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기의 《아사히신문》, 네이버가 출자한 SNS ‘라인’ 폄하하는 기사 게재, 反韓 무드에 편승하나?
⊙ 아베 정권, 각료 30% 여성 할당 등 여성의 사회 참여 촉진하는 위미노믹스 적극 추진
⊙ 아베 총리 부인 아키에 여사, 워싱턴 CSIS에서 위미노믹스 주제로 연설하는 등 위미노믹스 외교 나서
劉敏鎬
⊙ 53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일본 마쓰시타 정경숙 15기.
⊙ SBS 보도국 기자, 일본 경제산업성 연구소(RIETI) 연구원.
⊙ 現 워싱턴 〈Pacific, Inc〉 프로그램 디렉터, 딕 모리스 선거컨설턴트 아시아 담당 소장.
⊙ 아베 정권, 각료 30% 여성 할당 등 여성의 사회 참여 촉진하는 위미노믹스 적극 추진
⊙ 아베 총리 부인 아키에 여사, 워싱턴 CSIS에서 위미노믹스 주제로 연설하는 등 위미노믹스 외교 나서
劉敏鎬
⊙ 53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일본 마쓰시타 정경숙 15기.
⊙ SBS 보도국 기자, 일본 경제산업성 연구소(RIETI) 연구원.
⊙ 現 워싱턴 〈Pacific, Inc〉 프로그램 디렉터, 딕 모리스 선거컨설턴트 아시아 담당 소장.

-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부인 아키에 여사는 지난 9월 23일 워싱턴 CSIS에서 위미노믹스를 주제로 연설했다.
《아사히(朝日)신문》 10월 10일자 인터넷판 뉴스 톱기사 타이틀이다. 상장을 앞둔 소셜네트워킹 서비스(SNS) 라인(LINE)에 관한 기사이다. 필자는 기사를 대하는 순간, 하루 전날 터진 서울발(發) 뉴스가 떠올랐다. 《산케이(産經)신문》 서울지국장 기소 뉴스이다. SNS 라인과 산케이 지국장 기소 기사가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말하겠지만, 둘은 결코 무관하지 않다.
라인 관련 기사의 핵심 내용을 살펴보자. “2011년 창립 이후 불과 4년 만에 5억6000만명 가입. 페이스북이나 중국의 위챗(WeChat)보다 빠른 속도이기는 하지만, 실제 이용객은 1억7000만명.” 기사 내용을 보면 극히 평범한 IT 관련 뉴스처럼 느껴진다. 한국인이라면 간과할 듯하지만, 일본인은 기사 속에서 극히 미세한 사실 하나를 핵심 포인트로 잡을 듯하다.
“라인은 한국 네이버의 완전 자(子)회사이다.” 라인이 100% 한국 기업 투자로 만든 기업이란 사실이 《아사히》에 실려 있다. 미국인 가운데 현대가 한국산 자동차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일본인 역시 라인이 100% 한국 자본에 의해 만들어진 SNS라는 사실을 잘 모른다. 《아사히》는 그 같은 사실을 공표한 것이다. “일본에서 가장 성공한 SNS로, 가입자가 5억6000만명이라고 하지만, 실제는 1억7000만명에 불과한 100% 한국 투자 회사”라는 것이 행간에 있는 기사의 핵심이다.
지난달 《월간조선》에 기고한 글에서 문화혁명 상태에 빠진 《아사히》의 ‘차가운 현실’에 대해 보도했다. 라인 기사를 읽으면서, 매국노(賣國奴)로 몰린 《아사히》가 지금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지 피부로 느껴진다. 종군위안부 관련 기사로 국적(國敵)으로 몰리는 상황에서, 1980년대 말 위안부 관련 기사를 쓴 기자는 물론, 당시의 편집 책임자 전원이 살해 협박에 시달리고 있다. 《아사히》에 대한 비난이 지나치게 살벌하게 전개되자, 아베 정권의 핵심들이 직접 나서 말릴 정도이다. 한국에 대해 호감을 표현하는 기사를 쓸 수 없는 곳이 현재의 《아사히》다.
