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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태기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

“노동개혁 성공하면 고성장·저실업 국가로 간다”

글 : 정혜연  월간조선 기자  hych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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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금·교육 개혁 모두 노동개혁과 밀접한 관련… 3대 개혁 성패, 노동개혁에 달려”
⊙ “노동개혁은 법치주의, 노동법 현대화, 노동관행 합리화”
⊙ “노동권력이 자본권력의 힘을 넘어서 정치권력화됐지만, 혜택은 소수에게”
⊙ 대안적 분쟁해결 방식(ADR)으로 철도 파업, 서울버스노조 파업 막아
⊙ 체제 전복의 위험 때문에 6·25전쟁 중에 노동법 서둘러 제정(1953년 3월 8일)

김태기
1956년생.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美 아이오와대 경제학 석·박사 / 한국노동연구원 동향분석실장, 김영삼 정부 청와대 교육 및 노동개혁 담당, 노사관계개혁위원회 수석전문위원, 중앙노동위원회 공익위원, 노사정위원회 공익위원, 열림포럼 대표, 한국노동경제학회 회장,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및 분쟁해결연구센터 초대 소장, 노사정위원회 위원장 / 저서 《협상의 원칙》 《분쟁과 협상》 《불평등의 기원》 《2030을 위한 NEW LABOR 일자리 개혁(공저)》 등
  “노동위원회가 녹이 슬었습니다. 노동분쟁이 많아지고 분쟁의 성격도 개별 분쟁 중심으로 크게 바뀌었는데 노동위원회의 인프라와 업무처리 방식은 변화하지 못했습니다. 민간은 물론 공공기관 업무가 디지털화되는데 노동위원회는 여전히 아날로그에 머물러 있고, 전자업무시스템(노사마루)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상임위원과 조사관이 부족하고 전문성을 쌓기 어려운 상태로 방치되고 있습니다.”
 
  김태기(金兌基) 중앙노동위원회(이하 중노위) 위원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김 위원장이 처한 처지가 짐작이 갔다. 중노위는 노사(勞使)의 이익 및 권리 분쟁에 대한 조정과 판정을 주 업무로 하는 독립성을 지닌 준(準)사법기관이다. 노동위원회법 제1조에 따르면 노동관계에 관한 판정 및 조정(調整) 업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수행하기 위해 노동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중노위, 지방노동위원회와 특별노동위원회로 구분한다. 중노위와 지방노동위원회는 법적으로 고용노동부 소속 기관이다. 근로자 위원, 사용자 위원, 공익위원 3자로 구성된 합의제 행정기관이다. 김태기 위원장은 지난해 11월부터 제28대 위원장을 맡고 있다. 지난 3월 17일 서울 세종로에서 만났다.
 
  ― 노동분쟁 범위가 늘었군요.
 
  “노동위원회에 맡긴 사건이 시간이 갈수록 증가해왔습니다. 과거에는 노사 간에 근로조건 결정에 대한 불일치로 노동쟁의가 발생한 경우 등 집단적 노사관계 사건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사용자로부터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 정직, 감봉 등 징벌을 당한 근로자의 사건 등 부당 해고나 부당 노동 행위 사건이 증가했는데, 지금은 직장 내 고용차별, 성차별, 괴롭힘, 따돌림, 성희롱 등 새로운 사건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공무원 노조, 교원 노조 등 공공부문 노동분쟁도 노동위원회에서 해결합니다. 일반 근로자들이 겪는 임금 체납 문제를 제외하고 대부분이 노동위원회에서 처리되는데, 분쟁의 숫자뿐 아니라 분쟁 해결 난이도의 증대를 뒷받침할 인프라 투자가 턱없이 작습니다.”
 
 
  1년에 1만8000건의 노동분쟁 처리
 
  ― 1년에 몇 건의 사건을 처리합니까.
 
