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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스포츠 소식

메이저리그를 점령한 형제와 父子들

글 : 이상희  월간조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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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틀랜타에서 함께 뛰고 있는 형 B. J. 업튼과 동생 저스틴 업튼 형제.
  메이저리그 신인드래프트(Draft)가 지난 6월 초에 있었다. 메이저리그 30개 구단은 매년 6월 초순에 열리는 이 지명제도를 통해 저마다 아마추어 선수를 영입한다.
 
  올 메이저리그 신인드래프트에서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현 LA 다저스의 주전 2루수 디 고든(26)의 친동생 닉 고든(18)이 1라운드 전체 5번으로 미네소타의 지명을 받았다는 것이다. 메이저리그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상위 10명의 지명자들은 평균 1~2년 안에 메이저리그에 진출한다. 프로진출 후 빅리그 데뷔까지 평균 4~5년의 시간이 걸리는데 이들의 실력은 그만큼 출중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머지않아 고든 형제가 빅리그 무대에서 함께 뛰는 모습을 볼 수 있을 전망이다.
 
  또한 지난 시즌을 끝으로 메이저리그 최고 명문구단인 뉴욕 양키스에서 은퇴한 마무리 투수 마리아노 리베라(45)의 아들 리베라 주니어(18)도 올 메이저리그 신인드래프트 29라운드에서 뉴욕 양키스의 지명을 받았다.
 
  파나마 출신인 마리아노 리베라는 자타가 공인하는 당대 최고의 마무리 투수였다. 빅리그에서 무려 19시즌 동안 활약한 그는 메이저리그 역대 최다인 통산 652세이브 평균자책점 2.21의 기록을 남겼다. 현역시절 13번이나 올스타에 선정된 것은 물론 월드시리즈 우승도 5번이나 차지한 그는 조만간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Hall of fame)에 입성할 것이 확실시되는 살아 있는 전설로 통한다. 뉴욕 양키스 구단은 리베라의 업적을 기리고 그를 기억하기 위해 은퇴와 동시의 리베라의 유니폼 번호 42번을 영구결번 처리했을 정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프로에 진출한 리베라 주니어는 지명순위가 말해 주듯 아직은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리베라 주니어는 올 시즌 팀 내에서 가장 많은 70이닝을 소화했을 만큼 어깨가 좋다. 비록 볼넷을 26개나 남발했지만 삼진도 50개나 잡았다. 이 때문에 메이저리그 전문가들은 “키(183cm)에 비해 몸무게(63kg)가 적은 리베라 주니어가 향후 체계적인 관리를 통해 체중을 늘리고 노력한다면 구속 향상은 물론 장차 그의 부친처럼 미래가 기대되는 투수”라고 입을 모은다.
 
 
  0.01%만이 진출할 수 있는 메이저리그
 
올 시즌 LA 다저스의 주전 2루수 자리를 꿰찬 디 고든. 그는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투수였던 톰 고든의 아들이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는 전 세계 야구선수들이 동경하는 ‘꿈의 무대’로 불린다. 하지만 그곳은 아무나 설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통계에 의하면 아마추어 선수가 프로에 진출해 메이저리그 무대에 설 수 있는 확률은 고작 0.01%라고 한다. 낙타가 바늘 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하지만 이 어려운 일을 형제가 동시에 또는 대를 이어 가업으로 삼는 이들도 적지 않다.
 
  우선 앞서 언급한 디 고든의 경우가 그렇다.
 
  디 고든은 형제뿐만 아니라 그의 부친인 톰 고든(47)도 1988년 캔자스시티에서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투수였다. 톰 고든은 이후 보스턴-시카고 컵스-휴스턴-시카고 화이트삭스-뉴욕 양키스-필라델피아를 거쳐 2009년 시즌을 끝으로 애리조나에서 은퇴했다.
 
  메이저리그에서 무려 21년간 현역생활을 한 톰 고든은 메이저리그 통산 138승 126패 158세이브 평균자책점 3.96의 화려한 성적을 남겼다. 그는 선발 투수는 물론 마무리 투수로 전향한 뒤에도 빼어난 성적을 거뒀다.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그 투수였던 박찬호가 17년간 빅리그에서 쌓은 성적은 124승 98패 2세이브 평균자책점 4.36. 톰 고든의 성적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 수 있다.
 
