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소설가 김정현의 ‘저 높은 중국, 낮은 중국’ ③

감정 없는 지혜가 법률이다, 특히 중국의 변호사에게는

  • 글 : 김정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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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펌 개소식 식전행사로 열리는 ‘자본주의 논단’ 세미나
⊙ 보르도 포도주 회사 인수를 권하는 중국의 로펌
⊙ 법규정과 다르게 진행되는 중국 형사사법 절차

金正賢
⊙ 55세. 서울경찰청 경위 퇴직.
⊙ 주요 작품으로 《아버지》 《어머니》 《맏이》 《누이》 등 가족 연작.
⊙ 2002년부터 중국 베이징에 체류하며 《중국인 이야기》 시리즈 준비 중.
톈안먼(天安門) 광장 인근에 있는 중국최고인민법원. 청사 사진 촬영조차 삼엄하게 제지했다. 최근 명청시대 조선사절의 숙소였던 ‘옥하관(玉河館)’ 자리인 것으로 밝혀졌다.
2012년 2월 17일, 가까운 중국 변호사로부터 개업식에 와달라는 초청을 받았다. 그 친구는 얼마 전 중국에서 손꼽히는 로펌(법무법인)인 궈하오(궈하오율사집단사무소·國浩律師集團事務所)에 스카우트됐다. 이후 동업자의 자격으로 난징(南京)사무소를 책임지고 있다. 반가운 마음으로 그를 찾아갔다. 국내에서도 몇 차례 비슷한 개업식에 가보았던 터라 의례적인 인사와 내빈소개, 연회 정도의 절차가 진행되리라 짐작했다. 그런데 오후 1시, 창장(長江)변 초특급 호텔에 마련된 행사장에 들어서던 필자는 학교 대강의실 같은 장면에 멈칫했다. 그제야 나눠준 안내장을 들여다보니 ‘자본시장 논단’이라는 제목이 박혀 있는 게 아닌가.
 
  국립 싱가포르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양무(楊沐) 박사의 ‘유럽채무위기와 중국의 영향’, 난징대학교 경제학원장 선쿤잉(沈坤英) 교수의 ‘기업운영의 거시적 환경변화와 정책방향’, 상하이(上海)증권교역소 부총경리 겸 교수 저우친예(周勤業)의 ‘자본시장발전과 기업의 강대화’ … 국내외 저명 학자는 물론 중국 금융시장 주요 인사들의 자본 및 금융 관련 강연들이 식전 행사로 마련되어 있는 것이었다.
 
  그날 500석 가까운 좌석을 가득 메운 난징시를 비롯하여 장쑤(江蘇)성, 상하이 등지에서 초청되어 온 경제계 주요 인사들은 당초 4시간 반으로 예정된 강연시간을 훌쩍 넘도록 진지한 경청과 질의응답을 이어갔다. 결국 만찬 예정시각까지 넘겨 주최 측에서 마지막 강연자에게 서둘러 강연을 끝내주도록 부탁하는 촌극이 연출되기도 했으니 그 뜨거운 열기는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법조계와 행정부 등지에서의 화려한 경력을 주로 앞세우는 의례적인 행사에 익숙했던 나로서는 솔직히 난감한 기분마저 들어 애써 기억을 지워버리려 했다.
 
  다시 2012년 10월 말,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던 원자바오(溫家寶) 총리 일가의 3조원대 재산 축적과 관련한 미국 《뉴욕타임스》 보도에 대해, 두 명의 변호사가 선임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궈하오 로펌의 왕웨이둥(王衛東), 쥔허(君合) 로펌의 바이타오(白濤) 변호사였다. 여전히 법치(法治)보다는 인치(人治)의 인식이 높은 중국에서 현직 총리가 변호사까지 고용해서 대응한다는 사실이 흥미로운데다 인연 닿는 궈하오 로펌이 거론되니 중국 법률시장을 들여다봐야겠다 싶었다.
 
 
  로펌은 서비스업이다
 
궈하오 로펌 난징사무소 개소식 논단에서 강연하는 펑위안 변호사.
  1969년생인 펑위안(馮轅)은 장쑤성 우시(無錫) 출신으로 난징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졸업하던 당시(1991년) 변호사 자격시험이 격년제로 실시되어 잠시 《남경일보》(南京日報) 법제부 기자로 일하다가, 1993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변호사로서의 일을 처음 시작한 곳은 어딘가요.
 
