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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으로

역사학자 임용한 박사가 말하는 《삼국지》 이야기

《삼국지》로 본 성공하는 리더 실패하는 리더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ironhee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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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삼국지》에서의 교훈은 대중의 심리에 맞춘 것… 아마추어가 그대로 따라 하면 큰일 난다”
⊙ “조조, 獨善的인 리더로 변하면서 直言하는 참모가 없어 적벽대전에서 패해”
⊙ “원소, 시대의 변화 읽었지만 자신을 바꾸지 못해 敗亡”
⊙ “유비, 원래는 관대했지만 왕이 된 후에는 반대 못 받아들여”
⊙ “손권, 주어진 한계 극복 못 하고 자포자기해 폭주”
⊙ “‘간손미’가 없는 조직은 망한다”
⊙ “망하는 리더는 ‘무능력한 놈이 나한테 충성할 것’이라는 희한한 결론 내리더라”
⊙ 윤석열·이재명·이준석은 《삼국지》 속 누구?
적벽대전 당시 황개의 거짓 항복과 火攻은 사실이지만, 苦肉之計는 사실이 아니다.
  석 달 전 신간 안내용 책이 하나 배달되었다. 《전략삼국지》(교보문고 펴냄). ‘세상의 모든 전략은 삼국지에서 탄생했다’는 부제(副題)와 함께 “누적 조회수 8000만이 넘는 유튜브 국방TV 〈토크멘터리 전쟁史〉와 〈순삭밀톡, 삼국지 뒤집기〉에 출연하여 역사 마니아들의 큰 호응과 사랑을 받았다”는 저자 소개가 눈길을 끌었다. 저자가 연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경희대에서 한국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유튜브에서 하는 그의 《삼국지(三國志)》 강의에 대한 호평을 들은 적이 있었다. 전쟁사(戰爭史)를 강의하는 한국사 전공자의 《삼국지》 강의라니, 흥미가 동했다. 찌는 듯한 7월 말의 여름날 서울 논현역 근처에 있는 KJ인문경영연구원으로 ‘삼국지 아저씨’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책의 저자 임용한(林容漢) 박사를 찾아갔다. [《삼국지》에는 진(晉)나라의 진수(陳壽·233~297년)가 지은 삼국의 역사서인 정사(正史) 《삼국지》와 흔히 《삼국지》라고 통칭되는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혹은 《삼국연의》)가 있지만, 여기서는 《삼국지》로 통일하되, 필요에 따라 ‘정사 《삼국지》’ 혹은 ‘소설 《삼국지》’라고 구분한다.]
 
 
  조선 정치사에서 《삼국지》로
 
《전략삼국지》
  — 원래 여말선조(麗末鮮初) 정치사를 전공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네. 원래 조선의 국가 체제, 즉 조선이라는 나라가 총체적으로 어떻게 만들어진 나라인가를 연구했습니다. 조선 초기 《경제육전(經濟六典)》에서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이르는 제도 변천 과정을 연구하다 보니, 제도라는 게 서로 연결이 되어 있더군요. 예를 들어 군사제도를 개혁하려면 세제(稅制) 개혁을 해야 합니다. 재정을 충당해야 하니까요. 재정을 충당하자면 토지 개혁을 해야 하는데, 이는 다시 신분제도 개혁과 맞물려 있어요. 신분제도 개혁은 또 교육제도 개혁과 연결되지요.”
 
  — 그런 연구가 어떻게 전쟁사 연구로 이어졌습니까.
 
  “여말선초에 제일 중요한 건 군사 문제였습니다. 조선은 ‘100년 전쟁’ 끝에 건국한 나라니까요. 그런데 기존의 군사제도에 대한 연구들을 보니 대개 행정적인 면만 보고 있더군요. 그와 관련되는 전술(戰術)에 대한 연구가 빠져 있는 겁니다. 예를 들어 최말단 부대를 5명으로 하느냐, 6명으로 하느냐 하는 것은, 그것이 위(魏)나라 제도냐 송(宋)나라 제도냐, 한국 고유의 제도냐 하는 것 이전의 문제입니다. 그건 실전(實戰)에서 어떤 적(敵)을 상대로 어떻게 싸우느냐, 무장(武裝)은 어떠냐 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관심이 전쟁사로 이어지게 된 것이죠. 지금 말씀드린 얘기들을 이런저런 자리에서 했더니, 직접 전쟁사를 써보라고 해서 《전쟁과 역사》 《한국고대전쟁사》 등을 쓰게 되었습니다.”
 
  임용한 박사가 《삼국지》로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 것은 국방TV의 〈순삭밀톡, 삼국지 뒤집기〉를 통해서였다.
 
  ― 〈순삭밀톡, 삼국지 뒤집기〉는 어떻게 해서 하게 되었습니까.
 
  “전쟁사와 관련된 책을 내고 글을 쓰니 국방TV에서 제안이 들어와 〈토크멘터리 전쟁史〉를 3년 가까이 진행했습니다. 제작진이 작은 프로그램 하나를 새로 기획 중인데 도와달라고 하더군요. 〈토크멘터리 전쟁史〉를 하느라 이미 체력이 한계에 달했던 상황이라 곤란하다고 했는데, 낮은 제작비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제작진을 보니 모르는 척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때 찾아낸 아이템이 《삼국지》였습니다. 오래전부터 소설 《삼국지》가 아닌 정사 《삼국지》를 다루어보고 싶다고 생각해왔거든요.”
 
 
  “소설과 현실은 다르다”
 
임용한 박사. 사진=임용한 제공
  — 《삼국지》는 어려서부터 좋아했나요.
 
  “중학교 때는 친구들과 누가 《삼국지》를 많이 읽나 경쟁을 했는데 15번인가 20번인가까지 세다가 그만두었어요.”
 
  — 누구의 《삼국지》였습니까.
 
  “기억은 잘 안 나는데 월탄 박종화의 《삼국지》였던 것 같아요. 어린이용으로 나온 고우영의 《만화삼국지》도 봤고.”
 
  — 소설 《삼국지》와 정사 《삼국지》는 많이 다르지요.
 
  “단순히 다른 게 아니고 교훈이 완전히 바뀌어버리죠.”
 
  — 교훈이 바뀐다는 것은 무슨 얘기입니까.
 
  “정사 《삼국지》에도 정말 훌륭하고 생생한 교훈이 많아요. 그런데 소설 《삼국지》에서의 교훈은 대중의 심리에 맞춘 것이죠. 사람들이 ‘이러면 좋을 것’이라고 막연히 감성적으로 쓴 것인데, 현실에서는 그렇게 안 되죠. 특히 리더십의 경우 《삼국지》를 보고 아마추어식으로 따라 하면 큰일 나죠.”
 
  — 그렇죠.
 
  “이건 《손자병법(孫子兵法)》에도 나오는 얘기인데, 조직에서 초보 리더의 경우 조직 구성원들을 처음에는 겁을 확 주면서 죄다가 회식 같은 데서 확 풀어주는 식으로 이끌어가려고 하는데, 이건 잘못입니다.”
 
  — 왜 그렇습니까.
 
