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이즈 보균자 아이들 위해 다시 모기장을 사다
⊙ 마사이 부족의 상당수 남자들은 먹고살기 위해 마을을 이탈하고 있다
⊙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축구만 생각한다. 그리고 이곳에서 떠나기만을 기도한다
(빈민촌 키베라의 아이들)
文鐘星
⊙ 30세. 전남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6년간 약 80여 개국을 자전거로 여행하기로 마음먹고 2007년 5월
미국 뉴욕에서부터 자전거 세계일주를 시작. 북미와 중남미를 거쳐 현재 아프리카를 자전거로
여행 중.
⊙ 저서 : 《비전청년의 세계일주 - 자전거 타고 쿠바여행》 《라이딩 in 아메리카》
《일생에 꼭 한 번 가 봐야 할 곳, 멕시코》.
⊙ 마사이 부족의 상당수 남자들은 먹고살기 위해 마을을 이탈하고 있다
⊙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축구만 생각한다. 그리고 이곳에서 떠나기만을 기도한다
(빈민촌 키베라의 아이들)
文鐘星
⊙ 30세. 전남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6년간 약 80여 개국을 자전거로 여행하기로 마음먹고 2007년 5월
미국 뉴욕에서부터 자전거 세계일주를 시작. 북미와 중남미를 거쳐 현재 아프리카를 자전거로
여행 중.
⊙ 저서 : 《비전청년의 세계일주 - 자전거 타고 쿠바여행》 《라이딩 in 아메리카》
《일생에 꼭 한 번 가 봐야 할 곳, 멕시코》.

- 이른 아침 소들을 직접 몰고 먼 곳으로 떠나는 부족 소년. 이들에게 소는 목숨과도 같은 가장 소중한 재산이다.
한 입 먹고 나면 불구덩이 속에서 타버리는 짚처럼 순식간에 사그라지는 에너지원이 아닌 가슴에 뭉근하게 오래 남는 뭔가가 필요하다. 이것은 곡물이나 과일, 가공식품 따위로는 만족스레 채울 수가 없다. 역시 고기가 제격이다.
여행을 하든지 구호활동을 하든지 아프리카에선 언제나 한 푼이 아쉽다. 해서 좀처럼 먹는 것에 투자를 하지 않는 나도 기름진 치킨을 주문한다. 장도(長途)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위와 바람과 오르막이 예사가 아니다. 곧 주문한 음식이 나오고 나는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운다. 적당히 포만감이 일자 그제야 콜라 한 병을 시켜 짜릿한 청량감을 만끽한다. 이 콜라가 없었다면 내가 어떻게 제정신으로 아프리카 자전거 여행을 했을지…. 나에겐 단비 같은 존재다. 아니, 마약이다.
내가 남긴 음식은 아이들의 한 끼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하고 자전거 쪽으로 갔다. 속이 든든해서일까. 주인 아주머니의 후덕한 웃음이 기분을 좋게 만든다. 짐을 점검하며 떠날 채비를 하는데 아이 한 명이 내가 머물던 식탁의자에 앉는다. 그러더니 능숙한 손놀림으로 접시를 훔척거린다. 가만 보니 아까부터 음식점 밖을 서성이던 아이다. 태연한 표정으로 식당 직원들과 대화하기에 식당 주인의 아들 녀석쯤 되는 줄 알았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는데 그 녀석이 수상한 행동을 한다. 그랬다. 녀석은 배가 고팠던 것이다. 여느 아프리카 아이들과 다르지 않을 빈곤의 시련을 시리게 겪고 있었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한가 보다. 누구도 내치지 않는다. 비슷한 경험이 다른 제3세계 국가에서도 있었다. 아이들은 안다. 최소한 식사 시간만큼은 손님에게 폐를 끼치지 않아야 식당 주인들도 어느 정도 눈감아 준다는 것을. 그러기에 손님이 식사를 마칠 때까지 마냥 기다리는 것이다. 녀석들은 고기 한 점, 과일 한 조각 남기를 바라며 초조해한다. 그렇게 한 끼를 빈곤하게 나는 것이다.