  “1만8000건 정도 처리합니다. 전문 인력 380명, 1년 예산 480억원으로 이렇게 많은 사건을 처리한다는 게 자랑스럽지만, 동시에 업무의 과부하 때문에 사건 조사와 판정 및 조정의 질(質)이 떨어질까 불안합니다. 노동위원회는 사용자, 근로자들의 불편 사항을 빠르게 처리하기 위해 만든 조직입니다. 준사법기관이라고 해서 판결에 골몰해야 하는 조직이 아닙니다. 노동분쟁을 공정하고도 신속하게 해결하려고 만든 조직이죠. 과거에는 노조 차원에서 사용자 측과 대립하는 사건이 많았는데, 요즘 이런 노조 사건은 전체의 10%밖에 안 됩니다. 나머지는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의 개별 사건인데 노동위원회의 업무는 여전히 개별 노동자보다 노조 사건을 우선으로 하는 구조로 돼 있으니 효율이 나지 않습니다.”
 
  부당 해고 등을 당한 노동자(혹은 노동조합)는 지방노동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한다. 서울, 경기, 충북, 충남, 부산 등 13개의 지방노동위원회에서 사건을 접수, 조사관이 이를 조사하고 초심은 사업장 소재지인 지방노동위원회에서 판결한다. 판결에 불복(不服) 시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 신청을 하고, 재불복 시 중앙노동위원장을 피고로 재심 판정서를 송달받은 날부터 15일 이내에 행정소송법에 따라 소를 제기한다.
 
 
  조사관 한 명이 일주일에 150페이지 보고서 1~2건 작성
 
  ― 노동위원회법 제4조에 의하면, 노동위원회는 그 권한에 속하는 업무를 독립적으로 수행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마치 노동부의 하급기관인 양 취급됩니다. 과거에 노동부는 정부종합청사가 있는 과천에, 노동위원회는 서울시 마포에 있었는데 지금은 세종시의 노동부 건물 안에 노동위원회가 있습니다. 전문성을 쌓기 어려운 인사 제도는 문제가 더 큽니다. 노동부에서 노동위원회로 순환 근무를 나오는 조사관들의 입장에서 보면 복잡한 분쟁 사건을 책임감 있게 처리할 인센티브가 많아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 노동위원회를 잠시 거치는 기관 즈음으로 인식하고 업무를 소홀히 한다는 건가요.
 
  “그건 전혀 아닙니다. 업무의 과중을 사명감으로 이겨내고 있습니다. 조사관들이 감당이 안 될 정도로 많은 업무를 맡으면서 병이 날 정도입니다. 보통 조사관들이 조사 보고서를 쓰는 데 사건당 A4로 150쪽 분량을 씁니다. 여기에 70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합니다. 쌍방의 주장을 듣고, 상황에 따라서는 현장에 나가서 사건을 조사하고 쓰는데 일주일에 1~2건을 처리합니다.”
 

  ― A4 150페이지 분량을 일주일에 1~2건 처리한다고요?
 
  “노동위원회 조사관은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들이 돌아가면서 맡습니다. 근로감독관은 노동관계법령 위반의 죄에 대해 형사소송법에 규정된 사법경찰 관리 직무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임검(臨檢), 서류의 제출, 심문 등 수사 업무를 담당합니다. 하지만 조사관이 되면 근로감독관의 권한은 없어지고 일은 많아지고, 과거 근로감독관 때 받았던 수당(한 달에 25만원)은 받지 못합니다.”
 
  ― 노동위원회 조사관은 활동비가 ‘0’원이라면서요?
 
  “네. 노동위원회의 1년 예산 480억원에 인건비, 건물 임차료 등이 다 포함돼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이들에게 지급할 재원(財源)이 없습니다. 근로감독관(25만원), 국민권익위(7만~25만원)와 비교하면 어이가 없지요.”
 
 
  현장 나가기 어려워
 
  ― 현실적으로 일일이 현장에 나가기란 어렵다는 거네요.
 
