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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우크라이나 사태와 일본 외교의 급변

“우크라이나 사태는 戰後 최대의 위기”(기시다 총리)

글 : 유민호  퍼시픽 21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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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日, 종래의 ‘애매한 일본’에서 벗어나 對러 제재, 비축석유 방출, 우크라이나 난민 수용 등에 적극적
⊙ 젤렌스키의 畵像 국회 연설에 일본은 500여 명, 한국은 50여 명 참석
⊙ 日, 미국-러시아 핵전쟁까지 염두에 두고 歐美와 共助 외교
⊙ 임기 6개월째인 기시다 총리 지지율 63.2%… 長壽 총리 될 가능성 높아
⊙ 한국, 點을 넘어 線/面/입체 외교 전개하는 일본 배워야

劉敏鎬
1962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일본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 졸업(15기) / 딕 모리스 선거컨설팅 아시아 담당, 《조선일보》 《주간조선》 등에 기고 / 現 워싱턴 에너지컨설팅 퍼시픽21 디렉터 / 저서 《일본직설》(1·2), 《백악관의 달인들》(일본어), 《미슐랭 순례기》(중국어) 등
3월 24일 샤를 미셸 유럽이사회 의장과 만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일본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외교 지평을 넓히고 있다. 사진=AP/뉴시스
  4월 초 벚꽃 축제가 끝났다. 벚꽃 만개(滿開)가 놀이 차원을 넘어서 ‘축제’라고 불리면서 봄의 출발점으로 여겨지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아마 21세기 글로벌 시대에 접어들면서부터일 듯하다. 반세기 전 진해 해군통제부에서 근무한 부친 덕분에 매년 관내 벚꽃을 독점하면서 보냈다. 당시 축제는 고사하고, 벚꽃 놀이 자체가 없었다. 먹고살기에도 바쁜 시대였기도 하지만, 벚꽃이라고 하면 일제의 상징이자 처분 대상으로 여겨질 뿐이었다.
 
  가족이나 친구와 더불어, ‘매년 되풀이되는 추억이자 놀이’로서의 벚꽃 축제는 약 400년 전 일본 에도(江戶) 시대 때부터 본격화됐다. 일본 전역에서 이뤄지는 벚꽃 축제는 크게 4가지 배경하에서 이루어진다.
 

  첫째, 벚나무를 집단 식목(植木)한다.
  둘째, 벚나무 바깥을 따라 음식점을 비롯한 각종 풍물 상가가 축제 기간 중 들어선다.
  셋째, 벚꽃 만개일 카운트다운과 함께, 관람객을 집단화해서 맞이한다.
  넷째, 작은 이벤트들과 함께 야간에도 개장해 벚꽃 관람을 도와준다.
 
  이러한 기준으로 일본 밖에서 펼쳐지는 벚꽃 축제를 관찰해보면 많이 다르다. 예를 들어 벚나무 가지의 위치다. 한국 벚꽃 축제에 가보면 나뭇가지 대부분이 허공 위에 ‘높이’ 떠 있다. 머리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드리워져 있다는 말이다. 일본의 경우 사람 키보다 조금 높은 2m 정도 높이의 가지가 많다. 팔을 뻗으면 닿을 높이다. 벚꽃 나무 아래를 스치듯 지나가면서 즐기는 식이다. 당연히 벚꽃 향과 벌들의 윙윙거리는 소리도 즐길 수 있다. 가지치기를 정교하게 해서, 아주 밀착해서 관찰할 수 있다. 한국 벚꽃은 시각(視覺)에만 의존할 뿐, 후각(嗅覺)이나 청각(聽覺)을 고려한 조경(造景)에는 무심(無心)하다. 가지치기도 거의 없고, 있더라도 눈높이 위치를 고려하지 않는다.
 
 
  戰後 최대의 위기
 
  벚꽃 축제를 대하는 일본의 자세를 보면 세계무대에서 펼쳐지고 있는 일본 외교의 오늘과 내일을 이해할 수 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일본 외교는 현재 점(點)에서 벗어나 선(線)과 면(面) 나아가 3차원 입체화(立體化)를 향해 전력으로 나아가고 있다.
 
