嚴相益 변호사, 유다민족의 출애급 루트를 가다

이스라엘 민족이 ‘만나’를 먹은 오봇광야에서 ‘컵라면’으로 저녁을 때우다

  • 글 : 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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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요타 지프 타고 미디안광야→아르바광야→오봇광야→아르논계곡→느보산→유대광야 순례
⊙ 시리아 난민촌 보며 3500년 전 이스라엘 민족의 광야생활 떠올려
⊙ 이스라엘軍, 시나이반도 점령 때 학자 동원해 출애급 흔적 조사
⊙ 모세가 120세로 잠든 해발 835m의 느보산에서 死海 바라보며 명상
⊙ 유대광야로 변한 요단강에서 예수가 세례받은 장소 찾아… 예수가 기도했다는 석회동굴도
    보존상태 양호

嚴相益
⊙ 59세. 고려대 법대 졸업.
⊙ 군법무관시험·사법고시 합격. 大盜 조세형, 탈주범 신창원, 탈북난민 한영숙씨 사건 등 변호.
⊙ 수필집: 《변호사와 연탄 구루마》 《욕심그릇이 작을수록 자유롭다》 《하나님 엄변호삽니다》 등.
    소설: 《여대생 살해사건》 《검은 허수아비》 《환상살인》 등.
베두인들과 함께 낙타를 타고 홍해를 향해 미디안광야를 횡단했다.
시리아 난민촌
 
  지난 6월 17일, 보름간의 일정으로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의 인도로 애급(이집트)을 탈출해 가나안땅에 들어가기까지의 여정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출애급(出埃及) 루트의 출발을 위해 요르단의 암만공항에 내렸다. 시리아 국경에서 14km, 암만공항에서 차로 1시간 거리에는 시리아 난민촌이 있었다.
 
  사막의 뜨거운 태양 아래 수천 개의 텐트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고, 바닥 여기저기에 오물이 흐르고 시리아에서 피란 온 아이들이 그 위에서 뒹굴고 있었다.
 
  나는 시리아 난민들이 몰려 있는 난민촌 사이를 걸었다. 양철집 그늘에서 눈에 붉은 살기가 도는 시리아인들이 나를 보면서 “차이나”라고 욕을 해댔다. 돌이라도 던질 정도의 증오였다.
 
  중국이 국제무대에서 시리아 반군에 대해 반대 입장을 표명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난민촌 한가운데 태극기를 붙인 컨테이너들이 보였다. 극동방송에서 제공한 것들이었다. 내가 한국인이라고 밝히자, 아랍 전통복장의 남자들이 내 주위로 몰려들었다.
 
  “한국에서 컨테이너 1000개를 대줬는데 우리에게 일부만 왔어요. 조사해 보세요. 썩은 물을 주고 빵을 한 사람에게 3개씩밖에 안 줘요. 담요도 중간에서 빼돌려요.”
 
  난민들은 내게 일러바치기 바빴다. 아이들이 몰려와 구멍 난 바지를 가리키면서 옷을 달라는 손짓을 했다. 난민촌에서 선교 루트를 뚫은 이철수 목사가 내게 말했다.
 
  “구호품을 갖고 와서 대부분 사진만 찍고 가지 난민들에게 직접 전달하지는 않죠. 그러니 중간에서 배달사고가 나는 겁니다. 구호물품들을 전달하는 일을 현지 선교사들에게 맡겨줬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횡령도 없어지고 복음을 전하는 좋은 기회가 될 텐데 말이죠.”
 
  요르단 암만 시내의 암시장에서 많은 구호품이 빼돌려져 팔리고 있었다. 사실 난민캠프를 보기 위해서 온 건 아니었다. 성경을 읽던 어느 날 갑자기 ‘광야(曠野)’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예수는 유대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났다.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을 만난 곳도 광야였다. 그들은 미디안광야를 맴돌며 38년 동안 방황하다 아르바광야와 모압광야를 거쳐 마침내 가나안이 보이는 유대광야에 도착했었다.
 
