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분석

한국의 선진화와 스위스 ④

교육개혁으로 만든 선진 강국

  • 글 : 장철균 서희외교포럼 대표·전 스위스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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張哲均
⊙ 63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존스홉킨스대 국제정치학석사.
⊙ 제9회 외무고시. 주 중국 공사·외교부 공보관·주 라오스 대사·주 스위스 대사.
⊙ 現 서희외교포럼 대표.
스위스 인재의 산실인 로잔연방공대.
지난 반세기 대한민국의 역사는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두 단어로 요약될 수 있다. 나라 밖에서는 한국이 이 두 가지 목표를 가장 단기간에 성취한 나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나라 안에서도 21세기에는 한국이 선진국 대열에 합류해야 한다는 목표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이미 선진국의 문턱에 와 있다. 지난해 한국의 인구가 5천만을 넘어서면서 소득 2만 달러, 인구 5천만명의 20-50클럽에 7번째로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한국은 수출 5550억 달러로 세계 7위, 무역 규모는 1조 달러를 넘어 세계 8위의 통상대국으로 도약했다. 외환보유고는 3064억 달러로 세계 8위, 전자정부지수 0.9283으로 1위에 등재되었다. 제조업 분야에서도 선박 1위, 반도체 2위, 자동차 5위로 산업 경쟁력은 최고 수준이다. 특허건수도 미국, 독일, 일본에 이어 4위국이다. 이러한 통계로 보면 한국은 이미 선진국에 다름없다.
 
  그러나 한국경제가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는 산적해 있다. 90%를 상회하는 대외의존도를 줄이고 내수를 진작시키는 문제, 97%를 수입에 의존하는 자원을 안정적으로 도입하는 문제, 그리고 성장과 분배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경제 양극화를 극복해 나가야 하는 문제가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균형발전, 노사분규와 노동쟁의, 일자리 창출, 비정규직 등 고용불안 문제, 미래의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문제들도 풀어나가야 할 난제들이다.
 
  정치적으로는 권위주의 청산, 공정선거, 수평적 정권교체의 경험으로 제도적, 절차적 민주화는 성취했다. 그러나 아직 민주주의 가치가 정착된 것은 아니다. 이전투구의 대권정치, 정책 정당이 아닌 인치(人治), 지역주의와 줄서기 정치, 사라지지 않는 이념대립,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 간의 끊이지 않는 과거사 논쟁 등 정치적 양극화를 극복하는 문제, 국회에서의 난동과 이합집산 등 정치권의 구태를 청산하는 문제들도 있다.
 
 
  12월 대선과 한국의 선진화
 
  이러한 의미에서 2012년 12월 대선은 대한민국 65년 역사에 있어 한 획을 긋는 정치적 사건이었다. 이번 대선은 1960년대 이후 개발독재의 산업화 세력과 그 후 20여 년간 꾸준히 성장한 민주화 세력 간의 대결전이었다. 대권후보와 신구정치세력, 그리고 보수와 진보 진영의 총력전 결과는 우여곡절 끝에 52대 48 정도의 근소한 차이로 결판이 났다.
 
  두 세력은 선거 결과에 승복했지만 정치권 모두가 결과를 재음미해 보아야 하는 여운을 남겼다. 산업화 세력은 자신이 더 이상 한강의 기적을 성취하는 데 허리띠를 조였던 헌신의 대가로 기득권을 주장하기 어려워졌고, 민주화 세력은 자유와 평등을 쟁취한 대가로 기득권을 주장하기 어렵게 되었다. 또한 산업화 세력이 민주화 세력을 압도할 수도, 민주화 세력이 산업화 세력을 심판할 수도 없다는 점을 인식하게 되었다.
 
  따라서 앞으로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프레임은 선거의 승리를 위한 정치적 슬로건이 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더 이상 논쟁 대상이 될 수 없고 과거의 역사로서 평가받는 위치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번 선거 결과는 정치권과 유권자 모두 두 세력이 각기 그 시대에 있어 대한민국의 국가건설에 긍정적으로 기여했다고 평가하는 데 반대할 수 없음을 상호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대선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새 정치를 표방한 안철수 현상이다. 기존 정치권에 식상한 약 25%의 국민이 지지했다. 민주당 후보와의 단일화 과정에서 사퇴했지만 정치개혁이 필요하다는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기존의 정치권은 이제 정치 선진화를 강요받게 된 것이다.
 
