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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

영화 〈佛효자〉 주연 마가스님의 思母曲

“아흔 어머니와 떠난 지구별 마지막 여행”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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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 감으면 들려오는 그리운 어머니 목소리, “어머니 미안해요, 고마워요, 사랑해요”
⊙ 남편 없이 시부모, 4남매 키운 고된 삶… 아흔 기념으로 떠난 여행
⊙ 제작비 3억원, 2년 8개월 촬영… 감독 최진규, ‘어버이날’ 전국 극장 상영
⊙ 4월 3일 어머니 타계… 어머니 뜻 기리며 조의금으로 ‘미고사’ 장학금 수여

마가스님
1985년 도선사 현성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수지, 중앙승가대 불교복지학과 졸업 / 중앙대 겸임교수, 동국대 정각원 교법사 역임. 現 (사)자비명상 대표이자 자비나눔공덕회 이사장, 안성 굴암사 심신치유센터 원장 / 저서 《고마워요 자비명상》 《내 마음 바라보기》 《마음충전》 《내 안에서 찾는 붓다》 《마가스님의 100일 명상》 등
사진=조준우
  불교에서 불[火]은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으로 인한 고통을 상징한다. 불교 언어로 ‘번뇌’와 같다. 스무 살의 한 청년이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스스로 헤쳐나와 부처님과 만났다. 1985년 도선사 현성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수지(受持)했다.
 
  오래전부터 ‘따듯한 불교’를 강조해온 마가스님은 치유와 용서, 기쁨과 행복을 돕는 ‘명상’ 보급에 앞장서왔다. BBS 불교방송 〈마가스님의 그래도 괜찮아!〉의 천진난만하고 유머 넘치는 진행자로 청취자들의 아픈 마음을 토닥토닥 어루만졌다. 현재는 (사)자비명상 대표이자 자비나눔공덕회 이사장, 안성 굴암사 심신치유센터 원장을 맡고 있다.
 
  그런 그가 최근 다큐 영화 〈불(佛)효자〉를 제작했다. 이 영화에 배우는 단둘. 스님과 어머니 박종순(朴鍾順·1931~2022년) 여사다.
 
  영화감독은 어쿠스틱 밴드 ‘요술당나귀’의 리더로 알려진 라마 최진규씨. 어머니는 안타깝게도 상영 한 달여를 앞둔 지난 4월 3일 세상을 떠났다. 마가스님은 어머니를 기리며 이런 시를 지었다.
 
  봄이 오면 꽃구경 가자고 하시고선
  삼짇날 제비 따라 하늘 구경 떠나시네.
 
  한 번 단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은 그 얼굴
  눈 감으면 들려오는 그리운 그 목소리
 
  어머니 미안해요.
  어머니 고마워요.
  어머니 사랑해요.
 
  우리 어머니
 
  -마가스님의 ‘우리 어머니’ 전문

 

  기자는 로드 다큐 〈불효자〉를 보았다. 스님과 노모(老母)가 전국 사찰을 순례하며 ‘지구별 마지막 여행’을 떠나는 내용이다. 아흔의 노모를 업고 혹은 휠체어를 밀며, 아니 가슴으로 안고서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양산 통도사, 순천 선암사, 해남 대흥사, 공주 마곡사, 보은 법주사 등지를 다닌다. 출가한 아들이 40년 만에 속세의 어머니와 만나(마가스님은 “40년을 기다린 만남”이라고 했다) 함께하는 여행은 그 자체로도 아름다운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사찰을 찾았으니 영상미에 빠져들 수밖에. 영화를 보는 것만으로 ‘삶을 바꾸는 좋은 씨앗’을 심는 것처럼 느껴진다.
 
  마곡사 계곡에서 환갑의 아들 스님은 어머니를 위해 수박을 자른다. 수박을 숟갈로 파먹은 뒤 껍질을 머리에 덮어쓴다. 그리고 손으로 수박껍질을 두드리며 “나무아미타불”이라고 왼다. 스님의 장난기가 발동한다. 수박씨를 볼에 붙이고 어머니 앞에서 재롱을 부린다. 스님이 말한다.
 
