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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추억을 긷다

헌책도 한때는 무지갯빛 커버를 둘렀다!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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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전쟁 이후 주한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오던 잡지를 팔던 것이 시초
⊙ ‘책이란 돌고 돌아서, 읽히고 거듭 읽혀 책인지 모른다’
⊙ 어느 책을 펴도 번뜩이는 재치와 연극 같은 삶의 반전이 있을 것만 같아
코로나19가 출현하기 전, 활기가 넘치던 부산 중구 보수동 책방골목의 모습이다. 지난 2017년 10월 책방골목에서 열린 ‘부산거리예술대첩’을 찾은 어린이들이 바닥에 펼쳐진 전지 위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부산 보수동에는 책방골목이 있다. 전국마다 헌책방이 없는 곳이 없지만 보수동 그 골목은 뭔가 다르다.
 
  문화가 있고 역사가 있다. 1950년 6·25전쟁 이후 주한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오던 잡지를 팔던 것이 시초가 된 보수동 책방골목은 ‘부산 슬로시티 관광명소’(2012년)가 되고 ‘부산 미래유산’(2019년)이 되었다. 코로나19 이전엔 해마다 골목 축제가 열렸다.
 
  누구는 헌책방에서 추억을 길어 올린다고 말한다. 눈에 띄는 대로 이리저리 둘러보다 보면 손끝이 거멓게 변해 있다. 추억이란 게 원래 그런 빛깔이 아닌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헌책방을 자주 들르게 되고, 헌책방뿐만 아니라 새 책방도 자주 찾게 된다. 사실 책에, 책방에 무슨 구분이 있겠는가.
 
  전국의 동네 책방이 다 망해가고 있는데 헌책방이 배겨낼 도리가 없다. 부산 국제시장 맞은편 이 책방골목 역시 위기다. 원도심 재개발로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 현재 20여 곳이 책방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얼마 전 책방골목에 있는 낡은 건물 한 채가 헐릴 처지가 됐다. 그 건물에 있던 우리글방, 국제서적, 충남서점 등 3곳의 운명도 위태로웠다.
 
  건물주는 15층 오피스텔을 짓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러나 마음을 돌려 책방 상인들과 상생(相生)을 택했다고 한다. 기적이라면 기적! 향후 투자수익 감소와 재설계 추가 비용에도 책방을 상징하는 건물로 리모델링 계획을 바꿨단다. 보수동 책방골목 전체 상인이 환호할 수밖에….
 
 
  文香이라 부르는 곰팡이내
 
부산 보수동에 있는 전국 유일의 책 문화관에 전시된 옛 시절 책방 모형이다. 1950년대 초 미군들이 보던 헌 잡지와 학생들의 헌 참고서 등을 파는 헌책방 4곳에서 시작하여 전성기인 1980년대에는 70여 곳이나 들어서 성업을 이루었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던 어느 날, 보수동 책방골목을 찾았다. 골목 안이 그리 길지도 넓지도 않았다. 이곳 책방 상인 말을 빌리자면, “(부산) 입안에서 우물우물거릴” 크기다.
 
  비가 와서인지 책에 밴 곰팡이 냄새가 고함을 치고 있었다. 이 냄새를 이곳 사람들은 문향(文香)이라 부를 테지만…. 그들 생각에 일단 동의하기로 마음먹었다.
 
  신기하게도 이곳 책방을 둘러보다 《책빛 마실》(2013년)이란 책을 발견했다. 이 책은 보수동 책방골목 탐방기다. 얼핏 이 문장이 눈에 콱 박혔다.
 
  〈책이란, 돌고 돌아서 책인지 모릅니다. 책이란, 읽히고 거듭 읽혀 책인지 모릅니다. 책이란, 숱한 나날을 건너뛰거나 고이 흐르면서 사랑받을 수 있기에 책인지 모릅니다. 책이란, 겉 있는 삶이 아닌 속 있는 삶으로 부둥켜안으면서 내 삶을 일구는 밑거름이라 할는지 모릅니다.〉(192~193쪽)
 
  책방 찬가이자 골목 찬가가 아닐 수 없다. 이 문장도 눈에 들어왔다.
 