녀석은 갈비도 아니건만 뼈에 달라붙은 고기 한 점까지 놓치지 않으려는 기세다. 누군가에겐 더 이상 효용가치가 없는 것이 자신에겐 소중한 양식이 되는 이 비루한 현실에 감정이 격해진다. 녀석과 눈이 마주친다. 멋쩍은 표정이나 이내 익숙하게 제 할 일을 한다. 나는 묻는다.
“콜라 한 잔 할래?”
“아뇨, 괜찮아요.”
“그럼 빵이라도?”
예상이 빗나간다. 아이가 싱긋 한 번 웃더니 도리질을 한다. 측은지심의 발로이긴 했지만 아이는 의외의 선택을 했다. 최소한의 존엄성을 지키려는 절제의 태도다. 모잠비크의 어느 오지마을에서 내내 천진난만하던 아이들이 내가 남겨둔 빵 한 조각에 갑자기 떼로 달라붙어 서로 쟁취하려고 했을 때가 있었다. 어떻게 체득한 건지 음식 앞에서는 짐짓 태평하다 그 음식의 주인이 기득권을 포기한 순간 사생결단의 태도로 달려드는 어린 영혼의 모습에 가히 충격을 금치 못했다.
나는 놀라는 한편 그런 모습에 콧등이 시큰거리고 가슴이 몹시 뻐근해진다. 동시에 심각한 회의(懷疑)가 들고 만다. 불공평한 인생의 시작에서 과연 정의란 무엇이란 말인가? 아직도 답에 근접한 깨달음을 찾고 싶다는 핑계로 나는 길을 떠돈다.
식량, 우물, 교육, 의료, 에너지 어느 것 하나 필요하지 않은 게 없는 것이 아프리카의 고된 현실이다. 한 아이의 배고픔이야 일회성으로 간단히 해결해 주겠지만 지속적인 기근 앞에 놓인 수많은 아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그렇다고 해도 할 수 있는 한 자그마한 의미를 남겨보고 싶다. 타자의 설움이 내 안에 치밀어 오르기 때문이리라. 어둡다고 불평하지 말고 촛불 하나라도 켜는 게 낫다고 공자가 말씀하지 않았나. 무엇 때문인지 여행의 무게가 점점 더 무거워진다. 젊은 혈기가 끓어오르는 느낌이다. 다만 치기어린 감정이 냉철한 이성을 앞서지 않길 바랄 뿐이다. 아이는 어느새 남은 음식을 깨끗이 비우고 자리에서 사라졌다.
킬리만자로에서 만난 수상한 환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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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돈으로 환전해 주겠다며 나에게 접근한 킬리만자로에서 포터로 일하는 티모시(왼쪽). |
은밀한 제의다. 내가 한국 사람인 걸 파악한 청년이 조심스레 접근한다. 대관절 영문을 몰라 하는 내게 그는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와 환전 의향을 묻는다. 나는 그저 킬리만자로 산자락 아래 근처에서 구호활동을 하고 있는 기아대책 소속의 오종성 대원 부부와 함께 상큼한 공기나 쐬며 커피 한 잔 하러 온 것일 뿐이다. 그러니 황당한 제의에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다. 분홍티에 면모자를 쓴 선한 눈망울을 지닌 그가 자신을 티모시(가명)라고 소개한다.
이곳은 킬리만자로 등반의 시작 마랑구 게이트(Marangu gate)다. 탄자니아의 영산(靈山)에 오르기 위해 거쳐야 하는 베이스캠프다. 이른 아침부터 다들 분주하다. 해발 5895m의 산에 5일 일정의 등반을 하기 위해서는 꼼꼼하게 준비해야 한다. 전문 가이드와 포터, 요리사를 대동하는데 유사시 이들은 등산하는 이의 안전까지도 책임진다. 호흡 곤란이나 피로 누적 등 험준한 산악에서는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킬리만자로를 오르는 등반 비용은 여행사마다 다르지만 최소 1000달러 이상이다. 주변 교통과 숙박까지 더해지면 더욱 비싸진다. 여기에 따로 준비해야 할 팁까지 고려하면 산 한 번 오르는 데 어지간한 대학생 동남아 여행경비와 맞먹는다.