  “1994년, 장쑤성 쑤저우(蘇州)시에 있는 쑤위안(蘇源)이라는 로펌에서 변호사 업무를 시작했어요.”
 
  —대학교에서는 상법을 중점 공부했다던데, 쑤위안에서도 그 방면의 일을 했나요.
 
  “쑤위안이 1993년에 설립된 신생 로펌이기는 했지만 갓 자격증을 딴 신참이어서 형사사건 변호 일부터 했습니다. 얼마 뒤에는 민사사건을 맡기 시작했고, 4년 전부터는 회사 간의 합병 등 규모가 큰일을 하면서 쑤위안의 동업자 중 한 명이 되기도 했습니다.”
 
  —법학을 공부하고 변호사를 지원하게 된 특별한 계기라도.
 
  “할아버지께서 고향인 장쑤성에서 명망 높은 변호사를 지내셨는데 아버지는 문화대혁명의 영향 등으로 뒤를 잇지 못했어요.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변호사의 길이 정해진 셈인데 다행히 성적도 따라줬습니다.”
 
  —상법에 특별히 관심을 둔 이유는?
 
  “제가 공부하던 시기가 개혁개방으로 중국 경제가 한창 활성화되던 시기였고, 경제와 관련한 법률수요 또한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었으니까요.”
 
  —궈하오 로펌과는 어떻게 인연이 닿은 건가요.
 
  “중국 굴지의 로펌 궈하오가 장쑤성을 중심으로 한 중동부 지역 법률시장 진출을 염두에 두면서 난징을 그 중심 도시로 선정했습니다. 난징은 장쑤성의 성도(省都)이기도 하지만 거대한 창장이 도시 가운데를 흐르고 있어 옛날부터 내륙도시이면서도 항구가 발달했고, 덕분에 물류 운송이 원활해 진작부터 많은 국내외 대형기업과 공장이 들어서 경제가 규모화되어 있는 도시입니다. 한국의 삼성전자, LG전자 공장도 그중 하나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난징과 인연이 깊은 제가 궈하오와 연결된 거죠.”
 
  실제 유구한 역사도시 난징은 명(明)나라 영락제(永樂帝) 3년이던 1405년, 환관 정화(鄭和)가 200여 대로 구성된 대함대를 이끌고 멀리는 동아프리카에까지 이르는, 도합 7차례에 걸친 소위 ‘정화대원정’에 나섰던 출항지이다. 이때 모함은 목선이면서도 그 길이가 자그마치 150미터에 달했다니, 난징은 진작부터 중국의 해양기지 역할을 제대로 했던 셈이다. 지금도 난징의 항구에는 1만 톤급 이상의 선박이 정박할 수 있어 연간 1억 톤 이상의 물동량을 처리하고 있다.
 
  —궈하오 로펌의 위상과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요.
 
  “먼저 위상을 단순하게 말하자면 중국 국내외 IPO(주식공개나 기업공개), 기업 합병 등에 관한 종합지표는 벌써 수년째 전국 1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1998년 베이징(北京), 상하이, 선전(深圳)사무실을 시작으로 현재는 중국 주요 도시를 비롯하여 홍콩, 프랑스 파리 등지에 총 15개 지사가 있고, 스페인 마드리드에는 합작로펌이 있습니다. 또 지적재산권을 전담하는 로펌도 별도로 두고 있습니다.”
 
  —해외지사와 국제합작로펌을 두고 있는 걸로 봐서는 주로 경제 관련 법률수요에 집중하는 것 같군요.
 
  “우리는 법률적 지원을 의뢰하는 이가 있으면 어떤 사건이라도 수임합니다. 단순한 형사사건은 물론이고 개인 간의 민사소송, 경제 관련 법률수요, 국적을 달리하는 소송 등 전부 수임하고 최선을 다합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관련 법률수요가 많으니 조직 또한 그에 따를 수밖에 없는 일이죠.”
 
  —궈하오 로펌의 조직은 어떻게 되나요.
 