  또 한 가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두 세력의 주변에서 진보의 이름으로 기생하고 있는 작은 세력들, 특히 과거 냉전시대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극좌성향의 소위 ‘주사파 종북세력’의 향배이다.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 보인다. 48%의 민주화 세력이 앞으로 집권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이들과 한배를 탈 수 없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국민 대다수도 이들의 홀로서기를 방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선후보들의 정치적, 경제적 양극화를 극복하려는 정책공약들은 한국의 정치가 선진화 목표에 한걸음 다가서고 있음을 시사해 주고 있다. 이번 대선은 이러한 의미에서 민주화가 제도적 단계에서 가치적 단계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유권자들도 대선주자들의 포퓰리즘적 공약에 쏠림현상을 보이지 않고 자신의 판단에 따라 투표하는 성숙된 성향을 보인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목표 잃은 한국 교육
 
  이제 21세기 대한민국은 지난 50여 년에 걸쳐 성취한 결실들을 토대로 산업화와 민주화의 논쟁을 정리하고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성찰하면서 선진화의 힘찬 발걸음을 내디뎌야 할 때이다.
 
  한국은 지난해 20-50클럽에 가입했는데 이는 환영할 일이지만 5천만의 인적자원이 어느 정도 선진화되어 있는지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 선진화는 궁극적으로 사람이 하는 것이고 선진화의 동력은 인적자원에 있다. 지하자원은 없고 밑천이라곤 인적자원밖에 없는 한국으로서는 더욱 그렇다. 무엇이 사람을 선진화시킬 것인가? 교육이다. 교육을 통한 5천만 인적자원의 선진화가 한국 선진화의 요체라는 것이다.
 
  ‘한 나라의 과거를 알고 싶으면 박물관을, 현재를 알고 싶으면 시장에 가보라. 그 나라의 미래를 알고 싶으면 학교에 가보라’는 말이 있다.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대학진학을 교육의 목표로 착각을 일으킬 정도이다. 통계에 의하면 우리의 고등학교 졸업률은 95%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대학 진학률도 85% 내외로 가장 높은 수준에 있다.
 
  스위스 국제경영대학원(IMD)이 발간하는 《2004년 세계 경쟁력 연감》에 따르면, 한국의 대학 이상 졸업자 수는 세계 5위이다. 그러나 기업 측에서 보는 대학교육의 유용성과 우수 엔지니어 수준은 각각 52위로 최하위이다. 교육시스템의 부실화로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를 육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방증하고 있다.
 
  한국의 청소년과 관련한 소식도 우리를 우울하게 만든다. 한국의 청소년 자살률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2009년 우리나라 5세 이상 인구 10만명당 32.5명이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14.5명을 훨씬 상회하는 것으로 압축성장의 높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자살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다. 앞만 보고 뛰어 온 ‘압축사회’의 과잉교육과 과잉경쟁이 빚어낸 비극이다.
 
  정부예산의 20%, 가계 소비지출의 11% 이상을 교육 분야에 지출한다고 하는데 교육에 대한 막대한 투자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더욱 커지고 있다. 공교육의 실종과 사교육 문제, 수만 명의 조기유학과 기러기 가족, 감당하기 어려운 대학등록금과 졸업 후 취업문제 등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모르는 실정이다. 높은 교육열과 우수한 인력으로 빈곤 탈출과 산업화의 기적을 일구어냈음에도 불구하고 산업화로 파생된 부작용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나친 대학 입시경쟁과 획일적인 교육시스템이 맞물려 고비용 저효율의 퇴행적 사회현상을 초래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유학생 중에는 한국 유학생이 가장 많다고 한다. 그런데 그 목적이 분명치 않다. 대학은 학문을 하는 상아탑인데 연구는 뒷전이고 취업 기회의 장소가 되었다. 국내외에서 수많은 대졸자를 양산하다 보니 취업이 어려워 대학 마치기 전에 휴학하고, 외국어와 기술 배우고, 인턴 하고 하면서 대학이 직업을 준비하는 예비학교로 전락한 것이다.
 
  이러한 교육의 문제들은 인적자산의 불균형과 경쟁력 약화를 불러와 선진화의 발목을 잡는 치명적 약점이 될 수 있다. 과잉교육의 질곡을 경험한 신세대 부부는 아이 둘 낳기가 겁나 한명만 낳겠다고 한다. 유럽에서 100년간 진행된 인구감소와 고령화가 한국에서는 한 세대 30년 만에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평균 출생아 수는 1.20으로 미국, 일본, 독일 등 대표적 저출산국들보다 낮은 세계 최저 수준이다. 이미 100명당 65세 이상의 노령인구가 48명으로 전 세계 평균의 2배에 가깝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의 장래에 또 하나의 큰 사회적 짐이 될 것이 분명하다.
 