하지만 대개는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좀처럼 오지 않기 때문에 무리해서라도 올라갈 생각을 가지는 것이다. 게다가 산 정상의 만년설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 여행자들의 마음이 바빠지고, 그런 심리를 이용하는 여행사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니 등반 문의가 끊임이 없다. 킬리만자로를 오르는 이들은 이 순간만큼은 실용주의자이기보다는 가치에 방점을 찍는 이상주의자가 된다.
티모시는 눈을 껌뻑거린다. 내가 환율을 묻자 반색하며 설명한다. 탄자니아 실링은 개발도상국 중 드물게 한국 통화와 비슷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현재는 탄자니아 내 달러화 강세로 실링 가치가 떨어졌다). 그는 어디서 났는지 배시시 웃으며 한 뭉치의 1만원권 지폐를 꺼내든다. 꽤 두툼하다.
“한국 등산객들이 팁으로 준 거야.”
별안간 의혹이 생긴다. 팁으로 받았다는 지폐들이 구김이 없다. 언뜻 보니 결이 한곳으로 나 있다. 표면도 깔끔하다. 게다가 한국 사람들이 굳이 1만원권 지폐를 이렇게나 많이 팁으로 줄 이유가 없다. 당장 사용할 수 있는 탄자니아 실링이나 미화 달러로 주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이곳에서는 한국 화폐가 전혀 통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설사 한국 화폐를 팁으로 준다 해도 기념으로 1000원권, 5000원권이 알맞지 않을까.
티모시는 어떻게 한국 돈을 손에 쥐게 되었을까? 검증되지 않은 풍문으로는 위조 화폐가 간혹 발견된다고 한다. 하지만 한낱 끄나풀에게 고작 100만원 정도의 한화를 위험하게 거래시키지는 않을 성싶다. 그의 말대로 정말 누군가 팁으로 줬을 수도 있다. 그것 또한 돈의 상태나 분위기로 보아 극히 낮은 확률이다.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되는 문제지만 역시 도난이나 강도의 탈취품일 수 있다. 가끔 탄자니아 교민이나 이곳에서 봉사하는 코이카(KOICA·한국국제협력단) 단원 집에 도둑이 들거나 길거리에서 강도를 당하는 사례가 왕왕 있기 때문이다.
돈의 출처를 알지 못하는 이상 건들 수도 건드려서도 안 된다. 티모시는 계속 환율을 낮추며 거래를 성사시키려 한다. 그러나 땀 흘리지 않고 얻는 부당이득은 반드시 탈나게 마련이다. 미련 없이 돌아섰다. 인사치레로 ‘다음에’라는 말을 남긴다. 그 블랙머니는 어떻게 다른 한국인들과 거래가 될까? 출처에 대한 의문이 깊어가지만 집착하지 않는 것이 나그네의 길이다. 삿된 마음 품지 말고 내 길을 선하게 가는 것에 마음을 쏟는다. 티모시는 내 등에 대고 소리친다.
“나는 여기에 계속 있을 거예요. 내일 와요. 내일이 아니면 다음 날 오세요. 꼭이요.”
다음 날 나는 오종성 단원과 함께 마랑구와 반대편에 위치한 한 마을을 찾았다.
탄자니아 여행의 제1 목표는 세렝게티 사파리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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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이즈 마을에서 만난 소녀 샤론. 이 아이 역시 에이즈로 고통을 받고 있다. |
남아공부터 이곳까지 자전거로 6개월이 걸려 왔다. 그러니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킬리만자로 등반과 세렝게티 사파리 투어에 대한 정당성도 부여할 수 있다.
