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세계 읽기 | ‘제국’이란 무엇인가

자유주의 美 제국, 쇠퇴하며 새로운 형태의 제국으로 탈바꿈 중

  • 글 : 임명묵 작가  
글자 크기 조정
  • 스크랩
  • 본문 음성 듣기
  • 글자 크기 조정
URL이 성공적으로 복사되었습니다.
⊙ 한국… 중국 문명, 일본식 개화, 미국 자유주의라는 제국의 유산 살아 숨 쉬고 있어
⊙ 트럼프의 미국, 푸틴의 러시아, 시진핑의 중국… 새로운 ‘제국의 시대’ 등장
⊙ 미지의 미 제국과 새로운 중화 제국 사이에서 한국의 선택은?
⊙ 제국 영역 내 ‘다양성’과 ‘차이’, 이를 관리해 내는 ‘제국적인 통치의 기술’이 있어야 제국

임명묵
1994년생.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졸업 / 現 서울대 대학원 아시아언어문명학부 재학 중. 《조선일보》 《시사저널》 칼럼니스트 / 저서 《러시아는 무엇이 되려 하는가》 《K를 생각한다》 《거대한 코끼리, 중국의 진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4월 2일 ‘상호 관세’에 대한 행정 명령에 서명, 전 세계를 패닉에 빠뜨렸다. 사진=신화/뉴시스
작년 12월부터 4월까지 한국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탄핵에 이르기까지, 폭풍과도 같은 국내 정치의 혼돈을 경험했다. 그러나 한국 바깥의 세계도 그사이에 충격의 연속을 마주해야만 했다. 진원(震源)은 그동안 안정적 세계질서의 기둥이라고 여겨졌던 나라인 미국이었고, 그렇기에 충격파는 더욱 강렬했다. 2024년 11월의 선거로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폭탄 발언을 연일 내놓았다. 미국이 덴마크령(領) 그린란드를 병합할 수 있다거나, 캐나다도 미국으로 들어오면 어떻겠느냐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그중에서도 가장 경악스러운 것 중 하나였다. 바이든 행정부 당시 전폭적 지원을 한 우크라이나에 트럼프가 제시한 ‘광물협정’도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제는 미국이 오히려 우크라이나의 광물 자원을 그동안 제공한 원조의 대가로 받아가겠다며 젤렌스키 정부가 받아들이기 몹시 가혹한 조건의 협정안을 내밀었다.
 
 
  1945년 이전으로의 복귀
 
  미국의 이 갑작스러운 변신은 세계가 탈냉전(脫冷戰) 시대가 시작된 1989년, 아니 제2차 세계대전 전후(戰後) 질서가 시작된 1945년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양차 세계대전이라는 끔찍한 폭력을 겪고 세계 주요 강대국들은 원칙적으로라도 주권 국가 간의 상호 평등, 국제연합(UN)이라는 국가 간 합의 기구, 무력(武力)에 의한 영토 병합의 금지를 세계의 규칙으로 삼아야 한다고 합의했다. 1945년의 정신은 그 이전, 인류 역사 대부분에서 훨씬 익숙했던 ‘제국(帝國)의 세계’와 단절한다는 선언과도 같았다.
 
  고대(古代) 이래로 문명의 역사는 막강한 힘을 휘두르며 드넓은 영토를 지배하고, 영토 너머까지 통제력을 행사하는 세력권을 둔 제국들의 쟁패사(爭霸史)나 다름없었다. 1945년은 유럽과 지중해, 극동에서 각각 제국을 건설하고자 한 독일, 이탈리아, 일본의 시도가 분쇄된 해였다.
 
  물론 이후에도 영국과 프랑스의 서유럽 제국, 미국의 태평양 제국과 소련의 유라시아 제국은 남아 있었다. 하지만 1945년의 정신으로 인해, 서유럽 제국은 1960년대까지 차차 해체할 수밖에 없었고, 미국과 소련 제국도 실질적으로는 제국이지만 형식적으로는 제국이 아닌 것처럼 보이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다.
 