  ‘전후(戰後) 최대의 위기.’
 
  이것이 최근 진행되고 있는 일본의 갑작스러운 변화를 읽을 수 있는 키워드다. 3월 10일 일본 미디어를 통해 처음으로 등장한 이 말의 출처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다. 2월 24일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진 지 14일 후, 공명당(公明黨) 당수와 시국 관련 회담을 끝낸 뒤 발표한 회견문 속에 이 말이 들어 있었다. 3월 27일 방위대학 졸업식 연설에서 기시다 총리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으로 인해 국제질서의 근본이 위협받고 있다. 세계는 물론 일본도 전후 최대의 위기에 들어서게 됐다”고 말하면서 이 말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흔히 ‘전후 위기’의 사례로 1970년대 석유 위기와 닉슨 쇼크(닉슨 미국 대통령의 전격적인 중국 방문), 1990년대 이라크 전쟁과 버블 붕괴, 21세기 초 테러와의 전쟁과 리먼브라더스 사태, 2011년의 동일본 대지진 등을 꼽아왔다.
 
  기시다 총리의 말대로라면, 금년 2월에 터진 우크라이나 사태는 앞의 모든 위기를 뛰어넘는, 1945년 이후 지난 77년 사이 가장 큰 위기라는 것이다. 한국인이 보기에는 뭔가 과장하거나, 잘못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한국에서는 문재인 정권이나 언론 모두 우크라이나 사태를 ‘강 건너 불’ 보듯 하고 있다. 전황(戰況)과 관련된 단발성 보도나 러시아의 전쟁범죄에 관한 뉴스가 거의 전부다. 우크라이나와 세계의 내일에 관한 분석이나 방향, 특히 한국이 향후 어떤 상황에 접어들지에 대한 질적(質的) 차원에서의 논의는 거의 보기 어렵다.
 
 
  일본 외교의 급변
 
  ‘전후 최대의 위기’를 맞아 과연 일본은 어떤 식의 대응에 나서고 있을까? 서방세계와의 연대(連帶)다. 3월 말부터 러시아에 대한 제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일본이 보여준 모습은 너무도 놀랍다. 미국·유럽이 주도하고 있는 러시아의 금융·무역·에너지 올리가르히(특권 재벌)에 대한 각종 제재에 일본도 적극 동참하고 있다. 더 나아가 푸틴 대통령 이름까지 직접 거론하면서 전쟁 책임을 추궁하고 있다.
 
  사실 가능하다면 막후 교섭이나 윈윈(win-win)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 과거 일본 외교의 특징이었다. 아무리 정당하고 분명하더라도 상대를 코너로 몰지는 않았다. 당장은 이길지 몰라도 결국에는 양날의 칼로 되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2018년 영국에서 발생한 러시아의 독극물 노비촉 암살 사건으로 촉발된 유럽과 러시아 간의 외교관 추방전이나 2014년 러시아의 크름반도 합병 당시, 일본은 유럽과 보조를 같이하지 않았다. 이는 일본 사회의 근간인 ‘와(和)의 정신’이 외교에 투영된 것이기도 하지만, 과거 한국·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을 침략했었고, 미국·유럽국가들을 상대로 태평양전쟁을 벌였다는 과거사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태도가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180도 급회전했다. 일본은 난민(難民) 수용에 인색한 나라로 유명했는데, 놀랍게도 전쟁 발발과 함께 우크라이나 난민을 적극 받겠다고 공언했다. 4월 9일 기준으로 421명의 우크라이나 난민이 일본에 들어왔다.
 
  일본은 에너지 가격 안정을 위한 비축(備蓄)석유 방출에도 적극적이다. 미국이 6000만 배럴을 내놓았는데, 일본도 1500만 배럴을 풀었다. 영국·독일·프랑스보다 많은, 세계 2위 규모다. 필자가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기시다 일본 총리가 8명의 주일 러시아 외교관 추방을 지시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일본은 우크라이나 곳곳에서 발생한 민간인 학살과 관련, 러시아를 ‘전쟁범죄국’이라고 공식 비난했다.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전쟁범죄 조사를 요청하고 있다”는 기시다 총리의 결의가 전 세계에 공표됐다.
 
