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세의 溫故知新 | 연못의 ‘그림자 달’을 건지려다가…

  • 글 : 김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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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侖世
1955년생.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연수원(現 한국고전번역원) 졸업 / (주)인산가 회장, 《인산의학》 발행인, 전주대학교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월간조선》 명예기자 / 저서 《빈 배에 달빛만 가득 싣고 돌아오네》 《자연치유에 몸을 맡겨라》 《내 안의 자연이 나를 살린다》 등
사진=게티이미지
月磨銀漢轉成圓 素面舒光照大千
  월마은한전성원 소면서광조대천
  連臂山山空捉影 孤輪本不落靑天
  연비산산공착영 고륜본불락청천

 
  초승달이 은하수에 갈고 닦고 구르고 굴러서 둥근 달 이루니
  환하게 밝아진 얼굴, 눈부신 빛을 발하여 온 세상 밝히네!
  손에 손을 잡은 원숭이들, 연못의 ‘그림자 달’ 건지려 하지만
  외로운 수레바퀴 둥근달은 본래 하늘에서 떨어진 적이 없는걸….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인 중국 송나라 때의 문장가 소동파(蘇東坡·1036~1101년)의 여동생 소소매(蘇小妹)가 지은 시로, 불교 의례서 《관음예문(觀音禮文)》에도 실려 있을 정도로 유명한 시다.
 

  양산 통도사 대웅전의 주련(柱聯)에도 쓰여 있는 이 게송(偈頌)은 오백 아라한의 전생담(前生譚)으로도 전해 온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인행(忍行) 보살 시절, 달밤에 나무 밑에서 선정(禪定)에 들었을 때다. 거룩한 수행자의 모습에 감동해 주변에 있는 새들이 꽃을 물어다 나르기도 하고, 짐승들이 먹을 것을 갖다 놓기도 했다. 그때 나무 위에 있던 원숭이들은 ‘우리는 무엇을 공양하여 저 수행자를 기쁘게 해드릴까’를 궁리하다가, 마침내 물속에 비친 아름다운 둥근달을 발견하고는 ‘그래, 저 아름다운 둥근달을 건져 올려 공양해 올리자’는 결론을 내렸다.
 
 
  달과 원숭이
 
  오백 마리의 원숭이들은 물속의 둥근달을 건지기 위해 나무 위에 매달린 한 원숭이의 손을 다른 원숭이가 잡고 죽 팔을 연이어 서로서로 손을 잡고서 연못으로 내려가 맨 끝의 원숭이가 달을 건지려고 물에다 손을 넣었다. 그러나 물결이 흔들리며 달이 없어졌다가, 잠시 후 물결이 사라지니 또다시 달이 나타났다. 원숭이는 또 손을 물에 집어넣었으나 다시 달이 없어지는 것이었다. 이렇게 수십 번을 반복하는 가운데 원숭이들은 점점 팔에 힘이 빠져, 하나둘 잡은 손을 놓더니 드디어 모두 물에 떨어져서 빠져 죽고 말았다. 하지만 ‘기어코 밝은 달을 건져 올려 부처님께 공양해 올리겠다’는 갸륵한 이 원력(願力)으로 오백 마리의 원숭이들은 훗날 사람으로 환생해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오랜 수행 끝에 오백 아라한이 되었다는 전생담이다.
 
  이 시는 부처의 삼신(三身), 즉 법신(法身)·보신(報身)·화신(化身) 중에서 화신을 가장 잘 표현한 시로 유명하다.
 
  화신의 관점에서 보면 부처님은 과거 생에 도솔천 내원궁에 머물다가 흰 코끼리를 타고 지상으로 내려와 카필라바스투국(國) 정반왕(淨飯王)의 아들로 태어난 뒤, 출가해 6년 고행(苦行)하고 성도(成道) 이후 49년의 교화를 펴다가 사라(娑羅) 숲에서 열반에 든 역사적 실존 인물 고타마 싯다르타를 말한다. 법신 부처님은 밤하늘의 둥근달이 천 개의 강에 천 개의 ‘그림자 달’로 나타나듯이 중생들이 필요로 하는 곳에는 언제 어디에서나 알맞은 모습으로 화현해 교화했는데 그것을 천백억화신(千百億化身)이라고 한다. 《금강경(金剛經)》을 주해(註解)한 다섯 대가 중 한 분인 종경(宗鏡) 선사는 경의 제5장 〈여리실견분(如理實見分)〉을 풀이하면서 화신에 대해 명쾌하게 게송으로 설명을 덧붙였다.
 
