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슬의 ‘건강의 지평선’ ⑨ ‘적정 의사 수’라는 미망(迷妄)

의대 정원 문제는 고생산성 인재 배분 문제

  • 글 : 박한슬 의료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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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료는 공급이 먼저 열리면, 수요는 그에 따라 형성·정당화
⊙ 기술 발전과 그에 따른 의료적 필요 증가는 통계적 파악이 거의 불가능
⊙ AI 기반 도입해도 새로운 일들이 추가되어 의사의 총노동 시간 줄지 않을 것
⊙ 영국, 1950년대에는 ‘의사 과잉’이라고 했다가 10년 후에는 ‘부족’하다고 보고

박한슬
1991년생. 차의과학대 약학과 졸업, 연세대 통계·데이터사이언스 석사 / 《중앙일보》 《주간조선》 칼럼니스트, 서울시 청년정책자문단 / 저서 《노후를 위한 병원은 없다》 《숫자 한국》 외 다수
3월 10일 국민중심의료개혁연대회의 관계자들은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육부의 2026 의대 정원 동결 철회와 수급추계위법 즉각 통과를 촉구했다. 사진=뉴시스
이재명 대통령 집권 이후, 해를 넘기며 이어지던 의정(醫政) 갈등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있다. 지난 정부에서 의과대학 정원을 기존보다 2000명 증원하겠다고 발표한 직후 단체행동에 돌입했던 전공의들은 점차 현장으로 복귀 중이며, 집단 휴학 상태에 있던 의대생들 역시 ‘조건부 복학’이라는 절충안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무엇보다 보건복지부에서 ‘의료인력추계전문위원회’라는 의료계와의 공식 협의체를 출범시키며, 윤석열 전 대통령 정권 시절 급작스러운 증원 추진으로 촉발된 의정 갈등은 제도적 대책까지 완비되며 마무리되는 모양새다. 위원 중 다수를 의사로 꾸린 위원회를 통해 향후 의료 인력 필요량을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조정하겠단 건데, 여전히 뇌관(雷管)은 남아 있다. ‘그래서 대체 의대 정원을 몇 명으로 결정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입장 차가 클 것이기 때문이다.
 
 
  의사 수 추정이 가능한가?
 
  이보다 앞서 짚어봐야 할 건, 애초에 필요한 의사 수라는 게 ‘과학적’으로 추계 가능한 수치냐는 점이다. 현재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OECD 평균보다 0.6명 부족하니 2035년까지 연(年) 2000명씩 채우자는 식의 접근이 잘못된 건 알겠다. 하지만 왜 이것이 오답(誤答)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한 번에 증원하는 숫자가 과도하게 많아서 틀린 것인지, 아니면 애초에 과학적으로 추정(推定)할 수 없는 수치를 우격다짐으로 추정했기 때문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얘기다.
 
  의료인을 포함한 다수 국민은 문제의 핵심을 과도한 증원 수치에 두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정답은 후자(後者)다. 필요한 의사 숫자라는 건 애초에 과학적 추계(推計)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필요 의사 수를 추정하기 위한 선행(先行) 요인이라 할 수 있는 의료적 필요(medical needs) 자체가 사회적 요건에 따라 유동적으로 흔들리는 변수(變數)라 이에 근거해 수치를 추정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이러니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건, 의사 수를 추정하겠다는 오만한 접근이 아니라, 의료적 필요를 구성하는 복합적인 불가측 변수(imponderables)가 무엇인지를 숙고(熟考)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거치면 자연스레 필요한 의사 수를 결정한다는 게 단지 의료 영역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국가 자원의 배분 방식, 다시 말해 정치적 결단의 영역임을 이해할 수 있다. 의료 분야의 전문가나 정책 관료에게만 일임할 게 아니라, 첨예한 정치적 조율(調律)이 필요한 사안이라는 얘기다. 고령화(高齡化)를 비롯한 인구 구조와 의료비의 함수(函數)처럼 여겨지는 의사 숫자가 왜 이런 복잡한 영향을 고려해야 하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선 ‘의료적 필요’라는 것을 먼저 살펴봐야만 한다.
 