투어 계획을 짜고 휴식을 취하는 동안 오종성 대원을 따라 한 마을에 들어가게 되었다. 낙후된 의료시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여느 아프리카 시골처럼 기반 시설이 전무하다시피하다. 그는 가난한 이들의 친구가 되기 위해 이 마을을 정기적으로 방문하면서 상황을 파악하고 도움을 주고 있었다. 가장 심각한 건 의료시설의 미비다.
“이 마을 아이들의 절반가량이 에이즈 보균자입니다. 워낙 가구들이 숲 안쪽 깊숙이까지 편재(遍在)해 있는 까닭에 교육도 잘 되지 않고, 예방도 언감생심이지요. 게다가 식량을 비롯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생필품조차 충분히 갖추고 있지 않아요. 그래서 돕고자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늦은 나이에 아프리카에 와 보니 적응하기가 만만찮군요. 하나하나 차근히 기반부터 다져야죠. 먼저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 소통하고 마을의 현안을 챙길 수 있는 언어문제부터 극복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아직 언어가 서툴러 매번 도움을 주러 올 때마다 한계를 느꼈거든요. 그게 어느 정도 해결되면 다음으로 마을의 문제 파악과 대책을 위한 시스템화 작업까지 할 예정이에요. 일이 산더미죠. 그래도 마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지체할 수가 없어요.”
아프리카 최고의 투어를 포기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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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사이 부족 마을에서 모기장 설치활동을 돕고 있는 한 원주민. 마사이 전통 가옥이 워낙 어둡고 습해 모기장 설치하기가 수월하지 않았다. |
몇몇 아이가 내게로 온다. 녀석들은 스와힐리어로 자기네들끼리 몇 마디 나누더니 한 녀석이 눈치 끝에 용기를 내어 내 손을 잡는다. 그러곤 뭐가 그리 좋은지 흰 이를 드러내며 요란하게 웃는다. 곧 다른 녀석들도 내 손을 잡는다. 한 손에 두 명의 아이 손이 포개진다. 한 아이는 내 손을 꽉 잡고선 제 얼굴에 비빈다. 또 어떤 아이는 내 허벅지를 와락 껴안으며 생긋거린다. 순식간에 예닐곱 아이에게 둘러싸이게 되었다. 녀석들은 아무 이유 없이 마냥 좋아하고 있다. 갑자기 심장이 뜨끈해진다.
숙소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는 자리에 누웠다.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내가 무슨 영화를 누리겠다고 자전거를 타고 이곳까지 왔던가. 그저 며칠 개인의 유희를 위해 시간과 경비를 써버린다면 그게 최선일까? 가슴은 답을 알고 있다. 나는 혼자가 아닌 모두가 행복하고 감사한 길을 가고 싶다. 다음 날 나는 오종성 대원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세렝게티 사파리 투어와 킬리만자로 등반을 포기하겠습니다. 대신 그 돈으로 마을에 모기장을 쳐주겠습니다.”
“이곳에 오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오면 꼭 경험해야 하는 투어인데 괜찮겠어요?”
결심은 확고했다. 운이 좋다면 언젠가 다시 이곳에 와 여행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지금 작게라도 돕지 않으면 그 기회를 영영 놓쳐버릴지도 모른다. 나는 즉시 모기장 공장을 찾아 매니저와 상의를 하고 말라리아 예방약이 쳐진 모기장을 구입했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리아뭉고(Lyamungo)와 은디니카(Ndinyika) 마을에 본격적으로 설치를 시작했다.
