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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에 물들다 〈10〉 예술이 참혹한 비극을 노래하는 까닭은?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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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발밑이 폭삭 무너지는 것처럼 우연이라기엔 억울하고 운명이라기엔 서글픈(윤고은)
⊙ “내가 괴물을… 괴물을 낳았어!”(최은미)
⊙ 사기꾼들도 미친 연놈이었고 평생 모은 재산을 기부한 사람도 미친 연놈이었다(윤성희)
⊙ ‘인간은 고통을 통해 지혜를 얻는다’, 파테이 마토스(Pathei Mathos)
⊙ 100년 전 비극의 참상, 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의 포스터. 인간은 왜 비극적인 작품에 빠져드는 것일까. 사진=조선DB
  
소설 《밤의 여행자들》
윤고은의 장편소설 《밤의 여행자들》(2013, 민음사) 속 ‘고요나’는 재난으로 폐허가 된 지역을 관광하는 여행사(상호가 ‘정글’이다)의 10년 차 수석 프로그래머다.
 
  사실, 요나나 평범한 직장인들은 고작 가로 세로 120cm 안팎의 좁은 세상(책상) 하나를 지키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소심한 이들이다. 늘 꿈꾸지만 월드 와이드 웹의 창문 너머로 훌쩍 떠날 수 없다.
 
  여행사의 작은 자리를 지키기 위해 요나가 감수해야 하는 굴욕은 요나가 실제 재해 현장에서 겪는 고통보다 더 사실적이다. 요나에게 회사나 서울은 생존해야만 하는 재해 현장일지 모른다.
 
  요나는 직장 상사인 김에게 성추행을 당한다. 추행은 일종의 경고장이다. 김은 자리가 위태로운 사람만 골라 성추행을 한다. 결국 김의 성추행은 요나가 회사에서 쓸모없어졌다는 것을 상징한다.
 
  〈메일과 전화가 몇 차례 더 요나를 찾았지만, 요나는 침묵했다. 자신이 성추행당한 사실을 기정사실화하고 싶지 않았다. 떳떳한 피해자가 되어 로비에 서서 김을 공격하고 싶지도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성추행당한 무리, 즉 퇴물이나 패배자, 떨거지들로 규정되고 싶지 않았다. 요나가 함께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자, 사람들은 알겠다며 돌아갔다. 얼마 후 요나는 출근길 로비에서 현수막을 들고 서 있는 사람들과 마주쳤다. 그들은 얼굴을 가리고 있지 않았지만, 요나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가렸다. 며칠 뒤 시위하던 사람들이 모두 징계를 받았다. 그날 요나는 한 짝 남은 신발을 마저 버렸다.
 
  (중략)
 
  세상에는 하인리히 법칙을 믿는 사람들도 있다. 하나의 재난이 일어나기 전에는 작고 작은 수백 가지 징조가 미리 보인다는 것. 그러나 그것은 재난의 발생에 주목한 것일 뿐, 재난을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런 규칙이 있을 리 없다. 재난은 그저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다. 어느 날 발밑이 갑자기 폭삭 무너지는 것처럼 우연이라기엔 억울하고 운명이라기엔 서글픈, 그런 일. 그런데 그런 일을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을까.〉

 
  퇴출 위협을 느낀 요나는 퇴출 여행 후보지인 ‘무이’(사막의 싱크홀)로 떠난다. 그러나 그곳에서 가방, 여권, 지갑을 모두 잃어버리고 진짜 이방인이 되고 만다. 낙오되거나 한국에 돌아가지 못한다 해도 걱정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전임자가 사라지면 후임자가 나타날 것이고, 전임자가 쓰던 책상 서랍 속 물건들도 정리될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전임자가 있었는지조차 기억할 수 없게 되리라. 우연히 요나를 찾는 전화가 걸려오면 “그런 사람 없다”고 심드렁하게 답할지 모른다. 저 거대한 회사는 내가 없어도 아무 일 없이 돌아간다는 사실이 비극적이다.
 