  “리더는 그렇게 하면서 자기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죠. 그러나 구성원들은 리더가 능력이 없어서 자기들을 그런 비겁하고 원시적인 방법으로 다룬다는 걸 다 압니다. 이런 조직은 평상시에는 그럭저럭 굴러가지만, 만약 전쟁과 같은 비상시에는 안 돌아가요. 병사들이 지휘관을 믿고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지휘관의 능력에 대한 신뢰, 지휘관의 진정성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병사들이 지휘관에 대해 ‘저 사람은 우리를 진정으로 위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의 약점(弱點)을 잡아서 갖고 노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런 조직이 제대로 돌아가겠어요? 손자(孫子)가 이런 얘기를 한 것이 이미 2500여 년 전인데, 아직도 리더의 90% 이상은 이런 실수를 할 겁니다.”
 
 
  7종7금의 허구
 
  — 그럴 겁니다.
 
  “그런데 《삼국지연의》는 바로 그 90%에 맞추는 책이죠. 그냥 사람들이 공감만 하면 되니까요. 사실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얘기 중에서 유명한 고사성어(故事成語)와 관련된 것들은 대부분이 사실이 아니에요.”
 
  — 예를 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제갈량(諸葛亮·181~234년)이 남만왕(南蠻王) 맹획(孟獲)을 7번 사로잡았다가 7번 풀어주었다는 ‘칠종칠금(七縱七擒)’의 이야기를 하면서 사람들은 제갈량이 그렇게 해서 ‘맹획의 마음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멋있는 말이니까 다들 좋아해요. 그런데 현실 세상에서 이렇게 한다고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요? 하물며 실제로 얻어야 하는 것은 마음이 아니라 신뢰입니다. 그리고 그 신뢰는 계약적인 신뢰입니다. 가족 간의 관계에서는 마음을 얻을 수 있나요? 가족 안에서도 늘 갈등이 벌어지고, 부부도 같이 살다가 이혼하잖아요? ‘마음을 얻는다’는 건 상대를 노예로 만든다, 다시 말해서 노예로 대한다는 것입니다.
 
  전쟁터에서 부하에게 ‘넌 내가 죽으라고 하면 죽어라’라고 하면, 어느 부하가 그렇게 합니까? 그들도 다 자아(自我)의 주체(主體)입니다. 전쟁의 대의(大義)와 지휘관의 선택에 공감하면서 ‘위험하지만 우리의 리더가 어쨌든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믿음하에서 같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 맞습니다.
 
  “7종7금이라는 것도,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부하들을 조였다가 회식 같은 것으로 풀어주면서 자기 혼자 잘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면 정말 사람이 마음으로 승복할까요? 오히려 ‘이 사람은 나를 갖고 놀고 있다’고 생각하겠지요. 그렇게 해서 무슨 마음을 얻습니까? 그리고 현실에서는 상대를 7번씩 사로잡는 것 자체도 불가능하죠. 그러자면 자기 부하들도 많이 죽을 것입니다. 사로잡힌 입장에서도 자기를 얻기 위해 자기 부하들을 그렇게 희생시키는 사람을 믿을 수 있을까요? 그래서 7종7금은 현실에서는 완전 말도 안 되는 방법이에요.”
 
 
  적벽대전과 관도대전
 
  — 역사를 전공하고 전쟁사를 연구한 입장에서 《삼국지》를 보면 다른 사람에게는 안 보이는 게 보일 것 같은데요.
 
  “그런 것 때문에 이 책 《전략삼국지》을 쓴 거죠. 조조(曹操·155~200년)와 원소(袁紹·?~200년)가 싸운 관도(官渡)대전(200년), 조조의 서주(徐州)정복전(193~194년), 적벽(赤壁)대전(208년), 유비(劉備·161~223년)와 손권(孫權·182~252년)이 싸운 이릉(夷陵)전투(221년), 조조의 요서(遼西)공략(206~207년) 등이 다시 보이더군요. 그 뒤의 제갈량과 강유(姜維·202~264년)의 북벌(北伐) 같은 것은 문학적으로는 훌륭해도 현실과는 큰 상관이 없는 것들이었고…. 또 제갈량의 북벌과 강유의 북벌이 어떻게 다른지, 촉(蜀)나라가 멸망할 당시 벌어졌던 전투의 전술들, 오(吳)나라가 왜 수비에는 강한데 공격은 안 되느냐 같은 것들에 대해 이해가 되더군요.”
 
  — 책을 보면 역사 속에서 적벽대전은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고, 오히려 관도대전이 더 중요했던 것처럼 느껴지더군요.
 
  “적벽대전이 역사적으로 중요하기는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큰 전투는 아니었다는 얘기죠. 사실 그 전에 조조군은 전염병으로 전투력이 다 떨어져 있었어요. 정말 대군(大軍)이 충돌해서 전술적으로 부딪치면서 우리가 영화에서 보듯이 다이내믹하게 싸운 것은 적벽대전보다는 관도대전이죠.”
 
 
  “《삼국지》는 處世書가 아니다”
 
  — 《삼국지》를 무슨 경영서(經營書)나 처세서(處世書) 같은 걸로 여기는 경우도 많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역사가 구체적인 처세술을 가르쳐주는 것은 아니죠. 심리학자처럼 ‘대화할 때는 이렇게 해라’ 하는 것까지 가르쳐주는 역사책은 없다고 생각해요. 역사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인간에 대한 본래적인 이해를 보여주는 것이고, 전쟁사는 특히 그런 부분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 그렇죠.
 
  “《삼국지》의 시대(184~280년·황건적의 난~오나라 멸망)는 중국 역사에서도 보기 드문 긴 내전(內戰)의 시대였습니다. 그 와중에 수많은 영웅이 리턴 매치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처세나 경영과 관련해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다만 대개 《삼국지》에 대해 얘기한다고 하면 소설을 바탕으로 하는데,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현실과 소설은 다르기 때문에 그것을 바로 현실에 적용하려고 하다가는 큰일 나겠죠. 전략이라든가 리더십은 정말 냉철한 이성(理性)이 필요한 건데, 소설은 철저하게 감성에 맞춰져 있잖아요. 리더십의 기본은 감성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것인데 말이죠.”
 
 
  “三顧草廬는 모든 사회인의 로망”
 
‘三顧草廬’ 이야기는 수많은 화가가 그림으로 되풀이해서 그렸다.
  — 《삼국지》에 나오는 얘기들 가운데 사실과 다른 것들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예를 들어 삼고초려(三顧草廬)는 사실이기는 한데 구체적인 스토리는 다르죠.”
 
  — 어떻게 다른가요.
 
  “유비가 제갈량을 세 번 찾아갔다는 얘기는 정사에도 나오고 제갈량의 출사표(出師表)에도 나오니 사실입니다. 하지만 유비가 관우(關羽·?~219년)와 장비(張飛·?~221년)를 거느리고 제갈량의 집을 찾아갔지만 두 차례 헛걸음을 했고 세 번째에서야 만났다는 얘기는 소설적인 창작이죠. 정사 《삼국지》에 따르면 제갈량은 유비와의 만남에서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를 논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유비는 제갈량을 만나지 못한 게 아니라 세 번 찾아가 천하 정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 하여튼 삼고초려는 《삼국지》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죠.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한탄은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 이끌어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죠. 한탄은 불만이 됩니다. 즉 옛날 재야(在野)의 선비에서부터 오늘날 회사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회인에게 유비의 삼고초려는 로망에 가까운 장면입니다. 세상 어딘가에 내가 가진 재능을 알아보고 더 나은 세상으로 이끌어줄 누군가가 있다는 로망은 고단한 삶에 있어 커다란 희망 아니겠어요?”
 
  — 소설 《삼국지》에 나오는 얘기 중에서 사실과 다른 것은 또 어떤 게 있을까요.
 
