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치

커지고 있는 미국 정가의 여성 파워와 박근혜 대통령

  • 글 : 윤정호 미 예일대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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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대 미국 의회(상·하원)에 진출한 여성의원들. 사상최대인 98명을 기록했다.
“사인 부탁드리겠습니다.” “사진 찍어도 될까요?”
 
  현지시각 5월 8일, 박근혜 대통령이 미 상·하원 합동 연설을 끝내자 하원 회의장에는 아이돌 가수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이채로웠던 것은 대통령을 둘러싼 인파 중에 여성들이 적지 않았다는 것. 새로운 실세로 부상 중인, 노력 여하에 따라 한미관계에 새로운 가교(架橋)가 될 수 있는 여성 의원들이었다. 대통령을 환대해 준 미국 113대 의회는 네 가지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다.
 
  첫째, 케네디 가문의 정치적 유산 계승자가 등장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으로 유명한 케네디 가문은 2009년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의 죽음으로 중앙 정치 무대에서 작별을 고하는 듯했다. 그러나 가문은 다시 하원의원을 배출했다. JFK의 동생이자 전(前) 법무부 장관 로버트 케네디의 손자 조 케네디 3세(Joe Kennedy III)는 회의장에서 박 대통령의 연설을 경청했다. 1961년 박 대통령 부친의 방미로 시작된 박정희가(家)와 케네디가 사이의 인연을 이어갔다.
 
  둘째, 사상 최초의 힌두교도 의원이 탄생했다. 미국에서는 다방면에서 인도계 미국인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하지만 인도의 대표적인 종교인 힌두교를 신봉하는 의원은 한 사람도 없었다. 올해는 달랐다. 주(州) 방위군 일원으로 이라크전에 참전, 훈장을 받은 털시 거버드(Tulsi Gabbard) 의원은 힌두교도다. 미국령 사모아에서 태어나 하와이에서 성장한 그는 하원 선거에서 81%의 득표율로 공화당 후보를 눌렀다. 역사의 한 장(章)을 장식했다.
 
  셋째, 성소수자(性少數者) 의원들이 대거 진출했다. 과거 미국 사회에서 패륜아 취급을 받던 동성애자들과 성전환자 그리고 양성애자들. 아직도 이들에 대한 싸늘한 시각은 가시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의회에서는 많은 수의 성소수자 의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숨겼던 과거와 달리 최초의 동성애자 상원의원인 태미 볼드윈(Tammy Baldwin)을 비롯, 7명의 의원이 동성애자임을 드러낸 채 의정 활동에 임하고 있다. 가장 중요하게는 역대 최대 규모의 여성 의원들이 배출됐다. 럿거스대 부설 미국 여성과 정치 센터(Center for American Women and Politics)의 캐시 클리먼(Cathy Kleeman)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6일 대통령 선거와 동시에 치러진 상·하원의원 선거 결과, 의회 개원일인 2013년 1월 3일 현재, 여성 의원 수는 98명에 이른다. 112대 의회보다 8명이나 늘어난 수치다. 여성 의원이 전체 의원 수 대비 18.3%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멀고도 험난했다.
 

 
  여성 진출을 막던 세 가지 난관
 
  1776년 세계 최초, 최고의 근대 민주주의 국가 건설을 표방하고 건국한 미국. 그러나 여성들에게 현실 정치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최초의 여성 의원이 등장한 것은 1917년이었다. 여성 의원 등장이 늦었던 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법적, 제도적 장벽이 높았다. 미 헌법은 여성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하지 않았다. 그 결과, 여성들은 금주 운동과 노예제 폐지 운동, 빈민 운동 등 다양한 사회 운동에 참여했지만 의회에는 발을 들일 수 없었다. 출마를 하더라도 남성들의 표심(票心)에 의존해야 했다. 1848년을 기점으로 여성 참정권 운동(Suffrage Movement)이 본격화됐지만 변화의 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극적인 반전은 1차 세계대전과 함께 찾아왔다.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위한 전쟁”이라며 전쟁 참가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하자 여성 운동가들은 윌슨을 “위선자”라고 비난했다. 여성들의 참정권을 박탈한 채 민주주의를 논하는 건 자가당착(自家撞着)이라고 강조했다. 탄압에도 불구하고 시가행진과 침묵시위를 강행했다. 결국 윌슨 행정부와 의원들은 이들의 요구를 수용, 1919년 6월 여성 참정권을 명시한 수정 헌법 19조를 통과시켰다. 이듬해 8월 여성들은 한 표를 행사할 수 있게 됐다.
 
