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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터뷰

정치철학자 이진우 교수가 말하는 ‘전쟁과 평화’

“국가는 전쟁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글 : 장원재  배나TV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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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젤렌스키에게서 강력한 이미지 만들고 영향력 극대화하는 능력 배워야”
⊙ “전쟁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 “푸틴의 연설과 중국이 한국을 대하는 태도 보면 논리적 유사성 정말 많아”
⊙ “좌파 진영, ‘진보적’인 지식인들의 우크라이나 비난 놀라워”
⊙ “정치는 연출… 국민에게 보여주는 이미지 통해 국가의 가치 提高”

李鎭雨
1956년생. 연세대 독어독문학과 졸업, 독일 아우구스부르크대 대학원 철학박사 / 계명대 철학과 교수, 同총장, 한국니체학회장, 한국철학회장,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同 인문사회학부장, 인문기술융합연구소 초대 소장, 포스코교육재단 이사장,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석좌교수 역임. 現 포스텍 명예교수 / 저서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착각》 《불공정사회》 《의심의 철학》 《인생에 한번은 차라투스트라》 《니체의 인생 강의》 《한나 아렌트의 정치 강의》 《지상으로 내려온 철학》 《탈이데올로기 시대의 정치철학》 등
사진=장원재
  지난 2월 발생한 우크라이나 전쟁이 다시 격화되고 있다. 러시아의 침공으로부터 수도 키이우 등을 지켜낸 우크라이나는 이제 반격에 나서 동부 히르키우와 도네츠크 등 실지(失地)를 착실하게 탈환하고 있다. 이에 맞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부분 동원령을 내리는 한편 핵무기 사용을 운운하면서 세계를 협박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이후 우크라이나의 역사나 이 전쟁이 갖는 지정학적(地政學的) 의미 등을 다룬 책들이 여러 권 나왔다. 이런 가운데 정치철학자의 시선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서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는 책이 있어 눈길을 끈다. 포항공과대학교(포스텍) 이진우(李鎭雨·66) 명예교수가 지난 7월 펴낸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착각》(휴머니스트 펴냄)이 그 책이다. 제목부터 무척 도발적이다. 부제(副題)는 ‘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평화가 당연하지 않은 미래’다. 서둘러 간곡하게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는 노(老) 교수의 결기가 느껴졌다. 경기도 용인의 서재로 찾아가 인터뷰한 배경이다.
 
 
  ‘역사의 분기점’
 
이진우 교수의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착각》.
  ― 저한테는 이 책이 ‘긴급 출판’으로 보였습니다.
 
  “그런 성격이 있어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우리 시대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사건, 역사적인 사건, 또는 핵심적인 시대정신이 무엇인가를 생각하잖아요. 먼 훗날 21세기의 대표적인 사건이 무엇이었나를 돌이켜볼 때, 2020년 혹은 2022년을 역사의 분기점으로 꼽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것이 서둘러 책을 쓴 이유입니다.”
 
  ― 어떤 면에서 그렇습니까.
 
  “2020년에는 코로나19가 발생했죠. 인류가 지금 3년째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2022년 2월 24일에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부당하게 침공했고요. 지정학적 질서가 혁명적으로 바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좀 더 자세하게 풀어주십시오.
 
  “우선 전 세계를 휩쓴 전염병 때문에 세계화(世界化)가 이제까지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될 겁니다. 아니면 수정이 되거나. 패러다임이 바뀐 것이죠. 예전에는 국가 간의 경계가 무의미할 정도로 교류가 활발하고 여행도 자유로웠잖아요? 그런 시절은 다시 오기 어려울 겁니다. 세상이 이렇게 바뀌는데, 이런 지정학적 변화의 근저(根底)에 미국과 중국이라는 거대한 제국이 충돌하는 상황이 또 겹쳐 있거든요. 탈동조화(脫同調化) 현상이 일어난다고 하는데, 이 흐름, 이러한 경향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훨씬 더 극적으로 강화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유럽을 넘어 전 지구적 의미가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습니다. 2022년 2월 24일에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럽 귀퉁이에 있는 어떤 나라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것이 아닙니다. 궁극적으로는 유라시아 대륙의 지정학적 질서를 바꾸고, 나아가 세계의 모습을 근본적으로 바꿀 겁니다.”
 
  ― 역사적으로는 전쟁 이후에 전염병이 창궐하는데, 이번에는 순서가 바뀌었습니다.
 
  “이제까지는 전쟁으로 인해 환경이 아주 열악해지고, 또 수많은 사람이 죽어 자연스럽게 전염병이 창궐했죠. 이번에는 평화로운 시기에 전염병이 발병했다는 것도 의미심장하고, 전염병이 도는 와중에 전쟁이 일어난 점도 특이해요. 그래서 이 전쟁은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개될 겁니다.”
 
