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

워싱턴에서 보는 한국 상황과 한미동맹의 미래

美 새 방위전략 나오면 주한 미군 축소… 경제에도 부정적 영향

  • 글 : 유민호 퍼시픽21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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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는 ‘反中’에 올인하고 있는데, 중국 전승절 행사서 천안문 망루에 오른 한국 국회의장
⊙ ‘중국 주도 경제권’ 국민총생산, 서방 경제권의 절반 불과
⊙ 미국 새 국가방위전략(NDS), 중국과의 충돌 회피하면서 미국 본토 및 아메리카 대륙 안보에 주력
⊙ 북핵과 中 서해 침탈에 한국 스스로 대처해야
⊙ “이재명 대통령이 (미국 측 우려에 대한) 메시지를 이해하는지, (시진핑 스타일) 경찰국가 스타일 통치에서 벗어날지…”(깅리치 전 미국 하원의장)

劉敏鎬
1962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일본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 졸업(15기) / 딕 모리스 선거컨설팅 아시아 담당, 《조선일보》 《주간조선》 등에 기고. 現 워싱턴에너지컨설팅 퍼시픽21 디렉터 / 저서 《일본직설》(1·2), 《백악관의 달인들》(일본어), 《미슐랭 순례기》(중국어) 등
이재명 대통령은 8월 25일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가졌다. 사진=뉴시스/공동취재
‘판타 레이(Panta rhei).’ ‘모든 것은 흘러간다’는 의미로, 기원전 6세기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주장이다. 삼라만상(森羅萬象) 전부 변하는 것은 당연하고, 또 변해야만 생존해 나갈 수 있다는 의미다.
 
  2025년 글로벌 상황을 보면 매순간 ‘판타 레이’를 실감하게 된다. 이 글을 쓰고 있는데 두 가지 긴급 뉴스가 눈에 들어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지지해 온 청년 보수주의 활동가 찰리 커크가 암살되었다는 소식과, 나토 연합군이 폴란드에 진입한 러시아 드론 공격기를 격추했다는 소식이다. 특히 러시아가 나토 가맹국을 공격하고 나토가 곧바로 무력(武力) 대응한 것은 초유(初有)의 사건이다. 여기서 보듯 우리는 극단적 방법과 수단이 난무하는 ‘막장’ 판타 레이 세계에 살고 있다.
 
  ‘판타 레이’를 대할 때,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하지 않은 것이 두 가지 있다. ‘스피드’와 ‘방향’이 그것이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모든 것은 변한다”고 말했을 뿐 그 스피드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아마도 2025년 강물의 흐름은 2500여 년 전 헤라클레이토스의 시대에 비해 100배, 아니 1000배는 빠를 것이다. 또 헤라클레이토스는 강물의 흐름이 동서남북 어디로 향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았다. 진보와 퇴보, 문명과 야만 중에서 어느 쪽으로 향할지.
 
 
  ‘떠내려가는 잡초’ 신세 된 한국
 
  ‘판타 레이’라는 면에서는 2025년 한국도 어디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경천동지(驚天動地)할 뉴스가 매일같이 쏟아져 나온다. 5개월 전까지만 해도 대통령이었던 인물이 부부 동반으로 수감되었다. 중국 문화혁명에 비견하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전(前) 정권 인사에 대한 조사, 체포, 수감이 줄을 잇고 있다. ‘내란 척결’이라는 명목으로 ‘야당 해산’을 주장하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이를 두고 박수를 치는 사람도 적지 않은 듯하지만, 반대로 나라가 야만으로 퇴보하고 있다고 보는 사람들도 많다.
 
  이러한 상황을 두고 한국 밖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는 ‘숙청과 혁명(Purge or Revolution)’이란 표현을 썼다. 워싱턴 마당발이자 보수(保守) 이념 설계자인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은 ‘한국 자유와 민주주의 위기(The Korean crisis of freedom and democracy)’라는 글을 썼다.
 
  오늘날 글로벌 ‘판타 레이’ 흐름의 최상류는 미국 워싱턴이다. 거의 매주 전(全) 세계 정상 한두 명이 백악관을 찾아와 워싱턴발(發) ‘판타 레이’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자발적인 동참도 있지만 강제적인 동참도 적지 않다. 글로벌 ‘판타 레이’의 흐름을 이끄는 최고 사령관은 트럼프다. 트럼프의 말 한마디로 300여 명의 한국인 구금자의 운명이 결정되고, 한국의 국가적·국민적 자존심이 좌우된다.
 