  〈사람들은 시나리오 속의 한국인 여자에 주목했다. 이름은 고요나. 타지의 재난에 휩쓸려 죽은 여행사 직원. 한국인 여자의 소지품 몇 가지가 무너진 리조트 안에서 발견되면서 시나리오에 대한 관심은 더 커졌다. 요나로 추정되는 시신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지만, 몇몇 사람들은 그 시나리오를 입수해서 다른 인물들을 찾아보기도 했다.
 
  정글에 고요나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대부분 언론사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후임자는 얼굴도 가물가물한 전임자를 떠올리기에 바빴지만, 어떻게 대답해야 정답에 가까운 것인지는 가늠하기 힘들었다. 아무래도 그들이 원하는 것은 사적인 걸 거라고, 사람들이 말했다. 그러나 후임자가 아는 사적인 요나의 모습은 없었다.〉

 
 
  가장 슬프고 가장 잔인한 이야기들의 원형
 
소설 《목련정전》
  최은미의 소설집 《목련정전》(2015, 문학과지성사)에 담긴 단편들은 모두 우리 주변의 지옥(地獄)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소설 〈목련정전〉 〈라라네〉 〈나리 이야기〉 〈근린〉 〈한밤〉 등이 그렇다. 작품 속에 아이들의 죽음이나 유기, 실종이 등장한다. 그리고 〈백 일 동안〉 〈겨울 고원〉 〈어느 작은〉에서도 지옥 속에서 영영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참혹한 마법의 세계를 그린다. 종교에서 말하는 천국과 반대되는 지옥 불이 아니라 가장 슬프고 가장 잔인한 이야기들의 원형(原型)인 비극적 현실을 말한다.
 
  〈초인종이 울렸다. 현관문을 열자 커다란 택배 상자가 밀고 들어왔다. 나는 이때껏 이 택배 상자만을 기다려온 것 같았다. 상자를 욕실까지 끌고 간 뒤 욕조의 마개를 닫았다. 상자에 빽빽하게 담긴 2리터짜리 유한락스를 한 통씩 꺼냈다. 그리고 욕조에 붓기 시작했다. 반신욕 깊이가 될 때까지 계속 부었다. 락스 원액에 내 하반신을 그대로 담글 생각이었다. 내 몸을 먹던 놈들이 욕조 속에서 요동치는 것을 똑똑히 보고 말 것이다.〉
 
  - 최은미의 〈창 너머 겨울〉 중에서
 
 
  〈“그 사람 죽고 배를 갈랐을 때 내가 직접 봤다. 애가 화상 입은 살덩어리처럼 새빨갛게 쪼그라들어 있었어. 팔다리 발가락은 알아보겠는데 얼굴부터 내장까지는 녹아 있더구나, 화장은 따로따로 했다. 애 뼛가루는 지금도 시꺼매. 자꾸 꿈에 나타난다. 집사람이 울면서 애를 찾는데… 애 탯줄이 실타래처럼 풀어지면서 굴러가서 찾을 수가 없어.”〉
 
  - 최은미의 〈목련정전〉 중에서
 
 
  〈아기가 갑자기 눈을 떴다. 나는 나도 모르게 흠칫했다. 아기와 눈이 마주친 것은 잠깐이었다. 그런데도 느껴졌다. 뭔가가 이상했다. 아기가 내보내는 것은 포만감에 취한 눈빛이 아니었다. 정상적인 유기체가 내뿜는 그런 눈빛이 아니었다. 본래 그 자리에 있어야 할 것이 변형되었을 때 나오는 본능적인 불편함. 나는 무언가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아기가… 이상해요.”
 
  나는 복도를 서성이는 실장을 불렀다.
 
  “신생아들은 아직 눈 초점이 안 맞습니다.”
 
  “아니, 그런 거 말고요. 아기가… 너무 답답하고 불편해 보여요. 쉬를 한 건 아닐까요? 기저귀를 갈아야겠어요.”
 
  나는 싸개를 풀려고 손을 뻗었다.
 
  “안 됩니다.”
 
  실장이 강하게 제지했다. 그때 밖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울부짖으면서 복도로 뛰쳐나왔다.
 