 
  일반적 시장 원리와 다른 의료 시장
 
지난 3월 7일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2026 의대 정원 동결을 발표, 윤석열 정부가 추진했던 의대 증원정책에서 후퇴했다. 사진=조선DB
  의료라는 분야는 수요와 공급이 엄격히 분리된 재화(財貨) 시장과는 작동 원리가 다르다. 일반적으로는 수요가 먼저 형성되고, 이에 따라 공급이 조정되는 것이 자본주의 시장의 상식이다. 그러나 의료는 반대다. 공급이 먼저 열려야, 수요가 이를 따라 ‘형성’되거나 ‘정당화’된다. 기술과 인프라의 공급 확대가 의료적 필요를 소급(遡及)해서 정당화하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
 
  조금 일상적인 사례를 먼저 살펴보자. 중국발(發)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던 2010년대 중반쯤 우리나라에서 수요가 급증하기 시작한 제품 두 가지는 황사마스크와 가정용 공기청정기다. 흥미로운 건, 사실 그 시기 이전에도 황사나 미세먼지는 똑같이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신라 시대에도 우토(雨土)가 내렸다는 기록이 있다.
 
  1993년 이전에는 유연(有鉛) 휘발유가 사용돼 대기 중 납 농도가 미세먼지가 범람하는 요즈음보다 훨씬 높았다. 대기오염에 의한 위해(危害)는 그 시절이 더 높았을 거라는 얘기다. 그런데도 훨씬 대기질이 개선된 2010년대 중반에야 두 제품이 널리 쓰이게 된 건, 미세먼지 농도를 주기적으로 측정해 발표한 게 그즈음부터이기 때문이다. 측정(measure)이 가능해진 순간부터 문제로 인식되고, 이에 맞춰 수요가 늘어난 것이다.
 
  의료에서도 이와 아주 유사한 일이 벌어진다. 새로운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수단이 생기면, 그 수단을 활용한 의료 수요가 발생하는 식이다. 이 공식에 들어맞는 가장 대표적인 질병이 암(癌)이다. 과거엔 암을 진단할 수 있는 수단이 적어, 암이 상당 부분 진행된 후에야 발견하는 경우가 잦았다. 그런데 검진(檢診) 기술이 발달하며 암을 조기에 찾아내는 일이 늘어나는 걸 넘어, 최근엔 ‘맞춤형 항암제’를 사용하기 위해 암의 유전적(遺傳的) 특성을 파악하는 암유전자 검사도 진행한다.
 
  이런 미래를 짐작조차 하지 못하던 과거 시점에서 암에 대한 ‘의료적 필요’를 추정한다고 해보자. 당시 기준으로 대부분의 암 환자는 진단 이후 몇 개월 생존하지도 못하므로, 암에 대한 의료적 필요가 크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는 게 합리적이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며 정기적 암 검진은 물론 고가(高價)의 항암제와 암유전자 검사 같은 다양한 기술이 개발됐다. 이로 인한 초과 수요를 추정한다는 게 과연 그 시점에서 가능한 일이었을까? 기술 발전과 이에 따른 의료적 필요 증가야말로 대표적인 불가측 변수다. 통계적 파악이 거의 불가능하다.
 
 
  MRI 촬영이 일반화된 한국
 
  기술 발전이 미비하던 과거에나 벌어진 현상으로 치부하기엔, 가까운 시점에도 비슷한 일은 계속 벌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게 영상 진단 장비인 자기공명영상장치(MRI)의 건강보험 적용이다. 2010년대 중반 이후 정부는 초음파와 MRI 검사의 건강보험 적용을 단계적으로 확대했고, 이에 따라 2016년부터 2020년까지 5년간 MRI 촬영 건수는 무려 40.9% 증가했다. 2023년 기준 인구 1000명당 MRI 촬영 건수는 OECD 평균(64.1건)의 두 배에 가까운 123.6건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실손보험 청구가 가능하기에, 환자 입장에서도 의료비 부담이 적다.
 
  이러니 의료기관에선 MRI 도입을 적극 늘렸고, 영상 진단 장비의 보급이 늘자 자연스레 유도된 의료 수요는 어느새 당연히 해야 하는 검사로 재정의되었다. 교통사고 나면 MRI 한 번 찍어봐야 한다는 나라는 아마 우리나라뿐일 것이다. 다른 나라에선 몇 달가량 대기해야만 겨우 찍는 고가 진단 장비가 우리나라에선 일상적 검사로 바뀐 셈이다.
 

