한 기쁨을 노래하고 있다. 셋째 장은 향리(鄕里)에서의 생활과 그곳에서 느낀 생각을 담고 있으며, 마지막 장은 ‘자연 속에서 자연의 섭리에 따라 살아가겠다’라는 자신의 소신과 철학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귀거래사는 한마디로 입신(立身)과 양명(揚名)에 눈이 멀어 권력에 아부하고 금권(金權)을 좇아 타락하는 관료 사회에 대한 반감과 염증을 툭툭 털어버리고 향리로 돌아가 전원에서 자연의 섭리에 따라 살아가는 기쁨을 잘 표현한 시이다. 이 시는 6세기 초 남조(南朝) 양(梁)의 소명태자(昭明太子)가 편찬한 시문선집(詩文選集)인 《문선(文選)》에 수록되었고, 송(宋)나라 말 원(元)나라 초에 뛰어난 시문(詩文)을 모은 《고문진보(古文眞寶)》에도 수록되어 이후 한문학을 대표하는 명시로 전해 내려왔다.
도연명은 이후, 20여 년 동안 이어지는 은둔 생활에 들어갔는데, 은거한 지 3년 만에 고향을 떠나 남촌(南村)으로 이사해 만년을 보냈다. 그는 술을 좋아해 가세(家勢)가 곧 기울었지만, 그곳에서 왕홍(王弘), 은경인(殷景仁), 안연지(顔延之) 등 많은 관료·지식인과 친교를 맺었으며 전원생활의 자유와 기쁨을 만끽하며 만년을 보냈다.
“농사나 지어야겠다”지만…
귀거래사는 1700년이라는 시간과 수만 리에 달하는 공간적 제약을 넘어 많은 이가 지금까지 즐겨 읊고 있는 명시다. 우리 주변에, 도시에서의 고단한 삶을 영위하는 사람 중에 다니던 직장이나 관직에서 물러나는 등의 사유로 인해 호구지책(糊口之策)이 마땅치 않을 때 시골로 내려가거나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나 지어야겠다”라고 말하는 이들을 종종 보게 된다.
‘농사나’라는 표현에서 농사의 철학적 의미와 가치에 대한 기본 인식은 차치하고라도, 사람이 먹고사는 데 있어서 가장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생계 수단으로서의 중요성을 간과한데다, 농사일이 그리 쉽지 않다는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 매우 경솔한 표현이었음을 깨닫기까지는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이고 시간이 흘러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오늘의 농어촌 현실을 어느 정도 알아야 할 것이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살기 위해서는 체력도 관리하고 농어촌 사람들과 진심으로 소통할 마음의 준비도 게을리하지 말아야 성공적 귀농(歸農)·귀촌(歸村)이 가능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인구 감소로 인한 지역 소멸의 위기가 본격화된 지 이미 오래다. 우리나라의 모든 지방자치단체 중 필자가 거주하고 있는 함양을 포함한 89곳이 인구 감소 지역으로 확인돼 정부에서 지방 소멸 대응 기금을 마련해 배분하는 등의 대책을 세워 추진하고 있다.
서울·경기 지방에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 이상이 거주하고 있는 인구 쏠림 현상은 국가 안보를 매우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인구 밀집 지역에 거주하는 국민의 건강에도 지대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생활 오수, 산업 폐수, 쓰레기 처리 등 인구의 도시 집중으로 인한 여러 가지 문제는 점점 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제는 국민 스스로 정부의 대책에만 의존할 게 아니라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자구책을 마련해 추진해야 할 때이다. 즉 곧 굶어 죽는 게 아니라면 마치 모내기를 하지 않은 못자리의 밀식된 모처럼 인구 밀도가 높은 지역에서의 고단하고 위험하기까지 한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귀농·귀촌을 결심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지리산으로 내려가다
필자 또한 1987년, 경남 함양의 깊은 산속 해발 500m 부지에 인산가라는 기업을 설립해 경영하면서 1989년, 아예 서울에서 함양으로 주거지를 옮겨 거주하고 있다. 1989년 “전원에 풀이 무성한데 어찌 돌아가지 않고 머뭇거리랴(田園將蕪胡不歸)”로 시작되는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읊으며 서울을 떠나 함양으로 내려온 이래 36년이 넘는 세월을 지리산에서 전원생활을 하면서, 기업인으로서의 활동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도연명의 이 시는 부연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자연스럽고 소박한 전원생활을 한 폭의 그림으로 그려 보여주고 있어서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을 듯싶다.
다만 침신(侵晨)이라는 말은 본래 글자대로 풀면 몹시 고단하게 잠들어 있는 이에게 ‘새벽이 쳐들어온다’라는 의미를 지닌 것이어서 ‘새벽이 되면’으로 해석해도 되겠지만 작자의 본래 참뜻을 좀 더 되살리기 위해 ‘찾아들면’으로 풀이했음을 밝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