  1989년의 베를린 장벽 붕괴는 사실상 마지막 남은 제국으로 보였던 소련 제국이 안팎에서 무너지고 있다는 신호탄으로 다가왔다. 탈냉전 시기 미국은 전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세계 제국’으로서, 세계 어디에서든 제국이 다시 부활하는 일을 막고자 국제질서라는 공공재(公共材)를 제공하는 ‘세계 경찰’로서 정당성을 인정받아 왔다.
 
  그런데 이러한 미국이 이제는 자신만의 제국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린란드와 캐나다는 물론이고, 파나마와 라틴아메리카에서도 자신의 힘을 가감 없이 행사하고자 하며, 대서양과 태평양의 동맹국을 주먹으로 위협하고 있다.
 
 
  새로운 ‘제국의 시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21년 7월 1일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식에서 ‘중국몽’의 실현을 역설했다. 사진=신화/뉴시스
  최근 미국의 이러한 행태는 역설적으로 미국이 그토록 막고자 했던 유라시아의 다른 제국들의 부활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러시아의 푸틴은 2014년 크림반도를 병합하고 2022년에는 전쟁을 일으켜 우크라이나 동남부 4개 주(州)를 병합하며 가장 직접적으로 제국 질서라는 야심을 드러냈다.
 
  한편 중국의 시진핑(習近平)은 일대일로(一帶一路)를 통해 인도양과 중앙아시아를 아우르는 자신만의 세력권을 건설하고자 하고 있다. 물론 중국은 이를 문명 교류의 귀환이자 상호 주권을 존중하는 중국의 외교적 전통의 일환이라고 선전한다. 하지만 자오팅양(趙汀陽)과 같은 학자가 과거 중화(中華) 천하(天下) 질서를 새로운 국제 관계의 대안(代案)으로 제시하는 것만 보더라도, 중국의 이러한 움직임 속에는 제국의 상상력이 들어 있음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최근 정치적 위기를 다시 맞이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튀르키예도 또 다른 사례다. 에르도안은 적극적인 대외(對外) 정책을 통해 코카서스, 시리아, 이라크, 리비아에 이르는 영역에서 튀르키예의 영향력을 구축(構築)했고, 이를 발판으로 미국, 유럽, 러시아에 버금가는 지역 중심국의 위치를 공고히 하려 하고 있다. 오스만 제국의 기억과 유산의 부활이 엿보이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유라시아에서 제국의 부활이라는 도전을 성공적으로 막아온 미국마저도 제국적인 행태를 시작한 지금, 우리는 바야흐로 새로운 ‘제국의 시대’에 진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제국이란 무엇인가
 
  그런데 제국에 대한 말은 무성한데, 막상 ‘제국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제대로 된 논의는 잘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사실 이 질문에 대한 이해야말로 한국의 역사를 새롭게 인식하고, 앞으로 펼쳐질 불확실한 시대를 헤쳐나갈 지혜를 얻을 원천(源泉)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대부분 제국은 그저 무언가 ‘신민(臣民)을 공포와 강제로 지배하는 압제의 체제’로, 즉 ‘나쁜 것’으로 전제하며 논의가 끝난다. 제국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우도, ‘드넓은 지역을 두고 광범위한 지배력을 행사하는 강력한 시스템’이라는 차원에서 그칠 때가 많다. 이런 인식에는 대부분 ‘한국은 제국의 경험이 없어서 선진국에 걸맞은 세계관(世界觀)이 없다’라는 자기비하(自己卑下)가 깔려 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두 인식 모두 제국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진실을 품고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제국의 시대를 다시 마주할 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 이상(以上)일 것이다.
 
