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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보수의 영혼》 책 펴낸 전성철 글로벌스탠다드연구원(IGS) 회장

“문재인 정부는 ‘명령’으로만 통치하려는 ‘아둔한 진보’ ”

글 : 정혜연  월간조선 기자  hych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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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와 ‘선택’을 지키자는 것이 보수의 영혼”
⊙ “자유한국당, 문재인 정부가 가장 잘못하는 점이 자유를 훼손하는 것이라는 점을 국민들에게 제대로 설명해야”
⊙ “진보는 弱者 돕는다는 자아 도취… 보수가 훨씬 개혁적”

全聖喆
1949년생.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미국 미네소타주립대 경영학 석사·同 대학 법학 박사 / 미국 뉴욕주 변호사, 대통령비서실 정책기획비서관, 세종대 부총장, 산업자원부 무역위원장, 국민통합21 정책위의장, 세계경영연구원 회장 역임 / 現 글로벌스탠다드연구원 회장 / 저서 《청와대가 보인다 대통령이 보인다》 《변화의 코드를 읽어라》 《위기관리 10계명》 등
  “자유는 굉장히 매력적인 이념입니다. 한국의 보수 정당인 자유한국당이 ‘자유’라는 단어를 제대로 활용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오랜만에 만난 전성철(全聖喆) 글로벌스탠다드연구원 회장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얘기를 꺼냈다. 차분하고 온화한 음성이지만, 그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묵직했다. ‘자유’와 ‘선택’ 그리고 ‘보수’였다. 김영삼 정부 시절 대통령 비서관을 지내고, 2000년 총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그가 《보수의 영혼》이라는 책을 내놓으며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다. 정치와 인연이 닿지 않아 정계(政界)에 몸담지 못했지만 각종 언론을 통해 200편이 넘는 정치·경제 등의 칼럼을 기고한 그는 “앞으로는 ‘자유’를 주제로 세상과 소통하고 싶다”고 했다.
 
  “지난해 여름에 자유한국당 원외(院外) 지구당 위원장 연찬회에서 ‘자유’를 주제로 강의했는데 호응이 좋았습니다. ‘자유’와 ‘시장’을 널리 알리는 일이 시급하다고 생각했고, 또 너무 많은 국민이 현재 진보 정권의 만용과 무능에 절망하는 모습을 보면서 보수의 가치에 대해 정확히 설명하고자 책을 쓰게 됐습니다.”
 
 
  인류를 구원한 것은 ‘자유’
 
《보수의 영혼》.
  ― 자유, 막연한 주제네요.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배가 고프지 않아야 하고, 남보다 너무 못살아서 배가 아픈 일이 없어야 합니다. 또 아무도 자신을 함부로 잡아갈 수 없어야 합니다. 인류 역사는 이 세 가지를 향한 긴 여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 과제인 배고픔을 해결한 것은 산업혁명입니다. 산업혁명으로 인류의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배고픔이 줄었습니다. 산업혁명이 시작된 곳은 영국입니다. 좁은 땅덩어리에 자원(資源)과 기술이 없는 영국이 천지(天地)를 개벽시킨 것은 자유 덕분이었습니다. 다른 나라보다 먼저 시민에게 본격적인 자유가 주어졌기에 가능했습니다.
 
  소작농이 주인을 위해 일할 때는 최선을 다해 일하지 않지만, 생산한 것을 대부분 그들이 가져갈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질 때는 어느 때보다 일을 열심히 합니다.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대였던 중국이 제2차 세계대전 시 2%대로 추락한 것은 마오쩌둥(毛澤東)의 공산당 정권이 국민의 자유를 빼앗아버렸기 때문입니다. 자유는 이처럼 중요한 이념이자 가치입니다.”
 
  ― 우리가 자유를 제대로 알지 못했나요.
 
  “자유가 인류를 구원했다는 것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물론 사람들이 자유라는 명목으로 무엇이든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유원지에 공중화장실이 몇 개밖에 없는데 이용하려는 사람은 100명이 몰려 있다고 칩시다. 그들이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두면 온갖 싸움이 생깁니다. 얼핏 보면 자유로운 것 같지만 사실 아무도 자유를 누리지 못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힘센 사람이 나와서 순서를 정해준다면 이때부터 ‘명령’, 즉 ‘독재’가 됩니다. 그 한 명은 자신이 가진 힘을 바탕으로 권력을 행사할 것입니다.
 