  톰 고든은 또 현역시절 세 번이나 올스타에 선정된 것은 물론 1998년에는 시즌 46세이브를 기록해 이 부문 타이틀도 석권했다. 그는 또 은퇴 직전인 2008년에는 월드시리즈 우승도 차지하며 메이저리그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성공한 아버지의 명성은 자식에게 득이 된다. 하지만 때론 그 후광이 너무 밝아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 톰 고든의 아들 디 고든도 그랬다.
 
  디 고든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아버지의 명성과 그가 남긴 업적이 때론 부담이 됐다”고 털어놨다. 그는 또 “아버지와 나는 야구선수라는 공통분모가 있지만 그는 투수로서, 그리고 나는 야수로서 서로 가는 길이 다르다”며 “가끔 아버지의 명성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그저 내 갈 길을 갈 뿐”이라고 말했다.
 
 
  농구선수이던 고든, 뒤늦게 야구선수로 진로 바꿔
 
  실제로 고든은 아버지가 걷지 않은 길을 가겠다며 학창시절 농구선수로 뛰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결국 야구선수의 길을 택했다. 디 고든은 남보다 늦게 야구를 시작했지만 아버지의 유전자 덕인지 두각을 나타냈고 지난 2008년 메이저리그 신인드래프트 4라운드에서 다저스에 지명돼 프로에 진출했다.
 
  프로에 진출한 후에도 고든은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 2008년 마이너리그에서 타율 0.331을 기록한 그는 2009년에도 0.301의 우수한 타율과 도루 73개를 달성했다. 2010년 더블 A로 승격한 그는 타율 0.277 53도루를 기록하며 마이너리그 올스타전인 퓨처스게임(Future’s game)에 출전했고, 2011년에는 다저스 내 최고 유망주로 선정되는 영예도 안았다. 그리고 프로진출 단 3년 만인 2011년 6월 빅리그에 데뷔하는 기염을 토했다.
 
  메이저리그 데뷔 첫해였던 2011년 디 고든은 총 56경기에 출전해 타율 0.304 24도루를 기록했다. 당시 그가 기록한 도루는 그해 메이저리그 신인 중 최다 기록이었다. 9월에는 내셔널리그 ‘이달의 신인’상도 수상했다. 23살 신인의 성공적인 빅리그 데뷔로 더 이상 아버지 톰 고든의 아들이 아닌 디 고든으로 불리며 당당히 홀로서기를 시작한 것이다.
 
  2012년 다저스의 주전 유격수 자리를 꿰차며 누구보다 희망차게 시즌을 맞은 고든. 하지만 그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그해 7월 4일 신시내티와의 경기에서 3루 도루를 시도하다 엄지손가락 부상을 당한 것. 이때까지 고든은 도루 30개를 성공해 내셔널리그 도루부문 1위를 달리고 있었다. 부상만 없었다면 그해 도루부문 타이틀은 그의 것이 확실했기에 무척이나 안타까운 부상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다저스는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한 고든의 자리를 메우기 위해 트레이드를 통해 현 다저스의 유격수인 헨리 라미레즈(31)를 영입했다. 부상에서 회복한 고든은 그해 9월 팀에 복귀했지만 더 이상 유격수는 그의 자리가 아니었다. 고든은 결국 하루아침에 이따금 대주자로 경기에 나서는 후보로 전락했다.
 
  타고난 재능도 있지만 고든은 누구보다 더 열심히 노력하는 선수이다. 그는 올 초 다저스 스프링캠프에서 기자와 만났을 때도 “예년에는 스프링캠프가 열리기 한 달 전인 1월 말에 캠프에 입소했지만 올해는 조금 늦었다”고 말할 만큼 항상 남보다 많이 준비하고 노력하는 성실한 선수로 유명하다.
 