  “크게는 증권 및 자본시장전문위원회를 비롯하여 회사 및 상업, 기업 및 은행, 국제투자, 기반시설 건설, 지적재산권을 각각 전담하는 위원회 체제로 구성되어 약 1500명가량의 법률전문가들이 일하고 있습니다. 그를 위해 중국 사법부와 증권감독관리위원회 등의 심사를 거쳐 증권업무 취급 자격을 취득했고, 그 밖에도 지적재산권, 각종 투자업무, 외자기업 주식 관련 업무를 다룰 수 있는 자격 등을 취득해 있습니다.”
 
  —그런 각각의 업무마다 정부의 자격허가가 필요한 모양이군요.
 
  “물론입니다. 정부의 기능이 나눠지니 사법부를 중심으로 국가계획위원회, 경제무역 파트 등 각각의 유관기관으로부터 별도의 자격을 취득하는 거죠. 그렇게 자격을 취득하는 것은 전문성을 보장받는 것이니 의뢰인에게 신뢰를 줄 뿐 아니라 이익보호에도 유리한 일입니다. 우리는 그 밖에도 미국 뉴욕증시, 나스닥증시를 비롯하여 홍콩, 싱가포르, 호주 등 여러 나라 증권 교역기구로부터 승인을 받아 증권 발행 및 상장, 합병 등의 업무도 하고 있습니다.”
 
  —중국기업의 증시 상장 상황은 어떤가요.
 
  “매년 약 1백여 기업이 주식 상장을 신청하지만 실제 상장되는 것은 1년에 한두 개에 불과한 실정입니다. 자격 요건에 달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중국 증시의 안정적 발전을 위해서죠. 중국기업이 다른 나라 증시에 상장하는 것은 사실상 허가된 상태입니다. 우리 궈하오는 이미 중국 내 여러 증시에 상장된 기업 중 약 8분의 1에 해당하는 기업의 상장 업무를 처리했던 터라, 이를 바탕으로 해외 증시 상장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계획이 있나요.
 
  “아직 구체적 계획이 마련된 것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빠른 시간 내에 한국의 유수한 로펌과 손잡고 주식 상장은 물론 경제 합작에 관한 여러 업무를 하고 싶은 바람은 있습니다.”
 
  —현재 궈하오와 법률계약을 맺고 있는 중요 기업을 든다면.
 
  “중국기업으로는 중국민항을 비롯한 주요 항공사, 공상은행 등 주요 은행, 중국석유, 국가핵전(원자력발전소)기술공사, 주요 투자회사 등 수백 개 기업이 있고, 글로벌기업으로는 펩시콜라, 포드자동차, 모토롤라, 지멘스, 인도 타타 등 여러 기업과 법률고문 계약을 맺고 있습니다.”
 
 
  변호사는 선망 직업이 아니다
 
최고법원 앞 공고판. 개인적인 자료 접수와 질문에 대한 답변, 단체 행동 및 각종 집회 등을 일절 허용하지 않는다는 공고문이다. 겨울 추위보다 더 냉랭한 기운을 느끼게 한다.
  문득, IMF 외환위기 시 국내기업을 인수해 이후 막대한 차익을 남기고 이른바 ‘먹튀’한 ‘론스타사건’, 그들의 변호인으로 나서 국민적 원성을 사는 국내 로펌이 생각났다.
 
  —중국의 경우 외자기업의 변호인으로 실제 법정에서 그 이익을 보호하는 데 별다른 장애는 없나요.
 
  “변호사는 기본적으로 의뢰인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그것은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설령 의뢰인 측의 불법적 행동을 포착했더라도 그 사실을 사법기관에 신고하면 불법과 관련한 처벌은 피할 수 있을지 몰라도 업무상 비밀보호라는 변호사로서의 기본적 의무는 위반한 것이기 때문에 변호사 자격은 취소됩니다. 그것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래도 국민정서나 자국 기업 보호의식이 강한, 특히 막강한 힘을 가진 정부라면 좀 다를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소크라테스는 법률은 감정 없는 지혜라고 했습니다. 법을 다루는 사람은 자신의 업무에서 감정을 배제해야 한다는 것이죠. 법관도 그렇지만 특히 변호사는 더욱 그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또한 중국 역시 법률 그 자체로는 변호사의 법률행위에 부당한 제한은 없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국가가 제정한 법률의 틀 안에서 스스로를 보호할 장치를 마련해 놓았기 때문에 어떠한 경우라도 부당한 해를 입는 경우는 없을 것입니다.”
 