 
  스위스의 산업화와 교육제도
 
  한국과 같이 자원이라곤 사람밖에 없는 스위스는 용병을 수출해서 생계를 이어나가야 했던 가난한 나라였다. 가난이 수백 년 대물림되었다. 그러나 유럽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되자 재빨리 산업화를 시작하면서 교육과 지식을 국가 경쟁력의 주요 동력으로 인식하고 교육을 통해 인적자원을 효율화해서 오늘날 최강의 국가 경쟁력을 갖춘 선진 강소국으로 발전했다.
 
  스위스는 준주권적 지방자치제에 따라 칸톤(canton·州)이 각자 교육을 담당해 전국적으로 통일된 교육시스템은 존재하지 않았다. 산업화 시대에 들어서면서 1833년 투르가우 칸톤이 교육의무제도를 처음 도입하였고, 1848년에 연방국으로 다시 태어나면서 전국적인 초등교육제도를 정비하였다. 기본 수업기간에 대한 의무교육제는 1874년 헌법 개정이 이루어지면서 비로소 정착되었다.
 
  유럽의 산업화가 절정을 이루던 이 시기에 스위스의 교육에 관해 일본의 대표단이 남긴 글이 있다. 메이지유신으로 근대국민국가를 건설한 일본이 유럽 국가들을 벤치마킹하고 있을 무렵이다. 이와쿠라 도모미를 단장으로 하는 시찰단이 미주와 유럽의 12개국을 방문했다. 1873년 마지막으로 스위스를 방문했다. 사절단은 스위스라는 작은 나라가 어떻게 열강 사이에서 독립을 지키고 산업발전을 이뤄냈는지 비밀을 찾고 싶었다. 그들이 내린 결론은 스위스의 높은 교육수준과 국민의 근면함이었다.
 
  사절단이 남긴 ‘구미회람실기’의 보고서는 스위스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영세중립국으로서 국가 경쟁력을 갖추어 나가기 위해 교육을 중시하고, 국민 개개인의 능력을 높이며, 국민은 예의범절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지식 또한 풍부하며 근면하다. 이런 측면에서 스위스는 제일가는 나라다.” 또한 다른 선진국에서 스위스의 대학으로 유학하는 학생들이 끊이지 않는 것에 매우 놀랐다고 기록하고 스위스의 교육을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극찬하고 있다.
 
  그 이후 메이지 정부는 교육 근대화를 정책의 중심에 두고 근면한 국민을 만드는 데 전력을 다하고 그 결과 근면성을 바탕으로 스위스처럼 근대공업화를 이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스위스는 오늘날의 브랜드 강국이 되기 전에 이미 교육 강국으로 그 기초를 확립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스위스의 교육에는 뛰어난 선구자들이 있었다.
 
 
  스위스 교육의 선구자들
 
스위스 교육의 선구자인 루소(왼쪽)와 페스탈로치.
  장 자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 1712~1778) 하면 떠오르는 것은 그의 소설 《에밀》(Emile)이다. 그는 에밀을 통해 교육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이성은 소년기에 와서야 발달하며, 청년기에는 연민, 자비, 친절, 은혜 등의 감정이 발달한다. 성인기에는 절제, 극기, 부부간의 애정, 의무가 강조된다’는 것이다. 루소 교육이론의 특징은 교육과정의 모든 내용이 자연 속에 있다고 보는 점이다. 그의 자연주의적 교육과정이론은 인간 본성이 자연스럽게 계발될 수 있도록 발달과정을 거스르거나 앞지르지 않고 단계적으로 조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루소에 앞서 스위스의 교육에 영향을 미친 사람은 코메니우스(1592~1670)이다. 그는 《세계도회》라는 어린이용 그림책을 개발하여 감각경험을 통해 사물을 보거나 느끼고 그다음에 언어로 배울 수 있도록 하였다. 그는 이러한 감각인상교육을 창안한 점에서 교육 분야에서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가져온 인물로 간주되고 있다.
 