 
  닉 고든도 메이저리그 진출
 
  고든은 넘쳐 나는 다저스 내야자원 때문에 지난해 시즌 대부분을 마이너리그 트리플 A에서 뛰었고 이따금 메이저리그 선수가 부상을 당해 결원이 생겼을 때 빅리그로 콜업됐다. 당시 기자는 고든에게 “손에 잡혔던 주전 유격수 자리를 놓치고 마이너리그와 빅리그를 오가는 신세로 전락한 현실이 답답하지 않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그는 미소와 함께 다음과 같은 답을 내놓았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언제든 팀이 나를 필요로 할 때 전력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내게 주어진 임무이기 때문에 그것에 충실하면 됩니다. 혹자들은 라미레즈나 다른 내야수들과의 경쟁에 대해서도 말하는데 나는 절대 경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임무와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가 그저 다를 뿐입니다.”
 
  이처럼 깊은 생각과 남다른 노력으로 마이너리그 생활을 견뎌 낸 고든은 올 시즌 다저스의 주전 2루수 자리를 꿰찰 수 있었고, 자신의 장기인 빠른 발을 이용해 시즌 개막과 함께 메이저리그 도루부문 전체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이 부문 2위와의 격차가 10개 이상이어서 이변이 없는 한 올 시즌 도루부문 타이틀은 고든의 것이 될 게 확실해 보인다.
 
  기자는 올 초 디 고든을 통해 그의 부친과 동생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당시 그는 “아버지는 현재 플로리다에 거주하며 동생이 메이저리그에 지명될 수 있도록 곁에서 야구를 가르쳐 주며 돌봐 주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수개월의 시간이 지난 6월, 고든 부자의 노력은 메이저리그 신인드래프트에서 전체 5번에 지명되는 알찬 열매를 맺었다.
 
  메이저리그 신인드래프트가 끝난 뒤 기자와 만난 디 고든은 “동생이 정말 자랑스럽다”며 “그저 나와 아버지를 쫓아다니던 어린아이인 줄 알았는데 어느새 성장해 메이저리그 신인드래프트에서 전체 5번으로 지명됐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동생 닉 고든은 야구를 정말 열심히 할 뿐만 아니라 코칭스태프나 주위 사람들의 충고를 항상 경청한다”며 “뛰어난 수비와 주루 능력은 물론 어깨도 좋고 타격도 잘한다. 언젠가는 빅리그 주전 유격수로 활약하게 될 것”이라며 동생에 대한 애정과 믿음을 드러냈다.
 
  닉 고든은 메이저리그 신인드래프트가 끝난 뒤 가진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버지는 과거 메이저리그 투수였고 형은 현재 빅리그 현역선수이다 보니 사실 부담이 되기는 한다”며 “하지만 나는 그런 부담도 즐기는 편이다. 나 역시 머지않아 아버지와 형이 갔던 길을 걷게 될 것이며, 그들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충분히 잘할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4대째 메이저리거’ 꿈꾸는 헤어스턴 주니어 가족
 
지난 시즌을 끝으로 LA 다저스에서 은퇴한 제리 헤어스턴 주니어는 흑인 최초의 3대째 메이저리거였다.
  디 고든의 경우처럼 대를 이어, 그리고 형제가 모두 메이저리그에서 뛴 경우는 또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헤어스턴 가족이다.
 
  지난 시즌을 끝으로 류현진(27)의 소속팀 LA 다저스에서 은퇴한 제리 헤어스턴 주니어는 흑인 최초로 3대째 메이저리그에서 뛰었다. 그의 아버지 제리 헤어스턴 시니어(63)와 작고한 그의 할아버지 샘 헤어스턴 모두 메이저리거였다. 그의 동생 스콧 헤어스턴(35·워싱턴)은 현역 메이저리그 선수이며 그의 삼촌인 조니 헤어스턴(69) 또한 과거 시카고 컵스에서 뛴 빅리그 선수였다.
 
  헤어스턴 주니어는 지난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어렸을 때 아버지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메이저리거의 꿈을 키우며 야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당시 인터뷰 현장이었던 다저스 라커룸에는 헤어스턴 주니어의 아들 잭슨(7)도 있었는데 그 또한 야구선수가 꿈이라고 한다.
 