  “내가 괴물을… 괴물을 낳았어!”〉
 
  - 최은미의 〈한밤〉 중에서

 
  최은미의 작품들에서는 권선징악(勸善懲惡)의 서사적 관습들이 모조리 해체된다. 남성은 굶주린 수컷, 여성은 새끼를 낳는 암컷일 뿐이다. 그리고 바로 그 이유로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고 도륙하고 살해당하는 존재들이다.
 
  왜 예술, 특히나 문학은 참혹한 비극의 세계를 즐겨 노래할까. 왜 불행과 위선과 사악한 세계를 그렇게나 야멸차게 묘사하는 것일까.
 
  이 지긋지긋한 삶이 비극이라고 주장하는 최은미의 소설이 역설적이게도 절망적이거나 허망하지 않은 것은,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는 비극이 아니라, 살아내는 비극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비극은 인간 삶이 모순덩어리라는 것을 알게 하는 자기 물음이다. 이 물음이 결국 자기 파멸로 이어질지라도 어쩔 수 없다. 비극의 현실과 마주 서야 하니까. 우리가 절망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신(神)의 선(善)하심에 매달리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 26장에서 비극이 서사시보다 더 우수한 예술 양식이라 말한다. 신화의 전통적 가치관이 현실 세계와 갈등하며 모순을 드러내는 데 비극만 한 것이 없다.
 
  비극에는 인간의 나태와 증오, 위선과 야비함이 모두 담겨 있다. 카인이 아벨을 죽이고야 마는 잔인한 내면의 반영이 비극이다. 이 비극을 냉혹하게 응시하는 과정에서 인간은 자기 내면의 목소리와 만나게 된다. 실존의 내면에 응답하는 목소리가 사회·역사적 명령보다 더 강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실, 비극과 인간 삶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한 인간이 자신의 육체와 영혼이 파멸돼 지금 당장 죽는다고 해도 삶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가장 극심한 고통보다, 가장 뼈아픈 비극보다 오래가는 것이 삶이다. 삶이, 인간이 저 망할 비극보다 위대하다.[참조 문광훈의 《비극과 심미적 형성》(2018)]
 
 
  “이제 땡이에요” “자네도 땡”
 
《법구경》에 이런 글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가지지 마라. 미운 사람도 가지지 마라.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 괴롭고 미운 사람은 만나서 괴롭다. 그러므로 사랑을 지어 가지지 마라.’
  윤성희의 〈어느 밤〉은 2019년 김승옥문학상을 수상한 단편소설이다. 소설의 첫 문장은 이렇다.
 
  〈일주일 전, 나는 아파트 놀이터에서 킥보드를 훔쳤다.〉
 
  아파트 놀이터에 거북이 모양의 스티커가 붙은 분홍색 킥보드가 버려진 듯 놓여 있었다. 작품 속 화자(話者)인 ‘나’는 할머니다. 몰래 킥보드를 타던 ‘나’는 그날밤 자전거도로를 세 바퀴나 돌았다. 두 번째 돌 때는 노래를 불렀다. ‘조개껍질 묶어 그녀의 목에 걸고….’ 노래를 부르다 보니 지금 계절이 가을이 아니라 여름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달리다 넘어지고 말았다. 넘어진 그곳에서 ‘나’는 찬찬히 옛 기억을 되짚는다.
 
《2019 김승옥문학상수상작품집》
  〈눈을 감았다 떴다. 똑딱. 빛이 지구를 일곱 바퀴 돌았을 것이다. 또 눈을 감았다 떴다. 똑딱. 그건 딸이 어렸을 때 내게 알려준 거였다. 엄마, 눈 한 번 깜빡일 시간에 빛이 지구를 일곱 바퀴나 돈대. 딸은 일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눈을 감았다 뜨곤 했다. 눈 깜빡할 시간. 그 시간에 빛이 지구를 몇 바퀴나 돈다고 생각하면 자신의 고민은 하찮게 느껴진다고 했다.〉
 
  꿈속에서 어린 ‘나’는 하염없이 달렸다. 입을 벌리고 아아아 소리를 내며. 그러다 개울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만나면 달리기를 멈추고 까치발로 다리를 건넜다. 다리를 지나 또 달렸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 ‘나’는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다. 맨발. 신발이 벗겨진 줄도 모르고 달린 것이다. 왔던 길을 되돌아 가보지만 신발은 찾을 수 없다. 악몽이다.
 
