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1 동일본대지진 이후 ‘집단’과 ‘국가’로 回歸
⊙ 아베의 右向右 비판하는 지식인들은 退物 단카이세대
⊙ 조만간 ‘일본=천황’이라는 공기가 일본 지배하게 될 것
⊙ ‘妄言’은 少數정치인의 逸脫이 아니라, 현재 일본을 지배하는 ‘공기’
劉敏鎬
⊙ 52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일본 마쓰시타 정경숙 15기.
⊙ SBS 보도국 기자, 일본 경제산업성 연구소(RIETI) 연구원.
⊙ 現 워싱턴 〈Pacific,Inc〉 프로그램 디렉터, 딕 모리스 선거컨설턴트 아시아 담당 소장.
⊙ 아베의 右向右 비판하는 지식인들은 退物 단카이세대
⊙ 조만간 ‘일본=천황’이라는 공기가 일본 지배하게 될 것
⊙ ‘妄言’은 少數정치인의 逸脫이 아니라, 현재 일본을 지배하는 ‘공기’
劉敏鎬
⊙ 52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일본 마쓰시타 정경숙 15기.
⊙ SBS 보도국 기자, 일본 경제산업성 연구소(RIETI) 연구원.
⊙ 現 워싱턴 〈Pacific,Inc〉 프로그램 디렉터, 딕 모리스 선거컨설턴트 아시아 담당 소장.

- 작년 8월 런던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퍼레이드는 일본에서 ‘집단’과 ‘국가’의 개념이 부활했음을 보여준다.
남성의 말에 이어 7개 신(新) 모델의 도요타(豊田) 자동차가 등장하면서 날카로운 여성의 목소리가 배경으로 깔린다. “지금 도요타 자동차를 사면 5만 엔권 선물이 제공됩니다.” 40대 남성이 마지막으로 한번 더 등장해 외친다. “지금 당장!(今でしょ)”
광고는 ‘자동차를 사는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하야시 오사무(林修)-현대문 전공’이란, 다소 코믹한 자막(字幕)과 함께 방영된다. 하야시는 대입(大入) 수험생을 위한 학원의 현직강사이다. 학생들이 인정하는, 일명 ‘카리스마 강사’ 리스트에 들어간다. 광고가 나간 뒤부터 일본인 모두가 아는 전국적 스타로 급부상(急浮上)한 그는 현재 NHK를 비롯한 모든 공중파 방송국을 오가는 만능 탤런트로 활동하고 있다. 자신의 눈높이로 세상을 분석하는 사회평론가 같은 것이 하야시의 역할이다. 최근에는 《지금 당장》이란 타이틀의 책을 두 권이나 출판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려놓았다. ‘지금 당장’이란 한마디 말로 출세를 한 인물이다.
‘지금 당장!’
올해 초, 필자가 처음으로 광고를 봤을 때의 인상은 ‘도요타 시골지점이 내보내는 싸구려 광고’ 정도였다. 사실, 전국망 텔레비전에 나올 만한 수준도 아니다. 칠판 하나에, 평범한 모습의 학원강사가 달랑 등장해 ‘지금 당장’이란 말을 무려 세 번이나 반복한다. 겨우 5만 엔 선물권으로 소비자를 현혹하려는, 너무도 유치한 초저가(超低價) 광고이다. 그러나 하야시가 베스트셀러 작가에다가, NHK 시사해설가로 변신하는 것을 보면서 스스로의 무지와 예단(豫斷)을 후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당장’이라는 슬로건 속에 배어 있는 정치적·사회적 의미를 간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도요타는 한 세대 이상 세계를 대상으로 장사를 해왔다. 마케팅의 달인(達人)이라 볼 수 있다. ‘지금 당장’이라는 말을 전국 광고에 삽입할 때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학원강사가 하룻밤 만에 스타가 되고, ‘지금 당장’이 유행어로 정착된 것은 소비자의 마음을 읽은 마케팅 전략이 그대로 적중했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도요타 신모델이나, 5만 엔권 선물이 전부가 아니다. ‘1억2000만 일본인에게 어필할 수 있고, 최근의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최적의 키워드는 무엇일까’라는 배경하에서 ‘지금 당장’이 뜬 것이다.
‘지금 당장’은 2013년 일본이 필요로 하는, 기본자세이자 행동준칙(準則)에 해당된다. 잃어버린 20년으로 표현되는 버블경제 이후의 하향(下向) 국면을 반전(反轉)시키기 위한 국가적 국민적 이데올로기라 볼 수도 있다.