  루소가 스위스 교육의 모태라면 근대 교육의 아버지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페스탈로치(Johann Heinrich Pestalozzi·1746~1827)이다. 그는 프랑스 대혁명 이후 교육 쇄신에 앞장섰으며 스위스의 산업화가 시작하는 중요한 시기에 위대한 교육자로서 스위스 국민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는 교육사상가이면서 교육실천가였다. 그는 민중에게 바른 지성의 힘을 기르게 하면 민중은 스스로의 힘으로 그들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려 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인간학교의 이상을 제안하였다. 그리고 보육원과 빈민학교를 세워 가난해서 교육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었다.
 
  그 당시는 산업화의 열기로 경제가 급속히 발전하던 시대였기 때문에 일하는 것이야말로 미덕이었고 학문은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되었으며 아이들은 가계에 보탬이 되기 위하여 임금을 받고 공장으로 일하러 나가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당시의 아이들은 하루에 13시간을 일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페스탈로치는 이런 현상을 비판하고, 스위스의 미래를 위해 개인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신체발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청소년들이 얼마 되지 않는 수입에 현혹된 부모들에 의해 학문도 배우지 못한 채, 일생을 헛되게 낭비하고 있다.’
 
스위스의 아동심리학자 피아제.
  페스탈로치는 초등학교의 창시자로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는 교육의 기회가 특권층의 아동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열려야 하며 이러한 보편적 일반교육을 사회개혁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그는 지식, 기능, 도덕의 세 가지가 균형을 이루는 인격 형성이 바로 교육이라고 주창하고 이러한 교육이론을 확립했다.
 
  페스탈로치의 뜻을 이어받은 교육자가 피아제(Jean Piaget·1896~1980)이다. 그는 아동심리학자로서 지능문제와 관련한 표준화 추리검사를 개발했다. 그는 검사에서 아동의 오답이 연령에 따라 비슷하다는 것을 알았다. 동일한 연령의 아동은 비슷하게 틀린 답을 하고 아동의 대답 유형은 연령에 따라 서로 다르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그는 나이 든 아동이 어린 아동보다 영리한 것이 아니라 이들 사고의 질이 서로 다르다는 결론을 얻었다. 피아제의 이론은 유아교육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즉 유아교육은 기존의 교사가 주도하는 주입식 지식교육에서 탈피하여 유아의 발달에 따라서 그 주체적인 활동을 중시하는 교육으로 바꿔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스위스의 교육시스템
 
  오늘날 스위스는 전국적으로 9년간의 초·중 교육을 무상 의무교육으로 하고 있다. 의무교육 이외에도 광범위한 교육의 혜택으로 문맹(문맹률 1% 이하)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스위스 국민의 4/5는 의무교육을 마치고 일반 고등학교 또는 직업훈련학교에 진학한다. 한국 대학생들이 걱정하는 취업에 대한 불안은 없다. 완전고용이 가능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교육비도 한국에 비해 매우 적게 든다. 사교육비는 생각할 필요도 없다. 한국의 교육이 고비용 저효율 시스템이라면 스위스는 저비용 고효율의 교육시스템임을 잘 알 수 있다.
 
  스위스의 교육은 1.예비교육(유치원) 2.의무교육(9년제 초·중등학교) 3.직업훈련교육(전문대학 준비) 또는 고등교육(일반대학 진학 준비) 4.대학교육(일반대와 전문대) 5.심화교육(대학원)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예비교육은 유치원으로 1826년에 처음 도입되었다고 한다. 초기에는 예비학교 관련 법규가 없었으나 오늘날에는 칸톤 법이 적용된다. 예비교육의 목적은 아이가 놀이 활동과 수업준비 활동을 하면서 부모의 부족한 교육을 지원하고 보충하여 예비학교에서 초등학교로 무사히 진학하도록 하는 데 있다. 모든 스위스의 아동은 의무학교에 입학하기 전 최소 1년 동안 예비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현재 의무학교에 입학하기 전 평균 약 99%의 아동이 예비학교에 다닌다고 한다. 예비학교의 재학기간은 1~3년으로 학교입학 연령에 좌우되는데 칸톤마다 다르다.
 
  의무교육은 초·중등학교로 입학 시기는 6~7세이고, 필수 교육연한은 9년이다. 칸톤이 자율적으로 나름의 교육프로그램을 결정하지만 학교공동체에 맡기기도 한다. 처음 6년은 교사 1명이 한 학급에 대해 전 과목을 가르친다. 이후 3년은 우수반, 보통반, 열등반의 세 학급으로 나누어 2명 이상의 교사가 가르친다. 공교육 이외에 학습능력이 떨어지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양질의 교육기회도 제공된다. 특수학급과 특수학교에서 지원받는다. 그에 반해 재능이 탁월한 어린이는 소홀히 다루어져 왔는데 1998년에 취리히에 최초로 영재를 위한 사립학교가 설립되었다. 사립학교에는 스위스 학생뿐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온 외국인 학생들이 함께 공부하고 있다.
 
