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함께하지 말았어야 할 분과 함께했다. 첫 단추부터 잘못 뀄다. 李會昌 총재에게 인간적 배신감 느껴”
⊙ “遺物로 사라진 1인 중심 정당 다시 살아나. 자유선진당은 훨씬 더 어려워져야 당 혁신 가능”
⊙ “솔직히 총리는 꼭 해 보고 싶었다”
⊙ “세종시 원안 추진 위한 불쏘시개 역할 했다”
⊙ “충청권 정치세력화 위한 고민 중”
沈大平
⊙ 1941년 충남 공주 출생.
⊙ 대전고,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 의정부시장, 대전시장, 국무총리 행정조정실장, 청와대 비서실 대통령 행정수석비서관,
충남도지사, 국민중심당 공동대표, 17대 국회의원 역임.
⊙ 저서: <길은 항상 새롭게 열린다>.
⊙ 상훈: 녹조근정훈장, 홍조근정훈장, 황조근정훈장 등.
사진 : 조준우
⊙ “遺物로 사라진 1인 중심 정당 다시 살아나. 자유선진당은 훨씬 더 어려워져야 당 혁신 가능”
⊙ “솔직히 총리는 꼭 해 보고 싶었다”
⊙ “세종시 원안 추진 위한 불쏘시개 역할 했다”
⊙ “충청권 정치세력화 위한 고민 중”
沈大平
⊙ 1941년 충남 공주 출생.
⊙ 대전고,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 의정부시장, 대전시장, 국무총리 행정조정실장, 청와대 비서실 대통령 행정수석비서관,
충남도지사, 국민중심당 공동대표, 17대 국회의원 역임.
⊙ 저서: <길은 항상 새롭게 열린다>.
⊙ 상훈: 녹조근정훈장, 홍조근정훈장, 황조근정훈장 등.
사진 : 조준우
아직도 감정의 여운이 가시지 않았는지 李會昌(이회창) 총재를 직접 겨냥하는 날 선 비판들도 서슴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관전자들이 겉으로 드러난 정황만 보면 심 의원은 절이 싫으면 중이 절을 떠나면 될 것을, 마치 제가 살던 절에 불 지른, 꼴 사나운 모습으로 비칠 수도 있다.
심 의원은 이런 모습을 걱정하는 눈치였다.
심 의원은 官選(관선) 충남도지사를 거쳐 세 차례 民選(민선) 충남도지사를 역임했다. 현직 도지사 시절이던 지난 2005년 충북도지사, 대전시장과 함께 與野(여야)를 설득해 違憲(위헌) 판결을 받았던 행정수도의 불씨를 다시 살려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특별법을 이끌어냈다.
2006년 자유민주연합(자민련)계 인사들과 함께 국민중심당을 창당해 대표를 맡았고, 2008년 2월 이회창 총재와 함께 자유선진당을 창당했다.
최근 민주당 지도부가 세종시 건설현장을 방문하는 등 세종시가 정기국회 쟁점 사항으로 떠오른 것에 대해서는 “표를 좇아 민심에 영합하려는 것으로, 세종시가 정치적 흥정의 산물이 돼선 안된다”고 했다.
―탈당 후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사람들을 만나고, 생각을 정리하며 사색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심 의원의 탈당에 대해 지역 民心(민심)은 어떻던가요.
“끝까지 버텼어야지 왜 나갔냐며 아쉬워하는 분들이 많더군요. 충청도민들은 이번에는 제가 총리가 됐으면 하고 바랐던 것 같습니다. 총리가 돼서 지역의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해 주길 기대했는데 아쉽다고 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탈당을 후회하지는 않습니까.
“정치는 선택입니다. 선택은 시기를 따져서 결단하는 것이고, 그 결단이 자기 소신에 따라서 한 것이면 결코 후회할 일이 아니죠.”
―지금도 탈당이 올바른 선택이었다고 생각하십니까.
“바르고 그르고의 문제가 아니라,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어요. 흔히 ‘自意(자의) 반, 他意(타의) 반’이란 말을 하지 않습니까. 절반은 내가 탈당을 했지만, 절반은 黜黨(출당)을 당한 겁니다.”