  “적벽대전 당시 오나라 황개(黃蓋·생몰연대 미상)가 조조에게 거짓 투항을 하면서 조조를 속이기 위해 고육지계(苦肉之計)를 썼다는 것도 사실이 아닙니다. 황개가 거짓 항복을 한 후에 화공(火攻)을 가해 큰 승리를 거둔 것은 사실이지만….”
 
  — 그럼 거기에 왜 고육지계 같은 얘기가 붙은 건가요.
 
  “황개의 거짓 항복은 사실 굉장히 어설픈 것이었는데, 천하의 조조가 거기에 넘어가버린 겁니다. 당연히 의심을 해봐야 하는 상황인데도 조조가 너무나도 쉽게 넘어갔기 때문에 소설가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그게 믿기지 않는 거죠. 그래서 고육지계라는 걸 집어넣은 것이죠.”
 
  — 말씀처럼 ‘천하의 조조’가 왜 그렇게 쉽게 넘어간 것일까요.
 
  “조조도 너무 큰 성공이 눈앞에 있으니까 그만 흥분했던 것이죠. ‘이 고비만 넘기면 모든 것이 다 끝난다’ 싶은 상황까지 왔는데 전염병 같은 몇 가지 난관이 생기니까 초조해진 겁니다. 그런 참에 황개가 투항해 온다니까 조조도 그냥 속아 넘어가버린 거죠. 위대한 지성(知性)을 가진 사람도 순간의 감성을 이기지 못할 때가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죠.”
 
  — 그렇군요.
 
  “이런 때에 필요한 것이 옆에서 어떤 쓴소리라도 할 수 있는 참모, 또는 냉정한 정보 분석가입니다. 조조가 패전(敗戰)한 후에 ‘곽가(郭嘉·170~207년)가 있었더라면…’이라고 탄식했던 것도 그래서였습니다.”
 
  — 사실 《삼국지》의 인물들 가운데 조조만큼 탄탄한 참모진을 가진 사람도 없잖습니까.
 
  “다른 참모도 많았지만, 감히 직언(直言)을 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죠. 초기의 조조는 참모들의 의견을 경청했고, 그 때문에 많은 사람이 조조에게 몰려들었어요. 하지만 조직이 커지면서 리더는 남을 의심하고 스스로 장막을 치게 됩니다. 고독해지는 것이죠. 적벽대전이 일어날 즈음에 조조는 독선적(獨善的)인 리더가 되어 있었고, 주위에서는 직언을 꺼리게 되어버린 거죠. 그가 적벽대전에서 진 이유는 바깥에 있는 게 아니라 안에 있었던 것이죠.”
 
 
  “《삼국지》의 매력은 삼각관계에서 나와”
 
  — 중국의 역사를 보면 춘추전국(春秋戰國)이나 초한쟁패(楚漢爭覇), 원말(元末)의 군웅할거(群雄割據) 등 이야깃거리가 무궁무진합니다. 한데 유독 후한(後漢) 말에서부터 100년 동안의 역사가 《삼국지》로 소설화되어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많은 내전과 혼란기가 있었지만, 대체로 강자(强者)가 빨리 정해지고 수습도 빨랐어요. 하지만 《삼국지》의 경우, 군웅들의 리턴 매치를 거쳐 세 나라로 분립(分立)이 되는데, 1대 1의 싸움과 3자 간의 싸움은 스토리의 구성이 확 달라집니다.”
 
  — 아하!
 
  “소설 《삼국지》의 절대적인 매력은 촉·위·오 세 나라의 삼각관계에서 나옵니다. 두 나라의 대결이었다면 결코 그런 역동적인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했을 겁니다. 나관중(羅貫中·?~1400년)은 이 매력 요소를 극대화하기 위해 매우 중요한 작업을 했는데, 삼국 간에 절묘한 균형을 넣은 것입니다. 촉·위·오의 비중을 2대 2대 1.5로 한 것이 그것이죠.”
 
  임용한 교수는 ‘경쟁과 성장 스토리’도 《삼국지》의 인기 요인 중 하나로 꼽았다.
 
  “《삼국지》를 보면 주인공들이 바닥에서 일어나서 당대(當代)에 3분의 1 정도를 이루어놓고 다음 세대로 이야기가 넘어가잖아요? ‘완결(完決) 안 된 완결’이면서도, 주인공을 기준으로 보면 성장해서 죽을 때까지 어떤 자체 완결성을 가진 풀 스토리(full story)로 볼 수 있는 거죠.
 
  명(明)나라를 세운 주원장(朱元璋·1328~ 1398년) 같은 경우는 밑바닥에서 일어나서 당대에 자기가 천하 통일을 해버립니다. 인물의 다이내믹성, 다양성, 전략, 갈등 같은 것들이 안 보여요.
 
  프로야구에 비유하면 마지막 순간까지 서너 팀이 1등 경쟁을 하다가 승부가 안 나서 리턴 매치를 하는 것이 《삼국지》라면, 주원장의 이야기는 갑자기 나타나서 백전백승(百戰百勝)하듯이 싹 쓸어서 먹어버리는 《공포의 외인구단》이라고 할까요?”
 
 
  “일찍부터 《삼국지》 주인공들의 캐릭터化 진행”
 
正史 《삼국지》에 註를 단 宋나라의 배송지.
  《삼국지》는 정사인 진수의 《삼국지》를 바탕으로 나관중부터 청(淸)나라 때의 모종강(毛宗崗·생몰연대 미상), 김성탄(金聖歎·1610~1661년) 등을 거치면서 오랜 세월 동안 소설화되었다.
 
  《삼국지》의 흥행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사람이라면 누구일까?
 
  “잘 알려져 있다시피 《삼국지》는 어느 한 사람의 100% 순수한 창작이 아니죠. 흥미로운 것은 정사 《삼국지》가 나왔을 때에 이미 당대 사람들이 이 작품의 흥행성을 느꼈던 것 같다는 점입니다.”
 
  — 그렇게 일찍?
 
  “남북조(南北朝) 시대 송나라의 배송지(裴松之·372~451년)가 정사 《삼국지》에 단 주석(註釋)을 보면, 지금은 실전(失傳)된 야사(野史)나 외사(外史)를 풍부하게 인용하고 있어요. 동탁(董卓·139~192년)을 암살하려다가 실패하고 도망치던 중에 아버지의 친구 여백사를 살해하고 난 후 조조가 ‘내가 천하를 버릴지언정 천하가 나를 저버리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게 여기에 나와요. 《삼국지》의 시대로부터 불과 150년 정도 지났을 때인데, 그때 벌써 《삼국지》 주인공들의 캐릭터화가 진행되고 있었다는 얘기죠. 《삼국지》 속 조조의 캐릭터는 나관중이 소설화하기 훨씬 전부터 그렇게 형성되고 있었던 겁니다.
 
  우리가 보는 스포츠 스타나 연예인, 정치인의 모습도 다 이미지잖아요? 조조나 유비의 모습도 어느 한 작가가 창작한 게 아니라 그 시대에 이미 만들어지기 시작한 역사적 이미지인 것이죠. 배송지가 주석을 달 무렵에는 누가 만들었지는 몰라도 이미 《삼국지》의 50% 정도는 완성되어 있었다고 봅니다.”
 
  — 그럼 나관중의 역할은 무엇이었나요.
 