  최근 사학계(史學界)의 ‘제국사’ 연구는 제국에 대한 피상적 이미지를 넘어서는 더 정교한 인식틀을 제공하고 있다. 먼저 한국에도 《세계제국사》라는 책으로 소개된 바가 있는 제국사의 대가 프레데릭 쿠퍼의 정의를 살펴보자. 그는 제국을 다양한 민족과 신분, 정체성(正體性) 등 ‘차이’를 관리하는 정치체로서 정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제국이란 팽창주의적이거나 한때 공간을 가로질러 팽창했던 기억을 간직한 커다란 정치 단위, 새로운 사람들을 통합하면서 구별과 위계(位階)를 유지하는 정치체”였다. 따라서 어떤 정치체가 비유를 넘어서 정말 역사적 분석 대상으로서 ‘제국’으로 칭해지기 위해서는, 제국의 영역 내에 ‘다양성’과 ‘차이’가 반드시 존재해야만 하고, 그 차이를 강압적 권력과 문화적 보편성을 통해 관리해 내는 ‘제국적인 통치의 기술’이 있어야만 한다.
 
 
  제국의 통치술
 
  이런 의미에서 인류 문명사는 실로 제국의 역사였고, ‘제국의 통치술’이 진화해 온 역사였다. 단일 종족 국가, 혹은 현대의 국민 국가는 상대적으로 다양한 통치술을 개발할 필요성이 제국보다 더 적다. 종족적 유대감을 바탕으로, 아(我)와 비아(非我)의 차이를 인식하며 통치 정당성이 구성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국은 달랐다. 최초의 고대 제국인 페르시아 제국, 로마 제국, 중화 제국 등은 모두 내부의 무수한 다양성을 제국 정치에 담아 통합하기 위해 제도와 이념 양면에서 혁신을 실험해야 했다. 이 혁신은 페르시아에서는 도로망과 조로아스터교, ‘왕중왕(王中王)’ 관념이었다. 로마 제국은 제국의 병사와 물산을 이리저리 옮기는 수송 함대와 도로망을 통해 제국을 통합했고, 차등적 시민권과 법체계를 통해 다양성을 관리했다. 유목민과 정주민의 투쟁 속에서 중화 제국은 유교(儒敎)와 법가(法家) 등 문명의 이념과 행정 제도, 능력주의 관료제를 발전시켰다.
 

  이 중에서 차이를 유지하면서도 보편적인 통합을 해내는 제국의 이념적 도구, 즉 ‘제국의 원리’는 제국이 이루어낸 최고(最高)의 문명사적 혁신이었다. 문명학자 피터 터친은 《초협력사회》에서 고대 국가가 제국으로 전환되면서 인류 사회가 역설적으로 더 평등해졌다고 주장했다. 단일 종족으로 구성된 고대 국가에서 군주는 신(神)의 혈통을 이어받아 통치 정당성을 확보한 신-왕(God-King)이었다. 이 신-왕 질서에서 군주와 귀족은 말 그대로 신성한 혈통이란 점에서 피지배 계층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로 숭배의 대상이 되었고, 고대 국가는 인신공양도 대수롭지 않게 행하는 극도로 불평등한 사회로 나아갔다. 그러나 고대 국가가 제국으로 팽창하면서, 단일 종족의 신앙 체계에 거부감을 표하는 이민족(異民族)들이 등장했고, 이들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전혀 다른 종류의 믿음이 필요했다. 제국의 지배를 납득할 수 있는 어떤 보편적인 도덕률이 있어야 했다. 피지배 민족들은 그 보편적인 도덕률이 두루 작용해 황권(皇權)과 귀족권(貴族權) 또한 자신들과 똑같은 기준으로 제약을 받을 때 제국의 통치에 더 잘 순응했다. 이들은 더 나아가 제국의 도덕률을 내면화(內面化)하여 제국의 정치와 행정, 무역과 문화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 이렇게 문명 세계 바깥의 민족들은 제국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문명화(文明化)’되기 시작했다.
 
