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 ‘배드펀드’ 공약에 ‘파산’ 논란 급부상
⊙ “파산은 가족의 병간호, 배우자의 실직, 사업 실패 등 예기치 못한 경제적 위기가 가장 많은 비중 차지”
⊙ “〈오징어게임〉보다 더 힘든 삶 살아가는 사람들 많다”
王美良
1968년생. 전북대 법학과 졸업, 사법연수원 29기 / 前 성남 여성의전화 전문위원,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변호사단,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전문상담위원, 서울중앙지방법원 파산관재인, 제50대 대한변호사협회 사무총장·총무이사, 現 법무법인 시니어 소속 변호사, 제13대 한국 여성변호사회 회장
⊙ “파산은 가족의 병간호, 배우자의 실직, 사업 실패 등 예기치 못한 경제적 위기가 가장 많은 비중 차지”
⊙ “〈오징어게임〉보다 더 힘든 삶 살아가는 사람들 많다”
王美良
1968년생. 전북대 법학과 졸업, 사법연수원 29기 / 前 성남 여성의전화 전문위원,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변호사단,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전문상담위원, 서울중앙지방법원 파산관재인, 제50대 대한변호사협회 사무총장·총무이사, 現 법무법인 시니어 소속 변호사, 제13대 한국 여성변호사회 회장

- 사진=고기정
넷플릭스(Netflix) 오리지널 한국 드라마 시리즈이자 넷플릭스 역사상 가장 흥행한 시리즈인 〈오징어 게임〉의 주인공 성기훈은 구조조정으로 실직한 뒤 사채(私債)와 도박에 의존하다 이혼을 겪고, 우연히 456억원 상금이 걸린 게임에 참여한다. 이처럼 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들이 목숨을 건다는 설정이 드라마의 핵심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도 파산으로 내몰린 이들의 삶은 드라마만큼 혹독하다.
우리 사회는 파산자를 곱게 보지 않는다. “도대체 왜 파산했을까?”라는 시선에서 “능력이 없으니 파산을 신청했겠지”라는 부정적 감정으로 이어지기 일쑤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장기소액연체채권 소각을 위한 배드뱅크(badbank)’ 설치를 선언하면서 이런 시선은 더욱 따가워졌다.
‘한국형 배드뱅크’는 은행이 아닌 개인 장기연체자 구제를 목표로 한다. 7년 이상 연체, 5000만원 이하의 소액 채무자가 대상이며, 상환 능력이 없다고 판단되면 빚을 아예 소각한다. 재원(財源)은 세금과 금융권 출연금(出捐金)으로 절반씩 마련하는 구조다. 이에 대해 형평성과 도덕적 해이(解弛) 우려도 제기된다. 성실히 빚을 갚은 사람은 일정 기간 신용기록이 남지만, 소각 대상자는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만 불이익을 받기 때문이다.
법적 의미의 파산은 채무자가 재산으로 채무를 변제(辨濟)할 수 없을 때 법원이 선고하는 절차다. 채무자는 파산 재산에 대한 관리·처분권을 잃고 일부 직업에도 제한을 받는다. 면책(免責) 결정이 확정되면 대부분의 불이익이 사라지지만, 재산 은닉, 허위 채무, 과도한 낭비·도박 등이 드러나면 면책이 불허되고 채무를 갚아야 한다.
“법은 약자를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
2010년부터 13년 동안 개인파산관재인으로 활동하며 2400여 명의 채무자를 만난 왕미양(王美良·57)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이 최근 에세이집 《두 번째 기회를 위한 변론》을 펴냈다. 그는 “파산을 신청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노동자, 공무원 등 우리 주변의 이웃, 친구, 가족”이라며 “파산은 결코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8월 2일 서울 서초구 법원 인근에서 그를 만났다.
―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개인파산관재인으로도 일했다고 들었습니다.
“‘법은 약자(弱者)를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라는 신념을 가지고 법을 통해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도왔습니다. 약 2400여 명을 만나며 경제적 위기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다시 사회의 일원으로 일어서는 과정을 지켜봤고, 그 경험을 책에 담았습니다.”