  “요즘 말로 세팅을 잘한 것이죠. 자기가 직접 면을 뽑고 육수도 만든 게 아니라, 면도 육수도 모두 다른 데서 사 왔는데, 조합(組合)을 기가 막히게 한 것이죠. 드라마의 원리가 ‘키울 사람은 키우고 죽일 사람은 죽인다’는 것인데, 그걸 참 잘했어요.
 
  또 원작(原作) 연구를 많이 해서 디테일한 부분까지 수정을 했습니다. 정사 《삼국지》를 보면, 조조도 유비도 ‘어린 시절에 공부를 안 하고 노는 것을 좋아했다’고 되어 있어요. 이것만 보면 두 사람 다 마찬가지잖아요? 나관중은 정사와 에피소드를 엮어서 여기에 변화를 주는데, 그렇다고 거짓말은 안 해요. 다만 유비는 ‘공부는 열심히 하지 않았지만, 인망이 있었다’고 하고, 조조는 ‘어릴 때부터 공부 안 하고 노는 것만 좋아했다’고 하는 식이죠. 역사 속의 빈 부분을 세팅하는데 외전(外傳)에서 만들어진 이미지와 정사에 있는 사건을 버무려 기가 막히게 엮어냈어요.”
 
 
  “《삼국지》는 정통 사극, 《수호지》는 무협지”
 
  — 중국에서는 흔히 《삼국지》와 《수호지(水滸誌)》를 쌍전(雙傳)이라고 하는데, 저는 솔직히 《수호지》는 재미가 없더군요.
 
  “《삼국지》가 정통 사극(史劇)이라면, 《수호지》는 흥미 위주의 무협지(武俠誌)라고 할 수 있지요. 《수호지》에는 철학적·전략적 이야기는 없죠. 굉장히 리얼하고 잔혹하기도 하고…. 하지만 재미로 보기에는 참 괜찮은 것 같아요. 가끔은 B급 영화가 더 재미있잖아요.”
 
  — 《삼국지》에서 가장 결정적인 전투를 하나 꼽는다면.
 
  “워낙 오랜 기간에 걸쳐 여러 전투가 있어서 하나만 꼽기가 쉽지는 않은데…. 저는 조조의 서주정복전을 꼽고 싶습니다. 조조가 자립(自立)하게 되는 계기이자, 유비가 유비가 될 수 있었던 계기이기도 하죠. 《삼국지》의 주인공을 두 사람 꼽는다면 유비와 조조인데, 두 사람 모두에게 결정적인 의미가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유비를 조조가 키워준 셈인 거죠.”
 
  — 서주 정복 당시 조조는 이미 허도(許都)에서 헌제(獻帝)를 끼고 천하를 호령하고 있지 않았나요.
 
  “《삼국지》에서는 그렇게 그리고 있지만, 사실 당시 조조의 기반은 그렇게 강하지 않았습니다. 준준결승까지 올라온 군웅 중에서는 최약체(最弱體)라고 할까요. 아직 사방의 적과 싸우면서 자기 영역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었고, 중간에 배신을 당해 거의 멸망할 뻔한 적도 있었지요. 이런 상황에서 서주를 얻기 위해 조조는 전격전(電擊戰)과 초토화(焦土化) 작전을 벌이는 무리수를 둔 것이죠. 그래서 영토를 얻기는 했지만, 그 영토의 절반은 조조의 대학살을 겪은 ‘분노의 땅’이었던 거죠. 게다가 영토가 커지다 보니 여포(呂布·?~198년), 원소, 원술(袁術·?~198년), 유표(劉表·142~208년) 등 주변의 강자들과 영토를 마주하게 되었고….”
 
  — 조조가 유비를 키워줬다는 건 무슨 의미입니까.
 
  “물론 조조가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었겠죠. 유비가 서주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서주의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유비가 필요했던 거죠.”
 
  — 유비가 그때 그만한 무게감이 있는 사람이었나요.
 
  “사람을 보는 것은 늘 상대적이죠. 정치를 봐도 A 같은 타입의 정치인을 좋아하다가 그로 인해 피해를 입으면 갑자기 B 타입의 정치인을 지지하게 되고, 평안한 상황이라면 C 같은 타입의 정치인에게 갈 표가 극적인 상황을 만나면 D 같은 타입에게 확 몰리기도 하잖아요.
 
  조조는 자기가 저지른 대학살 때문에 서주의 인심(人心)을 잃고 있던 참에, 서주의 민심(民心)이 인품(人品)이 있는 유비에게 쏠리자 조조는 유비를 서주의 통치자로 내세웠던 것이죠. 작은 성 하나 지키고 있던 유비는 갑자기 서주의 대표자로 올라서면서 조조, 원소, 원술, 유표 등이 서로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 하는 인물이 되었지요.
 
  또 하나, 유비가 서주에서 전 재산을 털어서 자신을 도와주는 미축(竺·?~221년) 같은 인물을 얻게 되었다는 것도 간과할 수 없지요.”
 
 
  “원소, 금수저 출신이지만 시대 변화 읽어”
 
원소
  — 조조는 자기가 유비를 키워주고 있다는 걸 알았을까요.
 
  “조조는 처음에는 유비를 도지사 정도 시켜주면 자기에게 충성을 바치겠거니 했는데, 데리고 있으면서 보니 ‘큰일 낼 놈’이라는 걸 깨달은 거죠. 그렇다고 유비를 없애자니 그러면 서주를 잃게 되는 딜레마에 빠진 거죠. 유비는 유비대로 조조가 그걸 눈치챘다는 걸 알고 탈출을 해서 반란을 일으키는 거죠. 사실 유비는 원래 원소 밑에서 대대장 정도의 자리에 있다가 원소 곁을 떠난 사람이었습니다. 유비를 어떻게 보았느냐 하는 데서도 조조와 원소의 역량 차이가 나타납니다.”
 
  — 원소는 집안이 좋은 금수저 출신이고, 지역 기반, 인재, 군대 등 초기 자산도 가장 많았던 사람인데, 왜 패망(敗亡)한 것일까요.
 
  “후한 말 당시의 상황은 사회 운영 원리도, 정치 운영 세력도 바뀌어야 하는 시대였어요. 원소는 4대(代)에 걸쳐 재상을 배출한 명문가(名門家) 출신이었지만, 요즘 말로 하면 심한 보수(保守), 옛 체제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었어요.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삼국지》의 앞부분에 조금 나오기는 하지만, 잠깐 나왔다가 사라지고 맙니다. 《삼국지》의 무대에 올라온 사람들은 일단 시대의 변화를 읽어낸 사람이에요. 원소도 금수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시대의 변화를 수용하려 했던 사람입니다.”
 
  — 원소가 ‘금수저 출신 꼴보수’가 아니었다는 건 뜻밖입니다.
 
  “원소는 명문가 출신이지만 어머니가 천민(賤民) 출신이어서 사회적 약자(弱者)들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았어요. 어머니가 사망하자 낙향(落鄕)해서 삼년상(三年喪)을 치렀는데, 당시만 해도 이는 흔치 않은 일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환관(宦官) 세력과의 싸움에서 패한 후 정치적으로 소외되어 있던 청류파(淸流派) 유가(儒家) 지식인들의 호감을 살 수 있었습니다.
 