  서력(西曆) 기원으로 첫 번째 천년기가 되고, 제국의 존재가 유라시아에서 일상적인 것이 되었을 때 제국의 원리는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유교와 같은 세계종교의 이름으로 퍼져나갔다. 이 종교들은 인간의 평등을 외치며 원칙적으로 제국의 황제부터 갓 정복된 민족의 노예까지 규율하는 보편 원리로 기능했고, 제국과 그 바깥 이민족까지 사로잡는 문명의 믿음이 되었다. 단일 종족 국가였던 신라의 불평등한 골품제(骨品制)에 좌절한 최치원(崔致遠)이 열린 세계 제국인 중국의 당(唐) 제국으로 나아가 관료로 입직(入職)한 것은 이 시기를 상징하는 대표적 장면이라 할 수 있다.
 
 
  몽골 제국과 그 후계자들
 
  13세기에 혜성처럼 등장해 유라시아를 휩쓴 몽골 제국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나 다름없었던 각각의 제국을 하나로 통합해 낸 ‘최초의 세계 제국’이었다. 몽골 제국의 대칸(大汗)은 마찬가지로 안정적인 제국 통치를 위해 복수의 보편 종교를 인정했고, 피지배 민족들에게 다양한 얼굴을 보여주며 드넓은 다양성을 하나의 틀로 묶어내고자 했다. 칸은 피지배 민족의 유력자들에게 상당한 자치권(自治權)을 부여해 주고, 그들과 인적(人的) 관계로 묶인 인재를 가신(家臣)으로 삼음으로써 자발적인 지지를 얻어냈다. 물론 때에 따라서는 무자비한 폭력의 사용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몽골 제국은 1세기도 채우지 못하고 무너지며 이 실험은 단명(短命)했다.
 
  하지만 이후 몽골이 로마, 페르시아, 이슬람, 중화 제국의 통치술을 흡수하여 자신만의 제국의 원리를 만들었듯, 몽골 제국의 폐허에서 ‘몽골 후계 제국’들이 일어났는데 이 제국들은 몽골의 방법론을 차용(借用), 실패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 훨씬 더 견고한 제국을 건설했다. 만주의 청(淸) 제국, 아나톨리아의 오스만 제국, 페르시아의 사파비 제국, 러시아의 모스크바 공국(公國) 등은 정주민과 유목민, 기독교, 이슬람, 유교 등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신민을 보편적인 정당성을 지닌 군주의 카리스마로 통합했고, 역시 광범위한 자치권을 통해 다원성(多元性)에 따른 통치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고자 했다. 일례로 오스만 제국의 술탄은 기독교인에게는 ‘로마인의 황제’이자 ‘정교회(正敎會)의 보호자’였고, 유목민에게는 ‘칸’이었으며, 무슬림에게는 ‘칼리프’였다. 청 제국의 지배자인 만주인들도 훨씬 수가 많은 한족(漢族)을 지배하기 위해 유교적 이상(理想) 군주의 이미지를 연출했고, 몽골과 티베트에서는 청 황제가 불교의 ‘전륜성왕(轉輪聖王)’임을 강조하며 통치의 여러 얼굴을 능수능란하게 노출했다. 이 몽골 후계 제국들은 튀르키예, 이란, 러시아, 인도, 중국 등 오늘날 유라시아에서 제국적 질서를 구축하고자 하는 강대국들의 직접적인 전신(前身)이라 할 수 있다.
 
 
  근세 해양 제국
 
‘해가 지지 않는 제국’ 영국은 근세 해양 제국의 전형이었다.
  유라시아에서 몽골 후계 제국이 흥기(興起)하는 근세(近世)에 유라시아의 서쪽 변방에서는 다른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대양(大洋) 무역을 바탕으로 부(富)를 축적하기 시작한 서유럽은 새로운 종류의 해상 제국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이 대서양과 인도양으로 뻗어나간 제국의 상업 네트워크를 통해 서유럽에서는 제국과 세계종교라는 익숙한 질서를 해체할 치명적인 무기가 발명되었다. 근대 과학, 계몽주의였다. 과학 기술의 발전과 산업혁명은 이후 농업에 의존하는 구(舊)시대 문명을 새로운 산업 문명으로 변환시켰다.
 