  그래서 고안해낸 것이 선착순입니다. 이 규칙만 지키면 다 자유로워집니다. 누구나 원하는 사람은 줄을 서는 ‘선택’을 할 수 있고 그 외에는 각자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황이 진정한 ‘자유’입니다. 이 ‘자유와 선택의 원칙’이 너무나 좋기 때문에 이것을 지키자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람들을 우리가 ‘보수’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자유와 진보의 대립
 
  ― 자유를 통해 배고픔을 해결했는데 남이 더 가졌다는 생각에 배가 아픈 문제는 어떻습니까.
 
  “자유의 어두운 그림자가 여기에 있습니다. 자유는 배고픔을 줄였지만 상대적으로 ‘배 아픈 자’를 양산할 수밖에 없는 숙명적 약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진보가 나온 것입니다. 진보는 이 불평등을 교정하자는 이념입니다. 결국 보수가 추구하는 것이 ‘자유와 선택’이라면 진보가 추구하는 것은 ‘공평과 평등’입니다. 자유를 다소 제한해서라도 공평과 평등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죠. 결국 보수와 진보는 영원히 대립하고 갈등할 수밖에 없는 숙명적 관계입니다.
 
  하지만 불평등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 불평등 때문에 인간은 꿈을 꿀 수 있게 됐습니다. 스스로 열심히 노력하면 그 격차를 해소시킬 수 있다는 꿈이 인간으로 하여금 열심히, 성실하게 소망을 갖고 살게 해주는 겁니다.”
 
  ― 보수와 진보는 같이할 수 없군요.
 
  “기본적으로 추구하는 이념이 다른데다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다릅니다. 한 마을에는 마을 공동체라는 ‘전체’가 있고, 개개인이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자유’는 항상 공동체 전체적 개념이기 때문에 보수는 자연히 ‘전체’를 중심으로 세상을 보는 습관이 생겼지요. 반면 평등을 중시하는 진보는 ‘개인’의 입장을 더 중시합니다. ‘평등’은 개인적 개념이니까요. 그래서 보수와 진보는 ‘전체’와 ‘부분’이라는 각기 다른 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대형마트의 영업시간 제한 문제를 보면 명확해집니다. 대형마트가 인기를 끌어 사람들이 몰리면 인근 재래시장은 타격을 받게 됩니다. 진보는 불쌍한 소수의 재래 상인들, 즉 부분을 생각해서 대형마트 영업시간을 규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시적(微視的) 시각에서 보면 그것이 옳겠지만, 그 인근에 수십만 시민이 편하고 저렴하게 장볼 수 있는 이익을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 보수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보수 정당은 현재 이를 잘 활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유’와 ‘선택’을 제한하는 문재인 정부
 
  ― 왜 보수가 ‘자유와 선택’ 이념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나요.
 
  “정당은 근본적으로 ‘이념’을 파는 곳입니다. 세상을 어떻게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데 전혀 못 하고 있습니다. 보수는 ‘자유’와 ‘선택’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이를 늘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유를 제한하는 일에 동의하면 안 됩니다. 하지만 진보는 자유보다 평등을 앞세우기 때문에 어떤 명령을 해서라도 사회가 평등해지는 것을 추구합니다.
 
  가령 시내에 자동차가 넘쳐나서 대기 오염이 심각해지면 진보는 명령을 앞세워 ‘차량 10부제’를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보수는 시내로 들어오는 차량의 통행료를 일시적으로 높이는 등 명령이 아닌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자유를 침범받지 않는 선에서 자발적 선택으로 시내에서 차량을 덜 운행하게 하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보수 정당은 어떻습니까? 무조건 여당에 반대만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때문에 사람들은 자유한국당은 반대만 하는 집단으로 치부하는 겁니다. 자유한국당은 자신이 반대하는 이유를 ‘자유’와 ‘선택’을 앞세워서 설명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빠져 있습니다. 자유한국당이라는 이름을 쓰면서 ‘자유’의 이념이 바로 서 있지 않아서 이런 일이 생기는 겁니다. 문재인 정부가 가장 잘못하는 것이 자유를 훼손하는 점이라는 것을 국민에게 제대로 설명해야 합니다.”
 