  이런 상황에서도 한국 대통령은 평론가처럼 앉아 관전평(觀戰評)만 쏟아 내고 있다. 워싱턴이 만들어 내는 ‘판타 레이’의 영역 안에 들어설 능력도, 의지도 없는 듯하다.
 
  한국은 트럼프와의 관세 협상 타결을 위해 무려 6500억 달러, 한국 국민 1인당 1만2500달러 투자를 미국에 약속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트럼프와 만나 양국 관계를 잘 관리했다는 안도 섞인 평가가 한국 언론에 나온 것도 잠깐, 이번에는 미국 조지아주(州)에서 한국인 구금 사태가 발생해 온 나라를 놀라게 했다. 한국은 왜 급류에 떠내려 가는 잡초, 아니 곧 버려질 찬밥 같은 신세가 된 것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워싱턴발 ‘판타 레이’의 흐름에 반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부활한 ‘중국 열풍’
 
9월 3일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 전승절 행사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가운데),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 김정은(오른쪽) 등 세계 26개국 정상들이 참석했다. 사진=신화/뉴시스
  지난 8월 25일 한미 정상회담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9월 3일 중국에서 열린 전승절(戰勝節) 행사 관련 뉴스가 한국 언론을 도배했다. 천안문 망루에 오른 중국·러시아·북한 독재자들이 ‘최첨단 무력’을 자랑하는 중국군의 퍼레이드를 사열하는 모습과 함께, 중국은 떠오르는 나라, 미국은 ‘황혼(黃昏)의 대국’으로 묘사하는 듯한 뉴스가 쏟아져 나왔다. 전승절 행사를 전후해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 러시아와의 동방경제포럼(EEF), 브릭스(BRICS) 화상(畵像) 정상회의 관련 뉴스가 연일 크게 보도되었다. 필자가 아는 한, 이런 뉴스들을 연일 톱뉴스로 다룬 나라는 없다. 코로나 이후 잠잠해졌던 ‘중국 열풍’이 한국에서 부활했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이는 이재명 정부의 중국관(觀)이 그대로 투영된 것은 아닐까?
 
  이재명 대통령은 8월 25일 백악관 공동기자회견에서 트럼프를 피스메이커(peacemaker), 자신을 페이스메이커(pacemaker)라고 공언했다. 트럼프를 ‘평화의 전도사’라고 치켜세우면서 자신은 앞장서서 그 도우미로 나서겠다는 의미였던 것 같다. 그러나 회견 당시 이 대통령의 자세를 보면 도우미로서의 페이스메이커라기보다는, 트럼프를 주인공으로 한 이벤트용 매치메이커(matchmaker)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이 대통령이 자원한 역할은 트럼프-김정은, 트럼프-시진핑 이벤트를 자신이 중개하겠다는 것이다.
 
 
  APEC 기간중 미중 정상회담 열릴까
 
  필자가 주목한 부분은 트럼프-시진핑 이벤트다. 트럼프-김정은 이벤트는 당분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김정은을 만나 줄지도 의문이지만, 김정은도 당분간은 트럼프를 멀리할 것이다. 트럼프와 만나서 구체적인 결과는 없는, 너무도 뻔한 ‘사진 찍기 이벤트’를 하기보다는, 러시아 및 중국으로부터 최대한 지원을 받아 내자는 것이 현재 김정은의 생각일 것이다.
 
  트럼프-시진핑 이벤트도 어렵기는 하겠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 트럼프는 이재명 대통령의 ‘페이스메이커’ 발언에 대한 답례로, 10월 말 경주에서 열리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에 참석할 수 있다는 말을 흘렸다. 다소 혼란스럽지만, 트럼프는 ‘이미’ 10월에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리는 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정상회의 참석을 결정한 상태다. ASEAN 회의는 경주 APEC보다 10여 일 전에 열린다. 트럼프가 두 회담 모두 참석하지는 않을 것이다. 종잡을 수 없는 트럼프의 행적을 감안하면, 이미 약속한 쿠알라룸푸르 대신 경주로 올 수도 있다.
 

  아마도 한국 정부는 그 같은 가능성에 매달리면서 트럼프의 경주 APEC 참석을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것 같다. APEC 기간 중 미중(美中) 정상회담을 주선하는 것이 ‘매치메이커’ 이재명 대통령의 최대 관심사일 것이다. 만약 미중 정상회담이 성사된다면 한중(韓中) 정상회담도 열고, 곧바로 답방(答訪) 형식으로 이 대통령이 중국에 갈 수도 있다.
 