일본어에서 동의나 추측에 해당되는 접미사가 ‘でしょう(이지요?)’이다. 보통 일본인들은 말을 할 때 마지막 부분에 힘을 빼면서 상대방의 동의를 살짝 구하는 식의 화법에 익숙하다. 따라서 ‘지금 당장이지요’라고 말할 때도 보통 ‘今でしょう(지금이지요?)’라는 식의 화법이 일상적이다. 도요타 광고에서는 ‘今でしょう’에서 마지막의 ‘우(う)’를 뺀 ‘今でしょ’로 끝맺는다. ‘今でしょ’는 상대방의 동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 단정형에 가깝다. 선배나 어른이 아랫사람에 전달하는 하향식 화법이다. 동의를 구하는 ‘지금 당장이지요’의 의미라기보다, ‘어제도 내일도 아닌, 지금 당장이다!’라는 식의 일방적 통고에 해당된다.
‘지금 당장’은 右向右의 행동지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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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당장’을 외치는 도요타 광고는 오랜 침체에서 벗어나려는 일본인들의 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
서점에 가서 어떤 분야의 책을 찾아봐도 질적(質的) 양적(量的)으로 엄청나다. 어떤 분야에 관해서라도 전문가 나아가 오타쿠(オタク)가 넘치고 넘친다.
그러나 일본도 아킬레스 건(腱)을 갖고 있다. 바로 ‘언제’이다. 모든 것을 정확히 분석하고 전망하지만, 정작 중요한 결정이 미뤄진다. 간단히 말해 ‘리스크 제로(Risk Zero)’가 될 때까지 다시 한 번 재(再)검토에 들어간다. 돌다리를 두드리고 건너는 것이 아니라, 너무 돌다리를 두드리는 과정에서 아예 돌다리가 허물어지는 판국이다. 결국 새로운 도전이나 시도가 없다.
라이브도어(Livedoor) 대표 호리에 다카후미(堀江貴文)처럼 새로운 변혁을 시도한 청년도 있었지만, ‘리스크 제로’ 세력에 의해 한순간에 추락한다. 그냥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아예 감옥에 집어넣어서 반(反)사회분자로 만들어버린다. 소프트뱅크 손정의(孫正義)의 경우 미국 야후(Yahoo)와 손을 잡은 상태에서 IT 파이오니아로 성공했지만, 만약 일본 내(內)에서만 통하는 분야로 나갔다면 단칼에 날아갔을 것이다.
기득권을 지키면서 ‘좀 더 생각해 보고!’로 일관해 온 것이 지난 20여 년간 일본의 자화상(自畵像)이다. 행동과 실천이 없는 상태에서 공허한 메아리만이 울려 퍼졌다. 공교롭게도, 일본이 돌다리를 두드리고 또 두드리는 동안 한국 일부에서는 아예 돌다리를 무시하고 공중으로 날아가려는 움직임이 진행됐다. 거칠게 표현하자면 ‘지금 당장 벌여놓고 보자!’라는 자세이다. 한국이 선점(先占)하고 있는 휴대폰 등 일부 산업은 바로 한국식 ‘지금 당장’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지금 당장’은 시대정신
도요타의 광고 슬로건 ‘지금 당장’은 바로 그 같은 배경하에서 탄생한 시대정신이라 볼 수 있다. ‘자동차를 언제 구입할까’와 같은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주식(株式)을 언제 살까’, ‘집을 언제 살까’, ‘언제 투자를 할까’와 같은 경제적 범주를 넘어선 것이다. ‘헌법은 언제 바꿀까’, ‘자위대(自衛隊)를 공격형 체제로 언제 바꿀까’, ‘중국의 위협에 대한 방어와 공격 능력을 언제 갖추는 게 좋을까’와 같은 정치·경제·국방·외교·문화와 같은 전방위(全方位) 차원의 대응책이 바로 ‘지금 당장’이란 말속에 투영돼 있다. 누가(Who) 무엇을(What) 어떻게(How)는 이미 20여 년간 논의됐고, 이미 결정돼 있다. 그동안 누구도 나서지 않았던 언제(When)에 대한 답이 2013년 봄, 도요타 광고를 통해 점화(點火)된 것이다.
‘지금 당장’이 유행어가 된 시기는 아베신조(安倍晋三) 정권 출범과 맞물린다. 아베는 일본을 수동(受動)이 아니라, 능동적(能動的) 차원에서 이끌어가겠다고 말해 왔다. 개헌(改憲)을 통한 ‘강한 일본’은 아베의 개인적 신념이자, 국민에 대한 공약(公約)이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전방위 종합정보기관인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부터 국방군 창설을 통한 군사력 강화는 ‘강한 일본’을 만들려는 전제조건이다. 일본 입장에서 볼 때 내셔널리스트라 부르겠지만, 한국이 보면 우향우(右向右)로 방향을 잡은 인물이 아베이다. 종군위안부·독도·교과서 문제에서 보듯 한국의 생각과 정반대에 놓여 있는 것이 아베의 정책들이다.