  고등교육은 고등학교로 대학진학을 준비하는 김나지움과 직업훈련학교로 구분된다. 직업훈련학교는 3~4년의 직업수습 과정이 요구된다. 주당 3~4일은 회사(공장)에서 실습하고, 주당 2~3일은 학교에서 관련 이론과 지식을 공부한다. 실습을 하면 그 직장에서 적정한 월급도 받는다. 스위스에는 300여 개의 공인 직업수습 과정이 있다고 한다. 직업수습 과정을 마치면서 수습생들은 졸업시험을 치는데, 이 시험에 합격하면 스위스 어디서든 인정받는 연방자격증을 받는다. 일했던 회사나 유사한 직종의 취업은 항상 가능하다. 그래서 직업수습 과정은 수준이 높다. 수습과정을 마치고 대입자격시험에 합격하면 전문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
 
  김나지움은 대학진학준비학교로 대학교로 가는 등용문의 역할을 한다. 대입준비교육의 구조와 기간은 칸톤마다 다양하지만 전체 교육기간은 최소 12년이 되어야 한다. 대입자격증(Matura)이 있으면 일반대학교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대입자격시험을 치는 청소년들의 수는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지만 대학진학률은 20% 미만이고 스위스 인구의 10% 정도만이 대학교를 졸업한다고 한다.
 
  대학교는 각 칸톤에서 운영하는 10개의 대학교와 연방정부에서 관할하는 2개의 연방공과대학교(ETH)가 있다. 연방공과대학교는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로 강의하며 로잔(EPFL)과 취리히(ETHZ)에 있다. 대학교의 규모는 크지 않다. 대학교에 등록된 약 10만명의 학생 중 20%가 외국인이다. 대학교 입학은 최소 만 18세가 되어야 하며, 칸톤이나 연방정부가 인정하는 대입자격증 또는 이와 동등한 졸업장이 있어야 한다. 입학허가는 각 대학에서 한다. 수업료는 실비의 약 5%이며 연평균 70만~150만원으로 낮은 수준이다.
 
  기술전문대학은 직업훈련학교를 마친 후 희망에 따라 진학하는 3년 과정의 대학이다. 정부가 인가한 전문대학은 8개로 교과과정은 연방공과대학과 유사하지만 이론보다는 실험 및 현장실습을 위주로 한다. 직장생활을 병행할 수 있는 야간과정도 있다. 음악, 미술 등 예능 분야의 전문대학은 7개, 교사양성 사범대학도 고등교육기관으로 전국에 21개가 분포되어 있으며 1개의 신학 대학이 있다.
 
  스위스 교육제도가 한국과 구별되는 핵심은 국가가 9년의 의무교육으로 기본교육을 제공하고 이 과정에서 학습정도, 적성과 재능 등의 기준에 따라 학문을 계속할 학생과 취업을 선택할 학생을 구분 짓는 것이다. 그래서 고등학교 진학에 앞서 김나지움과 직업훈련학교의 진학이 확실히 구분된다는 점이다. 대학진학보다 직업선택이 월등히 많다. 직업훈련학교에 진학하면 기업체의 후원이 많아 학비가 들지 않고 졸업 후에는 취업이 보장된다. 스위스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적자원이 낭비되지 않고 적기에 적재적소에 배치될 수 있도록 교육제도가 뒷받침하는 것이 교육 강국 스위스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스위스 연방정부가 두 개의 공과대학을 설립한 이유
 
  아인슈타인을 꿈꾼다면 스위스로 가라는 말이 있다. 아인슈타인이 탈락했던 대학이 취리히연방공과대학이고 상대성원리를 완성한 곳도 이 대학이다. 스위스는 산업화 시대에 국가 경쟁력을 제고하고 시대에 부응하는 이공계의 인재양성을 위해 일찍 연방정부 지원의 공과대학을 설립했고 수많은 인재가 산학연계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오늘날 브랜드 강국 스위스의 견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대학들은 산학연계 프로그램을 구조화해 왔다. 십수 개의 연구실이 연방정부와 기업들이 출자한 유로펀드를 이용해 기술을 개발하고 제품까지 만들어낸다. 취리히공대는 100여 개의 국제특허와 250여 개의 공동 라이선스를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2003년 바다의 올림픽이라고 하는 ‘아메리칸 컵’ 요트대회에서 바다가 없는 스위스의 알링기호가 우승해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적이 있다. 2007년의 연속 우승으로 알프스의 산악국가 스위스는 단번에 세계 최고의 선박 소재 기술 국가 반열에 올라섰다. 우승의 비결은 로잔공대가 개발한 맞춤형 신소재 덕분이었다. 컴퓨터 마우스를 상업화한 로지테크도 로잔공대 출신이 창업한 회사이고 공동연구를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반도체와 신소재 연구에 집중해 왔던 로잔공대는 연방정부와 노바티스 등 유명 제약회사들의 지원으로 바이오센터를 건설해 미래의 성장동력을 개발하고 있다.
 