― 파산관재인은 어떤 역할을 하나요.
“스스로는 도저히 빚을 갚을 수 없는 상황임을 법원이 공식 확인하는 것이 파산입니다. 이후 재산을 정리해 채권자에게 분배하고, 법적으로 빚을 없애주는 ‘면책’ 절차가 이어지죠. 파산관재인은 이 과정이 공정하게 진행되도록 돕고 파산자의 재산을 관리하는 역할을 합니다.”
― 파산관재인이 되는 데 특정 조건이 있나요?
“파산 절차에서 중심 역할을 수행하는 법원이 지정한 관리인이기 때문에, 실무상 대부분 변호사들이 선임됩니다.”
― ‘파산’을 주제로 한 책은 흔치 않은데, 집필 계기가 궁금합니다.
“처음 파산관재인 일을 시작할 때는 업무의 일부로만 생각했습니다. 솔직히 당시에는 파산한 사람들을 경제적으로 무능하고 무책임하다고 보는 편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을 하면서 파산자들의 사연이 정말 다양하다는 걸 알게 되었고, ‘파산은 끝’이라는 사회적 인식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책이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누군가에게는 다시 시작할 용기와 기회가, 편견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 파산 절차 개인 파산 절차는 채무자가 경제적 재기를 위해 채무를 탕감받는 법적 절차로, 신청 자격과 단계별 절차를 따른다. 신청 자격은 채무자가 모든 채무를 변제할 수 없는 상태여야 하며, 재산 부족, 소득 미비, 근로 능력 상실 등이 입증되어야 한다. 도박, 재산 은닉, 허위 신고 등 면책이 불가능한 사유가 없어야 신청 자격이 주어진다. 아래와 같은 과정으로 파산 절차가 진행되며, 평균적으로 6개월에서 1년 정도 소요된다. 1. 신청 및 심리 채무자가 주소지 관할 회생법원에 파산·면책신청서를 제출하면, 법원이 신청서와 첨부서류를 심리한다. 2. 파산 선고 채무자의 지급 불능 상태가 인정되면 법원이 파산을 선고한다. 3. 파산재단의 환가 및 배당 파산관재인이 채무자의 재산을 환가(換價·매각)하여 채권자에게 배당한다. 재산이 거의 없는 경우 배당 절차를 생략할 수 있다. 4. 파산 종결 배당이 완료되면 파산 절차가 종결된다. 5. 면책심문 및 결정 파산 절차와 별개로 면책심문이 진행되며 채무자가 면책 불허가 사유가 없으면 면책 결정이 내려진다. 면책이 확정되면 남은 채무에 대한 변제 책임이 면제된다. 6. 불이익 및 복권 파산 선고 시 공무원, 변호사 등 일부 직업에 제한이 있으나, 면책 결정이 확정되면 대부분의 불이익이 소멸한다. ※ 파산 절차는 복잡하고 불이익이 따르므로, 신청 전 면책 불허가 사유와 절차상 불이익을 충분히 검토하는 것이 중요하다. |
유명 연예인도 파산 신청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발표한 ‘2024년 개인 파산 및 면책 등 소송구조 사건’ 통계에 따르면, 전체 신청인의 57.7%가 월(月) 100만원 미만의 소득자였다. 법정 최저생계비(1인 가구 기준 43만5208원) 이하 수준도 대다수였다. 서울회생법원 통계에 따르면, 2023년 파산의 최다 원인은 갑작스러운 실직(失職)·근로소득 감소가 47.66%, 사업 실패·사업소득 감소가 44.17%였다.
왕미양 변호사는 파산관재인으로 활동하며 수많은 사람들과 만났다. 의사와 연예인 같은 전문직은 물론 노동자, 공무원과 같은 우리 주변의 평범한 이웃까지 다양하다.