  ― 문재인 정부는 국민의 자유를 제한하나요.
 
  “많은 정책이 그랬습니다. ‘주(週) 52시간제’는 생산성을 극대화하려는 기업의 자유를 제한하는 정책입니다. 기업이 필요에 따라 남들보다 더 일을 하고, 효율을 극대화하려는 선택을 원천적으로 봉쇄한 겁니다. 특목고(高) 폐지도 마찬가지죠. 학생들이 공부를 열심히 해서 더 좋은 학교에 진학하려는 자유 의지와 선택을 못 하게 한 정책이죠. 부동산 정책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전형적인 진보 정권으로 평등 지상주의면서 모든 것을 ‘명령의 원리’로 처리하려는 정부입니다. 그들은 국민의 ‘자유와 선택의 기회’를 빼앗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유한국당은 제대로 반박조차 못 하고 있죠. 여당이 이런 정책을 내놓을 때 자유한국당이 ‘이는 국민의 자유와 선택을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반대한다’고 설득해야 했는데, ‘졸속’이니 ‘시행령으로 해서 되냐’는 등 절차적 이의밖에 제기하지 못했습니다. 정말 한심하지요. 진보를 내세운 문재인 정권이 출범할 때부터 이런 식(式)의 정책을 내놓으리란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를 제대로 비판하지 못한 보수의 잘못입니다.”
 
  ― 보수들이 더 무능했다는 것이죠.
 
  “저는 보수는 옳고 진보는 틀리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보 정당은 자유보다 평등을 앞세우기에 당연히 자유를 제한하고자 합니다. 또 보수와 진보 중 한쪽이 정권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역사적으로 올바르지 않습니다. 보수와 진보는 떡을 키우고 나눔으로써 역사라는 수레를 앞으로 나가게 만드는 두 바퀴입니다. 이 바퀴 중 하나만 계속 커지면 결국 불균형이 생기면서 그 수레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뱅글뱅글 돌고 맙니다.
 
  문제는 국민이 어느 시점에서 어떤 가치가 더 시급히 실현되어야 할 가치라고 인식하는가입니다. 국민은 떡을 키울 때라고 생각하면 보수에 정권을 주고, 나눌 때라고 생각하면 진보에 정권을 줍니다. 보수와 진보 사이에 균형이 잡히도록 하면서 역사를 발전시켜나가는 것이죠. 그런데 자유한국당이 ‘자유’의 이념을 제대로 전파하지 못하는 ‘좀비 정당’이 된 것이 안타깝습니다.”
 
 
 
자유를 주면 개혁이 일어난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
  ― 요즘 ‘보수-진보’ 대신에 ‘우파-좌파’라는 명칭을 씁니다.
 
  “보수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큰 오해입니다. 한국 보수의 가장 큰 재난은 ‘보수(conservative)’라는 단어를 잘못 번역한 실수에서 시작합니다. 이를 정확하게 번역하면 ‘보존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보존하느냐? 그것이 바로 자유입니다. 자유의 위대함을 알기 때문에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자유의 가치를 보존해야 한다는 겁니다. ‘보존’은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지키는 것인 반면 ‘보수’는 옛것을 지킨다는 의미가 강합니다. 그러다 보니 ‘보수=꼰대’로 인식되고 ‘수구(守舊)’로 오해받으면서 젊은이들, 개혁주의자들에게서 외면받은 겁니다.”
 
  ― 번역상의 문제군요.
 
  “그렇죠. ‘진보(progressive)’는 ‘전진한다’ ‘앞으로 나아간다’는 뜻이니 얼마나 그럴듯해 보입니까. 진보가 이름 덕을 많이 본 겁니다. 하지만 보수는 사실 진보보다 훨씬 개혁적일 수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건전한 사람에게 자유를 주면 개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수많은 역사적 사실이 증명했습니다.
 
