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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매체 개방’ 추진에 흔들리는 국가보안법

‘이적 표현물 조항 사문화→ 이적 목적성 입증 조항 무력화→ 국가보안법 폐지’ 시나리오?

  • 글 : 박희석 월간조선 기자  thegood@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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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냥 열어 놓으면 된다”는 이재명… 北 웹사이트 접속 허용 추진하는 정부·여당
⊙ 李 “‘빨갱이’ 될까 봐 그러는 거냐”며 北 《노동신문》 열람 허용 지시
⊙ “우리 국민들 성숙하다”며 동조한 ‘尹 정부 통일부 장관’ 권영세
⊙ 가짜뉴스·음모론 유포 유튜버와 그 맹종 집단은 ‘우리 국민’ 아닌가?
⊙ 《노동신문》 등의 이적 표현물은 보안법상 ‘이적 목적’ 범죄의 ‘스모킹건’
⊙ 소위 통일전선전술 ‘통로’ 될 위험 있는 北 웹사이트 개방
사진=뉴시스
북한 노동당의 기관지 《노동신문》이 2025년 12월 30일부터 ‘특수자료’가 아닌 ‘일반자료’로 분류돼, 통일부 북한자료센터 등 취급 기관을 찾으면 누구나 별도의 신분 확인이나 열람 목적 기재 없이 자유롭게 볼 수 있게 됐다. 《노동신문》은 대한민국의 ‘반(反)국가단체’인 북한 정권의 핵심인 노동당의 기관지다. ‘신문’이라는 명칭 때문에 우리 사회의 일반 언론 매체와 유사한 성격으로 오해될 수 있으나, 《노동신문》은 언론의 기능을 수행하는 매체가 아니다. 북한 노동당의 정책과 노선을 공표하는 공식 수단이다. 또 대내적으로는 사상 통제와 정치적 동원을 담당하는 통치 도구이며, 대외적으로는 대남(對南)·대외(對外) 선전과 선동에 활용되는 공작 수단으로 기능해 왔다.
 
  그 같은 《노동신문》의 일반 공개는 사실상 이재명(李在明)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이뤄진 것이다. 이 대통령은 2025년 12월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통일부 업무보고에서 ‘북한 매체 접근 제한’에 대해 “국민을 주체적인 존재로 취급하는 게 아니라 선전·선동에 넘어갈 존재로 취급하는 것 아니냐. 이것을 왜 막아 놓느냐”고 따지면서 “북한 《노동신문》을 못 보게 막는 이유는 국민이 그 선전전에 넘어가서 ‘빨갱이’가 될까 봐 그러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이어서 “그럴 가능성이 있느냐? 저는 오히려 북한의 실상을 정확하게 이해해서 ‘저러면 안 되겠구나’ 생각할 계기가 될 것 같다. 그냥 열어 놓으면 된다”며 방침을 사실상 하달(下達)했다.
 
  그동안은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의 활동을 찬양·선전하는 이적(利敵) 표현물’에 해당하는 《노동신문》이 통일부와 관계 부처의 북한 자료 관리 체계에 따라 ‘특수자료’로 분류돼, 일반 국민의 자유로운 열람이 제한됐다. 통일부 북한자료센터 등 지정된 장소에서만 신분 확인과 함께 열람 목적 기재 등의 과정을 거친 뒤 제한적으로 열람할 수 있었다. 이 대통령이 지시를 내린 뒤 정부는 《노동신문》을 ‘특수자료’가 아닌 ‘일반자료’로 재분류했다. 이에 따라 북한 《노동신문》은 이전과 달리 별도의 절차 없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자료로 전환됐다.
 
