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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최홍식 (사)세종대왕기념사업회 대표이사

“세종대왕은 음성학의 대가”

글 : 이근미  객원기자  www.rootl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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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솔 최현배 선생의 손자… 이비인후과 전문의로 《훈민정음》 음성학 연구
⊙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이사장 맡은 후 20여억원 투입… 외솔회에 친인척 20여 명이 20억원 희사
⊙ 5월 15일 서울 청와대 사랑채 앞 광장에서 ‘626돌 겨레의 스승 세종대왕 나신 날 큰 잔치’ 개최
⊙ 조용필·윤형주 등 치료받아… 국내 최초로 보톡스 주사 이용한 목소리 떨림 치료 도입

崔洪植
1953년생.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이비인후과 전문의,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역임 / 現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명예교수, (사)세종대왕기념사업회 대표이사, (재)외솔회 명예이사장, (재)한글학회 재단이사, 제일이비인후과의원 대표원장, 천지인발성연구소 소장 / 저서 《훈민정음 음성학》
  5월 15일 오후 6시, 서울 청와대 사랑채 앞 광장에서 ‘626돌 겨레의 스승 세종대왕 나신 날 큰 잔치’가 열린다. 세종대왕 탄생일 기념행사는 해마다 경기도 여주의 세종대왕 영릉(英陵)에서 관계기관 인사들만 모여 조촐하게 열렸었다. 무덤 앞에서 조용하게 치렀던 탄생 축하 행사를 처음으로 국민들과 함께하는 대규모 행사로 개최하는 것이다.
 
  이번 행사는 세종대왕기념사업회가 주최하고 서울시와 여주시 등이 후원한다. 특히 오세훈 서울시장이 10년 만에 복귀한 시점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오세훈 시장이 33대 서울시장으로 재임할 때인 2009년에 광화문광장이 시민에게 개방되면서 세종대왕 동상이 들어섰다. 당시 상황을 최홍식(崔洪植·70) 세종대왕기념사업회 대표이사가 들려주었다.
 
  “광화문 앞에 죽 뻗은 도로의 이름이 세종로인데 2009년 이전에는 이순신 장군 동상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 당시 오세훈 시장께 ‘세종로에 세종대왕이 없다, 동상을 세워달라’고 건의했고, 그게 받아들여져서 동상이 들어서게 된 겁니다.”
 
 
  스승의날은 세종 탄생일
 
  최홍식 대표는 세종대왕 탄생일에 영릉에서 기념행사를 할 때마다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몇몇이 모여 무덤 앞에서 마치 제사 지내듯 탄생을 기념하는 게 늘 마음에 걸렸어요. 노태우 대통령이 임기 초에 딱 한 번 탄생일 행사에 참석하셨을 뿐 늘 문화재청 주재로 간단하게 열렸죠. 온 국민이 세종대왕을 존경하는 것에 비해 기념행사가 너무 부실하다고 여겨졌는데 코로나19 때는 이마저도 열지 못했어요. 작년에 다시 영릉에서 행사를 열었는데 마침 오세훈 시장님이 당선되어서 제대로 탄생을 기념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국민적 행사로 기획하게 되었죠.”
 

  스승의날은 1963년 충남 지역 청소년 적십자 단원들이 ‘은사의날’을 정하고 사은행사를 개최하면서 제정되었다. 1964년 청소년 적십자 중앙학생협의회(J.R.C.)에서 5월 26일을 스승의날로 지정했으나 1965년부터 세종대왕 탄생일인 5월 15일로 변경했다. 최홍식 대표는 이번 행사를 기획한 이유 중에는 땅에 떨어진 교권(敎權)을 회복하자는 의미도 있다고 했다.
 
  “과거에는 스승의날에 선물을 과하게 전하는 게 문제였는데 이제는 스승을 우습게 아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겨레의 큰 스승인 세종대왕을 기리는 잔치를 통해 선생님들을 존경하는 풍토가 조성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스승의날이 꽃도 드리고 간단한 다과도 나누며 사제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시간이 되길 원합니다. 5월 15일 큰 스승 세종대왕을 기리는 잔치가 시발이 되길 바랍니다.”
 