  광야와 하나님은 불가사의한 관계가 있는 것 같았다. 텐트가 즐비한 난민촌의 모습은 3500년 전쯤 광야에 있던 이스라엘 민족의 모습과 유사할 것 같았다. 우연히 광야의 구도자(求道者) 이철수 목사를 알게 됐다. 그는 16년째 광야를 돌아다니며 기도하는 구도자였다. 그와 미디안광야로 들어갔다.
 

 
  미디안광야
 
시리아 난민촌의 아이들과 난민촌 전경.
  붉은 모래바다 사이에 거대한 바위산들이 군데군데 섬처럼 들어차 있었다. 홍해(紅海) 쪽으로 험한 바위산 능선들이 물결치고 있었다. 미디안광야였다. 석양 속에 낙타를 타고 가는 베두인들의 모습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나도 낙타를 타고 광야에 들어섰다. 낯선 이방인을 태운 낙타는 제멋대로였다. 가다가 바닥의 작은 풀이라도 보이면 그걸 뜯고 나뭇가지를 만나면 잎을 먹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뛸 때면 털썩거리는 낙타 등에 엉덩이가 부딪혀 뭉개지는 것 같았다.
 
  광야 한가운데 우뚝 솟은 바위절벽 아래 베두인들의 텐트가 있었다. 거기서 며칠 묵었다. 해가 뜰 무렵이면 짙은 산 그림자를 따라가며 성경 시편(詩篇)을 읽었다. 광야 한가운데 주저앉아 묵상에 잠기기도 했다. 한낮의 태양이 이글거릴 때면 협곡 그늘에 들어가 이 목사와 성경을 펴놓고 논쟁을 벌였다.
 
  붉은 모래바다 건너편으로 서서히 해가 질 무렵 광야는 아름다웠다. 석양에 비낀 바위절벽이 붉은색에서 보라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광야에 어둠이 내리면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언덕 위로 올라가 별빛 아래서 이 목사와 얘기를 했다. 내가 그에게 물었다.
 
  “어떻게 광야에 나가게 됐죠?”
 
여행기간 중 발이 되어준 도요타 타코마 지프. 이 자동차로 미디안광야로부터 유대광야까지 이스라엘 민족이 걸었던 출애급 루트를 훑어갔다.
  그는 성경과 침통을 들고 20여 년 세계 곳곳을 흘렀다.
 
  “무당도 강신무(降神巫·신이 내려서 된 무당)가 있고 학습무(學習巫·점서 따위를 공부해 된 무당)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목사도 성령이 내린 사람이 있고, 신학을 공부해서 된 사람도 있습니다. 제 경우는 갑자기 성령이 내려 목사가 됐죠. 나도 모르게 뭔가에 씌어서 이렇게 광야를 떠돌아다니게 됐습니다.”
 
  “성령이 어떻게 다가왔나요?”
 
  기독교에서의 신비 ‘성령(聖靈)’. 어떤 이에게는 폭풍처럼 강하게 또 다른 사람에게는 미풍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사람마다 체험이 다 다르다.
 
  “불같이 내게 온 성령은 할 일까지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존재였어요. 처음에는 성령이 ‘공산권으로 들어가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더라고요. 1980년대 말 모스크바로 갔죠. 모스크바역 앞에 노숙자들이 즐비했어요. 그 자리에서 먹고 싸고 짐승 같았죠. 경찰들이 몽둥이로 잔인하게 팼어요. 사람으로 보지 않았어요.
 
  아침이면 빵통을 어깨에 메고 모스크바역 광장에 나가 빵을 나눠줬어요. 그게 러시아 사람들의 자존심을 다치게 했나 봐요. 제 빵통에 가래침을 뱉고 가는 시민들도 있었어요. 제게 성령의 능력은 대단한 것 같아요. 보통 사람이면 그 노숙자들한테서 나는 냄새를 견디지 못합니다. 그런데 나는 노숙자들의 동상에 걸려 시커멓게 불어터진 발을 가슴에 안고 주님께 기도했죠. 성령이 내 코를 닫아주셔서 아무 냄새도 느끼지 못했어요. 그런 행동은 성령이 시키지 않으면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못 할 겁니다. 고등어 한 마리를 받기 위해 4시간 줄을 서기도 했는데, 바로 내 앞에서 배급이 중단된 적도 있죠.
 
