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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스포츠 소식

모두가 외면한 허드슨, MLB ‘最多勝 투수’로 우뚝

글 : 이상희  월간조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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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이저리그 경력 16년째. 빅리그 통산 214승 124패 평균자책점 3.57
⊙ 프로와 4년제 대학 모두 스카우트에서 제외해 2년제 대학에 진학
팀 허드슨은 온갖 시련을 이겨내고 불혹의 나이에도 선수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야구를 흔히 ‘투수놀음’이라고 한다. 승패의 7할 정도를 투수가 좌우할 만큼 야구에서 투수의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투수의 몸값도 다른 포지션에 비해 매우 높다. 실제로 올 시즌 ‘메이저리그 최고연봉 순위 10위권’ 안에 있는 선수들을 보면 연봉 3071만4286달러(약 328억원)를 받아 1위에 오른 LA 다저스 클레이튼 커쇼(27)를 비롯해 7명의 선수가 모두 투수이다.
 
  그렇다면 수준급 투수의 기준은 무엇일까?
 
  21세기 현대야구에서 말하는 ‘수준급 투수’의 기준은 바로 두 자리 수 승수이다. 투수가 한 시즌 10승 이상을 달성하면 수준급 투수로 분류한다. 그리고 이것이 수년간 지속되면 고액연봉자가 될 수 있는 지름길이 된다.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던 투수 박찬호(은퇴)는 과거 LA 다저스에서 뛰었던 1997년부터 2001년까지 5년 연속 시즌 두 자리 수 승수를 달성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박찬호는 이런 활약을 바탕으로 2002년 텍사스와 5년 총액 6500만 달러(약 695억원)의 특급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박찬호는 또 메이저리그 통산 124승 98패 평균자책점 4.36을 기록해 빅리그에서 뛴 아시아 투수 가운데 최다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박찬호가 ‘위대한 투수’로 분류되는 이유이다. 박찬호가 이 기록을 달성하는 데 걸린 시간은 17년.
 
  시즌 10승이 ‘수준급 투수’의 기준이라면 ‘통산 100승’ 이상이 박찬호 같은 위대한 투수의 전제조건이 되는 것은 이를 달성하는 데 실력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박찬호가 ‘아시아 투수 최다승’ 기록을 달성하고 메이저리그 은퇴를 선언했을 때 그의 나이 37세였다.
 
 
  메이저리그 현역 최다승 투수, 샌프란시스코 허드슨
 
  박찬호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투수 나이 삼십 대 후반이면 은퇴를 고려하거나 이미 은퇴했을 나이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 선발투수 팀 허드슨(39)은 한국나이로 올해 불혹(不惑)이 되었지만 아직도 현역생활을 이어 가고 있다. 허드슨의 나이는 야구계에서 노장에 속하지만 그의 실력과 기록만큼은 여전히 정상급이다.
 
  허드슨은 올 시즌 총 31경기에 선발등판해 9승 13패 평균자책점 3.57의 성적을 올렸다. 아쉽게도 두 자리 수 승수는 달성하지 못했지만 평균자책점과 투구이닝(189.1이닝)만큼은 젊은 투수들과 정상급 투수들 못지않다.
 
  올해로 메이저리그 경력 16년째인 허드슨은 빅리그 통산 214승 124패 평균자책점 3.57을 기록 중이다. 메이저리그 아시아 투수 최다승 기록 보유자인 박찬호에 비해 경력은 짧지만 승수는 무려 100승 정도나 더 많다. 허드슨이 메이저리그에서 ‘살아 있는 전설’이자 ‘당대 최고의 투수’로 칭송받는 이유이다.
 
  메이저리그 현역투수 중 200승 이상을 달성한 이는 허드슨을 포함 총 3명으로 뉴욕 양키스의 C. C. 사바시아(208승)와 뉴욕 메츠의 바톨로 콜론(202승)이 있다. 하지만 기록에서 보듯이 허드슨의 승수가 가장 많다. 허드슨은 또 메이저리그 데뷔 후 ‘가장 꾸준한 투수’로 손꼽힐 만큼 ‘기복이 없는 최정상급 투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로 허드슨은 빅리그 데뷔 첫해였던 1999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승수가 패보다 더 많았다. 통산 평균자책점 역시 정상급 투수의 기준이 되는 3점대(3.45)를 유지하고 있다.
 