일본열도(列島)의 분위기는 우향우이다. 아베와 자민당이 압도적인 지지로 승리하는 순간, ‘지금 당장!’을 외치는 무명(無名)의 학원강사가 스타로 등장한 것이다. ‘지금 당장’은 바로 아베를 지지하고, 자민당의 정책을 행동으로 만들어내겠다는 ‘결의’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脫原電 집회와 올림픽 퍼레이드
일본의 공기로 자리 잡은 ‘지금 당장’의 성격이 어떤 것인지는 도쿄에서 벌어진 두 개의 집회를 통해 증명될 수 있다.
먼저 6월 2일 도쿄 중심가에서 벌어진 탈원전(脫原電) 집회이다. 재작년 동일본대지진 이후 중단된 원자력발전소를 다시 가동하는 것에 반대하는, 노벨문학상 수상자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郎)가 주도한, 원전에 반대하는 3개의 시민단체가 함께 벌인, 초유의 대규모 복합 시민집회이다.
동일본대지진 이후 사고지역의 하늘과 땅, 바다는 방사능에 오염된 상태이다. 피폭과 관련된 구체적인 상황과 결과도 비밀에 싸여 있다. 시민들의 집회는 정당하고 정의롭다.
필자가 주목한 부분은 참가자 규모이다. 집회 주최자는 8만여 명, 경찰 측은 2만명 선으로 추정했다. 일본에서 수만여 명이 정치집회에 참가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정치가 없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곳이 일본이기 때문이다.
탈원전집회는 보통을 뛰어넘는 엄청난 규모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동일본대지진이 보여준 국가적 재앙과 비극에 비하면 수만여 명 차원의 집회는 그렇게 크다고 볼 수 없다. 특히 지난해 8월 20일 있었던 보통 일본인들의 이벤트에 비하면 너무도 왜소하다. 제30회 런던올림픽 메달리스트 퍼레이드이다. 한국은 물론, 일본인조차 예상치 못했던, 50만에 달하는 엄청난 인파가 도쿄 긴자(銀座) 퍼레이드에 몰려들었다. 지난해 올림픽 메달리스트 퍼레이드는 일본 역사상 초유의 행사이다. 한국과 달리 일본은 지금까지 메달리스트를 환영하는 행사를 치른 적이 없다. 각 선수들이 고향이나 학교로 돌아가서 소규모 인사를 하는 정도에 그쳤다.
올림픽은 ‘국가’라는 이름을 달고 뛰는 게임이다. 대규모 퍼레이드를 통해 일본을 어필하는 것만으로도 군국주의적(軍國主義的) 이벤트로 받아들여진다. 한국에서 볼 수 있는 ‘국군의 날’ 군사 퍼레이드 같은 것은 1945년 이후 사라져 버렸다. ‘집단으로서의 일본’ 그 자체가 죄악시되던 것이 지난해 올림픽 퍼레이드 이전의 일본 분위기였다. ‘집단으로서의 일본’은 반핵(反核)·반원전 평화와 같은 ‘반성하는 일본’으로서의 집회에서나 가능했다. 지난 6월 2일 오에 겐자부로의 반원전집회가 바로 전형적인 예이다. 작년의 런던올림픽 퍼레이드는 그동안 일본사회에서 터부시되던 ‘국가로서의 일본’을 전면(全面)에 내세운 행사였다.
당시 필자가 퍼레이드를 보면서 놀랐던 것은 참가자들의 뜨거운 열기 때문이다. 8월 중순 일본은 습기와 열기가 뒤섞여 열대지방 수준이라 보면 된다. 퍼레이드가 벌어진 긴자는 아스팔트로 뒤덮인 곳이다. 상온(常溫) 32도라고 하지만 체감(體感)온도는 40도에 육박한다. 불볕더위를 무릅쓰고 급작스럽게 공지(公知)된 퍼레이드에 50만명이 참가했다. 행사가 벌어진 날이 월요일임에도 불구하고 남녀노소 골고루 참가했다.
아베는 ‘아바타’일 뿐
당시 필자는 긴자에 모인 사람들이 결코 38명의 메달리스트를 축하하기 위해 모인 것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관심은 7대의 오픈카에 분승(分乘)한 선수들보다, ‘중국으로부터 위협을 느끼는 섬나라’에 맞춰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당장’을 요구하는, 아니 ‘지금 당장’으로 나갈 결의를 갖춘 사람들의 축제가 긴자 런던올림픽 메달리스트 퍼레이드라는 생각이 들었다. 민주당 정권이 무너지고 난 후, 우향우를 정책으로 내건 자민당은 이후 4개월 뒤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면서 정국을 장악했다.