 
  세종대왕 나신 날 큰 잔치
 
  세종대왕 나신 날 큰 잔치 식순은 최홍식 대표와 오세훈 시장의 축사와 소리꾼 장사익의 노래, 어린이합창단의 한글무용과 합창이 이어진 후 세종대왕이 작곡한 여민락(與民樂)이 50분간 연주될 예정이다.
 
  “여주 영릉 행사 때도 여민락을 연주했는데 좀 지루한 감이 있었습니다. 이번 연주는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웅장하면서도 친화적이어서 세종대왕의 여민락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을 겁니다.”
 
  여민락은 말 그대로 ‘백성이 함께 즐기는 음악’이다. 《세종실록》 제50권에 ‘우리나라 음악이 비록 최고는 아니라 할지라도 중국에 비하여 부끄러울 것이 없을 것이다. 또 중국의 음악이라고 해서 어찌 바르다고 하겠는가?’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여민락 연주의 총괄기획을 맡은 홍성훈 오르겔바우 마이스터가 직접 제작한 파이프오르간 홍매화오르겔도 이날 행사장에 등장한다. 국악과 양악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 코라이즌의 70명 단원과 안산시립합창단원 100명의 협연으로 여민락이 웅장하게 울려 퍼질 예정이다.
 
  “세종대왕이 한글과 각종 과학 기자재를 만드신 건 잘 알려졌지만 백성을 위해 음악을 만드셨다는 사실은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세종대왕은 중국의 악기였던 편경과 편종을 박연으로 하여금 조선의 악기로 만들도록 하여 한국화했습니다. 이번 기회에 신세대를 겨냥해 새롭게 기획한 여민락이 전 국민의 음악이 되도록 노력할 계획입니다.”
 
  이번 행사를 주요 매체를 통해 알리기도 하지만 유튜브로 생중계하고 다큐 영상을 제작하여 각종 채널을 통해 지속적으로 방송할 예정이라고 한다. CD로도 제작해 정부 각처에 또한 배포할 계획이다.
 
  “세종대왕의 통치철학인 생생지락(生生之樂)은 《서경(書經)》에 나오는 말로 ‘너희 만민들로 하여금 생업에 종사하며 즐겁게 살아가게 만들지 않으면, 내가 죽어서 꾸짖음을 들을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나라 통치자들이 이런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고, 세종대왕이 여민락을 만드신 의미를 전 국민이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626돌 겨레의 스승 세종대왕 나신 날 큰 잔치’를 주관하는 세종대왕기념사업회의 최홍식 대표는 뜻밖에도 이비인후과 전문의다. 연세의대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교수로 재직했고, 후두학·음성언어의학회와 후두음성언어의학연구소 소장으로 20여 년간 연구를 이어왔다. 후두질환과 음성장애·두경부암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EBS 〈명의〉에 두 차례 선정되었으며 김대중·박근혜 전 대통령의 이비인후과 자문의를 지냈다.
 
 
  외솔 최현배 선생 손자
 
외솔 최현배 선생
  2019년에 연세대를 정년 퇴직하고 현재 7명의 이비인후과 전문의가 진료하는 제일이비인후과의원의 대표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최홍식 대표가 세종대왕기념사업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독립운동가이자 한글학자인 외솔 최현배(崔鉉培·1894~1970년) 선생의 손자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최현배 선생은 조선어학회 창립에 참여하고 1929년 조선어사전편찬위원회 준비위원을 지냈다. 1933년 ‘한글맞춤법통일안’ 제정 등에 참여하는 등 우리말 알리기 활동을 전개하던 중 1942년에 구속되어 8·15 광복 때까지 3년간 복역했다.
 
  광복 후 교과서 행정의 기틀을 잡으며 한글학회 활동을 열심히 하던 가운데 연세대학교 부총장을 역임했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은 최현배 선생은 《우리말본》 《한글갈》 《글자의 혁명》 《나라 사랑의 길》 등의 저서를 집필했다.
 
  “할아버지가 1970년에 세상을 떠나신 후 뜻있는 분들이 성금을 모아 외솔회가 발족했어요. 이후 국어 연구와 교육, 한글문화 발전을 위해 다양한 사업을 펼쳐오다가 1988년에 활동이 중단되었고, 제가 미국 UCLA에서 3년간 교환교수를 지내고 1993년 귀국하자 주변에서 외솔회를 부활시켜야 하지 않겠느냐는 권유가 들어와 재단이사로 참여했고, 2008년부터 2015년까지 외솔회 6대 이사장을 맡았습니다.”
 