  —지난해 난징사무소 개소식 때 있었던 자본시장 논단이 흥미로웠습니다. 그런 행사를 준비하자면 노력과 경비가 적지 않았을 텐데요.
 
  “로펌은 법률을 다루는 일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서비스업입니다. 더구나 날이 갈수록 자본시장이 커지는 상황에서 단순히 기업고문 역할이나 의뢰받은 사건 처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먼저 나서 기업가와 전문가를 연결해 주는 것이 한발 앞서가는 서비스라는 생각입니다. 또 우리는 그렇게 해서 더 많은 고객을 유치할 수 있었고요. 실제 개소식 행사 이후 이틀 만에 굴지의 기업 두 곳과 고문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는데, 자본시장 논단이 신뢰를 얻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중국 주류업체의 프랑스 보르도 지역 유명 포도주 회사 인수에 궈하오가 주축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펑위안 변호사로부터 들은 바 있었다.
 
  —프랑스 보르도 지역 포도주 회사 인수 건도 그런 경우인가요.
 
  “예. 우리 프랑스사무소에서 경제위기로 인해 그 지역 포도주 회사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먼저 그 지역 회사와 인수조건에 대한 협의를 한 후 궈하오와 고문계약을 맺고 있는 중국 주류회사 중 조건이 합당한 회사를 선정해 인수를 권했죠. 사실 기업은 현재의 회사 경영에 더 많은 집중을 기울일 수밖에 없으니 바깥으로 눈을 돌리거나 미래를 계획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그럴 때 전문가들로 구성된 우리와 같은 로펌이 현재 상황 및 미래가치에 대한 냉정한 평가로 손익을 따져 추천한다면 기업으로서는 훨씬 수월하게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일이죠. 그런 일이 앞서가는 법률서비스일 것입니다.”
 
  —중국에도 전관예우가 있나요. 아무래도 관시(關係)의 전통이 깊은데.
 
  “사람 사는 세상에 아주 없지는 않죠. 하지만 그런 껄끄러운 문제를 피하기 위해 여러 가지 법률적 제한을 마련해 두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판검사 출신 변호사나 고위공무원 출신은 일정기간 재임 중 자신이 다루던 업무와 관련된 일에는 관여할 수 없게 하는 규정 같은 것이죠.”
 
  —지금 궈하오의 대표는 어떤 분인가요.
 
  “이전의 주석(主席)은 위닝(于寧) 변호사로 중국변호사협회 6대 회장을 역임한 분이었고, 지금은 뤼홍빙(呂紅兵) 변호사인데 현재 중국변호사협회 부회장으로 있습니다.”
 
 
  밑도끝도없이 체포당하는 경우도
 
중국교포 법대생 진원단.
  —한국뿐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변호사는 상당히 선망받는 직업인데 중국도 그런가요.
 
  “예전에 한국의 경우는 신부가 열쇠 3개를 가지고 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부분에서는 저도 한국에서 태어났으면 좋았겠어요(웃음). 하지만 중국에서는 사법시험 통과가 신분상승의 효과를 가져다주거나 높은 선망의 대상이 되지는 않습니다. 현재 중국에는 약 20만4천명 정도의 변호사가 있는데 그들 대부분이 조금 나은 조건의 직장, 특히 평생직장을 갖게 되었다는 안도감을 가지는 정도일 뿐입니다.”
 
  —그럼 어떤 직종이 가장 선망의 대상인가요.
 
  “지금 중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직업이자 일등 신랑감은 고위직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공무원입니다. 판사 검사도 변호사와 비슷한 정도고요.”
 
  —의외군요. 그런데 같은 궈하오 소속의 왕웨이둥 변호사가 원자바오 총리의 미국 《뉴욕타임스》 보도와 관련해 변호인으로 선임되었다는 보도가 있더군요.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변호사는 각자의 업무에 대해 비밀을 지킬 의무가 있기 때문에 절친한 사이라 해도 그 내용을 알려줄 수 없는 것이기에 자세히는 알지 못합니다.”
 