 
  이재명의 관심은 중국
 
  여기 근본적인 의문이 하나 있다. ‘페이스메이커’든 ‘매치메이커’든, 실용적·현실적 차원에서 그게 우리에게 무슨 이득이 있을까? 트럼프와 김정은 사이에 끼어 보려고 애썼던 문재인 전 대통령의 모습이 떠오른다. 물론 잠깐의 대통령 지지율 상승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트럼프를 내세운 이벤트가 과연 국익(國益) 차원에서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필자가 보기에 이재명 대통령의 주된 관심은 트럼프가 아니라 중국, 정확히 말해 한중 정상회담에 있는 듯하다. 실용외교, 셰셰(謝謝)외교의 실적을 14억 중국인의 최고 지도자 시진핑과의 만남을 통해 보여 주고 싶을 것이다. 물론 트럼프가 그 같은 수(手)를 못 읽을 리 없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 입장에서는 사실 트럼프가 어떤 판단을 내리든 큰 상관이 없다. 트럼프가 APEC에 오지 않아서 미중 정상회담이 불발된다고 해도 전부 ‘미국 탓’으로 돌리면 그만이다. ‘로또(Lotto) 외교’라 할까, 만에 하나 트럼프가 응해 주면 대박이고, 아니면 트럼프 때문에 실패했다고 둘러대면 그만이다. 이재명 정부로서는 2017년 12월 문재인 대통령이 베이징대 연설에서 말했던, ‘높은 산봉우리 대국(大國)’을 향한 ‘작은 나라’의 열심을 보여 주는 것이 중요하다.
 
  상식이지만, 트럼프의 모든 정책과 언행은 궁극적으로 ‘반중(反中)’으로 귀결된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친구’라고 치켜세우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하루라도 빨리 끝내려는 것이나, 전 세계 첨단 산업을 미국 내로 끌어들여 공급망 체인 100% 자급자족에 나서려는 것도 모두가 그 때문이다. 현재 숨고르기를 하면서 대중(對中) 관세를 낮추고 있지만, 적절한 여건이 조성되었다 싶으면 한순간에 관세 100% 인상도 해치울 것이다.
 
 
  천안문 망루에 오른 대한민국 국회의장
 
  이런 상황에서 9월 3일, 26개국 정상이 베이징 천안문 망루에 오른 것이다. 대한민국 국가 의전 서열 2위인 국회의장은 망루 오른쪽 끝자리에 앉았다고 한다. 대부분 독재국가 정상들이 참석한 자리에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국회의장이 함께한 것이다. 아마 ‘정부가 아닌 국회 차원의 참석’이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미국·유럽·일본 등이 그런 꼼수에 넘어갈지는 의문이다. 대한민국 국회의장이 천안문 망루에 올라 미국을 겨냥한 중국의 극초음속미사일 행렬에 박수를 보내는 모습을 그들이 곱게 볼 리 만무하다.
 
  트럼프는 러시아 석유 수입 문제와 관련해, 그동안 역대 미국 정부가 미국 편으로 끌어들이려 애써 온 인도까지 내치고 있다. 장차 중국과 긴밀하게 무역을 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봉변을 당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300여 명 한국인 수감 사실을 두고, 국회의장이 천안문 망루에 오른 일과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이미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일각에서는 ‘중국 대안론(代案論)’이 꿈틀거리고 있다. 중국이 주도하는 상하이협력기구나 브릭스 경제권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정도를 넘어서, 아예 미국 경제권에서 벗어나 중국 경제권에 참가해 ‘주체적·자주적 한국경제’로 나아가야 한다는 목소리로 들린다.
 
  꽤 담대한 생각이기는 하지만, 무지몽매한 소리다. 중국이 주도하는 경제권이 100% 통합돼 하나로 돌아간다고 해도 미국이 주도하는 서방 자유민주주의 경제권의 절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중국과 천안문 망루에 오른 26개국의 국내총생산(GDP)을 전부 합치면 글로벌 GDP의 25% 정도다(2023년 기준). 브릭스를 전부 합쳐도 전 세계 GDP의 25% 선이다. 반면 미국과 유럽(EU)·일본을 합친 서방 자유 진영의 GDP는 대략 글로벌 GDP의 50% 정도를 차지한다.
 