현재 아베는 방향은 우향우, 시기는 ‘지금 당장’을 실행하는 일본 국민의 대표주자라 볼 수 있다. 주목할 부분은 아베가 ‘지금 당장’을 주장하고, 우향우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아베는 ‘지금 당장’을 주장하고 우향우 열풍으로 나아가려는 1억2000만 일본인의 아바타일 뿐이다.
한국 언론의 논조를 보면, 아베나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중의원(衆議員),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오사카 시장과 같은 몇몇 정치가가 우향우와 ‘지금 당장’을 주도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부분적으로 맞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빗나간 분석이다. 결론적으로 얘기하자면 지금의 일본 상황을 보면 아베가 아니라 그 누가 나와도 우향우와 ‘지금 당장’에 대한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한국은 대통령과 같은 강력한 리더십이 국가정책의 방향과 시기를 결정해 왔다. 일본은 다르다. 내각제이기도 하고, 외곽에서부터 문제를 풀어나가면서 중심으로 나아가는 화(和)의 정치문화가 지배한다. 안정지향적인 관료들이 정책의 향방을 결정해 나가는 나라가 일본이다. 정치지도자 몇몇이 나선다고 해도 관료가 움직이지 않고, 중간에 저항이 있을 경우 앞이 아니라, 거꾸로 뒤로 되돌아갈 수도 있다.
단카이세대의 퇴장
《월간조선》 2012년 11월호에 기고한 글, ‘일본의 4050세대’에서 강조했지만, 갑자기 나타난 듯한 일본의 우향우 광풍(狂風)은 세대(世代)의 변화라는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 전후(戰後) 일본을 장악해 왔던, 이른바 단카이세대(團塊世代)가 정년퇴직 등으로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아베와 같은 4050이 일본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1946년부터 4년간, 연평균 250만여 명씩 전부 1000만명에 이르는 단카이는 군국주의 시대의 일본을 반성하고 평화와 반핵에 주목하던 세대다. 아버지를 패자(敗者)로 만든 미국에 대한 적개심이 강하지만, 일본으로부터 수난을 입은 한국·중국에 대해서는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친중(親中)·친한(親韓)·반미(反美)로 규정할 수 있는 단카이세대는 1954년생 아베의 출현과 함께 역사의 뒷무대로 사라진다. 친중·친한·반미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잃어버린 일본의 자존심을 되찾자는 것이 단카이 이후 4050들의 생각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노동조합으로 군림해 온 일본교직원조합(日敎組)의 와해와, 리버럴의 상징인 《아사히(朝日)신문》의 판매부수가 해가 다르게 떨어지는 것은 그 같은 배경에서 설명할 수 있다.
일교조는 일본군국주의를 부정한다는 의미에서 사실상 국가(國歌)인 기미가요(君が代)와 국기인 히노마루(日の丸)의 법제화에 반대해 왔다. 단카이세대가 시작하는 1947년 탄생한 일교조는 사회당과 공산당을 지지하는 좌파(左派) 지식인의 핵(核)이었다.
아베를 중심으로 한 4050의 부상은 일교조의 권위와 명성을 한순간에 날려버리고 있다. 1969년생 하시모토 도루가 복싱 경기장에서 기미가요를 부른 것은 자신의 의사인 동시에, 단카이 이후의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다. 단카이, 일교조, 나아가 리버럴 지식인들이 들어설 공간이 없어진 곳이 현재의 일본이다.
최근 한국 신문·방송을 보면, 일본 우경화(右傾化)에 대한 일본 지식인들의 비판이 줄을 잇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아베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일본 지식인의 면면을 자세히 살펴보기 바란다. 대부분 60대 후반을 넘긴 단카이세대다. 예외가 있다면 단카이가 만든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한국인 입장에서는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이들은 이미 ‘과거형’인 사람들이다.
초대형 戰艦 야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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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기의 연구》의 저자 야마모토 시치헤이. |
내용은 간단히 말해, ‘일본 사회와 조직은 공기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누가 나서서 주장하고 끌고나가는 것이 아니라, 분위기와 흐름 속에서 의사를 결정하고 집행하고 평가한다는 것이 야마모토의 주장이다.
사실, ‘공기론(空氣論)’은 일본만이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전(全) 세계 모든 곳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굳이 일본을 ‘공기론’으로 설명하는 이유는 공기에 대한 일본인만이 가진 예민한 반응 때문이다.
