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2026년에도 무기 사진으로 도배된 北 달력

최상위 전략핵무기 ‘화성-20형’ 표지로 무력 과시

  • 글 : 박지현 월간조선 기자  talktome@chosun.com
글자 크기 조정
  • 스크랩
  • 본문 음성 듣기
  • 글자 크기 조정
URL이 성공적으로 복사되었습니다.
⊙ ‘주체’ 연호 빠지고 先代 문구는 그대로… 김정은 생일은 여전히 평일
⊙ 北, 적대적 두 국가론 선포 후 2024년부터 ‘무기 달력’ 생산 중
⊙ 외국문출판사 제작, 당·군 간부·외교관 등 대외·관료 배포용
북한 외국문출판사가 제작한 2026년 달력 표지에 등장한 화성-20형 대륙간탄도미사일. 이하 사진=월간조선
우리 정부의 지속적 유화책에도 ‘전쟁 불사(不辭) 의지’만이 읽힌다. 북한 당국은 올해 달력도 무기 사진으로 도배했다. 맨앞 표지와 마지막 12월 면에는 최상위 전략핵무기인 ‘화성-20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대문짝만 하게 배치했다. 그 외의 달 지면은 지난해 열병식에서 공개된 화성-17형, 화성-11마, 자폭 드론 발사대, 최신형 방사포 사진들로 가득 채웠다. 한 대북 소식통은 “달력을 통해 전쟁 수행 능력과 무력 완성 이미지를 드러내려는 의도”라고 했다.
 
  북한에서 달력은 단순히 날짜 보기용이 아니다. 공적(公的) 출판물로, 정치·군사 선전에 쓰인다. 북한 당국은 올해 총 세 종류의 달력을 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나머지 둘은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와 백두산을 테마로 했다. 소식통은 “원래 5~6종이던 달력 종수가 올 들어 절반으로 줄었다”며 “자연히 군사적 메시지 비중이 높아졌다”고 했다.
 
  무기 달력은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직속 대외 선전 전문 출판기관인 ‘외국문출판사’가 제작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이는 중국 수출용으로, 중국 당·군 간부, 행정 인력 및 중국 근무 북한 외교관 등 대외·관료에게 배포됐다고 한다.
 
 
  ‘두 국가론’ 직후 달력에 무기 도배
 
북한의 올해 달력에도 김정은의 생일(1월 8일 추정)은 평일로 표기됐다.

  북한이 무기로 도배한 달력을 제작한 건 2024년부터다. 2023년 말 김정은의 ‘적대적 두 국가론’ 선언 직후다. 남북을 교전국으로 명명한 뒤부터 군사적 긴장감을 일상의 영역까지 끌어들인 것이다.
 
  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리대사는 “북한에서 핵은 체제를 지키는 만능 보검(寶劍)으로, 식민 수난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는 논리를 주민들에게 반복 주입한다”면서 “무기 달력은 대외 메시지인 동시에 내부적으로는 체제 결속과 ‘공포 교양’의 연장선”이라고 했다.
 
  올해 2026년 달력 표지 상단에는 80주년 열병식 전경 사진을, 하단에는 화성-20형 사진을 배치했다. 그 위에 “위대한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의 안녕을 삼가 축원합니다”라는 문구를 국문과 중문으로 병기했다. 선대(先代) 수령과의 연속성을 강조하는 전통적 문구다. 2024년까지 썼던 ‘주체 ○○년’ 표기는 2025년부터 삭제했다. 올해도 서력 연도만 크게 새겼다.
 

  1월 면에는 표지 상단에 실었던 열병식 전경 사진을 다른 각도로 인쇄했다. 불꽃놀이와 광장 전체를 채운 병력과 깃발, 군악대가 보인다. 좌측 공간에는 “2021년 1월 10일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께서 조선로동당 총비서로 높이 추대되시였다”라고 써 놨다.
 