  〈돈은 다시 벌면 되지만, 책은 다시 만날 수 없어요. 돈은 새롭게 벌면 되지만, 한 번 사라진 책은 다시 돌아오지 않아요.〉(162쪽)
 
  ‘한 번 사라진 책’을 이 골목에서 찾을 수 있어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연식(年式)이 된, 소장가치가 있는 책들은 꽤 고가에 거래되는데, 형편의 아쉬움에, 그래도 살짝 쓰다듬기만 해도 좋았다.
 

  어느 책방에 들렀다. 두런두런 이야기가 들렸다.
 
  ‘책손(책방 손님)’이 “얼마라예? 좀 안 깎아줘예?”라고 말하자 책방 주인은 눈웃음을 지으며 아무 말이 없다. 손님이 “책 택배가 가능한교” 다시 물었다. 책방 주인의 답이다.
 
  “그럼예. 여기 노트에 주소를 적으이소(적으세요). 자, 제 명함도 받고. 책이 도착 안 하면 바로 전화 주이소. 명함 잃어버리지 말고예.”
 
  택배비는 2000~ 3000원이다. 이번엔 연세가 지긋한 70~80대 책손이 한자책을 찾았다.
 
  “사자성어 같은 한자 공부책이 있는교?”
 
  “어떤 책을 찾으시는데예?”
 
  ‘책시렁’에서 《사자소학》 《명심보감》 《천자문》 같은 책들을 내놓자 노인은 이리저리 살피다가 《명심보감》을 3000원 주고 사갔다.
 
  밖으로 나가다가 뭔가 아쉬운지 뒤돌아 서서 “(한자 관련) 신간은 없는지” 물었다. 신간을 왜 여기서 찾나 싶은데 책방 주인은 슬기롭게 답했다.
 
  “다음에 챙겨놓을게예.”
 
 
  《금강경》 《작은아씨들》, 그리고 《영어의 脈》
 
어느 책방 내부의 모습. LP턴테이블에서 클래식이 흘러나오고 지나가던 행인이 들어와 차를 마시며 책을 읽는 문화공간이 되었다.
  신간도 파는 모양이었다. 골목 이곳저곳을 오가며 실컷 책 구경을 하였다. 더러 책방 주인이 “무슨 책을 찾느냐”고 묻기도 했고, 더러는 편하게 책을 뒤적일 수 있도록 ‘방관’해주었다. 가는 곳마다 수많은 책이 넘어질 듯 쌓여 있었다. 뒤죽박죽 어수선하기 짝이 없었다. 책장이 와르르 무너진 대도 어쩔 수 없었다. 서가에 꽂힌 책들의 가치는 글쎄… 값비싸 보이지는 않았다. 아마 귀한 책들은 특정한 장소에 따로 보관하고 있으리라.
 
  이날 기자의 눈에 띈 책들을 열거하자면, 정채봉의 《생각하는 동화》, 석지현이 옮긴 《숫타니파타》, 정호영이 옮긴 《금강경》, 한국외대 이한우 교수가 쓴 《여행필수 태국어회화》, 삼성출판사 만화명작 《작은아씨들》, 제임스 M. 볼드윈의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이야기》 《한 권으로 재미있게 읽는 조선왕조오백년야사》 《손자병법》, 202권째 자이언트 문고인 황순원의 《소나기》 등이었다.
 
  문득 기자의 고교 시절 영어 학습서인 《영어의 맥(脈)》이 보였다. 친구들이 《성문영어》로 공부할 때 왜 이 책을 고집했을까. 지금 생각해도 의문이다. 나름 밑줄 긋고 형광 펜으로 칠하며 공부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실은, 좀 불안했다. 친구들 중에 아무도 이 책으로 공부하던 이가 없었다.
 
  나중 학력고사에서 《영어의 맥》 덕을 봤는지는 기억에 없다. 어쨌든 이 책을 여기서 볼 줄이야. 뒤적거리다가 영어 지문이 눈에 들어왔다. 번역하면 이렇다.
 