 
  韓, G10임을 자랑하지만…
 
4월 11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화상 연설에는 고작 50여 명의 국회의원이 참석했다. 사진=조선DB
  지난해 12월 21일 문재인 대통령은 “코로나19 대응에 이어, 경제력·소프트파워·군사력 등 종합적인 국력에서 G10(주요 10개국) 국가가 되면서 외교적 수요가 늘었다”고 자랑했다. 초등학교 반장에도 적용되는 말이지만, 뭔가 잘하고 타인(他人)의 모범이 된다는 말은 책임으로 이어진다. 문재인 정권의 자랑대로 대한민국이 G10 반열에 올랐다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뒤따르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민간인 학살이 자행되고, 푸틴 대통령이 핵(核)공격까지 거론하는 상황인데도 자칭 G10으로서의 책임감은 보이지 않는다.
 
  전 세계인의 심금을 울린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연설은 좋은 본보기다. 44세 대통령은 전쟁이 일어난 후 국제기구나 20여 개 나라 의회를 상대로 한 화상(畵像) 연설을 통해 러시아의 침략을 고발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호소해왔다.
 
  그런데 ‘민주진보정부’를 자랑해온 더불어민주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대한민국 국회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화상 연설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여왔다. 이에 대한 비판이 나오자 대한민국 국회도 4월 11일 젤렌스키 대통령의 화상 연설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한국도 1950년대에 6·25전쟁을 겪고 수많은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지만,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이겨냈다”며 연대를 요청했다. 연설 말미에는 “러시아의 탱크·배·미사일을 막고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목숨을 살릴 군사 장비가 대한민국에 있다”며 무기 지원도 요청했다.
 
 
  민망했던 젤렌스키의 국회 연설
 
3일 23일 젤렌스키 대통령의 일본 의회 화상 연설에는 710명의 중·참의원 의원 중 500여 명이 참석했다. 사진=AP/뉴시스
  필자는 이 화상 연설을 보면서 세 가지 이유에서 놀랐다.
 
  첫째, 행사의 격(格)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라는 국가를 대표하는 지도자다. 마땅히 국회의장이 행사를 주관하는 국회 차원의 행사를 열었어야 했다. 하지만 행사를 주관한 것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였다. 행사장도 국회 본회의장이 아니라 국회도서관 대강당이었다.
 
  둘째, 행사에 참석한 국회의원의 수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국회의원은 총 300명 가운데 20% 정도인 50여 명 정도였다. 언필칭 왕년의 민주화 투사 출신 국회의원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민망할 정도로 빈자리가 많이 보였다. 와중 스마트폰을 보는 등 딴짓을 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젤렌스키의 일본 의회 연설 때에는 710명의 중·참의원 의원 가운데 500여 명이 참석했다.
 
  셋째, 한국 정부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연설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의 무기 지원 요청을 공식적으로 거부했다. 거부 자체도 놀랍지만, 연설이 끝나자마자 그렇게 ‘공개 거부’했다는 사실이 참담하기만 하다.
 
  국회뿐이 아니다. 한국 정부는 푸틴 대통령을 정면으로 거론하기는커녕, 러시아를 비판하는 목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않고 있다. 서방 모두가 참여하는 대(對)러시아 제재에도 마지못해 끌려가는 느낌이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부차에서 저지른 민간인 학살이 세계의 공분(公憤)을 불러일으킨 직후인 4월 5일, 한국 외교부가 내놓은 세 줄짜리 성명서를 보자.
 
  1. 우리 정부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발표한 민간인 학살 정황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
 
  2. 전시(戰時) 민간인 학살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다.
 
  3. 아울러 독립적인 조사를 통한 효과적인 책임 규명이 중요하다는 유엔 사무총장의 4·3 성명을 지지한다.
 