 
  안보 규제에 관한 이재명의 오해
 
이재명 대통령은 2025년 12월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통일부 업무보고에서 ‘북한 매체 접근 제한’에 대해 “국민을 주체적인 존재로 취급하는 게 아니라 선전·선동에 넘어갈 존재로 취급하는 것 아니냐”며 “그냥 열어 놓으면 된다”고 주장했다. 사진=뉴시스

  정부의 ‘북한 매체 제한 해제’ 움직임의 단초가 된 이재명 대통령의 인식에는 그간 북한 매체 제한이 작동해 온 법적·제도적 맥락에 대한 오해가 깔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북한 매체를 제한해 온 이유는 이 대통령 주장처럼 국민 다수가 선전에 쉽게 속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 아니다. 이는 형법(刑法)을 두는 이유와 구조적으로 같다. 형법은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기 때문에 존재하는 법이 아니다. 형법의 핵심 기능은 범죄가 실제로 발생한 이후의 처벌뿐 아니라, 극히 소수의 범죄행위라도 사회 전체에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전제로 범죄 발생 가능성을 억지하고 위험을 사전에 관리하는 기능을 한다. 형법의 존재를 두고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 아니냐”고 묻는다면 그 자체가 형법의 기능과 목적을 오해한 것이다. 그런 논리를 확장하면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형법적 규율이나 수사 제도 역시 ‘국민 의식을 폄하하는 제약’으로 치부돼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북한 매체에 대한 제한 역시 국민 개개인의 판단력을 불신해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 구성원 중 극히 소수라도 이를 조직적·전략적으로 악용할 경우 사회 전체에 미칠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에 유지된 방어 장치였다.
 
  안보 관련 규제는 보통 수준의 판단력을 가진 대다수 시민을 기준으로 설계되지 않았다. 국민의 선의(善意)나 합리성이 아니라 소수의 악의적 활용 가능성과 그로 인한 구조적 위험을 전제하고 이를 관리하기 위해 마련됐다. 그럼에도 이를 두고 “국민을 선전·선동에 넘어갈 존재로 보는 것 아니냐”고 주장하는 국정 총괄 책임자의 언행은 안보 문제를 단순화하고, 관련 규제들의 무용(無用)론을 촉발하며, 결과적으로 우리 제도 자체를 무력화할 위험이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특히 국가보안법 무력화가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노동신문》 열람 허용과 국가보안법
 
  국가보안법이 다른 형사법과 구별되는 부분은 범죄 결과가 발생한 이후의 처벌보다는 범죄 실행 이전 단계에서 위험을 관리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는 점이다. 안보 범죄는 일단 실행 단계에 이르면 피해를 되돌리기 어렵다. 사후 처벌만으로는 국가와 사회가 입은 손실을 회복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국가보안법은 결과가 발생한 뒤 책임을 묻는 방식이 아니라, 위험이 축적되고 확산되는 과정을 사전에 차단하는 구조로 설계됐다.
 
  문제는 국가보안법상 이적 표현물에 해당하는 《노동신문》 등 북한 매체가 ‘일반자료’로 취급될 때 발생한다. 이 경우 국가보안법이 전제로 하는 위험의 조기 포착 기능은 약화되고, 법 집행은 실질적 해악이 가시화된 이후에야 개입하는 사후 처벌 중심으로 기울 가능성이 커진다.
 

  이 법에서 이적 표현물은 단순한 참고 자료가 아니라, 이적 목적성의 존재를 외형적으로 드러내는 핵심적 징표로 기능해 왔다. 수사기관과 법원은 이적 표현물의 반복적 취득, 보관, 활용 여부를 통해 행위자가 반국가단체의 활동에 실질적 이익을 제공하려는 의도를 가졌는지를 판단해 왔다.
 
  그러나 《노동신문》 등 북한 매체가 ‘일반자료’로 분류될 경우, 이 같은 자료의 취득·보관 행위는 더 이상 위험 신호로 간주되기 어렵다. 이적 목적성을 추인(推認)할 수 있는 객관적 정황이 사라진다는 얘기다. 이는 국가보안법상 ▲잠입·탈출 ▲회합·통신 ▲찬양·고무·선전·동조 등의 범죄를 구성하는 요건인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情)을 알면서’라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입증하기 어려워지는 걸 의미한다.
 