  중국 주도 경제권은 하나로 합쳐진 조직이 아닌, 반(反)서방·반미(反美) 나라들의 연합체라고 보면 된다. 그들조차 기회만 주어진다면 미국이나 서방과의 관계를 증진하는 쪽을 더 원할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언제든지 깨질 수 있는 엉성한 경제권에 불과하다.
 
 
  ‘중국몽’이라는 허상
 
  최근 나타난 ‘중국 주도 경제권’의 특징이 있다. 달러가 아니라 현물(現物)이나 중국 위안화(貨) 결제(決濟)가 일상적이라는 것이다. 미국 달러화는 중국까지 포함해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통용된다. 중국 위안화는 다르다. 심리적·현실적으로 볼 때, 중국 위안화를 ‘안전통화’로 보는 나라와 사람들은 극히 드물다. 당장 한국인 가운데서도 중국 위안화를 안전자산으로 여기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중국의 경제 식민지나 다름없다는 소리를 듣는 캄보디아에서조차 시장에서 기본적으로 통용되는 외화(外貨)는 위안화가 아니라 달러화이다.
 
  만약 한국이 상하이협력기구나 브릭스에 들어갈 경우 어떻게 될까? 일단 달러와 멀어지게 된다. 다시 말해 중국 경제권에 들어가는 순간 달러화 중심의 서방 경제권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 달러가 없으면 미국산 제품을 구입할 수도 없고, 해외 투자도 어려워진다. 트럼프의 반중 디커플링 정책이 아니더라도, ‘중국 경제권 가입=대(對) 중국 예속=서방 경제권 이탈’을 의미한다.
 
  2024년 기준으로 미국은 글로벌 GDP의 25%, 상장 주식 시가총액의 50% 이상을 갖고 있다. 전 세계 부(富)의 4분의 1, 주식의 절반이 미국에 몰려 있는 셈이다. 경제력만이 아니라 네트워크를 통한 소프트 파워도 남다르다. 트럼프는 중국 공산당 간부의 하버드대 유학을 금지하고 있다. 일단 하버드대에 이름을 걸친 뒤 전 세계 하버드 출신에게 접근하기 때문이다. ‘하버드’란 브랜드의, 미국만이 가진 아카데믹 소프트 파워를 이용하면 글로벌 정치·경제·사회 다방면의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 이처럼 미국과 관계를 갖는다는 것은 경제력은 물론 눈에 보이지 않는 소프트 네트워크도 전부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 주도 경제권’에는 그 같은 부수적(附隨的) 메리트가 전혀 없다. 같은 베이징대 출신이라고 해서 서로 마음을 열고 함께 일하려는 나라나 사람이 얼마나 될까?
 
  트럼프가 변화시키고 있는 세계가 그리 유쾌하지 않을 수는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 꿈꾸는 ‘중국몽(中國夢)’에 비한다면, 최악은 아니다.
 
  계속 미뤄지고 있지만, 트럼프 2.0 시대의 군사·안보 청사진이 될 미국 ‘국가방위전략(NDS)’이 조만간 발표될 예정이다. 트럼프가 촉발한 관세전쟁이 경제적 차원의 ‘판타 레이’라면, NDS는 군사적 차원의 ‘판타 레이’라고 볼 수 있다.
 
  지난 8월 25일 한미 정상회담 당시 북핵(北核)이나 한반도 안보 논의는 거의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대미(對美) 투자 논의가 주로 거론됐고, 주한 미군이나 심지어 중국 관련 문제도 별로 다루어지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이유는 당시 아직 NDS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글로벌 큰 그림을 그린 뒤에야 하부 변수(變數)로서 한반도 문제가 다루어질 것이다.
 
 
  베네수엘라 사태의 의미
 
  지난 9월 5일자 정치 전문 웹 〈폴리티코〉는 조만간 발표될 NDS의 주요 내용 중 일부를 공개했다. 직접 NDS에 관여한 인물들의 정보에 기초한 것으로, 핵심은 ‘미군의 탈(脫)중국 전선(戰線)’이 포인트다. 기사를 대하면서 ‘설마’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차기 NDS의 핵심은 중국과의 직접적인 무력 충돌을 피하고, 미국과 아메리카 대륙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한다. 해외 주둔 미군을 활용해서 중국, 러시아, 북한의 공격을 막거나 그들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 본토와 아메리카 대륙의 안전보장이 새 NDS의 최대 관심사란 것이다.
 