 
  “1945년 이래 첫 유럽 전쟁”
 
전쟁 발발 직후 국경을 넘어 폴란드로 피란한 우크라이나인 모자. 우크라이나 전쟁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대륙에서 처음으로 벌어진 전쟁이다. 사진=AP/뉴시스
  ― 하나하나 의미를 짚어주시죠.
 
  “중요한 것은, 유럽의 관점에서 보면, 유럽의 한복판에서 전쟁이 일어났다는 겁니다. 유럽 대륙에서는 한동안 전쟁이 없었거든요. 물론 코소보 전쟁이 있었고, 그다음에 뭐 조지아 이런 데서 국지적(局地的) 무력(武力) 충돌이 있기는 했지만, 이런 정도의 전쟁은 없었죠. 1945년 이래 처음으로 유럽 대륙에서 전쟁이 일어난 겁니다.”
 
  ― 코소보 전쟁은 내전(內戰) 성격이 있고 이번 경우와는 완전히 얘기가 다릅니다.
 
  “그렇죠. 다르죠. 이번 전쟁은 예전에 세계를 양분(兩分)했던 초(超)강대국이 직접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는 점에서 아주 심각한 위협입니다. 유럽 사람들은 ‘러시아를 가능한 한 서구 진영으로 끌어들여 전쟁 발발의 잠재적 가능성을 줄이겠다’고 노력했죠. 그래서 이것이 성공할 것이다, 이제까지는 비교적 잘 작동해왔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945년부터 2021년까지 76년을 전쟁 없이 지냈으니까요. 물론 한때는 냉전(冷戰) 시기도 있었지만, 열전(熱戰)이 일어난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정치학자가 됐건 군사 전략가가 됐건, 아니면 뭐 외교관이 됐건 모두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라고 착각했던 겁니다. 그런데 이것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통해서 완전히 깨졌어요.”
 
  ― 미몽(迷夢)으로부터의 탈출이네요.
 
  “어떻게 보면 러시아가 전 유럽 사람들을 미몽으로부터 탈출시켜준 거죠. 이런 의미에서 푸틴이 엄청난 영향을 미친 것이고요. 이번 전쟁이 우크라이나라는,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에 국한된 문제이기는 하지만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와닿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 왜 그렇습니까.
 
  “극동(極東)의 지정학적 질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으니까요.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에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제국이 버티고 있는데, 이런 유라시아 중심주의의 군사적 표현이 우크라이나 전쟁이라고 한다면 중국도 예외일 수 없다, 이런 얘기죠. 동북아의 질서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심각하고 급격하게 변할 겁니다.”
 
 
  “좌파 인사들, 푸틴 논리 지지하는 듯한 인상”
 
  ― 대한민국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말씀이시네요.
 
  “저는 그렇게 봅니다. 그런데 제가 놀란 점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니까 좌파 진영 사람들, ‘진보적’인 지식인들이 러시아가 아니라 우크라이나를 비난해요. 러시아가 침공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예컨대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정치 초년생이라 문제를 키웠다’ ‘강대국의 심기를 건드렸다, 불필요하게 자극했다’ 이런 얘기들이죠.”
 

  ― 우크라이나가 나토(NATO)에 가입하려 했고, 그래서 러시아의 안보가 심각하게 위협을 받아 어쩔 수 없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푸틴의 논리입니다. ‘자위권(自衛權) 발동’이라는 강변(强辯)이죠.
 
  “저는 우리나라 좌파 인사들이 푸틴의 논리를 지지하는 듯한 인상을 강하게 받았어요.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李在明) 현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공식적으로 이런 얘기를 했잖아요. 그런데 이재명 의원만 이렇게 얘기한 것이 아닙니다. 러시아를 반대하고 우크라이나를 지지하지 않아요. 머뭇거리거나 오히려 러시아 편을 드는 듯한 언행(言行)이 많습니다. 저한테는 이것이 놀라웠습니다.”
 
 
  국민과 정치권의 무관심
 
국내 정당 대표와 의원들은 지난 4월 11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화상연설을 들었지만 결석자가 많았고 분위기도 산만했다. 사진=조선DB
  ― 두 번째로 놀란 점은 무엇인지요.
 
  “우리 국민들에게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무관심입니다. 물론 직접적인 영향을 받기에는 전장(戰場)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역사적 친연성(親緣性)도 없으니까 실감이 안 나죠. 그거는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푸틴이 유라시아주의를 실현한다는 명분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거거든요. 대륙의 한끝에서 누군가가 뭔가를 잡아당기면 반대쪽에서는 반드시 거기에 상응하는 무슨 반응이 생깁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것들을 너무 경시하는 것이 아닌가요?”
 
  ― 그래서 ‘이건 안 되겠다’ 싶으셨던 거네요.
 