  〈작가는 경제적인 자유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가 필요한 것은 연필과 약간의 종이이다. 나는 아무런 대가 없이 돈을 받고 글을 쓰는 데에서는, 아무런 좋은 점을 찾지 못했다. 훌륭한 작가는 결코 금전적인 원조를 청하지 않는다.〉(222쪽)
 
  원문은 누가 썼을까. ‘돈을 바라고 글을 쓰지 말라’는데 마치 작가에게 굶어 죽으라는 말처럼 들렸다. 작가는 사방천지가 얼음과 눈으로 덮인 곳에서 살란 말인가? 그럼 멋진 작품이 나올까? 돈을 받으면 자칫 빈둥거리게 되고 그저 연필이나 놀리는 별 볼 일 없는 예술가라도 된단 말일까?
 
  마지막 문장 ‘The good writer never applies to a foundation’이 가혹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바로 옆 책장에는 피부와 관련된 책들이 빼곡하게 있었다. 《피부관리학》 《모발미용학》 《미용피부생리학》 《피부과학》 《피부관리학》 《미용학개론》 《미용학사전》 등이 보였다. 이 책들 바로 아래 눈에 들어오는 책이 있었다.
 
  천주교인권위원회가 엮은 《사법살인 1975년 4월의 학살》. 인민혁명당(인혁당) 사건의 진상을 추적해 펴낸 자료집이었다. 2001년 12월에 간행되었다.
 
  1975년 4월 9일, 대법원 확정판결 직후 ‘인혁당 괴수’라 명명한 서도원·도예종·하재완·송상진·여정남 등 8명에게 사형이 집행됐다. 인혁당 사건은 이후 ‘한국 현대사의 가장 추악한 정치 공작사’로 기록돼왔다. 이 책이 출간되고 이듬해 9월 12일 국가 기관인 의문사진상규명위(위원장 한상범)가 “인혁당 사건은 중앙정보부의 조작이었다”며 ‘사법살인’을 공식 발표했다. 27년 5개월여 만이었다. 이 책의 추천사(‘우리의 성찰과 다짐을 담은 책’)는 고(故) 김수환 추기경이 썼는데 첫 문장이 ‘평화를 기원합니다’였다. ‘사법살인’과 ‘평화’라…. 어쩌면 이 책의 용기로 인혁당 사건의 진상이 처음으로 드러났으리라.
 
 
  최혁곤의 장편소설 《B파일》
 
  어느 책방의 소설 코너를 찾았다. 반가운 책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은희경의 한국소설문학상 수상작품집 《내가 살았던 집》이 보였다. 기자의 집에도 이 작품집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 혹시….
 
  그 책 옆에 박일문의 장편소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있었다. 기자가 대학 시절 읽었던 책. 여주인공 이름이 ‘라라’였다. 이 소설을 뒤적이는데 이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작가의 길이란… 그런 것이다. 누가 글쓰는 사람의 고통과 고독을 알 것인가. 이제 나를 구속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이 현실의 폭력, 억압, 거짓 화해, 가짜 욕망, 온갖 허위… 그런 것밖에는 없다.
 
  이제 나는 생활의 안락함을 버리고 산문에 들어서는 출가 납자의 초발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다.(하략)〉(302쪽)
 
  책을 덮었다. 무 자르듯 이 대목을 읽어서 그런지 별 느낌이 없고 과장되게 느껴졌다. 그래도 기자의 20대 때 열광하던 책이었다. 정색하고 다시 읽으면 스무 살의 열정으로 돌아갈까.
 
  반가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최혁곤의 장편소설 《B파일》. 작가는 기자의 친구다. 2013년에 이 소설이 나왔는데 읽은 기억이 없다. 놀랍게도 이 소설로 한국추리문학 대상을 받았다. 그의 다른 작품인 《은퇴 형사 동철수의 영광》 《탐정이 아닌 두 남자의 밤》, 그리고 첫 장편인 《B컷》은 읽었다.
 