  문명의 발전 속도는 더욱 거침없어졌고, 인쇄매체의 보급과 징병제(徵兵制)는 제국을 통합하는 보편적인 신(神) 대신에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는 ‘민족’을 만들어냈다. 민족주의자들은 제국과 종교를 민족의 근대화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라고 인식했고, 계몽과 발전의 언어로 제국을 향해 도전했다. 하지만 이 시기는 동시에 바로 그 계몽의 언어로, 유럽인들이 자신들은 전 세계를 근대적 합리성으로 ‘문명화’해야만 한다는 사명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며 세계를 정복한 때이기도 했다. 대서양에서 탄생한 계몽주의는 제국주의의 놀라운 팽창과 제국을 향한 최초의 진지한 도전이라는 양가적(兩價的)인 힘으로써 동시에 작동했다. 이 모순은 곧 제국주의 전쟁과 세계대전이라는 강철의 폭풍을 불러왔고, 1945년 인류는 마침내 ‘제국’의 이면을 직시하게 된다. 이후 ‘계몽주의 제국’은 존립 근거를 상실하고 ‘반(反)제국’에 대한 계몽이 정당성을 얻는다.
 
 
  한반도 역사도 제국과의 관계 통해 규정
 
  실질적으로 한국의 역사도 이 고대 제국, 몽골 제국, 근대 제국과의 관계를 통해서 규정되었다.
 
  고조선이나 부여처럼 신-왕에 근거한 고대 한민족의 국가는 중화 제국과의 관계를 통해 제국의 보편 문명을 수용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삼국 시대만 해도 불교와 한자 정도에 그쳤던 그 문명적 표준은 고려가 몽골 세계 제국에 편입되며 아랍과 페르시아 문물부터 남송(南宋)의 주자학(朱子學)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수준으로 확대되었다. 몽골 제국의 해체 과정에서 등장한 조선은 자신을 ‘중화문명을 가장 잘 받아들인 이민족’으로 규정하며 중화의 천하 질서 속에서 위치를 발견했다. 오드 아르네 베스타 교수는 이 역학(力學)을 ‘제국과 의로운 민족’이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만주의 청 제국으로도 계승된 중화와 조선의 관계는 근대에 들어 근본적 단절을 맞이했다. 중화 제국 질서에서 조선보다 더 ‘오랑캐’로 간주되던 일본이 서구의 근대 제국을 모방하며 제국주의적 팽창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조선의 친청파(親淸派)들은 여전히 중화 제국 질서에 남는 것이 올바른 문명을 지키는 것이라며 저항했다. 이 거대한 저항에 부딪히며 조선의 자주적인 근대화 가능성을 회의(懷疑)하기 시작한 일부 개화파들은 ‘문명의 표준을 제공하는 제국’을 새롭게 설정했다. 완전히 같지는 않았지만 한자 문명권의 표준을 상당 부분 공유하는 인접국 일본을 동아시아 국가들이 따라야 할 제국으로 생각하게 된 이들은 친일파(親日派)가 되어 일본의 제국 질서가 조선에 수립되는 데 협조했다.
 
  일본의 조선 통치 역시 민족적 차이와 다원성을 다룬 제국의 기본적 방법론을 따라야만 했다. 일본과 조선의 민족적 위계와 차이는 총독부 관료제와 일본의 학술 문헌을 통해 재생산되었지만, 동시에 조선인을 일본 제국에 어떻게, 얼마나 통합시켜야 하는지는 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끝없는 논쟁거리가 되었다.
 