  200년 가까이 세계 최강국이었던 영국이 1976년 IMF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치욕을 겪었습니다. 1978~1979년 자동차 노조, 운수 노조, 병원 노조 등이 연대해 장기 파업을 일으키면서 런던 거리가 쓰레기로 뒤덮이고, 노조에 의해 경제는 파탄이 났습니다. 그때 등장한 마거릿 대처 총리는 1980년부터 4년 동안 노동 관계법을 개정해 노사(勞使) 관계에 ‘자유와 선택의 원리’가 작동하게 만들었습니다. 대처 총리의 모든 정책은 한마디로 경제에 ‘자유’를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11%가 넘던 실업률이 5년 만에 절반으로 줄고, 13%에 달했던 물가상승률이 3분의 1로 내려갔습니다. GDP 성장률이 5배 뛰면서 당연히 IMF도 졸업했습니다. 이 거대한 실험의 성공은 전(全) 세계에 자유와 선택의 힘을 알렸습니다. 자유를 주니 바로 개혁이 일어난 겁니다.”
 
 
  ‘자유와 선택’을 과감히 실행한 진보 지도자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
  전성철 회장은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의 경제개혁을 잇따라 설명하며 ‘자유가 얼마나 개혁적일 수 있는지’를 말했다. 레이건 대통령이 1981년에 케네디 대통령 이래 존슨 대통령, 카터 대통령 등 진보가 집권하던 국가를 물려받았다. ‘당신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정부를 떨쳐버려라(Get the government off your shoulder)’는 선거 구호로 당선된 그는 취임 직후 이 이념을 실천했다. 여러 시장에서 실시되던 가격과 경쟁 통제 기능 등 정부의 관리·감독 기능을 과감하게 없앤 것이다. 모든 부문에 경쟁 체제를 도입하면서 레이건의 8년 재임 기간 7%대이던 실업률은 4.2%로, 10%가 넘던 인플레이션은 4%대로 내려갔다.
 
  전성철 회장의 ‘자유’ 강의는 한동안 계속됐다. 그는 2003년에 국내 최초로 CEO(최고경영자) 교육기관인 IGM세계경영연구원을 만들어 15년 동안 1만명 이상의 CEO와 임원에게 다양한 강의를 해왔다. 그때 CEO들로부터 가장 긍정적인 호응을 얻은 강의 주제가 ‘자유와 보수’였다고 한다.
 
  “진보 지도자 중에도 ‘자유와 선택의 원리’를 실행해 성공한 이가 많습니다. 저는 ‘깨어 있는 진보’라고 말을 합니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는 진보 정당인 노동당 정권의 수반임에도 대처 총리의 정책들을 그대로 계승해 영국 경제를 한 단계 강건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블레어 총리가 재임할 때 영국 경제는 연속 3% 성장을 거듭했고, 완전 고용에 가까운 상태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블레어 총리가 보수당인 줄 착각할 정도였는데, 그는 ‘공평과 평등’의 목표는 지키면서 ‘자유와 선택’이 새롭게 개발돼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일부 진보 정치인이 친(親)노동 정책을 펼치지 않는다며 ‘배신자’라고 했지만, 그의 신념은 영국을 부강하게 만들었습니다. 독일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진보 리더였지만 복지·노동·교육·산업에 자유와 선택을 확대하는 ‘어젠다 2010’을 실현해 개혁을 이뤘습니다.
 
  중국의 덩샤오핑(鄧小平) 역시 경제만큼은 공산당의 막강한 권력을 시장에 양도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중국은 다시 위대하게 부상(浮上)했습니다.
 
  이런 개혁의 수혜자는 노동자 자신입니다. 넓고 길게 보는 생각은 보수뿐 아니라 진보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아둔한 진보’

 
  ― 문재인 정부도 늦지 않았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문재인 정부는 자신들이 무조건 잘하는 줄 알고 자유를 제한하고, 우리가 물려받은 좋은 경제의 틀마저 망가뜨리고 있습니다. ‘아둔한 진보’죠. ‘깨어 있는 진보’에 대비되는 사람들이 ‘아둔한 진보’입니다. 이들의 동기 자체는 좋아요.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돕겠다는 것은 누가 봐도 좋은 겁니다.
 