  《후한서(後漢書)》 ‘원소전’을 보면 ‘원소는 선비들이라면 귀하고 천한 신분에 관계없이 자신과 대등한 예로 대하니, 원소를 찾아온 빈객(賓客)들의 귀하고 낮은 여러 가지 수레가 잇대어 거리를 가득 메웠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런 명망을 바탕으로 원소는 유주(幽州)·기주(冀州)·병주(幷州)·청주(靑州) 등 네 개 주를 손에 넣고 하북(河北)의 최강자로 성장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조조의 최고 참모인 순욱(荀彧·163~212년), 정욱(程昱·141~220년), 곽가가 모두 원소가 지배하는 지역 출신이라는 점입니다. 그들이 원소를 버리고 조조에게 갔다는 것은, 원소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는 얘기지요.”
 
 
  자신을 바꾸지 못한 원소
 
  — 그 문제가 무엇입니까.
 
  “원소는 문제의식도 있고, 그걸 해결하기 위해 공부도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그건 ‘리더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배워서 행동을 하는 수준이었어요. 하지만 사람에게는 그릇이라는 게 있잖아요. 부장에서 상무, 전무, 사장, 회장이 되고, 중대장에서 대대장, 연대장, 사단장이 되면, 요령만 배워서는 안 됩니다. 인품 자체가 바뀌어야 합니다. 그런데 원소는 그걸 못 했어요. 조조나 유비는 그걸 했는데 말이죠. 원소를 보면, 노력을 굉장히 한 티가 납니다. 그런데도 늘 하는 말과 속마음은 다릅니다. 그것은 본인이 안 바뀐 거예요.
 
  예를 들어 천성적으로 아끼는 사람이 있어요. 그렇게 알뜰살뜰하게 살아서 자기 사업체를 꾸리게 되었어요. 그러면 경우에 따라서는 100원 줄 것도 1000원, 1만원을 주어야 할 때도 있어요. 그런데 100만원을 줘야 할 경우에도 부들부들 떨면서 10만원밖에 못 준다면 되겠어요? 그럴 경우에는 돌아서서 반성하고, 다음에는 100만원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자기를 변화시켜야 합니다.”
 
  — 사람이 어디 쉽게 바뀌나요.
 
  “천품(天稟)은 안 바뀐다고 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천품이 안 바뀌는 게 아니라, 천품을 바꾸기 위해 고통을 감수하고 노력하지 않았던 거죠. 정치인 가운데서도 어느 단계까지는 성공하지만, 한 단계 더 올라서기 위해서는 자신을 바꾸어야 할 때, 그걸 못 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원소도 마찬가지였죠.”
 
  — 《삼국지》에 나오는 사람 중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런 질문을 많이 받는데, ‘누구를 제일 좋아한다’고 절대 말하지 않는다는 게 제 신조입니다. 어린애한테도 배울 게 있고, 모든 사람은 장점과 단점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분석의 대상인 동시에 스승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삼국지》 속에서 가장 손해 본 사람
 
가후
  — 《삼국지》 등장인물 가운데 소설로 각색(脚色)되는 과정에서 가장 손해를 본 사람은 누구일까요.
 
  “아, 손해 본 거는 다 위나라 사람들…. 아니 오나라 사람인가? 그런데 《삼국지》가 재미있는 게, 어쨌든 바꿔도 다 정사에 기반해서 바꿔요. 삼국 간의 외형적인 전력(戰力) 차이는 건드리지 않으면서 무형(無形)의 요소에 변화를 줘서 극적인 긴장을 유발합니다.”
 
  — 무형의 요소에 변화를 줬다는 것은 무슨 얘기인가요.
 
  “위나라의 인재가 가진 재능은 축소하고 촉나라의 인재가 가진 재능은 부풀리는 식이죠. 실제 역사에서 중원(中原)을 차지하고 있던 위나라는 영토가 넓고 전쟁도 많이 해서 기록이 많습니다. 그만큼 인물들의 에피소드도 풍성합니다. 반면 대륙의 귀퉁이에 있던 촉나라는 장수의 수도 적고 기록도 별로 없습니다. 나관중은 위나라 장수와 모사(謀士)들의 무용담(武勇談)이나 재능을 빼거나 그걸 아예 촉나라 인물들에게 붙여주었습니다. 촉나라는 기록이 적으니 역사적 사실에 구애받지 않고 그런 소설적 창작이 가능했던 것이죠. 심지어 유비의 책사(策士)인 제갈량에게는 위나라뿐 아니라, 오나라, 심지어 촉나라 동료의 재능까지도 긁어모아 붙여주었습니다.”
 
  임용한 박사는 소설화 과정에서 가장 손해를 본 사람으로 조조의 책사 가후(賈·147~223년)를 꼽았다. 가후는 《삼국지》에서 그다지 두드러지는 인물이 아니어서 설명이 좀 필요하다. 가후는 악명 높은 동탁을 섬기다가 동탁이 살해된 후에는 그의 부하인 이각과 곽사를 섬겼고, 이후 군벌(軍閥) 단외·장제·장수(張繡·?~207년) 밑에 있었다. 조조와 원소가 관도대전을 앞두고 천하의 군웅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고 할 때, 가후는 둘 중 약자인 조조를 선택하라고 장수를 설득했다. 완성전투에서 조조의 아들 조앙(曹昻)을 전사(戰死)하게 만들었던 장수는 조조와의 악연(惡緣)에도 불구하고 가후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조조의 책사가 된 가후는 훗날 조조가 후계자로 조비(曹丕·187~226년)를 택하도록 결정적인 조언을 했다. 그의 아들 가목은 부마(駙馬)가 됐다.
 
  “가후는 진짜 처세의 달인이고 똑똑한 사람이었지요. 그가 저평가된 것이 이민족 출신에 대한 편견 때문이 아니냐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후일 유가적 관점에서 볼 때 좋게 평가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주어진 상황에서 언제든 무엇이 최선의 선택인가를 고민하고 어떻게든 그것을 해결할 방법을 찾았던 사람, 언제나 현실을 냉정하게 보고 자신의 약점도 장점이 되도록 활용할 줄 알았던 특출 난 사람이었습니다.”
 
 
  “유비의 三顧草廬 장면은 손권에게서 모티브 가져온 것”
 
  — 《삼국지》가 소설화되는 과정에서 유비, 조조, 손권 중 특히 손해를 본 사람은 누구일까요.
 
  “손권이 진짜 손해를 많이 봤어요. 그런 사람이 아닌데, 아주 무색무취(無色無臭)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렸죠. 손권을 흔히 ‘수성(守成)의 군주’라고 하는데, ‘수성’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손권은 황제 자리에 23년이나 있었는데, 그러면서 ‘수성’했다는 것은 정치와 모략을 굉장히 잘했다는 의미입니다. 앞에서 말했던 유비의 삼고초려 장면은 사실 손권에게서 모티브를 가져온 것입니다.”
 
  — 헉!
 
  “손권이 요동(遼東)의 군벌 공손연(公孫淵·?~238년)과 손잡는 문제를 놓고 재상인 장소(張昭·156~236년)와 갈등을 빚은 적이 있어요. 장소는 손권이 자신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자 출근을 거부합니다. 화가 난 손권은 장소의 집 대문을 흙으로 막아버리죠. ‘죽이고 싶지만 내가 참는다’는 사인을 보낸 거죠. 하지만 장소는 오히려 집 안에서 흙으로 문을 봉해버렸습니다. ‘죽일 테면 죽여보라’는 것이었죠. 손권은 여러 차례 사자(使者)를 보냈지만 장소는 끝내 고집을 꺾지 않았죠. 손권은 우연으로 가장해 장소의 집 앞까지 간 후 장소를 불렀지만, 응하지 않자 문에 불을 질러버렸습니다. 그래도 장소가 나오지 않자 손권은 하인들에게 불을 끄게 한 후 문밖에서 장소가 나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결국 가족들에게 이끌려 나온 장소와 극적인 화해를 하는 장면이 연출됩니다.”
 