라인의 上場에 부정적 영향 미칠 듯
《산케이》 지국장 기소 사건은 이 같은 상황 속에서 터진, 한일(韓日) 간의 또 하나의 악재(惡材)이다. 우익신문 《산케이》에 대한 반감과 언론 미디어로서의 《산케이》를 구별하지 못한 결과가 서울에서 발생했다. 대통령에 대한 권위나 애국심에 호소할지 모르겠지만, 외국에서 보면 언론자유에 역행하는 비(非)민주적 사태가 이번 사건이다.
《아사히》의 라인 관련 기사와 《산케이》 지국장 기소 사건은 한국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라인은 원래 9월 말 도쿄(東京) 증시에 상장할 예정이었다. 증시전문가들은 시가총액이 1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 IT산업의 결정판이자 최고봉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늦추고 있지만, 가까운 시일 내 상장(上場)하게 될 것이다.
《아사히》 기사를 읽은 일본인이라면 일본 최대 SNS 라인에 대한 투자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까? IT강국인 한국과의 교류를 통해 양국 간, 나아가 전(全) 세계의 소셜네트워킹을 강화하자고 역설할 수 있을까?
《아사히》는 라인과 관련한 CNET발 후속기사로 지난 6월에 터진 ‘희한한 소문’ 하나도 소개하고 있다. 한국 국가정보원에 의한 라인 도청설이다. 소설 같은 얘기로 퍼져나간 황당한 소문이지만, 라인의 성장에 결코 도움이 될 수 없는 기사다.
《아사히》는 왜 라인을 건드렸나?
공교롭게도 《아사히》에 라인 기사가 실린 날, 또 다른 라인 관련 기사가 신문 지면에 등장했다. ‘미일(美日) 안보 가이드라인’ 중간보고서이다. 전문(全文)이 《아사히》에 실렸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집권 이후 곧바로 착수했던 집단적 자위권(自衛權)의 명문화(明文化)가 가이드라인의 핵심이다.
종전의 《아사히》 같았으면 미일 가이드라인을 톱기사로 다루면서 이것이 평화헌법에 어긋난다고 신랄하게 비판하는 기사들이 뒤를 이었을 것이다. 10월 10일자 《아사히》 인터넷판 기사 배치를 보면, SNS 라인에 대한 기사가 톱인 반면, 미일 가이드라인 관련 기사는 중간 정도로 처리하고 있다. 반대나 비판 기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산케이》 지국장 기소 사건과 《아사히》의 기사를 보면서 필자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국가전략’이란 단어이다. ‘국가전략’이란 국가 이익을 최대화하고, 국가의 생존과 평화를 보장하고 보장받기 위한 총체적 전략을 말한다. 대외(對外)관계 측면에서 국가전략은 외교전략을 통해 나타난다. 《산케이》 지국장 기소 사건를 외교전략 차원에서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아사히》의 라인과 가이드라인에 대한 기사는 외교전략적 기준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한국에서 터진 《산케이》 지국장 기소 사건이 국가전략적 차원에서 이뤄졌다고 해석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주간지 수준의 신문을 상대로, 한번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생각이겠지만, 이후에 닥칠 글로벌 후폭풍(後爆風)을 고려하지 못한 ‘감정적 분풀이’에 불과하다. 《산케이》 지국장을 기소한다고 해서 과연 한국의 국가적 이익이 보존, 증진될 수 있을까?
《아사히》 기사는 어떨까? 아무리 영향력 있는 신문사라 해도 언론이 직접 국가전략을 짜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러나 언론사는 국가전략·외교전략으로 활용될 수 있는 효과적인 단서를 제공할 수 있는 곳 중 하나이다. 종군위안부 문제를 처음으로 보도한 곳이 《아사히》다. 일본 정부는 한국에 종군위안부라는 외교카드를 허락한 곳이 《아사히》라고 믿고 있다.
SNS 라인 기사는 종군위안부 기사와는 정반대편에 선 기사이다. 일본 정부가 사용할 수도 있는 외교전략 카드용으로 터뜨린 기사이다. 《아사히》가 직면한 시련을 극복하고, 일본에서 확산되고 있는 반한(反韓)감정에 영합하기 위한 ‘반어용(半御用)’ 기사라고 해석할 수 있다.
아베, 《아사히》에 結者解之 요구
전통적으로, 일본이 중시 여기는 산업은 제조업이다. 일본 관료에게 IT 분야는 낯설다. 이 분야에 대한 정부 차원의 특별한 배려는 거의 없다. 그러나 정부를 거스르는 행위는 용납하지 않는다. IT 백만장자로 나타났다가 2006년 정부의 관여로 한순간에 날아간, 1972년생 호리에 다카후미(堀江貴文)는 좋은 케이스이다.
