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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보수주의의 교훈 ⑤ 보수주의와 음모론

음모론을 거부한 미국의 보수주의자들

글 : 조평세  1776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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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드워터·버클리·커크 등, 음모론 펴는 존 버치 협회의 로버트 웰치 배격
⊙ 음모론, 수세에 몰려 위기감 가지는 보수에 자신들만의 공동체적 소속감 제공
⊙ 음모론 의존하기 시작하면 냉소·패배주의에 사로잡혀 현실로부터 괴리
⊙ 정치적으로 보수주의는 헌정공화국, 대한민국의 건국정신과 정체성을 지키는 것

조평세
1983년생. 런던대 킹스칼리지(KCL) 종교학 학사, 전쟁학 석사, 고려대 북한학 박사 졸업 / 現 1776연구소 대표, 《월드뷰》 부편집장, 빌드업코리아 이사 / 역서 《레이건 일레븐》 《모든 사회의 기초는 보수다》 《웨인 그루뎀의 성경과 정치》 등
레이건이 퇴임을 앞둔 1988년 1월 21일 백악관에서 만난 레이건과 윌리엄 버클리. 두 사람은 미국 보수운동의 축이었다. 사진=퍼블릭 도메인
  
미국기업연구소장 윌리엄 바루디.
1962년 1월, 미국기업연구소(AEI) 소장 윌리엄 바루디(Baroody Sr.)는 플로리다 팜비치에 있는 브레이커스 호텔에서 보수주의 지도자들을 긴급 소집했다. 바루디는 1938년에 세워졌다가 유명무실해진 미국기업협회(American Enterprise Association)를 떠맡아 ‘연구소(Institute)’로 이름을 바꾸고, 진보 성향의 저명한 싱크탱크인 브루킹스(Brookings) 연구소에 맞서는 대표적인 보수 싱크탱크로 키운 인물이다. 그는 당시 여러 기업인과 함께 애리조나 상원의원 배리 골드워터를 공화당의 대선 후보로 세우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바루디가 소집한 긴급 회동에는 골드워터, 윌리엄 버클리 주니어, 러셀 커크 등 현대 미국 보수주의를 일으킨 주역들이 모였다. 안건은 로버트 웰치(Welch)의 존 버치 협회(John Birch Society)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의 문제였다.
 
 
  음모론을 거부한 배리 골드워터
 
  성공한 제과기업가 웰치가 세운 존 버치 협회는 강력한 반공주의 단체로서 창립 4년 만에 10만 명의 회원을 둘 만큼 매우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존 버치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중국에서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살해된 미국인 선교사 이름이었다. 존 버치 협회는 미국 내 암약하고 있는 공산주의 세력을 색출하자고 주장하며 매우 열성적인 반공 캠페인을 벌였다.
 
  문제는 로버트 웰치가 너무 극단적인 음모론에 심취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가령 그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조차도 모스크바의 지령을 받는 아주 헌신적이고 의식적인 공산주의 요원이라고 주장했다. 웰치가 1958년에 작성해 은밀히 배포한 《정치인(The Politician)》이라는 책은 ‘미국 내 공산주의 요원’으로 대통령 외에 국무장관 존 포스터 덜레스, CIA 국장 알렌 덜레스, 전 국무장관 조지 마셜 등도 지목했다. 배리 골드워터는 이 책을 보자마자 자신은 이런 주장에 함께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책을 가지고 있을 수도 없다며 돌려주었고, 웰치에게 “당신이 현명하다면 가지고 있는 이 책의 모든 사본을 태워버릴 것이오”라고 말했다고 한다.
 

  웰치는 스스로 1957년 타계한 조 매카시 상원의원의 정계 공산주의자 색출 운동을 계승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단지 공개할 수 없었던 상당한 기밀 증거를 가지고 의혹을 제기했던 매카시 의원과 달리 웰치의 주장은 대부분 근거가 전혀 없는 소설에 불과했다. 보수주의 운동 초창기부터 웰치의 후원도 받으며 그와 교류했던 윌리엄 버클리는 점차 그의 극단성에 선을 그어야만 했다. 존 버치 협회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협회원들의 주장이 보수주의 전체의 주장으로 비치기 시작했던 것이다.
 