  “어머니, 어머니는 왜 어릴 때 제게 사랑한다는 말을 안 하셨어요? 왜 예쁘다고 뽀뽀를 안 해주셨어요?”
 
  어찌 보면 뜨끔한 말일 수도 있다. 빙그레 웃는 어머니,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네가 잘 때 뽀뽀하고 ‘사랑한다’고 말했지.”
 
  이 말에 초로의 아들 스님은 마음이 무너진다.
 
  그리고 어머니 보살에게 고개 숙여 말씀드린다. “미안합니다.”
 
  허리 굽은 어머니가 두 손을 모으고 화답한다. “고맙습니다.”
 
  그러자 다시 스님이 어머니가 전부였던 아이 때처럼 고백한다. “사랑합니다.”
 
 
  모자의 ‘불(佛)효자’ 여행의 곡절
 
마가스님과 어머니 박종순 여사. 노모와 늙은 아들이 전국 사찰을 도는 치유의 여행을 떠났다.
  사실, 모자의 ‘불(佛)효자’ 여행은 곡절이 있다. 속세(俗世)의 연(緣)을 끊고 출가한 후 십수 년이 지난 어느 날 스님은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스무 살쯤 ‘불길’로 뛰어든 뒤 한 번도 찾지 않았었다. 고향으로 가는 길 위에서 어머니의 고된 삶을 떠올렸다. 그리고 ‘지구별 마지막 여행’을 결심했다.
 
  기자는 지난 5월 3일 동국대에 있는 사찰 정각원에서 스님을 만났다.
 
  ― 주연배우를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영화 이야기부터 할까요.
 
  “기획자의 의도나 스토리를 미리 잡고 만든 영화가 아니었어요. 최(진규) 감독이 이래라저래라 (연기) 지시도 없었죠. 그냥 카메라 앞에 두 배우를 두고 바라만 보았지요. 그러니 영화 제작 기간이 좀 길었어요.”
 
  ― 얼마나 길었나요.
 
  “2년 한 8개월가량이 걸렸어요. 아흔이 넘은 노모의 움직임이 아무래도 보통 사람과 다를 수밖에 없어 세속적인 속도 개념과는 달랐다고 할까요? 그래서 감독이 앞에서 찍고 옆에서 찍고 뒤에서 찍을 수 있었어요. 영상이 더 아름답게 된 거지요. 그냥 지나칠 것을 차근차근 담을 수 있었으니….”
 
  ― 촬영은 스마트폰으로 했다고요.
 
  “아니, 아니에요. 카메라 감독이 오고 드론도 띄우고 그랬어요.
 
  제작비요? 감독이 자기 돈 1000만원을 가져왔어요. 그렇게 시작했는데 저를 아는 분들이 후원을 하고 싶대서 3억원 가까이를 모았어요. 그게 제작비로 들어갔지요. 어떻게 보면 우리 불자(佛子)들이 함께 만든 영화라고 보면 되겠죠.”
 
 
  ‘어머니의 친정은 어디일까’에서 시작된 여행
 
  ― 아흔의 여배우라…. 기네스북에 오르지 않을까요? 어머니는 연기를 의식했을까요.
 
  “전혀 못 하셨죠. 그래서 감독의 고생이 많았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어느 대목에서 모자(母子)가 서로에게 ‘사랑해요’라고 말하면 좋을 장면이 있잖아요. 감독이 배우에게 부탁할 수 있지만 아무것도, 아무런 대사도 시키지 않더라고요. ‘사랑해요’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그리고 그 신(scene)을 찍기 위해 종일 기다리는 겁니다. 그러니 어떤 날은 온종일 찍어도 한 컷도 쓰지 못하고… 아주, 참… 그랬어요.(웃음)”
 
  ― 처음 영화 제작을 결심했을 때 어떤 일이 있었나요.
 