  “네. 우리가 이런 문제들을 정치인들이라든가 정치학자들에게만 맡겨놓을 것이 아니죠. 이 전쟁이 우리나라의 미래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분명하고 비교적 객관적인 시각으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 국민들의 무관심을 말씀하셨는데, 대한민국 국회의원들도 젤렌스키 대통령의 실시간 화상(畫像)연설 때 출석률이 아주 낮았습니다.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박수도 의례적으로 치고, 자리도 많이 비어 있었죠. 윤석열(尹錫悅) 정부는 자유민주주의 가치 동맹, 그러니까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는 국가 사이의 제휴나 연대를 강조하잖아요? 그런데 주요 정당은 그렇지 않아 보입니다. 국민의힘이 조금 더 우크라이나를 지지하고 민주당은 조금 유보적 태도를 취하는 것 같은데, 전체적으로 볼 때는 양당 모두 공감도가 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적·지리적으로 거리가 멀다는 점에서 이해는 가지만 우크라이나가 강대국의 침공을 받았다는 사실이 강 건너 불 보듯 할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죠. 이런 문제가 국제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공론화(公論化)하고, 의견을 표명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이 되어야 우리 정치가 성숙하는 겁니다.”
 
  ― 우리나라가 세계 10대 경제 강국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그런 위상에 걸맞은 국제적 행동을 보여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안타깝습니다.”
 
 
  푸틴과 시진핑
 
  ― 전쟁과 관련해서 푸틴은 ‘우크라이나는 역사적으로 러시아의 일부다’라고 연설했습니다. 주어를 러시아에서 중국으로 바꾸어놓으면 모골(毛骨)이 송연(悚然)합니다.
 
  “그렇죠. 혹시 1971년에 나온 존 레넌의 ‘이매진(Imagine)’이라는 곡 아십니까? ‘상상해봐 예컨대 폭력도 없고 전쟁도 없고 사유재산도 없는 이런 세상을 상상해봐 국가도 사라질 거야. 우리는 평화 속에서 살게 되고 세계는 하나로서 살아가게 될 거야’ 이런 가사가 나오는데, 제가 보기에 전 세계가 하나가 된다는 것은 전체주의(全體主義)거든요. 이 가사가 평화주의를 대변하는 것은 맞는데 이 평화주의를 너무 절대적으로 신봉하다 보면 반드시 문제가 생깁니다. 현실 속에 있는 끊임없는 갈등과 폭력의 잠재성을 우리가 간과할 수 있다는 것이죠. 이런 의미에서 제가 보기에는 푸틴도 똑같은 말을 하고 있거든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하나다. 그래서 우크라이나와 하나였던 러시아가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해서 지금 전쟁을 벌인다’라고요.”
 
  ― 지금 중국도 동북공정(東北工程)이다 뭐다 역사 왜곡을 하고 있습니다. 고구려(高句麗)는 중국의 지방 정권이었다고 주장하고, 시진핑(習近平)이 트럼프를 만났을 때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라는 말을 대놓고 했습니다.
 
  “요즘 상황과 오버랩되잖아요. 푸틴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시작하기 1년 전에 한 연설과 지금 중국이 한국을 대하는 태도, 또 국제사회에서 내뱉는 표현을 보면 유사점이 정말 많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히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꾸로 생각하는 것일까요?”
 
  ― 무엇이 문제입니까.
 
  “우리나라의 ‘진보적’인 사람들은 민족주의적 경향이 상당히 강합니다. 그러니까 남북한의 체제 차이를 인정하고 공존(共存)의 길을 모색하기보다는, 오히려 남북한이 체제에 상관없이 빨리 통일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죠. 정치적 낭만주의(政治的 浪漫主義)인데, 예를 들면 이런 거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성공적으로 실행해 부산에서 만주를 넘어 시베리아까지 기차를 타고 가자. 아주 낭만적인 이상을 이렇게 보여줍니다.”
 
 
  “북한식 전체주의로 통일해도 상관없나?”
 
  ― 그건 남북 철도 연결 프로젝트 때 나왔던 슬로건 중 하나죠.
 
  “그런데 저는 이 슬로건만 들으면 등골이 오싹해져요. 중국이라는 인구 14억의 강대국이 우리에게 미칠 수 있는 위협은 아예 보지 않는 것이니까요. 더 심각한 문제도 있죠. 체제의 차이라는 건 아무것도 아닙니까? 북한식 전체주의로 통일해도 상관없나요? 궁극적으로 우리는 어떤 가치를 실현하려고 하는 겁니까?”
 
  ―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가운데 어디를 지지하는지가 역사의 전개 방향을 정하는 기준점이라는 말씀이군요.
 
  “그렇죠. ‘당신은 어떠한 정치적 질서에서 살고 싶은 것인지 선택하라’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 일부 좌익 인사들은 전쟁 이야기만 나오면 ‘그럼 전쟁하자는 거냐?’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그럼 굴종(屈從)해야 하나요? 전쟁하면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이 수없이 사라지는 건 맞아요. 하지만 평화를 이상적(理想的)으로 절대화하다 보면 현실을 무시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현실에서는 ‘폭력적 상황을 종식시키기 위해서 우리가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가’를 논해야죠. 우크라이나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은 진보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 평화지상주의(平和至上主義)라는 건, 말하자면 노예적 굴종도 평화로 착각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씀이죠?
 