  메이저리그 현역 최다승 투수인 허드슨은 지난달 미국 애리조나에서 가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뒤 지난 16년간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경기에 임하려 했고 아울러 등판하는 경기마다 상대팀 선수들에 대한 분석과 그들을 상대할 준비를 철저히 했던 것을 성공비결로 꼽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 가지 추가하자면 빅리그에서 꾸준한 실력과 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훈련과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모두가 외면했던 허드슨의 아픈 과거
 
  메이저리그 데뷔 후 성공가도를 달리며 빅리그 현역 최다승 투수로 우뚝 선 허드슨에게도 뼈아픈 과거가 있다. 그랬기에 오늘날 허드슨의 성공은 야구팬들은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미국 조지아주(州) 출신인 허드슨은 고3 때 시즌 12승 1패 평균자책점 1.78의 빼어난 성적을 거두며 두각을 나타냈다. 하지만 그는 당시 스카우트들 사이에서 ‘투수를 하기에는 신체조건(180cm 73kg)이 너무 왜소하다’는 이유로 프로는커녕 4년제 대학 야구팀의 부름도 받지 못했다. 무시에 가까운 철저한 외면이었다. 허드슨은 훗날 미국 현지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존심이 상했지만 야구를 향한 열정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에 당시의 아픔을 이겨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자신의 가치를 성적으로 입증하고도 외면당한 허드슨은 결국 2년제 대학에 진학해 선수생활을 이어 갔다. 그리고 지명받지 못한 것에 대한 울분을 토해 내듯 대학 첫해에 10승 2패 평균자책점 2.76의 호성적을 기록했다. 허드슨은 또 타율 0.385 9홈런 42타점을 기록해 타자로서의 재능도 입증했다.
 
  허드슨의 대학 2학년 때 성적은 더 좋다. 당시 허드슨은 투수로 나와 시즌 15승 2패 평균자책점 2.97의 성적을 올렸고, 외야수로도 뛴 그는 시즌 타율 0.396 18홈런 95타점을 기록했다. 이런 빼어난 활약을 바탕으로 허드슨은 당시 2년제 대학야구리그 투수와 외야수 부문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는 영예도 안았다. 한 선수가 같은 해에 각기 다른 두 분야에서 올해의 선수로 선정된 것은 허드슨이 처음이다.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가치를 성적으로 입증한 허드슨은 결국 1997년 메이저리그 신인드래프트 6라운드(전체 185번)에서 오클랜드의 지명을 받아 프로에 진출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허드슨의 성공을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 1라운드에서 지명을 받은 최고 유망주들조차 빅리그 무대에 서 보지 못하고 사라지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미운 오리’에서 ‘백조’로 거듭난 허드슨
 
  하지만 허드슨은 달랐다. 어린 나이에 받았던 외면과 수모 때문이었을까. 허드슨은 프로진출 단 2년 만인 1999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하는 기염을 토했고, 데뷔 첫해에 ‘수준급 투수’의 기준이 되는 두 자리 수 승수(11승 2패)의 성적을 거뒀다. 그럼에도 허드슨을 바라보는 현장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데뷔 첫해에 달성한 두 자리 수 승수를 ‘실력’보다는 ‘우연’으로 평가절하하는 이들이 더 많았다.
 
  메이저리그에는 흔히 ‘소포모어 징크스(Sophomore Jinx)’로 불리는 속설이 있다. 이는 데뷔 첫해에 잘했던 선수가 2년째에 접어들어 상대팀들의 집중 견제와 분석 등으로 성적이 하락하는 경우를 뜻한다. 하지만 이 또한 야구를 향한 허드슨의 열정을 막지 못했다. 허드슨은 메이저리그 2년차였던 2000년 시즌에 총 32경기에 선발등판해 20승 6패 평균자책점 4.14의 빼어난 성적을 달성하며 아메리칸리그 다승왕 자리에 올랐다. 허드슨이 빅리그 데뷔 2년 만에 전국구 스타로 부상하자 그의 실력을 우연으로 치부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메이저리그 데뷔 2년 만에 오클랜드의 에이스로 부상한 허드슨은 이후 매 시즌 두 자리 수의 승수를 달성하며 리그 최정상급 투수로 위용을 떨쳤고, 2005년 애틀랜타로 옮겼다. 이적 후에도 허드슨의 실력엔 변함이 없었다. 특히 허드슨은 이적 첫해였던 2005년 8월 세인트루이스를 상대로 자신의 메이저리그 통산 100승을 달성했다. 빅리그 데뷔 후 단 6년 만에 이룬 쾌거였다.
 
  허드슨은 애틀랜타로 이적한 첫해에 14승 9패 평균자책점 3.52를 기록한 것을 필두로 이후 매년 13승, 16승, 11승을 달성하며 팀의 에이스 역할을 톡톡히 해 냈다. 특히 애틀랜타는 허드슨이 어린 시절에 가장 좋아했던 팀이었기에 그 의미가 더 크다.
 