  학살의 주어(主語)도 없고, 그나마 ‘우려’가 전부다. 푸틴과 러시아에 대한 비난 자체가 없다. 필자는 외교부 성명 내용을 들으면서 분노와 한숨이 동시에 솟구쳤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대하는 무지(無知)와 무관심, 나아가 고집과 자만은 왜 100년 전에 우리가 나라를 잃고 35년간 남의 나라 식민지로 전락했었는지, 왜 70여 년 전에 동족상잔을 겪어야 했는지를 새삼 깨닫게 해준다. 일본 총리가 ‘전후 최대의 위기’를 외치고, 서방 주요 국가들이 급변하면서 ‘신냉전(新冷戰)’의 도래를 경고하고 있다. 그런 흐름과 시대정신을 이해한다면, ‘자칭 G10 한국’의 방관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무모한 것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G7의 최후통첩
 
  잠시 일본 벚꽃 축제 얘기로 다시 돌아가 보자. 벚꽃 축제가 열리는 동안 노점상이 들어설 경우 기존의 정규 상점의 장사에 방해가 될 수 있다. 서로 갈등이 생기기 쉽다. 이를 어떻게 해결할까? 노점상과 정규 상점은 평소에도 자주 어울리면서, 동네의 다른 축제에도 협력하면서 마찰을 피한다. 노점상 허가증은 정부가 행하는 추첨을 통해 발급하지만, 평소 동네 축제를 위한 인적·물적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만이 노점상 허가증을 얻을 수 있다. 대(代)를 이어가며 이어지는 장기적 협력체계가 매년 개최되는 벚꽃 축제의 원동력인 것이다.
 
  일본 외교도 마찬가지다. 일본 외교가 최우선시하는 것 중 하나가 국제 공조(共助)다. 아무리 강해도, 절대로 일본 혼자 가지 않는다.
 
  4월 7일 유럽 브뤼셀에서 G7 수뇌 회의의 결과가 발표됐다. 핵심은 “러시아가 생물·화학·핵무기를 사용할 경우 심각한 결과를 낳을 것”이란 결의문이다. 언뜻 보면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매번 반복되어온 경고로 보이지만, 지난 3월 24일 G7 수뇌 회의의 결의문과 비교해보면 변화의 정도를 이해할 수 있다. 그때는 “생물·화학·핵무기 사용에 반대한다는 경고를 보낸다”였다. 14일 만에 ‘구두(口頭) 경고’에서 ‘직접 행동’으로 변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러시아가 생물·화학·핵무기를 사용할 경우 나토(NATO)가 전쟁에 뛰어든다는, 푸틴에 대한 최후통첩이다. 누구도 입 밖에 내기를 꺼리지만, 이는 곧 제3차 세계대전을 의미한다고 봐도 될 것이다.
 

  필자가 주목하는 부분은 이 결의문에 참가한 일본의 역할이다. 일본은 G7이기는 하지만, 나토 회원국은 아니다. 러시아가 마지노선을 넘을 경우, 일본은 과연 어느 선(線)까지 나토와 보조를 같이할 수 있을까? 이는 현재 일본 국민 전체가 지켜보는 사안이기도 하다.
 
  어떤 식으로든 일본은 나토의 움직임에 상응하는 군사적 행동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당장 일본 특유의 ‘정보·보급·정찰·소해(掃海·기뢰 제거)에 관한 군사작전’이 떠오른다. 전투 현장 참전이 아니라 측면·후방지원을 통한 군사행동이다.
 
  G7 수뇌 회의의 이러한 결의문은 같은 기간 열렸던 나토 회원국 회담을 통해서도 재삼 확인됐다. 서울에서는 소홀히 다뤘지만, 나토 회원국 회담에는 한국 외교부 장관도 일본·호주 외교부 장관과 함께 옵서버 자격으로 참석했다. 하지만 한국은 G7 일본의 발언력에 못 미치는 한정적인 역할에 그쳤을 것이다. 한국은 G7과 나토의 최후통첩성 결의를 수용할지 여부도 정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기시다 지지율 63.2%
 