《아사히》의 라인 기사는 일본 정부를 위한 ‘충정 어린’ 보고서에 해당된다. 마음만 먹으면 일본 정부는 《아사히》의 기사를 통해 한국 IT기업인 라인을 건드릴 수 있다. 라인에 대한 부정적인 정보를 슬쩍 흘릴 수도 있다. 이미 시작됐지만, 앞으로 《아사히》의 한국 관련 기사는 그렇게 호의적이지 못할 것이다.
아베는 틈만 나면 종군위안부 관련 오보(誤報)의 책임을 《아사히》 스스로가 해결하라고 말한다. 외국을 돌아다니며 종군위안부 보도가 잘못됐다고 스스로 고백하라는 것이다. 제국주의시대 당시의 논리에 따르면, 책임을 지고 할복(割腹)하라는 의미이다. 7할 이상의 일본인들은 아베의 결자해지(結者解之) 논리에 동의하고 있다. 《아사히》는 살아남기 위해 한층 더 정부에 ‘애교’를 부릴 것이다. 지금까지의 친한(親韓) 논조에서 벗어난 《아사히》의 보도를 기초로, 일본 정부는 새로운 외교 전략과 카드를 마련할 수도 있다.
《아사히》가 중간급 기사로 처리한 미일 가이드라인 문제는 어떨까? 많은 일본인과 언론은 중국에 맞서 일본의 국가 생존을 위한 외교전략의 일환으로 이해하고 있다. 1년 전만 해도 많은 일본 국민이 집단적 자위권에 대해 반신반의(半信半疑)했지만, 2014년 가을 현재 이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는 일본인은 거의 없다. 《아사히》마저도 납작 엎드린 상황이다. ‘《아사히》의 침묵=아베가 강하게 밀어붙이는 외교전략에 대한 승인’이라고 생각하는 일본 국민들이 많다.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도입, 한반도 유사시 일본군(자위대)이 직간접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한국인에게는 유쾌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런 상황을 피하기 위한 외교전략을 개발해 내야만 한다. 선동 잡지 수준에 불과한 《산케이》 지국장 기소가 우향우 하는 일본의 외교전략에 맞설 만한 카드는 될 수 없다.
“한국은 왜 韓日 정상회담 거부하나?”
“외교전략적 차원에서 한국이 한일 정상회담에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필자가 워싱턴의 일본인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이다. 한일 정상회담에 반대할 경우 어떤 차원의 국가 이익이 생길 수 있는가? 정상회담을 하는 것보다 안 할 경우 얻어질 수 있는 결과는 무엇인가? 한일 양국만이 아니라 한미일(韓美日), 나아가 국제사회에서 얻어낼 수 있는 외교안보적 효과는?
지금 바깥에서는 박근혜(朴槿惠) 대통령을 한일 정상회담에 반대하는 인물로 여기고 있다. 한국인이라면 위와 같은 일본인의 질문에 대해 ‘진정성이 담긴 사과를 전제로 한 대화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식의 답을 내놓을 듯하다. 일본인은 되묻는다.
“그것이 외교전략적 차원의 발상인가?”
“국가 이익을 높이고, 국가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고 보장받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한일 정상회담에 반대한다는 말인가?”
필자는 일본인들의 의문에 대한 맞대응 질문을 던진다.
“자, 그렇다면 아베가 한일 정상회담을 원하는 이유는 외교전략적 차원에서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수많은 얘기가 이어진다. 한미일 3각동맹, 북한 유사시 위기대처, 중국의 남중국해 무력시위에 대한 대응, 지구온난화 공동대응, 한일관광 문화 교류…. 한일 정상회담이 일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한국과 동북아(東北亞) 나아가 세계의 공동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 이어진다.