  당시 모스크바대학에 유학 와 있던 북한 출신 엘리트 대학생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가 예수를 믿고 정치적 망명을 해서 지금 한국에서 전도사 노릇을 합니다. 탈북자가 거의 없던 그 당시만 해도 국내외적으로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큰 사건이었죠. 옐친 대통령이 직접 망명을 허락하는 사인을 해줬죠.”
 
  그는 이미 유서를 써놓았다고 했다. 계속된 그의 말이다.
 
  “성령이 그다음에는 팔레스타인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더군요. 그곳으로 갔죠. 데모가 심해져 폭동으로 번지니까 어느 날 이스라엘군 탱크 150대가 거리로 들어와 점령하더라고요. 그들이 먼저 ‘외국인은 모두 나가라’고 했어요. 외신을 타고 그들의 만행이 알려질까 봐 그런 거죠. 저는 그대로 있었어요.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은 무조건 사살했습니다.
 
모세가 출애급할 때 가장 오랫동안 머물렀던 곳으로 추정되는 미디안광야. 일부 학자들은 시나이 반도 남쪽까지 갔다고 주장하지만 그곳에는 식수가 없다. 이스라엘은 시나이 반도를 점령했을 때 반도 남쪽에서 출애급 흔적을 조사했으나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아파치 헬기가 뜨고 팔레스타인 하마스 당원이 있다고 생각하는 빌딩은 미사일을 쏴서 건물 전체를 폭삭 내려앉게 했습니다. 창문을 깨고 총알이 날아와 벽에 박힐 때, ‘나는 여기서 이제 순교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몇천 년 전 그들의 왕국이 있었다는 걸 근거로 다시 땅을 빼앗아 원주민인 팔레스타인인들을 핍박하는 게 옳은 일인가 되묻고 싶더라고요. 예수의 고향인 나사렛에 가서도 복음을 전했어요. 왜 ‘나사렛 예수’라고 불렀는지 그 동네 살아보니까 비로소 알겠더라고요. 세상에서 가장 질 나쁜 사람들만 사는 동네가 나사렛 같았어요. 이스라엘 사람들도 나사렛놈하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죠. 성경을 보면 ‘나사렛에서 무슨 메시아가 태어나겠는가’라는 말이 있죠. 거기 살면서 비로소 그 의미를 알았습니다.”
 
  보랏빛 감도는 남빛 하늘 가득히 별들이 무리 지어 떠올랐다. 오랜만에 보는 투명한 보석 같은 별들이다. 북두칠성이 보였다. 거대한 암벽의 테두리가 밝아지더니 달이 그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달빛이 생생히 쏟아지면서 붉은 모래사막이 은색의 달빛바다로 변했다. 이 목사가 달빛에 젖은 광야에 시선을 보내면서 말을 계속했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 미디안광야에서 오랫동안 묵었다고 생각합니다. 모세는 마흔 살 때 미디안광야로 도망을 와서 40년을 양치기를 하면서 살았습니다. 애급에서 가나안으로 가는 대상로(隊商路)가 어디에 있는지 또 물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가 이스라엘 민족을 데리고 오래 묵은 곳은 이 미디안광야가 틀림없어요. 일부 학자들은 이스라엘 민족이 시나이 반도 남쪽까지 갔다고 말하죠. 저는 그 견해에 반대합니다.
 
