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

베네수엘라 사태와 한중 정상회담

마두로 체포, 그린란드 합병 주장 모두 중국 견제 위한 것

  • 글 : 유민호 퍼시픽21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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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마두로 체포, 작년 발표한 NSS의 연장선상에 있어
⊙ NSS는 중남미만이 아니라 인도-태평양도 중요하다는 의미
⊙ 마리네라호 나포는 쿠바 미사일 위기 못지않은 사건… 중국·러시아에 대한 경고
⊙ 이재명 대통령, 베네수엘라 사태 당일 중국 방문
⊙ 한중 정상회담 당일 백악관이 ‘FAFO’ 사진 배포한 건 한중에 대한 경고?

劉敏鎬
1962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일본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 졸업(15기) / 딕 모리스 선거컨설팅 아시아 담당, 《조선일보》 《주간조선》 등에 기고. 現 워싱턴에너지컨설팅 퍼시픽21 디렉터 / 저서 《일본직설》(1·2), 《백악관의 달인들》(일본어), 《미슐랭 순례기》(중국어) 등
1월 3일(현지 시각) 마두로 체포 직후 미국 백악관이 배포한 ‘FAFO’ 사진. 사진=미국 백악관
‘그들은 할 수 있다고 믿기에 그렇게 행한다(Possunt, quia posse videntur).’
 
  신년 들어서기 무섭게 벌어진 베네수엘라 사태를 보면서 떠올린 생각이다. 기원전 1세기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버질)가 남긴 명언이다. 풀이하자면 ‘할 수 있다고 믿는 한, 성공리에 무사히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의미다.
 
  ‘미션 임파서블의 파서블’ 작전으로 느껴진다. 남의 나라 수도 한복판 대통령 침실까지 들어가 체포한 뒤 자국 대도시 법정에 세운 나라가 미국이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다. 생포된 인물은 베네수엘라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다. 베네수엘라 군사력은 세계 50위다. 13만 명의 현역병과 수백만 민병대를 가진 국가다. 그러나 수족이 완전히 묶인 채, 최고 핵심만 ‘핀셋 외과수술’로 제거됐다.
 
 
  아무도 트럼프를 막을 수 없다
 
미군에 체포된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부부는 1월 5일 헬기편으로 뉴욕 맨해튼에 도착한 후 법원에 출석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사태 직후 국제사회가 들끓고, 리버럴 미디어는 트럼프를 공격했다. 국제법과 주권, 인권을 거론하면서 ‘미(美) 제국주의’에 대한 비난이 거셌고, 마두로 석방 요구도 있었다. 그러나 사태 발생 1주일이 지나면서 이런 주장들은 대부분 포말(泡沫)처럼 ‘확’ 줄어들었다. 베네수엘라 불똥이 자신에게 튈 수 있다는 두려움과 함께 반미·반트럼프 목소리, 마두로 석방 요구는 서서히 잦아들었다.
 
  ‘그들은 할 수 있다고 믿기에 그렇게 행한다’는 말은 본인 스스로의 역량과 영향력에 주목한 명언이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주변이 뭐라고 하든지 그대로 관철할 수 있는 강력한 신념이다. 중국·러시아나 한국 여당 국회의원 68명이 난리를 친다고 해서 트럼프의 생각과 행동을 막아 낼 수 없다.
 
  트럼프는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행동을 가로막는 것은 ‘스스로의 도덕성’ 하나뿐이라고 강조했다. 나쁘게 말해 ‘미국판 탈레반’이다. 탈레반과는 달리 미국과 트럼프를 막을 나라나 인물은 없다. 국제법은 강자(强者)를 위한 보조장치일 뿐 정의(正義) 그 자체가 아니다.
 
  필자는 트럼프의 말과 행동을 ‘결코’ 지지하거나 찬미하지 않는다. 그러나 반대하거나 비난할 생각도 없다. 미국과 트럼프에 대한 대안(代案)들이 갖는 한계와 모순은 한층 더 크고 불확실하다. 미국이 최선(最善)은 아니어도 중국과 러시아에 비하면 훨씬 나은 차선(次善)이라고 확신한다.
 