 
  일본 제국과 대한민국
 
1945년 9월 9일 조선총독부를 나와 행진하는 미군. 근대 일본 제국의 유산 위에 미국이라는 자유주의의 제국의 영향을 받으며 대한민국이 세워졌다. 사진=조선DB
  조선의 민족주의가 3·1 운동으로 폭발하며 일본의 통치 비용이 높아지고, 일본이 대외 전쟁에 나서며 조선의 인적·물적 자원을 동원할 필요성이 커지자 일본 제국의 원리도 변화할 수밖에 없었다. 만주사변을 기점으로 일본은 일방적으로 일본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일본주의(日本主義)’보다는 일본이 아시아 제(諸)민족을 서구의 침략으로부터 보호하고 문명적 전통에 근거한 근대화를 이끈다는 ‘아시아주의’를 더 내세우기 시작했다. 친일 행위를 주저하던 많은 조선의 개화파 지식인조차 이 아시아주의에 혹하여 일본 제국을 지지하게 되었을 정도로 제국의 원리의 힘은 강력했다. 조선 출신으로 일본군 장군까지 된 홍사익(洪思翊)부터 만주군관학교를 졸업한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 그리고 ‘아시아대학’으로 세워질 뻔했던 만주의 건국대학까지 일본의 아시아주의는 좋든 싫든 간에 한국의 근대에 족적을 남긴 굵직한 인물들이 한 번은 거쳐야만 했던 제국의 관문이 되었다.
 
  하지만 아시아주의는 결국 일본의 침략 이념으로 아시아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일본 제국은 훨씬 더 강대한 제국인 미 제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하며 해체되었고, 미국은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이상을 근거로 조선을 독립시켰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제국 아닌 제국’인 소련과 미국이 한반도를 분점(分占)했고, 남쪽의 대한민국은 1948년 미국의 영향권 아래 자유민주공화국으로 건국되었다.
 
  따라서 건국 이후 대한민국의 역사는 전통 시대 중화 제국과 근대 일본 제국의 유산 위에서, 미국이라는 ‘자유주의 제국’의 영향을 받으며 전개되었다.
 
 
  미국, 공화–제국
 
  미국은 자유주의에 근거하여 영국과 프랑스 제국을 해체하고, 소련 제국의 팽창을 막으며 제국의 시대를 끝내겠다는 야심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 역시 ‘자유주의’라는 보편 원리를 통해 제국 내외부의 무수한 다원성과 차이를 관리하는 또 다른 제국 통치의 연장이기도 했다. 미국은 인권을 근거로 자국 정책에 대해 제약을 하기도 했지만, 박정희 정권을 압박하기도 했고, 베트남이나 이라크 등지에서는 무자비하게 철권을 휘두르며 자신의 세계 제국을 관리해 나갔다. 이에 한국의 좌파 정치는 ‘미 제국주의’를 규탄하는 운동을 전개했다.
 
  이런 면에서 트럼프의 파격적인 ‘제국 행보’는 사실 갑작스러운 미국의 ‘제국화’는 아니다. 이보다는, 마치 사회주의 소련 제국이 정교회와 신(新)유라시아주의의 현대 러시아 제국으로 탈바꿈한 것처럼, ‘제국 원리의 전환’을 거치고 있는 것에 가깝다.
 

  미국은 본래 자유주의를 원리로 삼아 대영 제국에서 독립하여 탄생한 국가다. 공화국 시민의 평등한 공동체가 미국의 건국이념이다. 하지만 미국 내부에는 인디언, 흑인 등의 이질적 다원성이 존재했고, 북미 대륙으로 팽창하며 중남미를 세력권으로 삼고 태평양의 필리핀을 식민지로 다스렸다. 미국은 공화국이라는 건국이념과 다양한 소수자(少數者)를 구별하여 통치하는 제국적 면모 두 가지를 동시에 지닌 국가였던 것이다.
 