  이처럼 관련 제도의 변화도 의료적 필요를 변화시킬 불가측 변수의 예시다. 그런데 최근 화제인 인공지능(AI)과 같이 종국에는 의료인을 대체할 걸로 기대되는 기술들이 도입되는 건, 앞선 사례와는 정반대의 변화를 만들지 않을까? 앞으론 의료 인력이 덜 필요해지지 않겠냐는 것이다.
 
 
  ‘가짜 노동’
 
  최근 몇 년간 의사 증원에 대한 반대 논거로 가장 자주 인용되는 것이 ‘의료 자동화’에 따른 의사 인력 필요량의 감소다. 인공지능 기반의 진단 알고리즘, 로봇 수술 시스템, 자동 판독 도구 등이 이미 상용화되고 있으니 곧 의사의 일부 역할을 대체할 것이고, 그 결과로서 의사 인력의 필요량이 줄지 않겠냐는 논리다. 이미 미국 FDA는 2024년 상반기 기준으로 340개 이상의 의료 AI 시스템을 승인했으며, 국내 상급종합병원의 상당수도 AI 기반 영상 분석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있다. 의료 영역에서 인공지능 활용이 가시화된 것이다.
 
  의대 증원을 밀어붙이던 지난 정부에서는 이런 논리를 깨기 위해 기술 발전과는 무관한 필수 의료 인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애써 강조했다. 하지만 이 주장은 역사를 살피면 성립하지 않는다. 애초에 그간의 기술 발전사를 살펴보면, 기술 발전은 노동을 대체하기보단 되레 노동의 강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용어가 소위 ‘가짜 노동’이다. 미국의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David Graeber)가 저서 《불쉿 잡(Bullshit Jobs)》(2021)에서 제시한 이 개념은 기술 발전이 인간을 노동에서 해방하기는커녕 무의미하고 불필요한 업무만 양산(量産)해 왔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이메일의 개발은 우편을 통해 서신이 오가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하루 종일 이메일을 확인하고 답장해야 하는 새로운 종류의 노동을 만들어냈다. 워드 프로세서는 타자기를 대체하며 문서 작업의 효율성을 높였지만, 과거에는 비서가 전담하던 타이핑, 편집, 인쇄 업무를 모든 사무직 노동자가 직접 수행하게 됐다. 기술이 특정 과업(task)을 자동화할 수는 있어도, 이로 인해 절약된 시간은 종종 새로운 형태의 부수적 업무, 즉 ‘가짜 노동’으로 채워진다는 것이다.
 
 
  AI 시대의 의료
 
  의료 영역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유사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다. 물론 실용성이 없는 가짜 노동이 노동시간을 채운다기보단, 우선순위에서 밀려 수행되지 못하던 일이 업무 영역에 들어서는 것에 가깝다. AI 기반 진단 보조 시스템을 예로 들어보자. 이 시스템이 수천 개의 의료 영상을 1차로 판독하여 의심스러운 병변(病變)을 선별한다고 가정하자. 이런 과업이 AI에 의해 효율적으로 수행되면, 의사의 노동 강도가 낮아지고 의료 인력의 수요가 줄어들까?
 
  실제로는 오히려 의사의 노동 강도를 극적으로 높일 가능성이 크다. 과거의 영상 진단이 명백한 이상 징후가 보이는 소수(少數)의 영상에 집중하는 형태였다면, 이제는 AI가 판단하기에 위험도가 있다고 표시된 수많은 영상을 모두 재검토하고 최종 판단을 내리는 형태로 과업의 형태가 바뀌었을 뿐이다. AI의 판별 결과에 대한 최종 책임은 여전히 인간 의사에게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 책임을 인공지능 제조사가 오롯이 진다고 하더라도, 의사의 노동이 줄어든다기보다는, 과거엔 시간 부족으로 인해 수행하기 어려웠던 정밀의료(precision medicine)나 유전체 기반 치료로 이들의 노동 영역이 바뀔 개연성이 크다. 기술 발전 자체는 의료적 필요나 의사의 총 노동량을 줄이진 않는다는 이야기다.
 