  트럼프 말을 들을 경우 노예가 될 것이라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베네수엘라 마두로 독재 체제 하에서 800만 명의 국민이 국외로 탈출했다. 2800만 명의 인구 가운데 거의 30% 정도가 난민 생활 중이다. 차베스-마두로 정권의 정치적 탄압과 가난 때문이다. ‘트럼프의 마두로 체포를 인정하는 것은 노예의 논리’라는 주장이 정당한 것인지 베네수엘라 국민들에게 직접 물어보길 바란다. 방법과 절차가 민주주의 핵심 요소라는 것은 필자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남미(南美)나 현재 불이 붙은 이란 폭정(暴政)의 현실을 보며 트럼프 식 해결 방안에 반대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트럼프 2.0 시대의 조감도, NSS
 
  ‘다음에는 누구이고 무엇인가?(Who and What is Next?)’
 
  현재 전 세계가 주목하는 것은 누가 트럼프의 다음번 공격 대상이 될 것이고, 어떤 문제가 미국의 현안이 될 것이냐 하는 것이다. 제2차 베네수엘라 폭격에서부터 콜롬비아, 이란, 그린란드 공격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보는 눈, 즉 조감도(鳥瞰圖)가 필요하다.
 
  핵심 단서는 작년 12월 5일 발표된 미국의 차기 군사·외교 기본 원칙인 〈국가안보전략(NSS)〉에 있다. 필자는 《월간조선》 1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이 NSS가 갖는 의미에 대해 쓴 바 있다. 이 글에서 필자는 ‘트럼프’란 단어가 올해 글로벌 키워드가 될 것이고, NSS가 행동 나침반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 미디어 대부분은 NSS를 크게 눈여겨보지 않았지만, 이 NSS야말로 트럼프 2.0 시대의 세계관을 이해할 수 있는 빅 픽처(big picture), 조감도이다.
 
  두 눈을 뜨고 있다고 전부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트럼프=뻥’으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이 NSS는 ‘황혼 대국의 헛소리’에 불과하다. 그러나 세상의 흐름을 겸허하게 객관적으로 이해할 경우 이 NSS를 통해 ‘카오스 도래’를 예견할 수 있다.
 

  NSS에서 베네수엘라 사태와 관련해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다음 세 가지이다.
 
  첫째, 먼로주의의 ‘트럼프 식’ 실행에 나선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미국의 이권(利權)을 확보한다. 중남미에서 미국으로 유입되는 마약과 이민을 방지한다.
 
  둘째, 미국 경제에 타격을 주는 외세(外勢)를 억지한다. 인도-태평양을 자유롭고 개방적으로 유지하고, 결정적으로 중요한 해상 교통로에서의 항해의 자유를 수호한다.
 
  셋째, 유럽의 자유와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 동맹국을 지원한다. 유럽의 문명으로서의 자신감이나 서양으로서의 정체성(正體性)을 (미국이) 회복시킨다.
 
  이 세 가지는 따로 떨어진 개념이 아니라 하나로 이어진 세계전략이다. 오해하기 쉬운데, 첫 번째 항목의 ‘미국 앞마당 중남미’가 우선이고, 두 번째 항목의 인도-태평양은 하부 변수(變數)라는 의미가 아니다. 중남미만이 아니라 인도-태평양도 전부 중요하지만, 유럽은 미국의 직접적인 협력 대상에서 멀어진다는 뜻이다.
 
  베네수엘라 사태를 보면서 이를 ‘중국의 대만 침략 용인’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한국에 적지 않은 듯하다. 미국이 중남미를 자기 멋대로 하듯, 중국도 대만과 주변 아시아 국가들을 마음대로 할 권리를 확보했다는 식의 해석이다. 이는 미국을 모르거나 반미친중(反美親中)적 정세 판단에 불과하다.
 
 
  ‘바나나 전쟁’
 
20세기 초 30여 년간 미군은 중남미에 적극적으로 투입됐다. 사진은 1932년 니카라과에 투입된 미군. 사진=퍼블릭 도메인

  뭔가 복잡한 위기 상황이 닥쳐왔을 때 ‘역사의 교훈’은 좋은 길라잡이다. 물론 여기서 ‘역사’란 우물 안 국뽕이나 슬로건 정치 논리가 아니라 냉엄한 비교·평가를 바탕으로 본 역사를 말한다. 1930년대 만주·중국 침략 당시 일본의 주장과 논리는 오늘날 베네수엘라 사태와 관련해 좋은 참고가 된다.
 