  이쯤 되면 짐작이 간다. 장비가 제갈량의 집에 불을 질러버리겠다고 펄펄 뛰는 장면, 유비가 낮잠을 자는 제갈량의 집 앞에서 공손히 서서 제갈량이 일어나기만을 기다리는 장면이 바로 손권과 장소의 기싸움에서 가져온 것이란 것이.
 
 
  “《삼국지》 속 제갈량은 조조의 참모들을 합친 캐릭터”
 
조선 시대에 그린 제갈량의 그림.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가장 덕을 본 사람은 제갈량일까요.
 
  “제갈량하고 관우겠죠. 역사적으로 보면 관우가 제일 소설의 덕을 본 것 같아요.”
 
  — 《삼국지》를 보면 제갈량은 신출귀몰(神出鬼沒)하는 불세출(不世出)의 전략가·전술가로 나오지만, 실제로 군사적 재능은 그다지 탁월하지 않았고 성실한 행정가·관료에 가까웠다고 하더군요.
 
  “소설 《삼국지》 속 제갈량의 모습은 사실 조조의 참모인 순욱, 순유(荀攸·157~214년), 정욱, 곽가를 합친 다음 다양한 능력을 쏟아 넣은 모습입니다. 실제의 제갈량은 순욱에 곽가를 약간 섞은 인물에 가깝고요.”
 
  — 실제 제갈량의 군사적 재능은 어떠했습니까.
 
  “실제 제갈량은 소설에서처럼 전장(戰場)에서 적진(敵陣)을 바라보기만 해도 그들의 의도를 꿰뚫고 적을 격파할 비법을 찾아내는 전술가는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전략을 세우고 군을 통수하며, 보급과 조직을 관리하는 데 탁월했습니다. 사마의(司馬懿·179~251년)가 감탄한 것도 그 대목이었지요.”
 
  — 행정가로서의 제갈량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탁월한 현실주의자이자 실용주의자였습니다. 촉을 지배하면서 한족의 벌과 제도를 강요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촉의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지도 않았습니다. 난세(亂世)라는 현실과 촉의 사정을 고려해 법을 간소화하고 천하 통일이라는 목표를 향해 꼭 필요한 제도만 세웠죠. 대신 법 집행은 엄격하게 했습니다. 법과 정책의 본질을 이해하고 자신이 처한 현실에 맞춰서 창의적으로 적용한 것이죠.”
 
 
  “가만히 앉아 있으면 힘이 축적되지 않는다”
 
  — 제갈량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제갈량은 흔히 백면서생(白面書生)의 이미지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도전하는 용기, 한계를 넘어서려는 노력이 있었던, 굉장히 존경할 만한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야전(野戰) 지휘 능력은 떨어질지 몰라도, 본인 스스로 노력해서 군사 전략을 책임지려고 하고, 실수를 해도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 계발을 하려 했던 인물이었습니다. 완벽한 인간은 없지만 완벽하기 위해 끝까지 노력하는 사람이 가장 최선의 인간 아닐까요? 그런 점에서는 제갈량은 진짜 인물이에요.”
 
  — 삼국 가운데 인적(人的)·물적(物的) 역량이 가장 뒤처진 입장에서 제갈량은 무리하게 북벌을 하기보다는 실력을 다지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절대 동의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뭐도 없고 뭐도 없으니까 기다리면서 힘을 축적하자’는 말은 이론적으로 맞는 말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힘이 축적되지 않아요. 흔히 전쟁을 벌이거나 투자하고 사업을 벌이는 것에 대해 ‘소모’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취업이나 장사, 전쟁을 해보면 알지만, 가만히 가지고 있기만 하면 아무것도 안 되잖아요? 능력도 개발되지 않고, 인재도 개발할 수 없고, 군대는 쇠퇴합니다. 없는 자원이라도 가지고 나간다는 것은 없는 걸 갖고 자꾸 무리하는 게 아닙니다. 가만히 두면 말라버리기 때문에 그 선택밖에 없는 거예요.”
 
  — 알겠습니다.
 
  “나중에 촉나라가 망할 때쯤에는 유비의 아들 유선(劉禪·207~271년)을 설득했던 초주(周·201~270년)나, 정사 《삼국지》를 지은 진수의 말처럼, 대세(大勢)가 기울었으면 지도자는 그걸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겠죠. 그건 창피한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제갈량은 그런 세대가 아니었잖아요? 계속 싸워왔던 사람입니다. 초주나 진수의 세대에서는 대세에 따르자고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제갈량의 세대에서는 그럴 수 없었겠지요.”
 
  — 유비, 조조, 손권 가운데 리더십이라는 관점에서 가장 주목해야 될 사람이 있다면 누구일까요.
 
  “유비, 조조, 손권 정도라면 다 최정상이라고 해야죠. 세 사람의 스타일이 달라 보이는 것은 처한 입장이 달랐기 때문이죠. 저는 세 사람 모두에게 동점(同點)을 주고 싶어요. 모두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가장 적절한 것을 했어요. 그게 제일 중요한 것 아닌가요? 어떤 유형의 리더십이냐가 아니라, 상황에 맞는 리더십이냐가 중요한 것이죠.”
 
 
  “조조, 능력만 있으면 과거 문제 삼지 않아”
 
조조
  — 조조의 리더십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조조의 능력 중 특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뛰어난 실행력입니다. 그는 두려움 때문에 판단을 그르치지 않았습니다. 《삼국지》 속 인물들 가운데 결단을 실행으로 옮기는 데 누구보다 빨랐던 인물이 조조입니다.
 
  정사(正史)를 보면 조조는 인재를 적재적소(適材適所)에 등용하고 그들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만듭니다. 눈에 띄는 점은 능력만 있다면 악행(惡行)을 했더라도 문제 삼지 않았다는 것이죠. 이는 조조가 매우 냉철하고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 자제하는 리더였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 사실 실제 역사에서의 주역은 유비가 아니라 조조 아닙니까.
 
  “소설 속에서 조조는 뭘 가지고 시작한 것 같지만, 사실은 조조도 거의 맨땅에서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그는 가장 센 사람들 틈에서, 중국 문명과 국가의 중심인 곳에서 뛰었어요. 그는 장군 - 영주 - 관료의 수장(首長) - 왕이라는 단계에 맞춰 자신을 발전시켜나가면서 인재 등용, 국가 제도 정비 등의 면에서 새로운 시대에 맞는 리더십을 보여주었습니다.”
 
  — 유비는 어떻습니까.
 
  “좌절이 따르는 어떤 어려움에도 굴복하지 않았고,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정치인이었다고 할까요? ‘때를 기다린다’는 것은 아무 곳에나 낚싯대를 드리우고 가만히 앉아 무작정 기다린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사냥감의 습성을 분석한 사냥꾼이 잠복하여 표적을 기다리는 가능성 높은 확률에 도전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그의 기다림은 적절한 시기를 헤아리고 목표를 이루는 수단이었어요. 유비는 그냥 ‘착한 원칙주의자’가 아니라 지극히 전략적인 인물이었습니다.”
 
  — 《삼국지》에서는 ‘착한 원칙주의자’의 모습이 두드러지지요.
 