정치 초년병의 소박한 생각
![]() |
| 심대평 의원은 지난 2008년 2월 이회창 총재와 함께 자유선진당을 창당했다. |
“정치를 함께하려면 뜻을 함께하는 동지가 돼야 합니다. 지향하는 목표를 향해 함께 손잡고 갈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40년 넘게 공직생활을 하면서 官選(관선), 3選(선) 민선 도지사를 했습니다.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긴 기간 동안 도지사를 했던 사람이에요. 도민들로부터 많은 사랑과 기대를 받았던 사람이 정치에 들어올 때는 다른 목적이 있었을 겁니다. 내가 늘 충청의 힘으로 나라를 바꾸겠다고 해왔는데, 이는 바른 정치를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정치인만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국민 중심의 정치를 해서 지역과 국가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길을 택했던 겁니다. 헌신과 희생이 정치에도 통할 줄 알았어요. 정치 초년병의 소박한 생각으로 시작했죠.”
심 의원이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을 정치적 목적의 하나로 생각했죠.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충청도의 지지만 가져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전국 정당화를 지향했는데, 동지를 구한 게 이회창 총재였습니다. 그런데 전국 정당화의 소망도 이뤄지지 않았고, 희망도 걸 수 없게 됐습니다. 지역과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할 수 있어야 하는데 (당이) 이것을 전혀 수용할 수 없는 그릇이 됐어요. 이제 遺物(유물)로 사라지기 시작한 1인 중심의 정당이 다시 돌아오는 것을 고치지 못하고 떠나게 된 부분에 대해선 아쉽게 생각합니다.”
―탈당 이유가 국회의원으로서 소신을 펼 수 없었기 때문이란 겁니까.
“그렇습니다. 정당의 역할은 당을 지지해 주는 사람들을 위해서 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가가 필요로 할 때 역량을 다해서 돕고, 국가가 잘못된 길로 갈 때는 강력하게 견제하는 역할을 자임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정당은 지금 과거로 회귀하고 있어요.”
심 의원은 “票(표)만을 의식한 정치행위를 해서는 안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 이회창 총재에게 ‘내가 총리로 간다면 黨籍(당적)을 가지고 가서 당과 지역,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싶다’고 했어요. 저의 경험과 행정경륜을 가지고 중도 실용과 親(친)서민정책을 표방한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동참하고 싶었어요. 그게 통합과 화해라는 시대적 요청이고 소명이었습니다.
내가 당 총재였다면 당연히 대통령에게 ‘데려가세요. 내가 볼 때는 심대평이 모자란 게 많습디다. 하지만 우리 당이 黨力(당력)을 다해서 국가경영을 돕겠소. 대신 잘못하면 강력하게 견제하겠소. 그리고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내가 소신을 가지고 당을 운영해 나가겠소’라고 했을 겁니다. 이게 조건이 돼야지 엉뚱한 조건을 걸어서 반대하고, ‘정치공작’이라느니 하는 건 말이 안되죠. 그건 黨利黨略(당리당략)만을 생각하는 것이고, 내가 생각했던 정치가 아닙니다. 그래서 뜻을 함께할 수 없는 사람이고, 정치를 함께할 수 없는 분이라고 한 겁니다.”
“인간적 배신감 느꼈다”
이회창 총재는 청와대의 심 전 대표 총리 제안과 관련, 세종시 원안 추진과 强小國(강소국) 연방제 개헌 수용을 조건으로 내세웠다고 알려졌다. 강소국 연방제는 현행 지방행정 체제를 4~5개의 광역 단위로 묶는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가 강소국 연방제는 개헌이 필요한 사안이라며 수용 불가 입장을 밝히자, 심 전 대표 총리 입각은 ‘없던 일’이 됐다는 것이다.―이회창 총재가 심 의원의 총리 카드를 반대한 것이 직접적인 탈당 이유라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탈당의 계기가 된 건 사실이지만 직접적 이유는 아닙니다. 인간관계에선 신뢰가 제일 중요합니다. 신뢰가 무너지는 건 조금씩 무너지다가 결정적 계기로 (완전히) 무너지는 겁니다. 그 결정적인 계기가 총리 논의 과정에서 불거진 거죠.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출당조치 운운했다는데 그런 당에 함께 있는 건 말이 안되죠. 그래서 자의 반, 타의 반이란 얘길 한 겁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총리 제안이 몇 차례나 있었습니까.