  둘째, 자격 요건을 갖춘 여성이 드물었다. 참정권이 주어진 뒤에도 수십 년 동안 여성 의원 숫자는 한 자릿수를 넘지 못했다. 남성 정치 보스들이 배후에서 의원 후보 선정 과정을 독점했기 때문이었다. 더욱 중요하게는 유권자들의 눈높이에 맞는, 국민의 대표로서 갖춰야 할 요건을 지닌 여성이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대다수 여성에게 의원 후보들의 직업 1, 2순위를 다투는 변호사나 사업가가 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젊은 나이부터 육아와 가사에 전념해야 했고 고등 교육은 극소수만의 특권이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미국변호사협회(American Bar Association)에 따르면 1947년 현재 로스쿨에 등록한 여학생은 전체 학생의 3.5%에 불과했다. 1970년대 초반 이전까지 여학생 비율은 10%를 넘지 못했다. 여성 사업가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미 국립여성사박물관(National Women’s History Museum)에 따르면 2차 세계대전은 여성들의 경제 활동 참여에 전환점이 됐다. 여성들이 나서서 전선에 나간 남성들의 빈자리를 채우고 줄어든 가계 수입을 메워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이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례는 거의 없었다.
 
  셋째, 여성 스스로가 정치 참여를 꺼려 했다. 아메리칸대 제니퍼 로리스(Jennifer Lawless)와 로욜라 메리마운트대 리처드 폭스(Richard Fox)의 〈정치권 내 여성 과소대표 연구(Men Rule)〉에 따르면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현실 정치 참여에 부정적인 견해를 갖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정치적 자신감이 부족하다. 대다수는 남성들과 달리 “나는 정치에 입문해서 성공할 수 있을 것” 또는 “남들과 달리 나라면 국정 운영을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승리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여성 후보들에게 유독 가혹한 듯 여겨지는 정치권에 팽배한 관습과 문화도 마땅치 않게 여긴다. 특히 후보와 후보 가족의 과거사를 인정사정없이 파헤치고 시빗거리를 찾기 위해 후보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 선거 운동 방식에 대해 회의적이다. 무엇보다 정치에 투신하면 자신뿐 아니라 자신이 아끼는 가족의 삶이 희생될 것이라는 우려가 깊다. 그렇기에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정치 참여를 망설이곤 한다. 그러나 2012년 의원 선거는 달랐다.
 
미국 여성 의원들의 롤 모델 마거릿 스미스

 
   여성 의원들의 롤 모델로는 마거릿 스미스(Margaret Smith)가 대표적이다. 클라이드 스미스(Clyde Smith) 하원의원의 비서이자 부인으로 워싱턴 정계에 발을 들여놓은 스미스는 한 편의 영화 같은 정치 일생을 살았다. 그는 비범한 정치적 감각으로 대통령 후보까지 역임했다. 1940년 남편이 운명한 뒤 남편 지역구에 출마한 스미스는 메인 주 사상 최초의 여성 연방 하원의원이 됐다. 1948년에는 상원의원이 됐다. 1952년 대선에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의 러닝메이트로 거론됐을 뿐 아니라 1964년에는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을 완주했다.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양대 정당의 전당 대회에 대선 후보로 이름을 올린 것이다.
 