  “그렇습니다. 문제는 직장 내 따돌림과 같은 복잡한 사건이 많아져 사실 조사가 더 충실해져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사건들은 돈만의 문제가 아니고 심리적 문제가 있습니다. 조사관이 나가서 양측을 만나 대화도 나누고 시간을 투자하지 않으면, 어느 쪽의 얘기가 맞는지 알기 어려운 사건입니다. 그런데 그걸 그냥 책상 위에서 전화 돌려서 뚝딱뚝딱 처리하면 안 되지 않습니까. ”
 
  ― 조사관 입장에서야 수없이 처리하는 사건의 하나지만, 해고·따돌림을 당한 당사자 입장에서는 트라우마로 남는 사건일 텐데요
 
  “그럼요. 직장 내 트러블은 누구나 생길 수 있고, 결국 미래의 내 일이 될 수 있는 겁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평생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고요. 그런데 현재 노동위원회는 위원들이 대부분 비상근이라서, 주인의식을 갖고 업무를 해결해야 하는데 이런 게 많이 약합니다. 취약계층 근로자의 권리를 강화할 필요성이 커졌지만, 노동위원회의 운영방식을 개선하기가 그만큼 더 어렵습니다. 이러다 보니 일반인 중에는 노동위원회라는 기관이 존재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만큼 일반인들의 관심 밖에 있는 조직이란 소리입니다.”
 
 
  사실상 5심제
 
전교조가 지난 3월 29일,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정부의 ‘반교육·반노동·반역사적’ 정책을 규탄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김태기 위원장은 노동위원회가 법률적으로는 ‘그 권한에 속하는 업무를 독립적으로 수행한다’고 되어 있지만, 예산 편성이나 조직과 직제 등에서 고용노동부 소속이라 독자적인 권한이 없다고 지적했다.
 
  ― 노동위원회 거버넌스를 바꾸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네, 문제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기획재정부에 대한 예산 제출과 행정안전부에 대한 조직 직제 개편 요청을 고용노동부를 거쳐야 합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 입장에서 보면 자기들 예산과 조직이 우선인데 노동위원회까지 챙길 여유가 있겠습니까. 제가 와서 보니 노동위원회는 그냥 방치된 조직이었고, 특히 세종시로 이전한 다음에는 더해 보였습니다.”
 
  ― 노동위원회가 판정하면 그 권위를 인정해법원으로 가지 않아야 좋은 것 아닙니까. 불복할 경우에 중노위의 재심, 법원으로 가면 대법원까지 5심제네요.
 
  “지금처럼 노동위원회의 거버넌스가 허술하고 투자가 작으면 그렇게 됩니다. 5심제가 되면 국민 모두 피해자가 됩니다. 노동분쟁은 신속하게 해결해야 하는데 오히려 더 길어집니다. 노동분쟁의 해결에 불확실성이 커져 분쟁이 악화하고 게다가 권리 구제에 시간이 오래 걸려 취약근로계층일수록 손해는 더 커지게 됩니다.”
 
  ― 노동위원회가 법원처럼 운영되는 것이 맞나요.
 
  “아닙니다. 노동분쟁은 일반 분쟁과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나라든 법원과 별도로 분쟁해결기구를 만들고 업무 처리 방식도 유연하게 만듭니다. 따라서 노동위원회가 모든 분쟁을 판정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설립 취지에 맞지 않습니다. 분쟁 당사자들의 편의에 맞게 신속하고 공정하게 해결해야 하는데, 문제는 이렇게 되려면 유능한 조사관과 노동위원회에서 상주하면서 일할 상임위원이 필수적으로 있어야 합니다.”
 
  ― 개별 사건이 90%라니, 업무 처리량이 짐작이 갑니다.
 
  “네, 그렇습니다. 기존의 처리 방식으로는 분쟁을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가령 직장 내 따돌림 사건을 보죠. 사업주가 괴롭힌 게 아니라 근로자끼리 괴롭힌 사건이 대다수입니다. 그런데 그 문제는 책임을 사업자에게 묻게 돼 있어요. 관리 소홀인 거죠. 사업주는 상황에 따라 선의(善意)의 피해자일 수 있습니다.”
 
  ― 노동위원회로 오는 사건이 대부분 판정이 아닌 화해가 가능합니까.
 