  헤어스턴 주니어에게 “장차 당신 아들도 메이저리거가 되길 바라냐”고 묻자 그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물론”이라고 답한 뒤 “하지만 나보다 더 나은 선수가 되었으면 한다”며 웃었다. 당시 아버지 곁에 서 있던 아들 잭슨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자 그는 수줍은 듯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은퇴 후 다저스 구단 내 중계방송 팀에서 일하고 있는 헤어스턴 주니어는 최근에 기자를 만났을 때도 “아들이 나를 닮아서 그런지 갈수록 야구를 더 잘한다”며 은근히 자식 자랑에 열을 올렸다.
 
  지난 4월 달에 만난 헤어스턴 주니어의 동생 스콧 헤어스턴 역시 자신의 아이들에게 야구를 가르치고 있다. 그는 기자와의 만남에서 “가능하면 야구를 오래 하고 싶은데 나도 형처럼 ‘은퇴’할 시기가 다가오는 것 같다”며 아쉬움을 털어놨다.
 
  류현진의 소속팀 LA 다저스에는 유독 대를 이어 메이저리그 선수로 뛰는 이들이 많다. 앞서 언급한 디 고든과 제리 헤어스턴 주니어 외에 스콧 반 슬라이크(28)도 있다.
 
 
  아버지 앤디 반 슬라이크의 명성에 가린 아들 스콧의 잠재력
 
LA 다저스의 외야수 스콧 반 슬라이크(왼쪽). 시애틀의 타격코치 및 1루 주루코치로 활동 중인 앤디 반 슬라이크.
  LA 다저스의 외야수 스콧 반 슬라이크는 2005년 메이저리그 신인드래프트 14라운드에서 다저스에 지명돼 프로에 진출했다. 반 슬라이크는 비록 상위에 지명되진 않았지만 마이너리그에서 올스타에 뽑힌 것은 물론 올스타전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될 만큼 프로에 진출한 뒤 두각을 나타냈다. 그러나 메이저리그 데뷔는 좀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졌다. 기약도 없었다.
 
  반 슬라이크가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것은 프로 진출 뒤 무려 7년이란 시간이 흐른 2012년 5월이었다. 대타로 빅리그에 데뷔한 그는 첫 타석에서 1타점 적시타를 때리며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반 슬라이크가 오랜 기다림의 고통을 이겨 내고 빅리그 무대에 데뷔했지만 정작 조명은 과거 메이저리그 스타였던 그의 부친 앤디 반 슬라이크(54)를 비췄다. 자신의 기사보다 아버지에 대한 기사가 더 많았다.
 
  앤디 반 슬라이크는 1983년 세인트루이스에서 빅리그에 데뷔해 피츠버그와 볼티모어를 거쳐 1995년 시즌을 끝으로 필라델피아에서 은퇴했다. 메이저리그에서 12년간 외야수로 뛴 그는 올스타(3회)와 골드글러브(5회)는 물론 실버슬러거 상도 두 차례나 수상했던 스타플레이어였다. 현재는 시애틀의 타격코치와 1루 주루코치를 겸하고 있다.
 
  기자와 만난 스콧 반 슬라이크는 “화려했던 아버지의 명성이 그저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며 솔직한 심정을 털어놨다. 그는 이어 “빅리그 선수였던 아버지 덕에 어려서부터 메이저리그 클럽하우스를 자유롭게 드나드는 등 특혜(?)를 누린 것은 사실이지만 때론 아버지와 내 자신을 비교하는 언론의 지나친 관심이 부담이 된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마이너리그와 메이저리그를 오가며 남긴 스콧 반 슬라이크의 빅리그 성적은 시즌 162경기 중 고작 53경기에 출전해 타율 0.240 7홈런 19타점이 전부였다. 메이저리그 관계자들에 의하면 “다저스에는 안드레 이디어(32), 야시엘 푸이그(24), 맷 켐프(30), 칼 크로퍼드(33) 등 스타급 외야자원이 넘쳐서 그렇지 만약 스콧 반 슬라이크가 다른 팀에 가면 분명 주전자리를 확보할 수 있는 인재”라고 입을 모은다.
 
 
  추신수 몸값의 기준이었던 제이슨 워스도 3대째 메이저리거
 
추신수 몸값의 기준이 됐던 제이슨 워스는 3대째 메이저리거로 활약하고 있다.
  메이저리그 워싱턴 내셔널스의 외야수 제이슨 워스(35)도 3대째 메이저리거로 유명하다.
 