  미 상원 역사상 최다선 의원 중 한 명이기도 한 그는 소신 있는 정책 행보를 했다. 경제·사회 정책과 관련해서는 리버럴 노선에 가까운 입장을 고수했다. 국민연금(Social Security) 제도 도입을 찬성하고 교육 예산 확충을 지지했다. 균형잡힌 반공 정책도 추구했다. 정부 내 이적 행위자들에 대한 강도높은 조사와 제재를 찬성했지만 물증 없는 마녀 사냥은 경계했다. 국방력 강화에도 앞장섰다. 2차 세계대전 중 위험을 무릅쓰고 태평양 전선 최전방을 누볐던 스미스는 냉전이 본격화하자 핵무장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러한 업적으로 스미스는 1945년 해군성 차관 후보로 물망에 올랐다. 1989년 조지 H W 부시 대통령에 의해 민간인 최고의 영예인 대통령 자유훈장(Presidential Medal of Freedom)을 받았다. 1995년 97세로 타계했다.
 
  2012년 여성 대거 진출의 요인
 
  지난해 선거에서 여성 의원 수가 크게 늘었던 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우호적인 제도 변화가 있었다. 미국 선거제도는 현역 의원의 재선에는 유리하고 초선 의원에게는 극도로 불리하다. 그러나 2010년 인구총조사 결과를 반영해 실시된 선거구 재획정은 현역 의원 프리미엄을 줄여주었다. 현역 의원이 없는 신설 지역구 숫자를 크게 늘린 것이다. 여성 운동가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여성 의원들의 수를 증가시키기 위한 계기로 삼기로 하고 이를 위해 ‘2012 프로젝트(The 2012 Project)’를 출범시켰다. 프로젝트에는 리버럴 성향의 에밀리스 리스트(Emily’s List)와 보수 성향의 전국공화당여성 네트워크(National Republican Women’s Network) 등 내로라하는 여성 단체들이 이념적 차이를 뒤로한 채 대거 참여했다. 전직 여성 정치인들을 앞세워 전문직 여성들을 중심으로 정치 참여를 독려했다. 참여 의사를 밝힌 여성들은 싱크탱크와 정당 관계자들에게 연결시켜 줬다.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2012년 민주, 공화 양당의 의원 후보 경선에 참여한 여성의 숫자는 296명에 달했다. 사상 최대 규모였다.
 
  둘째, 남성 못지않은 자격 조건을 갖춘 여성의 수가 크게 늘었다. 케네디 대통령의 행정명령 10925호를 보완하기 위해 그의 후임인 린든 존슨 대통령이 내린 행정명령 11246호 등 1960년대 중반 이후 시행된 여성 차별 완화 정책들이 실효를 거둔 것이다. 법조계에 진출하는 여성들도 증가했다. 이와 관련, 로스쿨 내 여학생 비율은 1980년대 30%대를 돌파한 뒤 1990년대 후반 이후부터 남학생과 거의 동률을 이뤘다. 2012년 현재 여성은 전체 변호사 가운데 31.1%에 이르게 됐다.
 
  기업 활동의 최전선을 누비는 여성도 눈에 띄게 증가했다. 여성의 사회진출을 돕는 비영리 단체인 캐털리스트(Catalyst)의 조사에 따르면 2012년 현재 포천 500 기업 중 여성 CEO의 숫자는 14.3%에 이른다. 2002년의 경우 여성 CEO가 7명에 그쳤던 것을 고려한다면 큰 변화다. 여성 소유 사업장도 830만 개에 달하게 됐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오픈(American Express Open)에 따르면 1997년에서 2012년 사이 여성 소유 사업장 수는 무려 37%포인트가 늘었다. 대중이 선호하는 정치인의 자격 요건을 구비한 여성의 수가 크게 늘어난 셈이다.
 
  셋째, 정치 참여에 대한 반감을 뒤로하게 하는 사건이 잇따랐다. 2011년, 새로이 다수당이 된 공화당 의원들은 의료보험 혜택의 일환으로 피임 관련 상담과 피임 도구에 대한 무상 또는 염가 제공하는 정부 정책에 제동을 걸었다. 종교의 자유를 지키고 재정건전성을 제고한다는 이유였지만 여성들은 이를 남성 중심적 사고로 여겼다. 같은 시기 보수 성향의 라디오 진행자 러시 림보(Rush Limbaugh)는 의회 청문회에 출석한 한 여학생을 창녀라고 불렀다. 정부의 피임 정책을 옹호했다는 이유였다. 여성들을 한층 더 분노케 했다.
 