  “그럼요. 노동위원회 사건의 대부분인 징계, 해고 사건 등은 비교적 명확한 편이고, 판례도 많이 축적돼 있어서 화해가 쉽습니다. 이런 사건들은 각각 굉장히 다른 사안으로 보이지만, 그 속내를 보면 금전적인 이유가 90% 이상입니다. 사용자와 근로자에게 설명하면 쉽게 알아듣는 일이 많습니다. 가령 사용자가 500만원에 합의할 뜻이 있는데, 근로자가 1000만원으로 합의를 원하면 중간인 750만원에서 합의할 수 있는 일들이 태반입니다. 이 일로 노동위원회를 벗어나 행정소송에 들어가면 법원에 다니는 비용, 변호사 선임 비용 등 추가로 비용이 많이 들어가지 않습니까. 이 때문에 양측이 받아들이는 안의 범위에서 원만한 조정이 가능합니다.”
 
 
  ‘대안적 분쟁해결 방식’
 
조장우(오른쪽) 서울시버스운송사업조합 이사장과 박점곤(왼쪽) 서울시버스노동조합 위원장이 2022년 4월 26일 새벽 서울 영등포구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서 열린 사후조정에서 협상을 타결, 조정안에 서명한 뒤 조정위원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김태기 위원장의 말로는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대안적 분쟁해결 방식(ADR·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이라는 것을 도입하고 있다. ADR은 분쟁 당사자가 스스로 해결방안을 찾아내도록 전문가들이 도와주는 협상 기반의 화해·조정·중재 등을 말한다. 영국, 독일의 경우 노동 사건의 90% 이상이 화해로 해결되고, 심문 회의를 통한 판정은 6~7%뿐이다. ADR을 도입한 미국과 일본의 경우에는 화해를 통한 사건 해결이 73%, 63%가 넘는다. 반면 우리는 33%대에 머물러 있다.
 
  김태기 위원장은 취임 직후 ‘미국의 ADR 제도 도입’을 기치로 내걸었다. 중노위는 지난 3월에 ‘ADR 전문가 양성 프로그램’ 개발에 나섰다. 오길성 전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 이용범 전 한국노총 사무처장 등 노동계 출신 인사와 ‘화해율 97%’를 기록한 서광범 노동위원회 공익위원, 이정 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호환 아주대 교수 등이 모두 참여해 ADR 전문가 양성 프로그램 모임을 열었다.
 
  김태기 위원장이 말한 ADR 방식이 크게 기여한 대표적인 사례가 작년 11월 말에 취임하고 막 바로 코레일의 파업을 사후(事後) 조정으로 막은 케이스다. 조정 절차가 종료돼 파업에 돌입할 수 있었지만, 중노위가 당사자들의 요청으로 사후적으로 조정을 해줬다. 김태기 위원장은 “이 당시 철도가 정상적으로 운영돼 조정의 성공이 별로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만일 이때 파업이 발생했다면 화물연대 파업과 맞물려 경제에 미친 충격은 엄청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는 지난 3월 서울버스노조 파업을 ADR로 막았다. 서울시 버스 노사는 2023년 임금단체협상(이하 임단협)을 정식 조정 절차에 들어가기 전인 3월 29일 타결했다. 이번 합의는 1988년 노조 설립 이후 35년 만에 처음으로 서울지노위 사전 조정(조정하기 전에 지원하는 것)으로 타결됐다. 사전 조정은 조정 신청 전이라도 노사 당사자가 원하는 경우가 발생하면, 중립적이고 공정한 제3자가 조정위원이 돼 조속한 타결을 지원하는 제도다. 김태기 위원장이 말한 바로는, 서울지노위 공익위원들이 서울시와 의견을 조율하고 노사 면담을 하는 등 조정안을 마련하고 서울시버스노조 교섭위원들이 이를 받아들임에 따라 임단협을 합의할 수 있었다고 한다. 김태기 위원장은 ADR 확산을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근에 민주노총 1세대 투사였던 노동계 출신 인사들과 함께 분쟁 조정가를 의미하는 ‘피스메이커’ 모임을 개최했다. 지난 3월 28일 문성현 전 경사노위 위원장과 노동계 출신 공익위원들은 김 위원장을 만나 ADR 활성화에 앞장서기로 했다.
 