  9월 2일 베네수엘라의 마약 조직 해상 밀수선이 미군의 공격을 받아 격침됐다. 배에 타고 있는 11명 전원이 폭사(爆死)했다. 미군 이지스함과 구축함 등 8척의 군함이 참가한 합동작전의 결과다. 아무리 마약 조직이라고 하지만 상대는 민간인이다. 베네수엘라 좌파 대통령 마두로에 대한 트럼프의 반감이 남다르다 해도, 미군 함정이 민간인 선박을 직접 격침하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다. 제주도로 밀입국하려는 중국인 보트를 한국 군함들이 격침하는 것에 비견될 수 있다. 한층 더 놀라운 것은 작전 이후 미군 함정의 배치다. 아예 베네수엘라 앞바다에 포진한 채, 당장이라도 마두로 집무실에 쳐들어갈 것 같은 태세다. 마약 척결을 빌미로 한 제국주의적 군사 도발이라고 비난하는 이도 있겠지만, 이번 사건은 곧 발표될 NDS의 모델이 될 수 있다.
 
  새 NDS는 폐쇄형·내성적·수동적 안보 개념으로 보인다. 실제로 미군이 ‘미국/아메리카 안보 퍼스트’로 나갈 경우, 당장 주한 미군의 위상은 어떻게 될까? 철수라는 말까지는 나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상당 수준의 조정은 불가피할 것이다. 마침 한국도 전시(戰時)작전통제권 환수를 요구하는 상황인지라, 주한 미군의 기능과 역할이 대폭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한국에 남게 될 미군과 군사시설에 대한 한국 정부의 지원(분담금)은 급상승할 것이다. 물론 한국 방위력 강화를 위한 무기 구입도 급증할 것이다. ‘미군의 미국/아메리카 안보 퍼스트=한국군 홀로서기’를 의미한다. 물론 이를 외교적 수사(修辭)로 장식하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새 NDS가 현실화되면 한국은 북핵은 물론 중국의 서해 침탈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냉엄한 현실에 부닥치게 된다. 한미동맹이 사라지진 않겠지만, ‘물샐틈없는 한미동맹’이라는 말은 먼 과거사가 될 것이다. 새 NDS 발표와 함께 이재명 정부는 물론 한국인 모두를 뒤흔들 딜 카드가 ‘왕창’ 밀려들 것이다. 그로 인한 충격은 관세전쟁과 강제적이다시피 한 대미 투자 요구로 인한 충격보다 훨씬 클 것이다.
 
  현재 러시아-우크라이나 평화 협상에서는 미군 수백 명의 우크라이나 주둔 여부가 핵심 이슈가 되고 있다. 나토군뿐 아니라 미군까지 평화유지군으로 참여할 경우 우크라이나 평화는 ‘장기간’ 확보될 수 있다.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우크라이나를 러시아가 재침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미군은 평화유지군이자, 평화로운 경제 환경의 기반이기도 하다. 미군이 사라질 경우 안보도 위험해지고, 평화를 전제로 한 경제활동도 위축된다. 언제 폭탄이 터질지 모르는 나라의 부동산은 모래성(城) 재산에 불과하다. 미군 부재(不在)는 경제 붕괴로 이어질 것이다.
 
 
  ‘기묘한’ 군사·안보 국제회의
 
9월 9일 열린 2025 서울안보대회(SDD) 개회식에 참석한 안규백 국방장관(앞줄 가운데), 나카타니 겐 일본 방위상(안 장관 왼쪽), 길베르토 테어도르 필리핀 국방장관(안 장관 오른쪽). 사진=뉴시스
  9월 8일부터 3일간 한국에서 ‘기묘한’ 군사·안보 국제회의가 열렸다. 2012년 이래 14년째 계속돼 온 서울안보대화(SDD)다. 5개국 국방장관을 비롯해 1000여 명의 안보 관계자가 참석했다. 올해 주제는 ‘지정학적(地政學的) 도전의 극복: 협력을 통한 평화 구축’이라고 한다.
 
  이를 ‘기묘한 국제회의’라고 한 것은, 사흘의 회의 기간중 ‘중국의 남중국해 위협’ 나아가 ‘중국의 서해 침탈’에 관한 한국 측 발제가 단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중국 무력의 팽창이야말로 아시아에서 가장 큰 지정학적 도전이다. ‘지정학적 도전’이란 거창한 타이틀로 손님을 끈 이상, 중국 무력의 팽창에 대한 한국의 입장 표명은 당연히 있어야 한다. 그러나 회의 내용을 보면 아예 중국이란 단어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 대신 한국산 방산(防産) 수출에 대한 얘기만 나왔다.
 