  외솔회는 서울 본부를 필두로 울산, 마산, 부산, 전북, 전남, 충북, 충남, 춘천, 인천, 제주 등 전국 각 지역에 10여 개의 지부를 두고 있다. 외솔회는 해마다 집현전 학술대회를 열어 한글 연구에 힘쓰고, 학술잡지 《나라사랑》을 간행한다. 매년 학술연구(학술)와 국어문화 개선(실천) 두 분야의 업적이 뛰어난 사람이나 단체를 선정해 외솔상과 1000만원의 상금을 수여한다. 해외 한글 보급과 한국문화 전파를 위한 외솔장학금도 주고 있다.
 
 
  외솔 후손들의 봉사
 
어린 시절 할아버지 외솔 최현배 선생 품에 안긴 최홍식 대표.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딱히 남긴 유언은 없어요. 그냥 할아버지가 옥고를 치르시면서까지 지키려고 했던 우리글을 자손들도 지켜나가자는 생각입니다. 할아버지는 엄한 편이었으나 손자들에게는 늘 다정하셨어요. 우리 집에 난을 보내시면서 ‘우리말과 글을 놔두면 엉망이 된다. 화분에 꽃이 피게 하려면 햇볕을 쬐고 물을 주면서 정성을 다해야 하듯 우리말과 글도 꽃을 피우듯 잘 가꾸어야 한다’고 하신 말씀이 기억납니다. 언젠가 우리 집에 오셔서 족자에 ‘날마다 날마다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도 일생토록 변치 않는 하나의 일을 지으라’라고 쓰셨는데, 할아버지 고향인 울산의 외솔기념관에서 족자를 보관하고 있습니다.”
 
  2015년 이후 최홍식 대표의 여동생 최은미씨가 외솔회 이사장을 맡았다가 현재 사촌동생이 운영하고 있다. 그동안 친인척 20여 명이 외솔회에 희사한 금액은 총 20억원에 이른다.
 
  최홍식 대표가 이사장을 맡았을 때 외솔상 상금 2000만원에 운영비 1000만원을 합쳐 매년 외솔회에 희사했다. 외솔회 사무실은 집안 건물의 공간을 무료로 사용하고 있으며 최홍식 대표를 비롯한 가족들은 외솔회에서 무보수로 일했다. 최은미 이사장이 외솔회를 맡고부터 20명이 넘는 친인척들에게 매월 자발적으로 회비를 내게 하여 운영비로 사용하고 있다.
 
  최홍식 대표는 “감사하게도 다들 살 만하니 꾸준히 회비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살 만하니’라고 표현했지만 외부에서 명문 가정으로 인정하는 집안이다. 집안에 의사만 8명이고, 여성 가운데 경기여고 출신이 9명에 이른다. 특히 최 대표의 어머니 이혜자 여사와 부인 임인경 아주대 의대 명예교수는 경기여고 동문회 ‘경운회 회장 역임’이라는 이력을 공유하고 있다.
 
 
  최현배 선생의 아들들
 
세 아들, 손주들과 함께한 외솔 최현배 선생. 최현배 선생 후손들은 외솔회를 위한 봉사를 이어가고 있다.
  최홍식 대표의 아버지는 청량리에서 청량리정신병원(청량리뇌병원 전신)을 운영한 정신과 전문의이다. 최 대표 부부와 딸도 의사이고 최 대표의 형은 아들까지 3대가 정신과 전문의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주치의를 지낸 송인성 서울의대 내과 교수는 최 대표의 매형이다. 최 대표의 장인과 그 동생도 평양의학전문학교와 경성제국대학 의학과를 나온 의사였다.
 
  최현배 선생은 삼 형제를 두었는데 첫째(최영해)와 셋째(최철해)는 출판계에 근무했지만 최 대표의 아버지인 둘째 아들(최신해)에게는 의사가 돼라고 강권했다고 한다.
 
