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 시인이 시집 《편의점에서 잠깐》으로 돌아왔다. 시집이 독한 소주처럼 활활 인다. 감정의 변주도 다양하다. 시 ‘연필을 깎으며’의 4연이 시집 전체를 관통한다.
〈싸락싸락 / 창밖에는 싸락눈 걸어오는 발소리 / 분노의 강을 건너며 / 거칠게 소용돌이치던 물결 소리가 고요하다〉
시적 아이러니와 역설이 느껴진다. 우리 생엔 ‘싸락눈’과 ‘소용돌이’가 모두 담겨 있다. 기쁨과 슬픔, 절망과 희망이 둘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둘이다. 서로를 닮은, 한 노래를 두 목소리로 부른다.
나태주 시인의 시가 조각 같은 단시(短詩)라면 정호승 시인의 시는 겹겹이 깊이와 반전을 더해 가는 감정의 서사시다. 표제시 ‘편의점에서 잠깐’을 읽고 또 읽는다.
〈늦은 밤 편의점 계산대 앞에서 당신을 만나다니 / 당신은 맥주를 사러 왔고 나는 라면을 사러 왔는데 / 편의점 계산대 앞에 줄을 서서 / 죽기 전에 잠깐 당신을 만날 수 있다니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당신은 아직도 / 겸손의 손으로 캔맥주를 들고 / 당신이 그토록 미워했던 나는 / 교만의 손으로 컵라면을 들고 그리운 눈인사를 나누며 / 아직도 사랑하는 척 부모님 안부를 묻는다(하략)〉
시를 거듭 읽을수록 ‘그토록 사랑했던 당신’은 ‘나’이고, ‘그토록 미워했던 나’는 ‘당신’임을 깨닫는다. 마지막 행은 “또다시 밤배는 떠나간다”이다.
완결된 화해나 조화로운 결말이란 우리 생에 없다. 돌아오면 떠나고 떠나면 돌아온다. 열다섯 번째 새 시집으로 귀환한 시인을 환영한다.⊙
〈싸락싸락 / 창밖에는 싸락눈 걸어오는 발소리 / 분노의 강을 건너며 / 거칠게 소용돌이치던 물결 소리가 고요하다〉
시적 아이러니와 역설이 느껴진다. 우리 생엔 ‘싸락눈’과 ‘소용돌이’가 모두 담겨 있다. 기쁨과 슬픔, 절망과 희망이 둘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둘이다. 서로를 닮은, 한 노래를 두 목소리로 부른다.
나태주 시인의 시가 조각 같은 단시(短詩)라면 정호승 시인의 시는 겹겹이 깊이와 반전을 더해 가는 감정의 서사시다. 표제시 ‘편의점에서 잠깐’을 읽고 또 읽는다.
〈늦은 밤 편의점 계산대 앞에서 당신을 만나다니 / 당신은 맥주를 사러 왔고 나는 라면을 사러 왔는데 / 편의점 계산대 앞에 줄을 서서 / 죽기 전에 잠깐 당신을 만날 수 있다니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당신은 아직도 / 겸손의 손으로 캔맥주를 들고 / 당신이 그토록 미워했던 나는 / 교만의 손으로 컵라면을 들고 그리운 눈인사를 나누며 / 아직도 사랑하는 척 부모님 안부를 묻는다(하략)〉
시를 거듭 읽을수록 ‘그토록 사랑했던 당신’은 ‘나’이고, ‘그토록 미워했던 나’는 ‘당신’임을 깨닫는다. 마지막 행은 “또다시 밤배는 떠나간다”이다.
완결된 화해나 조화로운 결말이란 우리 생에 없다. 돌아오면 떠나고 떠나면 돌아온다. 열다섯 번째 새 시집으로 귀환한 시인을 환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