  신문 편집기자인 최 작가는 낮엔 일하고 밤과 주말에 추리소설을 썼다. 총각 시절 그는 서울 마포경찰서 뒤편 언덕 3층 옥탑방에 살았는데 술에 취해 더러 찾아간 일이 있었다. 지금은 재개발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당시 기자는 집이 서울의 끝자락에 있었고 주말부부를 하고 있었다. 2001년인지 2002년인지 분명하진 않지만, 저녁 무렵부터 폭설이 내려 길이 끊기고 도로가 마비되었다. 도저히 집에 갈 엄두가 안 나 옥탑방엘 찾아갔었다.
 
  방이 조금 어두컴컴했지만 소설을 공부하며 읽은 책들이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그가 얼마나 소설을 쓰고 싶어 하는지, 얼마나 대단한 열정을 지녔는지 알게 돼 새삼 놀라웠다. 지금처럼 많은 추리 장편 소설집을 낼 만큼 성장하리라곤 그땐 몰랐다.
 
  그날 밤 우린 문학 얘기를 나누다 잠이 들었고 이튿날 오전 5시30분쯤 옥탑방을 나섰다. 당시 기자는 석간신문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늦어도 6시까지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가야 했다. 누구도 밟지 않은 하얀 비탈길을 조심조심 내려가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B파일》을 뒤적이는데 이 문장이 눈에 꽂혔다.
 
  〈자신을 믿어. 나의 길은 틀리지 않아.〉(49쪽)
 
  마치 30대 초반의 무명 시절, 친구가 스스로에게 건네는 주문처럼 느껴져 미소가 나왔다.
 
 
  옛 잡지들…
 
보수동 책방골목 한 책방에 옛 잡지인 《학생중앙》 《선데이 서울》 《주간한국》 등이 투명 보호 비닐이 씌워진 채 진열대에 꽂혀 있다.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옛날 잡지를 찾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진열대에 《학생중앙》 《선데이 서울》 《주간한국》 《주간경향》 《스포츠동아》 등이 투명 보호 비닐이 씌워진 채 꽂혀 있었다. 1970~80년대 잡지였다.
 
  《학생중앙》 표지에 ‘77 대학입시 대비 대학진학 백과’와 함께 ‘학생기자 합동취재: 책가방은 고생 보따리인가’라는 굵은 제목이 적혀 있었다. 교복 입은 남녀학생 모델이 표지를 장식했다. 남학생 명찰에 적힌 이름은 ‘호광석’. 여학생 명찰은 보이지 않았다. 특별히 선발된 우등생이 아니었을까?
 
  문득 잘생긴 ‘호광석 군’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겨 이리저리 찾아보았다.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를 받았고, 《한국정당체계 분석》 《한국의 정당정치》를 펴낸 정치학자가 되어 있었다. 현재는 사단법인 정부정책연구원장. 그는 자신의 얼굴이 표지에 실린 《학생중앙》을 추억하고 있을까. 그렇다면 부산 보수동으로 가시면….
 
  ‘장훈, 3천(千) 안타 신기록에 도전’이라는 문구가 적힌 《스포츠동아》도 보였다. 장훈은 1959년 도에이 플라이어즈에 입단해, 1981년 롯데 오리온즈에서 은퇴했다. 일본 리그(NPB)에서 총 23년간 뛰며 3085개의 안타를 쳤으니 이 잡지에 적힌 ‘신기록 도전’은 성공한 셈이다.
 
  이 기록은 아직 깨지지 않은 불멸의 기록이다. 장훈의 어록 중에 이런 말이 있다.
 
  “현역 시절 3085개의 안타를 쳤지만 단 한 번도 즐거웠던 적이 없습니다. 필사적으로 쳤지요. 다시 태어나도 두 번 다시 야구 선수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되돌아보면 잘해도 70~80%는 실패했으니까요. 23년간 괴로웠습니다.”(2017년)
 
  “23년간 괴로웠다”는 그의 말이 슬프게도, 그리고 당연하게도 느껴졌다. 보통 사람은 느낄 수 없는 그만의 괴로움이야말로 무엇과 바꿀 수 없는 위대한 상처가 아닐까.
 