  역시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는 말을 아낀다. 가까운 사이지만 애초 인터뷰에 응하는 조건이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는 질문하지 않는 것이었다. 어차피 이번 인터뷰는 로펌을 중심으로 한 중국 법률시장의 특성을 알아보는 것이기도 했다. 그렇더라도 중국의 인권상황, 아니 굳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인권이라는 말은 피하더라도 형사사법 절차에서의 문제점은 그 원칙이나마 알아보고 싶었다.
 
  몇 년 전, 이런 일이 있었다. 베이징에 상사 지사장으로 나와 있던 친구의 운전기사가 어느 날 아무런 말도 없이 출근하지 않았다. 친구는 워낙 성실한 사람이니 집에 무슨 일이 있나 보다 라고만 생각했다. 며칠이 지나도 아무런 연락이 없어 집에 전화를 했더니 마찬가지로 전화 한 통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일주일을 넘기자 친구는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을 채용했다. 4주쯤이 흐른 뒤 그 운전기사가 회사에 나타났다. 사연을 물으니 그의 친구가 사기 사건에 연루되었는데 평소 통화가 잦았다는 이유로 공범의 의심을 받아 공안(公安·경찰)에 체포돼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는 공범의 혐의를 벗고 풀려났다. 하지만 4주가 넘는 기간 동안 그는 직장은 물론 가족에게조차 아무런 연락도 취할 수 없었다. 성실한 청년이 오직 범죄 혐의자인 친구와 통화가 잦았다는 이유만으로 장기간 구금되고 직장마저 잃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국가로부터 어떤 보상도 받지 못했다.
 
  외국인의 경우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몇 년 전, 한국의 한 카지노 회사 직원 두 사람이 의뢰받은 중국 VIP고객 영접을 위해 베이징 수도공항을 빠져나오다가 체포됐다. 그 고객이 고위공무원으로 부패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상식으로 따지자면 고객 영접을 의뢰받은 회사원이 범죄 혐의를 받을 까닭은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들 두 사람은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낯선 남의 나라 감옥에서 수감의 고통을 겪고 난 뒤, 그것도 집행유예의 형으로 겨우 풀려나 귀국할 수 있었다. 일종의 부패방조 혐의였던 모양이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더욱 문제인 것은 형사사법 과정에서의 인권 침해였다.
 
  당장 직원의 구금을 알게 된 회사 측이 발 벗고 나서 대사관 영사부도 최선을 다했지만 수감된 이들에 대한 외교관의 면회조차 며칠이 지나서야 가능했고, 회사나 가족의 면회는 한 달도 훨씬 지난 다음에 그것도 특별히 허가를 받아서야 가능했다.
 
 
  법·정의보다는 경제적 이익이 우선
 
베이징대 법대 강의실. 방학 중이라 썰렁하지만 한 학년 평균 정원은 180여 명이다.
  사실 중국 현지에서 우리 국민과 관련해 벌어지는 여러 사건을 지켜보면, 언론의 비판은 우리 잣대에 따른 요구사항이지 현지 사법기관을 직접 상대해야 하는 영사부의 어쩔 수 없는 한계와 고충은 이해가 되는 면이 있다. 나라마다 그 문화에 따라 법규와 집행과정이 다른 것이니 우리네 상식만을 주장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문제가 있다면 개선해야 옳을 터인데 그럴 기미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장래에 법률가가 될 중국 법대생들의 생각은 어떨까?
 
  법대 중 우선으로 꼽히는 베이징 대학생을 인터뷰 대상으로 물색하던 중 중국교포 여학생이 눈에 띄었다.
 
  진원단(金文丹). 1990년생으로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이린(海林)시에서 태어나 그곳 조선족실험소학교와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베이징대학 법학과에 입학해 지금 4학년이다. 그 나이 또래 중국교포의 후예로서는 드물게 할아버지의 고향 부산과 김녕(金寧) 김씨 본관을 머뭇거림 없이 말한다. 기특하다. 그녀의 아버지는 하이린시 치안대대(治安大隊) 소속 공안이고 어머니는 가정주부란다. 외동딸이고.
 
  —부모님이 많이 자랑스러워하겠어요.
 
  “아무래도….”
 
  수줍은 미소가 예쁜 얼굴에 귀엽게 번진다.
 
  —법학과를 지원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아버지가 원하셨어요.”
 
  —막상 법학 공부를 해보니 어때요.
 