어떤 공기가 지배하면 일본인 대부분이 빠르게 반응한다. 공기에 의해 결정한 결과를 빠르게 집행해 간다. 원래 야마모토가 말한 ‘공기론’은 제2차세계대전 당시 이루어진 국가적·군사적 차원의 이슈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이후 1945년 패전(敗戰)에 이르기까지 ‘공기론’의 정점(頂點)은 물론 천황(天皇)이다. 천황을 앞세운 공기가 정치·경제·사회·군사·문화 모든 곳을 지배했다.
전쟁 중에 나타난 ‘공기’의 대표적인 예로 전함(戰艦) 야마토(大和)를 꼽는다. 항공모함 시대로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제1차세계대전의 유물인 거함대포(巨艦大砲) 전함에 집착하는 과정에서 야마토가 탄생했다. 배와 대포의 크기는 물론, 각종 시설들이 당시 전 세계 모든 전함을 압도하는 엄청난 수준이었다.
당시 일본 해군 수뇌부는 전함에 기대를 거는 것이 시대착오적이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제1차세계대전 당시 전투력을 발휘한 미국과 영국의 전함을 능가하는 배를 만들자는 기운이 해군 내에 만연했다. 결국 기동성과 작전능력을 무시한 초대형 전함 야마토가 탄생했다. 그러나 야마토는 항공모함 탑재기를 앞세운 미군을 상대로 무모한 전투를 벌이다가 일격에 격침됐다. 거함대포에 집착한 야마토의 건조과정은 물론, 질 줄 알면서도 전장에 야마토를 투입한 만용(蠻勇)의 배경에 일본 특유의 ‘공기’가 드리워져 있다는 것이다.
패전과 함께 야마모토가 말한 ‘공기’의 영역은 천황이나 국가가 아닌, 조직 즉 회사(會社)로 넘어갔다. 1980년대 일본의 버블경제가 세계를 압도할 당시 일본은 국가로서가 아니라, ‘일본주식회사’라는 차원에서 활약했다. 패전으로 국가적 규모의 전략과 발상이 금기시되는 상황에서 주식회사라는 대안(代案)이 등장한 것이다. 종신(終身)고용제·노사(勞使)협조와 같은 일본식 경영모델이 전 세계 비즈니스맨의 교과서로 자리 잡았다.
주식회사 일본, 이지메, 오타쿠
워싱턴에는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일본인을 규정하는 유명한 일화(逸話)가 하나 있다. 미국인이 던진 질문에 대한 일본인의 답에 관한 것이다.
“Where do come from?(어디에서 왔느냐?)”
“I come from Toyota.(도요타에서 왔다.)”
미국인이 던진 질문은 두 가지로 해석된다. 일본인이라는 사실을 모르면 국적(國籍)이 무엇인지, 알 경우는 일본 어느 지역에서 왔는지에 관한 질문이다. 일본 비즈니스맨은 보통 그 같은 질문에 도요타·히타치(日立)·미쓰비시(三菱)라고 답한다. 일본이라고 답하는 사람도 있지만, 미국에 처음 온 젊은 회사원의 경우 자신의 회사 이름을 앞세운다.
버블경제가 끝나면서 ‘공기’의 영역은 회사에서 한층 작은 단위로 나아갔다. 대표적인 것이 학교이다.
최근 유행하는 한국식 표현으로 말하자면, 공기의 흐름을 잘 파악할 경우 갑(甲)에 포함되고, 그렇지 못할 경우 을(乙)로 전락한다. 갑과 을의 경계선은 ‘이지메(いじめ)’, 즉 왕따이다. 갑은 왕따의 맛을 보여주는 가해자(加害者), 을은 왕따로 인해 고통을 당하는 피해자(被害者)가 된다. 회사에서 ‘공기’를 읽지 못할 경우 그대로 퇴출(退出)이다. 학교에서 공기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할 경우 집단 왕따가 기다리고 있다.
집단 왕따를 경험한 학생이 선택하는 극단의 길은 크게 두 가지이다. 아예 학교를 가지 않는 등교거부이거나, 세상과 연을 끊는 자살이다. 일본의 이지메는 현재 한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학교 내 폭력이나 왕따의 원조(元祖) 격이다.
차이점은 일본의 경우 갑이 집단 차원에서 이뤄진다는 점에 있다. 이지메를 행하는 것은 소수(少數)의 불량소년·소녀가 아니다. ‘공기’를 읽지 못하는 소수의 을을 상대로 한 ‘집단으로서의 갑’이 이지메를 저지른다.