 
  버클리, 웰치의 극단적 주장 배격
 
존 버치 협회를 이끈 윌리엄 웰치.
  1961년 봄, 버클리는 자신의 잡지 《내셔널리뷰》 사설에서 존 버치 협회의 주장에 대해 “어떤 사람의 행동으로 인한 객관적 결과로부터 그의 주관적 의도를 자동적으로 유추(類推)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다소 완곡하게 웰치의 지적(知的) 오류를 지적했다. 쉽게 말해 아이젠하워가 헝가리의 자유를 위해 핵전쟁을 감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를 공산주의자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럼에도 문제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배리 골드워터가 본격적으로 대선 후보 물망에 오르자 존 버치 협회 회원들이 열성적으로 골드워터를 지지했기 때문이었다. 골드워터는 자신의 많은 후원자가 존 버치 협회 회원이고 자신의 고향 애리조나에서도 존 버치 협회의 영향력이 매우 크지만,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그들의 음모론과 극성 지지 때문에 확장성이 현저히 제한된다면서 이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매우 곤란해했다.
 
  이때 윌리엄 바루디 소장이 보수주의 리더들을 소집한 것이다. 바루디와 골드워터는 버클리와 커크 같은 주요 보수주의 리더들이 존 버치 협회에 대한 입장 정리를 해주기를 바랐다.
 
  버클리는 뉴욕 《내셔널리뷰》 본부로 돌아온 즉시 〈로버트 웰치 문제에 대하여〉라는 사설을 썼다. 존 버치 협회나 그 회원들이 아닌 로버트 웰치 개인의 극단성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버클리는 웰치가 “활발한 공산주의자와 무능한 반공주의 리버럴을 구분하지 못함”으로써 보수의 설득력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곧바로 다음 호에서는 웰치를 팜비치 모임에서 ‘또라이’라고 불렀던 러셀 커크의 같은 논조의 원고를 실었다. 골드워터 본인도 결국 “미국 내 반공주의의 명분을 지키기 위해 웰치 대표가 사임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달았다.
 
  많은 평론가들은 로버트 웰치와 존 버치 협회의 음모론과 선을 그은 윌리엄 버클리의 역할을 높이 평가한다. 《내셔널리뷰》의 독자들은 물론 편집위원회 내부에도 존 버치 협회 회원들이 있었지만, 버클리는 일시적인 피해와 비난의 화살을 감수하며 원칙 있는 소신을 따랐다. 결국 골드워터는 극단적이며 반(反)지성적인 이미지를 조금이나마 벗어버리고 공화당 경선에서 당내 리버럴인 록펠러를 꺾었다. 보수주의의 공화당 탈환이었다.
 
 
  보수, 음모론적 사고에 취약
 
배리 골드워터. 사진=퍼블릭 도메인
  골드워터는 물론 대선(大選)에서 케네디의 후광을 업은 린든 존슨을 이길 수는 없었지만, 보수주의가 존 버치 협회와 그은 선은 이내 로널드 레이건이라는 유쾌하고 대중적인 인물이 들어올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실제로 버클리는 존 버치 협회를 ‘저격’하는 글을 발행하기 직전에 당시 신인 정치인으로 부상하고 있던 레이건에게 편지를 써서 지지를 호소했다. 레이건은 ‘편집자에게 쓰는 편지’로 응답해주었다.
 
  신(神)의 존재와 선(善)과 악(惡)을 비롯한 영적(靈的) 세계를 의식함과 동시에 모든 지도층, 특히 국가를 불신(不信)하는 보수는, 그 체질상 음모론에 취약하다.
 
  음모론은 모든 것에 대한 ‘배후설’을 제공하기 때문에 단기간에 수많은 지지층을 쌓는다. 웰치는 동유럽의 배신과 중국의 공산화, 한국 전쟁의 장기화, 심지어 주요 공화당원의 죽음 뒤에도 배후에서 조종하는 ‘어떤 세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가령 ‘미스터 공화당(Mr. Republican)’이라고 불리던 로버트 태프트 상원의원을 죽인 췌장암도 태프트 의원이 앉는 의자에 공산주의자들이 라듐 튜브를 심어놓았기 때문이라고 소문을 퍼뜨렸다.
 