  “그렇습니다. 대한민국은 지금 휴전(休戰)협정으로 인한 정전(停戰) 상태인데 실제로 대규모 무력 충돌이 없이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국민 모두의 감각이 좀 무뎌졌다고 할까요? 시오노 나나미가 《십자군 전쟁》 첫 문장에 이렇게 썼죠. ‘인간은 모든 문제가 너무 얽혀서 도저히 해결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을 때 단번에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전쟁을 선택한다.’ 이 문장의 주체가 김정은이라면요?”
 
 
  “南北이 서로 다른 국가라는 것 인정해야”
 
  ― 저는 김정은이 전쟁을 선택할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 점입니다. 전쟁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투키디데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쓰면서 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전쟁은 폭력적이고 냉혹하기는 하지만 우리가 평화롭게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위대한 스승이다.’ 말하자면 전쟁의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고 고려해야만 전쟁을 막고 평화 상태를 비교적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다는 거죠. 그런데 남북한은 거의 80여 년 동안 분단된 상태로 있잖아요. 그동안 남한과 북한의 체제는 너무나 이질적(異質的)으로,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습니다.”
 
  판이한 체제 속에서 오랜 세월을 살면, 사람들의 심성(心性) 구조도 달라진다. 물론 남북이 역사, 전통을 공유하고 같은 언어를 쓰는 같은 민족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런 측면에서, 서로 다른 민족 사이에서 갈등을 해결하는 것과는 다른 요소들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도 맞다. 그러나 통일이 과연 어떤 경우에도 반드시 이룩해야 하는 민족사의 절대적 과업일까?
 
  “그런데 우리가 통일이라는 것을 전면에 내세우면 협상력이 떨어집니다. 두 나라가 유엔에 동시 가입했으니까 국제법상으로는 독립된 별개의 국가입니다. 체제도 완전히 다르고요. 그렇다면 남북한이 현 체제를 유지하면서 서로 다른 국가라는 걸 인정해야죠. 그래야 국가 간의 충돌이 일어났을 때의 해결책으로 국제법을 적용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을 무시하고 민족우선주의(民族優先主義)로 나간다고 하면, 북한이 가끔 도발하는 적대적 행위에 대해서 우리가 올바로 대응할 수 없어요. 대한민국의 장기적 목표가 통일이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중단기적으로 볼 때는 남북이 서로 다른 체제를 가지고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우리 민족끼리’는 현실 부정하는 것”
 
이진우 교수는 북한이 주장하는 ‘우리 민족끼리’는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진=조선DB
  ― 평화적으로 공존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독립적인 국가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말씀이네요.
 
  “나아가 국가 간의 관계가 모두 그렇듯이 여기에는 철저한 팃-포-텟(tit for tat·상대의 반응을 그대로 돌려준다) 원리를 적용해야죠. 상대방이 하는 대로 똑같이 대응하는 것만큼 강력하고 합리적인 방식이 없어요. 예를 들자면, 상대방이 평화롭게 우리를 대하면 우리도 평화롭게 대하는 거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고요. 여기에 덧붙여서 우리가 북한보다는 조금 더 잘사는 국가니까 지원할 수 있는 건 지원해주고 이렇게 해야죠. 북한이 우리에게 적대 행위를 공개적으로 해도 같은 민족이니까, 아니면 협상의 여지를 남겨두기 위해서, 또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위해서 묵인하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어떤 국가든, 우리에게 적대 행위를 하고 위해(危害) 행위를 가하면 그것을 두 번 다시 하지 못하도록 우리도 거기에 대해 강력제재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 국가의 힘이 균등할 때는 당연히 그렇게 가야 합니다만, 지금은 북한이 비대칭(非對稱) 전략 무기인 핵을 가지고 있잖습니까.
 
  “그래서 이것을 우리가 어떻게 조율해나갈 것인가가 매우 중요한 문제죠. 남북한이 잘 지내야 한다는 점에는 진보 세력이나 보수 세력이나 차이가 없잖습니까. 그런데 과거 진보 세력이 정권을 잡았을 때는 이데올로기에 편중돼서 남북한의 평화적인 관계와 통일을 이상화하고 절대화한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어땠나요? 실질적인 관계는 개선된 것이 거의 없잖아요.”
 