‘오타쿠’의 세계도 학교와 더불어 일본인이 숨을 쉴 수 있는 ‘공기’의 영역이다. ‘마니아’ 정도로 해석될 수 있는 ‘오타쿠’는 자신의 세계만을 고집하는 외톨이형 문화이다. 한 분야에 매달리는 전문가적 영역을 갖지만, 천황·국가는 물론 사회·학교 심지어 가족과도 담을 쌓는 게 ‘오타쿠’다. ‘오타쿠’에게는 ‘나만의 공기’가 세상을 대하는 기준이다. 태평양전쟁 동안에는 전체주의(全體主義)가 방향이었다면, 21세기 일본 청년의 나침반은 극단적인 개체주의(個體主義)인 셈이다.
‘후킨신(不謹慎)’
작년 런던올림픽 메달리스트 퍼레이드 때 도쿄 한복판으로 쏟아져나온 50만 군중(群衆)은 전후 일본 사회에서 사라졌던 ‘국가(國家)에 대한 공기’가 다시 부활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국가’라는 모습을 담은 공기의 전조(前兆)는 이미 도쿄 퍼레이드 17개월 전부터 일본열도에 퍼져나갔다.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동일본대지진이 그 시작이었다. 해일(海溢)과 함께 후쿠시마(福島) 원자력발전소가 엉망이 되면서 1억2000만 일본인 전체가 공포에 떨게 된다. 해일에 떠내려간 사상자의 수도 경악할 정도지만, 이후 닥친 원전사고로 인한 방사능 오염에 대한 공포는 일본 전체로 퍼져나갔다.
이에 따라 오타쿠·학교·회사가 아닌, 국가 차원의 해결방안이 모색되기 시작했다. 2011년은 물론,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계속될 절전(節電)운동은 국민실천캠페인으로 자리 잡았다.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 일본에 태평양전쟁 이전 행해지던 근면절약운동이 재림(再臨)한 것이다.
3·11 동일본 대지진 이후 등장한 유행어로 ‘후킨신(不謹慎)’이란 말이 있다. ‘근신하지 않는다, 조심하지 않고 마구 날뛴다’라는 의미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나타난 국가적 재앙에 대해 함께 대응하지 않는 사람은 ‘후킨신’으로 규정됐다.
‘후킨신’은 단순히 욕을 얻어먹는 정도가 아니다. 한번 ‘후킨신’으로 낙인찍히면 모든 사람으로부터 왕따를 당하게 된다.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거나, 화려하거나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는 식의 튀는 행동도 ‘후킨신’의 범주에 들어간다. TV 탤런트들도 웃음 띤 표정이 아니라 심각한 표정으로 등장해야만 한다.
절전운동은 ‘후킨신’ 여부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당시 원자력발전소에 의지하던 전체 전력의 4분의 1 정도가 하루아침에 중단됐다. 여름철 지하철에서 에어컨이 사라졌다. 일반 사무실의 경우, 대낮에 실내온도가 섭씨 30도를 훌쩍 넘어섰다. 모두가 고통을 감수하는 과정에서 우려하던 전력부족 상황은 오지 않았다.
스스로 앞장서서 자제(自制)한 사람도 있지만, ‘후킨신’으로 찍히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전력사용을 자제한 사람도 적지 않다. 에어컨을 틀 경우, 바로 옆집 사람을 통해 마을 전체에 알려지는 것은 물론, 인터넷을 통해 회사에까지 알려진다.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후킨신’이라는 말이 갖는 의미나 그로 인한 낙인효과는 전전(戰前) 일본에서 유행했던 ‘히코쿠민(非國民)’이라는 말을 연상케 한다.
‘天罰論’에 대한 반발
동일본대지진 이후 나타난 각종 사회현상은 전후 처음으로 등장한 ‘국가를 단위로 한 공기의 출현’이란 측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필자의 주관적인 판단이지만, 일본이라는 국가를 범주로 한 ‘공기’는 빠른 시일 내에 천황으로까지 확장될 가능성이 높다. 일본인들은 1945년 패전 이전까지는 ‘국가=천황’이란 개념을 받아들였었다. 21세기 들어 일본을 앞세우는 ‘공기’가 대두했지만, 아직 ‘일본=천황’으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공기’에 약하고, ‘공기’에 빠르게 대응하는 일본 특유의 국민성을 고려할 때 ‘일본=천황’에 근거한 ‘공기’가 대세로 자리 잡을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현재의 일본 내 ‘공기’가 어디쯤에 위치해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증거로, 최근 한국 신문에 실려 화제가 된 ‘천벌론(天罰論)’을 빼놓을 수 없다. 5월 22일 한국의 한 일간지 논설위원이 아베의 우경화 노선을 비판하면서 히로시마(廣島) 나가사키(長崎) 원폭(原爆) 투하를 신(神)의 징벌, 즉 천벌이라고 했다.