  또한 시류(時流)와 유행을 냉소적(冷笑的)으로 바라보며 수세(守勢)에 몰려 위기감을 가지는 보수에 음모론은 비밀스러운 자신들만의 공동체적 소속감을 제공한다. 존 버치 협회의 회원들이 모두 존 웰치의 극단적 음모론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일부 회원에게 이 조직은 실제로 반유대주의 정서와 불법적 폭력의 플랫폼이 되었다. 한때 《내셔널리뷰》에도 기고를 했던 웰치의 측근 레빌로 올리버(Revilo Oliver) 교수는 음모론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시온의정서》를 근거로 반유대주의를 주장했고, 로버트 데퓨(DePugh)라는 사람은 공산주의를 숙청하기 위해 300~400명에 달하는 민병대를 조직했다가 구속되기도 했다.
 
 
  음모론은 지적 성장 가로막아
 
휘태커 챔버스. 사진=퍼블릭 도메인
  보수주의자가 음모론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꼭 거짓이거나 반지성적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실 음모론에는 ‘이론’만이 아닌 실제 ‘음모’ 또한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섣불리 모든 의혹 제기를 음모론으로 치부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매카시의 공산주의자 색출 열풍은 여전히 근거 없는 적색(赤色) 공포로 여겨지며 ‘매카시즘’이라는 용어까지 만들어냈지만, 1995년 기밀 해제로 공개된 ‘베노나(Venona) 프로젝트’는 매카시의 많은 의혹 제기가 상당 부분 사실이었음을 증명했다. 이럼에도 보수주의자가 음모론적 사고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더 이상의 토론과 논의를 통한 지적 성장과 성숙을 불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음모론은 언제나 사실관계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합리적 의심’이라고 충분히 둘러댈 수 있는 내용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극적인 내용으로 흥미를 유발하기 때문에 빠져들기 쉽다. 하지만 음모론은 결국 ‘모든 현상에는 아는 사람만 알 수 있는 배후가 있다’는 배타적 전제와 ‘모든 것에는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의도가 있다’는 강력한 설명력을 제공하는 일종의 ‘세계관(世界觀)’이다. 이것은 서구 문명 초기부터 정통(orthodoxy)을 위협했던 영지주의(靈知主義·gnosticism)에 뿌리가 있다.
 
  막강한 세계관이나 다름없는 음모론에 의존하기 시작하면 매사에 냉소와 패배주의에 사로잡혀 현실로부터 괴리되고, 결국 보수주의의 천적인 맹목적 획일주의와 집단성만 남게 된다. 무엇보다 자유와 진리라는 보편적 가치관을 호소하는 보수의 확장에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한국의 보수 진영에서도 종종 목격되는 뼈아픈 현실이다. 보수주의의 설명력은 오직 개인의 양심과 역사적 경험, 그리고 자연법칙에 있다.
 
 
  보수주의는 ‘삶에 대한 원칙 있는 태도’
 
러셀 커크. 사진=퍼블릭 도메인
  버클리가 보수 내 반유대주의 음모론과 선을 긋고 결별했을 때 휘태커 챔버스는 이렇게 격려했다고 한다.
 
  “(보수주의자가) 원칙적 입장을 고수하는 것은 실로 선하고 강한 것이오. 그것은 경계를 정하는 것이고, 경계를 정함으로써 자유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오.”
 
  러셀 커크가 말했듯이 보수주의는 이데올로기의 부정이며, 삶에 대한 원칙 있는 태도이자 입장이다. 그렇다면 보수주의의 원칙을 정의하기 위해서는 보수주의가 아닌 것을 규정하는 것이 더 용이하다.
 
  먼저 미국의 경험을 통해 배우는 보수주의는 ‘보수적이다’는 사전적 의미와 거리가 있다. 영어로 말하자면 소문자 ‘conservatism’이 아닌 대문자 ‘Conservatism’이다. 단순히 옛것이나 기존의 것을 고수하는 것이 보수주의가 아니다. 그런 ‘보수주의’는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탈레반이고, 북한에서는 주체사상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유교(儒敎) 조선일 수 있다. 그러나 정치철학적 의미의 보수주의는 그런 것이 아니다.
 