  허드슨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어렸을 때 애틀랜타를 제일 좋아했다. 시간이 허락하는 한 그들의 경기는 빼놓지 않고 챙겨 보며 성장했으며 특히 1990년대를 풍미했던 애틀랜타의 투수 그레그 매덕스(48)와 존 스몰츠(47)를 가장 좋아했다. 지금은 그들 모두 은퇴했지만 내가 그렇게 좋아했던 팀에서 9년이나 뛸 수 있어 무척 감사하고 행복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허드슨은 또 빅리그 투수를 꿈꾸는 어린 선수들을 위한 조언도 내놓았다. 그는 “메이저리그에 진입하려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그런 과정에서 다양한 실패도 경험할 수 있다. 그래서 실패했을 때 발생하는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고 항상 긍정적인 사고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야구는 생각보다 결코 쉽지 않은 경기이기 때문이다. 실패에서 배운 교훈을 바탕으로 같은 실수를 두 번 반복하지 않고 긍정적인 생각과 함께 최선을 다하라는 말을 해 주고 싶다.”
 
 
  ‘백조’가 된 허드슨에게 찾아온 또 다른 시련 ‘팔꿈치 부상’
 
팀 허드슨은 2008년 이후 부상으로 1년간 선수생활을 중단하기도 했다.
  메이저리그 데뷔 첫해부터 10년 연속 두 자리 수 승수를 달성하며 성공가도를 달리던 허드슨에게 또 다시 시련이 찾아온 것은 2008년이었다. 그해 8월까지 시즌 11승 7패의 호성적을 기록하며 맹활약을 펼치던 허드슨의 오른쪽 팔꿈치에 적신호가 켜진 것. 우완정통파 투수인 허드슨에게 오른쪽 팔꿈치 부상은 치명적이었다. 정밀검사와 장고를 거듭한 허드슨은 결국 ‘토미존서저리(팔꿈치인대 접합수술)’를 받기로 결정하고 시즌을 조기에 접을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미국 현지언론들은 ‘허드슨의 시대는 끝났다’는 제하의 기사 등을 쏟아내며 ‘허드슨의 재기는 힘들 것’으로 전망했다. 당시 허드슨의 나이는 32세였다. 투수에게는 전성기가 지난 나이였기에 언론의 이런 부정적 시선도 무리는 아니었다. 일부 언론은 ‘빅리그 데뷔 후 할 만큼 했으니 명예로운 은퇴를 선택하라’는 기사도 내놓았다.
 
  허드슨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당시를 회상하며 “모두가 힘들다고 예상했지만 나는 오히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했다. 고교시절 지명을 받지 못했을 때보다 더 희망적이었고 반드시 재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고 말했다.
 
  팔꿈치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허드슨의 앞에는 긴 재활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고통과 인내를 반드시 필요로 하지만 그 결과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암흑의 시간이었다.
 
  2009년 시즌을 부상자 명단에서 출발한 허드슨은 그해 7월이 돼서야 본격적인 연습투구를 할 수 있었다. 당시 마운드에 올라 90개의 공을 던진 허드슨의 상태는 좋아 보였다. 하지만 애틀랜타 코칭스태프는 서두르지 않았다. “허드슨의 상태를 조금 더 지켜본 뒤에 메이저리그 복귀시점을 결정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미국 현지언론들은 또 다시 허드슨에게 의심 어린 눈초리를 보냈다. 일부는 ‘허드슨의 연내 메이저리그 복귀가 힘들 것’으로 예상했다.
 
  허드슨이 수술과 재활이라는 긴 암흑의 터널을 빠져나와 빅리그 마운드에 복귀한 것은 2009년 9월 1일이었다. 정규시즌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으로 팔꿈치 수술 후 13개월 만이었다. 허드슨은 당시 플로리다를 상대로 선발등판해 5.1이닝 동안 6피안타 2실점하며 승리투수가 됐다. 그해 총 7경기에 선발등판한 허드슨은 2승 1패 평균자책점 3.61의 성적을 올렸다.
 
  허드슨이 복귀했지만 그가 예전의 실력을 되찾을 것으로 보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더 두고 봐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실제로 팔꿈치 수술을 받은 뒤 예전의 기량을 찾지 못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투수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팔꿈치 부상마저 이겨낸 허드슨, ‘올해의 재기선수상’ 수상
 
  하지만 허드슨은 2010년 시즌이 개막하자 예전과 다름없는 기량을 선보였고, 그해 총 34경기에 선발등판해 17승 9패 평균자책점 2.83의 빼어난 성적을 올렸다. 허드슨은 또 그해 8월 플로리다를 상대로 삼진을 무려 13개나 잡아내 자신의 메이저리그 한 경기 최다탈삼진 기록도 갈아치웠다. 허드슨은 이런 활약을 바탕으로 2010년 메이저리그 ‘올해의 재기선수상(Comeback Player of the Year Award)’을 수상했다.
 