  그런데 ‘아둔한 진보’는 근본적으로 인간의 본성과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무조건 퍼주면 되는 줄 알고 있는 거죠. 이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다는 자기만족에 도취돼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 도취 때문에 진보는 과감하고 용감합니다. 또 이들은 이런 ‘좋은 의도’를 돕지 않는 보수를 원망합니다. 얼핏 보면 보수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무관심한 냉혈한 같아 보이거든요. 사실 보수는 냉혈이 아니라 좀 더 넓고 길게 보고 있을 뿐인데 말입니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는 보수, 진보를 떠나 치명적인 실수를 하고 있습니다.”
 
  ― 어떤 것이죠.
 
  “국민들이 단순히 이 정부가 진보라서 분노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의를 너무나 뻔뻔하게 위배하기 때문에 분노하는 것입니다. 진보 정부던 김대중(DJ)·노무현 정부도 이처럼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DJ는 대통령 당선이 결정된 후 ‘대한민국에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창달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습니다. ‘시장경제’는 한마디로 자유와 선택의 원리가 작동하는 경제 아닙니까. 문재인 정부가 출범할 때 ‘진보의 정책을 많이 실행하겠구나’ 정도로 생각했지 이 정도로 엉망일 줄은 몰랐습니다. 정말 문제는 그들이 정의롭지 못한 것입니다. 정의는 보수와 진보보다 위에 있는 이념인데, 이 정부는 정의를 실현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최우선의 가치를 위배한 것이죠.”
 
 
  “反共은 자유를 다소 훼손해도 지켜내야”
 
  ―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진보가 있겠죠.
 
  “물론입니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의료 분야에서는 정부가 훨씬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죠. 보수와 진보가 확연히 다른 것을 추구하지만 얼마나 극단적인지는 다릅니다.
 
  한 가지 보수에 대한 큰 오해가 있어요. 보수가 독재라는 것입니다. 독일의 히틀러 정권은 보수였나요, 진보였나요? 히틀러 정권이 시민 개인보다 국가라는 집단을 중시했다는 차원에서 얼핏 보면 보수의 철학과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보수의 가장 중요한 본질인 ‘자유’를 히틀러 정권은 중시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시민의 자유를 쓰레기같이 생각했죠. 그런 면에서 히틀러는 보수가 아니라 그냥 ‘독재’였을 뿐입니다.
 
  소련의 공산당은 진보였나요? 공산 정권이 평등을 지상 가치로 생각한 면에서 진보였지만, 히틀러 정권처럼 개인보다 전체주의를 취한 면에선 독재였습니다. 이런 점에서 보수가 독재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은 잘못된 얘기입니다.”
 
  ― 많은 이가 보수를 독재로, 또 자유를 방종과 연결시킵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보수가 자유를 중시한다고 하면서 시민의 자유를 억압하는 경우를 봐왔습니다. 과거 보수 정권들은 공산주의와 관련해서는 국가보안법 등으로 시민의 자유를 심하게 억압했죠. 다른 한편으로 미국의 보수는 낙태 금지를 강하게 주장합니다. 낙태할 수 있는 자유를 제한하는 겁니다. 그건 모순 아닙니까? 이것은 보수가 ‘자유’를 중시하면서도 동시에 ‘공동체 전체’를 중시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풀립니다. 특히 몇몇 중요한 가치는 그것이 가지는 공동체 전체의 의미가 너무 크기 때문에 다소 자유가 희생되더라도 꼭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 분단 국가라는 우리나라의 특이한 배경을 얘기하는 건가요.
 
  “그렇죠. 6·25전쟁을 겪은 한국의 경우, ‘반공(反共)’의 이슈가 그렇습니다. 대한민국의 안녕을 위협하는 북한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일은 ‘공동체 전체의 안녕’을 중시하는 한국의 보수에 어떤 대가(代價)를 치르더라도 이뤄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국민이 향유하는 ‘자유’를 다소 훼손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이 보수의 입장입니다. 미국처럼 기독교적 전통에서 탄생한 나라는 ‘생명 존중’이라는 가치가 꼭 지켜야 할 가치입니다. 이 때문에 시민의 자유가 다소 희생되더라도 낙태를 살인 행위로 보는 시각에서 그것을 용납할 수 없는 겁니다.”
 