  김정은 생일로 알려진 1월 8일은 여전히 평일로 표시했다. 정보 당국은 여러 첩보를 종합해 김정은의 생일을 1월 8일로 판단 중이다. 북한이 이를 공식적으로 공표한 적은 없다.
 
  건군절(2월 8일)이 있는 2월 면에는 북한의 주력 탱크 사진을 실었다. 75주년 열병식에서 처음 공개됐을 때, 미국의 ‘M1 에이브람스’ 전차와 외형이 비슷해 ‘북브람스’라 불리며 화제가 됐던 기종이다. 건군절이 있는 만큼 지상군 무력을 상징하는 전차를 쓴 것으로 보인다. 건군절과 함께 김정일 생일인 광명성절(2월 16일)도 기념일로 명시했다.
 
 
  태양절 여전히 강조
 
김일성의 생일인 태양절(4월 15일)은 붉은색으로 표기하고, 더 굵은 글씨로 강조했다.

  만물이 소생하는 3월을 맞이하는 건 ‘신형 240mm 조종발사포’다. 흔히 다연장 로켓으로 불리는 방사포다. 기존 방사포에 유도 기능을 추가한 최신형 모델로 알려져 있다. 목표물을 정밀 타격할 수 있다.
 
  4월 면은 김일성 생일인 태양절이 있는 달답게 김일성광장 전경을 배경으로 깔았다. 광장 앞에는 어김없이 무기 행렬이 등장한다. 태양절인 15일은 붉은색으로 표기하고, 김정일 생일(2월 16일)처럼 더 굵은 글씨로 강조했다. 4월 25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일도 붉은색으로 표기했다.
 
  좌측에는 “1912년 4월 15일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탄생하시였다”는 큰 글씨가 있다. 그 아래에는 비교적 작은 글씨로 ‘1932년 4월 25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일’ ‘1992년 4월 13일 김일성 대원수 칭호 수여일’ ‘1993년 4월 9일 김정일 국방위원장 추대일’ ‘2012년 4월 11·13일 김정은의 당 제1비서 및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추대일’을 써 놨다.
 
  한국에선 5월 5일이 어린이날이지만, 북한에서는 김일성의 항일 업적을 기리는 날이다. 5월 면 좌측에는 1936년 5월 5일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조국광복회를 창건하시였다”는 문구를 찍어 놨다. 무기 사진으로는 6연장 차륜형 600mm 초대형 방사포(KN-25) 여러 대가 행진하는 장면을 썼다.
 
  6월 면엔 미사일 발사 차량들이 김일성광장을 가로지르는 장면을 담았다. 8축 이동식 발사대에 실린 화성-12형 중거리 탄도미사일로 추정된다. 좌측에는 1964년 6월 19일 김정일이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에서 사업을 시작한 날, 2016년 6월 29일 김정은이 국무위원장으로 추대된 날을 함께 적었다.
 
북한은 2023년 말 ‘적대적 두 국가’ 선포 이후 2024년부터 무기 사진으로 도배된 달력을 제작해 왔다.

  7월 면에는 무인전술공격기, 이른바 자폭 드론 다연장 발사기가 각도를 세운 채 이동하는 모습이 나온다. 7월 27일 조국해방전쟁 승리의 날(전승절)은 붉은색으로 강조했다. 6·25전쟁 휴전일로, 북한에선 가장 중요한 군사 기념일 중 하나다. 좌측에는 1994년 7월 8일 김일성 사망일과 2012년 7월 17일 김정은이 원수 칭호를 받은 날을 함께 적었다.
 
  8월과 9월은 모두 전략탄도미사일 발사 차량 사진으로 채웠다. 한반도 전역은 물론 일본 내 주요 기지까지 타격권에 둔 무기들이다. 8월에는 15일 조국광복기념일과 25일 선군절이 공휴일로 표시돼 있다. 선군절은 “1960년 8월 25일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께서 혁명무력에 대한 령도의 첫 자욱을 새기신 날”로 소개해 놨다. 9월 9일 인민정권 창건일은 “1948년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창건하신 날”이라고 기재했다.
 