  그곳에는 물이 없어요. 광야에서는 샘이 없으면 사람이나 동물이나 존재하기 힘들어요. 이스라엘군이 시나이 반도를 점령했을 때 몇 년 동안 학자들을 동원해 철저히 시나이 반도 남쪽에서 출애급의 흔적을 조사한 적이 있어요. 그러고 나서 시나이 반도를 아무 말 없이 되돌려줬죠.
 
  결국 아무것도 없었다는 소리죠. 이 미디안광야가 이스라엘 민족이 오랫동안 묵었던 장소가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십계명을 받은 시나이산도 시나이 반도의 남쪽이 아니라 미디안광야와 홍해 사이에 있는 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서 고고학자들이 그런 의견을 논문으로 많이 내고 있습니다.”
 
 
  逃避城
 
미디안광야 한가운데 우뚝 솟은 바위절벽 아래에 있는 베두인 텐트에서 휴식을 취했다.
  미디안광야의 세일 산지에서 38년간 맴돌던 이스라엘 민족이 북상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호렙산에서 세일산을 지나 가데스바네아까지 도보로 열하룻길을 갔다. 거기서 다시 세넷 시내를 건너 모압으로 갔다.
 
  나는 기름을 가득 채운 도요타 타코마 지프를 타고 그들의 뒤를 따랐다. 미디안광야에서 홍해 연안의 요르단 아카바 항구로 나와 아르바광야로 들어섰다. 이스라엘 민족이 걸어갔던 사막도로가 외줄기로 뻗어 있었다. 드문드문 싯딤나무(아카시아과의 나무·언약궤의 재료 나무)가 단아한 자태로 광야에 홀로 서 있었다. 구약에서 하나님이 경유하라고 구체적으로 지시한 산비탈의 도벨 마을이 아직도 존재했다.
 
  붉은 바위산만 있는 에돔의 험한 산악지대를 통과할 때였다. 들개 떼가 내가 탄 차를 향해 미친 듯 짖어대며 덤벼들기도 했다. 베두인들의 정착촌을 지날 때 도로를 플라스틱 의자로 점령한 채 돌려가며 물담배(중동 지역에서 피우는 담배의 일종으로 담배 연기를 물을 통과시킨 후에 흡입한다. ‘후카’, ‘시샤’ 혹은 ‘나르길레’ 등으로 불린다)를 피우는 남자들도 보았다.
 
  점심 무렵 아랍인 마을의 촌장(村長) 집에 들렀다. 상자곽 같은 2층 바라크집(판잣집)이었다. 늙은 촌장 부인이 ‘다왈리’와 밀빵을 내왔다. 양고기를 포도 잎으로 싸서 삶은 것과 작은 호박 속을 파고 그 자리에 다른 걸 넣은 음식이었다.
 
  낯선 동양인이 신기했는지 동네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손님대접을 한다고 음식을 강권하기도 했다.
 
  다시 길을 떠났다. 사막도로를 한참이나 달린 차는 오봇(Oboth)광야 깊숙이 들어섰다. 성경에 기록된 이스라엘 민족의 숙영지(宿營地) 중 하나였다. 차를 모래언덕 아래 세우고 짐칸에서 주전자를 가져다 나뭇가지를 태워 물을 끓였다. 이스라엘 민족이 만나(모세의 지도 아래, 애급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 이르러 굶주릴 때 하나님이 내려준 신비로운 양식)를 먹은 곳에서 우리는 컵라면으로 저녁을 때웠다.
 
  해가 진 오봇광야에는 신비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 3500년 전 와글대던 이스라엘 민족의 소리들이 공기 중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다음 날 오후쯤 군데군데 누런 회오리바람이 이는 모압광야로 들어섰다. 사람도 짐승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높고 낮은 구릉조차 보이지 않는 평평한 광야였다. 갑자기 광야 저쪽의 뿌연 모래안개 속에 거대한 성(城)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신기루 같았다. 핸들을 잡은 이 목사가 말했다.
 
  “구약을 보면 3500년 전쯤 이스라엘 민족은 모압광야의 베셀이라는 곳에 ‘도피성(逃避城)’을 만들었어요. 죄를 지은 사람이 그 성에 도피해 오면 살려주도록 되어 있었죠. 바로 그 성입니다.”
 