  “큰아버지는 정음사를 운영하셨는데 상당히 큰 출판사였죠. 정음문화사를 운영하신 삼촌이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외솔회를 창립하셨어요. 일제(日帝) 강점기에 다들 어려우니 아들 가운데 한 명은 의사가 되면 좋겠다며 둘째인 우리 아버지에게 의대에 가라고 하셨대요. 문학적인 소양이 있었던 아버지는 의사가 되기 싫어 금강산으로 피신하셨다가 1년 만에 돌아와 세브란스 의전에 들어가셨죠. 의사가 되신 후에 수필집을 30권가량 내셨어요.”
 
  최 대표는 자신이 한글 운동을 하는 일에 어머니 이혜자 여사의 지지가 있었다며 감사해했다.
 
  “어머니가 이화여대 가사과를 졸업하고 결혼하여 아이 넷을 낳으셨을 때 아버지가 ‘당신 재능이 아까우니 다시 공부하라’고 하셨어요. 어머니가 덕성여대 약학과를 졸업하고 약사가 되신 후 아버지 병원의 약국에서 일하셨어요. 경기여고 100주년에 맞춰 기념관을 지을 때 어머니가 평생 모은 돈을 후원금으로 내셨어요. 덕성여대 약대 건물 지을 때도 어머니의 기부금이 마중물이 되었죠. 외솔회에도 어머니가 1억원을 내셨어요. 어머니는 약사로 일하면서 평생 번 돈을 거의 다 기부하셨고 늘 지지해주셨습니다.”
 
 
  《훈민정음 해례본》과의 만남
 
  외솔회 이사장을 맡고 있던 2015년에 24년간 세종대왕기념사업회를 이끌어온 박종국 회장이 최홍식 대표를 찾아왔다.
 
  “당신 할아버지가 세운 세종대왕기념사업회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니 도와달라고 하셨어요. 할아버지가 창립하시고 1968년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5대 회장을 맡으셨어요. 1956년 한글날에 창립하여 59년 동안 세종대왕을 기리면서 다양한 연구와 서적 발간, 한글 관련 행사까지 많은 활동을 해왔는데 자금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니 걱정이 되었죠. 고심하다가 2015년에 외솔회를 여동생 최은미에게 부탁하고 세종대왕기념사업회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8대 회장을 맡으면서 10여억 원을 희사한 데 이어 10여억 원을 차용 형식으로 투입해 사재(私財) 20억여 원이 기념사업회에 들어가 있는 상태이다.
 
  최홍식 대표는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 《훈민정음 해례본(訓民正音 解例本)》을 접한 것을 운명으로 여기고 있다.
 
  “그동안 할아버지가 연구한 한글을 기리는 일에 작은 힘이나마 보탠다는 생각으로 달려왔는데 《훈민정음 해례본》을 접하면서 사명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한글, 즉 훈민정음이라는 문자 체계의 사용 방법을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책이다. 국보 제70호이며 유네스코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대규모의 언중(言衆)이 실제 사용 중인 문자 시스템에 대해, 이를 만들어낸 사람이 직접 해설을 달아놓은 자료는 전 세계에 오직 《훈민정음 해례본》 하나뿐이다. 당연히 보물 중의 보물이고 세계 언어학자들도 극히 소중한 자료로 인정하고 있다.
 
  《훈민정음 언해본》에는 제작원리 내용(해례)이 실려 있지 않았기 때문에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되기 전까지 한글 창제에 대한 구구한 추측이 난무했다. 대표적인 것이 ‘문창살을 보고 한글을 만들었다’는 설이다. 1940년에 해례본이 발견되면서 비로소 한글이 계통적으로 독립적인 동시에 당시 최고 수준의 언어학, 음성학적 지식과 철학적 이론이 적용되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2015년에 광복 70돌 기념으로 간송미술문화재단과 교보문고가 협력하여 국보 70호로 지정되어 있는 《훈민정음 해례본》의 복간본을 제작했습니다. 제가 세종대왕기념사업회 회장을 맡았던 그해였는데 선물로 한 권을 받았지요. 선물해 주신 국어학자 김슬옹 선생이 《훈민정음 해례본 입체강독본》이라는 책을 저술하고 교육도 하셨는데 그때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최홍식 대표는 《훈민정음》의 원리가 자신의 전공 분야와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제가 이비인후과를 전공한 것과 박사 과정에 들어가면서 세부 과정으로 ‘후두학(喉頭學), 음성언어의학, 두경부외과학’을 선택한 건 신(神)의 섭리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박사 학위 논문을 쓸 때 개의 후두를 이용한 ‘생체발성 모형’을 개발하여 ‘후두생리와 발성생리’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어요. UCLA 의과대학 교환교수로 갔을 때도 후두생리연구소에서 연구했었죠. 《훈민정음 해례본》의 제자해를 보니 제 전문 분야인 조음음성학, 음성의학과 관련된 부분이 많았습니다.”
 