  여기서 먼저 이해해야 할 것이 있다. 당시 미국이 거의 한 세대에 걸쳐 벌여 왔던 ‘바나나 전쟁’이 그것이다. 미국은 1901년 시어도어 루스벨트 정권 출범과 함께 서반구 진출을 본격화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중남미가 정치적·경제적으로 무능하여 혼란을 겪을 경우, 미국이 국제경찰력을 행사해 개입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1910년대부터 미국은 니카라과, 도미니카, 아이티, 온두라스, 쿠바, 콜롬비아 등 중남미 국가에 전방위적으로 무력(武力) 개입하기 시작했다. 1930년대의 일본은 이를 보면서 자기의 만주·중국 침략을 정당화했다. 미국이 중남미에 무력 개입했다면, 일본의 만주·중국 침략도 용인할 것으로 기대했다.
 
  사실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반(反)러시아 전선을 구축(構築)하기 위해 일본에 우호적이었던 인물이다. ‘일본의 한반도 지배와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서로 인정한 가쓰라-태프트 밀약(1905년)은 그래서 나왔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미국은 일본이 중국과 태평양으로 진출하는 것을 가로막았다. 그 결말은 1945년 8월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原爆) 투하였다.
 
  ‘바나나 전쟁’은 되지만, 일본의 만주·중국 침략은 안 된다? 일본 입장에서는 불평등하고 억울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게 국제정치 현실이다. 영어로 ‘Know your place’란 말이 있다. ‘주제를 알라’는 의미로, 약소국이 강대국이 설정한 레드라인(red line)을 넘을 때 등장하는 표현이다. 반미친중 신자들은 삿대질을 하겠지만, 1940년대 일본에게 그러했듯 지금 중국에 대한 미국의 속내는 ‘Know your place’란 말로 압축할 수 있다.
 
 
  최종 타깃은 중국
 
  트럼프 NSS를 보면, 최종 타깃은 콜롬비아, 이란, 그린란드가 아니다. 중국이다. 미국 입장에서 베네수엘라 석유, 중남미 통제는 기본이다.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정권은 친중 정권이었다. 구(舊)소련이 무너진 후, 중국이 중남미 좌파 정권들의 대부(代父)로 등장했다. 쿠바를 비롯해 베네수엘라, 브라질, 멕시코, 우루과이, 니카라과의 좌파 정권들이 중국과의 관계 증진에 힘썼다. 중국은 자국산 저가 공산품이나 장기 차관(借款)을 제공하면서 중남미 자원을 대량 구입하는 방식으로 좌파 정권들을 지원했다.
 
  주된 자원은 원유·농산물·광산물이었다. 지난해 마두로는 국내 생산 원유의 80% 이상을 중국에 수출했다. 2025년 중국이 수입한 원유의 8%가 베네수엘라산(産)이었다. 남미 최대 산유국인 브라질도 생산한 원유의 절반 정도를 중국으로 보냈다. 브라질이 중국에 수출한 원유는 지난해 약 400억 달러 규모에 달했다. 중국은 중남미 원유를 수입해 정제한 뒤 다시 고가로 외국에 팔고 있다.
 
  트럼프 입장에서는 미국 앞마당에 중국인들이 왕창 몰려와 부존(賦存)자원을 싼값에 독점하는 듯한 느낌이 들 것이다. 결국 트럼프는 마두로를 제거하면서 중국을 향해 ‘Know your place’라고 일갈한 셈이다. 미국이 마두로를 제거한 것은 중남미 좌파 정권들에게 대중(對中) 관계를 절단하라는 신호탄이다. 21세기판 ‘바나나 전쟁’의 부활이다.
 
  트럼프는 사업가 출신 대통령이다. 트럼프와 일론 머스크의 관계에서 보듯, 서로 죽일 듯 비난하다가도 서로의 이익이 합치할 경우 친구가 될 수 있다. 베네수엘라 부통령으로 있다가 임시대통령이 된 델시 로드리게스도 마찬가지다. 트럼프로서는 미국과 보조를 함께한다면 좌파든 우파든 상관없다. 그러나 미국 앞마당에 중국을 끌어들인다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제거하겠다는 것이 트럼프의 확고한 의지이다.
 