  길바닥에 누워 남편을 생각했다. 남편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면 신경 써서 저녁 밥상을 차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결혼 초기 ‘나’는 남편과 지물포(紙物鋪)를 차렸지만, 인테리어 업자에게 밀려 문을 닫았다. 실업자가 된 남편은 경비 일을 시작했다. 신축공사 현장의 야간 경비였다. 갈비뼈에 금이 간 남편은 새벽 순찰을 걸렀다. 원래는 두 시간마다 한 번씩 순찰을 돌아야 했다. 가끔 가출한 십대들이 몰래 숨어 들어와 술을 마시곤 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공사 현장에서 여학생이 투신자살을 했다. 새벽에 그곳에서 또래 남학생들에게 끔찍한 일을 당했다. 조사 결과 남편이 순찰을 하지 않았으면서도 가짜로 업무 일지를 작성한 것이 밝혀졌다.
 
  〈남편은 억울하다고 했다. 제대로 순찰을 돌았어도 발견할 수 없는 장소였다고. 순찰을 돌아도 옥상까지는 올라가지 않는다고 경찰 조사를 받을 때 남편은 그 말을 하고 또 했다.
 
  남편은 해고되었다. 그 일이 있은 후 남편은 어딘가 조금 변했다. 하루종일 뉴스를 보았고 그때마다 미친놈 미친년이라고 욕을 했다. 사기꾼들도 미친 연놈이었고 평생 모은 재산을 기부한 사람도 미친 연놈이었다.〉

 
  ‘나’는 남편 몰래 여학생의 유골이 안치된 납골당에 찾아가 대신 사과를 했다. 억울하다니…. 남편의 말이 잘 이해 가지 않았다.
 
  문득 이 생각도 났다. 어머니는 ‘나’를 혼자 낳았다. 아버지는 건설 현장을 찾아 지방을 돌아다녔는데, ‘내’가 태어날 때는 댐 공사 현장에서 인부로 있었다. 아버지는 그 일만 끝내면 그동안 모은 돈으로 함바집을 차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돌더미에 왼쪽 다리가 깔리는 바람에 불구가 되었다. 얼마나 좋은 사람이었는데. 술에 취한 아빠를 피해 주인집 광에 숨어 있으면 엄마는 나를 품에 안고 그렇게 말하곤 했다. 전쟁통에 고아가 되어 식모살이를 했던 엄마에게 아버지는 이런 약속을 했다. 나중에 식모를 부리게 해주겠다고. 아이 돌보는 식모, 밥하는 식모, 빨래하는 식모, 다 얻어주겠다고. 아버지는 노래를 잘 불렀다. 목소리가 애잔해서 즐거운 노래도 슬프게 들렸다. 그걸 동생이 닮았다. 어렸을 적에 동생은 마을잔치에서 노래를 불러 커다란 고무다라이를 타오기도 했다. 겨울이면 거기에 뜨거운 물을 받아 목욕을 했다. 동생이 먼저 씻고 그리고 내가 씻고 마지막에 엄마가 씻었다. 목욕을 마치고 나면 우리 셋은 늘 군고구마를 먹었다. 목욕하는 동안 알맞게 구워진 고구마를.〉
 
  바닥에 넘어진 ‘나’를 발견한 것은 독서실에서 집으로 가던 청년이었다. 청년은 점퍼를 벗어 체온이 싸늘히 식은 ‘나’를 덮어주었다. 원래 이 청년은 독서실에서 밤을 새울 예정이었는데 빗소리가 나고, 그 소리를 가만히 듣다 보니 헤어진 여자친구 생각이 났단다. 그래서 집으로 가던 길이었다.
 