 
  天地人 발성법 주목
 
천(·)지(ㅡ)인(ㅣ)은 공명강의 특징적 모양을 본떠 만들어졌다.
  최 대표는 《훈민정음 해례본》을 읽고 훈민정음 28자가 구강 모양, 혀의 움직임을 연구한 상형문자라는 걸 확인하면서 특별히 천지인(天地人)의 발성법에 주목했다.
 
  《훈민정음 해례본》의 발견으로 한글 창제의 원리에 대해 많은 것이 확인되었음에도 내용이 난해하여 아직도 학자들 사이에서 한글 원리에 대한 해석에 분명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부분이 있다. 자음 글자의 경우 혀나 입술 같은 발성기관을 본떠서 만들었다고 쓰여 있지만, 모음 글자의 경우 성리학 이론과 관련된 천지인을 가져와서 만들고 조합한 것이라 서술되어 있어서 학자들의 해석이 분분하다.
 
  “훈민정음 제자(制字)를 설명해놓은 제자해를 공부할 때 중성자(모음, 홀소리)가 조음기관과 공명강(共鳴腔) 모양에 대한 음성학적 설명이 확실한 데도 국어학계 등에서 인정하지 않는 게 이상했어요. 이 문제를 분명하게 해결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죠. 《해례본》에 ‘설축(舌縮)’이라는 글자가 나옵니다. ‘설근의 수축’이라는 뜻이에요. 아래 아(·)는 설축을 뒤로 내리면서 앞 공간을 동그랗게 만들어서 내는 것으로 소리가 깊다고 되어 있습니다. ㅡ는 설근이 약간만 수축되고 소리는 깊지도 얕지도 않다고 나옵니다. ㅣ는 설근의 수축은 전혀 없으면서 소리가 얕다고 되어 있습니다.”
 
  천(·)지(ㅡ)인(ㅣ)을 소리 조음 시 ‘공명강’의 특징적 모습을 본떠 만들었다는 것은 이비인후과 의사들과 목소리를 연구하는 공학자, IT 전문가들은 다 이해하는 사안이라고 한다. 공명강이란 목과 입속 등 공명을 일으키는 몸 안의 빈 속을 뜻한다.
 
 
  《훈민정음 음성학》 펴내
 
《훈민정음 음성학》
  최홍식 대표는 공명강의 핵심적인 모양을 딴 한글의 과학성을 입증하기 위해 2016년 《세종학연구 16집》에 〈음성학과 음성의학으로 풀어보는 훈민정음 제자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에서 훈민정음 28자는 ‘발성 때 옆에서 본 소릿길(성대 바로 위 인두강과 입안)의 모습’이라는 가설을 제시했다. 2018년에는 컴퓨터 단층 촬영(CT)으로 제주어 방언에서 보이는 ‘아래 아(·)’ 조음의 영상의학과 음향학적 특성을 살피는 논문도 발표했다.
 
  지난해 훈민정음 음성학에 관한 두 편의 논문을 《대한후두음성언어의학회지》에 발표하면서 학계의 인정을 받았다. 한발 더 나아가 〈중성자(홀소리) 제자해에 대한 음성언어의학적 고찰〉과 〈초성, 종성(닿소리) 제자해에 대한 음성언어의학적 고찰〉이라는 두 편의 논문을 바탕으로 올해 1월 《훈민정음 음성학》이라는 단행본을 출간했다. 부제(副題)는 ‘이비인후과 전문의 눈으로 본 훈민정음 제자해’로 달았다.
 