  콜롬비아의 좌파 대통령 구스타보 페트로는 트럼프의 그 같은 자세를 정확히 읽은 것 같다. 마두로 체포 직후 트럼프를 맹비난했던 그는 마두로가 체포된 지 사흘 뒤 트럼프에게 전화를 걸어, 백악관을 방문하겠다고 요청했다. 트럼프의 요구 사안을 논의하겠다는 것이다. 반미·친중으로 달리다가 갑자기 미국 눈치를 보면서 납작 엎드리는 격이다. 트럼프가 콜롬비아에 무력 개입하는 것도 두렵지만, 우파 성향이 강한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자신의 정권을 전복할 수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중남미 최대의 친중 국가는 룰라의 브라질이지만, 이미 미디어를 통해 미국이 룰라를 제거하려 한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다. 중남미 전체가 트럼프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마리네라호 나포
 
  베네수엘라 사태 나흘 뒤인 1월 7일, 마리네라란 이름의 유조선이 아이슬란드 인근 해역에서 미 해군과 특수부대에 의해 나포(拿捕)됐다. 소위 무국적 ‘그림자 함대(Shadow Fleet)’ 선박을 포획하는 이 작전엔 영국 특수부대도 참가했다. 당시 러시아 해군과 공군이 미군의 나포작전을 지켜보면서 양국군은 대결 일보 직전까지 갔었다고 한다. 미군은 다른 유조선 코발트호도 나포하려 했지만, 코발트호는 러시아 선박으로 위장해서 도망치는 데 성공했다.
 
  마리네라호 나포는 1962년 10월 쿠바 미사일 위기 못지않은 대사건이다. 물론 미국의 유조선 나포가 핵전쟁 차원의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중남미 전체와 이란, 북한, 중국을 아우르는 ‘동서남북’ 모두에 걸친 에너지 관련 무력 행사다.
 
  ‘그림자 함대’는 그동안 국제사회가 관행적으로 인정해 왔다. 평소에는 세금을 아끼기 위해 저개발국에 선적(船籍)을 두지만, 배에 실은 화물이 문제가 되어 서방 국가가 나포, 검색하려 하면 중국이나 러시아 국기를 내걸고 달아났다.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셈인데, 당연히 그에 따르는 비용은 중국이나 러시아가 지불한다. 이번 마리네라호 나포는 미국이 이제 러시아 국기를 달고 위장해도 봐주지 않겠다는 의미다. 이는 베네수엘라, 이란, 북한과 거래하는 ‘가짜 중국 선박’에 대해서도 무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1월 7일, 크리스 라이트 미국 에너지부 장관은 마리네라호 나포가 다른 나라에 보내는 직접적인 신호라 강조했다.
 
  “지금 이란, 러시아, 북한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보라. 제재(制裁)를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 물리적으로 집행하는 대통령이 있다.”
 
  라이트 장관은 중국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중국이) 베네수엘라와 교역할 수는 있지만, 베네수엘라가 중국의 속국(屬國)이 되는 것은 결코 허용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필자는 120% 확신하는데, 베네수엘라·이란·북한·러시아와 오가는 선박들의 ‘중국 위장’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여차하면 미군에 나포될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물론 중국을 오가는 석유·농산물·광산물 이동이 대폭 위축될 것이다. 북한을 오가는 중국 깃발 ‘그림자 함대’의 활동도 당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당연히 중국과 러시아는 미군의 선박 나포를 국제법 위반이라고 맹비난하고 있다. 하지만 핵심은 ‘그들은 할 수 있다고 믿기에 그렇게 행한다’는 베르길리우스의 말을 중국과 러시아도 실천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절대로 어렵다. 일단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발을 빼기 어렵다. 중국은 자국 근처에서는 위력을 발휘할 수 있지만, 중동·중남미·러시아 근처까지 간여할 능력은 아직 없다. 중국군의 현대전 능력이 미군을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한 검증도 아예 없다.
 
 
  베네수엘라 사태, 중국의 한계 보여줘
 
마두로(오른쪽)는 미군에 체포되기 7시간 전 중국 특사단을 접견했다. 사진=X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이번 베네수엘라 사태로 중국의 무능(無能)과 무기력이 입증됐다는 사실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마두로가 체포되기 7시간 전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중남미-카리브해 특사인 추샤오치(邱小琪)가 이끄는 고위급 경제사절단이 마두로와 만났다. 베네수엘라 국영 TV를 통해 마두로와 중국 사절단의 화기애애한 모습들이 공개됐다. 시진핑은 친서를 보내 마두로를 응원했고, 베네수엘라는 시진핑을 “세계를 위한 강력한 리더”라고 찬미했다. 두 나라는 경제 문제와 관련해서는 600개 이상의 양자 협정을 논의했고, 베네수엘라는 자국산 석유의 안정적인 공급을 약속했다.
 