  연방공대는 입학하기도 어렵지만 졸업하기는 더욱 어렵다. 두 번 낙제하면 퇴교해야 한다. 조사에 의하면, 학사학위 취득자는 입학생의 50% 정도, 신입생의 75%가 낙제를 경험한다고 한다. 낙제한 스위스의 학생이 취업하려면 직업고등학교의 수습과정을 다시 밟아야 하므로 고등학교 과정에서 대학진학 여부를 신중히 결정할 수밖에 없다.
 
 
  대학의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교육개혁
 
  스위스는 1990년대 세계화 시대의 지식기반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1999년 ‘볼로냐 개혁’으로 불리는 획기적인 교육개혁을 단행했다. 우선, 칸톤마다 제각기 시행하던 학사일정, 학위 등 교육제도를 통일했다. 10개의 대학은 학사학위도 다양하고 석·박사 과정도 제각각이었다. 이것을 국제적 관행에 따른 학사, 석사, 박사 과정과 학위로 통일했다. 다양성이 존중되고 준주권적 위치에서 교육권을 시행하던 26개 칸톤이 학제를 통일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필요하면 한다. 그리고 공통의 이익이 되면 합의한다’는 스위스 정신이 작용한 결과이다.
 
  스위스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대학의 국제적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유럽 전체에 적용할 수 있는 공통된 학점제를 도입하고 객관적인 평가기준을 마련했다. ECTS(European Credite Transfer System) 시스템이다. 그리고 석사과정 이상은 영어로 강의하도록 통일하여 언어의 장벽도 개선했다. 이러한 교육개혁으로 미국으로 향하던 스위스와 유럽의 글로벌 인재들이 다시 스위스의 대학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고 한다. 현재 석사과정 이상은 외국인이 절반을 넘는다고 한다.
 
  스위스 교육의 글로벌화와 국제 경쟁력이 강화되면서 스위스의 전문대학 중 관광호텔학교가 주목을 받고 있다. 스위스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그 규모가 커지고 있는 MICE(Meeting, Incentives, Convention, Exhibition) 산업이 각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사립단체인 스위스호텔학교협회에 소속된 호텔학교만 15개 있다. 2~3년 기간의 전문대학인데 스위스의 국가 이미지와 교육 경쟁력 덕분으로 이들 학교는 엄청난 학비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학생 수가 증가하고 있다. 이들은 학업기간 중 수습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스위스의 인력난을 해소하는 데도 한몫을 하고 있다.
 
 
  스위스의 교육과 인재 양성
 
산학연계 프로그램이 발달한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는 100여 개의 국제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스위스는 알프스의 자락에 위치한 산악국가로 부존자원이 없고 자원이라곤 인적자원밖에 없어 일찍부터 국가건설과 발전 전략을 인적자원의 효율화에 뒀다. 그래서 높은 교육열을 토대로 교육제도의 효율성 제고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스위스는 1847년 연방국가를 건설하면서도 뿌리 깊은 칸톤 중심의 지방분권으로 중앙의 연방정부에는 교육부가 없고, 칸톤 정부가 교육정책과 교육제도를 자율적으로 시행해 왔다.
 
  그러나 산업화 시대의 환경변화에 따른 교육 경쟁력 제고를 위해 칸톤과 연방이 협력하여 교육제도를 선진화하고 나아가 교육 경쟁력에 있어서도 세계적 강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스위스의 교육으로 성장한 인재들은 스위스의 학문뿐 아니라 산업전사로 국가건설의 원동력이자 견인차로서 오늘날의 스위스라는 국가 브랜드를 창출하고 있는 주역들이다.
 