  ― 그렇습니다. 문제는 ‘우리 민족끼리’라는 북한의 구호에 깃든 허구성인데 북한이 말하는 민족이라는 것은 김일성 민족, 그러니까 우리가 정의하는 민족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 민족끼리’라는 것은 강대국의 영향을 받지 말고 우리끼리 협상을 잘 하자 이런 이야기인데 이건 우선 현실을 부정하는 거예요. 오늘날 전 세계에서 독자적으로 영토와 주권을 지킬 수 있는 나라는 몇 되지 않습니다. 실질적으로 유럽만 하더라도 러시아가 가스와 석유를 무기화해 압력을 가하고 있잖아요? 유럽이 연합해 강력한 동맹 수준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안보가 심각하게 침해됩니다. 전 유럽 사람이 이번에 이 점을 뼈저리게 느낀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면에서 저는 ‘우리 민족끼리’라는 것은 상당히 허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다음이 또 중요합니다. 우리 민족끼리 평화를 구축하고 공존하기 위해서는 남북이 어떠한 규칙을 합의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죠. 저한테는 ‘자유민주주의’라는 것이 정치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가치거든요. ‘우리 민족끼리’라고 그래서 대한민국이 북한에 흡수된다거나 우리 체제가 바뀐다든가 이것은 용납 불가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소위 말하는 민족지상주의(民族至上主義) 또는 민족우선주의는 현실 문제를 푸는 데 있어서는 오히려 상당한 방해 요소가 된다고 봅니다.”
 
 
  ‘전쟁의 도덕적 계기’
 
  ― 다시 우크라이나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우크라이나전은 일주일이면 끝난다는 예상이 압도적이었는데, 의외로 장기화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반격도 상당히 강하죠.
 
  “처음엔 거의 모든 군사 전문가와 정치인이 ‘전쟁은 일주일을 넘기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죠. 시나리오가 5~6개 나왔는데 최악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완전히 흡수하는 것, 그다음이 우크라이나가 주권을 유지하지만, 크리미아반도와 서부 일부를 포기하는 것, 이런 과정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괴뢰 정권을 수립할 것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예측이었거든요. 그런데 변수가 하나 생긴 거예요. 젤렌스키 대통령이 엄청난 지도력을 발휘한 거죠.”
 
  ― 초보 대통령이라는 말도 있었지만, 국민 통합을 위해 메시지를 던지는 방식이 놀랍습니다.
 
  “대단한 능력자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국민이 원하는 것과 국민의 문제가 어디에 있는가를 정확하게 포착해 그것을 표현하니까요. 지금 유럽에서는 젤렌스키를 윈스턴 처칠과 비교합니다.”
 
  ― 전쟁이 8개월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젤렌스키는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줬습니까.
 
  “전쟁을 바라보는 철학적 관점은 두 가지죠. 칸트적 관점과 헤겔적 관점이 있습니다. 헤겔은 이렇게 봅니다. 전쟁은 어떻게 보면 나쁜 것이고 악한 것이기는 하지만 인간이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과정에 있어서 전쟁은 오히려 도덕적 계기가 될 수 있다.”
 
  ― ‘전쟁의 도덕적 계기’요?
 
  “공동체가 추구하는 가치가 심각하게 훼손당할 때, 여기에 대해 스스로 방어하고 저항하지 않으면 나중에 지렁이처럼 구둣발에 밟힐 수도 있다, 이런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국가는 자기를 지킬 힘이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주권(主權)을 지키기 위해서는 전쟁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 전쟁할 수 있는 능력은 어떤 겁니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실질적인 부분, 전쟁할 때 사용할 수 있는 무기의 힘입니다. 즉 군사력이죠. 두 번째는 국민이 국가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주권을 지키기 위해 내 한 몸 희생할 수 있다는 정신력입니다. ‘군사력 + 정신력 = 전쟁 수행 능력’입니다. 예를 들면, 과거에 페르시아 제국에 맞서 출전할 때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가 명언을 남겼죠. ‘우리 그리스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여기서 희생할 용기가 있다.’
 
  그런데 푸틴 대통령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전쟁이 흘러가지 않으니까 부분 동원령을 내렸어요. 그 결과가 반전(反戰) 시위와 국외 탈출 러시입니다.”
 
  ― 서유럽으로는 바로 탈출할 수 없으니까 인접 국가로 탈출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북한이 남한을 침공했다고 가정을 합시다. 아니면 중국이 중간 해역의 경계선을 확대해 우리나라의 해상주권을 침해한다고 가정을 해봅시다. 자, 전쟁이 발발했어요. 그러면 남한에 있는 시민들이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입대하고 예비군도 자원해 전장에 나가야 전쟁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다수의 국민이 도망가면 그건 국가가 아닌 거죠. 그건 국가의 도덕적 체계와 기반이 무너졌다는 뜻이거든요.”
 
  ― 이런 말씀을 들으니, 전쟁이 국민 의식을 새롭게 만드는 면이 많네요.
 
  “우크라이나 국민은 이번 전쟁 전에 크리미아 사태를 이미 겪었죠. 자발적 굴종을 통한 평화로운 삶도 생각할 수 있었지만, 그것이 환상이라는 걸 깨달은 겁니다. 우크라이나는 도덕적 계기가 강화되었고, 러시아는 오히려 도덕적 기반이 약화되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어떻게 귀결될까
 
9월 이후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군이 점령해온 동부 지역을 차례로 탈환하고 있다. 사진=AP/뉴시스
  ― 지금은 양쪽 다 자국의 승리를 장담합니다.
 