무더위에 땀을 흘리면서도 마음은 점점 시원해져 온다. 사실 이 후원금에는 지인들이 여행 경비에 보태라고 찔러준 금액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리라. 마침내 마을에 모기장 설치를 끝냈다. 아프리카에서 4번째 나라, 15번째 마을이다. 이렇게 나눔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출발 전엔 섣불리 예상할 수 없었다. 하나 작지만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그 기적의 원동력은 다름 아닌 진심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아프리카 대륙의 진미를 맛볼 수 있는 최고의 투어를 포기했지만 전혀 아쉽지 않다. 여행은 사람을 사랑하게 만드는 신묘한 힘이 있다. 나를 변화시켜 주니 감사하다. 이방인의 입장에서 그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내 허영과 가식의 껍질을 벗을 수 있는 아주 작은 계기가 되었으리라. 지금보다 조금 더 겸손한 내가 된다면 여행에서 이보다 더 크게 얻는 기쁨은 없을 것이다. 모시를 떠나려니 왠지 처음 나를 보고 와락 안았던 마을 아이들의 체온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 따뜻해진다.
마사이 부족의 현대화, 그리고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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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막에 위치한 마사이 부족 마을에서 만난 강렬한 원색 옷을 입은 아이. |
갓 스물을 넘긴 음와미니(Mwamini·가명)는 이제 평온해 보였다. 깔끔한 노란색 치마에 청재킷을 걸친 파격적인 옷차림과 머리를 하늘로 꼿꼿이 세운 헤어스타일은 신(新)여성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무엇보다 지금은 당당히 직업을 가지고 있다.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돌본단다. 그녀는 자부심을 가지며 매우 만족해했다. 또 사랑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도 자연스레 따라왔다. 사진을 찍어도 되느냐고 정중히 묻자 예의 수줍은 숙녀의 모습으로 포즈를 잡는다.
그녀는 독립했다. 이제 혼자다. 시골 소녀의 도시 정착기가 아니다. 그녀에게 가장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줘야 할 가족과 마을의 공동체로부터 탈출했다. 마사이 부족 공동체에서 쫓겨나거나 탈출한다는 것은 다시는 그 공동체로 재편입할 수 없다는 걸 뜻한다. 그러나 그녀는 후회하지 않는다.
그녀의 아버지는 어느 날 그녀에게 시집을 가라며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이웃마을 남자로부터 소를 받았다는 이유다. 남편 될 남자는 나이가 많았다. 무엇보다 음와미니의 마음속엔 이미 다른 남자가 있었다. 그러나 대개 이런 경우 딸은 묵묵히 아버지의 말을 따라야 한다. 가족과 공동체, 그리고 그것을 지켜주는 근간이 되는 소를 중요시하는 것이 마사이 부족의 삶이자 문화이기 때문이다.
소는 이들에게 목숨과도 같이 신성한 것이다. 때문에 가끔 강탈하러 오는 자들과 지키려는 자들 사이에 전투가 발발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이런 문제 때문에 아예 총기를 구입할 정도다. 그녀는 마음에도 없는 사람과 결혼한다는 사실, 평생 자신의 인생을 찾지 못할 것 같은 불안함에 괴로워했다. 그리고 외부인을 통해 탈출하기로 결심한다. 마사이 부족을 만나러 가는 길은 녹록지 않다. 자전거로는 언감생심이다. 건조한 초원이거나 메마른 사막뿐인 길을 기약 없이 가야 한다. 길이 거칠기 때문에 4륜구동이 필요하다. 동아프리카 지대에 넓게 분포되어 거주하는 유목민 마사이 부족은 이미 TV를 통해 친숙한 이들이다. 용맹하고, 원시적이며, 아프리카 특유의 야성미를 가지고 있다. 브라운관을 통해 느끼던 그 매력은 마사이 부족에 대한 동경심을 심어준다.
주류에서 밀려나는 마사이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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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옷을 착용한 마사이 부족 여인. 장신구가 많을수록 남편에게 사랑받고, 부유하단 증거다. |
그러나 최근 현대화의 물결을 타고 급격한 변화가 감지된다. 최근 들어 정부에서 마사이 부족이 살던 적지 않은 땅을 도시화 개발과 옥수수밭으로 개간시킨다는 명목으로 출입금지시켜 이들의 운신의 폭이 매우 좁아졌다. 상당수 남자들이 먹고살기 위해 도시로 나가고 있다.