  추신수(32·텍사스)의 에이전트 스콧 보라스는 지난해 11월 “자유계약선수(FA) 추신수는 제이슨 워스보다 더 받아야 된다”며 배수진을 치고 협상에 임했다. 그리고 이는 결국 추신수의 6년 총액 1억3000만 달러(약 1379억원) 계약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추신수의 FA 계약에 있어 비교 대상이었던 워스는 2010년 12월 현 소속팀 워싱턴과 7년 총액 1억2600만 달러(약 1282억원)에 계약했다. 당시 그의 계약은 메이저리그 역대 총액 기준 14번째에 해당하는 대형 계약이었고, 빅리그 외야수 최초로 몸값 1억 달러를 돌파했다는 상징성도 지니고 있었다.
 
  미국 일리노이 주(州) 출신인 워스는 적어도 야구에 있어서만큼은 우수한 환경에서 자랐다. 그의 친아버지는 대학시절 야구와 미식축구 선수로 활동하며 대학미식축구 1부 리그에서 각종 리시빙(Receiving) 기록을 모두 갈아치웠을 만큼 실력이 뛰어났다. 1978년 야구선수로 세인트루이스에 입단했지만 부상 때문에 메이저리그 진출은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워스의 친할아버지 더키 스코필드와 삼촌 딕 스코필드는 과거 메이저리그 내야수였고 그의 양아버지 데니스 워스 또한 뉴욕 양키스에서 4시즌을 뛴 메이저리거였다. 특히 워스를 비롯해 그의 삼촌과 할아버지 모두 LA 다저스에서 뛴 경험이 있고 워스와 그의 할아버지는 월드시리즈 우승 경력도 있다.
 
  지난 5월 미국 현지에서 기자와 인터뷰한 워스는 “내가 야구를 처음 시작한 게 아마 3~4세였던 것 같다”며 “당시 삼촌이 메이저리그 선수였고 할아버지 또한 과거 빅리그 선수여서 아주 자연스럽게, 그리고 남보다 좋은 환경에서 야구를 접하고 시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성장기에 나 또한 다른 아이들처럼 농구도 했고, 특히 지금은 은퇴한 농구의 황제 마이클 조던(51)을 무척 좋아했다. 하지만 나의 태생이나 유전적인 배경이 아무래도 야구 쪽인 것 같아서 결국 야구를 선택했다”며 미소를 지었다.
 
 
  메이저리그 최고의 유망주였던 업튼 형제
 
삼형제 모두 메이저리그 포수로 유명한 세인트루이스의 포수 야디어 몰리나.
  메이저리그 역사상 형제 모두 빅리그에 데뷔한 경우는 350여 명이고 이 중 100쌍 정도가 같은 팀에서 동료로 뛰었다.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형제가 같은 팀에서 뛰는 경우는 저스틴 업튼(27·애틀랜타)과 B. J. 업튼(30·애틀랜타)이 유일하다.
 
  저스틴 업튼은 지난 2005년 메이저리그 신인드래프트에서 전체 1번으로 애리조나에 지명됐을 만큼 최고의 유망주였다. 현재 같은 팀 동료인 그의 형 B. J. 업튼도 2002년 전체 2번으로 프로에 입문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형제가 전체 1번과 2번으로 지명된 것은 이들이 유일하다.
 
  2006년 싱글 A에서 출발한 업튼은 4월 한 달간 타율 0.341 5홈런을 기록한 후 더블 A로 승격됐다. 당시 전문가들은 업튼을 가리켜 켄 그리피 주니어(은퇴)를 능가할 수 있는 최고의 유망주로 손꼽았다. 그 후 업튼은 2007년 8월 만 19세의 나이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당시 그는 시즌 말미에 빅리그로 콜업된 탓에 타율 0.221 2홈런 11타점의 평범한 성적을 남겼다. 하지만 그해 포스트시즌에서 타율 0.357, 장타율 0.571로 맹활약하며 팀이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NLCS)에 진출하는 데 큰 힘을 보탰다.
 