  이 청년도 상처가 많다. 어린 시절, 피아노 학원에 다니던 여동생이 교통사고로 죽은 것이다. 그 후로 이 청년의 삶이 달라졌다. 성공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사람들에게 독서실에서 고시 공부를 한다고 했지만 사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청년에게) 그래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가만히 있는 것도 힘든 거라고. ‘나’는 딸과의 기억을 떠올렸다.
 
  〈딸이 초등학생일 때였다. 일을 마치고 집에 가보니 모서리에 쪼그리고 앉아서 울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아무도 땡을 해주지 않았다는 거였다. 얼음땡 놀이를 하는데 아무도 땡을 해주지 않았다고 그래서 혼자 얼음이 되었다고. 그 후로 나는 딸과 얼음땡 놀이를 자주 했다. 아침에 딸을 깨울 때도 그랬다. 딸이 얼음이라고 외치면 내가 땡 하고 말하며 딸의 이마에 꿀밤을 먹였다. 내가 사다리에서 떨어져 팔이 부러진 적이 있었거든요. 나는 청년에게 말했다. 그때 딸이 내게 말했다. 엄마, 얼음 하고 외쳐. 그래서 나는 얼음 하고 말했다.〉
 
  사이렌 소리가 들리고 구급대원들이 찾아왔다. ‘나’는 청년에게 “킥보드를 중앙놀이터 그네 옆에 둬달라”고 부탁한다. 그러자 청년이 말한다. “이제 땡이에요.” ‘나’도 청년에게 답한다. “자네도 땡.”
 
  소설 속 할머니 이야기 속에 많은 비극적 삶이 등장한다. 어디에도 피할 도리가 없는 비극에 사람들은 절망한다. 할머니와 남편과 어머니, 그리고 청년의 삶 속에 무시무시한 ‘얼음’이 버티고 있다. 그러나 비극이 커질수록 ‘땡’의 간절한 희망도 커진다는 사실을 소설을 통해 알게 된다. 비극을 알면 알수록 비극이 삶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비극 《아가멤논》의 주제는 ‘파테이 마토스’
 
《아가멤논》의 황금가면
  아아, 고통이여, 고통이여.
  흉계를 꾸미는 아테의 딸 가증스러운 페이토,
  폭력을 행사하는 그녀에게 당할 도리 없으니,
  아무리 치료를 해도 허사라네. 죄는 감춰지지 않고
  무섭게 빛나는 불빛인 양 또렷이 보일 뿐이네.
  불순한 놋쇠가 긁히고 찌그러지면
  그 색이 변하듯,
  죄지은 자도 심판을 받으면
  새까맣게 변색되는 법.
  보라, 한 소년이 나는 새를 쫓다가
  제 백성들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안겨주었네.
  그의 기도에 귀 기울이시는 신은 한 분도 안 계시니,
  신은 그런 일을 일삼는 불의한 자들을
  오히려 끌어내리신다네.
  파리스가 바로 그러한 자였으니,
  나는 아트레우스의 아들들의 집에 들어가
  남의 아내를 도둑질함으로써
  환대하는 식탁을 모욕했다네.
 
  (중략)
 
  아아, 고통이여, 고통이여.
  완전히 멸망한 도시의 고통이여!
  아아, 아버지께서 성벽 앞에서 아낌없이
  바치셨던 풀을 뜯던 양 떼의 제물이여!
  그것들도 이 비참한 운명에서
  도시를 구하지 못했구나.
  나 또한 머지않아 뜨거운 피를 땅에 뿌리리라.
 
  - 아이스킬로스의 비극 3부작 《오레스테이아》 가운데 하나인 《아가멤논》 중에서

 
  《오레스테이아》는 현존하는 유일한 비극 3부작으로 B.C 458년 비극경연대회에서 13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우승을 차지한 아이스킬로스(Aeschylus· B.C 525~456년)의 작품이다. 트로이아를 함락한 후 귀환한 남편 아가멤논을 살해하는 아내 클뤼타이메스트라, 아버지 아가멤논을 살해한 어머니를 다시 살해하는 아들 오레스테스, 그리고 어머니를 살해한 오레스테스를 응징하려는 ‘분노의 여신들’의 등장과 법정 재판이 이 3부작 비극의 골격이다.
 