  1970년대 여배우 트로이카 중 한 명인 탤런트 유지인이 표지에 등장하는 《선데이 서울》도 보였다. 제호 옆에 깨알 같은 글씨로 ‘1978년 10월 1일 발행’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 잡지의 커버스토리는 ‘인정(人情)을 가득 실은 부부버스, 남편은 기사님 아내는 안내원’이었다.
 
 
  이곳에서 만난 《월간조선》 1995년 신년호 별책부록
 
《월간조선》 1995년 신년호 별책부록 《한국인의 성적표》.
  1980년 4월호 《주간한국》의 표지 인물은 환하게 웃고 있는 김영삼(金泳三·1928~2015년)과 김대중(金大中·1924~2009년)이었다. 사진 중간에 ‘재야 신당 통일당 합류 가능성’이라고 적혀 있었다. 한 달 뒤 일어난 ‘서울의 봄’과 ‘광주 5·18’의 비극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으리라. 이 잡지의 판매가격은 3만원이었다.
 
  어느 책방에 들렀더니 잡지 《사상계》가 벽면 가득 ‘투명 비닐’ 옷을 입고 꽂혀 있었다. 전체는 없고 1956년과 57년, 60~62년도 사이에 간행된 수십 권이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책방 주인에게 “낱권은 얼마에 파는지” 물었더니 대꾸가 없었다. 뜨내기 손님의 질문을 많이 받아서일까.
 
  《월간조선》 1995년 신년호 별책부록 《한국인의 성적표》를 찾은 것은 행운이었다. 나름 ‘득템’이었다. 《월간조선》 본사에도 이 책은 없다. 6·25전쟁 직후 폐허가 된 서울과 경제 발전한 서울을 대조한 사진이 인상적이었다. 굵직한 표지 문구 역시 감동적이었다. ‘피·땀·눈물로 쓴 해방 50년 우리 시대의 내용증명’, 그 하단에 “우리는 일밖에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고 적혀 있었다.
 
어느 책방에서 《이어령전작집(李御寧全作集)》(총 6권, 동화출판공사)과 양주동의 《여요전주(麗謠箋注)》(을유문화사)가 눈에 띄었다.
  《이어령전작집(李御寧全作集)》(총 6권, 동화출판공사), 그리고 양주동(梁柱東·1903~1977년) 박사의 그 유명한 《여요전주(麗謠箋注)》(을유문화사)도 눈에 띄었다. 기자는 삼성출판사가 전집으로 묶은 《이어령전집》(총 20권)은 본 일이 있지만 동화출판공사 것은 처음 봤다. 생전에 선생이 기자에게 문학사상사가 펴낸 《이어령 라이브러리》(총 20권)를 빌려주었는데 아직 반납하지 않고 있다. 《월간조선》이 연재 중인 ‘끝나지 않은 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를 마치면 꼭 반납하리라.
 
  《여요전주》는 1946년 초판이 발행됐다. 신라 향가를 계승한 고려가요를 석주(釋註·풀이하고 주석을 단)한 책. 국립중앙도서관에도 초판은 없고 7판(1963년도 간행)만 있다. 까치발을 하고 책을 꺼내 훑어보고 싶었지만 오래된 책이 바스러질까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개뼈 선생!”
 
  이 골목에서 만난 헌책엔 저마다의 사연이 담겨 있다. 책에 귀를 대면 추억의 열쇠 꾸러미가 찰랑거리는, 혹은 만월(滿月)의 개펄이 내는 세월의 두런거림이 들릴지 모르겠다.
 
  정말이지 책과 책방에는 굵직한 인물이 있고 사건이 있으며 이야기가 있다. 지나가던 ‘책손’이 만지면 논둑 같은 옛 사연이 툭 터져 흘러내릴 것만 같다.
 