  “국가 간의 전쟁은 현실적인 이해관계에 따라서 조정이 됩니다. 지금 러시아가 자기들이 실질적으로 정복하고 있는 돈바스 지역에서 국민투표를 하지 않았습니까? 압박하는 거죠. 여기만 양보하면 휴전하겠다는 겁니다. 그리고 제가 알기로는 서구에서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압박이 있습니다. ‘전쟁이 길어지면 유럽에 있어 에너지 문제, 식량 문제가 심각해지니까 동부 일부를 양보하는 선에서 휴전하면 어떻겠는가’, 뭐 이런 겁니다. ‘휴전하면 영토를 공식적으로 양보하고 포기한 것은 아니니까 우크라이나의 국가적 체면도 사는 것이고, 러시아도 자기가 원래 원했던 건 이것이다’라는 명분으로 후퇴할 수도 있다는 말이죠.”
 
  ― 한반도의 상황과 비슷해지는 거네요.
 
  “유라시아의 동쪽 끝에는 한반도가 있습니다. 북한은 러시아, 중국과 붙어 있죠. 대한민국은 자유주의 진영과 연대(連帶)하고 동맹(同盟)하지 않으면 존립이 불가능합니다. 선택이 아니라 필수예요. 그래서 우크라이나는 지금보다 훨씬 더 친(親)서방으로 기울 겁니다. 그러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또는 중국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유라시아 대륙과 서구 자유민주주의가 지배하고 있는 유럽 지역을 가르는 경계선이 됩니다. 그런데 휴전 상태로 경계선이 된다는 거죠. 앞으로도 잠재적 갈등 요인은 여전히 남아 있는 겁니다.”
 
 
  “정치는 연출”
 
전쟁 발발 이후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녹색 군용 셔츠를 입고 수도 키이우에 남아 항전을 이끌고 있다. 사진=우크라이나 대통령실 유튜브 캡처
  ― 젤렌스키 대통령이 국방색 전투복을 입고 나와서 연설도 했고 미국이 망명을 권유했을 때 ‘나에겐 차량이나 비행기가 아니라 무기가 필요하다’라고 하는 등, 명연설을 여러 차례 하면서 독전(督戰)에 성공했습니다. 러시아가 내전으로 규정한 이 전쟁을 국제전으로 변모시킨 것도 젤렌스키죠.
 
  “젤렌스키는 탁월한 연출력을 가지고 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유명한 여성 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가 ‘정치적 행위는 다른 모든 사람에게 자기의 의견, 가치, 이념을 보여주는 공적(公的)인 연출 행위다’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정치는 연출입니다. 왜냐하면 국민에게 보여주는 이미지를 통해서 국가의 가치가 제고(提高)되거나 더 강화될 수도 있기 때문이죠. 이것을 가장 잘 보여준 인물이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처칠이었고 지금은 젤렌스키라는 겁니다.”
 
  ― 어떤 점이 특히 탁월한 연출이었습니까.
 
  “국방색 옷을 입고 나왔잖아요. 거기엔 아무런 장식도 없습니다. 아마 그냥 섞어놓으면 일반 시민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을 거예요. 그런 복장을 입고 아주 분명한 말로 표현하거든요. 이것이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두 가지 결과를 가져왔잖아요. 하나는 국제사회를 끌어들인 거죠. 러시아가 조지아와 영토 분쟁을 벌였을 때, 크리미아반도를 침공했을 때 NATO와 유럽 공동체는 의미 있는 대응을 하지 않았습니다. 러시아가 침략자이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러시아와 잘 지내야 한다. 뭐 이렇게 생각하도록 만들었거든요.”
 
  ― 이번엔 유럽 공동체의 대응이 달랐습니다.
 
  “푸틴은 이번에도 우크라이나 침공을 일련의 내전처럼 포장했죠. 젤렌스키는 이 전쟁을 러시아, 중국 등 권위주의 세력과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자유주의 세력의 대결로 부상시켰습니다. ‘국제전’으로 전쟁의 성격을 규정했고, 이런 인식을 세계에 퍼뜨려서 강력한 외부의 군사적 지원이 일어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건 누가 봐도 젤렌스키의 공이죠.
 
  다음으로는 홍보 효과가 뭔지를 알아요. 대통령궁에 앉아 방송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 나가 이야기하죠. 대외적으로 우크라이나가 독립적인 주권국가라는 것을 알리고, 대내적으로 국민을 통합했습니다. 그래서 전쟁을 수행하는 힘의 구심점(求心點)이 됐다는 점에서 젤렌스키를 빼놓고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이야기할 수 없어요.”
 
 
  “할 말은 할 줄 알아야”
 
  ― 냉전 시절 소련의 브레즈네프가 제한주권론(制限主權論)을 주창(主唱)했죠. 각 위성국의 민족적 아이덴티티는 인정을 해주겠지만, 정치적 독립성은 절대로 인정할 수 없다는 이데올로기를 내놨습니다. 중국도 대한민국에 대해서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건 혹시 아닐까요.
 