  “어머니의 구순(九旬)을 앞두고 뭘 해드릴까 고민을 했어요. 기념할 만한 반지를 해드릴까, 아니면 근사한 옷을 해드릴까, 맛있는 음식을 드릴까 고민하다가 어머니 연세에 다 필요 없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제가 노래를 좀 불러서 재롱 잔치를 해드려야지 싶었죠.”
 
  ― 재롱 잔치라….(웃음)
 
  “언젠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어머니의 친정은 어디일까? 시집온 뒤 친정에 몇 번 갔을까? 마치 연어처럼 당신의 친정을 찾아간다면 좋은 추억이 되지 않을까’ 하고 말이죠.
 
  어머니 왈(曰) ‘몰라 까마득해’ 그러시더라고. 옳거니! 무릎을 쳤지요. 그때는 영화다, 뭐다 전혀 생각지 않을 때고, 제가 해드릴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 어머니 손잡고 친정 나들이를 가드려야지 생각한 거지요.”
 
 
  “어머니는 당신의 어린 시절 기억을 다 하고 계셨죠”
 
마가스님은 어머니를 모시고 친정인 전남 고흥군 두원면을 찾았다.
  ― 실제 떠났나요.
 
  “그럼요. 그때 최 감독이 동행했어요. 뒤에서 몇 컷 찍었나 봅니다. 근데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답더래요. 영화로 만들자고 하기에 처음엔 ‘어머니 팔고 싶지 않다’고 말했어요.
 
  그러나 순수하게 어머니랑 저랑 ‘지구별 마지막 여행’이라 생각해서….”
 
  ― 지구별 마지막 여행이라….
 
  “네, 정말 어머니를 위한 시간으로 채워드리고 싶었어요. 그런데….”
 
  ― 그런데….
 
  “돌이켜보니 어머니를 위한 여행이 아니고 저를 위한 여행 같았어요. 제가 어렸을 때 어머니에게 많은 불효를 저질렀기에 속죄하는 마음으로, 돌아가시기 전에 뭐라도 해드리고 싶어서….”
 
  어머니 박종순의 친정은 전남 고흥군 두원면이다. 고흥군은 북쪽으로 보성군, 동쪽으로 여수시, 서쪽으로 득량만(得粮灣)을 건너 장흥군, 남서쪽으로 완도군과 접한 곳이다. 가까이에 운암산, 대전해수욕장, 풍류해수욕장 등 자연경관이 빼어나다. 취나물, 하나봉, 마늘, 유자, 석류로도 유명하다.
 
  “저는 처음 가봤지만, 어머니는 당신의 어린 시절 기억을 다 하고 계셨고요.”
 
  ― 옛집이 있던가요.
 
  “허물어지고 없었지만, 집터는 남아 있었고요, 우물터도 남아 있었어요. 어머니가 시집오실 때 (친정에서) 8km를 걸어 배를 타셨더라고요. 그래서 어머니와 그 길을 다 둘러보고 백사장도 거닐었어요. 친정에서 배를 타고 30분 정도 오면 제가 나고 자란 곳(고흥군 대서면 화산리 1875)이 있지요.”
 
 
  그래도 남는 후회는…
 
사진=조준우
  ― 어디서 배를 타셨다고요?
 
  “고흥군 두원면 대전항. 대전해수욕장은 영화에 종종 나올 만큼 아름다워요.”
 
  ― 그러면 고흥에 갔다가 덤으로 유네스코 7대 사찰과 교구 본사 등지로 어머니와 소풍 간 거네요.
 
  “그렇죠. 막상 영상으로 남길 결심을 했지만 아흔이신 어머니와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기가 어려웠어요. 아무래도 거동이 불편하셔서 어머니께서 염불도 하시면서 편히 쉬실 수 있는 곳 위주로 다녔습니다.”
 