  “유비는 좀 나쁘게 말하면, 보따리장수처럼, 마적, 용병, 대리(代理) 시장 같은 걸 하면서 성장했다고 할까요? 그러니까 유비가 가진 것은 정말 ‘사람’밖에 없었던 거예요. 유비가 조조군에게 밀려 형주에서 패퇴(敗退)할 때 울며 따라오는 백성들을 버리지 못했던 것은 그가 착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가 가진 것이 백성들로부터 받는 존경밖에 없었기 때문이에요. 사람이 그의 유일한 밑천이었던 것이죠.”
 
  — 그 덕분에 가진 것 없이 출발한 유비가 천하의 한 부분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이겠죠.
 
  “다만 유비는 너무 늦게 군주가 되었어요. 나라를 세우고 통치자로서 관료들을 이끌게 되자, 경험 부족이 드러납니다. 한중(漢中)과 촉(蜀)을 차지하고, 왕이 되고 황제가 된 후에는 옛날과 달리 반대를 참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죠. 그 점에서는 조조하고 똑같아지는 거죠.”
 
  — 그랬던가요.
 
  “원래 유비를 보면 인격적으로 참 관대했어요. 그 앞에서 좀 버릇없게 굴어도 그런 거 다 봐주었죠. 관대하다는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국가 지도자가 되어 정책을 정할 때에 누가 반대해도 받아주는 것이 중요한 것이잖아요? 그런데 나중이 되면 인재 등용에서도 슬슬 고집을 피우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나중에는 유비가 평생 스승처럼 대했다는 제갈량도 유비에게 충고를 못 하게 되죠. 그러다가 이릉전투에서 낭패를 보게 되는 거죠.”
 
 
  주어진 한계 극복 못 한 손권
 
손권
  — 손권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처음에는 전략적이었어요. 어떻게든 자신에게 주어진 틀을 깨고 치고 나가려고 했지요. 그러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을 알았던 겁니다. 여기까지는 평가할 만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해도 뜻대로 안 되니까 그때부터는 폭주하기 시작합니다. 그럴수록 ‘내 대(代)에서 안 되면 다음 대에서라도 하게 한다’는 장기적인 기초가 필요한데 마지막에 가면, 신하들을 상대로 권력정치에 몰두하게 됩니다. 이건 미래 전략을 포기하고 현상유지나 하겠다는 것이죠.
 
  미래 전략을 생각한다면 아랫사람들이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신뢰의 끈을 놓으면 안 되는데, 손권은 말년에 그러지를 못했어요.”
 
  — 오나라를 비롯해 동진(東晉)이나 남조(南朝) 등 강남(江南)의 정권들은 기본적으로 호족(豪族) 연립 정권의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왕권(王權)에 한계가 있었다고 하더군요.
 
  “불리한 여건에 놓여 있다고 해서 그게 자포자기(自暴自棄)할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니죠.”
 
  — 손권이 자포자기했다고 보는 겁니까.
 
  “‘너희가 분열하고 말 안 듣고 그러니까, 왕권을 강화하겠다’는 자기 명분은 분명했어요. 그럼에도 그가 전략 없는 행동을 거듭한 것은 결국 자포자기했다는 얘기죠.”
 
 
  “젊어서는 조조, 나이 들면 유비 좋아하게 돼”
 
  — 삼국지에서 조조가 폄하되고 유비가 부각된 것은 역시 유가적 시각, 그리고 약자에게 동정적인 대중의 취향과 관계가 있는 것이겠죠.
 
  “그렇죠. 주희(朱熹·주자·1130 ~1200년)의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에서부터 삼국 시대 역사를 볼 때 유가적 관점이 크게 들어가게 됐죠. 하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사람이 조조보다 유비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그런 구조가 있어요. 일단 바닥에서부터 올라왔다는 것이 그렇고, 인간적으로 끌리는 점도 있잖아요?
 
  젊었을 때는 조조를 좋아하는 경우가 많아요. ‘현실의 능력이 중요하지’ 이런 생각 때문이죠. 그때는 자기도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하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해 오만 사람에게 시달리며 나이 들어 자기는 조조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유비로 시선이 바뀌는 거죠.”
 
  — 지도자의 리더십도 중요하지만 참모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삼국지》에 나오는 참모 중 자신의 역할을 잘한 사람을 꼽으라면 누구를 꼽겠습니까.
 
  “제2차 세계대전 때 아이젠하워나 니미츠, 롬멜 사령부의 참모는 200명쯤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중에서 사령관이 ‘정말로 능력 있고 쓸만하다. 딱 쟤들만 데리고 일하면 편하겠다’고 생각한 참모는 25~30명뿐이었다고 해요. 하지만 잡무(雜務)를 처리해주는 사람도 있어야 하니, 그럴 수는 없잖아요? 안 그러면 제대로 일하는 참모의 경우 과부하(過負荷)가 걸려버리니까. 결국 200명 다 쓸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 재미있군요.
 
  “대신 참모들 사이에 질적(質的) 분화가 일어나는 거죠. 존중해줄 만한 창의적인 역량을 가진 참모와 위에서 시키는 사무 처리나 하는 참모로 말이죠. 쓸만한 참모가 25~30명은 있어야 하는 것은 실제로 참모의 역할이 굉장히 다양해서 그 정도의 전문가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삼국지》에서는 그걸 몇 사람에게 합쳐버렸습니다. 제갈량이나 순욱 등에게 말이죠. 이 두 사람은 행정을 총괄하는 재상급의 참모들이었죠. 정보 분야의 참모로는 조조 밑에 있었던 곽가를 꼽을 수 있겠고, 정세를 분석해 상대방의 심리를 파악하고 리더가 전략적인 결단을 내릴 수 있도록 해주는 정치적 감각이 있는 참모로는 가후와 정욱이 탁월했습니다. 이런 참모 말고도 마지막으로 꼭 필요한 참모가 있습니다.”
 
 
  “‘간손미’가 없으면 조직은 무너진다”
 
유비
  — 그게 누구입니까.
 
  “리더와 같이 놀아줄 수 있는 참모입니다.”
 
  — 같이 놀아준다고요.
 
  “아까 중대장이 대대장, 연대장을 거쳐 사단장이 되면, 그에 맞게 심성까지 변해야 한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초심(初心)을 잃지 않아야 하는 부분도 있어요. 그래서 리더에게는 친구처럼 지내면서, 그가 폭주하려 할 때에 붙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 《삼국지》에서 그런 참모를 찾는다면, 누가 있을까요.
 
  “유비 곁에 있었던 간옹(簡雍·생몰연대 미상) 같은 경우죠. 왜 ‘간손미’라고 있잖아요?”
 
  ‘간손미’란 유비의 오랜 측근인 간옹, 손건(孫乾·?~214년), 미축 세 사람을 말한다.
 
  “‘간손미’라고 하면 유비를 오랫동안 모셨으면서도 심부름이나 다닌 존재감 없는 사람으로 여기잖아요? 《삼국지》 게임에서도 ‘간손미’는 전세(戰勢)를 역전(逆轉)시키는 A급 인재가 아니라 별다른 활용도가 없는 B급 캐릭터로 등장하죠. 하지만 그건 조직을 몰라서 하는 얘기입니다. ‘간손미’가 없으면 조직은 무너집니다.”
 
  — 왜 그렇습니까.
 