 
  법원, “《노동신문》은 이적 표현물”
 
  실제로 우리 법원은 이적 표현물의 ▲성격과 내용 ▲취득·보관 방식 ▲반복성과 체계성 등을 종합해, 해당 행위가 단순한 정보 접근을 넘어 국가안보에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한 상태에서 이뤄졌는지를 판단해 왔다. 이 같은 법리는 서울중앙지방법원이 2012년 2월 23일 선고한 국가보안법 위반사건 판결(2011고합1131 등)에서도 구체적으로 확인된다. 이 판결은 반국가단체 구성, 간첩, 자진 지원·금품 수수, 특수잠입·탈출, 찬양·고무, 회합·통신, 편의 제공 등 다수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병합해 판단하면서, 피고인이 소지한 북한 매체와 문건을 이적 표현물로 인정하고 이를 통해 ‘이적 목적성’과 ‘고의(故意)성’을 판단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피고인은 2011년 3월 자신의 이메일 계정을 이용해 ‘승리의 열쇠를 틀어쥐자’라는 제목의 《노동신문》 논설이 저장된 파일을 수신·보관했다. 문건은 북한 김정일을 ‘위대한 선군영장(先軍英將)’ 등으로 찬양하고,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영도 아래 과학기술 발전을 통해 강성대국을 건설하자는 북한의 체제 선전 논리를 그대로 담고 있었다. 재판부는 이 문건이 북한의 주장과 궤를 같이하는 선전물이라는 점을 들어 피고인이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 또는 이에 동조할 목적으로 이적 표현물을 소지했다”고 판시했다.
 
  이와 같은 판단 논리는 다른 판결(2012노805)에서도 다시 확인된다.
 
  〈(피고인은) 북한의 《노동신문》 사설 내지 연재 글은 일정 절차를 거치면 누구나 취득할 수 있는 자료로서 이적성을 인정하기 어렵고 피고인의 이적 목적이 입증된 바 없다고 하지만, 앞서 본 피고인의 국가보안법 위반의 범행 등 북한과 연계된 활동 상황, 기록상 피고인은 당시 공소외 회사 이사로서 이 사건 《노동신문》 사설을 소지할 특별한 이유도 없고, 이 사건 《노동신문》 사설의 소지 사실이 인정됨에도 불구하고 그 소지 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있을 뿐이며, 피고인에게 학술 연구 내지는 영리의 목적 등이 존재한다는 사정도 발견할 수 없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이적행위의 목적도 충분히 인정된다.〉
 
 
  조기경보장치 사라질 수도
 
  이처럼 법원은 북한 체제와 이념을 선전·정당화하는 성격의 자료를 반복적·체계적으로 취득·보관·활용한 정황을 우연이나 무지(無知)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보고, 이를 통해 국가안보에 대한 위험성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을 판단의 근거로 삼아 왔다. 바로 그 법리 구조 때문에 국가보안법상 이적 표현물 관련 조항이 존재하며, 그동안 《노동신문》 등 북한 매체의 자유로운 열람과 유포 역시 제한됐다.
 
  이런 구조를 감안할 때, 《노동신문》 등의 이적 표현물이 완전히 개방될 경우 법 집행 현장에서는 중대한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현재는 《노동신문》을 소지하거나 배포할 경우 국가보안법 제7조 5항에 따라 이적 표현물 소지·유포로 처벌이 가능하지만, 정부가 이를 공식적으로 허용하는 순간 《노동신문》을 법원이 규정해 온 ‘이적 표현물’로 평가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된다. “정부가 보라고 허용한 매체를 어떻게 이적 표현물로 볼 수 있느냐”는 논리가 성립할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노동신문》 등 북한 매체에 대한 제한이 풀려 이적 목적성을 뒷받침하는 핵심 정황으로 작동하지 않게 되면, 국가보안법 적용은 ‘사전 적발’이 아니라 ‘사후 처벌’ 중심으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 간첩행위나 목적 수행과 같은 본격적인 범죄로 넘어가기 이전 단계의 예비적·음모적 활동을 포착하고 차단할 수 있는 조기경보장치가 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법 적용의 초점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노동신문》을 읽고 보관·전달하는 행위 자체를 문제 삼기 어려워지면, 수사와 재판은 결국 행위자의 찬양·고무 의도를 입증하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러한 내심(內心)의 의도는 당사자가 이를 부인할 경우 객관적 정황만으로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 그 결과 수사 착수와 기소가 소극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커지고, 설령 재판에 넘겨지더라도 엄격한 법원 판단 기준을 넘기 어려워 무죄 판단이 반복될 수 있다. 이런 상황이 누적될 경우 국가보안법 집행은 점차 위축될 수밖에 없다.
 