  ― 몇 곳을 찾으셨나요.
 
  “아마도 50여 개 사찰일 거예요. 근데 지금 생각해보니 후회가 들어요.”
 
  ― 왜요.
 
  “차라리 전국 108개 주요 사찰을 다 돌 계획을 세웠더라면 어머니가 지금도 살아계시지 않으셨을까? 아니, 아니 큰 교구 사찰만 다 돌아볼 계획을 세웠더니 다 찾고 나서 입적하셨거든요.”
 
  ― 아이고….
 
  “처음으로 찾아간 곳이 마곡사, 여행의 마지막이 통도사입니다. 살아계실 때 어머니에게 완성된 영화를 보여드리고 싶었고 ‘어버이날’ 전국 영화관에서 상영할 계획도 세웠는데 그 준비 과정 중… 4월 3일 돌아가셨죠.
 
  장례식에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님과 노래꾼 장사익 선생님이 오셔서 농담처럼 ‘어머니가 진짜 명배우’라고 하셨어요. ‘스크린 안에서는 물론 스크린 밖에서도 영화를 완성시켜주셨다’면서…. 돌아가심으로 인해 영화의 대미를 장식했다는 겁니다.”
 
  ― 한마디로 죽음을 연기한 것이네요.
 
  “그렇죠.”
 
  ― 그래도 육체적으론 사찰 여행이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네, 2년여 동안 매주 금·토·일 사흘간 여행을 갔거든요. 저도 개인적인 일도 있고 방송 출연도 해야 하고 바빴는데요, 웬걸요, 어머니는 수요일부터 꽃단장하시고 기다리셨더라고요.
 
  ‘어머니 힘들지 않으세요’라고 여쭈면 ‘힘들어’라고 하시지만, 표정은 웃고 계시고…. 고운 옷을 꺼내 입으시며 어린아이 소풍 가듯 너무 좋아하셨습니다.”
 
  ― 영화 속 어머니가 너무 고우시더군요. 젊었을 때는 더 고우셨겠다 싶었어요.
 
  “(한참 말을 잇지 못하며) 아이고…. 말도 못 합니다. 제가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 아버지가 바람을 피워 집을 나갔어요. 그런 어머니가 혼자서 어떻게 사셨겠어요. 그 옛날에…, 그러니까 정말 어머니 스스로 올곧지 않으셨다면 살아갈 수 없던 시대였잖아요. 꿋꿋하게 애써서 그렇게 사셨던 거 같아요.”
 
  ― 어머니는 재혼을 안 하셨고요?
 
  “전혀 그런 생각을 안 하신 것 같아요. 속이 썩을지언정 아버지와 싸우지도 않았답니다. 얼마나 밉고 원망스러웠겠습니까? 제가 이번 여행을 통해 그걸 느끼게 되었죠.”
 
 
  우리 어머니 생각하면 눈물 나죠, 정말…”
 
마가스님은 “지구별 마지막 여행이 어머니를 위한 여행이 아니고 저를 위한 여행이었다”고 고백한다.
  ― 젊은 시절, 어머니 성격은 어떠셨나요.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아버지 없이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셨는데 시어머니가 97세에 돌아가셨어요. 홀로 그렇게 모시고 자식들을 기르시면서…. 참… 우리 어머니 생각하면 눈물 나죠, 정말.”
 
  ― 어머니를 생각하면 출가를 안 해야 되는 것 아닌가요.
 
  “지금 생각하면 당연히 그러겠지만, 그땐 질풍노도의….”
 
  ― 스무 살 때?
 
  “스무 살 때는 이것저것 따지지 못하잖아요. 또… 출가하고 싶어 출가한 건 아니었잖아요. 자살해버리려고 아버지에 대한 복수심으로 아버지 가슴에 못을 박기 위해 자살 시도까지 했지만 전혀 어머니 생각은 못 했죠. 그런 것들이 이제 미안하고, 그래서 이렇게나마 당신을 모시게 되었어요.”
 