  20세기는 미국이 자유주의를 공식적인 제국의 원리로 채택한 시기라 할 수 있다. 세계대전, 유럽 망명 지식인의 유입, 뉴딜 정책과 인권운동, 레이건의 신자유주의를 거치며 미국은 자국민과 세계인 모두에게 자유주의라는 원리를 적용하며 일종의 공화-제국이 되었다.
 
 
  트럼프의 제국주의
 
2024년 미국 대선 당시 공화당 집회에서 트럼프 지지자가 MAGA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AP/뉴시스
  이런 와중, 이 전환과 자유주의 원리가 자신들을 소외시킨다고 느낀 일반 미국인의 불만이 터져 나왔고 트럼프라는 인물로 구체화되어 2024년에 폭발했다.
 
  트럼프는 자유주의를 제국 원리로 삼는 대신에, 미-스페인 전쟁을 통해 쿠바와 필리핀을 합병했던 윌리엄 매킨리 시기, 서반구와 태평양을 자신의 제국 권역으로 삼고 다른 제국주의 열강과 세계를 분점하던 남북전쟁 종전부터 제1차 세계대전 사이의 미국 제국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소환하기 시작했다. 다만 대화 상대가 대영 제국이나 프랑스 제국이 아니라 시진핑의 중화 제국과 푸틴의 러시아 제국이 되었을 따름이다. 자유주의를 대체할 제국의 원리는 애팔래치아나 남부의 백인 중심주의와 애국주의, 가톨릭과 개신교를 포괄하는 기독교에 미국적 혁신주의를 섞은 무언가가 되고 있는 듯하다.
 
  따라서 우리가 마주하는 시대는 ‘제국의 귀환’은 아니다. 제국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해 온, 우리를 억압하면서 우리에게 기회를 준 현실이었다. 한국에는 여전히 중국 문명, 일본식 개화, 미국 자유주의라는 제국의 유산이 살아 숨 쉬고 있다. 다만 2025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대부분이 가장 익숙한 제국, 자유주의 미 제국이 쇠퇴하며 새로운 형태의 제국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중화 제국은 야심 차게 천하 질서의 복귀를 선언할 기세다. 유라시아의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려도 대부분 러시아, 튀르키예, 인도, 이란 등 제국의 부활을 도모하는 국가들이 충돌하고 협상하는 제국의 권역(圈域)이다.
 
 
  K–제국을 꿈꾸며
 
  그렇다면 한국이 나아가야 할 길은 무엇일까. 트럼프가 재편할 미지(未知)의 새로운 미 제국하에서 생존을 도모해야 할까. 그러나 이 제국 밑에서 이전과 같이 미국이 ‘베풀어주는’ 시혜적(施惠的) 관계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면 중화 질서에서 다시 자리를 찾아야 할까. 어쩌면 트럼프식 미국보다는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북한과의 관계부터 역사 문제에 중국을 믿을 수 없다는 불신(不信)까지, 도저히 국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시나리오는 아니다. 어쩌면 이제 우리는 한국사 최초로 우리 자신만의 제국의 원리를 찾아 나서야 할지도 모른다.
 
  앞서 언급했듯 제국의 정치란 곧 차이를 유지하면서도 통합을 이루어내는 정치다. 한국은 유라시아 전역과 단단히 경제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문화적인 영향력도 꽤나 행사하고 있다. 결정적으로 한국 내부에는 아시아 각지에서 온 수많은 이주민이 정착하여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을 통합해 내는, 일본의 아시아주의를 넘어서는 ‘K’를 제국의 원리로 발전시킨다면, 변화하는 미국과 중국의 관계 속에서 어쩌면 ‘제국이면서도 제국이 아닌’ 새로운 복합(複合) 국가를 꿈꿔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기 위해서라도 지금의 정치적 환난(患難)과는 다소 거리를 두는 것일지라도, 세계를 만들어왔으며 지금도 만들고 있는 제국의 역사와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제국의 흔적’을 추적하는 작업을 앞으로 계속할 필요가 있다.⊙
  • 스크랩
URL이 성공적으로 복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