“세 차례 있었죠. 내가 이 총재와 함께 창당을 약속한 시점에 정부 출범과 맞물려 총리 제안이 있었습니다. 그때 내가 이 총재에게 ‘당신과 함께 신당을 창당하기로 약속했는데, 신의와 신뢰를 저버리고 총리로 가지 않겠다’며 총리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두 번째는 작년 촛불시위 때였죠. 근데 이 총재가 나와는 상의 한마디 없이 ‘없는 일로 해달라’고 했다는 겁니다.”
―거절 이유가 뭐였답니까.
“나도 몰라요. 이 총재에게 ‘총재가 어떻게 당 대표의 신상과 관련된 문제를 독단적으로 대변합니까. 총재가 심대평의 대변인이 아니잖습니까’라고 했어요. 이 총재의 독단적 당 운영에 반발해서 40여 일간 당무를 보지 않았습니다. 이미 당무를 볼 수도 없는 상황이었고요. 그런데 함께 국민중심당을 했던 동료 의원들이 설득하고, 이 총재도 ‘당을 같이 잘해 보자. 내년에 더 좋은 기회가 있을 것’이라며 회유 아닌 회유를 했죠. 지역의 정치 원로들과 상의해서 당무에 복귀했어요. 그런데 이젠 더 이상 기대할 게 없어요.”
그를 더욱 화나게 한 것은 세종시 문제였다고 한다.
“지역의 가장 중요한 현안인 세종시 문제는 나보다 더 역사적 경위와 현 상황을 알고, 미래에 대해 확실하게 해나갈 사람이 없다고 자부합니다. 자만이라고 해도 좋아요. 그런데 갑자기 어느 날 ‘조건이 맞지 않아서 없는 것으로 했다’는 거예요. 그런 독선이 어딨습니까.”
정치공작 논란
![]() |
| 2006년 국민중심당을 창당한 심대평 의원은 제17대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 |
“창당한 지 아마 한 달도 안됐을 걸로 기억합니다. 이 총재 측 인사들이 당 정체성 확립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어서 ‘투 톱(Two Top) 체제로 갈 필요가 있느냐. 이회창 총재 1인 체제로 가자. 당 대표직을 없애자’며 성명을 내는 등 언론 플레이를 했어요. 그 사무실을 당에다 뒀습니다. (이 총재가) 그걸 관리하고, ‘당을 위해서, 다 끌어안기 위해서’라며 그 사람들과 만나 얘기하고, 그런 일이 있었죠.”
―그런 일을 겪으면 정치에 대한 회의가 들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신뢰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결정적 계기였죠. 그때 많은 고민을 하면서 總選(총선) 전 당을 떠날 생각이었습니다. (국민중심당을) 함께한 분들이 ‘당신이 떠나면 어떡하냐, 당신은 죽어도 우린 살린다고 하지 않았느냐’며 말렸죠. 약속을 지킨다는 차원에서 총선을 함께 치렀죠. 국민중심당 때 나와 뜻을 함께했던 출마자들은 전원 당선됐어요. 동지들과 함께 당을 한다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있어 왔죠. 그런데 정치에서는 사실 의리나 신뢰를 따지는 게 바보랍니다.”
―자유선진당에선 심 의원의 총리 기용을 ‘정치공작’이라며 청와대를 비판했습니다.