  성경에서 도피성을 읽을 때는 전설같이만 느껴졌었다. 신비했다. 우리는 차에서 내려 도피성으로 갔다. “살려달라”고 절규하며 도망치던 사람의 마음을 느끼려고 애써 보았다. 돌로 된 텅 빈 성문 안으로 들어갔다. 구약을 보면 성문 바로 위에 있는 마을회관에서 장로들이 도망 온 사람을 심판했다. 무너진 돌무더기 틈에 달라붙은 도마뱀이 호기심 어린 눈길로 나를 쳐다보았다. 이 목사는 돌무더기에 앉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도피성은 3500년 전의 고성(古城)이 아니라 바로 예수이고, 오늘 우리가 마음을 기댈 상징적인 존재인 걸 깨달아야 합니다. 저는 16년간 광야기도를 해오면서 신학이론을 멀리하고 직접 현장에서 성경을 깨닫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소원했죠.
 
  한국의 목회자들도 한 번쯤은 이 광야로 나와서 직접 보고 기도하고 깨달아야 합니다. 광야에 계시는 살아 있는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라는 단어는 같아도 사람들이 말하는 하나님은 모두 달라요. ‘돈의 신’ 맘몬(Mammon)을 하나님이라고 하기도 하고, 똥파리를 의미하는 바알(고대 시리아 팔레스타인의 男神)을 하나님이라고 착각하기도 하죠. 하나님은 금이나 은으로 만든 십자가에 있지 않고 바로 이 광야에 계신다고 저는 믿습니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도피성. 3500년 전경 이스라엘 민족이 모압광야의 베셀이라는 곳에 건설했다. 전설같이 느껴지던 도피성을 현장에서 접하니 꿈만 같았다.
  우리는 도피성을 나와 다시 길을 갔다. 갑자기 누런 회오리바람이 귀신이라도 붙은 듯 우리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차가 짙고 뿌연 모래먼지 속으로 들어갔다.
 
  “바람 반대 방향으로 도망갑시다.”
 
  이 목사는 핸들을 이리저리 돌려 회오리바람을 따돌리려고 애썼다. 마치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한 장면 속으로 들어간 것 같았다. 얼마 후 차는 까마득한 낭떠러지 옆을 나사같이 돌며 아슬아슬하게 내려갔다. 이스라엘 민족이 마지막으로 통과했던 아르논 계곡(Arnon Valley)이었다. 요르단의 그랜드캐니언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돌들과 메마른 흙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마지막으로 묵었던 이 광야 근처에 성이 있었죠. 내가 그 성을 찾았습니다.”
 
  이 목사가 말했다. 아래쪽으로 오래된 성터가 보였다. 계곡 바닥으로 내려왔다. 메마른 땅 위에 나무 한 그루가 보였다. 새끼손톱만 한 작은 잎을 가진 가시 달린 나무였다. 그 나무 그늘이 유일한 쉴 곳이었다. 베두인들은 그 나무를 허파나무라고 불렀다. 또다시 밤이 내리고 있었다.
 
  계곡 아래는 제법 넓은 공간이 있었다. 이스라엘 민족이 숙영했던 곳이고, 또 초기 기독교 박해 때 많은 신도가 숨어 살던 곳이라고 했다. 그 근처의 아랍인촌의 이름이 ‘물고기마을’인 건 박해 초기 피해 살던 그리스도인들 때문이라고 했다. 이 목사와 나는 광야에 텐트를 쳤다.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이 목사가 내게 말했다.
 
  “성령이 명령한 저의 마지막 소명은 아까 제가 알려드린 성에 수도원을 세우고 이스라엘에 교회를 세우는 거였죠. 그 소원을 이루게 해달라고 간절히 금식기도를 했어요. 한국의 한 목사님이 아르논 계곡의 성경에 나오는 성을 살 돈을 보내주셨죠. 그리고 엉뚱하게도 몇 명 안 되는 신도를 가진 안산의 보리떡교회와 또 미국의 한인교회에서 선교헌금을 보내줘서 갈릴리 호숫가에 교회를 개척했죠. 현지인을 신도로 하는 한국인 교회가 세워진 겁니다.”
 