  스위스는 루소, 페스탈로치와 같은 세계적 교육 선구자를 배출했을 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인재들이 세계인명사전에 그 이름을 올리고 있다. 스위스의 인구는 외국인을 제외하면 7백만명도 채 안 되고, 정규대학 졸업자도 10% 미만이지만 29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인구대비로는 세계 최다 노벨상 수상국이다. 처음 노벨상을 수상한 스위스인은 1901년 적십자 운동의 효시인 앙리 듀냥이다. 그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필두로 의학, 화학, 물리학 등 다양한 분야의 노벨상이 스위스의 품으로 들어왔다.
 
  스위스는 우수한 글로벌 인재를 확보하는 노력도 남다르다. 스위스의 국적취득은 까다롭기로 유명하지만 스위스 대학에서 공부한 우수한 외국 유학생들에게는 국적을 주어 스위스에 머물도록 하는 것이다. 농업국가 스위스가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프랑스에서 탄압받고 이주하는 위그노(신교도)를 안착시켰는데 이들이 스위스의 시계 산업을 일으킨 주역들이다. 오늘날 스위스를 보면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경제인, 과학자, 모험가들이 많은데 이들 중 상당수가 외국 유학생으로 스위스에 정착한 사람들이다.
 
  스위스가 교육강국으로 성장한 과정을 정리해 보자. 우선, 스위스 교육의 배경에는 스위스인의 정신적, 교육적 모태가 된 프로테스탄트(신교)의 유산이 있다. 스위스 교육의 아버지가 루소와 페스탈로치라면 그들의 교육사상의 뿌리는 16세기 종교혁명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루터에 의해 발화된 기독교 종교혁명은 가톨릭(구교)의 탄압을 피해 스위스에서 활동한 츠빙글리와 칼뱅에 의해 완성된다. 츠빙글리는 윤리적 생활태도와 관용의 정신을, 칼뱅은 시민적이고 민주적인 생각을 심어주었고 이들의 가르침이 프로테스탄트의 정신적 기둥이 되어 스위스인의 근면성을 잉태시켰다.
 
 
  스위스 교육이 한국에 주는 시사점
 
  이들의 교리는 종교뿐 아니라 스위스 사람들의 정신적 기초가 되었고, 스위스 인성교육의 토대가 되었다. 20세기 초 자본주의가 극성하면서 태동한 공산주의의 영향과 노동조합의 성장 그리고 좌익세력의 흥기 등 국내의 정치, 경제, 사회적 문제들을 이러한 인성교육의 힘으로 극복했다. 1·2차 세계대전 와중의 혼란 속에서도 인성교육은 언제나 스위스 교육의 중심에 있었다.
 
  다음으로, 프로테스탄트의 근면성과 함께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교육의 필요성과 교육제도의 확립에 주력한 것이 스위스가 근대공업화를 이루는 원동력이 되었다. 스위스의 저널리스트 로렌즈 스툭키(Lorenz Stucki)는 그의 저서 《스위스의 지혜》에서 “스위스인은 척박한 토지로 인한 생산량의 부족을 프로테스탄트라는 기독교 사상을 통한 근면성으로 극복해 냈다”고 언급하고, “스위스의 풍요를 만들어낸 것은 고도의 교육제도에 의한 공업 기술의 발달이고, 부를 늘린 것은 저축과 검약의 정신이었다”고 결론지었다. 스위스의 산업화는 프로테스탄트의 유산인 근면함이라는 토양 위에 교육이 접목되어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스위스는 농경사회로부터 산업사회로 그리고 오늘날의 지식기반 사회로 전환하면서 각 시대에 부응하는 교육정책의 방향을 결정해 인적자원을 효율화하고 인재를 양성하여 국가 경쟁력을 강화했다. 그리고 연방과 칸톤의 협력, 국민이 참여하는 국민투표의 제도적 장치를 통해 교육혁신을 단행하여 오늘날의 선진 강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
 
 
  한국 교육개혁의 방향
 
  스위스 교육의 성공은 첫째, 교육 본연의 목적인 인간계발과 인성교육에 중심을 두면서, 둘째 국가의 성장동력으로서 인적자원의 효율성을 높이는 교육정책을 추진하고, 셋째 시대적 환경변화에 적응하는 교육개혁을 충실히 이행한 데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한국은 압축성장 과정에서 상업주의와 시장주의, 과잉교육과 과잉경쟁 그리고 정치와 이념의 갈등이 교육현장에 개입하면서 이에 따른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이 인적자원의 경쟁력을 약화시켜 굴레가 되고 있다. 스위스의 교육을 염두에 두고 한국교육의 개선 방향을 찾아보자.
 