기시다 일본 총리는 2월 25일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발표했다. 사진=AP/뉴시스
  나토의 현안에 일본이 개입하는 문제는 앞으로 펼쳐질 동아시아 안보 구도의 대변화를 가늠하는 상수(常數)가 될 것이다. 쿼드(Quad)를 통한 미국·인도·호주와의 연대만이 아니라, 나토를 통한 국제공조는 일본 외교의 새로운 과제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는 한국·중국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주는 만큼 받고, 얻는 만큼 보답하는 것이 국제무대에서의 기본 상식이다. 공짜는 없다. 도쿄(東京) 국회의사당 근처에는 ‘북방영토가 반환되는 날, 평화의날(北方の領土歸る日, 平和の日)’이라는 글귀가 새겨진 돌이 놓여 있다. 북방영토 회복은 정치인들을 포함한 일본 국민들의 염원이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일본이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 적극 동참하자 러시아는 그동안 이어져온 북방영토 관련 회담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2022년 4월 일본 외교는 그 중요한 북방영토 문제조차 뒷전으로 넘길 만큼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4월 4일은 기시다가 총리에 오른 지 6개월째 되는 날이다. 일본 후지 텔레비전(FNN)이 행한 여론 조사에서 일본 국민의 63.2%가 기시다 총리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크라이나 문제와 코로나19 대처에 대한 신뢰도가 특히 높다. 집권 6개월째에 지지율이 50% 이상 나왔다는 것은 장수(長壽) 총리가 될 것이라고 보장하는 신호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경우에서 보듯, 지도자의 리더십과 국민의 강력한 지지는 시련 극복의 기본 바탕이다. 기시다 총리는 국민적 지지를 기반으로 국방비 증액과 드론경항공모함 같은 첨단 무기 개발을 구체화하고 있다.
 
 
  ‘臺灣 有事’
 
  일본이 우크라이나 사태를 ‘발등의 불’로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북방영토 주변이 미국과 러시아 간 핵전쟁 무대로 변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미국과 러시아 핵잠수함이 비밀리에 움직이는 최전선이 바로 사할린 아래 바다다. 미국 본토와도 가깝고 러시아에 대한 공격도 가능한 지역이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확대될 경우 결국 미국-러시아 핵전쟁이 고려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일본 내 미군기지와 도쿄가 러시아의 공격권에 들어갈 수 있다. 한국에서는 ‘설마’라고 생각할 것이다. 일본은 위기 시에 이러한 상황이 실제 터질 수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과의 협력에 적극 나서지 않을 경우 핵전쟁 발발 시 일본을 도와줄 우방도 사라질 것이다. 일본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준비라는 차원에서 우크라이나 사태에 적극 대응하게 된 것이다.
 
  둘째, 대만(臺灣) 유사(有事)다. 주의할 부분은 ‘대만’과 ‘대만 해협’ 사이의 미묘한 차이다. 미국은 대만이 아닌 ‘대만 해협’이 보호 대상이라 말한다. 일본은 ‘대만 유사’라는 표현에서 보듯, 대만과 대만인의 안전과 자유 그 자체에 주목하고 있다. 대만 해협의 자유로운 항해는 물론, 대만 자체의 자유와 평화가 일본의 주된 관심이라는 얘기다.
 
  중국이 무력(武力)으로 대만을 공격할 경우, 일본은 자동 개입할 전망이다. 대만만이 아니라, 센카쿠(尖閣) 열도는 물론 오키나와(沖縄)까지 전쟁터로 변할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틈만 나면 ‘센카쿠와 일본의 영토에 대한 공격=미일동맹의 영역’이란 워싱턴의 약속을 받아내고 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 문제에 적극 개입하는 상황에서 일본이 거리를 둘 경우 ‘대만 유사’ 시 똑같은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일본의 자세=대만 유사시 미국의 대응’이다. 때문에 일본은 앞으로 한층 더 나토에 깊이 관여할 수밖에 없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친(親)푸틴 정책을 펴고 있는 중국을 공식 비판하는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은 티베트 인권 문제나 홍콩 점령 때도 중국에 대한 직접적인 비난을 피했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사태에 직면해서는 중국을 맹렬히 공격하고 있다. ‘애매한 일본(曖昧な日本)’에다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은 20세기 과거의 모습이다. 대만 유사가 눈앞에 닥치면서 일본은 반푸틴·반러시아·반중(反中)을 전 세계에 분명히 공표하고 있다.
 