 
  달력에 새긴 무기, 어김없이 쏜다?
 
10~12월 면에는 이재명 정부 들어 처음 발사한 단거리 탄도미사일인 화성-11마형을 비롯해 화성-17, 화성-20형 사진을 잇달아 실었다.

  북한은 올 새해 벽두부터 평양 인근에서 미사일을 발사했다. 미국이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대통령을 체포한 직후, 이재명 대통령이 한중 정상회담을 위해 중국을 국빈방문한 1월 4일이었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도발은 지난해 11월 7일 이후 두 달 만이자,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세 번째다. 합동참모본부는 이 미사일이 ‘화성-11마’일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지난해 10월 22일 이재명 정부 들어 처음 발사한 단거리 탄도미사일도 같은 모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화성-11마는 북한의 대표적인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인 ‘북한판 이스칸데르’ KN-23(화성-11)을 성능 개량한 기종이다. 한반도 전역은 물론 주일(駐日) 미군 기지도 타격권에 든다.
 
  10월 면에는 그 화성-11마 사진을 메인으로 배치했다.
 
  연말로 갈수록 무기 위계가 한 단계씩 올라간다. 11월 면에는 화성-17형을 실었다. 화성-11마가 남한 전역과 일본을 겨냥한다면, 화성-17형의 타격 범위는 미국 본토 전역이다. 사거리 1만 5000km 이상으로 추정된다.
 
  방점은 12월이다. 달력의 마지막 장에는 화성-20형을 실었다. 아직 개발 단계로 알려진 신형 무기다. 지난해 열병식에서 처음 공개됐다.
 
 
  화성-20형 시험발사 임박?
 
  12월 면에 실린 이 사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북한은 지난 2년간 가장 압도적인 전략무기를 한 해를 결산하는 시점인 달력 마지막 장에 배치해 왔다. 대북 소식통은 “이런 구성은 한 해의 국방 과업을 완수했다는 ‘최종 승리’를 선언하는 동시에, 미국 본토를 겨냥한 핵 억제력을 대내외에 각인시키려는 의도”라면서 “특히 화성-20형이 북한 핵무력의 주력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라고 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올해 화성-20형 시험발사를 감행할 수 있다는 관측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류현우 전 대사대리는 “올해 미국을 자극하는 시험발사는 없을 것”이라면서 “표지와 12월 면에 화성-20형을 배치한 것은 향후 재개될 가능성이 큰 북미회담을 겨냥한 전략적 포석으로 보인다”고 했다. 민심 이반을 막기 위해 장기적으로 유엔 안보리 제재 해소가 필요한 김정은이 화성-20형과 같은 전략무기를 노출해 향후 협상에서 지렛대로 활용할 카드로 미리 제시했다는 분석이다.
 

  아산정책연구원 또한 “협상 카드 극대화를 위해 고강도 도발을 자제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연구원은 보고서 〈심화되는 무질서〉에서 “2026년 북한은 제9차 노동당대회를 계기로 선대와 차별화된 시대를 강조하며 대미 대등 협상과 핵보유국 지위, 대남 전략적 우위를 모색할 것”이라며 이같이 내다봤다. 그러나 미중 갈등과 대만해협 긴장이 고조되고 협상이 교착될 경우 7차 핵실험이나 ICBM 시험발사가 이뤄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026년 한반도 정세전망〉에서 “북한은 핵과 재래식 전력을 병행하는 병진 노선을 전면화하며 정밀타격무기와 무인기 등 군사 능력의 질적 고도화에 주력할 것”이라면서 “그러나 전략적 레드라인을 넘는 고강도 도발은 자제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적대적 두 국가’ 더 공고해질 것
 
  김정은은 지난해 말부터 핵추진잠수함 건조 현장과 초대형 방사포 생산 공장, 전술무기 생산 시설을 연쇄적으로 방문했다. 새해 첫 공식 현지지도 장소도 주요 군수공장이었다.
 