  40여 년 전, 스무 살의 청년은 지난 1년간 모은 수면제를 입안에 몽땅 털어 넣었다. 오대산의 아름다운 설경(雪景)이 가물가물해지며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아버지의 가슴에 피멍 들게 하려고 꽤 오랫동안 준비해온 일이었다. 원망 때문에 어머니 생각은 못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산에서 죽어가는 그를 발견해 월정사로 옮겼다는 스님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자네는 부처님 가피로 다시 태어났으니, 여생은 부처님께 바치게나.”
 
 
  “여생은 부처님께 바치게나”
 
마가스님은 “감사하면 감사할 일이 생긴다”고 말한다. 긍정명상, 감사명상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해왔다.
  ― 출가 후 한동안 어머니를 안 찾아간 것인가요.
 
  “불교에선 관습적으로 속가를 멀리 해야 되고 인연을 끊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오는 인연도 막아야 하고, 찾아온대도 안 만나는 것을 수행자의 덕목으로 알고 살아왔어요. 고향 근처는 가지 않았죠.
 
  그런데 어느 순간 저절로 당겨지더라고요. 저절로 가게 되더라고요.”
 
  ― ‘엄마’가 ‘막내아들’을 얼마나 사랑했을까 싶거든요.
 
  “그럼요. 말도 못 합니다. 어머니는 제가 마흔 될 때까지 밤새 싸리문을 열어놓고 기다렸답니다. 밤늦게라도 돌아올지 모른다면서….”
 
  ― 남편도 기다리고, 아들도 기다리고….
 
  “남편은 기다리지 않았어요. 이미 딴 집 살림을 하고 있었어요. 막내가 돌아오면 주려고 산나물 뜯어 팔아서 2000만원을 모았답니다. 근데 마흔이 넘도록 아들 소식은 없고….”
 
  ― 엄마 속이 얼마나 타들어갔을까요.
 
  “그러니까요.”
 
  ― 만약 막내가 어느 사찰에서 수행한다는 소식을 들으셨다면 찾아와서 몸부림치지 않았을까요.
 
  “그럼요. 사연 없는 인생이 어디 있겠어요?”
 
  스님의 이 말에 기자는 마음이 울컥해졌다.
 
  ― 어쩌면 과거 상처와 대면하고 치유하는 여행이었군요.
 
  “네, 어머니 마음을 풀어드리는 여행을 곁들였다고 보면 되겠죠. 이번 생(生)에 맺어진 것을 이번 생에 다 풀고 갈 수 있도록….”
 
마가스님의 브랜드 ‘그래도 괜찮아’
 
  마가스님은 BBS 불교방송에서 〈그래도 괜찮아!〉 프로를 진행해왔다. 이 프로의 명칭은 어머니의 팔순 생신 때 탄생되었다.
 
  어머니의 팔순을 맞아 스님이 온 가족을 초대했다. 그 무렵, 집을 나갔던 아버지가 50년 만에 돌아왔다. 아버지 없이 응어리져 살아온 가족들이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 보았다.
 
  마가스님이 아버지에게 “1시간만 가만히 계셔달라”고 부탁한 뒤 형과 누나에게 “아버지 없이 산 세월을 이야기해달라”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오랜 원망과 서러움의 상처가 터져 나왔다. 충격을 받은 아버지는 앉은자리에서 똥오줌을 싸고 말았다.
 
  그런데 자식들의 말을 묵묵히 듣던 어머니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래도, 느그 아버지는 사람을 때리진 않았다.”
 
  마가스님은 어머니 마음속에 자리 잡은 ‘그래도(島)’라는 섬을 바라보았다. 아버지를 용서한 어머니의 넓디넓은 섬을 본 것이다. 이 말 한마디로 어머니와 아버지가 화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긍정명상, 감사명상’이 태어났다.
 