  “대단하네요. 선택된 이스라엘 민족의 본고장에 한국인 목사가 그들을 이끄는 교회를 만든 게 말이죠.”
 
  “그렇지도 않습니다. 바로 방해가 시작됐어요. 이스라엘 당국에서 저의 입국을 거부했어요. 목사가 못 가고 교회 건물만 남게 되니까 갑자기 제가 사기꾼이 되어버렸어요. 그게 지금 저의 입장이죠. 제가 선교사인 걸 무슬림 당국에 고발해서 축출을 하겠다는 협박도 들어오고 있습니다.”
 
  광야의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나는 광야의 바닥에 누워 잠을 청했다.
 
 
  느보산의 밤
 
에돔 지역의 베두인 정착촌에서 촌장 부부의 환대를 받았다. 촌장 부인은 우리에게 양고기로 만든 다왈리와 밀빵을 내왔다.
  가나안이 보이는 마지막 지점에 도착했다. 크고 작은 돌무더기와 바짝 메마른 흙무더기로 덮인 느보산(해발 835m) 능선으로 지글지글 끓던 태양이 서서히 내려앉고 있었다. 메마른 흙먼지가 벧브올 골짜기부터 안개같이 피어올라 태양의 진홍빛을 반투명의 부드러운 색조로 만들었다. 내가 탄 지프의 타이어 아래서 빠지직거리며 작은 돌들이 튀어나갔다. 이윽고 우리는 느보산 정상 부근의 기도 장소에 도착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애급을 탈출한 지 40년 만에 당도해 가나안 땅을 바라보며 120세의 나이로 삶을 마감한 그곳이다.
 
  “저 봉우리에서 모세가 기도했어요. 바로 그 아래인 여기서 제가 30일 금식을 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들었습니다. 여기서 오늘 밤 기도합시다.”
 
  드디어 구약에 나오는 이스라엘 민족의 마지막 숙영지까지 온 것이다. 모세가 어딘가 묻혀 있는 골짜기로부터 어둠이 밀려 올라오고 있었다.
 
  “저는 저쪽에서 기도하겠습니다. 엄 변호사는 조용한 자리를 잡아 기도하시죠. 밤이면 더러 여우도 나옵니다.”
 
  별들이 떠오르고 달빛을 받은 사해(死海)가 거울같이 번쩍였다. 느보산의 밤 속에 나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새까만 물 같은 존재가 소리도 없이 와서 내 의식을 흠뻑 적시는 것 같았다. 기도가 끝나고 별빛 아래서 나는 이 목사와 마주앉아서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에게 왔다는 성령의 존재가 궁금했다.
 
  “정말 무당에게 신이 들리듯 이 목사도 성령이 임해 평생 이렇게 광야를 돌아다닌 겁니까? 정말 성령이 하는 말을 수시로 듣습니까?”
 
  성령이 임해 광야를 떠돈다는 이 목사의 말이 쉽게 믿기지 않았다.
 
  “이거 보세요.”
 
위험을 무릅쓰고 필자를 안내한 이철수 목사(오른쪽). 그는 틀에 박힌 신학이론을 멀리하고 현장에서 성경을 깨달으려는 구도자였다.
  그가 ‘순종일지’라고 쓴 수첩을 꺼내 보여주었다. 깨알 같은 글씨들이 적혀 있었다. 부딪친 상황마다 성령의 지시가 적혀 있었고, 순종·불순종 여부와 그 결과가 기록되어 있었다. 그의 정신세계를 알리는 물증이었다. 그가 계속했다.
 