  더군다나 의료의 패러다임이 ‘치료’에서 ‘예방’으로 옮겨가며, 기존엔 의료적 처치가 필요하다 여겨지지 않던 영역도 점차 필수 의료의 영역에 진입하게 됐다. 가장 최근 사례는 비만이다. 과거에도 비만이 권장할 만한 건강 상태가 아니라는 건 의료계에서 폭넓게 받아들여졌지만, 이를 질병으로 여기기보단 다른 만성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는 중요한 위해 요인 혹은 개인의 의지 문제로 치부하는 경향이 강했다.
 
  이러다 2020년대 들어 ‘위고비’나 ‘마운자로’와 같은 GLP-1 계열의 혁신적 비만 치료제가 등장하자 상황은 급변했다. 이전까지 존재하지 않던 효과적인 약물 치료라는 선택지가 생기자, 비만은 더 이상 개인의 생활습관 교정만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닌, 적극적인 의학적 개입이 필요한 ‘질병’으로 재규정되었다.
 
  이에 따라 잠재적인 비만 환자군 전체가 새로운 의료 수요층으로 편입되었고, 이들을 진단하고, 약물을 처방하며, 부작용을 관리하는 의사의 역할이 새롭게 창출되었다. 이처럼 폭발적으로 증가할 비만 치료 수요를 과거 시점에서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기존엔 질병으로 여겨지지 않던 신체적 특성이나 상태가 질병으로 포함되는, 소위 의료화(medicalization)라 불리는 현상이 일어나면 의료적 필요의 범위가 계속 넓어질 수밖에 없고, 그만큼 의료 인력의 필요량은 늘어난다. 이토록 예측 불가능한 의료적 필요를 예측하고, 이에 맞춘 의사 인력을 추계한다는 건 이미 과학이 아니라 운에 기대는 점괘(占卦)다. 이를 지난 수십 년 동안 먼저 경험한 영국의 사례를 살펴보자.
 
 
  ‘의사가 너무 많다’더니…
 
  지금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상상하기 힘들지만, 1957년 영국 정부의 공식 보고서에는 “의사가 너무 많다”라는 문장이 포함됐다. 당시 영국 보건부가 의뢰한 인력 수급 계획서인 〈윌링크 보고서(Willingk Report)〉에선 “앞으로 20년간 의대 정원을 12% 감축해야 하며, 이는 미래 과잉 공급을 사전에 방지하려는 예방적 조치”라며 의대 정원 감축을 권고했다.
 
  영국은 실제로 이 권고에 따라 의대 입학 정원을 줄였다. 그런데 불과 10년 뒤인 1968년에 꾸려진 또 다른 의료 인력 추계 시도인 ‘토드 위원회(Todd Royal Commission)’는 기존의 감축 기조를 완전히 뒤집었다. 위원회는 “영국 국민건강서비스(NHS)가 구조적으로 만성적인 의사 부족 상태에 있으며, 그 원인은 기존 추계가 지나치게 보수적이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의대 정원을 원래대로 되돌리는 것을 넘어 해외 인력 수급 경로를 적극적으로 확보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고작 10년 만에 의료 인력 추계가 거꾸로 뒤집힌 것이다. 수치 해석의 보수성 때문이라기엔, 여기에도 나름의 사정은 있다.
 
  〈윌링크 보고서〉가 작성된 1950년대는 전후(戰後) 복구가 한창이던 시기다. 전쟁 직후라 기초적인 수준의 의료로도 감지덕지하던 시기란 얘기다.
 
  이런 배경에서 영국식 ‘무상(無償) 의료’가 문제가 됐다. 거시적으로 보면 영국은 무상 의료를 수행하는 국가이긴 하나, 의료 인력의 보상에선 부분적으로 시장 원리를 도입해서 운영한다. 담당하는 환자 수에 따라 봉급을 지급하는 인두제(人頭制)다. 실질적으로 준(準)공무원인 의사가 환자를 최대한 많이 보게 하려는 목적인데, 동네 개원의(GP) 간의 경쟁이 과열되면서 의료 서비스의 영리화(營利化)에 대한 염려가 커지고 있었다. 이러니 의사 과잉 배출이 기껏 구축(構築)한 무상 의료 시스템을 붕괴시킬 수도 있단 사회적 우려가 나온 것이다.
 