  3부작 중 첫 번째 비극 《아가멤논》에서 그리스 총사령관 아가멤논이 트로이아 전쟁에서 승리한 후 10년 만에 그리던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아내 클뤼타이메스트라와 그녀의 정부(情夫) 아이기스토스가 아가멤논을 죽여버린다. 아가멤논은 왜 무참히 살해되어야만 했을까.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이스킬로스가 비극 3부작을 통해 풀어내고 싶은 이야기는 인간에게 왜 고통과 불행이 갑자기 닥치는 것일까 하는 자기 물음이다.
 

  아내는 남편이 10년 전 1000척의 그리스 함대를 이끌고 트로이아로 떠날 때 폭풍을 달래기 위해 둘 사이에서 태어난 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친 것을 용서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반면 그녀의 정부는 아가멤논의 아버지 아트레우스가 자기 아버지를 추방하고 형들을 살해한 데 대한 정당한 복수라고 주장한다. 그들의 주장이 아가멤논의 비극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
 
  아이스킬로스가 《아가멤논》을 통해 말하고 싶은 주제는 ‘인간은 고통을 통해 지혜를 얻는다’(파테이 마토스·Pathei Mathos)이다. 삶이 모순덩어리라는 사실을 희극을 통해서는 알기 어렵다. 비극을 통해야 알 수 있다. 비극은 피해야 하고, 피할 수 있다면 좋은 것이나 운명을 피하기 어렵다. 희로애락 속에 살아야 하는 존재가 인간이니까. 그러기 위해선 고통을 통해 비극을 넘어서야 한다.
 
  사람들 사이에 전해오는 옛말에 이르기를,
  인간의 행복이 클 대로 커지면 반드시
  자식을 낳고 자식 없이 죽지 않는 법이라
  그 자손들에게 끝없는 고통이
  행운으로부터 태어난다고 했다네.
  하나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네.
  불경한 짓은 제 뒤에
  그 종족을 닮은
  더 많은 자식을 낳지만,
  정의를 지키는 집에서는
  언제나 훌륭한 자식이 태어난다네.
  오래된 오만은 조만간 때가 되면
  새로운 오만을 낳고 싶어 하는 법,
  인간의 불행 속에서 꽃피는 이 젊은 오만은
  새로운 증오요, 복수하는 악령이요,
  싸움도 전쟁도 소용없는
  불경한 만용이요, 어버이를 닮은
  집안의 검은 아테라네.
  그러나 정의의 여신은 연기에 그을린 오두막에서도
  환히 빛나니, 바른 생활을 존중하기 때문이라네.
  황금이 번쩍이는 저택이라도 그 안에 더러운 손이 있으면, 여신은 눈길을 돌리며 그곳을 떠나 정결함을 향해 나아가시니, 사람들이 그릇 찬양하는 부(富)의 힘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이라네. 여신은 이렇듯 만사를 정해진 목표로 인도하시네.
 
  - 《아가멤논》 중에서. (참조 《그리스 비극 절작선》, 천병희 옮김, 2010, 도서출판 숲)

 
 
  한국 문인은 관동대지진 체험 작가와 비체험 작가로 구분
 
1923년 9월 관동대학살 당시 학살당한 조선인들의 시체. 강덕상 재일한인역사자료관 관장이 입수해 동북아역사재단 학술대회에서 공개한 사진이다.
  올해는 일본 관동(關東)대지진 100년이 되는 해다. 당시 재일(在日) 조선인 학살은 가장 무시무시하고 비극적인 지옥의 드라마다.
 
  1923년 9월 1일 아침에 간토(關東) 지방에서 진도 7.9의 대규모 지진이 일어나 일본 전역이 아수라장이 되었다. 관동대지진은 사망자 및 행불자 10만5000명, 피해자 190만 명, 이재민 340여만 명을 발생시켰다. 이 가운데 조선인 6661명이 학살당하거나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름이 밝혀진 조선인은 400여 명. 이름과 고향 주소가 기록된 이는 30여 명뿐이다.
 