  “‘간손미’는 눈에 띄지는 않지만 자기 자리를 잘 지키면서 제 역할을 해주는 사람들입니다. 유비의 고향 친구인 간옹은 유비가 왕이 된 후에도 그 옆에 드러눕곤 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유비는 아무 말 안 했다고 해요. 유비가 마냥 마음이 넓어서 그런 것도 아니고, 간옹이 버르장머리가 없어서 그런 것도 아니었습니다. 간옹은 그렇게 유비를 말려야 할 때는 말렸고, 유비는 간옹의 그런 역할을 인정했던 것이지요. 소설에서는 간옹을 단순히 세객(說客)으로 그리고 있는데, 사실 간옹은 유비의 둘도 없는 대화 상대이자 상담역이었고, 복심(腹心)이자 대변인이었습니다. 손권에게는 그런 사람이 없었어요. 조조에게도 물론 없었지요.”
 
 
  유머로 直諫한 간옹
 
  임용한 박사는 “간옹은 제갈량도 하지 못하는 충고를 유비에게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서 일화(逸話)를 하나 들려주었다.
 
  “한번은 유비가 금주령(禁酒令)을 내린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금주령이라는 게 어디 제대로 지켜지나요? 그러자 화가 난 유비는 관리들의 집에 술잔만 있어도 금주령 위반으로 처벌하겠다고 했습니다. 어느 날 간옹은 유비와 산책을 하던 중 길을 가는 남녀 한 쌍을 보고 이렇게 말했어요.
 
  ‘저들이 (조금 있다가) 음탕한 행위를 하려고 하는데 어째서 결박하지 않으십니까?’
 
  유비가 ‘저들이 음란 행위를 할지 안 할지 어찌 아느냐?’고 묻자, 간옹은 이렇게 답했어요.
 
  ‘저들이 몸에 음란한 기구(성기)를 달고 있으니, 집에 술잔이 있는 사람과 마찬가지입니다.’
 
  유비는 껄껄 웃으며 금주령을 철회했죠.”
 

  — 나쁜 참모들이 있다면 누구를 꼽겠습니까.
 
  “원소의 참모인 전풍(田豊·?~ 200년), 허유(許攸·?~204년), 심배(審配·?~204년), 봉기(逢紀·?~202년) 등을 들 수 있겠지요. 조조의 참모 순유가 이들을 평한 말이 있습니다.
 
  ‘전풍은 강인하나 윗사람을 거스릅니다. 허유는 탐욕스러워 자신을 다스리지 못합니다. 심배는 독단적이어서 계획성이 없고, 봉기는 과단성은 있지만 자기 고집이 강합니다.’”
 
  — 그야말로 ‘나쁜 참모’란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주는 것 같네요.
 
  “그런 참모들을 쓴 원소가 잘못인 거죠.”
 
  — 왜 리더는 ‘나쁜 참모’들을 쓰게 되는 것일까요.
 
  “의외로 많은 리더가 언제 부하에게 쫓겨 나가거나 배신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사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의외로 똑똑한 사람을 싫어해요. 그런 경우를 정말 많이 봤어요.
 
  자기들도 무능(無能)한 자가 아부를 하고 유능(有能)한 사람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아요. 능력이 없는 자들은 사람의 표정만 보지만,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닥친 상황에서 가장 적합한 판단을 내리려고 하기 때문에 남의 말투나 표정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어요. 리더도 그걸 아는데, 막상 리더를 위해 고민하느라 표정이나 말투 관리를 못 하는 사람을 보면 이게 또 기분이 나빠요. 교언영색(巧言令色)할 수밖에 없는 거죠.”
 
  — 그렇죠.
 
  “망하는 리더는 ‘무능력한 놈이 나한테 충성할 것’이라는 희한한 결론을 내리더라고요. 진짜 이해가 안 가는 얘기죠. 역사까지 들먹일 것도 없어요. 주변만 봐도 무능한 사람은 반드시 등 뒤에서 칼을 꽂습니다. 무능한 사람은 자신이 없기 때문에 자기가 모시던 사람의 후임이 되면 더 비겁하게 나와요. 간이라도 빼줄 것같이 굴던 사람이 옛날 리더가 얼굴도 안 비치기를 바라요. 저는 그런 경우를 수도 없이 봤어요. 반면에 유능한 사람은 무서울 게 없으니까 은퇴한 분들을 잘 모셔요.
 
  오늘날의 조직에서는 그런 잘못을 저지른다고 해서 당장 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삼국 시대에는 잘못하면 죽는 시대였잖아요? 그런데도 원소는 그런 식으로 사람을 썼어요.
 
  수천 년 동안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을 미스터리라고 해야 하나…. 정말 이해를 못 하겠어요.”
 
 
  유언의 실패
 
  — 윤석열(尹錫悅) 대통령은 《삼국지》 속 인물 가운데 누구와 비슷한 것 같습니까.
 
  “아, 그건 진짜 한 번도 생각 안 해봤어요. 잘 모르겠어요. 이명박(李明博) 전 대통령이나 박근혜(朴槿惠)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이전에 어떤 사람인지가 드러나 있었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검사(檢事)를 하다가 갑자기 나타나서….”
 
  — 윤석열 대통령의 리더십을 어떻게 봅니까.
 
  “대선(大選) 때 보니까 학습 능력은 확실히 있는 것 같아요. 제가 검사를 접해보지는 않았지만 전에 법원에 강연을 간 적이 있어요. 조직이 상당히 경직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무척 충격을 받았어요. 검찰 조직도 그렇다면, 좀 걱정이 됩니다.”
 
  여기서 임용한 박사는 촉을 유비에게 넘긴 유장(劉璋·?~219년)의 아버지 유언(劉焉·?~195년)의 이야기를 꺼냈다.
 
  “유언은 거의 기록이 없는 사람인데, 부잣집 귀공자 같은 유장과는 달리 나름 야심이 있었어요. 그는 촉에서 한중으로 진출하려고 했는데 그 방향은 맞았어요. 당시 촉은 토착민(土着民)과 유언을 따라 들어온 한족 이주민(移住民)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토착민들은 유언을 따라나서려고 하지 않았어요. 결국 유언은 원래 자기를 따르던 세력을 이끌고 한중으로 진출하려고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대세를 보기는 했고, 뭘 해야 하는지도 알았지만, 자기 팀만 갖고 하려니 일이 되나요? 토착민 세력을 포섭했어야 하는데 그걸 못 한 거죠. 결국 오두미교(五斗米敎)라는 사이비(似而非) 종교의 교주 장로(張魯·?~216년)와 손잡고 한중을 공략했지만, 결국 장로는 유언을 배신하고 한중을 차지했지요.”
 
  윤석열 대통령이 인재풀이나 지지 기반을 넓히지 못하고 검찰이나 관료 출신들에게 의존하고 있는 현실을 우회해 비판하는 것처럼 들렸다.
 
 
  이재명과 이준석
 
  —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삼국지》 속 인물 중 누구와 닮았다고 봅니까.
 
  이번에는 대답이 바로 나왔다.
 
  “양수(楊修·175~219년)죠.”
 
  ‘계륵(鷄肋)’의 그 양수다. 재간이 넘쳤지만 결국 그 때문에 조조의 눈 밖에 나서 죽은 인물.
 
  — 양수는 결국 재기(再起)하지 못하고 죽었잖습니까.
 
  “머리가 비상하고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은 맞는데, 그렇게 살면 안 되는 거죠.”
 
  — 이재명(李在明) 민주당 의원은 누구와 흡사하다고 봅니까.
 
  이번에도 대답은 바로 나왔다. 간결했다. 하지만 그게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을 생각이다. 그랬다가는 임 박사가 ‘개딸’들에게 무척이나 시달릴 것이기 때문에, ‘취재원 보호’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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