  이후 애틀랜타에서 3시즌을 더 뛴 허드슨은 지난 겨울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어 샌프란시스코로 이적했다. 계약조건은 2년 총액 2300만 달러(약 246억원)였다. 애틀랜타는 허드슨의 나이 때문에 재계약을 포기했지만 샌프란시스코로 이적한 그는 올해 또 다시 올스타에 선정되며 자신의 몫을 다했다. 빅리그 통산 네 번째 올스타 선정이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허드슨을 포기한 애틀랜타가 지난해와 달리 올 시즌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지만 허드슨을 영입한 샌프란시스코는 작년과 달리 올해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는 것이다. 허드슨은 풍부한 경험과 실력을 바탕으로 올 포스트시즌에서도 만점활약을 펼치고 있다. 허드슨은 10월 초에 열린 내셔널리그 디비전시리즈(NLDS) 2차전에 선발등판해 막강 워싱턴 타선을 상대로 7.1이닝 7피안타 1실점의 호투를 펼쳤다. 타선의 지원을 받지 못해 승리투수가 되진 못했지만 샌프란시스코는 허드슨의 호투에 힘입어 연장 18회까지 가는 접전 끝에 귀중한 승리를 챙길 수 있었다. 백전노장 허드슨의 역투가 젊은 선수들의 집중력을 이끌어내 승리의 발판이 된 셈이다.
 
  기자는 허드슨과의 인터뷰에서 “백전노장인 당신도 상대하기 어려운 타자가 있냐”는 질문을 던졌다.
 
  “지난 16년간 정말 많은 타자들을 상대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는 실력이 뛰어난 타자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한 명을 콕 집어 말하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야구는 매우 상대적인 경기이다. 투수가 잘 던져도 타자가 더 잘 칠 수도 있다. 그래서 나 같은 경우는 특정 타자보다는 내가 등판한 날 얼마나 상대 타자들에 대한 분석과 대비를 잘했는가, 그리고 그날 내 컨디션이 얼마나 좋은가에 따라 상대하기 어려운 타자가 많거나 또는 없는 것 같다.”
 
  미국 콜로라도대의 한 연구에 따르면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평균 선수 생명은 5.6년으로 6년이 채 되지 않는다. 이런 환경에서 허드슨의 16년 현역생활은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그럼에도 상대 타자들을 끊임없이 분석하는 허드슨의 한결같은 노력은 그가 어떻게 ‘세계 최고의 선수들만 뛸 수 있다’는 메이저리그에서 현역 최다승 투수로 성공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질문에 답을 제시해 준다.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백전노장’의 야구철학
 
  허드슨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야구시즌은 길다. 게다가 이동거리도 엄청나다. 그렇기 때문에 특별한 일정이 없는 한 쉬는 날은 항상 휴식을 취한다. 그러지 않으면 긴 시즌을 건강하게 마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6년 선수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요령이 생길 법도 하지만 허드슨의 철저한 자기관리는 한결같았다.
 
  부상이 없는 한 허드슨은 내년에도 빅리그 마운드에 올라 힘차게 공을 뿌릴 것이다. 팬들은 이런 허드슨을 주목하며 ‘과연 그가 언제까지 현역생활을 할 것인가’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다. 이에 대해 허드슨은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나는 야구를 하는 동안은 항상 그리고 가장 행복했다. 그만큼 야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언제 유니폼을 벗고 은퇴할지 모르지만 하루라도 더 야구를 통한 행복을 누리고 싶다”는 말로 당분간은 현역생활을 계속하겠다는 속내를 내비쳤다.
 
  기자는 인터뷰 말미에 허드슨에게 향후 목표에 대한 질문을 던지자 그는 다음과 같은 답변을 내놓았다.
 
  “승수나 평균자책점 등의 개인적인 기록은 세우지 않는다. 항상 시즌 내내 꾸준히 등판할 수 있도록 체력적인 면이나 정신적인 면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며 집중한다. 이런 식으로 매 경기 준비를 잘하면 성적은 당연히 따라오기 때문이다.”
 
  ‘표면적인 성적보다 과정을 중요시한다’는 허드슨의 야구철학은 인터뷰를 마친 후에도 기자의 뇌리에 큰 울림이 되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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