  “아흔아홉 가지는 분명히 웬수 같은 사람인데 ‘그래도’라는 그 말씀 하나가 모든 걸 다 안아버리셨어요. 제가 그때부터 ‘그래도’라고 하는 섬을 장만을 해서 지금까지 섬 장사를 하고 있어요.(웃음)”
 
 
  감사하면 감사할 일이 생긴다!
 
  마가스님은 “감사하면 감사할 일이 생긴다”며 이렇게 말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천천히 반복하다 보면 우울하던 마음이 가라앉고 온화해집니다. 이 말에는 긍정의 힘이 있어 우리 마음은 감사할 일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하루에 단 1분이라도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통해 세상을 향해, 사람들을 향해 몸을 낮추십시오. 그 감사의 에너지가 따뜻하고 아름다운 기운을 당신에게 불러올 것입니다.
 
  하늘 한 번 쳐다보고 숨 한 번 깊게 내쉬고 들이마시며 입가에 미소를 지어보십시오. 지금 살아 있음을 느껴보십시오. 영화를 보듯 선명하게 지금 이 순간 몸과 마음의 느낌을 알아차림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누구나 행복한 삶을 꿈꿉니다. 많은 분이 행복을 찾아서 길을 떠납니다. 하지만 너무 멀리 가지는 마십시오. 그 행복은 ‘지금 여기’ 우리가 내쉬고 들이마시는 숨 사이에 있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어젯밤 죽지 않아서 감사합니다’ 하며 합장해봅니다. 심장을 어루만지면서 ‘심장아, 고마워!’라고 해보십시오. 하루가 시작되는 것은 나에게 할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복을 지을 수 있는 기회가 왔다는 얘기입니다.”
 
  스님은 어머니의 ‘그래도’ 한마디를 통해 깨달았던 이 경험을 수많은 사람에게 전하고 있다.
 
  “이렇게 ‘쿨’하게, 멋지게 가셨습니다”
 
  ― 그래, 다 푸셨습니까.
 
  “네, 어머니는 다 푸시고 유언까지 남기시고…. ‘다음 생에 다시 만나자’고 하시고, 이렇게 ‘쿨’하게, 멋지게 가셨습니다.”
 
  ― ‘다음 생에 다시 만나자’고 하셨다는데 다시 만날 수 있습니까.
 
  “어머니가 자주 하시던 말씀이 ‘빨리 죽어야지, 죽어버려야지’였어요. 그래서 제가 ‘어머니, 돌아가시면 어떻게 되는데요?’ 그랬더니 ‘없어지는 거지 뭐’ 그래요. 제가 말했어요.
 
  ‘어머니, 아니에요. 죽음은 또 다른 시작이에요.’
 
  어머니는 죽으면 다 끝인 줄 알고 사셨거든요. 그런데 제가 ‘죽음은 또 다른 시작입니다. 돌아가시기 전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사후(死後)가 달라져요’라고 말씀드리며 염불을 가르쳐드렸어요.”
 

  염불의 염(念)은 ‘이 순간의 마음’(今+心)을 뜻한다. 불(佛)은 부처님, 깨달음을 의미한다. 염불은 부처님의 명호(名號)를 부르며 지금 이 순간 부처님의 마음을 닮아가기 위한 수행이다. 스님과 불자들은 ‘석가모니불’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등의 명호를 정하여 지극히 부른다.
 
  “어머니께 염불을 꾸준히 하시라고 말씀드렸어요. ‘그러면 염라대왕이 모셔갑니다’라고. 제 말에 어머니는 희망이 생긴 것 같았어요. ‘그래. 죽을 때 죽더라도 나무아미타불을 외우자.’
 
  어머니는 계속 나무아미타불을 외시며 염주를 돌리셨는데…, 가실 때 정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미고사’ 장학금 수여식
 
지난 5월 21일 안성 굴암사에서 열린 ‘불(佛)효자 음악회’를 마치고 관객들과 정담을 나누고 기념촬영도 했다.
  마가스님은 숨을 돌리더니 바로 이야기를 이었다.
 