  상원의원 후보로 나선 토드 에이킨(Todd Akin)과 리처드 머독(Richard Mourdoch)도 격앙된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에이킨은 TV에 출연, 인터뷰 과정에서 “여자는 원하지 않는 강간을 당하면 임신을 안 할 것”이라는 돌발 발언을 했다. 머독은 후보 토론회에서 “강간을 당하더라도 낙태를 해서는 안 된다”라고 주장했다. 많은 여성들로 하여금 남성 정치인들의 몰이해와 오만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공분을 느끼게 했다. 여성 특유의, 현실 정치에 대한 반감을 누르고 선출직 출마를 결심하게 했다. 여성 유권자들로 하여금 여성 후보들을 지지할 이유를 찾도록 한 것이다. 이런 요인들이 113대 의회 여성 돌풍에 한몫을 했다.
 
대권 도전에 시동을 건 힐러리 클린턴

 
   오바마 대통령이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지 반 년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미국 정계에서는 벌써 차기 대선 논의가 한창이다. 최대 관심사는 과연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부 장관이 출마할 것인가 여부다. 지난 1월 장관직 사임 뒤에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명도와 대중 지지도 1위를 달리고 있는 그의 행보는 논의를 한층 더 뜨겁게 하고 있다. 사퇴 직후 힐러리는 자신의 이름을 딴 웹사이트를 개설했다. 워싱턴 D.C.의 한복판에 개인 사무실을 낸 뒤에는 대권주자의 필수 코스 중 하나인 자서전 저술을 준비하고 있다. 대중 연설을 통해 일반 유권자들과의 접촉도 늘리고 있다. 올해 11월로 예정된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에 측근들이 대거 참여할 것이라는 보도도 있다. 남편 빌 클린턴의 대통령 임기 중 민주당 전국위원회 위원장이었던 테리 맥컬리프(Terry McAuliffe)가 출마할 뿐 아니라 대선 승부를 가르는 격전 주에서 치러지는 선거이기 때문에 차기 대선 캠페인의 전초전으로 삼으려 한다는 계산이라는 것이다. 물론 힐러리의 대권 재도전 여부를 확언하기란 이른 감이 있다. 혈전증으로 입원한 바 있고 2016년이면 69세가 될 그가 고강도의 선거전을 감수하려 할지 불투명하다. 부통령 조 바이든이 대통령직에 대한 미련을 공공연히 드러내는 것도 변수다. 하지만 힐러리가 대선 출마를 결심, 승리를 거머쥔다면 우리 국민들은 매우 이채로운 장면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2017년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여성 대통령들이 두 나라를 대표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당 출신 중에 특히 여성 의원 많아
 
차세대 주자로 주목받던 공화당의 스콧 브라운을 누르고 당선된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극적인 선거 승리를 통해 의회에 입성한 의원들의 현황은 다음과 같다. 소속 정당과 관련해서는 민주당 의원이 압도적으로 많다. 78명의 여성 하원 의원들 가운데 59명이 민주당원이다. 법안을 발의하거나 발언은 할 수 있지만 표결은 하지 못하는 대표자(Delegate)들을 포함할 경우 민주당 의원 숫자는 62명으로 늘어난다. 16명에 달하는 초선 의원이 의석 수를 늘리는 데 기여했다. 반면 공화당 여성 의원은 19명에 머물렀다. 초선 의원은 3명에 그친 가운데 당 소속 여성 의원의 의석 수는 2012년보다 5석이나 뒷걸음질쳤다.
 
  20명의 여성 의원이 포진하고 있는, 조약 체결 의결권을 갖고 있는 상원의 경우 두 당 사이의 차이는 더 극명하게 벌어진다. 민주당은 접전 끝에 스콧 브라운(Scott Brown) 상원의원을 누른 엘리자베스 워런(Elizabeth Warren)을 포함, 4명의 초선 의원을 배출했다. 소속 여성 의원 수를 16석으로 늘린 것이다. 이에 반해 공화당 의원 수는 수전 콜린스(Susan Collins)와 리사 머코우스키(Lisa Murkowski) 등 4명이 전부였다. 초선 의원은 네브래스카 최초의 여성 상원의원인 뎁 피셔(Deb Fisher) 한 사람에 그쳤다.
 