  결국 이 같은 흐름이 반복되면 국가보안법은 형식적으로는 존속하더라도 실제 수사와 기소, 처벌로 이어지는 사례는 급감하게 된다. 이는 법이 폐지되지 않았음에도 사실상 기능을 상실하는 이른바 ‘사문화(死文化)’ 상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로 연결된다. 사문화가 고착될 경우, “이미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 법을 유지할 필요가 있느냐”며 국가보안법 폐지론이 다시 전면에 부상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北 웹사이트 접근 허용’ 주장하는 여당 의원들
 
통일부는 ‘2026년 업무보고’에서 북한 웹사이트 60여 곳에 대해 국내에서 제한 없이 접근할 수 있도록 차단 해제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북한 웹사이트들은 ‘정보통신망법’에 따라 접속이 차단된다.

  국가보안법 폐지 논쟁은 단지 법 해석이나 입법 전망에 그치지 않는다. 정부가 실제 정책 차원에서 북한 매체 접근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에 따라 사회적 파장은 훨씬 더 크게 확산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금까지 《노동신문》을 직접 열람하는 일반 국민은 극히 제한적이었지만, 온라인 접근까지 전면적으로 허용될 경우 상황은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통일부는 ‘2026년 통일부 업무계획 보고’ 이후 북한 웹사이트에 대한 접속 차단 해제를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통일부는 2025년 12월 30일 “우리 사회의 성숙도와 체제 자신감을 고려할 때 현행 규제와 현실의 간극이 크다”며 “일반 국민이 북한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정보통신망법 개정을 통한 사이트 차단 해제를 추진하겠다”고 설명했다. 통일부는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 등을 포함해 북한 웹사이트 약 60여 곳에 대해 국내에서 제한 없이 접근할 수 있도록 차단 해제를 추진할 계획이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정치권에서는 북한 사이트 접근을 제도적으로 허용하려는 입법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한민수 의원 등은 2025년 12월 12일 북한 관련 웹사이트를 자유롭게 접속·열람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제안 사유는 ‘북한 관련 사이트의 접근·열람을 허용함으로써 정보 유통 규제의 본래 취지를 명확히 하고, 국민의 북한에 대한 객관적 정보 습득 기회를 확대하는 한편, 북한에 대한 균형 있는 이해를 제고하고자 함’이다.
 
  현행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7(불법정보의 유통금지 등) 1항은 정보통신망을 통해 국가보안법에서 금지하는 행위를 수행하는 내용의 정보를 유통하는 행위(제8호)를 금한다. 또 제3항은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가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 등에게 해당 정보의 처리 거부·정지 또는 제한을 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통일전선전술’의 일상화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의 대남 선전 매체에 대한 접근이 제도적으로 허용될 경우 소위 ‘통일전선전술’에 따른 대남 심리전이 전 국민을 상대로 전개될 위험이 있다.

  북한 웹사이트에 대한 접근 허용은 《노동신문》 열람과 비교가 안 되는 파문을 몰고 올 수 있다. 실물 자료나 지정 공간 열람과 달리, 온라인 환경에서는 접근 비용과 진입 장벽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북한 매체가 특정 관심층을 넘어 일반 국민의 일상적인 정보 소비 영역으로 편입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동안 ‘안보관리대상 정보’로 분류돼 온 콘텐츠가 정책 결정에 따라 일반 정보의 지위를 부여받게 될 경우, 이를 둘러싼 사회적 인식과 규범 역시 함께 변화할 수밖에 없다.
 