  5툴 플레이어로 평가 받는 업튼은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두 자리 수 홈런을 기록하고 있다. 2009년에는 다저스를 상대로 자신의 메이저리그 첫 만루홈런을 기록했으며 2011년에는 커리어 최다인 31개의 홈런을 쏘아 올렸다. 도루 역시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두 자리 수 이상을 기록 중이다.
 
  업튼은 2012년 8월 필라델피아를 상대로 자신의 메이저리그 통산 100호 홈런을 달성했고 그로부터 30분 뒤 그의 형 B. J. 또한 개인 통산 100호 홈런을 쏘아 올리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트레이드를 통해 지난해부터 같은 팀에서 뛰게 된 업튼 형제는 마치 형제애를 과시하듯 작년 4월 24일 콜로라도를 상대로 백투백(Back to back) 홈런을 쏘아 올리는 진귀한 장면을 연출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형제가 연속으로 홈런을 기록한 것은 1938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동생 저스틴 업튼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형과 같은 팀에서 뛰게 돼 기쁘다”며 “특히 부모님이 더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 형제가 다른 팀에서 뛸 때는 부모님이 우리의 경기를 보러 야구장에 오거나 혹은 TV를 통해 보더라도 항상 두 곳을 신경 써야 했는데 이제는 편하게 한 곳만 챙기면 된다”고 덧붙였다.
 
  메이저리그에는 3형제 모두 선수로 뛴 경우도 10쌍이나 된다. 대표적인 경우가 야디어 몰리나(32·세인트루이스)와 그의 작은형 호세 몰리나(39·탬파베이), 그리고 큰형 벤지 몰리나(40·텍사스)가 있다. 큰형 벤지 몰리나는 2010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뒤 지금은 추신수의 소속팀 텍사스의 1루 주루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눈에 띄는 몰리나와 시거 삼형제
 
저스틴 시거는 최지만과 함께 시애틀 구단의 유망주로 손꼽힌다.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몰리나 삼형제는 모두 포수라는 공통점 외에도 팀의 주축선수로 활동하며 빼어난 성적을 올렸다. 이들은 또 메이저리그 역사상 유일하게 3형제 모두 월드시리즈에 진출해 우승을 차지한 경력이 있다. 특히 이들 중 막내인 야디어는 2004년 빅리그에 데뷔한 뒤 올스타(5번)는 물론 골드글러브(6번)와 실버슬러거상 등 각종 개인수상 기록도 화려한 당대 최고의 포수라는 평가를 받는다.
 
  몰리나 형제가 지는 별이라면 삼형제 모두 조만간 메이저리그에서 뛰며 새로운 기록 창출을 준비하는 형제도 있다. 시거 형제가 그 주인공이다.
 
  류현진의 절친으로 국내에도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다저스의 3루수 후안 유리베(35)는 지난 겨울 다저스와 장기 재계약을 원했지만 2년 계약에 만족해야 했다. 이유는 다저스 산하 마이너리그에 코리 시거(20)라는 특급 유망주가 있기 때문이었다.
 
  시거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출신으로 2012년 메이저리그 신인드래프트에서 다저스의 1차 지명(전체 18번)을 받아 프로에 진출했다. 당시 그의 계약금은 무려 235만 달러(한화 약 25억원).
 
  뛰어난 신체조건(192cm 98kg)을 지닌 시거는 고3 시절 유격수로 뛰며 타율 0.519 10홈런 37타점 13도루 장타율 1.062를 기록할 만큼 두각을 나타냈다. 우투좌타인 시거는 기록이 말해 주듯 파워와 스피드는 물론 뛰어난 수비력까지 겸비한 흔치 않은 내야수이다.
 
  시거는 다저스 입단 첫해에 마이너리그 루키리그에서 타율 0.309 8홈런 33타점 8도루를 기록하며 올스타에 선정됐다. 싱글 A에서 출발한 작년에는 타율 0.309 12홈런 57타점 9도루를 기록한 뒤 시즌 막바지에는 싱글 A 하이로 승격했다.
 