<두꺼운 벽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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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전범재판. 대부분의 전범이 한국전쟁 이후 석방되었다. |
<두꺼운 벽의 방>은 동명(同名)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화한 110분짜리 영화로 B·C급 전범(戰犯)들을 다루고 있다. 이 영화에는 도쿄 스가모(巢鴨)형무소에 수감된 다섯 명의 전범이 등장한다. 이들은 상관의 명령에 의해 누군가를 살해했거나 살해에 동조한 사람들이다. 영어가 가능하다는 이유로 상관을 위해 영국군 포로 통역관으로 일하다가 고문 살해에 연루된 엘리트 학도병, 상관의 명령에 따라 살아 있는 중국인을 상대로 총검 훈련을 한 일등병 등…. ‘허(許)’라는 성을 가진 조선인 수감자는 반쯤 미친 상태에서 “나는 아무 잘못도 없다”는 말만 반복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야마시타(山下)라는 일본 군인이다. 그는 동남아시아를 침략한 남방군(南方軍)에서 복무하던 일등병으로, 상관인 하마다(浜田)의 명령에 따라 현지 주민을 살해한다. 패전(敗戰) 후 야마시타는 이 때문에 체포되어 스가모에 수감된다. 고향 선배이기도 한 하마다는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면서 교묘하게 빠져나간다. 야마시타는 자신에게 부당한 명령을 내리고, 이후 도망가 잘살고 있는 하마다를 죽이기 위해 탈출을 시도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결국 야마시타는 모친상(母親喪)을 당해 잠시 귀향한 틈을 타 하마다에 대한 복수에 나선다. 하마다는 야마시타의 부재를 틈타 그의 집까지 빼앗으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마다의 집을 찾아가 칼을 휘두르려는 순간, 야마시타는 하마다의 겁에 질린 얼굴에서 전쟁터에서 자신이 죽였던 사람의 얼굴을 떠올린다. 야마시타는 하마다에 대한 복수를 포기하고 형무소로 돌아온다.
일본이 항복한 후 연합군은 전쟁 책임자로, A급 전범 120명, B·C급 전범 1000여 명을 구속·수감한다. 이 중 전쟁 책임을 물어 사형선고를 받은 인물은 진주만 공격을 주도한 전(前) 총리 도조 히데키(東條英機)를 비롯한 7명에 불과하다. 잘 알려져 있듯이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대부분의 A급 전범이 석방된다. B·C급 전범자도 전부 석방된다.
고바야시 감독의 영화는 B·C급 전범을 옹호하거나 A급 전범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당시 상황을 사실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B·C급 전범을 만들어낸 책임의 대부분이 A급 전범에게 있다는 것이 영화 <두꺼운 벽의 방>의 내용이다.
전쟁을 일으킨 것은 ‘공기’
《월간조선》에 기고한 글에서 여러 차례 강조했지만, 일본 사회를 움직이는 것은 특유의 ‘집단주의적 공기’다. 전쟁의 책임도 그런 ‘공기’에 있다고 일본인들은 생각한다. 한국이나 중국은 전쟁을 일으킨 몸통, 즉 실체가 있다고 믿고 있다. 일본에 대해 그에 대한 ‘책임’을 계속 묻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인은 “전쟁의 몸통은 애초부터 없고, ‘공기’에 의해 애매하게 끌려들어 간 전쟁이 2차 세계대전이었다”고 주장한다.
전쟁 말기 가미카제(神風) 특공대로 출격한 자살 특공대는 2550대이다. 조종사의 대부분은 일주일 단기훈련을 막 마친, 16세에서 19세까지의 10대들이다. 이들은 출격 하루 전날 밤 어머니에게 마지막 편지를 쓰면서 퉁퉁 부은 눈으로 자살 공격에 나섰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세운 최종 책임자가 누구인지는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일본인들은 아예 가미카제 특공대를 죽음으로 몰고 간 책임자가 누구인지 묻지 않는다. 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공기’였기 때문이다.
영화 <두꺼운 벽의 방>을 본 뒤, 왜 일본 기자가 외교전략이란 키워드와 함께 이 영화를 권했는지 생각해 봤다. 답은 야마시타 일등병의 마지막 대사 한마디에서 찾을 수 있을 듯하다. 하마다를 죽이려다 그냥 나온 그에게 누이동생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이냐”고 묻는다. 이에 대해 야마시타는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라고 답한다.