왕 변호사는 “〈오징어 게임〉이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제가 만난 수많은 분의 얼굴이 떠올랐다”며 “그분들은 하나같이 자신은 실패했다고, 이제는 끝이라고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희망이라는 끈을 품고 놓지 않고 있었다는 것도 주인공 성기훈과 비슷했다”고 말했다. 왕 변호사는 특히 1980년대를 풍미한 댄스 그룹 출신 A씨 사례를 기억에 남는 일로 꼽았다. A씨는 1980년대 데뷔해 수많은 히트곡을 냈고, 이후 솔로와 재결성 활동을 이어갔다. 하지만 교통사고로 인해 활동이 중단되며 수입이 끊겼고, 결국 막대한 빚을 지게 돼 파산 신청을 하게 됐다.
“아마 2000년대생들은 잘 모를 텐데, 1980~90년대생들은 A씨 노래를 무의식중에 따라 부를 정도로 히트곡이 많았습니다. 뜻하지 않게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됐고 결국 파산을 신청했습니다. 교통사고로 전치 6주 진단을 받는 등, 악재가 겹치는 상황이었죠.
A씨는 재기를 위해 계속해서 노력했어요. 연예인이라고 하면 으레 화려하고 풍족한 삶을 사는 줄만 알았는데, 현실은 이렇게까지 가혹할 수도 있구나 싶었습니다. 다행히 법원에서 약 1억원 규모의 빚에 대해 면책 결정을 내렸고, 이후 다시 활발히 활동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파산에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기회로 삼은 대표적인 사례라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자존심 때문에 파산 신청 망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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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4월 14일 오후, 코로나19로 개인파산과 개인회생이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서울 서초구 회생법원을 찾은 시민들이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조선DB |
“의외로 많습니다. 의사, 변호사 등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전문직들도 파산을 신청합니다. 개원을 했는데 수익이 없는 경우가 대표적이죠. 오랫동안 기억에 남은 사례로는 공무원 출신의 한 신청인의 경우인데….”
― 어떤 분이었나요.
“삶을 정말 성실하게 살아온 분이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26년간 공무원으로 일하고 퇴직 뒤에는 건설업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여든을 앞둔 나이에 노량진에 행정사 사무소까지 열며 삼모작(三毛作) 인생을 사셨죠.”
― 굉장히 열심히 사셨는데 왜 파산을 신청했나요.
“26년 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퇴직금으로 건설업에 뛰어들었습니다. 다가구주택 신축 사업이었는데, 처음에는 돈을 꽤 벌었다고 하더군요.”
― 그런데 왜….
“건설 경기가 나빠지면서 상황이 달라졌고, 한두 번 실패가 반복되자 결국 모아둔 재산을 탕진한 것은 물론, 자녀와 지인들에게까지 피해를 입혔습니다. 이를 만회하고자 시작한 것이 행정사 일이었는데, 과거 공무원 경력으로 취득한 행정사 자격증으로 새로운 도전을 한 것이죠. 노량진역 근처에 작은 사무실을 얻어 성실히 일했습니다. 한데 행정사 사업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갈 무렵, 부인이 혈액암 진단을 받아 큰 지출이 이어졌습니다. 치료비가 한 달에 수백만원씩 나가니 신용카드로 현금서비스를 받아 병원비를 내고, 그 카드값을 다른 카드로 돌려막는 악순환이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노력에도 아내는 결국 세상을 떠났고 남은 자리엔 그간 빌린 빚만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었습니다.
그분은 처음에는 자존심 때문에 파산 신청을 망설였는데 자식들에게 피해가 갈까 봐 결국 파산을 결심했다고 했습니다. 아직도 ‘아이에게는 피해가 가지 않게 해달라’고 말하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이러고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뒤 그분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대뜸 ‘왕 변호사냐?’고 묻더군요. 아무래도 치매가 시작된 것 같았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한참 생각에 잠겼습니다. 공무원으로 시작해 사업가, 행정사까지… 정말 치열하게 살아오신 인생이었더군요. 파산관재인으로 일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이분만큼 인상 깊은 분은 없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보수적으로 변하기 마련인데, 노년에도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더군요. 파산이라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오늘 하루도 건강하게 보낼 수 있어서 고맙다’고 말씀하시는 모습에서 진정한 어른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배웠습니다.”