한국인 입장에서 볼 때 수긍할 수 있는 칼럼이지만, 현재의 일본 내 공기를 감안할 때 뭔가 큰일이 터질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 날 관방(官房)장관 스가 요시히데(菅義偉)가 칼럼 내용에 대해 비판을 가하는 발언을 했다. “아주 견식(見識)이 짧은 글이며 유일하게 피폭(被爆)을 당한 나라로서, 결코 인정할 수 없는 글이다.”
관방장관만이 아니라, 히로시마·나가사키 시장도 가세해서 항의의사를 표명했다. 뒤이어 서울의 일본 대사관도 신문사에 항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일본의 거의 모든 신문과 잡지가 ‘천벌론’에 대한 비난기사를 내보냈다.
당시 상황을 지켜보면서 필자는 일본의 ‘공기’가 어느 선까지 흘러가고 있는지 새삼 실감했다. 한국은 언론의 자유를 누리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다. 언론의 자유에 근거해 기사와 칼럼을 게재할 수 있다. 남의 나라 신문에 실린 글을 자신의 기준에 따라 판단해, 정부 장관이 직접 나서 비판발언을 하고 뒤이어 외교관이 항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결코 정상적인 행동이 아니다. 일본 신문에 난 한국 관련 기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한국 장관이 공식발언을 하고 도쿄 대사관을 통해 항의문을 전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구체적 팩트(Fact)에 관한 오보(誤報)나, 장관·정치인과 같은 인물이 던지는 발언이라면 그 같은 행태의 반발도 있을 수 있다. 신문·방송과 같은 언론은 다르다. 언론자유를 누리는 나라라면, 자국(自國)의 정부조차 신문사 칼럼에 대해 시비를 걸지 않는다. 정 문제시하고 싶다면 법정에서 해결하면 된다. 정부·정치인·언론·외교관이 한 몸으로 나서 이웃 나라에서 발표된 칼럼 하나에 적극 대응하는 것이 현재 일본의 ‘공기’이다.
공기가 갖는 무책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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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전범재판. A급 전범 중에서 도조 히데키 등 7명만이 처형되고 나머지는 냉전이 시작되면서 처벌을 모면했다. |
전범자로 체포돼 사형에 처해진 A급 전범자가 7명, B·C 전범자가 약 1000여 명에 달한다. 전쟁을 일으킨 핵심으로 당초 체포된 A급 전범자는 120여 명이다. 잘 알려졌듯이 공산주의가 세력을 확대하고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대부분의 A급 전범자들이 석방된다. 결국 진주만 공격을 주도한, 전(前) 총리 도조 히데키(東條英機)를 비롯한 7명만이 사형대에 선다. 냉전(冷戰)의 와중에 미국이 일본의 재건에 주력하면서 대부분의 핵심 전범들이 빠져나간다.
그러나 당시 재판과 관련한 미군 기록을 보면 전범들이 빠져나간 것이 반드시 이러한 ‘정치적 타협’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간단히 얘기하자면, 명령을 내린 사람이 누구인지에 관한 확실한 증거가 육군·해군·정부 그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는 것이 재판과정에서 밝혀진 것이다. 전범으로 처벌하고 싶지만, 구체적인 증거가 없다. 처벌하고 싶어도 명령을 누가 내렸는지에 대한 기록이 없다.
예를 들어 가미카제(神風) 자살공격비행단에 관한 부분을 보자. 누가 명령을 내렸는지, 누가 구체적으로 기획을 했는지에 관한 문서나 자료가 없다. 태평양전쟁 당시 군사작전을 담당하던, 천황 직속의 군령부(軍令部) 내 일개 과장이 남긴 문서가 전부이다. 요약하자면 “상부의 명령에 의해 적들의 공격을 육탄(肉彈)으로 섬멸할 작전이 필요하다”와 같은 내용이다. 계란이 바위 치는 식으로 이뤄진, 2550대의 자살공격대가 어떤 경로에서 탄생됐고 구체적으로 어떤 작전과 체계하에 이뤄졌는지에 대한 기록이 아예 없다. 전선에서 작전을 지휘하는 현장책임자의 책임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전범재판을 두려워해 미리 관련 문서들을 없애버렸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전쟁 중 벌어진 일본군 핵심의 행태를 보면, 지휘부가 아니라 현장책임자들이 스스로 판단해서 가미카제를 만들었을 가능성이 더 높다. 전쟁 말기 불어닥친 ‘1억 결전(決戰) 본토사수(本土死守)’라는 ‘공기’에 의해 탄생한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작전인 것이다.
