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세의 溫故知新 | 계곡 물소리의 法門을 듣는다

  • 글 : 김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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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侖世
1955년생.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연수원(現 한국고전번역원) 졸업 / (주)인산가 회장, 《인산의학》 발행인, 전주대학교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월간조선》 명예기자 / 저서 《빈 배에 달빛만 가득 싣고 돌아오네》 《자연치유에 몸을 맡겨라》 《내 안의 자연이 나를 살린다》 등
사진=게티이미지
溪聲便是長廣舌 山色豈非淸淨身
  계성편시장광설 산색기비청정신
  夜來八萬四千偈 他日如何擧似人
  야래팔만사천게 타일여하거사인

 
  깊은 산 계곡 물소리는 부처님의 법문이요
  푸른빛의 산은 비로자나불의 청정 법신일세
  밤새 물소리로 들려준 팔만사천 게송을
  뒷날, 다른 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으랴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6월 29일, 잠시나마 무더위에서 벗어나 가슴속까지 시원하게 해주는 청량한 산골의 바람을 쐬기도 하고, 온 산골짝을 뒤흔들며 흐르는 계곡 물소리를 듣기 위해 우리나라 삼대 계곡의 으뜸으로 알려진 지리산 칠선계곡을 찾았다.
 
  제법 경사가 심한 비탈길을 20여 분 오른 뒤 평평한 길을 걸으니 지리산 천왕봉으로 직결되는 칠선계곡 초입 안쪽의 깊숙한 곳에 자리한 두지터에 다다르고 조금 더 걸으니 마치 우렛소리처럼 굉음을 지르며 흐르는 칠선계곡 본류가 나타났다.
 
 
  계곡 물소리와 부처님의 법문
 
  온 천지 사방팔방 요란하게 흔들며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는 그야말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사자후(獅子吼)요, 끝없이 펼쳐지는 진리의 법문(法門)-장광설(長廣舌)이 아닐 수 없었다.
 
  거대한 계곡 물소리가 곧 석가모니 부처님의 장광설이라고 표현한 시(詩)로는 당송 팔대가의 한 사람인 소동파(蘇東坡·1036~1101년)의 ‘오도송(悟道頌)’이 가장 유명하다. 그는 당대 최고의 박학다식한 대학자로서 풍부한 지식을 뽐내다가, 물외(物外)의 한인(閑人), 격외(格外)의 선사에게 “왜 당신은 유정(有情) 설법만 들으려 하는가?”라는 일갈에 그간의 지식을 잊고 그 지식 너머에 여여(如如)히 실재하는 ‘지혜의 등(燈)’에 마침내 불을 붙여 스스로를 밝히고 세상을 밝히는 계기로 삼았다.
 
  소동파는 중국 사천성 출신으로, 이름은 식(軾)이며 아버지는 소순(蘇洵), 동생은 소철(蘇轍)로서 세 사람 모두 당송 팔대가에 들어간다. 그의 작품으로는 적벽부(赤壁賦)가 유명하다.
 

  소동파는, 시(詩)에 있어서는 송대 시단의 영수로 알려졌고 사(詞)에 있어서는 중국 문학사상 최고의 호방사인(豪放詞人)이며, 서예에 있어서는 북송 사대가(四大家)에 들어갈 정도로 각 방면에 두루 조예가 깊은 걸출한 인물이다.
 
  유불선(儒佛仙) 삼교(三敎)를 섭렵하고 문장에도 남다르게 뛰어났던 소동파가 호북 형남(荊南)의 태수로 있을 때, 하루는 옥천사(玉泉寺)라는 절에 승호(承皓)라고 하는 유명한 선사가 주석(住錫)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갔다.
 
  소동파는 자신을 우월한 인물이라 여겼고, 이를 의도적으로 과시하기도 했는데, 소동파의 이런 마음을 꿰뚫어 본 승호 선사가 “대인(大人)은 누구십니까?”라고 묻자, “나의 성씨는 칭(秤)가로서, 천하 스님들 무게를 달아보는 저울이지요”라고 하였다. 이에 승호 선사가 갑자기 “악!” 하고 벽력 같은 소리를 지르며 “이 갈(喝)의 소리, 그 무게가 몇 근(斤)이냐?”고 물었다.
 