 
  “美, 노동분쟁의 80~90% 이상 ADR로 해결”
 
  ― ADR을 도입하면 많이 달라질까요.
 
  “미국은 노동분쟁이 많은 대표적인 국가였는데 ADR 활용으로 노사관계가 안정적인 나라로 바뀌었습니다. 지금은 ADR 덕분에 노동분쟁의 80~90% 이상을 화해·조정·중재로 해결합니다. 이런 변화는 유럽과 일본 등의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이유는 ADR이 분쟁의 예방과 효과적인 해결을 통해 지속적인 성장과 불평등 해소에도 이바지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회든지 언제나 갈등이 있고, ADR은 갈등이 신속하게 해결되고 신뢰가 쌓이게 하기 때문입니다. ADR을 통해 분쟁의 자주적인 해결을 지원하면 자원의 효율적 분배와 결과의 만족도가 높습니다. 자원 배분을 둘러싼 갈등을 당사자들이 자율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최선이고, 이를 위해 정부는 법적 권리와 의무를 명확히 해주고 거래 비용을 줄이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 우리나라가 ADR을 활용하려면 노동위원회도 변화가 필요하겠군요.
 
  “노동위에 도움을 요청하는 이들은 90%가량이 저소득층입니다. 챗GPT 시대가 왔으니, 노동위원회도 e-노동위원회를 통해 노동조합 없는 대다수의 근로자의 권리구제에 집중해야 하는 시기가 왔습니다. e-노동위원회 구축이 시급합니다. ADR 활용을 촉진하려면 분쟁 당사자의 편의성부터 높여야 합니다. e-노동위원회가 구축되면 멀리까지 와서 사건 신청 서류를 제출하고, 심문 회의에 참석해야 하는 등의 번거로움과 시간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노동위원회는 디지털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사건 신청부터 회의 참석은 물론 분쟁 해결을 위한 대화 및 화해에 이르기까지 영상회의를 이용하고, 관련 자료 수집부터 해석에 이르기까지 AI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 체불 임금에 대한 것은 노동위원회 소관이 아닌가요.
 
  “아닙니다. 노동부 소관입니다. 임금 체불 신고 사건은 체불 금액의 액수 및 지급 시기 등을 둘러싼 분쟁과 체불 임금의 지급 거부와 관련된 근로기준법 위반 성격이 혼재돼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르바이트생, 주부 중에 임금을 제대로 못 받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분쟁적 성격이 강한 사건은 노동위에서 화해 절차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취약계층은 권리 구제가 번거롭고 어려워 그냥 지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의 권리 구제가 진정한 사회 약자 보호가 아닐까 싶습니다. 노조를 보호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려면 노동위원회법을 개정해야 합니다.”
 
 
  노동위법, 형법·민법보다 먼저 만들어
 
  올해는 노동위원회법이 제정된 지 70년이 된 해다. 노동위원회법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때에 노동조합법, 노동쟁의조정법과 함께 태어났다. 1953년 3월 8일에 제정됐다. 근로기준법(1953년 5월 10일), 형법(1953년), 민법(1958년), 상법(1962년)보다 먼저 만들어졌다. 이후에 노동법은 70년 동안 개정이 없었다. 현재 상황을 받아들이기에 낙후된 법일 수 있다는 짐작이 간다.
 
  ― 왜 우리는 노동법을 이토록 빨리 만들었습니까.
 
  “노동법 제정이 시급했던 이유는 당시 정치 상황 때문입니다. 공산화 위협에 직면한 상태에서 헌법의 노동기본권 보장은 안보 위험 요소였습니다. 이런 문제 때문에 노동조합법과 노동쟁의조정법 그리고 노동위원회법이 가장 먼저 제정된 것입니다. 6·25전쟁 중에도 대한민국을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로 리빌딩하려고 했는데, 일제로부터 독립 이후 남로당 세력의 힘이 너무 셌습니다. 일본이 남기고 떠난 회사가 있었는데 그들이 파업한다고 하고, 알고 보니 다 남로당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랴부랴 일본의 법을 베껴서 노동법을 만들어 대응하려고 했습니다. 정부가 노조를 국가 안보 문제로 접근할 수밖에 없었던 특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체제 전복을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던 겁니다.”
 