  “연세대 의대 교수로 퇴직하고 1년 후에 제일이비인후과 의원을 개원했어요. 병원 내에 천지인발성연구소를 개설해 연구를 계속했죠. 한글학자들은 그동안 ‘어금니소리글자 ㄱ은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습이며, 입술소리글자 ㅁ은 입 모양을 본떴다는 내용까지만 인정했어요. 음성공학이나 음성의학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융합연구를 해야 합니다. ‘ㅁ’에서 앞 입술과 뒤 성대가 터져 ‘ㅍ’이 돼요. 이런 설명을 하면 다들 놀랍니다. 세종대왕은 음성학의 대가예요. 그림까지 가미해 상세하게 설명하는 《훈민정음 음성학》을 읽으면 한글의 과학적 면모를 확실히 깨닫게 될 겁니다.”
 
 
  “보톡스 주사로 목소리 떨림 치료 가능”
 
  2년 전 개원할 때 제일이비인후과의원은 이비인후과 전문의 4명으로 출발했다. 현재 7명이 진료하고 있으며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 2명과 외과전문의 1명도 협진하고 있다. 5층 건물 전체를 사용하는 제일이비인후과에서 눈에 띄는 건 성악발성교정치료실이다.
 
  “만성후두염, 성대결절, 성대폴립, 접촉성 성대궤양, 성대구증, 성대마비 환자들이 많이 오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목소리를 바꾸고 싶은 분들, 목소리를 많이 쓰는 분들도 정기적으로 성대의 상태와 발성을 점검하러 옵니다. 목소리는 의사 표현의 핵심입니다.”
 
  성악발성교정 치료는 최홍식 대표원장이 UCLA 미국 연수 시절 음성언어치료사와 성악가가 같이 진료하는 모습을 보고 착안했다. 1993년 귀국해 음성클리닉을 개설했고, 그간 많은 환자를 치료했다. 현재 성악가와 언어재활사가 제일이비인후과의원에서 음성언어치료사로 일하고 있다.
 
  “목소리가 떨리거나 끊어지고 막히는 연축성 발성장애로 오는 여성 환자들이 많아요. 목소리 떨림은 소량의 보톡스를 성대에 주사하면 증상이 사라집니다. 목소리가 너무 낮아 고음으로 바꾸길 원하는 여성 환자, 목소리가 여성적인 데다 고음이어서 고민하는 남성 환자들도 있어요. 약물이나 수술로 성대가 부은 걸 가라앉히면 목소리 성형이 가능합니다.”
 
  ‘연축성 발성장애 환자에 대한 보톡스 주입 치료’는 최홍식 원장이 1995년 12월 국내 최초로 도입했다. 약물 주입이나 먹는 약, 수술로 목소리를 치료하기도 하지만 성대에 이상이 없을 경우 성악발성교정만으로도 치료가 가능하다.
 
  “골절 환자가 깁스를 풀고 나서 재활훈련을 받는 것처럼 성대 갑상샘 수술 후 성대마비나 약물 주입 성대 내전술 후에도 발성 치료를 받는 게 좋아요.”
 
  탁한 음과 가느다란 목소리도 치료가 가능하다. 성대에 상처가 난 성대구증에 의한 탁성은 특수 레이저로 점막 상처를 치료하면 맑은 소리로 바뀐다. 최홍식 원장이 10여 년 전 성대구증을 치료하는 레이저 수술법을 처음으로 개발한 이후 국내외 의학계에서 이 치료법을 활용하고 있다.
 

  여성 목소리로 노래하는 카운터테너도 음성 치료나 마사지를 통해 남성 음으로 바꿀 수 있고, 굵은 남성 목소리를 카운터테너로도 변경 가능하다. 성전환 수술을 해도 음성과 골격은 바뀌지 않는데, 울대뼈의 연골을 작게 만들고 음성 성형을 하면 목소리가 여성과 비슷해진다. 음치 성형이나 노래를 더 잘하게 하는 치료법도 있다고 한다.
 
  “성악발성교정을 받으며 훈련하면 소리가 드라마틱하게 바뀝니다. 근육의 힘을 빼주는 이완훈련을 하고 립트릴(Lip trill)·텅트릴(Tongue trill)로 입술과 혀를 떠는 연습, 복식호흡, 성도를 넓게 여는 공명 발성 훈련을 하면 고음도 잘 올라가고 좋은 음이 만들어지면서 공명이 잘됩니다. 음치도 훈련을 통해 나아질 수 있어요. 환자들이 음성 치료로 사회부적응과 대인(對人)공포증을 이기고 자존감을 회복하는 모습에 보람을 느낍니다.”
 