  의원들의 출신 지역과 관련, 남부보다는 그 이외의 지역에서 월등히 많은 여성 의원들을 배출했다. 가장 전통적인 지역 구분 방식에 따라 1861년 발발한 남북전쟁 당시 북부에 맞서 싸운 11개 주, 즉 앨라배마, 아칸소, 플로리다, 조지아, 루이지애나, 미시시피, 노스 캐롤라이나, 사우스 캐롤라이나, 텍사스, 테네시 그리고 버지니아를 남부로 볼 경우 이 지역 출신 여성 의원들의 숫자는 17명에 머문다. 여성 상원의원 10%와 여성 하원의원의 19.2%다. 의회 전체 의석 중 남부에 배정된 의석 비율이 약 30%인 것을 고려할 때 매우 낮은 수치다.
 
유일한 非백인 여성 상원의원인 매지 히로노.
  개별 주를 들여다보면 가장 많은 여성 의원을 배출한 주는 캘리포니아다. 55명의 연방 의원을 보유하고 있는 캘리포니아는 두 명의 상원의원과 18명의 하원의원을 배출했다. 1명의 상원의원과 7명의 하원의원을 배출한 뉴욕과 6명의 하원의원을 배출한 플로리다가 그 뒤를 따랐다. 하지만 주의 인구 수 또는 배당된 의석 수와 여성 의원 수는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았다. 38석의 의회 의석을 보유한 텍사스는 3명의 하원 여성 의원을 배출하는 데 그쳤다. 19개 주는 단 한 명의 여성 의원도 배출하지 못했다.
 
  인종과 관련, 30명(30.6%)이 비(非) 백인이다. 미국 전체 인구에서 백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72.4%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전체 의원 대비 유색 인종 의원 비율이 전체 인구 중 소수 인종의 비율보다 근소하게 높은 것이다. 단, 상원과 하원의 비 백인 의원 비율은 현격히 다른 양상을 띤다. 상원의 경우 비 백인 의원은 매지 히로노(Mazie Hirono)가 유일하다. 일본에서 태어난 히로노는 뉴질랜드 대사를 역임하기도 한 캐롤 브라운(Carol Braun)에 이어 상원 역사상 두 번째 비 백인 여성 의원이 됐다.
 
  이와 달리 하원 여성 의원 가운데에는 29명(37.2%)이 유색 인종이다. 이들 중 14명은 흑인이다. 미국 사회와 정치권 내에서 영향력을 키우고 있는 히스패닉계 의원은 9명이다. 아시아계 의원은 6명이다. 아시아계 여성 의원들 중에는 최초의 태국계 미국인 의원인 태미 덕워쓰(Tammy Duckworth)가 큰 주목을 받았다. 두 발과 한쪽 팔을 잃은 참전용사인 그는 2012년 민주당 전당대회 연사로도 활약했다. 최근 들어 활발한 정치 활동에 나서고 있지만 재미 한국인 교포 사회는 아직까지 여성 의원을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40代 차세대 주자 에이요트와 질리브랜드

 
켈리 에이요트.
  미 여성 의원 돌풍의 중심에는 40대 초선 상원의원 두 명이 있다. 1968년생인 켈리 에이요트(Kelly Ayotte)와 1966년생인 커스틴 질리브랜드(Kirsten Gillibrand)가 그 주인공이다. 에이요트의 주가가 고공행진을 하는 이유 중 하나는 희소성이다. 변호사이자 군인의 아내인 그는 뉴 햄프셔주 법무 장관을 역임한 뒤 같은 주에서 2011년 상원 입성에 성공했다. 민주당이 초강세를 보이는 동북부 지역에서 공화당을 대표하게 됐다. 이와 함께 외교·안보 정책을 중심으로 한 의정 현안에 대한 빼어난 분석력과 탁월한 대인관계도 인기에 기여했다. 존 매케인 상원의원과 린지 그램 상원의원 등 당내 다선 의원들이 앞다투어 그의 멘토를 자청하게 했다. 그는 어느덧 공화당의 간판 스타가 됐다.
 