  ― 당시 일본법이 우리와 맞았을 리가 없는데요.
 
  “군국주의를 표방한 일본은 미국을 상대로 제2차 세계대전을 벌일 만큼 제조업이 앞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제로부터 독립 당시 우리나라는 농경사회였습니다. 산업구조가 일본과 매우 달랐습니다. 게다가 노동법 도입 당시 법을 만드는 정치는 미국식 민주주의를 도입했습니다. 노동기본권도 미국 이상으로 헌법을 통해 보장했습니다. 이러다 보니 정치와 경제 그리고 노동이 서로 따로 움직일 수밖에 없어 나라가 불안한 출발을 했습니다. 노조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의 득세를 막기 위해 행동을 할 수 있는 조직이 필요했고 이렇게 대한노총이 만들어졌습니다.”
 
 
  ‘노동권력의 정치권력화’
 
2022년 11월 22일,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여의도 일대에서 국회에 건설안전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정부에 건설노동자 개혁입법 쟁취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조선DB
  ― 노조도 순수한 노동운동을 위한 조직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죠?
 
  “그럼요. 독립에다 반공 등 여러 가지 정치 요소가 섞인 겁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 노조는 차이가 났습니다. 다른 나라의 경우 노동 문제의 핵심이 산업혁명에 따른 근로조건의 악화에서 시작했습니다. ‘노동자가 일주일에 몇 시간 일을 하느냐’ ‘임금은 어떻게 지급하느냐’ 등 노동자의 권리와 상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다수가 농민이었던 우리 상황에서는 농민이 몇 시간 일하고 말고가 큰 문제가 되었겠습니까?”
 
  ― 노조 태생도, 노동법도 전부 문제가 있네요.
 
  “우리나라 노조와 노동법은 어찌 보면 좀 굴곡지고 파행된 겁니다. 경제 현실과 괴리되다 보니 1950년대 실업률이 40~50%까지 올라갔다고 합니다. 이런 문제는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성장을 국가적 과제로 추진하면서 일자리가 늘어 1960년대 이후 상당 부분 해결되었습니다. 근로자들도 잘살게 되니까 노조의 불만도 어느 정도 잠들었던 겁니다. 그러다가 1980년대 경제성장과 함께 교육 수준이 올라가고 중산층이 늘면서,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이 합쳐지면서 억눌린 불만이 터져 나온 겁니다.”
 
  ― 그게 오늘날 강성노조, 정치노조의 탄생이군요.
 
  “네, 그렇습니다. 문제가 되는 전투적 정치노조는 민주화·경제민주화와 밀접했습니다. 민주화와 경제민주화의 허점으로 노동권력이 자본권력의 힘을 넘어서 정치권력화됐습니다. 하지만 노동권력의 혜택은 소수에게 돌아가고 다수의 노동자와 관계가 없습니다. 오히려 취약계층 근로자는 많아졌고 자영업자들은 저소득층이 됐습니다.
 
  노동권력의 정치권력화 때문에 정작 해결해야 할 문제는 그대로이고 노동 현장의 분쟁이 많아졌습니다. 예를 들면 임금제도가 그렇습니다.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노동의 대가로 금전을 지급하면 그게 전부 임금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임금 인상이 관행적으로 호봉에 따라 결정되고, 임금은 법적으로 기본급, 통상임금, 평균임금으로 나뉩니다. 여기에 수당이 중요 기준인데 이러한 복잡한 법·제도와 관행은 유교적 농경문화 시대의 시혜성 복지의 잔재로 볼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에 맞지 않는 임금제도는 그 자체로 혼란을 유발하고 분쟁으로 이어지지만 방치되고 있습니다.”
 