  “어떤 때는 낯선 아랍인의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해가 질 때가 되면 가족 생각도 나고 ‘내가 왜 이러나’하는 회의가 들기도 해요. 그렇지만 성령이 시키는 일인데 어떻게 하겠어요?”
 
  성경 속의 사도 바울도 그랬다.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예수의 영을 직접 만난 후 세상을 떠돌며 자기의 체험을 증언했다. 바울은 수시로 예수의 영을 만나 얘기를 듣고 그걸 실천했었다. 이 목사도 비슷한 것 같았다. 그가 이렇게 말했다.
 
  “저는 기존의 신학이론보다 광야에서 기도하며 성경의 비밀을 직접 깨달으려고 했어요. 나름 깨닫고 난 후에 신학서적을 보며 확인해 보기도 했어요. 제 생각은, 목사는 말씀을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세상적인 지식으로 적당히 조립을 한 설교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건 전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말씀을 전달하려면 한국의 목사들이 광야로 나와 참회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는 현실 교회의 위선을 직시하며 믿음의 본질로 갈 것을 주장했다.
 
 
  유대광야
 
예수와 2000년 전 구도자들이 기도한 장소로 추정되는 석회동굴에 들어갔다. 컴컴한 굴속에 들어가니 몸의 기능이 정지된 것처럼 완벽한 무(無)가 나를 뒤덮었다.
  예수는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은 후 성령에 이끌려 유대 광야로 갔다. 그는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며 마귀의 시험을 견디어냈다. 나는 바로 그 장소를 가고 싶었다. 유대 광야는 이스라엘과 요르단 국경 사이의 일반인 출입금지 지역이었다. 이철수 목사가 내게 의견을 말했다.
 
  “요단강은 예전에는 폭이 넓고 물길이 바뀌는 강이었어요. 그리고 예수 시대에는 국경이 없었죠. 유대 광야에서 예수가 40일 기도를 하려면 그 장소가 우선 먹을 물이 있어야 하고, 뜨거운 태양과 짐승을 피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유대광야에 그런 곳이 있습니다.
 
  구약의 엘리야와 제자들이 있던 곳, 그리고 신약의 세례 요한이 기도했던 곳이죠. 예수도 그 장소에서 기도했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예수가 요단강 동쪽으로 와서 요한한테 세례를 받았죠.
 
  당시 강 폭이 제법 넓었던 요단강을 굳이 다시 건너가 물도 없는 반대편에서 기도할 이유가 없는 거죠. 물이 있고 근처에 동굴이 있는 곳에서 기도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그렇게 본다면 그 장소는 요르단 국경지역이죠. 이스라엘 쪽 유대광야는 아닙니다.”
 
  일리가 있었다. 우리는 요르단 쪽 국경지역인 유대 광야로 향했다. 길가 군데군데 우산같이 가지를 아래로 내리뻗고 서 있는 싯딤나무 아래서 양떼가 뜨거운 태양을 피하고 있었다. 풀 덩굴 같은 로뎀나무도 보였다. 이스라엘과 무슬림의 요르단에서 예수는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 같았다. 요르단 국경초소에서 유대광야로 들어가려면 절차가 까다로웠다. 신고를 하고 안내원이 붙은 채 미니버스로 15분 정도 정해진 코스를 돌아 나오게 되어 있었다.
 
  요르단 정보국의 특별허가를 얻어 광야로 들어갔다. 한낮의 태양은 바늘끝 같았다. 걸을 때마다 흙먼지가 풀풀 일어났다. 지금은 광야가 되어버린 오래전 요단강의 강바닥을 걸었다. 예수가 세례를 받은 장소를 찾았다. 아직도 물이 약간 고인 채 적막에 놓여 있었다. 예수가 거기서 나왔을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왔다고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다.
 