  첫째는 초·중등학교를 9년간의 의무교육으로 전환하고, 의무교육 과정에서 인성교육이 중심이 되도록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의 초·중등 교육을 포함한 모든 교육과정에서 인성교육의 비중은 낮아질 대로 낮아져 경시되는 경향마저 보이고 있다. 학교폭력, 청소년 자살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또한 인성을 고려하지 않은 주입식 지식전달 교육방식은 교사가 학생을 ‘비어 있는 그릇’으로 파악하여 교사가 중심이 되는 일방적 교육으로 자아실현의 토대인 주체성과 비판의식을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다.
 
  둘째, 지식인들의 교육개혁 운동이 전개되어야 한다. 한국에서도 페스탈로치와 같은 대교육자가 나왔으면 좋겠다. 한국은 근대에 들어서면서 전통적 교육 가치와 서구식 근대교육을 스스로의 힘으로 접목하지 못하고 일제 점령기 일본식 제국주의 교육이 정착된 채 아직도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 한국 교육의 전통적 가치와 서양의 근대적 가치가 조화를 이루는 한국적 인성교육의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우리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오는 산고의 교육재건 운동이 요망된다.
 
  셋째, 교육에 정치논리와 이념적 갈등이 개입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한국은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 간의 갈등이 학원에까지 전파되면서 교육 본연의 사명이 희석되고 있다. 학문연구와는 관계없는 정치적 운동권이 등장하고 사회주의적 평등을 주장하면서 헌정체제를 비판하는 일부 운동권이 교육 분야에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교육의 현장에 학문적 혼란을 부추기는 실패한 이념이 침투하는 것은 한국의 선진화를 불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
 
  넷째, 교육자와 교육기관의 정치개입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교육감 선거 대신 정부 내에 석학들과 교육자, 시민대표로 구성된 민간교육위원회를 설치하여 교육정책과 교육개선방안을 협의하는 것이다. 이 위원회에서 한국의 선진화에 필요한 인력자원의 효율화 문제, 지식정보화 시대에 대비한 인력양성의 문제도 검토해 볼 수 있다.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정부의 기능이 안보, 경제, 교육의 3대 중심축으로 재구성되도록 해야 한다.
 
  다섯째, 교육제도에 건전한 경쟁체제를 도입하고 공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강요된 중·고교 평준화는 인재양성과 인력개발을 지향하는 교육의 목적에 역행하는 것이다. 교육 전체가 하향 평준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하향 평준화된 공교육의 경쟁력 상실은 사교육비 부담과 조기유학을 부추기고 있다. 초·중등 교육과정을 이수한 후 학문을 계속할 학생과 취업을 선택할 학생을 구분 짓는 스위스의 교육제도를 대안으로 신중히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직업훈련학교는 학비가 적고 졸업 후 취업이 보장된다. 희망하면 전문대학으로의 진학도 가능하다. 모두가 대학에 가서 방황하지 않아도 된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적자원이 낭비되지 않고 적기에 적재적소에 배치될 수 있어 국가 경쟁력도 강화될 수 있다.
 
  여섯째, 대학을 학문연구의 상아탑으로 복원해야 한다. 일반대학 수는 1975년 29개에서 2011년 202개 증가했다. 전문대학 수는 147개나 된다. 전체 대학생 수도 24만명에서 300만명으로 증가했다. 대학에 반드시 가야만 한다는 생각이 사회 전반에 자리 잡으면서 대학은 취업을 준비하는 직업훈련학교 수준으로 하향 평준화되고 우수한 인력자산들이 취업을 기다리며 방황하는 장소가 되었다. 이것은 국가 차원에서나 개인적으로나 바람직스럽지 못할 뿐 아니라 대학 경쟁력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에 선진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일곱째, 필요한 교육개혁은 더 늦기 전에 국민투표를 해서라도 실현시켜야 한다. 중등학교에서 직업학교와 대학의 진학을 결정하는 문제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돌아볼 때 실현하기 어려운 문제 중의 하나이다. 교육에서 체제비판 이념을 배제시키는 문제도 쉬운 일이 아니다. 정부가 직접 결정하는 국가주의 교육정책도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그래서 민간교육위원회가 국민과의 소통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고 교육개혁정책을 제시하는 사회적 협의과정이 필요하다. 교육자의 제안과 대다수 국민이 동의하는 교육정책과 교육제도는 청소년의 장래와 그들이 살아가야 할 조국의 선진화를 위해 국민투표를 실시해서라도 관철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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