  목소리도 자기관리 분야의 하나로 떠오르면서 면접시험과 프레젠테이션을 앞두고 최홍식 원장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조용필·윤형주 등 많은 유명인이 최홍식 원장에게 치료를 받았다. 현재 제일이비인후과는 대한가수협회와 MOU를 맺어 가수들이 많이 찾고 있다. 아이돌들도 오는데 최 원장은 젊은 친구들은 누가 누구인지 분간이 안 간다며 웃었다.
 
 
  “비만도 위산 역류의 원인”
 
  목소리는 무조건 타고나는 것은 아니다. 나쁜 식습관과 열악한 생활환경 같은 후천적 요인으로 음성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많다. 성대 점막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다양하지만 가장 핵심적인 것은 건조함과 위산 역류라고 지적했다.
 
  “나이 들수록 침의 양이 줄어들고 호흡기 점막의 점액 분비량도 줄어들기 때문에 물을 자주 마시고 건조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여름에는 습하고 겨울은 춥고 건조한데 겨울에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중앙난방과 밀폐식 실내구조도 건조하게 만드는 요인입니다. 겨울이 시작될 때부터 이듬해 4월까지 물을 끓여서 수증기를 내뿜는 가열식 가습기를 사용하는 게 좋습니다. 코와 입술에 뿌리거나 발라 습기를 유지하는 습윤제 사용도 도움이 됩니다.”
 
  미세먼지, 초미세먼지에 이어 매연과 공해물질도 호흡기를 위협하니 조심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흡연이 가장 해롭다.
 
  “요즘 중년 이상 되는 남자분들은 금연을 많이 하시는데 젊은 여성들의 흡연이 많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젊은 여성 환자들이 흡연으로 목이 상해 병원을 찾아오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죠. 전자담배도 해로우니 모든 담배를 멀리해야 합니다.”
 
  위산 역류도 목의 상태를 나쁘게 하는 주범이다.
 
  “식도를 통해 위산이나 위 내용물이 목까지 올라오는 걸 역류성 인후두증이라고 합니다. 염증이 생기면 역류성 인후두염에 걸려 목소리가 잠기고 목에 이물감을 느끼게 되죠. 고열량의 기름진 음식과 패스트푸드를 많이 섭취하면 위산이 역류하기 쉽습니다. 밤늦게 먹는 것도 좋지 않아요. 비만도 역류의 원인이 되니 적정 체중을 유지하는 게 좋습니다.”
 
 
  “쉰 목소리 계속되면 이비인후과 찾아야”
 
  코골이나 알레르기 비염이 심한 사람들, 콧속 연골이 휜 비중격만곡증이 있는 사람은 잘 때 입으로 숨을 쉬는 구호흡을 하게 되고, 구호흡은 입안을 건조하게 만든다.
 
  “우리가 호흡하고 음식을 삼킬 때 상당히 복잡한 과정을 거쳐 후두와 인두로 넘어갑니다. 각 기능이 조절이 제대로 안 되면 문제가 생깁니다. 음식이 기도로 넘어가면서 흡인성 폐렴으로 위험에 처하는 노인들이 많습니다. 뭔가 좀 안 좋다고 생각되면 진찰을 받아야 합니다. 특히 쉰 목소리가 2주 이상 계속되면 꼭 이비인후과 전문의를 찾아야 합니다. 후두암이거나 성대 쪽에 혹이 생겼거나 성대마비가 오면 쉰 목소리가 나올 수 있습니다. 신경이 마비되면 음식을 삼킬 때 사레가 들리고 그러다 폐로 음식이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어떤 병이든 조기 발견하면 치료가 가능하니 꼭 전문의를 찾길 바랍니다.”
 
  조기에 치료받으면 완치될 수 있는데 방치하여 큰 병으로 번지기도 한다고도 경고했다.
 
  “나이 드신 분들이 계단을 조금만 올라도 숨이 차는 건 폐 기능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목이 아플 때 이비인후과에서 치료받으면 되는데 방치하다 후두 쪽과 기도 쪽으로 계속 염증이 퍼져나가면서 결국 폐까지 나빠지기도 합니다.”
 
  최홍식 원장은 훈민정음을 연구하는 학자로 활약하면서도 “나이 들수록 더 세심하게 자신의 몸을 관리해야 한다”는 의사로서의 권고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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