“대통령이 뭐가 아쉬워서 자유선진당에 정치공작까지 해 가며 총리로 데려가려고 합니까. 정치공작이라고 비난하려면 사전 협의가 없었어야죠. 사전 협의를 다 한 것 아닙니까.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작년에도 총리 제안이 있었죠. 그때마다 (이 총재가 청와대에) ‘올해는 안됩니다. 내년에 하겠습니다’라고 했어요. 그런데 이번에 또 총리 제안을 거절하는 걸 보고 인간적 배신감을 느꼈어요. 협의를 해서 협의 내용을 받아 주면 정치공작이 아니고, 두세 번씩 협의했는데 안 받아 주면 정치공작입니까? 애초에 정치공작이라고 생각했으면 딱 까놓고 ‘심대평, 당신 지금 이거 정치공작이야. 넌 불쏘시개야. 가면 안돼’ 이렇게 했어야 맞는 거 아닙니까.”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철학에 공감
심 의원은 총리가 되지 못할 상황이라는 것을 진작에 인식하고 있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 총재에게 마지막으로 ‘총리로 간다면 당적을 가지고 가서 당과 지역, 국가를 위해 헌신하겠다. 그러나 내가 (총리로) 안 가게 되면 당을 함께 못한다’고 통보했어요. 나 스스로 ‘정치공작의 산물’이란 비난을 들으면서까지 총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고, 출당당하고 탈당하면서까지 총리 할 생각도 없었습니다. 또 총리는 국정 운영의 총책임자인데 시작부터 ‘정치공작의 산물’이란 누명을 쓰고 무슨 일을 제대로 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심 의원은 총리가 되지 못한 것에 대해 못내 아쉬움을 토로했다.
“개인적으론 총리가 내 능력에 비해 과분한 자리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총리는 내가 해 봤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총리실에서 사무관으로 공직을 시작해 조정관, 국장을 하고 차관급인 국무총리실 행정조정실장도 해 봤습니다. 공직자는 자기가 공직을 시작했던 기관의 최고 책임자가 되는 것이 하나의 목표입니다. 그런 목표가 없으면 전력을 다해서 공직을 수행하기 어렵죠. 나는 총리실 바닥에서부터 중간관리, 최고관리까지 했던 사람으로서 총리직을 어떤 식으로 수행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가졌던 겁니다.”
그러나 그는 총리 입각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약속대로’ 당을 떠났다.
“총리직에 연연했다면 탈당한 뒤에도 어떻게든 총리가 되려고 아등바등했겠죠. 그러면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입혔을 겁니다. 하지만 그건 내가 바란 게 아니에요.”
―지난 두 차례와 달리 이번 총리직 수용에 좀 더 적극적이었던 이유는 뭡니까.
“두 전직 대통령이 돌아가신 뒤 시대적 話頭(화두)가 통합과 화합이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을 초월해서 인재를 발탁해 함께 손잡고 가겠다고 하는데, 바로 내 뜻과 맞았어요. 이 대통령이 국정운영 철학으로 내세운 중도실용과 친서민정책은 내가 국민중심당 시절 당의 목표로 삼았던 창조적 실용주의, 따뜻한 보수와 같은 개념이었습니다. 이념을 초월해서 국민을 위해 정책을 수립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가진 창조적 정치를 하겠다는 거였죠. 국정에 참여하지 않고, 따뜻한 보수를 외치는 건 공허한 주장이에요. 그래서 현실 참여를 하자고 생각했죠.”
세종시 문제
![]() |
| 세종시법 처리에 미적거렸던 민주당 지도부가 9월 9일 충남 세종시 건설 현장을 찾아 사업 현황을 보고 받고 있다. |
“정당은 정권 창출을 목표로 합니다. 자유선진당이 다음 정권을 창출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러면 이런 계기를 통해 국정운영에 동참하면서 가장 큰 현안인 세종시 문제를 포함한 지역의 여러 난제를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 특히 충청권은 푸대접이 아니라 ‘무대접’을 받는다고 합니다. 로봇랜드, 첨단의료복합단지, 과학비즈니스벨트 등 국책사업이 무산됐거나 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겪는 것들이 산재해 있어요. 총리 제안은 충청인들의 기대에 조금이라도 부응할 수 있는 계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지역과 국가를 위해서도 필요하고, 내 생각과 신념에도 맞았기 때문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정말 소신과 열정을 다 바쳐서 일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회창 총재는 “세종시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심 전 대표를 불쏘시개로 삼는 것이고 이는 우리 당까지 불쏘시개로 만드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鄭雲燦(정운찬) 총리 내정자의 ‘세종시 수정 추진’ 발언이 논란이 되며 ‘청와대와의 交感(교감) 의혹’까지 제기됐는데요. 청와대가 심 의원 총리 카드를 ‘세종시 수정 추진’ 카드로 사용하려 했던 건 아닐까요.