  북한의 대남 선전 매체가 제도적으로 개방될 경우, ‘우리민족끼리’나 연방제 통일론과 같은 기존의 대남 심리전 담론 역시 별다른 장벽 없이 유통되는 환경이 형성된다. 이 경우 메시지들은 노골적인 선전물의 형태가 아니라, 북한이 오래전부터 구사해 온 이른바 ‘통일전선전술’의 틀 속에서 민족주의·평화·통일 담론의 외피를 쓴 ‘의견’이나 ‘정보’의 형태로 일상적인 여론 공간에 스며들 가능성이 커진다. 통일전선전술은 북한이 대남 공작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관되게 구사해 온 핵심 전술이다. 계급투쟁이나 사회주의 혁명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민족’ 등 상위 개념을 앞세워 남한 사회 내부의 이념적·정치적 차이를 일시적으로 봉합하고 광범위한 연대(連帶) 전선을 형성하려는 접근 방식이다. 이 전술의 목표는 남한 사회를 ‘적대세력’과 ‘포섭 가능한 세력’으로 구분한 뒤, 후자를 민족 공조·평화·자주·통일과 같은 위선적 구호로 포섭해 남한 사회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나아가서 대남 적화를 추진하는 데 있다.
 
 
  ‘국민은 성숙하다’는 주장의 맹점
 
  이와 관련, 윤석열(尹錫悅) 전 대통령 때 통일부 장관을 지낸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12월 21일 “우리 국민들도 북의 《노동신문》을 보며 그냥 믿고 현혹되기보다는 오히려 북한 체제가 어떤 언어로 자신을 정당화하려 하는지, 무엇을 숨기고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꿰뚫어 볼 수 있을 만큼 성숙하다”며 이재명 대통령의 북한 《노동신문》 열람 제한 폐지 주장에 동조했다. 이런 이들이 간과하는 부분이 있다. 북한 매체 개방의 효과를 ‘대중의 비판적 독해 능력’이라는 단일 기준으로만 평가한다는 점이다.
 
  문제의 핵심은 다수 국민이 북한 선전에 현혹되느냐의 여부가 아니다. 극히 소수라 하더라도 해당 매체를 조직화·이론화·정당화의 근거로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이 제도적으로 열리는 데 있다. 국내 현실을 살펴보면, 정보의 비판적 수용 능력이 사회 전반에 고르게 분포돼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사례도 적지 않다. 극단적 음모론이나 가짜뉴스가 온라인을 통해 빠르게 확산되고, 그런 주장을 유포하는 일부 유튜브 채널들을 맹신하는 집단이 형성되는 모습이 일상적으로 목격된다. 실제로 서부지방법원 점거 사태에서 보듯, 왜곡된 정보와 자극적인 서사가 결합될 경우 선전·선동이 물리적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이미 경험적으로 드러난 바 있다. 이런 점에서 북한 매체 개방은 우리 사회의 취약성을 제도적으로 확대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을 수밖에 없다.
 
  결국 북한 매체 개방을 둘러싼 논쟁은 표현의 자유나 국민의 성숙도를 신뢰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이 조치가 사회 내부의 취약한 지점을 어떻게 자극하고 어떤 방향으로 증폭시킬 수 있는지를 충분히 고려했느냐의 문제다. “그냥 열어 놓으면 된다”고 한 이재명 대통령, “북한에 대한 균형 있는 이해를 제고하자”며 북한 웹사이트 접근을 제도적으로 허용하는 법률안을 내놓은 더불어민주당 의원들, ‘우리 사회의 성숙도’와 ‘체제 자신감’ 운운하며 이를 조속히 추진하겠다는 통일부의 판단, “국민은 성숙하다”며 동조한 권영세 전 장관이 이런 파장까지 충분히 감안했는지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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