  “저는 그렇게까지는 생각하지 않고 또 생각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많은 분이 구한말(舊韓末)의 정치적 상황과 현재 상황을 비교하죠. 그때나 지금이나 강대국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조건은 변하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다릅니다. 대한제국은 국가로서 존립할 수 없는 상태였고 2022년의 대한민국은 세계 10대 강국입니다.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것은 다른 점이죠.”
 
  ― 어떤 겁니까.
 
  “세계 10위권의 경제력·군사력을 가지고 있으면 국제무대에서 그 위상에 맞는 정치적 행위를 할 줄 알아야죠. 그런데 그걸 못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합니다. 군사력도 선진국이고 경제력도 선진국인데 정치력은 아직 후진국이에요. 우리에겐 국제사회에 어필할 수 있는 강력한 정치적·역사적 무기가 있습니다. 동북아 3국 중에서 자력으로 민주화를 이룩한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합니다. 이런 강점을 발전시켜야죠.”
 

  ― 구체적 방안을 말씀해주십시오.
 
  “예를 들자면, 중국에 대해서 할 말은 할 줄 알아야 해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중국에 가서 10끼 중 8끼를 혼자 들었습니다. 저는 불쾌하고 불편했어요. 경제 이야기를 많이 하시는데, 중국과 경제적으로 밀접한 나라가 우리나라만이 아닙니다. 독일은 신장(新疆)위구르 사태에 대해 할 말은 하거든요. 할 말은 하면서도 자기의 경제적 이익을 취할 것은 취하고 협상할 거 협상하고 타협할 건 타협하는데 우리나라는 침묵하는 경향이 있어요. 무조건 중국과 잘 지내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 듯합니다.”
 
  ― 그런 생각이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궁극적으로는 굴종 상황, 나아가 전쟁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말씀인가요?
 
  “주권국가라면, 어느 정도 선에서는 할 말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만약의 경우, 전쟁이 벌어졌을 때도 할 말은 하게 되는 겁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신경을 건드렸기 때문에 전쟁이 났다’면서, 우리도 중국의 심기를 건드리거나 자극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분들이 있어요. 재미있는 것은, 뒤에 꼭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를 붙인다는 거죠. ‘자국의 이익을 위한다’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료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중국에 대해 입장 분명히 해야”
 
  ― ‘자국의 이익’은 뭡니까? 근본적인 질문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추상적으로 따지면, 주권을 안정시키는 게 자국의 최대 이익이겠죠. 주권을 지킨다는 건 정치력과 외교력이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물질주의적인 관점에서 보면 경제력입니다. 경제라는 것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거든요. 우리와 중국은 서로 의존합니다. 일방통행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우리의 국익(國益)을 극대화하는 방안은 중국이 우리에게 더욱더 의존하도록 만드는 겁니다. 중국이 거대한 시장인 건 맞아요. 그 시장이 자유롭게 교류될 수 있도록 조건을 만드는 것은 그래서 경제인들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인들의 책무입니다. 정치력과 외교력과 협상력의 문제인 거예요.”
 
  ― 중국은 경제 문제와 정치 현안을 연동합니다. 사드(THAAD) 배치를 두고 경제 보복을 했죠.
 
  “엄청난 보복에 대해서 우리가 이제까지 제대로 항의한 적이 있나요? 중국에 대해서는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국민의힘이나 윤석열 대통령이 지지자들이 기대한 것만큼 잘하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그래도 과거 정권이 잘못했던 방향을 수정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 하원 의장 패싱은 문제가 많습니다.”
 
  ― 왜 그렇습니까.
 
  “대통령실에서 뭐라고 하든, 국민은 ‘중국 눈치 봤네’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동안 중국 눈치 봐서 우리에게 떨어진 이익이 도대체 뭐가 있습니까? ‘이런 것들을 좀 총체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동북아 균형자론은 불가능한 수사”
 
  ― 윤석열 정부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좀 더 조언해주신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첫 번째는 지지자들이 왜 윤석열 대통령을 뽑았는지를 생각하라는 겁니다. 전 정부가 설정한 방향이 그르다, 그러니까 방향 수정에 대한 국민적 요청이 있었다고 저는 봅니다. 그러면 두 번째, 이 방향 수정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냐? 전 정부는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우리가 적절한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는 비현실적인 망상을 가졌었어요.”
 
  ― 노무현 대통령 때 이른바 ‘동북아 균형자론(東北亞 均衡者論)’이 시초입니다.
 
  “그건 불가능한 수사(修辭)입니다. 우리에겐 그런 독자적인 능력이 없어요. 윤석열 지지자의 바람은, 우리가 미국과 동맹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중국과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달라는 것 아닐까요? 중심점을 미국에 두고, 자유민주주의 세력과 연대하라는 거죠.”
 