커스틴 질리브랜드.
  질리브랜드가 상원의원 선서를 한 것은 2009년. 하지만 성장세가 무섭다. 가장 큰 성공요인은 정치적 변신이었다. 하원의원 시절 민주당 우파 의원 모임인 블루독 의원연맹(Blue Dog Coalition)의 일원이었던 질리브랜드. 민주당 의원으로는 보기 드물게 구제 금융 정책과 이민 규제 완화 방안을 반대하기도 했다. 그러나 뉴욕을 대표하는 연방 상원의원이 된 뒤에는 각종 사회 이슈에 대해 리버럴 진영의 시각을 대변해 왔다. 군 내 동성연애 규제 제도인 ‘돈 에스크 돈 텔(Don’t Ask Don’t Tell)’과 동성 결혼 반대법(Defense of Marriage Act)을 반대하고 군 성폭력 문제 해결에 대해 초강경 해법을 주문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지난해 11월 시사주간지 《타임》이 차기 대권주자 리스트에 그를 포함시키는 등 에이요트와 더불어 대표적인 차세대 여성 주자로 회자되고 있다.
 
  여성 의원의 마음을 잡아라
 
  여성 의원들은 포스트 이명박 시대 한미 관계 발전에 의미 있는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우호적인 환경에서 양국 관계를 풀어갈 수 있었다. 전임 노무현 정부가 워낙 미국과 불편한 관계였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명박 정부가 기저효과(基底效果)를 누린 것이다. 미국은 당시 반미 성향의 정권이 들어서지 않은 사실만으로도 감격했다. FTA 체결 등 양국이 공감하는 사안도 있었다. 박근혜 정부가 처한 환경은 이전 정부와는 크게 다르다. 하지만 양국 관계를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의회 외교의 차원에서 여성 의원들에 대한 적극적인 구애가 필요하다.
 
  박 대통령이 미국 의회의 여심(女心)을 얻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치가 필요하다.
 
  첫째, 편견을 없애야 한다. 미국 내에서는 제3세계 여성 정치인들에 대해 편견이 많다. 이들은 본인 능력이 아니라 남편이나 아버지의 후광만으로 정치적 성공을 거뒀다고 본다. 그렇기에 여성 의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몸소 이룬 성과를 부각시켜야 한다. 15년간 정치 활동을 하며 공중분해 직전에 놓인 소속 정당의 개혁을 이끌고 소수 계층을 공천하는 한편 선거 승리의 신화를 거듭 일궈냈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시켜야 한다. 그것이 생각보다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둘째, 고충을 공유해야 한다. 여성 정치인들은 남성 정치인들이 겪지 않는 난관들을 겪기 마련이다. 박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었다. “여성 대통령은 시기상조”라는 댓글에서부터 사생아가 있다는 흑색선전, 그리고 성적 수치심을 노골적으로 자극하는 만평 등을 초인적 인내심으로 이겨냈다. 대통령이 직면했던 어려움은 미국 여성 의원들이 감수해야 했던 역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을 공유한다면 여성 정치인들만이 느낄 수 있는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정을 통해 동지 의식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참신한 여성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 세계 모든 나라의 여성 의원들과 같이 미국 여성 의원들은 여성의 안전을 보장하고 권익을 증대시키는 정책에 관심이 많다. 동시에 정책이 여성 이기주의로 비치지는 않을까 우려한다. 따라서 여성들이 보다 많은 권리를, 사회 구성체의 일원으로서 마땅히 짊어져야 할 책임을 함께하며 누릴 수 있게 하는 정책을 개발해서 시행한다면 우호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정책에 대한 관심이 곧 한미 관계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로 이어지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조치들을 통해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과 미국 여성 정치사를 새로이 써나가고 있는 여성 의원들 사이에 신뢰의 다리가 놓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한국전 참전용사 출신 의원들과 우리 기업 유치 지역 의원 그리고 재미교포 거주 지역의 의원들을 중심으로 전개해 오던 우리나라의 대(對) 의회 외교를 다각화, 다변화시켜 우리나라 대외 관계의 주춧돌인 한미 관계를 한층 더 성숙하게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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