야마시타는 하마다를 죽인 뒤 어디론가 도망가거나 자살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가 감옥으로 다시 돌아가면서 던지는 마지막 말은 생(生)에 대한 강한 집착을 담고 있다. 영화 속에서 야마시타는 하마다를 용서한다는 얘기를 하지 않는다. 그냥 그를 버려둔 채 집 밖으로 나간다. 상대를 용서한다거나 말거나 논하기에 앞서, 자신의 생존과 앞날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일본 기자가 말하는 ‘국가적 전략’이란 것은 바로 일본인의 DNA에 깊이 박힌, ‘생존제일주의’로 해석될 수 있다. ‘외교전략의 출발점=살아남는 것’이란 식으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외교전략의 출발점=살아남는 것’이라는 점에는 한일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영화 속 하마다 같은 악당이 나타날 경우, 보다 더 정확히 말해 역사나 종군위안부 같은 문제에 당면할 경우, 두 나라 외교전략의 내용이나 방향은 극적으로 달라지게 된다. 히로시마(廣島)와 나가사키(長崎)에 떨어진 원자폭탄으로 한순간에 25만명이 사라진 곳이 일본이다. 하지만 원자폭탄을 맞은 지 한 달 만에 일본열도에 상륙한 미군(美軍)을 상대로 매춘(賣春)에 나선 나라도 일본이다.
일본 여성들은 자기 발로 미군을 상대로 한 매춘에 나섰다. 전쟁터에서 패잔병으로 돌아온 남성이 몰아세운 것이 아니다. 여성 스스로가 자식을 남편에게 맡긴 뒤 몸을 팔러 미군부대로 향했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고도성장은 그 같은 악몽에 대한 보상일지도 모른다. 생존을 위해, 죽음 이외의 그 어떤 일도 감당할 수 있고, 감당해야만 한다는 것이 일본인의 DNA다.
위미노믹스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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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내각에 진입한 아베 내각의 여성 각료들. 왼쪽부터 다카이치 사나에 총무상, 아리무라 하루코 행정개혁상, 마쓰시마 미도리 법무상, 야마타니 에리코 납치문제담당상, 오부치 유코 경제산업상. |
위미노믹스는 위민(Women)과 경제(Economics)를 합한 합성어(合成語)이다. 이 단어가 전 세계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2009년부터이다. BBC와 미국 ABC 방송에서 일한 여(女)기자 두 명이 함께 쓴 책의 타이틀이 《위미노믹스》다. 페미니즘이 아니라 가정과 직장을 오가는 21세기 여성의 가치 기준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일본에서 통용되는 ‘위미노믹스’란 말은 1999년, 투자전문가 가시 마쓰이(キャシ一松井)란 여성이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는 여성의 사회 진출이란 측면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앞의 두 여기자와 차별화된다.
아베가 추진하는 위미노믹스는 가정과 직장을 오가는 여성에 초점을 맞추면서, 여성의 적극적인 사회 생활만이 아니라, 실질적인 차원에서의 여성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아베는 기업 이사진·정치인·해외주재 일본대사의 3할 이상을 여성으로 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가 얘기하는 여성의 사회 참여는 더 이상 여성을 ‘화병 속의 꽃’과 같은 존재로 생각하는 사회 참여가 아니다. 여성 지위의 질적(質的) 향상을 막는, 이른바 ‘유리 천장(Glass Ceiling)’을 깬 환경 속에서의 여성 참여이다. 명실상부(名實相符)한 남녀평등을 지향하는 것이다.
위미노믹스란 말은 아베 등장 후 1년 뒤인 2013년 말부터, 아베가 주도하는 경제정책, 즉 아베노믹스(アベノミクス)를 받쳐주는 개념으로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2013년 11월 29일 아베는 중앙부처에 2015년부터 중앙부처 국가 공무원의 30% 이상을 여성에 할당하라고 지시했다. 보통 일본에서 정책을 구체화할 경우 아무리 빨라도 5년은 걸린다. 불과 2년 만에 이를 실천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일본에서는 이례적이다. 아베 정권에 대한 여성들의 인기가 급등한 것은 물론이다.
일본 내각의 각료는 15명이다. 지난 9월 개각(改閣)을 하면서 아베는 다섯 명의 여성을 각료로 임명했다. 각료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사회 전반에서 여성 인력 활용비율을 3할대로 올리자는 것이 위미노믹스의 핵심이다.
아베 부인의 싱크탱크 연설
위미노믹스는 국내 정치용이기도 하지만, 아베의 외교전략과도 연결된다. 왜일까?