  책에는 익살맞고 노골적인 이야기꾼, 가시 돋친 싸움꾼, 입만 열면 풍문을 쏟아내는 거짓말쟁이, 잘난 척하는 수다쟁이, 무슨 밀어(密語)를 줄줄 꿰고 있는 사랑꾼이 숨어 있으리라. 어느 책을 펴도 번뜩이는 재치와 열의, 연극 같은 삶의 반전이 일어날 것만 같다. 왜 전국에서 이 책방골목을 찾기 위해 부산을, 보수동을 찾는지 알 것만 같다.
 

  확신할 순 없으나, 가장 그럴듯한 삶의 가정(假定)을 찾기 위해, 황당하고 터무니없던 한때의 꿈을 털어놓기 위해, 타인이 그어놓은 밑줄, 그들의 손때가 묻은 헌책을 함께 읽고 공감한다. 기자는 이날 구입한 폴 오스터의 소설 《동행》(2000년)에 나오는 한 문장을 작은 소리로 읽어보았다.
 
  〈그런데 개뼈 선생! 자네는 절정기 때의 나의 모습을 보지 못했어. 그게 유감이야. 쇠락해가는 인간으로서만 나를 알아 왔다는 게 유감이야. 옛날엔 달랐어.(후략)〉(88쪽)
 
  헌책이 우리에게 하는 충고처럼, 환청처럼 들리는 것은 왜일까. 헌책도 한때는 신간이었던 적이 있었으리라. 빛나는 무지갯빛 커버를 두른….
 
  책방골목에서 상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평생 책과 씨름하고 골목을 지켜온 책의 산증인들이었다. 반석서점 고춘주씨의 말이다.
 
  “5만~6만 권 정도는 될 겁니다. 지하에도 책이 많이 있어요. 책방을 한 지 20년 조금 넘었죠. 다른 분들은 대부분 40~50년씩 했어요. 연세가 많으세요. 번성할 땐 50~60곳 정도 됐는데 지금은 30곳이 안 됩니다. 한 분이 2~3개 책방을 소유한 분도 있고요.”
 
 
  “책으로 엮은 문화공간, 역사적 공간은 돈으로 살 수 없어”
 
보수동 책방골목 어디를 가든 많은 책이 무너질 듯 쌓여 있다. ‘책시렁’에서 뒤죽박죽 어수선하기 짝이 없었다. 책장이 비좁았다.
  우리글방 문옥희씨는 최근 이 골목에 15층 오피스텔이 들어선다고 알려지자 시름이 컸었다. “책방골목을 살려달라”는 간절한 호소에 사람들이 귀를 기울였다.
 
  “건물주가 기존 책방과 상생하는 리모델링 형태로 신축계획을 바꾸었어요. 엄청난, 희망적인 사건이고 이 골목을 살리는 데 어떤 전환점이 될 것 같아요.
 
  보세요. 책으로 엮은 문화공간, 6·25전쟁의 슬픔이 새겨진 역사적 공간은 아무리 돈으로 살려 해도 살 수 없어요.”
 
  온달서점 남명철씨는 책방골목 인연이 44년째다. 대학에 다니다 군 복무 후 복학할 형편이 안 돼 책방에 눌러앉았단다. 20년 전만 해도 월세가 160만~180만원이었을 만큼 장사가 잘됐다.
 
  “요즘 학생들은 책을 안 봅니다. 그저 스마트폰하고만 친하죠. 책을 읽는 고객층이 50대 이상입니다. 이 골목이 죽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젊은이들이 결혼을 안 하니 아이가 줄고, 자연 책을 사서 읽는 학생도 줄 수밖에요.”
 
  충남서점의 남명섭씨는 실제로 충청도 출신이다. 인생의 5분의 3을 보낸 부산을 제2의 고향이라고 부른다. SBS 〈생활의 달인〉에 출연했을 정도로 귀신같이 책을 찾는다. 헌책에 적힌 낙서를 감쪽같이 지우는 솜씨도 자랑거리.
 