개인회생절차 vs 파산
― 이런 사례들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파산관재인으로 일하며 깨달은 건 파산은 누구나 겪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고위 공무원, 장교 출신 경영인, 금융 전문가 등도 예외가 아니었죠. 저는 늘 이야기합니다. ‘파산은 잘못이 아닙니다. 끝도 실패도 아닙니다. 새로운 출발선에 서는 과정입니다’라고요.”
파산은 과다한 채무를 감면시켜 주는 제도다. 왕 변호사는 “파산이라는 말 때문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이 적지 않다”며 “특히 공무원의 경우 개인회생절차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 두 제도는 무엇이 다른가요.
“개인회생절차는 장래 일정한 수입이 생길 경우 그 수입에서 최저생계비를 제외하고 나머지 소득(가용소득)으로 3~5년간 채권자들에게 변제하고, 변제하지 못한 나머지 채무를 면책받을 수 있는 절차입니다. 즉 채무자의 재산을 처분하지 않고 3~5년의 기간 동안 채무자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 채무를 변제하는 절차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 파산은 수입이 없거나 수입이 있더라도 최저생계비를 제외할 시 가용소득이 없는 경우 채무자의 재산을 처분하여 채권자들에게 변제하고, 변제하지 못한 나머지 채무를 면책받을 수 있는 제도입니다. 정리하자면, 개인회생과 파산의 가장 큰 차이는 정기적인 소득이 존재하는지 여부이고, 파산의 경우 5년간 한국신용정보원에 파산을 진행한 사실이 기록되어 신용상 불이익이 있으며, 파산 선고를 받고 면책을 받을 때까지 직업, 신분상의 불이익이 존재한다는 것도 차이점입니다. 대부분 채무자의 상황에 따라 유리한 제도를 진행하게 됩니다. 법은 항상 약자의 편에 서야 하니까요.”
“파산자, 다시 일어서려는 도전자로 인식해야”
― 일각에서는 파산자를 ‘무책임하다’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처음엔 저도 그런 편견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직접 만나보니 달랐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실패한 사람이 아니라, 저마다의 아픔과 사연을 가진 평범한 이웃이었습니다.”
― 주로 어떤 이유로 파산 신청을 하나요.
“파산 신청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게으름이나 방탕한 생활보다 가족의 병간호, 배우자의 실직, 사업 실패 등 예기치 못한 경제적 위기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금융 지식 부족도 큰 원인입니다. 많은 사람이 신용카드와 대출을 쉽게 이용하지만, 이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부족합니다. 돌려막기를 계속하다 보면 결국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습니다. 1000만원을 갚지 못해 파산 신청을 하는 경우도 허다하지요.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배신도 적지 않습니다. 친구나 가족을 믿어 보증을 서주거나 대출을 대신 받아줬다가 모든 빚을 떠안는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법적으로는 채무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 그래도 편견이 전혀 근거 없는 건 아니라는 시선도 있습니다.
“이해합니다. 과소비, 도박, 사행성 투자 등 개인적 판단 실수로 인한 경우도 있죠. 하지만 그 배경을 들여다보면 단순히 도덕적 해이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사정이 많습니다. 파산자를 다시 일어서려는 도전자로 본다면, 그 시선이야말로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3중 비주류’
책에는 남성 중심의 법조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던 왕미양 변호사의 투쟁기도 담겨 있다. 그는 스스로를 ‘3중 비주류’라고 표현한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시골에서 태어나, 당시 합격자가 드물었던 전북대에서 사법시험을 준비해 6년 만에 합격한 여성 변호사이기 때문이다.
그가 합격한 2000년 무렵, 여성 변호사는 국내 통틀어 100명이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지금의 여성 법조인들이 활약할 수 있는 기반은, 당시 선배 여성 변호사들의 치열한 개척 덕분이라는 점을 짐작하게 한다.
― 정말 많은 노력을 했겠군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비주류가 되는 법조계에서, 여러 조건이 겹쳐 더욱 비주류였던 저야말로 사회적 약자를 더 잘 이해하고 그들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 마지막으로 파산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한마디.
“파산은 결코 실패나 패배가 아닙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쓰러지고 무너져도 괜찮습니다. 누구나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