지난 9월 23일, 워싱턴의 전략국제연구센터(CSIS)에서는 일본 역사상 전례(前例)가 없는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아베 총리의 부인 아키에(安倍昭惠) 여사가 ‘위미 노믹스, 왜 일본과 세계에 중요한가(Womenomics, Why it Matters for Japan and the World)’라는 제목으로 연설을 한 것이다. 일본의 퍼스트레이디가 매년 봄에 열리는 워싱턴 벚꽃축제 같은 일본을 소개하는 문화축제에서 환영인사를 한 적은 있었다. 그러나 정책을 논하는 싱크탱크에서 연설한 것은 처음이다. 필자가 아는 한, 아시아권 퍼스트레이디 중에서 워싱턴 싱크탱크에서 연설을 한 사람은 아직 없다.
신기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현장에 들렀다. 약 200여 명이 참석했다. 점심을 겸한 연설이었는데, 필자가 지금까지 CSIS에서 먹은 점심 중 가장 비싼 점심이었다.
아키에 여사는 위미노믹스란 키워드를 통해, 일본 여성의 사회 참여를 양적·질적으로 적극화하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일본 정부는 아시아·아프리카·남미권 여성의 사회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기금과 프로그램을 적극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여성의 사회 참여를 막는 각종 질병예방에 앞장서고, 유아 관련 시설을 확보해 전 세계와 공유하겠다는 ‘글로벌 위미노믹스 프로젝트’도 발표했다.
필자는 아베 아키에의 연설을 들으면서 일본의 발 빠른 외교행보에 탄복했다. 아키에의 위미노믹스 연설은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대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터에 여성 노예를 동원했던 나라가 위미노믹스 문제를 외교전략으로 채택한다? 한국인 입장에서는 황당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같은 생각은 한국·중국을 비롯해 일부 나라에 국한될 뿐이다. 예를 들어, 베트남 전쟁의 참상에 대해 얘기한다고 할 때, 귀를 기울이는 한국인이 과연 얼마나 될까? 사람들은 자신의 일이 아닐 경우, 특별히 이를 기억하지 않는다. 앞으로 일본의 위미노믹스 프로젝트를 접한 외국인들은 ‘일본’과 ‘여성’을 이야기할 때면, 종군위안부가 아니라 위미노믹스를 떠올릴 것이다.
그와 함께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위미노믹스라고 할 때 한국은 그 어떤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위치에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동남아시아나 남미에서 볼 수 있는 후계자형 여성 지도자가 아니다. 민주주의 절차에 따라 당선된 여성 지도자다. 한국의 위미노믹스 시대를 상징하는 살아 있는 증거 그 자체다. 한국이 여성 대통령이 탄생한 것을 계기로 한국 여성의 사회 활동을 적극화하고, 이를 세계로 확산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했으면, 세계의 주목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그러지 못했다.
아베 부부의 위미노믹스 외교
아베는 위미노믹스를 내세우면서 일본 내에서만이 아니라, 저개발국 여성의 사회 활동 적극화라는 글로벌 관점을 추가했다. 일본판 위미노믹스가 워싱턴의 이슈로 등장한 것이다.
사실 아베 아키에가 주창한 위미노믹스는 이전부터 존재하던 것들을 조금 늘리고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 인구감소에 허덕이는 일본이 여성 인력을 적극 활용하겠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일본의 2013년도 대외경제협력기금(ODA)은 117억 달러에 달한다. 전 세계 4위 규모이다. 한때 미국에 비등했지만, 현재는 미국의 315억 달러에 비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 그러나 아시아권에서는 최고의 수준이다. 아시아 2위인 한국은 17억 달러에 불과하다. 위미노믹스의 글로벌화는 원래부터 사용되던 ODA를 여성에 특화한다는 의미이다. 이왕 쓰던 돈을 위미노믹스란 타이틀로 재포장한 것이다.
아베 아키에는 워싱턴 연설 다음날인 9월 24일 뉴욕으로 날아가, 오전에 일미(日美) 위미노믹스 세미나(US-Japan Womenomics Seminar)에 참석, 여성의 미래에 관한 연설을 했다. 같은 날, 남편인 아베는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주도하는 클린턴 글로벌 이니셔티브(www.clintonfoundation.org) 포럼에 참석했다. 아베는 힐러리 전 국무장관과 함께 ‘여성이 빛나는 사회(女性が輝く社会)’라는 주제로 연설했다.