  두 나라가 보여 준 뜨거운 우정과 결의는 파도 앞의 모래성이었다. 중국은 미국의 중장기 남미 정책을 읽기는커녕, 당장 7시간 뒤 상황도 모른 채 축포를 터뜨린 모양새가 됐다. ‘정보 부재(不在), 장님 외교’라는 중국의 실체(實體)를 보여 준 셈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제2차 세계대전 직전 소련과 일소(日蘇) 중립조약을 체결했던 일본의 경우에 비길 만한 실책이다. 일본은 스탈린을 믿고 만주의 군대까지 남태평양으로 돌렸지만, 1945년 8월 소련은 약속을 깨고 만주와 사할린, 쿠릴열도를 점령했다.
 
  짐작건대 가까운 시일 내에 중국 내 외교·정보 관계자들에 대한 대규모 숙청이 있을 것이다. 중국이 미국을 상대로 정면 대응할 수는 없겠지만, 시진핑의 친서가 휴지 조각이 된 데 대한 책임은 누군가가 져야 할 것이다.
 
 
  미국 예외주의
 
  이번 베네수엘라 사태를 보면서 새삼 절감한 것은 미국 자본과 달러의 힘이다. 《월간조선》 1월호 기고에서 강조했듯이, ‘미국 예외주의(American exceptionalism)’는 트럼프 2.0 파워와 영향력을 가늠하게 해 주는 국제정치 용어다. 그 같은 미국 예외주의의 원천은 자본과 달러를 중심으로 한 미국 경제에 있다.
 
  미국 예외주의는 2026년 1월 베네수엘라 사태 이후에도 나타났다. 베네수엘라 후폭풍이 미국에 밀려들면서 월스트리트 주가 폭락을 ‘기대’한 사람이나 나라도 있었다. 결과는 정반대였다. 주식은 활황(活況)이고, 미국 경제는 상승하고 있다. 중국·러시아나 일부 서방 국가의 반발은 있지만, ‘카오스 정세’일수록 미국 예외주의는 한층 더 힘을 발휘하고 있다.
 
  만일 중국이 대만을 침략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에 대한 후폭풍으로 중국 경제 추락이 ‘장기간’ 진행될 것이다. 중국은 내수(內需)가 아닌 국제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다. 러시아처럼 에너지 수출 하나로 운영할 수 있는 나라도 아니다. 중국이 대만을 차지한다고 해도, 후폭풍이 서방을 중심으로 확산될 경우 중국 경제 급락은 불을 보듯 뻔하다. 1989년 천안문 사태 직후 행한 서방 경제 제재로 인해 1988년 11%대였던 경제성장률은 이후 2년간 3%대로 급락했다. 중국의 대만 침공은 그에 못지않은 타격을 중국에 안겨 줄 것이다. 베네수엘라 침공에도 불구하고 증시와 경제가 잘나가고 있는 미국과는 다를 것이다.
 

  미국의 진짜 파워는 자본과 달러에 있다. 한국의 경우, 잠시 외환위기가 해결된 듯 착각하고 있다. 한국 정부의 광범위한 개입 덕분이지만, 외환위기는 엄연히 진행중이고, 트럼프의 말 한마디로 대재앙 수준까지 갈 수도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데, 미국이 곧 그린란드를 접수, 점령할 것이라는 뉴스가 나오고 있다. 어떤 식으로든 그린란드를 미국 수중에 두겠다는 것이 트럼프의 집념이다. 여러 상황을 보면 가까운 시일 내에 유럽 전체가 트럼프 의향에 맞춰 미국과의 협상에 들어갈 것이다.
 
  미국이 그린란드를 손에 넣으려는 가장 큰 목적은 중국·러시아 견제를 위해서이다. 온난화로 북극해가 녹으면서 무역과 에너지 시레인(Sea Lane)이 그린란드를 중심으로 재창조되고 있다. 20세기 전반 ‘바나나 전쟁’ 당시 미국이 중남미 통제를 위해 파나마 운하를 건설하면서 콜롬비아의 일부였던 파나마를 부추켜 독립시킨 것과 흡사하다고 보면 된다. 그린란드는 궁극적으로 러시아 에너지의 중국행과 중국산 물건의 유럽 수출을 통제하는 관문이 될 것이다. 크게 보면 미국이 마두로를 제거하고 베네수엘라를 통제하려 드는 것이나 마찬가지 이유다.
 