 
  3대 개혁의 핵심은 노동개혁
 
지난 3월 23일에 열린 복지·노동 현장 종사자 초청 오찬에서 발언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 윤 대통령은 ‘노동, 교육, 연금’ 개혁 의지를 보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 저도 월급 명세서를 받을 때마다 뭐가 이렇게 복잡한가 싶을 때가 잦았습니다.
 
  “임금제도가 비합리적으로 설계돼 있어 개선해야 노사 모두 이익인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임금제도의 개선은 노조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노조의 입장으로는 복잡한 시스템이 유리한 측면이 있거든요. 노조가 장악한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경우 임금을 대놓고 몇% 인상하기보다는 여기저기 틈새를 이용해서 교묘하게 편법으로 임금을 올리는 게 좋은데 뭣 하러 단순화를 시키겠습니까?”
 
  ― 노동법을 손보려는 시도가 역대 정부에서 있었죠.
 
  “김영삼 정부 때 박세일 청와대 수석의 주도하에 노동법 개정이 화두가 됐습니다. 당시 제가 청와대에서 그 과정을 낱낱이 지켜봤는데 의지가 상당히 강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1996년 총파업으로 이어져 맥없이 무너져 버렸습니다. 이후에는 노동법 개정에 대한 문제의식은 있었지만, 한 번도 제대로 공론화되지 못했습니다. 정치권에서도 노동자 한 명 한 명이 표와 연결된다고 느껴서인지 노동법 개정을 적극적으로 논의하지 않았습니다.”
 
  ― 윤석열 대통령이 임기 중 핵심 과제로 ‘노동’ ‘연금’ ‘교육’ 개혁을 선택했습니다.
 
  “지도자다운 결단입니다. 3대 개혁은 경제사회 발전의 패러다임 대변혁을 추구하고 있다고 봅니다. 연금과 교육 개혁 모두 노동개혁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3대 개혁의 성패가 노동개혁 여부에 달렸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윤 대통령이 현재 노동법을 70년 전에 제정된 낡은 법이라고 했는데, 누적되어왔던 노동의 파행과 굴곡의 역사를 바로잡겠다는 의지라고 봅니다.”
 
 
  “노동개혁 실패하면 미래 없어”
 
  ― 노동개혁만 성공해도 경제성장률이 1%는 올라갈 것이라는 시각이 있습니다.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노동개혁의 성공으로 저성장·고실업 국가가 고성장·저실업 국가로 바뀐 사례가 많습니다. 고성장을 지속하는 미국이 대표적이고, 유럽의 북부와 남부 국가의 경제력이 노동개혁의 성패로 차이가 났습니다. 우리나라는 노동개혁을 제대로 하면 그 효과는 미국이나 북부 유럽보다 더 클 수 있습니다. 노동시장과 노사관계의 모순이 큰 만큼 개혁의 효과도 클 수 있습니다.”
 

  ― 우리나라는 노동개혁의 핵심이 노조개혁인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노조가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대기업과 공공부문에 집중돼 있고 노동시장의 질서와 정책 결정을 사실상 주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노조개혁은 정치·경제·사회 개혁을 의미할 수밖에 없습니다. 노조개혁에 성공하려면 노조의 순기능은 살리고 역기능은 방지하는 데에 역점을 둬야 합니다. 노조가 정상적인 역할을 하면 중산층을 키우는 힘이 되고, 경제적으로 소비 활성화,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는 순기능으로 이어집니다. 다만 오늘날의 대한민국 노조는 안타깝게도 경제성장을 둔화시키고 불평등 구조를 심화시키며 정치, 사회를 불안하게 만드는 역기능이 크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 노동개혁을 이번에는 반드시 이뤄야 하는 이유군요.
 