  보신·화신은 참이 아니라 인연에 의한 것이요
  법신(法身)은 청정하고 광대무변하나니
  천 강의 물에 천 개의 달이요
  만 리에 구름 없으니 만 리가 푸른 하늘일세.
  報化非眞了妄緣 法身淸淨廣無邊
  千江有水千江月 萬里無雲萬里天

 
  이렇듯 우리 눈에 보이는 존재와 현상은 인연에 의해 생겨나고 인연이 다하면 문득 사라지는 것으로, 영원하지도 않고 참되지도 않은 법이다.
 
  소소매의 시에서는 삼천대천세계에 비쳐 온 누리를 밝히는 둥근달을 부처님의 법신에 비유하고 연못 속에 비친 ‘그림자 달’을 화신에 비유하고 있다. 빛의 존재인 ‘내 안의 부처’를 만나려는 게 아니라 연못 속의 ‘그림자 달’을 건지려고 낑낑대는 원숭이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세상 사람들에게 ‘눈에 보이는 허상(虛像)·망상(妄想)을 좇지 말고 실상(實相)을 제대로 파악해 스스로 온갖 속박에서 벗어나 해탈 자재(自在)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무언(無言)의 교훈을 말해 주고 있다.
 

  탐욕에 의해 빚어지는 허상·망상이 굳어져 형성된 고정관념의 틀을 스스로 깨지 않는 한, 연못 속의 ‘그림자 달’에만 집착할 뿐 삼천대천세계를 밝히는 밤하늘의 달을 보지 못함에 따라 어둠의 세상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하리라.
 
  시를 지은 이는 부처님의 법신이 마치 밤하늘에 떠있는 둥근달과 같은 존재라고 파악하고 ‘어떻게 저리도 둥글게 만들어졌을까’라고 궁금해하다가, ‘아마도 은하수에 제 몸을 갈고 닦으며 구르고 굴러서 마침내 밝은 빛을 발하는 둥근달을 완성하여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것이리라…’라고 결론짓는다. 다시 말해 초승달이 그냥 저절로 둥글고 밝은 보름달이 되는 게 아니라 ‘은빛으로 빛나는 하늘의 강, 우주를 가로지르는 보석처럼 빛나는 은하수에 몸을 갈고 닦으며 구르고 굴러서 용맹정진한 끝에 마침내 밝은 빛을 발하는 둥근달로 거듭나게 되었을 것’이라는 은유적 이야기를 스물여덟 글자의 시어(詩語)로써 아름다운 그림으로 그려 우리에게 보여준다.
 
 
  보름달, 그림자 달, 마음 달
 
  둥근 보름달의 하얀 얼굴은 얼마나 아름답고 환히 빛나는가. 맑고 밝은 빛은 온 우주를 다 비추고 사바(娑婆)세계 모든 중생의 마음까지 속속들이 다 비춘다. 맑고 밝은 빛을 발하는 둥근달은 본래 하늘에서 떨어진 적이 없는데 우매한 중생이 하늘의 달을 보지 않고 연못 속에 비친 ‘그림자 달’을 달이라 착각해 그것을 건지려다가 기력의 고갈로 인해 비명횡사로 이어졌다는 게 소소매 시(詩) 이야기의 핵심 요지다. 통도사를 비롯해 전국 각지의 여러 사찰에서 소소매의 이 시를 법당 기둥에 주련으로 써서 걸어 두고 부처님을 찾는 사람들에게 역사적 실존 인물인 고타마 싯다르타, 즉 ‘석가모니 부처’라는 화신을 보는 데 그치지 말고 밤하늘의 한복판에서 맑고 밝은 빛으로 삼천대천세계를 비추는 ‘부처님의 법신’을 보라는 무언(無言)의 법문(法門)을 들려준다.
 
  세상 사람들이 각양각색으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어도 본래의 ‘마음 달’은 다르지 않으며, 그 다르지 않은 것이 ‘참다운 부처’요 ‘법신의 부처’임을 깨달을 때, 무명(無明)에 따른 미망(迷妄)의 삶에서 벗어나 대명천지 밝은 세상에서 극락(極樂)의 삶을 누릴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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