  그런데 토드 위원회가 꾸려진 1960년대 말은 인구 고령화와 전문의 수의 증가, 의학 기술 발전이 맞물리면서 ‘질 높은 의사’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수요가 폭발하던 때였다. 당장 우리도 해방 이후 80년간 비슷한 경험을 해왔지 않나. 밥 굶지 않는 것으로 족하던 시대를 넘기면 미식(美食)의 시대가 온다. 의료에서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이러니 의사 수가 부족하다는 식으로 추계의 결론이 바뀐 거고, 의과대학 감원(減員)은 원복(原復)됐다.
 
 
  대처, NHS의 비용 효율성 추구
 
  이런 논리를 따르자면, 의료적 필요는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 경제력이 나아질수록 사람들의 눈 또한 계속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재정(財政) 문제가 발목을 붙잡는다. 개인이건 국가건 간에 재정 지출 여력을 모두 의료 분야에만 투입할 수는 없어서다.
 
  다시 10년이 흐른 1970년대 영국은 두 차례의 석유 파동으로 인한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으로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한다. 국가 재정이 악화되자 ‘보편적 무상 의료’라는 NHS의 대원칙은 거대한 재정적 압박으로 다가왔는데, 재정을 추가로 집행할 여력이 없다는 판단이 서자 영국 NHS 역시 ‘비용 효율화’를 시작했다.
 
  그 변화를 추동한 이가 ‘철의 여인’이라 불리던 마거릿 대처 당시 수상이다. 대처리즘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적 개혁 시기에는 의사 수를 늘리기보다는, 한정된 자원 내에서 어떻게 효율적으로 의료 서비스를 배분할 것인지를 고민해야만 했다. 방치하면 무한히 팽창할 수밖에 없는 의료적 필요에 재정이란 지극히 현실적인 칼을 댄 것이다.
 

  결과적으로 영국의 무상 의료는 경증 질환은 거의 보장하지 않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감기나 배탈 같은 가벼운 질병은 약국에서 본인 돈으로 약을 사서 버텨야 하지만 큰 수술은 확실히 무료로 받을 수 있는 식이다. 이마저도 재정 압박이 거세지자, 의료 서비스를 받기 전까지 대기해야 하는 시간을 늘리는 식으로 의료 수요를 옥죄기까지 했다.
 
  이런 상황을 적극적으로 개선하고자 토니 블레어 전(前) 수상은 의료 인력의 대규모 확충을 밀어붙였고, 2000년대 초반 영국 의대 정원을 거의 곱절로 늘렸으나 현재 영국 공공 의료는 다시 원래 상태로 되돌아왔다. 재정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의료 제공량을 감축해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은 ‘정치적 결단’의 문제
 
  영국의 보건사회학자 클레어 헤릭과 의료사학자 데이비드 암스트롱은 “의료 인력 수급은 단순한 통계 예측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기술, 제도, 정치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불가산적(不可算的) 문제”라고 단언한다. 대처 총리가 NHS의 의료 서비스 제공 범위를 대폭 줄인 것도 병자(病者) 수준으로 약화된 영국 경제를 살리기 위한 정치적 결단이었고, 블레어 총리가 의사 인력을 대폭 늘린 것 역시도 정치·경제적 불평등이 커져 값비싼 사설(私設)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부자와 긴 대기를 감내하는 서민의 건강 수준이 달라지는 걸 염려한 정치적 결단이었다.
 
  인구의 증감(增減)은 추계할 수 있다. 이 중 노인이 얼마나 될지, 고혈압이나 당뇨병을 앓는 환자는 몇 명일지는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의료 역시 사회의 한 분과(分科)이며, 각 분야에 얼마만큼의 자원을 분배할지는 정치적 결단의 영역일 수밖에 없다. 과학이 개입하는 건 그런 결정이 내려진 이후다. 한정된 재원 내에서 어떤 질병을 더 우선시할지, 장기적으로 어떤 질병을 다루는 의사를 얼마만큼 확보할 수 있는지를 치밀한 계산으로 확정하는 과정은 어디까지나 정치적 결단의 후행(後行)일 뿐, 그 과정 전체를 과학적 추계에 맡긴다는 것 자체는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그렇다면 정확히 어떤 정치적 결단이 필요할까.
 
