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중세사 전공자인 저자는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는 ‘어린이 유괴 사건’이 아니라 중세에 독일을 비롯한 서유럽 각국에서 농민들이 빈 땅을 찾아서 동유럽으로 집단 이주했던 역사적 사실과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또 찰턴 헤스턴 주연의 영화 〈엘시드〉의 주인공은 이슬람 침략자들에게 맞서 싸웠던 기독교 영웅이 아니라 때로는 이슬람 군주를 위해 자신의 무용(武勇)을 팔았던 경계인이었다는 사실도 알려준다.
이 책은 이런 식으로 중세의 접경을 살았던 사람들, 즉 헝가리의 첫 번째 왕 이슈트반 1세의 왕비 기젤라, 로마인이 되고자 했던 게르만족의 족장 알라리크, 지금은 러시아 땅이 된 프로이센의 항구도시 쾨니히스베르크의 독일 철학자 칸트 등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저자는 “역사를 보면 국경은 중앙정부의 정책적 개입과 무관하게 국경 이편과 저편에서 각자 독자적으로 활동하던 지방 세력들의 초(超)국경적 협력과 통합의 과정이 진행된 ‘접경 공간’으로서, 상호 의존과 관용, 새로운 국가와 문명의 탄생 등 다양한 모습을 빚어낸 개방적이고 역동적인 장소였다”고 강조한다. 이런 관점에서 저자는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 십자군전쟁 등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상이한 개별 집단 기억을 무기 삼아 벌어지는 기억의 전쟁을 종식시키려면 국가와 국가 간의 공통 역사와 문화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국경을 초월한 초국가적 기억을 되살리는 작업이 요구된다”는 저자의 제언은 한·중·일이 첨예한 ‘기억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동북아에서도 유효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