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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집 | 2020년 주목해야 할 20인

‘케네디家의 부활’은 가능할까? 조 P. 케네디 3세 美 하원의원

로버트 케네디 前 법무부 장관의 손자… 9월 연방상원의원 도전

글 : 윤정호  자유기고가·美 예일대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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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 선거만큼 흥미롭다. 미국 정치권이 2020년 9월에 있을 매사추세츠주(州) 민주당 연방 상원의원 후보 경선에 열광하고 있다. 조 P. 케네디 3세(Joe P. Kennedy III, 이하 케네디 3세) 연방 하원의원이 출사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2013년 5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미국 의회 연설 당시 시종일관 경청하는 모습으로 화제를 모았던 케네디 3세는 정치 명가 케네디가(家)의 일원이다. 존 F. 케네디(JFK) 대통령의 종손(從孫)인 그는, 법무부 장관과 연방 상원의원을 지낸 후 대권에 도전하다가 암살당한 로버트 케네디의 손자다. 청년 정치인 케네디 3세의 도전은 세 가지 측면에서 이채롭다.
 
  첫째, 케네디 3세는 가문의 후광(後光)에 의존하려 하지 않았다. 스탠퍼드대학에서 경영학과 공학을 복수 전공한 그는 졸업 후 평화봉사단에 들어가 도미니카공화국과 동티모르 등 오지에서 빈곤 퇴치 활동을 펼쳤다. 하버드대학 로스쿨 재학 중에는 법률봉사단과 《하버드 인권저널》 편집진으로 활약했다. 졸업 후에는 거액의 연봉이 보장되는 로펌행(行)을 마다하고 케이프 코드 지역에서 연방검사로 봉직했다. 하원의원이 된 후에는 수학・과학 교육 강화를 통한 교육・복지 정책 개발에 힘쓰는 한편 의료・인권 및 외교 분야를 중심으로 43개의 법안을 발의했다.
 
  둘째, 지역구 세습을 거부했다. 케네디가는 세 명의 연방 하원의원을 배출했다. JFK는 매사추세츠주 11선거구에서 하원에 첫발을 들여놓은 후 3선을 했다. 케네디 3세의 아버지인 조 P. 케네디 2세는 같은 주 8선거구에서 5선 의원을 역임했다. 에드워드 M. 케네디 전 상원의원의 아들 패트릭 J. 케네디는 로드아일랜드주 1선거구에서 하원의원이 된 뒤 20년 가까이 활약했다.
 
  케네디 3세는 아버지나 가문 어른들의 지역구를 물려받으려 하지 않았다. 대신 메사추세츠주 4선거구에 출마했다. 레이첼 브라운과 허브 로빈슨을 상대로 당내 경선을 치러 승리했고, 본선거에서는 공화당의 션 빌랏을 누르고 2013년 1월 의원 선서를 했다. 이후 4선의 관록을 쌓았다.
 
  셋째, 보스 정치에 반기를 들었다. 독립전쟁의 발원지인 매사추세츠주는 미국 ‘민주주의의 요람’이라는 자긍심이 높다. 하지만 상원의원 후보 선출 과정은 폐쇄적이었다. 민주당의 경우 정치 보스들이 밀실에서 후보 결정을 좌우했다. 이로 인해 1912년 연방 상원의원에 대한 직접선거 제도가 도입된 이후 매사추세츠 민주당은 단 한 차례도 당내 후보 경선을 치르지 않았다.
 
  케네디 3세는 100년 넘게 이어진 관행에 반기를 들었다. 2019년 9월 케네디 3세는 같은 당 소속 현역 의원이 의원직 사퇴 의사를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 출마를 선언, 47년 의정 활동 경력의 에드 마키 상원의원을 상대로 후보 경선의 막을 열었다.
 
  2019년 12월 현재 대결의 향방을 점치기란 쉽지 않다. 여론조사에서 케네디 3세가 리드를 지키고 있지만, 마키는 불퇴전(不退轉)의 태세다. 선거운동 조직을 정비하고 거액의 선거 자금을 조성 중이다. 척 슈머, 엘리자베스 워런, 그리고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등 동료 의원들을 통해 지지 여론을 조성하고 있다. 세대교체를 기치로 내세운 케네디 3세의 도전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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