 
  고생산성 인재의 배분 문제
 
지난 4월 20일 의협이 주최한 ‘의료 정상화를 위한 전국 의사 궐기대회’에서 의대생 및 의사들은 윤석열 정부가 추진했던 의대생 증원 정책 철회를 요구했다. 사진=조선DB
  의사 수 확대 논쟁이 놓치고 있는 가장 구조적인 쟁점은 정확히 어떤 학생들이 의대에 진학하고 있으며, 만약 그들이 의대에 진학하지 않았다면 어떤 분야에 종사했을지다. 다시 말해, 의대 정원이 단지 의사 수 조절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에서 가장 희소한 자원인 고생산성 인재의 배분 문제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의사 면허는 단순한 직업 선택이 아니라 노동 시장에서의 중산층 이하로 탈락할 확률을 가장 효과적으로 줄이는 직업 안정망처럼 작동하고 있다. 이 결과 수학·물리·생물 등 국내 이공계를 지탱해야 할 상위 0.5% 수험생들이 대거 의대로 몰린다. 2023년 기준으로 전국 과학영재학교 졸업생의 16.3%가 의대나 치대, 약대에 진학했으며, 이는 2010년대 초반의 2~4% 수준에서 10년 사이 네 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올림피아드 수상자, 카이스트·포스텍 영재 입학생들의 이탈률도 유사한 경향을 보인다.
 
  불확실성을 줄이려는 개인의 선택을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국가로선 노동생산성을 고민해야만 한다. 최상위 인재가 의대에 진학할 때와 과학·공학 분야에 남을 때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본질적으로 의료는 내수(內需) 산업이다. 최근엔 해외 관광객을 유치하는 미용 의료도 생겨났으나, 몸이 아픈 환자는 보통 사회·경제적 약자층인 한국인이 압도적 다수다. 주된 고객의 주머니 사정이 뻔한 데다, 우리나라에선 모든 의료가 가격 통제를 강하게 받는 건강보험의 울타리 안에서 이루어져, 의사 개인이 얼마나 뛰어난지와 별개로 노동생산성은 낮을 수밖에 없다. 의학은 본질적으로 고정된 생산성하에서 반복성과 숙련도를 높이는 체계에 가깝다.
 
  반면 인공지능, 반도체, 바이오 같은 미래 산업 분야는 한 명의 인재가 만들어내는 파급 효과가 훨씬 크다. 기초 연구 하나가 산업 구조 자체를 뒤바꿀 수도 있으며, 천재 한 명이 수만 명의 고용을 창출할 가능성도 품고 있다. 이러한 비교 우위를 고려하면, 의학으로 쏠린 고급 인재의 기회비용은 단순한 교육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성장의 물적 기반에 영향을 미친다. 현재처럼 의학에 고급 인재가 쏠림으로써 생기는 구조적 기회비용이 장기적으로 국가 경쟁력, 산업 자립도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복지부만의 문제가 아냐
 
  물론 늘어날 노년 인구를 고려하면, 지금보다 의료 인력이 더 늘어야만 한다는 논리도 기각(棄却)하긴 어렵다. 그런데 앞서 살핀 영국의 사례는 물론이고 현재 우리가 직면한 건강보험 재정 위기를 고려하면 우리나라 의료 역시 의료적 필요에 대한 손질은 불가피하다. 더 많은 양질의 의료를 제공하는 식으로 의료 필요성을 끝없이 확장하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가 의료 지출로 감당할 수 있는 재정적 한계 내에서 한껏 부푼 의료적 필요를 다듬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어느 정도 수준의 건강 상태를 유지하는 걸 목표로 할지 설정하고, 이를 위해 어디까지를 국가가 책임질 수 있는 ‘의료적 필요’의 범주로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합의도 필요하다. 더군다나 이렇게 결정된 의료적 필요에 맞는 의사 수가 국가 경쟁력을 침해하지 않을 수준인지도 세심하게 따져봐야 한다. 이런 과정은 필연적으로 사회 구성원 간의 깊은 숙의(熟議)와 정치적 타협을 요구한다. 보건의료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에만 위임해서는 절대 수행될 수 없는 작업이다.
 
  지금 시점에서 필요한 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는 공론장을 통해 우리가 원하는 의료가 어떤 모습인지 그리고 이를 위해 우리는 얼마만큼의 비용을 낼 수 있는지를 총체적으로 따져보는 것이다. 기껏 봉합된 의정 갈등을 다시 터뜨릴 위험을 방치하려는 게 아니라면, 이참에 본질적 논의를 진행해 갈등의 숨은 불씨까지도 마무리를 지어야만 한다. 정치의 본분을 다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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