 
  무정(無情) 설법
 
  소동파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자신의 오만한 마음을 뉘우치며 그저 침묵으로 일관했다. 소동파는 이런 일이 있고 나서 어느 날, 여산(廬山)의 동림 홍룡사에서 주석하고 있던 당대의 고승 상총(常總·1025~1091년) 선사의 명성을 듣고 그를 찾아가 승호 선사의 ‘갈’의 도리에 관해 물었다.
 
  이에 선사는 소동파에게 “거사는 어찌하여 스님들을 찾아다니면서 ‘유정(有情) 설법’만 듣고 도무지 ‘무정(無情) 설법’은 들으려 하지 않느냐”고 반문하면서 ‘이제 무정 설법을 들어야 한다’라는 요지의 법문을 들려주었다.
 
  “어떻게 무정물이 법문을 들려줄 수 있는가? 만약 선사 말대로 무정물이 진리를 설한다면 왜 나는 지금까지 그것을 듣지 못했을까?”
 
  소동파는 상총 선사의 이 말에 마음이 꽉 막혀 할 말을 잃고 그곳에서 하룻밤을 유숙한 뒤 하산하면서 ‘무정 설법’이라는 의정(疑情)에 몰입한 채 말을 타고 계곡을 내려오다가 어느 폭포 밑에 이르러 비로소 천지를 뒤흔들면서 흐르는 계곡 물소리를 듣는 순간 문득 ‘무정 설법’의 도리를 깨닫게 되었다. 이 시는 그때 지은 게송으로서 ‘소동파의 오도송’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상총 선사의 ‘무정 설법’ 법문은 지식을 넘어 깨달음의 본질에 대한 인식에 강렬한 충격을 주었고, 이후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유정 설법’이 아닌, 사물 자체로부터 우러나는 ‘무정 설법’을 깨닫는 전환점이 되었다.
 
  소동파는 아버지 소순, 동생 소철과 함께 ‘삼소(三蘇)’로 불릴 만큼 뛰어난 유학자 가문 출신이다. 어릴 때부터 공자·맹자식 수양과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유학(儒學) 사상을 배웠고, 과거 급제 후에는 관직에 올라 두루 요직을 거쳤다. 그러나 왕안석(王安石)과의 정치적 충돌로 인해 자주 유배되었고, 특히 1080년 무렵, 황주(黃州)로의 유배는 삶의 전환점이 되었다. 이 시기에 소동파는 자연 속에서 고독한 자기 성찰에 몰두하며 선승(禪僧)들과 교류했는데 승호 선사, 상총 선사와의 일화는 그 대표적인 예다.
 

  고도의 지혜를 추구하는 이들은 푸른 산을 대면하여 비로자나불의 법신을 보고 깊은 산 계곡의 굉음 소리를 ‘진리의 법문’을 설하는 소리로 듣는다. 세상 대부분의 지식인은 열심히 공부하여 박학다식한 대학자로서 그 다양한 지식에 안주하여 지식을 뽐내며 관직을 얻고 ‘지식 팔이’를 생계 수단으로 삼아 풍요로운 삶을 구가하지만, 생사윤회와 삶의 여러 가지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벼슬 또는 돈에 코가 꿰어 미망(迷妄)의 삶을 살다가 생을 마감하게 된다.
 
  지식 너머의 밝은 지혜를 터득하여 자신과 세상의 어둠을 밝히고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해탈의 삶을 살아야겠다는 구도(求道)의 필요성 자체를 모르고 사는 것이다.
 
  공자(孔子)께서 ‘아침에 도를 들으면 설혹 저녁에 죽는다 해도 여한이 없다(朝聞道 夕死可矣)’라는 가르침으로 도의 중요성에 대해 가르쳤건만 세상 그 누구도 도에 대해 관심도 흥미도 없고 그것이 왜 인간 생활에 중요한지도 모르고 또한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바른길을 가야 하는 이유
 
  공자는 또 《중용(中庸)》을 통해 ‘사람은 누구든지 잠시라도 도를 떠나 살 수 없다’라고 경고했는데 ‘차가 도로를 벗어나면 어떻게 되는가?’를 생각해 보면 금방 도가 우리 삶의 여정(旅程)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인간으로서 가지 말아야 할 샛길, 그릇된 길, 즉 사도(邪道)에서 벗어나 당당 대도(大道), 바른길(正道)을 가라는 성현들의 가르침을 벌로 듣지 말고 삶의 철칙으로 삼아 누구나 예외 없이 맞이하게 되는 ‘사망(死亡)’을 넘어 ‘삶의 완성’을 이루시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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