  ― 그렇다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을 통해 윤 대통령이 어떤 교훈을 얻기를 바랍니까.
 
  “첫 번째는 본인이 지향하는 정치적 목표를 분명하고 명료하게 제시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정치적 목표’가 구체적인 정책 단계까지 진행하면, 가시적으로 성과가 납니다. 그럼 설득력도 생기죠. 지금은 임기 초반이니까 그 단계까지는 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방향은 보여야죠. ‘나는 이쪽으로 가고 있다’라는 방향 제시가 좀 더 명료하면 좋겠습니다. 두 번째는 능력과 추진력의 관계입니다. ‘추구하는 방향은 옳은 것 같은데, 저 사람이 저걸 과연 해낼 수 있을까?’ 국민들이 이렇게 의구심을 품잖아요. 그러니까 ‘이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 나는 이런 준비를 하고 있다’라는 힘과 의지, 능력을 분명히 보여줘야 합니다.”
 
 
  “젤렌스키, 쓸데없는 말 하지 않아”
 
사진=장원재
  ― 그런데 힘과 능력을 모든 분야에서 보여줄 수는 없잖습니까.
 
  “그러니 ‘선택과 집중’을 해야죠. 힘이 분산되면 명료함이 사라집니다. 정치·외교·군사·경제·교육, 그러니까 국정(國政)의 수많은 분야가 있잖아요. 모든 부분을 내가 다 수정하거나 더 낫게 할 수는 없지만, 몇 가지는 내가 분명하게 바꿔놓겠다. 이런 구체적인 능력과 비전을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세 번째는 ‘젤렌스키에게 배워라’입니다. 강력한 이미지를 만들고 영향력을 극대화하는 능력입니다. 지금 윤석열 대통령은 거꾸로 가고 있어요. 부정적인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프레임에 걸리면, 그 프레임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상당한 에너지를 소비해야 합니다.”
 
  ― 정치력의 낭비랄까요, 정치적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말씀이네요.
 
  “그렇죠. 최근 사건이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엘리자베스 여왕 장례식에 다녀오고 유엔 연설하고 몇몇 국가 정상과 정상회담을 하고 돌아왔잖아요? 그러면 그것이 내가 지향하는 정치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를 설득력 있고 강하게 제시해야죠. 그렇게 해도 시원찮은 마당에 지금 구체적인 내용은 완전히 묻혀버리고 표면에 있는 이미지만 떠돌아다닙니다. 그것도 부정적으로요. 이런 일이 거듭되면 트라우마가 생겨요. ‘외교 순방할 때마다 이거 또 뭐가 터지는 것 아니야? 사고 치는 것 아니야?’ 지지자조차 이렇게 우려하기 시작하면, 이러한 굴레에서 벗어나기는 힘들다는 거죠.”
 
  ― 젤렌스키의 성공 요인은 무엇입니까.
 
  “정치적 연출력이라는 것은, 연기와 이미지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가 엄청나게 중요한 겁니다. 그 메시지와 이미지가 결합할 때 엄청난 힘을 발휘하거든요.
 
  젤렌스키는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이번에도 역사적인 명연설을 했죠. ‘너희가 우리에게 가스를 끊겠다고 했느냐? 가스 없이 겨울을 보내라고 했느냐? 우린 춥게 지낼 수 있다. 너희 가스 없이 견딜 수 있다.’ 메시지가 간단명료하고, 그 안에 들어 있는 내용이 분명합니다. 이런 표현력이 윤 대통령에게 있어야 하는데, 지금 그게 없다는 겁니다. 이미지가 여기서 더 훼손되면 심각한 비용을 치러야 회복이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전쟁 대비해야 전쟁 막을 수 있다”
 
  ― 윤 대통령의 메시지가 명료하지 않은가요?
 
  “지금 조각(組閣)도 완성하지 않았잖아요? 장관 중에 비어 있는 자리가 있죠. 그러니까 정책이 무엇인지가 아직 국민에게 와닿지를 않아요. 이건 조금 늦어진다고 합시다. 그래도 자기의 의지를 구체적인 정책으로 제시하기 전에 방향은 명료하게 보여줘야죠. 그리고 그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능력을 보여줘야 합니다. 국민을 통합할 수 있을 정도의 메시지를 대내외에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장치와 문화를 만들지 않으면 윤 대통령이 상당히 힘들어질 것 같아 걱정입니다.”
 
  ― 알겠습니다.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라는 건 착각이군요.
 
  “한반도의 경우 6·25전쟁을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남북은 한민족이니까 더 이상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죠.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당위(當爲)가 당연한 현실인 것처럼 착각하는 경향도 있고요. 하지만 인간 사회에서 갈등이 당연한 것처럼 국제 관계에서도 전쟁은 언제나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런 각오를 다져야 전쟁을 막고 비교적 평화로운 시기를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어요. 전쟁에 대비해야 전쟁을 막을 수 있습니다. 착각에서 벗어나야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있고 현실을 제대로 봐야 해결책이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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