힐러리는 2016년 대통령 선거 출마를 사실상 공식선언한 상태이다. ‘여성’이란 말은 그녀가 선거에 임하면서 내세울 키워드 중 하나이다. 아베는 추락하는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아니라, 차기가 유력한 힐러리에 패를 걸고 있는 형세이다. 일본 정치가들은 기본적으로 오바마, 아베 두 사람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캐릭터라고 여기고 있다. 살아온 과정과 정치이념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대신 힐러리는 아베와 잘 맞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워싱턴의 일본대사관이 이미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힐러리에 대한 일본 정부의 관심은 남다르다. 위미노믹스는 힐러리와 일본과의 연결고리이다. 힐러리 입장에서도 일본과 가까운 모습을 보이는 것은 표가 된다.
아베 아키에는 9월 25일 미셸 오바마도 만났다. 위미노믹스를 중심으로 한 여성 문제가 두 사람의 공통 화제였다. 처음 만난 두 사람이지만, 여성 문제라는 공통 주제 덕분에 금방 친해졌다. 아베 부부는 위미노믹스를 매개로 뉴욕과 워싱턴을 오가며 전방위(全方位) 외교를 한 것이다. 위미노믹스는 이제 2016년 대통령 선거 이후의 미국 정치까지 내다보는, 장기적 차원의 외교카드가 됐다. 한국이 사용했을 경우 한층 더 효과를 볼 수 있었을 외교카드를 일본이 선점(先占)한 것이다.
‘미국을 위한 가미카제’ 자처한 日해군 장성
생존을 위한 일본의 외교전략은 해상자위대의 탄생에 얽힌 외교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일본 해상자위대가 설립된 것은 1954년 7월이다. 1952년 4월 설립된 해상경비대를 발전시킨 조직이 해상자위대이다. 태평양을 누비던 일본제국 해군은 패전과 함께 해체됐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구(舊) 일본 해군 장성들은 미군에 ‘반드시’ 중국이 전쟁에 참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들의 예상대로 중국군은 한국전에 참전했다. 이어 이들은 “소련이 일본열도 북쪽으로 내려올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일본 해군을 복원해 이에 맞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이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해상경비대를 거쳐 해상자위대를 창설한 것이다. 구 일본 해군 출신들이 그 주축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 욱일승천기(旭日昇天旗)도 미군의 양해하에 해상자위대의 상징으로 부활했다.
구 일본 해군 장성들은 미국에 일본 해군 부활을 건의하면서 “유사시 일본이 대신 싸울 경우, 미군의 희생이 줄어들 것”이라는 점을 내세웠다. “미군을 위한 가미카제가 되겠다”고까지 했다. 그들은 소련 등 공산주의 세력과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희생을 치른다고 해도 일본 전역이 공산화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일본이라는 나라의 생존을 위해서라면 태평양전쟁에서 맞서 싸웠고, 자기 나라에 원폭을 투하한 구적(仇敵)의 사냥개가 되는 것도 감수하겠다는 것이 그들의 자세였다.
여기서 우리는 현재 일본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집단적 자위권’의 원류(源流)를 발견할 수 있다. “중국이 남중국해를 차지하고, 주변국을 압박할 경우 아시아권에서의 미국의 영향력이 줄어들 것이다. 유사시 미군이 입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일본군이 함께 싸우겠다”는 논리다. 그 대상이 60년 전 소련에서 지금은 중국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동북아, 태평양에서 중국의 패권(覇權)을 용인하느니, ‘미국의 2중대’ 역할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것이다.
‘생존제일주의’ 국가를 상대하는 법
생존제일주의로 달려드는 나라를 상대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그들과 공존해서 살아가거나, 아예 상대를 부정하는 것이다. 현재의 한국 외교를 보면 그중 어느 쪽을 원하는지도 파악하기 어렵다. 말로는 일본과의 공존을 원한다고 하지만, 현실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생존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달려드는 일본에 대해, 주자학적(朱子學的) 대의명분(大義名分)으로 대응하는 것은 한층 더 시대착오적이다.
일본과 공존하건, 일본을 부정하건, 어느 쪽이든 좋다. 다만 ‘주도면밀한’ 국가전략, 외교전략을 선행(先行)해야 한다. 광복 후 그 어떤 때보다도 세련되고 냉철한 외교를 벌여야 할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