 
  이재명의 방중
 
이재명 대통령은 베네수엘라 사태 당일인 1월 4일(한국시각) 중국을 국빈 방문, 이틀 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사진=청와대

  우연이자 필연이지만, 베네수엘라 사태 당일(한국시각 4일) 한국 대통령의 중국 국빈(國賓)방문이 시작됐다. 시점이 아주 좋지 않다.
 
  양국 발표를 보면 북핵(北核) 문제는 아예 논외다. 앞으로 북핵 문제는 중국과 무관한 외교 이슈로 굳어질 것이다. 한중 간에 전혀 거론되지 않을 것이란 의미다. 중국이 서해에 건설해 온 해상 구조물도 앞으로 한층 더 확장될 것이다. 한국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관리 시설 철수’를 강조하고 있지만, 실상은 70m가 넘는 철제탑은 그대로 남고 주변 보조 시설 일부만 없앤다는 것이다. 한국 연예인 중국 공연 ‘가능성’이 이번 방문의 최대 성과로 내세워지고 있다. ‘실용외교’란 슬로건은 넘치지만, 과연 이번 한중 정상회담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알 수 없다.
 
 
  대통령 사진은 메시지다
 
  미국 백악관은 마두로 체포 직후 흑백 사진 하나를 공식 X(구 트위터) 계정에 실었다. 한국에도 보도된, 2025년 10월 30일 트럼프가 김해공항에서 시진핑과 회담을 마친 뒤 이동하는 모습에 ‘No more games. FAFO’라는 문구를 더한 사진이다. 필자도 처음 알았는데, ‘FAFO’는 ‘Fxxx Around and Find Out’(‘Fxxx’는 ‘F’자로 시작하는 욕설-편집자 주)의 약자라고 한다. “까불다가는 어떻게 되는지 알게 될 것, 까불면 다친다”는 강력한 경고성 속어(俗語)다.
 
  필자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책사(策士)였던 딕 모리스와 일한 적이 있다. 그에게 “매일 대통령 관련 사진이 엄청나게 쏟아지는데 누가, 어떤 기준으로 외부에 공표하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백악관 내 미디어 담당 부서에서 담당하는데, 그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되는 사람들은 수백 명은 될 것이다. 선정되는 사진은 지도자의 강력한 결의를 보여 주는 것이 최우선이다. 이와 함께 뒷배경도 사진의 핵심 메시지가 된다. 대통령의 얼굴이나 옷차림도 중요하지만, 사진 속 배경이나 주변이 더 중요한 메시지인 경우도 많다.”
 
  작년 미일 정상회담 당시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가 트럼프와 함께 미국 항공모함에 오른 사진을 기억할 것이다. 깡총깡총 뛰는 여성 총리를 경박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핵심 메시지는 당시 배포된 동영상과 사진 속에 있다. 미일 정상 주변에 펼쳐진, 일본에 상주(常駐)하는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와 첨단 전투기와 미사일을 비롯한 무기를 통해, 트럼프는 일본에 대한 미국의 안보 공약이 확고하다는 것을 보여 준 것이다. 이 무기들은 대만 유사시 곧바로 투입될 수 있는 것들이다.
 
 
  FAFO, ‘까불면 다친다’
 
  그럼 ‘FAFO 사진’에 사용된 트럼프의 모습이 작년 경주 APEC 회의 당시 한국의 김해공항에서 시진핑과 미중 정상회담을 가진 후 찍은 것이라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까? 백악관에서 언론에 배포하는 사진은 ‘지도자의 강력한 결의’를 보여 주는 것이고, ‘뒷배경도 핵심 메시지’가 된다는 딕 모리스의 말을 상기해 보자. 미국이 한중 정상회담 당일 김해공항에서 찍은 트럼프의 사진을 사용해서 ‘FAFO(까불면 다친다)’ 사진을 배포했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그것이 중국은 물론 한국에 대한 경고로 느껴진다면 지나친 생각일까?
 
  재삼재사 강조한다. 베네수엘라는 결코 멀고 먼 나라가 아니다. 한국 바로 옆에 중국과 북한이 있고, 한국은 미국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트럼프와 미국은 ‘할 수 있다’고 믿기에 그렇게 행한다. 그 누구도 말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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