  “10여만 권의 책 위치를 정확히 기억해 고객이 원하는 책을 바로 찾을 수 있어요. 책방에서 한세월을 낚다 보면 자연 그렇게 됩니다.”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책방 중의 하나인 중앙서점의 ‘책시렁’은 텅텅 비어 있었다. 안종화씨는 “책장이 빈 것은, 어느 손님이 자기 모교 도서관에 책을 기증한다면서 우리 책방 것을 사 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책을 다 처분하고 책방도 접으려 생각했는데 내년 2월까지 월세 70만원을 계속 내야 해서 다시 골목에 나오게 됐어요. 내년 2월 이후? 그만둬야지. 나이가 여든하난데….”
 
  《월간조선》 기자라는 신분을 밝히자 “조갑제 기자가 펴낸 좋은 책이 많은데…”라며 책 두 권을 꺼냈다. 이 책은 ‘기증 책’으로 팔지 않은 모양이었다.
 
  “기자 양반! 이 책 가지고 있나요? 이것, 귀한 겁니다”라며 조 기자가 쓴 《한강의 새벽》(2011년)과 《역적모의》(2013년)를 숨겨둔 보물 꺼내듯 보여주었다.⊙
 
부산 책방골목 어떻게 살릴까
 
  지난 6월 29일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흥미로운 발표회가 열렸다. 대전세종연구원 이재민 박사와 부산대 우신구 교수(건축학과)가 나와 ‘책 잇는 마을’인 보수동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얘기했다.
 
  다음은 이재민 박사의 발언 요지.
 
  “6·25전쟁 이후 많은 지식인, 문화인들이 보수동으로 몰려왔다. 출판사, 인쇄소가 밀집했고 전시연합대학과 전란을 피해온 임시학교들이 모여들었다. 그렇기에 책이 반드시 필요했다. 1960년대 이후 70여 점포가 성업했다. 신학기엔 번호표를 받아야 책을 살 수 있을 만큼 ‘핫 플레이스’였다. 1997년 IMF 때는 오히려 헌책이 잘 팔렸다. 2000년대 초반 이후 대형 서점과 온라인 서점이 생기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보수동 책방골목은 책이라는 지식상품, 지식유통의 공간 역할을 한다. 역사자원이자 문화유산으로 책 문화의 거점, 그리고 ‘제3의 공간’으로 나아가야 한다. 미국 도시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Ray Oldenburg)에 따르면 제1의 공간은 집, 제2의 공간은 직장이다. 제3의 공간은 스트레스가 없고 심리적으로 편안하게 여유를 느낄 수 있는, 바로 보수동 책방골목 같은 공간을 말한다.”
 
 
  “부산 책방골목은 고립된 섬이 아니다”
 
  우신구 교수는 “보수동 책방골목이 성공하기 위해 세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집이 대신동이었다. 버스를 타고 자갈치시장 입구에서 내려 영어학원에 다녔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걸어 다녀도 될 것 같았다. 걷다 보니, 새로운 세상이 있더라. 보수동 책방골목이었다. 버스비를 아껴 책을 샀다. 연도만 다를 뿐 새 책과 내용이 똑같았다. 대학에 들어가 건축학을 전공했는데 귀한 건축서적을 이곳에서 살 수 있었다. 물론 공부책만 사지 않았다. 《스크린》 《로드쇼》, 일본 영화잡지도 이곳에서 샀다.
 
  일본이 도시재생에서 성공한 사례를 보면 공통점이 있더라. 세 사람이 필요하다. 주민들 중 ‘미친 사람’이 한 명은 있어야 한다. 자기 생업을 떠나 마을 전체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자 말이다.
 
  젊은 사람도 필요하다. 새로운 감각으로 현재와 미래를 바라봐야 한다. 심지어 외부 지역 젊은이, 외국인 젊은이가 오는 공간이 돼야 보수동 책방골목이 살 수 있다.
 
  ‘시골 나물을 오일장에서 팔아도 외부인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마을 사람만으론 안 된다. 공감하는 외부인의 협력을 끌어내야 한다. 부산 책방골목은 고립된 섬이 아니다. 한국의 책방골목, 나아가 아시아의 책방골목을 지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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