구체적인 명령은 없었지만, 상부의 ‘공기’를 읽고 하부가 알아서 행동하는 식의 체계이다. 지휘부가 애매하게 행동하는 동안, 지휘부의 요구 이상으로 행동한 것이 현장책임자들이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후쿠시마 原電사고
‘공기에 근거한 무책임’은 3·11 동일본대지진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다. 일본정부와 학계(學界) 나아가 세계 원자력기구들은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를 천재(天災)가 아닌, 인재(人災)로 규정했다. 일본인은 물론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간 방사능 오염에 관한 뉴스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그토록 많은 피해와 걱정을 안겨준 세계적 재앙이지만, 책임자를 찾아낼 수가 없다. 후쿠시마 발전소는 이미 설립 초기부터 만약의 사태에 취약한 시설이라고 알려졌다. 40여 년 이상 활용하는 동안 가동중지를 요청하는 보고서가 수차례 올라갔지만, 전부 거부됐다. 비싼 발전소 시설을 중단할 경우 경제적 피해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후쿠시마 발전소의 관할 부서인 도쿄전력은 이미 사용기한을 넘긴 시설을 유지하기 위해 여론 주도자에 대한 회유를 벌였다.
이런 사실들이 사고 이후 언론을 통해 보도됐지만, 지금까지 사고에 대한 책임을 물어 감옥으로 간 사람은 하나도 없다. 누가 구체적으로 연장을 지시했는지에 관한 증거자료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원자력발전소는 전통적으로 퇴직(退職)관료의 낙하산 보직(補職)으로 자리 잡아왔다. 관할관청인 경제산업성 내 감시공무원은 퇴직한 선배의 직속 후배에 해당된다. 명확한 명령체계도 없이 수십 년간 이어져 내려온 ‘공기’ 속에서 발전소 가동이 계속된 것이다. 책임자가 없는 ‘공기’를 통해 최악의 시나리오가 후쿠시마에서 벌어진 셈이다. 사고 이후에도 그동안의 ‘공기’를 고려해 책임자를 가려내지 못하는 것이 현재의 일본이다.
‘있다’와 ‘없다’ 사이
한국인에게 일본은 ‘없다’와 ‘있다’의 극단 속에 놓인 나라로 해석된다. 중간이 없다. 필자는 ‘없다, 있다’로 나눠진 양극단 모두가 옳다고 본다. 보는 각도에 따라 전부 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있다, 없다가 갖는 나름의 논거는 공기를 통해 결정하는 일본인의 의식을 살펴보면 한층 분명하게 와닿는다.
먼저 ‘없다’를 보자. ‘분명한 원칙이나 가치도 없이 귀신 잡는 식의 공기를 통해 방향을 결정하고 나아가는 근본이 없는 민족’, ‘아무리 경제대국이고 문화국민으로 비쳐도, 법이나 명확한 판단도 없이 공기에 근거해 앞으로만 나아가는 단세포 섬나라 민족’ ….
반대로 ‘있다’는 어떨까? ‘공기에 의해 결정된 방침을 철저히 그리고 빠르게 실현시켜 나가고, 그 결과를 주변에 효과적으로 확산시켜 나가는 각론에 강한 민족’, ‘한번 결정하면 그대로 밀고 나가고, 개인적 차원이 아닌 사회적 국가적 차원에서 이뤄지는 집단의 힘’ ….
일본의 우향우 바람은 결코 한순간의 미풍(微風)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점점 강도를 더해갈 것이다. 일본 내 많은 지식인은 미국의 세계패권이 실질적으로 끝났다고 보고 있다. ‘미국을 넘어서는 국가창조’가 아니라, ‘미국 없이도 독자행보가 가능한 나라’로 만들자는 것이 일본 지식인의 공통인식이다. 방향은 내셔널리즘이다. 한국인에게 일본의 내셔널리즘은 국수주의(國粹主義), 군국주의로 와닿는다. ‘공기’에 따라 한순간에 변하는 일본은 한국이 우려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구한말(舊韓末)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이유는 ‘일본은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공기에 좌우되는 일본을 보면서 도덕적으로 우위에 섰던 것이 당시 조선의 지배층이었다.
‘일본은 있다’고 강조하려는 것이 아니다. 아베·이시하라·하시모토가 전부가 아니다. 그 뒤에 연결된 ‘공기’가 한반도의 이익과 안전에 반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한국 신문·방송을 보면, 일본을 비난하고 심지어 훈계까지 하는 기사와 방송이 하루도 빠짐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걸로는 부족하다. 각론(各論)이 필요하다.
일본의 ‘공기’를 정확히 읽으면서, 현재의 ‘공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새로운 ‘공기’를 만들어야 한다. ‘없다’, ‘있다’가 아니라, ‘없지 않다’라는 자세로 ‘공기’를 읽어야 할 것이다. 먼저 일본을 아는 것이 절실하다. 친일(親日)이나 반일(反日), 최근의 한류(韓流)도 아니다. 지일(知日)을 통해 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