  적대적 두 국가론은 올해 더욱 공고해질 것으로 보인다. 박영자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026년 북 신년 메시지 분석과 정세 전망’ 토론회에서 “북한은 남북관계를 더 이상 통일이나 협력의 대상이 아닌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제도화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면서 “한국을 타국이자 가장 적대적인 국가로 규정하는 논리를 헌법과 제도를 통해 고착화하려는 흐름이 뚜렷하다”고 했다. 박 연구위원은 이어 “향후 최소 10년간 남북관계가 신냉전(新冷戰)적 적대관계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전망을 전제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류현우 전 대사대리는 “김정은의 입장에서 통일은 체제 경쟁력과 인구수, 경제력 등 모든 면에서 우위에 있는 남측에 주도권을 내어주는 행위”라며 “자신의 패권을 위협하는 마이너스 요소”라고 했다. 그는 “남측으로부터 실질적인 경제적 이득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문화적 침투를 차단하고, 정권 유지의 득실을 따져 ‘통일’ 담론을 폐기한 것”이라고 했다.⊙
 

김일성·김정일 생일 여전히 강조, 왜?


적대적 두 국가론 이후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김정은이 유일영도체제를 강화하며 선대 유훈(遺訓) 지우기에 나섰다”는 분석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그런데 이번 달력에는 김정은의 생일은 여전히 평일이고, 김일성·김정일의 생일만이 강조돼 있다.
 
  JM선교회 관계자는 이에 “태양절 등 기념일은 삭제될 수 없는 체제의 근간”이라며 “김정은이 선대 흔적을 지운다는 관측이 있었지만, 태양절과 김정일 생일은 백두혈통이라는 정통성의 명분과 직결돼 있어 포기할 수 없는 상징”이라고 했다. 이러한 정통성이 단절되지 않아야 자연스레 김주애라는 ‘차기 혈통’에 대한 서사(敍事)를 이어 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주애는 올 초 금수산태양궁전을 공개 참배하며 다시 유력한 후계자로 주목받고 있다. 이 관계자는 “여성 지도자 이미지 부각은 북한 체제의 전략적 선택”이라며 “김정은이 형제간 숙청과 갈등을 겪으면서 남성 후계자에 대한 딜레마를 안게 됐고, 대안으로 여성 지도자를 내세워 내부 갈등을 피하려는 계산도 엿보인다”고 진단했다. 그는 또 “북한 내부 핵심에 따르면 ‘핵 완성’ 이후 리더십의 테마는 ‘우주’”라며 “김정은은 김주애를 훗날 ‘우주를 지배할 여장군’이라는 아이콘으로 구축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부소장도 “김정은의 2026년 신년 금수산태양궁전 참배에 김주애가 동행한 것은 노동당 제9차 대회를 염두에 둔 행보”라며 “후계자 지위를 대내외적으로 공식화하려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날 김주애를 김정은·이설주 사이 정중앙에 배치한 것은 김주애를 후계자로 내세우겠다는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 장면”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북한의 권력 승계 관례와 당 규약에 신설된 당중앙위원회 제1비서 직책을 고려하면, 9차 당대회를 계기로 김주애가 총비서의 대리인 성격을 지닌 제2인자 지위에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짚었다
 
  반면 류현우 전 대사대리는 “공식 석상에서 김주애가 둘 사이에 선 모습은 후계자라기보다 보호받아야 할 아동이라는 의미가 강하다”며 “실질적 후계자로 인정받으려면 국정 운영을 시험할 수 있는 직위 부여와 당·국가 차원의 업적 축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김주애의 위상은 상징적 동행 수준에 머물러 있다”며 “가부장적 사회 구조와 백두혈통의 정통성 측면에서 여성의 권력 승계는 한계가 명확하고, 공개되지 않은 아들이 장차 후계 수업을 받을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다”고 했다.
  • 스크랩
URL이 성공적으로 복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