  보수주의는 ‘예전이 좋았다’고 한탄하는 과거 회상적 낭만주의도 아니다. 유럽의 보수주의는 일부가 실제로 그렇다. 그들은 보수주의를 ‘88주의’라고 부르기도 한다. 1789년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기 이전의 왕정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이다. 보수주의는 물론 프랑스혁명에 대한 반대로 시작되었지만, 그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수구주의(守舊主義)가 아니다.
 
  그리고 보수주의는 ‘유토피아를 향해 가되 천천히 가자’고 주장하는 점진주의, 또는 ‘슬로-모션 진보’도 아니다. 보수주의자는 진보주의자가 함부로 이룰 수 있다고 믿는 유토피아를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프랑스혁명 당시 구분 지어진 좌우 스펙트럼에서 우파로 규정하는 것도 탐탁해하지 않는다.
 
  보수주의자는 오히려 진보주의자의 주제넘은 유토피아 설계 시도를 막아선다. 그러한 시도가 인류를 불행하게 할 것을 역사의 경험과 상식을 통해 잘 알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보수주의가 기꺼이 맞서 반대하는 것은 프랑스혁명으로 대표되는 인간 이성(理性)의 신봉이다. 프랑스혁명 당시에도 이것은 획일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인 면모를 드러냈고, 19세기 유물론적 마르크스주의와 그 열매인 공산주의체제로 절정을 이루었다. 현대 서구 사회에서도 이 프랑스혁명의 정신은 과학주의, PC주의, 문화막시즘 등의 형태로 모습을 드러낸다.
 
 
  3F–자유·신앙·가정
 
  그렇다면 이러한 ‘개인과 자유의 적’에 맞서 보수주의자가 보수(保守)하려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개인과 자유의 원천인 가정과 신앙이다. 정치적으로는 헌정(憲政)공화국을 보전하는 것이다. 미국 보수 평론가 조지 윌은 미국의 경우 보수주의가 단순히 미국의 건국을 보전하려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다행히 미국의 건국정신을 빼닮은 대한민국의 경우에도 대한민국의 건국정신과 정체성을 지키는 것을 보수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세계사적으로 보수주의는 인간의 불완전성과 인간 상위의 도덕 질서, 그리고 신의 섭리를 믿는 서구 자유문명 또는 유대·기독교 전통을 보전하고 지키는 것이다. 최근 미국 보수주의자들 사이에서는 이를 ‘3F’, 즉 자유(Freedom), 신앙(Faith), 가정(Family)으로 정리한다.
 

  윌리엄 버클리는 《내셔널리뷰》를 창간한 지 얼마 안 되어 다음과 같이 썼다.
 
  〈누군가 스스로를 보수주의자라고 선언할 때, 불행하게도, 그 즉시 ‘불의 혀’를 받는 것마냥 모든 것을 알게 되지 않는다. 일련의 기본 전제를 받아들이는 것은 아주 작은 시작일 뿐이다. 이후 우리 보수주의자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일 때마다 우리의 전제를 테스트하고, 그 결과를 분석하며 숙고하는 것을 쉬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매번 우리가 가진 입장의 강점과 약점, 일관성과 모순, 영광과 취약점을 증거에 비추어 면밀히 따져보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생존과 성장을 위해 맹목적 헌신이 아닌 분별 있는 헌신을 요구하는 이 세상에서 오래 살아남을 수 없다.〉
 
  올해 11월 미국 대선이 다가오면서, 리버럴 좌익과 보수 간의 갈등은 물론이고 미국 보수 진영의 주도권을 놓고 오랫동안 힘을 겨루던 엘리트주의와 포퓰리즘의 충돌도 더욱 고조될 전망이다. 또한 이를 바라보는 한국 보수 내에서도 뜨거운 논쟁이 예상된다. 이럴 때일수록 보수가 빠지기 쉬운 함정을 경계하면서, 동시에 우리의 적들로부터 지키려는 보수의 가치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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