  “그럼요. 이번에도 노동개혁을 하지 못하면 미래가 암담해집니다. 저성장·불평등을 이용한 포퓰리즘이 극성을 부려 개혁의 ‘개’자도 꺼내기 어려워져 개혁은 물 건너갈 것입니다. 남부 유럽이 국력은 기울고 만성적인 경제위기에 시달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노동개혁은 기득권과 특권을 없애고 노동시장 질서를 합리적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손해를 보는 계층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라 전체로 보면 노동력이 늘고, 생산성은 올라가며, 불평등이 감소합니다. 따라서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미·중 대립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에 따른 당면한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데도 노동개혁은 크게 도움이 됩니다. 노동개혁은 한국 경제의 생산과 공급 능력을 키우기 때문입니다.”
 
 
  노동개혁과 노동위의 역할
 
2023년 3월 13일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국회에서 열린 노동조합 회계 투명성 강화 관련 민ㆍ당ㆍ정 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조선DB
  ― 노동개혁에 있어서 노동위원회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노동개혁은 3개 영역으로 구성됩니다. 첫째는 법치주의인데 이를 확립하는 일은 정부의 몫입니다. 둘째는 노동법의 현대화인데 이는 국회의 몫입니다. 셋째는 노동 관행을 합리화하는 일인데 이는 노사 당사자와 노동위의 몫입니다. 노동 관행은 노조와 사용자, 즉 당사자가 갈등과 분쟁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형성되고, 노동위가 분쟁 사건에 대한 판정과 조정 등을 통해 합리적 관행을 만드는 데 이바지하게 됩니다.”
 
  ― 외국도 노동 관행에 관한 건 노동위에서 도맡습니까.
 
  “네. 외국의 경우 노사갈등 예방 교육과 프로그램 지원은 노동위에서 합니다. 영국의 조정중재기구(ACAS)의 일선 조정관의 역할을 보면 분쟁 조정 업무 외에 새로운 법제 변화, 실무자가 알아야 할 법률적 지식과 정부 가이드라인을 소개하는 교육도 활발하게 합니다. 교육 활동은 노동분쟁을 사전에 예방하는 기능을 한다는 차원에서 효과적입니다. 개별적, 집단적 분쟁 예방을 위해 사업장에 대한 노동법 기초교육, 고충처리제도 운영, ADR 협상 기법 등을 교육하는 역할도 필요합니다.”
 
  ― 노조가 귀담아들어야 할 대목이네요.
 
  “미국과 독일 등 선진국의 노조는 정부에 의지하기보다 단체교섭을 통해 자율적으로 노동 관행을 만들고 있습니다. 조합원들의 임금과 근로조건이 정부의 보호가 필요한 일반 근로자보다 훨씬 좋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습니다. 힘 있는 노조가 정부에 더 의지하려고 합니다. 노동운동의 정신은 물론 헌법정신에도 맞지 않습니다. 이제는 우리나라 노조도 사회적 책임의 실현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헌법에서 노동기본권을 보장해준 만큼 그에 걸맞게 책임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귀족노조, 특권노조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치밀한 전략 필요
 
  ― 윤석열 정부가 과거의 정부처럼 노동 문제를 등한시하지 않고, 반드시 개혁에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의지만으로는 노동개혁에 성공할 수 없습니다. 노동개혁에 성공한 국가들은 예외 없이 치밀한 전략을 가지고 임했습니다. 핵심은 국민의 이해와 지지를 확보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공감이 큰 문제부터 개혁에 나서고, 개혁의 원칙에 대한 동의부터 구하는 것이 좋습니다. 노동개혁을 찬성하는 사람도 있지만 무관심하거나 반대하는 사람도 있기에 개혁의 논리가 분명하고도 이해하기 쉬워야 합니다. ‘왜 노동개혁을 해야 하는지’ ‘노동개혁을 하면 무엇이 좋아지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개혁을 반대하는 선전에 휘둘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특히 기존의 노동체제에서 청년이나 여성 등이 소외돼 있다는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들의 노동개혁에 대한 지지 여부가 성패를 가름할 것입니다. 이들의 노동개혁에 관한 관심은 경력개발과 노동이동을 가로막는 장벽을 허무는 데 더 많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따라서 노동개혁의 수단은 교육 정책과 복지 정책 등과 연계해 확장하고, 이에 맞추어 개혁의 컨트롤타워도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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