  미국은 애초부터 중국에 대한 한국 측 저자세를 꿰뚫어봤다. 중국의 불참은 이미 예상됐지만, 동맹국 미국조차 SDD에 무심했다. 미국 국방장관은 참석하지 않았다.
 
  이번 SDD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사람은 나카타니 겐(中谷元) 일본 방위장관이었다. 일본 방위장관의 서울 방문은 10년 만의 일이었다. 한일 수교 60주년을 기념한 한일 국방장관 회의도 열렸다. 그러나 그 결과는 초라했다. 공동성명이나 공동선언이 아닌 공동 발표만 있었다. ‘한반도 비핵화(非核化)에 관한 인식 공유’라는 말은 있었지만, 중국에 대한 한일의 ‘공동 입장’은 ‘아예’ 없었다. 이렇듯 결과가 너무 부실하기 때문에, 일본 언론은 양국 국방장관 회담에 대해 거의 보도하지 않았다. 대신 나카타니 장관이 SDD에 참석한 필리핀 국방장관과 회담을 갖고 양국이 중국에 대한 공동 인식과 무기 교류를 재확인한 사실을 크게 보도했다.
 
 
  깅리치의 경고
 
뉴트 깅리치 전 미국 하원의장. 사진=조선DB
  ‘중국에 대한 VIP급 배려’는 이제 2025년 가을 한국의 일상적 풍경이 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9월 9일 서울 명동 주한 중국 대사관 인근 반중(反中) 집회를 ‘깽판’이라고 표현했다. 국제 예양(禮讓)에 비추어 볼 때, 한국 내 외교 사절들을 불쾌하거나 불편하게 하는 일이 있어서는 당연히 안 된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말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소위 ‘진보’ 세력들이 트럼프의 사진이나 성조기를 불태우거나 미 대사관 담을 넘어 들어가 시위를 벌이는 것에 대해서도 따끔하게 지적해야 한다. 이런 문제에 이중잣대가 적용된다면 법치(法治)국가라고 할 수 없다. 대통령의 영(令)이 서기도 어렵다.
 
  한국의 역사를 보면, 글로벌 시대정신과 정반대로 가다가 곤경에 처하거나 망국(亡國)에 이른 경우가 많았다. 구한말(舊韓末) 모든 나라가 문을 열 때 쇄국(鎖國)으로 가다가 나라가 망한 것은 모두가 아는 일이다. 오늘날에도 글로벌리즘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세계의 대세(大勢)는 우향우(右向右)하고 있지만, 한국만 낡은 이념에 사로잡혀 좌향좌(左向左)하고 있다.
 
  깅리치 전 미국 하원의장은 한미 정상회담 이틀 뒤인 8월 27일자 칼럼에서 이렇게 경고했다.
 
  “앞으로 수주간이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미국 측 우려에 대한) 메시지를 이해하는지, (시진핑 스타일) 경찰국가 스타일 통치에서 벗어날지 여부가 나타날 시기이기 때문이다.”
 
 
  ‘21세기의 조선’이 되려나
 
  필자는 ‘아메리카 퍼스트’ 지지자도 아니고 트럼프 숭배자도 아니다. 현재 글로벌 시대정신이 무엇인지, 거기에 동행하지 못할 경우 나타날 불이익이 무엇인지에 주목하는 ‘판타 레이 관찰자’에 불과하다. 현재 한국은 정치·경제·사회·군사·안보 거의 전 영역에서 미국이 만들고 세계가 따라가는 흐름(판타 레이)에 반(反)하는 나라로 변해 가고 있다.
 
  미국 조지아주에서 300여 명의 한국인이 체포되고 수모를 당한 일로 나라가 들썩이고 있다. 하지만 낡은 이념을 고집하면서 시대착오적 행보를 계속할 경우 한국은 수십만 명, 아니 수백만 명의 삶이 망가지는 ‘21세기의 조선’ ‘구한말 2.0’의 나라로 전락할 수 있다.
 
  결국 한국사의 흐름은 진보와 문명을 향해 가리라고 믿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한동안 한국은 퇴보와 야만의 길을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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