  당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이 제노사이드(genocide·집단학살) 참상을 검열로 인해 쓸 수 없었다.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비극 중에서 가장 참혹한 비극이 제노사이드다.
 
다큐시집 《1923 관동대학살》
  시인 정종배 시인은 최근 다큐시집 《1923 관동대학살 - 생존자의 증언》(창조문예사)을 펴냈다. 정 시인은 “일본인에게 ‘간토진재’는 자연재해였지만 대학살 피해자인 한국인에게는 민족과 인종과 타국민의 갈등이 분출한, 공소시효가 적용되지 않는 제노사이드”라며 “희생자의 영혼은 100년이 흘러도 중음신(中陰身)으로 구천(九泉)을 떠돈다”고 했다.
 
  정 시인은 또 “항일 저항시와 항일문학의 근간은 관동대지진의 조선인 대학살”이라며 당시 참상을 목격한 문인으로 ▲시인 김소월, 이상화, 김동환, 김영랑, 박용철, 유치환, 유치상, 장정심, 고한용 ▲소설가로 이기영, 채만식, 한설야, 정우홍, 이익상, 정연규 ▲수필가로 이양하, 김소운 ▲극작가 유치진, 이서구, 조준기 ▲아동문학가 최신복 ▲평론가 김문집 ▲불문학자 손우성 ▲비교문학가 이하윤 등을 꼽았다.
 
  이와 함께 김기림, 김말봉, 김영진, 박승희, 손진태, 정지용, 진장섭, 한식, 김두용, 김희명, 최현배, 김상용 등은 당시 현지에 있었는지 확인이 필요하고 양주동, 이장희, 유엽 등은 방학 중 귀국하여 다신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했다고 한다. 정 시인은 “이후 한국 문인은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대학살 참상을 체험한 작가와 비체험 작가로 구분된다”며 “고국으로 돌아온 지식인 대부분이 민족적 참상을 일제 검열로 오감(五感)을 닫아야 했다. 반면 파스큘라와 카프 등 조선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기폭제가 되었다”고 말했다.
 
  파스큘라는 1923년에 김기진, 박영희 등 도쿄 유학파 출신의 신경향파 문인들이 창립한 문학단체다. 카프는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의 약자로 1925년 최서해, 조명희, 이기영, 한설야 등에 의해 결성된 사회주의 문학단체다. 다음은 정 시인이 쓴 다큐시 ‘참혹한 제노사이드’다.
 
  나무에 묶어두고 오가며 일본도나 죽창으로 찔렀다
  양손을 묶은 상태에서 강 속에 던져놓고는
  목을 강물 위로 내밀면 작은 배를 타고 가서
  독수리 부리 같은 쇠갈고리인 도비구치[鳶口]로 목을 찍어서
  다시 물속으로 조선인을 밀어 넣고
  대지진 때문에 활활 타고 있는 석탄불 속에
  조선인을 산 채로 집어던지거나
  오토바이 뒤에 긴 줄로 몸을 묶은 조선인을 매달고
  죽을 때까지 달렸으며
  구덩이를 파고 조선인을 생매장
  임산부의 음부에 죽창이 꽂혀 있었다는 증언과
  군인들이 만삭인 임부의 배를 갈랐다
  배 속 아이가 울자 아이마저 찔러 강에 던졌다
  너무 참혹해서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도쿄의 경우 수도라는 특성 때문에
  가장 많은 인적 물적 피해를 입은 곳으로
  군대에 의한 학살이 많았다
  조선인 희생자 6661명 중 반 이상의 참상이 일어난
  요코하마의 경우는 경찰이 앞장서
  자경단 조직을 종용했다는 증언도 많이 있다
  이처럼 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 제노사이드는
  자연재해를 이용한 타민족 학살로 세계 근현대사에 유일하다
 
  - 정종배의 ‘참혹한 제노사이드’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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