  시거의 작년 통산성적은 타율 0.269 출루율 0.351 16홈런 72타점 10도루. 그의 마이너리그 두 시즌 수비율은 0.938로 정상급이다. 이 때문에 미국 언론은 최근 시거를 다저스 구단 내 최고 유망주 1위에 선정하기도 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시거의 3형제 모두 프로야구 선수로 조만간 메이저리그 진출을 노리고 있다. 시거의 큰형 카일 시거(27)는 이미 빅리그에 진출해 시애틀의 주전 유격수 자리를 꿰찼고 작은형 저스틴 시거(22)는 시애틀 산하 마이너리그 싱글 A팀 1루수로 뛰고 있다.
 
  시거는 지난해 마이너리그 최고 유망주들만 참가할 수 있다는 애리조나 가을리그(AFL)에서 뛰었다. 2012년에 프로에 입단한 시거가 벌써 AFL에 참가했다는 것은 그만큼 다저스 구단의 기대와 관리가 특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버지의 恨풀어”
 
시거 삼형제 중 맏형인 카일은 메이저리그 시애틀의 주전 3루수로 활약하고 있다(왼쪽). LA 다저스의 최고 유망주로 선정된 코리 시거는 2015년에 메이저리그에 데뷔할 것으로 보인다.
  작년 가을 AFL 경기장에서 기자와 만난 코리 시거에게 “3형제 모두 프로에 진출해 두각을 나타내고 있어 부모님이 흡족해할 것 같다”고 하자 그는 “특히 아버지가 그렇다”며 “아버지도 야구선수였는데 프로에 진출하지 못하고 대학 때까지만 야구를 했다. 어찌 보면 아버지의 한을 우리 삼형제가 풀어 준 셈”이라며 웃었다.
 
  그는 이어 “아버지 때문에 야구를 시작했고 우리 삼형제 모두 프로야구 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가르침과 배려 때문”이라고 말했다.
 
  당시 경기장에는 시거의 부모가 아들을 보기 위해 찾아왔는데 시거의 부친에게 “삼형제 모두 프로에 진출한 것을 보면 당신의 몸에는 특별한 야구 DNA가 있는 게 아닌가”라고 묻자 그는 미소와 함께 “아이들이 열심히 한 결과”라며 뿌듯해했다.
 
  미국 현지언론은 코리 시거의 메이저리그 데뷔를 2015년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에 대해 당사자인 시거는 “물론 빠른 시일 내에 메이저리그에 데뷔할 수 있다면 영광스럽고 좋은 일이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항상 현재에 최선을 다하며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하다 보면 분명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 시즌 다저스 산하 마이너리그 싱글 A 하이에서 뛰고 있는 시거의 성적은 타율 0.348 12홈런 49타점. 부상만 당하지 않으면 조만간 상위리그인 더블 A로의 승격이 확실해 보인다.
 
  코리 시거는 오프시즌은 물론이고 시즌 중에도 형들과 거의 매일 전화로 야구 이야기를 나눈다고 한다. 시거는 “특히 큰형과 전화로 야구와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한다”며 “큰형은 메이저리그 선수이기 때문에 작은형과 내가 지금 겪는 과정을 이미 다 경험했다. 그래서 시즌 중에도 매일 밤 큰형에게 전화해 조언을 구하는 편이다. 형제가 모두 야구선수이다 보니 서로 의지하면서 나누는 대화가 선수생활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올 초 시애틀 스프링캠프에서 만난 코리 시거의 큰형 카일 시거는 “동생들이 자랑스럽고 대견하다”는 말로 운을 뗀 뒤 “하지만 내가 그 길(마이너리그)을 걸어 봤기에 얼마나 힘든 과정인지 잘 안다”며 “동생들이 열심히 하고 있으니 아무쪼록 두 녀석 모두 하루빨리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수 있기 바란다”며 동생들에 대한 기대와 애정을 드러냈다.
 
  진입이 어려워 ‘꿈의 무대’로 불리는 메이저리그에는 이처럼 형제는 물론 대를 이어 선수생활을 한 이들도 적지 않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많은 형제가 선수로 뛴 경우는 델라한티(Delahanty) 오형제가 유일하다. 이들(에드, 짐, 조, 톰, 프랭크 델라한티) 오형제는 1900년대 초반 빅리그를 호령하던 스타들로 지금은 모두 작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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