언제까지 그들의 전통이 유지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현장에서 지켜본 바로는 오래지 않아 전통이 사라질 것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음와미니는 자유를 찾았고, 남자들은 서서히 현대사회에 길들기 시작한다. 여전히 마을의 강경파들은 자신들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전통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지만 언제까지 이들의 목소리가 유지될지는 모를 일이다. 최근 이들의 식량 부족 타개를 위해 구호단체에서 우물을 파고, 학교를 세워 교육에 열정을 쏟고 있다. 그런가 하면 한 한국인 자원봉사자는 주기적으로 마을을 방문해 뻥튀기 봉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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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사이 부족 공동체를 탈출해 신여성으로 새롭게 태어난 여인. |
덕분에 기가 막히게 산모를 구할 수 있었다. 전통적인 입장을 고수하는 마을 남자들은 도움을 준다 해도 외부인의 등장이 반갑지만은 않다. 여자와 아이들에게 쏟는 애정이 자신들의 역할과 권위에 대해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도 수백 수천 년을 이어 온 삶의 노하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긴박한 일에는 속수무책이다. 그들의 평균수명이 그리 높지 않은 이유다.
외부인이 출입하면서 조금씩 이들의 삶에도 변화가 생겼다. 편리를 누리고 싶지만 전통적 가치관과 충돌하는 경우가 잦다. 그래서 아직 과도기 단계다. 사실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모두가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탄자니아 정부로부터 터전을 잃고 점점 주류에서 밀려나고 있는 마사이 부족(근처 메루족과 차가족 역시 마찬가지다)의 내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미국의 인디오처럼 일정한 주거 지역 안에서 보호를 받을 수도 있고, 콩고의 피그미 족처럼 아예 존엄성 자체를 위협당할 수도 있다. 어떤 길이 그들에게 더 현명한지 모르기 때문에 나는 다만 그들이 더 행복해지는 방향으로 그들의 정체성을 지켰으면 하는 바람이다.
케냐 키베라 빈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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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엔에서 지정한 세계 3대 빈민촌 케냐 키베라. 최악의 위생과 치안에 노출되어 있다. |
키베라(Kibera)를 가기로 했다. 나는 한인교회에서 일하는 현지인 코디네이터를 소개받아 필리핀 바세코(Baseco), 브라질 리오 데 자네이루(Rio de Janeiro)와 함께 유엔이 지정한 세계 3대 빈민촌이라는 키베라로 발걸음을 옮겼다.
로컬 버스를 타고 근처에 오자마자 심한 악취가 코를 찌른다. 추정인구 80만~200만에 이르는 사람들이 쓰레기 더미나 다름없는 죽은 땅 위에서 살고 있었다. 게다가 집과 집의 작은 도랑에는 썩은 내가 진동하는 하수가 흐르고 있었다.
“경찰도 터치하지 못하는 우범지대예요. 절대 사진 찍지 말고, 가능하면 눈도 마주치지 마세요. 우리 편은 아무도 없어요. 적대감이 강한 동네라 시비 붙으면 위험해집니다.”
가이드가 내게 단단히 일러준다. 그도 긴장한 티가 역력하다. 실제 키베라는 무법지대로 통한다. 절대적 빈곤과 상대적 절망을 자양분으로 분노와 범죄를 키워내고 있다. 케냐의 메이저급 갱들은 대부분 키베라 출신이라는 게 정설로 굳어질 정도다. 이들은 지방에서 살거나 변방 인생을 살다가 이곳 정착촌에 모여 하나의 거대한 빈민군락을 이루게 되었다.
구절양장(九折羊腸) 같은 수많은 구불구불한 갈래 길과 슬레이트 지붕을 얼기설기 엮은 조악한 가옥들, 그리고 어떻게 끌어왔는지 모를 조잡한 전기선들이 복잡다단한 그들의 생활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나무 한 그루 찾아보기 힘들어 밀림이라는 현지어의 뜻이 무색할 정도다. 사정이 이러니 주소지를 파악하기란 불가능하다. 케냐 정부에서도 손을 쓸 수 없을 지경이란다. 정확히는 무관심으로 일관한단다.