“세종시 문제는 내 어깨 위에 지워져 있는 무거운 짐이자 소명입니다. 세종시 문제는 현재 가장 큰 국가적 난제입니다. 내가 총리직을 걸고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어요. 총리가 되면 세종시 추진을 통합·조정하는 주체가 되는 것 아닙니까. 지금 세종시 원안 추진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언제 그렇게 세종시에 관심을 가졌나요? 그런데 이 문제를 가지고 불쏘시개로 쓴다?”
심 의원은 이 대목에서 “그건 말도 안되는 막말이에요. 지도자가 그런 말씀 하면 안됩니다”며 흥분했다.
―세종시 원안 추진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었습니까.
“원안 추진은 6월 20일 이 총재가 대통령과 회담을 가진 뒤 대통령이 원안 추진을 약속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어요. 이회창 총재가 ‘내 업적이다’라고 홍보했잖아요. 그 다음에 무슨 조건이 안 맞아서 총리를 보내느니, 마느니 하느냐 말이에요.”
선진당은 무능한 정당임을 스스로 증명
―심 의원의 탈당으로 자유선진당은 교섭단체 지위를 잃었습니다. 세종시 추진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는 시점에서 충청권 민심이 심 의원에게 등을 돌릴 우려도 있지 않습니까.
“교섭단체였을 때도 너무 무기력한 정당이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충청인이 우리에게 18석을 준 이유는 교섭단체는 아니지만 최선을 다하면 다음에 더 많은 표를 준다는 뜻이었어요. 그런데 스스로 정체성이 안 맞는다고 한 창조한국당과 교섭단체를 구성하지 않았습니까. 편법으로 당을 운영했던 거죠. 그러면서 같은 보수의 개념을 갖고, 따뜻한 보수를 위해 일하겠다는데, 조건이 안 맞아서 못한다는 건 말이 안되잖아요. 내가 교섭단체를 깬 것은 당이 환골탈태하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당은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려워져야 합니다. 창조한국당에 3명의 국회의원이 있습니다. 거기서 겨우 2명을 데리고 간신히 교섭단체를 구성했어요. 1년 이상 이 상태를 질질 끌고 오는 당의 운영이 정상입니까?”
심 의원은 “교섭단체를 구성하려면 뜻이 맞는 사람들을 모으거나, 보궐선거를 통해 새로 보강하도록 노력했어야 하는데, 아무 노력도 안 했다”면서 “무능한 정당이란 것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라고 질타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그만이지, 절을 불지르면 되느냐’며 심 의원의 탈당을 비난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심 의원의 탈당으로 심 의원과 이 총재 모두 共滅(공멸)하는 것 아니냔 얘기도 들립니다.
“내가 절을 떠난 것이지, 불 지르고 떠난 건 아니죠. 이 총재나 나나 공멸할 수도 있겠지만, 당이 정말 환골탈태해서 변화를 주도할 수도 있잖아요. (이 총재가) 이번에 세종시를 아마 평생 처음 가셨을 겁니다. 이 총재가 언제부터 그렇게 세종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챙기셨나요? 그것도 내가 탈당함으로써 생긴 하나의 변화로 볼 수 있는 거죠.”
―이 총재가 심 의원의 복귀를 희망한다고 한 데 대해 ‘립 서비스’라고 비판했는데 복당 의사는 전혀 없습니까.
“소신과 철학이 안 맞아서 떠났는데, 당을 같이할 수 없는 사유가 없어져야 복당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냥 복당하라고 하면 무릎 꿇고 들어오란 얘기 아닙니까.”
―복당하지 않더라도 세종시 추진에 있어 선진당과 공조할 의향이 있습니까.
“당연히 공조할 겁니다.”
민주당의 기회주의
―세종시 추진이 정기국회의 쟁점사항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특별법이 국회 전체회의를 통과할 가능성은 얼마나 된다고 보십니까.