 
  韓日 협력 없이 韓美 협력 없다
 
  4월 5일 윤석열(尹錫悅) 대통령 당선인이 파견한 ‘한미 정책협의단’이 워싱턴을 방문했다. 한미(韓美) 동맹 강화가 목적으로, 양국 간 조기 정상회담과 외교·국방 2+2회의를 제안했다고 한다.
 
  추측건대 한미 정책협의단이 워싱턴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얘기 중 하나가 ‘한일(韓日) 협력 강화’였을 것이다. 문재인 정권이 남긴 부정적 유산이지만, 한일 협력 없이는 한미 협력 강화도 어려운 구도로 변해버렸다. 문 정권이 ‘한반도 운전자론’에 매달리는 동안 일본은 동맹국 미국과의 군사협력과 상호신뢰에 매진했다.
 
  한국은 한미 동맹이라는 ‘점(點)’을 통한 안보 확보를 우선시한다. 그러나 전통적인 중립국인 스위스·스웨덴·핀란드조차 나토 가입을 검토하고 있는 판국이다. 흩어진 점만이 아니라, 점을 이어주고 보강할 수 있는 선(線)과 면(面)이 필요하다.
 
  일본은 미일 동맹이란 점뿐 아니라, 쿼드 나아가 나토와 동남아시아와의 안보 협력 강화를 적극화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정신이 없는 상황인데도 3월 20일 기시다 총리는 인도와 캄보디아를 공식 방문했다. 4월 8일에는 필리핀 외무장관과 국방장관이 일본에 들러 양국의 대중(對中) 정책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점을 넘어서 선/면/입체로 향하는 일본 외교는 글로벌 안보무대의 기둥으로 자리 잡아 갈 것이다. 워싱턴은 같은 동아시아권 동맹인 한국도 점에서 탈피해, 선/면의 무대로 나가길 바라고 있다. 북한 핵무기는 이미 글로벌 이슈로 부상(浮上)했다. 중국의 대만 공격은 일본만이 아닌 한국의 에너지 공급 해상선(Sea Lane)에 대한 위기로 이어질 것이다. 전쟁이 벌어지는 동안은 물론, 만약 중국이 대만을 점령할 경우에 중동(中東)석유와 한국 무역품의 수출 해상선도 전부 차단되게 된다. 중국에 머리를 숙이지 않는 한 자유롭게 통과할 수도 없는 상황이 닥칠 수 있다.
 
 
  點을 넘어 線/面/입체로
 
  BTS 착시(錯視)현상이라고나 할까? 자칭 G10에다 전 세계가 BTS에 열광하는 듯하지만, 실상으로 들어가면 뭔가 허전하다. 자기만족 자화자찬(自畵自讚), 나아가 무책임한 립서비스만 넘쳐난다.
 
  한반도 위기 시 적극적으로 도와줄 나라가 과연 얼마나 될까? 우크라이나에 대한 방관적 자세가 증명하듯, 한국이 남을 돕는 일에 직접 나서지 않는데 그 어떤 나라가 한국을 진짜 친구로 받아들일까?
 
  일본의 발 빠른 행보는 신임 대통령이 펼칠 외교의 길라잡이가 될 수 있다. 일본과 똑같이 가거나 행동할 필요는 없다고 하더라도 워싱턴이 강조하는 것처럼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보조를 맞출 필요는 있다. 쿼드만이 아니라 나토와의 관계도 신임 대통령의 외교·군사 현안이 될 것이다.
 
  이미 G7과 나토가 경고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가 점쳐지고 있다. 경제제재로 인한 피해는 러시아만이 아닌 서방으로도 확산될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을 별개의 세계로 대하는 디커플링도 고착화될 것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사태=전후 최대의 위기’로 대하는 현실 인식이 있다면 그 어떤 시련도 이겨낼 수 있다. 점에서 탈피해 선/면/입체로 진화될 한국의 새로운 안보구도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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