아프리카 소년들에게 축구란?
키베라에 위치한 한 학교를 찾았다.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기만 하다. 나를 보더니 그 조그만 녀석들이 손잡고, 안고, 등에 매달리며 뜨거운 관심을 표한다. 아침과 점심 사이에 주어지는 티타임을 이용해 나는 학생들과 대화를 시도했다. 구석에서 친구들과 조근조근 대화하던 열여섯의 케빈(Kevin)을 찾았다. 서글서글한 눈매가 매력적인 점잖은 남학생이다. 진솔하게 다가가자 마음을 여는 녀석과 금방 대화를 풀어나갈 수 있었다. 진흙탕 같은 빈민촌에서 연꽃처럼 피어나는 그의 꿈은 무얼까?
“사실 제 꿈은 축구선수예요. 왜냐하면 난 축구에서 내 재능을 발견했거든요. 여기 내 친구들도 같은 꿈을 꾸고 있어요.”
“그렇구나.”
나는 아프리카 아이들 대부분의 꿈인, 그러나 결단코 녹록지 않을 축구선수가 되는 가능성에 대해 함부로 비관론을 내비치지 않기로 했다. 녀석의 꿈을 초벌구이 잘못된 도자기 내던지듯 무심히 깰 권리가 내겐 없다. 아직 케빈은 냉엄한 현실보다 한 뼘이라도 더 자란 희망의 빛을 볼 시기다. 마치 도자기 토련작업처럼 말이다. 나는 대신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로 했다.
“포지션이 어떻게 되니?”
“제 포지션은 수비수예요. 수비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솔직히 아무도 수비하는 걸 원치 않아요. 다들 골을 넣고 싶어 하니까요. 골을 넣어야 영웅이 되는 법이죠.”
“그런데?”
“하지만 축구는 팀 경기입니다. 난 알아요. 팀 승리를 위해 누군가는 수비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요. 많은 축구 꿈나무가 공격수를 꿈꾸지만 저는 수비로 잉글랜드에 진출하고 싶어요.”
“잉글랜드가 너에게 기회의 땅인가 보구나.”
대화를 나누는 도중 케빈은 고개를 숙였다. 10대의 수줍음과 부끄러움이 얼굴에 그득했다.
“여기 생활은 고단해요. 더럽고, 위험합니다. 물, 음식, 위생, 모든 게 문제투성이란 말이에요. 매일 두통이 끊이질 않아요. 축구를 해야 잊힐 것들이죠. 또 축구를 통하지 않고서는 다른 방법으로 현실을 헤치기가 어려워요. 교육이 가장 필요하지만 보시다시피 한계가 명확해 희망을 제시해 주진 못해요. 제겐 롤모델이 없다고요. 보셨겠지만 아무도 웃질 않아요. 미래가 뻔하니까요. 매일 배는 고픈데 부모님은 일자리가 없어요. 아마 저도 그렇게 될지 몰라요. 대부분이 그렇죠 뭐. 이젠 정말 지쳤어요. 할 수만 있다면 다른 곳으로 이사 가고 싶어요. 이곳을 떠나고 싶습니다!”
옆에서 조용히 이야기를 듣던 친구들이 동요한다. 떠나고 싶다는 케빈의 말에 감정선이 격하게 떨리는 것을 느낀다. 어떻게 해볼 수는 없지만 어떻게든 해보고 싶다는 미묘한 외침이 학생들의 목울대를 꼿꼿이 세우게 한다.
“언젠가 지옥 같은 이곳을 벗어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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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업 쉬는 시간(티타임) 중에 사진기를 보고 활짝 웃는 키베라 학교의 학생들. |
“케빈, 내가 너를 위해 해줄 것이 별로 없어 미안해. 작은 정성이지만 너와 네 친구들을 위해 학교에 축구공을 선물로 주고 싶은데.”