“이번 9월 국회에서 각 당이 다투어 세종시 원안 추진을 주장하고 있으니까 통과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은 지난 임시국회까지 세종시법이 통과되면 세종시장 자리가 자유선진당에 돌아갈 것을 우려해 법안 처리에 미적거렸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태도를 바꿔서 민주당 지도부가 세종시 건설현장을 방문하는 이유는 뭐라고 보십니까.
“정치는 生物(생물)이잖습니까. 특히 표를 좇아서 아주 민감하게 움직이는 게 정치인 것 같아요. 이번에도 好機(호기)를 만났다고 생각하겠죠. 충청 민심을 잡기에 심대평이가 떠난 자유선진당보다 우리가 유리하다, 빨리 민심에 영합하자는 거겠죠. 철학과 소신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라고 봅니다.”
―세종시 추진 과정에서 당 대표가 아닌 무소속 의원으로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난 세종시 추진에 제대로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총리로 안 갔기 때문에 불쏘시개가 된 거죠. 내가 불쏘시개 역할을 했으니 이제 불을 지피는 건 정부와 정치권의 몫입니다. 정치권은 세종시법을 빨리 통과시켜야 하고, 정부는 세종시 추진에 대한 의지를 갖고 행정적 절차를 밟아 나가면 되는 겁니다. 진행과정을 지켜보며 훈수도 두고, 강력하게 비판하기도 할 겁니다.”
―세종시 추진이 비효율적이란 비판도 있습니다. 세종시 추진에 강한 소신을 가지신 이유가 뭔가요.
“지금도 많은 사람이 수도를 어떻게 분할할 수 있느냐며 반대합니다. 그럼 서울의 過密化(과밀화) 문제를 해결하거나 줄여 가면서 지방의 자신감을 회복시키고,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다른 묘수가 있습니까. 서울 과밀화의 主犯(주범)인 정치와 행정을 떼어내야 합니다.”
그는 세종시에 대해 할 말이 많았다.
“盧武鉉(노무현) 정부 시절엔 신행정수도 논의가 철학과 비전이 적은 상태에서 정치적으로 시작됐습니다. 내가 도지사였을 때 충북도지사, 대전시장과 함께 각 당을 돌아다니며 위헌 판결을 받았던 신행정수도의 불씨를 다시 살려내서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합의를 유도해냈고, 17대 국회에서 법이 통과됐습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세종시를 명품 도시로 만들겠다고 공약했죠. 정치적으로 시작됐지만 정책적으로 채택됐습니다. 그런데 정운찬 총리 내정자가 좀 빨리 이 문제에 대한 소신을 밝혔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은 이 문제가 많이 꼬여서 정치적·정략적으로 회귀했습니다. 그동안 관심이 없었던 정치권에서 이 문제를 갑자기 중요한 정치적 이슈로 들고 나온 건 정치적·정략적 접근이죠. 세종시가 정치적 흥정의 산물이 돼선 안됩니다. 저는 정운찬 총리 지명자가 총리로 인준을 받으면 ‘심대평 해법’을 갖고, 정 총리를 만나 담판할 것입니다. 저는 분명 확실한 해법을 갖고 있습니다. ”
충청권 정치세력화 위해 고민
![]() |
|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와 국회의원 및 당직자, 당원들이 9월 10일 국회 본청 앞에서 정부와 여당의 세종시 축소계획 의혹을 규탄하고 원안대로 건설할 것을 촉구했다. |
“서울에서 1시간 반 거리인 과천에 정부 부처가 있는 건 효율성이 있는 정책이고, KTX로 1시간 반 거리인 세종시에 정부 부처가 있는 건 비효율적입니까. 이런 논리의 모순이 어딨습니까. 지금 대전에 廳(청) 단위의 기관이 있습니다. 이 청 단위 기관이 부처가 있는 서울로 다 올라옵니다. 청장이 대전에 있을 새가 없어요. 부처가 세종시로 옮기면 효율성이 높아지죠. 다만 국회가 서울에 있는 게 문제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지금처럼 국회가 열리면 부처의 주사서부터 장관까지 국회에 가서 매달려 있는 이런 국회 운영은 고쳐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 부처가 세종시로 옮기면 그런 문제도 조정이 돼야 원활한 행정 수행이 가능해지겠죠.”