  나는 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눈부시게 푸른 하늘에 하얀 구름이 떠 있었다. 예언자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간 곳도 그 근처였다. 한낮의 유대 광야는 모든 걸 말려 죽일 정도로 뜨거웠다. 높고 낮은 구릉의 비탈에는 짐승의 똥들이 바짝 말라 뒹굴고 있었다. 석회암 절벽이 보였다. 짐승의 침입을 막으려고 했는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절벽 중간쯤에 동굴들이 보였다. 이철수 목사가 그 동굴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예수도 저 동굴에 있었을 가능성이 높아요. 그렇지 않으면 이 뜨거운 태양과 짐승을 어떻게 피했겠어요? 이 동굴들에서 세례 요한과 그 제자들이 기도했던 건 틀림없는 사실이고요.”
 
  사다리를 타고 동굴로 올라갔다. 오래된 석회암 동굴이 그 신비를 드러냈다. 동굴은 개미집같이 여기저기 위아래로 구멍이 뚫려 있었다. 한 구멍은 간신히 한 사람이 들어앉아 기도할 수 있을 정도였다.
 
  2000년 전의 구도자들이 기도한 장소였다. 국경지역이라 일반인의 출입을 차단해서인지 보존상태가 좋았다. 나는 동굴 안에 들어가 기도하기로 하고 이 목사는 광야를 걸으면서 성령을 만나기로 했다. 나는 컴컴한 굴속에 들어가 앉았다. 수천 년의 침묵을 안고 있는 적막과 어두움이 나를 감쌌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몸은 전원(電源)이 끊어진 것처럼 모든 기능이 정지된 느낌이었다. 완벽한 무(無)가 나를 뒤덮었다.
 
유대광야의 석회동굴. 성경을 보면, 예수는 요단강에서 요한의 세례를 받은 후 유대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하며 마귀의 시험을 이겨냈다.
  시간이 흘러갔다. 나는 자리를 동굴 입구 쪽으로 옮겼다. 동굴 입구의 테두리 안에 들어오는 유대광야의 모습이 보였다. 짙은 회색의 종이를 접은 것 같은 땅이 보였다. 해가 서서히 기울어 가고 있었다. 그냥 그곳에 머물고 싶었다. 별이 총총 떠오를 무렵까지만 있으면 누군가와 만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미 허가받은 시간을 넘기고 있었다. 동굴에서 나왔다. 한참을 기다리니까 이 목사가 저만치서 나타났다. 그가 나를 보며 말했다.
 
  “저와 함께 광야를 걸읍시다. 아직 신비한 영기가 많이 남아 있는 곳입니다.”
 
  나는 그의 뒤를 따라 유대광야를 걷기 시작했다. 말라죽은 식물이 여기저기 보였다. 한참을 걸었다. 앞에 가던 이 목사가 소리쳤다.
 
  “예수님은 세상의 권세와 재물을 주겠다는 마귀의 유혹을 이 광야에서 물리치셨습니다. 세상적인 욕망을 모두 이 유대광야에 묻어버리고 갈 수 있겠습니까? 성령이 내게 그렇게 물어보라고 합니다.”
 
  성령이 그를 통해 내게 물었다. 광야에 온 목적인 것 같았다. 우리 두 사람은 소리소리 지르며 광야를 걸었다. 해가 질 무렵 초소로 나왔다. 요르단 보안담당자가 험악한 표정으로 다가와 말했다.
 
  “도대체 몇 시간입니까? 그 오랫동안 뭘 했습니까?”
 
  그는 의심스런 눈길로 우리를 쏘아봤다.
 
  “낮잠을 자다 보니 늦었어요. 미안해요.”
 
  이 목사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변명했다.
 
  “특별허가를 줬으면 그만한 신뢰에 응해야 할 거 아니오. 도대체 이게 뭐요. 국경인 광야 안에서 없어져도 되는 거요?”
 
  “정말 미안해요. 미안.”
 
  이 목사가 계속 사과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동굴에서 밤을 새웠다면 헬기가 뜨고 군인들의 수색작전이 전개됐을 거라고 했다. 나는 영혼 속에 깊게 박힌 ‘쓴 뿌리’를 광야에 묻어두고 나왔다. 그게 ‘광야 블레싱(축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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