  “돌아가시던 그날, 제 꿈속에 정말 환희의 영상들이 보였고 새벽 예불을 마치고 나오니까 어머니께서 그대로 염주를 쥐시고 누워 돌아가셨거든요.”
 
  ― 몇 시쯤.
 
  “새벽 4시? 5시가 다 됐을 때였어요. 저는 확신이 들었어요. 이번 생의 힘들고 괴로운 삶에서 벗어나셔서 다음 생엔 좀 더 멋진 인연을 만날 수 있겠구나, 하고 말이죠.
 
  돌아가시고 나서 후회하지 않으려고 애썼는데 웬걸 돌아가시고 나니 더 가슴이 허전하고 아련하더라고요.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 이번에는 또 어떤 기적인가요.
 
  “어머니 이름으로 들어온 조의금을 형제들이 한 푼도 가져가지 않고 다 부처님께 올리고, 어머니 이름의 장학금을 만들게 되었어요. 어머니 49재 날(5월 21일) 11명에게 장학금 1180만원을 지급했죠.”
 
  ― 아주 뜻깊은 데 쓰셨군요.
 
  “제가 학생들을 가르치며 장학금을 많이 건네기도 했지만, 전혀 색다르게 해봤어요. 보통 장학증서를 건네면 끝이야. 그런데 장학생과 학부모를 모두 한자리에 불러 이런 부탁을 했어요.
 
  먼저 어머니에게 ‘미고사를 해보라’고요. 어머니에게 ‘미안한 것, 고마운 것, 사랑하는 것’ 등을 글로 적어 전달했지요. 그러곤 어머니의 발을 닦아드리게 했지요.
 
  어머니에게도 부탁드렸어요. 내 아이의 장점 중 ‘고마운 것’ 일곱 가지를 적어오게 해서 들려주었어요.”
 
 
  기적 같은 이야기
 
4월 27일 동국대 중강당에서 열린 영화 〈불(佛)효자〉 시사회 당시의 포스터.
  ― 울음바다가 됐을 것 같아요.
 
  “앞으로 여름방학이 되면 녀석들을 불러서 명상 캠프도 진행할까 해요. 일회성 수여로 끝내지 않고 대한민국 동량(棟梁)으로 자라는 데 일조하고 싶어요. 이게 바로 우리 어머니의 뜻이 아닐까요?”
 
  ― 장학생 11명은 어떻게 선발했나요.
 
  “인터넷 포털 카페와 밴드에다 장학생 모집 공고를 올렸고 거기에 32명이 응모를 해왔어요. 선발위원들이 머리를 맞대어 그중 10명을 뽑았는데 결과적으로 11명을 선정했어요.”
 
  ― 한 명을 추가한 사연이 있군요.
 
  “어느 어머니가 ‘우리 아이에게 장학금을 줄 수 없겠느냐’며 별도의 장학금을 들고 직접 찾아왔어요.”
 
  ― 그 아이는 확실히 동기 부여가 되겠네요.
 
  “그렇죠. 단순히 장학금이 아니라 ‘미고사’를 할 수 있는 아이로 성장하게 된 것이죠. 앞으로 달라질 겁니다. 아니, 이미 바뀌었다고, 아이가 달라졌다고 부모님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 벌써요?
 
  “벌써, 자기 방 청소도 스스로 하고, 주위 사람에게 고마워할 줄 아는 아이로 성장하고 있답니다.”
 
  ― 정말 기적일지 모르겠네요. 영화 개봉 이후 더 바빠지셨나요.
 
  “안성 굴암사에서 상실의 시대에 걸맞은 안성맞춤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어요. 돈·사랑·건강·가족을 잃은 아픔을 치유하고 마음을 충전하는 심신치유센터를 통해 사회와 소통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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