―자민련 이후 지역을 대표하는 큰 정당이 없었습니다. 선진당마저 교섭단체 지위를 잃었는데 충청권의 미래를 어떻게 예상하십니까.
“그 부분이 지금 가장 고민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충청권을 대변하는 정치세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金鍾泌(김종필) 총재와 함께 자민련을 만들었습니다. 자민련이 없어지고 나서 현직 도지사 때 국민중심당을 창당했습니다. 내가 JP만한 정치적 역량과 인물이 못 돼서 국민중심당이 잘 안됐다고 얘기를 하는데,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때는 3金(김)이 끝나면 1인 중심의 정치는 終焉(종언)을 고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중앙집권적인 정당운영 체제로는 국회의원이 소신껏 헌법기관으로서 역할할 수 없기 때문에 분권형 정당을 만들려고 했죠. 하지만 5석의 국민중심당 갖고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충청이 연고인 이회창 총재와 함께 좀 더 큰 정치세력을 만들어서 정치적 뜻을 펴 보려고 했습니다.”
그는 이 총재의 원칙과 소신을 믿었다고 한다.
“그런데 경우에 따라 원칙과 소신이 왔다 갔다 하더군요. 처음부터 함께하지 말았어야 할 분과 함께했으니 첫 단추부터 잘못 꿴 겁니다. 충청권의 정치세력에 대한 생각을 깊이 했지만 지역이기주의적인 발상이라고 매도당하고, 전국 정당화하려면 충청권으로 함몰돼 버립니다.”
―충청권을 중심으로 새로운 정당을 창당할 계획은 없으십니까.
“탈당할 때 ‘참신한 젊은이들에게 場(장)을 열어 주고, 내 식견과 능력을 그분들의 손을 잡아 주는 데 쓰겠다’고 얘기한 적이 있는데, 그 때문에 창당이나 무소속 연대 얘기가 나오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정치상황에 여러 변화가 있을 겁니다. 원래 선거를 눈앞에 두면 정치권이 이합집산으로 요동치게 돼 있고, 지방선거 2년 뒤 총선과 대선이 겹쳐 있습니다. 정치상황의 변화에 내가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선택이 될지, 실제로 내가 (유권자로부터) 기대를 받을 수 있을지 여러 가지를 검토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역감정 논란
―한나라당에 입당해서 총리직에 재도전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총리는 시대적 필요가 있어야 하고,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대통령과 화합해서 국정을 제대로 이끌어 가야지 3~4개월 하다가 뜻이 안 맞는다고 발길로 차고 나갈 정도의 사람은 국무총리가 되면 안되죠.”
이회창 총재는 과거 金泳三(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4년 국무총리를 맡았다가 쌀시장 개방 등 일부 정책에서 YS와 異見(이견)을 보이다 결정적으로 안보통일정책조정회의 결과의 보고 문제를 놓고 대립, 취임 4개월 만에 경질됐다.
―앞으로의 정치 행보에 대해 말씀해 주시죠.
“지역과 국가를 위해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고 스스로는 생각하는데 충청인들이 함께해 주셔야 가능하겠죠. 그분들이 심대평의 손을 다시 잡아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역할도 할 계획입니다. 충청인들이 저 심대평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저를 중심으로 한 ‘결사체’를 만들어 다시 한번 꿈과 희망을 드리고 싶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그것을 원하고 계신 줄 알고 있습니다.”
―끝으로 국민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제가 충청인을 비롯한 국민 여러분의 희망을 꺾은 게 아니라 여러분의 희망에 새로운 불을 지피고자 하는 사람이란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심대평은 결코 충청을 분열시키고, 폄훼하거나 불 지르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희망을 갖도록 하는 일에 역할을 맡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필자는 그와의 인터뷰를 접으며 “언제까지 이 좁은 나라에서 충청, 호남, 수도권 운운하면서 지역감정에 편승한 정치가 가능할까” 하는 생각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심대평 의원 탈당이 ‘지역감정’이 정치전쟁의 무기로 사용되는 마지막 불쏘시개 역할을 할 수는 없는 것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