그러나 반응은 예상을 한참 빗나갔다. 케빈은 고개를 저으며 선물을 거절한다.
“어차피 깡패들에게 뺏길 텐데요 뭘. 안 주셔도 괜찮아요.”
“갱스터?”
“네, 깡패들이요.”
케빈 옆에서 줄곧 이야기를 듣던 친구 중 하나인 마이클이 대화를 이어간다.
“이곳에 갱단이 많이 있어요. 우리가 맞닥뜨리는 갱들은 주로 10대들로 이루어져 있지요. 아마도 뒤에 배후가 있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우린 그들이 무서워요. 같은 나이대인 데도요. 총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경찰도 절대 우리를 도와주지 못하거든요. 스스로 피하고, 조심하는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왜 축구공을 받지 않겠다는 거니?”
“어차피 뺏기거든요?”
“뺏기다니? 왜? 어떻게?”
“여기 주변에서만 8개 그룹 정도의 뭉기키(mungiki·범죄집단) 갱단이 활동 중이에요. 그들은 매우 두려운 존재예요. 가끔 구호단체나 종교단체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이런저런 용품을 주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그들이 와서 다 빼앗아가더군요. 주지 않으면 해를 입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줘야 합니다. 악순환이에요. 눈에 띄면 무조건 뺏기는 겁니다.
이곳은 쉼터가 없어요. 기댈 곳이 없고, 우리만의 공간이 없습니다. 혹 쉼터가 생긴 대도 금방 갱들에게 뺏기겠지만요. 좋은 것들은 언제나 그들의 차지죠. 그래서 전 항상 꿈꿔요. 언젠간 지옥 같은 이곳을 벗어나리라. 나는 그들처럼 살지 않으리라. 우리 가족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보내고 있어요.”
마이클은 여느 학생들과는 달리 의욕적인 태도를 취한다. 역사책을 좋아하는 그는 외부인들이 주거나 남기고 간 책들을 읽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이곳에 있으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요. 바깥세상을 보는 방법은 책이 유일합니다.”
키베라를 떠나고 싶은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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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악한 키베라 현실을 딛고 축구로 내일을 꿈꾸는 케빈(좌)과 마이클. |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축구만 생각해요. 그리고 우리 가족이 어서 이곳을 떠나기만을 기도해요.”
마이클의 얘기에 여전히 자신감 없는 표정의 케빈도 고개를 끄덕인다. 어느덧 티타임이 끝났다. 쉬는 시간 내내 시끌벅적하던 아이들은 일제히 교실 안으로 부산하게 들어간다. 케빈과 마이클도 무거운 표정으로 다시 교실로 들어간다. 대화를 마친 후 겉으로 드리워진 키베라의 암운이 실상은 훨씬 고단한 짐으로 그들의 어깨 위에 놓인 걸 알게 되었다.
언제쯤 이들이 내일을 생각하면서 밝은 미소를 지을 수 있을까. 아프리카에서 처음으로 격려품을 거절한 동네 키베라의 아이들. 그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려고 노력해 본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잘 지내고 있으면서도 누추한 삶에 대해 살펴보지 않았음은 참 부끄럽고 미안하기만 하다.
키베라의 퀴퀴하고 음습한 기운 속에서 이들은 꼭 한 줄기 빛이 되어야 한다. 자신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해서라도 희망이 되어야 한다. 누군가는 기적을 만들어야 하고 기적이 모여 상식이 되어야 한다. 하늘과 맞닿은 수많은 녹슨 양철 지붕 사이로 저 멀리 나이로비의 위풍당당한 빌딩들이 보인다. 나는 그곳을 향해 오물과 쓰레기로 뒤범벅된 키베라를 뒤로하고 빠져나간다. 내가 가는 길을 언젠간 케빈과 마이클이 밟을 수 있길 소망한다. 작은 기적을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