 
  “우리가 이렇게 잘살게 된 것은 시장 덕분”
 
  ― 그럼에도 보수보다 진보에 열광하는 듯한 분위기는 왜 그렇습니까.
 
  “평등은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모두가 같이 잘살아야 한다는 데 이견(異見)을 달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유는 그에 비해 복잡합니다. 자유가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하는 것이라고 오해할 수 있고, 또 자유는 자칫하면 잔인하게 해석되기 때문입니다. 인류 역사상 인간이 이토록 많은 자부심을 갖고 산 적이 없죠. 그것은 단순히 풍요로움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선택’이 주는 선물이고, 이 선택은 바로 ‘자유’라는 위대한 가치의 산물입니다. 자유가 ‘풍요’를 가져다주고, 그 풍요는 다양한 선택을 주고, 그 선택은 또한 자부심이라는 선물을 주는 겁니다. 한국과 북한의 차이 역시 여기에서 비롯됩니다. 북한에는 자유, 선택, 자부심 무엇 하나 없습니다.
 
  보수는 이 자유를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만일 마당에 물이 넘쳐 흐른다고 봅시다. 진보는 판때기로 물을 밀어내려고 합니다. 그것은 저항이 강합니다. 하지만 보수는 그 마당 밑의 땅을 내리막으로 깎아 물이 저절로 흘러내리도록 합니다. 그게 보수의 철학입니다.”
 
  ― 특히 경제 분야에서는 보수와 진보가 확연히 다르죠.
 
  “보수는 정부가 아니라 시장이 뛰게 해야 한다고 하고, 진보는 정부가 뛰게 해야 한다고 합니다. 불공평을 고치기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보수는 경쟁이 많을수록 생산성이 오른다고 하고, 진보는 경쟁이 너무 많으면 약자(弱者)에게 불리하고 평등이 훼손된다고 하죠. 이런 차이들이 경제 주체, 노조 영향력, 규제에 대한 상반된 의견을 내게 하는 겁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부터 50~60년간 각국에서 실행된 실험들을 보면 경제 분야만큼은 진보가 보수의 철학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 어느 정도 입증됐죠.”
 
  ― 시장의 기능도 당연히 긍정적으로 평가하시겠죠.
 
  “당연합니다. 시장을 두고 약육강식(弱肉强食)이 이루어지는 잔인한 곳이라고 말하는 것은 시장의 작은 단면만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잘살게 된 것은 시장 덕분입니다. 시장이란 한마디로 남을 해치지 않는 한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욕심을 마음껏 채울 수 있게 해주는 곳입니다. 그곳에는 명령이 없습니다.”
 
 
  “보수의 영혼이 굳건해야”
 
  ― 정부의 오만한 ‘명령’에 대한 지적을 많이 하시는데요.
 
  “그보다 이제라도 한국의 보수 정당이 제대로 된 이념을 정립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보수의 핵심은 ‘명령의 원리’보다 ‘자유와 선택의 원리’가 진정으로 국민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는 겁니다. 또 국민 전체를 위해 부분보다 전체의 이익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보수주의자들은 이런 이념을 확고히 갖고 있는 사람들이며, 따라서 자신이 보수라는 데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달리 말하면 보수의 영혼이 굳건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진보는 비교적 영혼이 굳건하고, 오랫동안 숙달된 경험을 갖춘 사람들입니다. 그들과 상대할 때 자유한국당이 영혼마저 없다면 게임이 안 됩니다.”
 
  전성철 회장은 인터뷰 내내 확신에 찬 모습이었고, 남은 시간 동안 우리 사회가 건전해지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다고 했다. 이를 실행하기 위해 그는 이미 두 권의 책을 집필하고 있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보수의 가치는 역사적 산물입니다. 어떤 현자(賢者)가 머릿속으로 임의로 만들어낸 그런 가치가 아니라 수백 년간 인류가 경험하고 목격한 모든 사건에서 얻은 깨달음의 누적 결과입니다. 우리 사회가 이를 소중히 지켜냈으면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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