  “재미있어요. 그런데 지난해 9월에 있은 사법고시에서 낙방해 올해는 꼭 합격하려니 힘이 많이 들어요. 그래도 이번 겨울방학에는 일본에 한 달 반쯤 가요.”
 
  —무슨 일로.
 
  “일본 스미토모(住友)화학회사 법률팀에서 인턴사원으로 일하게 돼서요. 스미토모 재단에 그런 프로그램이 있어요.”
 
  —지금 말이 조선족 말이 아닌 정확한 한국 말인데.
 
  “고등학교 때 윤동주문학상을 수상해 포상으로 한국에 다녀온 적이 있고, 대학 때 2차례 더 가서 어학연수를 했어요.”
 
  —우리 역사에 대해서는 잘 아나요.
 
  “잘은 몰라도 고향인 하이린에 항일투쟁 시기 김좌진 장군님의 유적지가 있어 관련된 역사는 아는 편이에요. 손녀 되시는 김을동 국회의원님이나 아드님인 송일국씨도 먼발치에서 몇 차례 본 적이 있고요.”
 
  —송일국씨 팬이겠군요.
 
  “네, 열렬한 팬이에요. 꼭 한 번 직접 만나고 싶어요(웃음).”
 
  —중국 사법시험 제도는 어때요.
 
  “예전에는 2년에 한 번 있었다는데 지금은 1년에 한 차례, 9월에 있어요. 시험과목은 첫 시간에 헌법, 경제법, 법리학, 법제사, 국제법, 변호사직접윤리 같은 일종의 기본지식을 봐요. 2교시에는 형법, 형사소송법, 행정법, 행정소송법을 보고요. 3교시에는 민법, 상법, 민사소송법 등, 4교시는 사례분석, 문서작성, 논술 등이고요. 그걸 이틀 동안에 다 보는데 기본적으로 한국의 사법고시처럼 문턱이 아주 높은 건 아니에요. 우리 베이징대의 경우는 대략 졸업생의 60퍼센트 정도는 시험에 통과해요.”
 
  —사법고시에 합격하면 다음 과정은 어떤가요.
 
  “변호사 수습 1년을 거치면 기본적으로 변호사자격증을 갖게 돼요.”
 
  —검사나 판사가 되려면.
 
  “채용시험을 다시 거쳐야죠. 그리 어렵지는 않아요.”
 
  —본인은 사법고시를 합격하면 어떤 길을 갈 계획이에요.
 
  “로펌에 들어가 일할 거예요.”
 
  —판사나 검사를 더 선호하지 않나요.
 
  “한국과는 달라요. 중국에서는 판사와 검사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낮은 편이에요. 다른 선진국처럼 법의 위엄이 높지 않으니까요.”
 
  —위엄이 높지 않다니 무슨 말인가요.
 
  “아무래도 현실과 모순되는 법규도 많고 세부적인 조항도 부족해 국민의 인식과 괴리가 있으니까요.”
 
  역시 공권력의 막강한 힘만으로 존중받는 권위를 얻을 수는 없는 모양이다.
 
 
  법윤리에 관한 수업은 그리 많지 않아
 
평상시에도 톈안먼 광장에 들어가려면 엄격한 검문을 거쳐야 한다. 국민의 광장이란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
  —어떤 로펌을 원하고 무슨 일을 하고 싶어요.
 
  “외국계 로펌에서 경제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요. 그래서 지금도 민법과 상법을 주로 공부해요.”
 
  —수입 때문에.
 
  “네. 국내 로펌은 초임이 월 5000위안(약 87만원) 정도지만 외국계 로펌은 일반적으로 1만5천 위안은 보장돼요. 물론 변호사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사건처리에 따른 수입을 보장받는 거지만요. 그리고 경제 관계의 일이 아무래도 수입이 크니까요.”
 
  망설임 없는 답변에 조금은 가슴이 막힌다. 펑 변호사의 말 그대로 평생 안정적인 직장을 위한 공부인 셈이다. 어쩌면 차라리 그렇게 정직한 편이 말뿐인 ‘정의’ 운운의 허울을 내세우는 것보다는 나은지도 모르겠다고 자위해 본다.
 
  —법률가로서 사회정의나 윤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실제로 법윤리에 관해서는 수업도 그렇게 많지 않아요. 그건 철학에서 다루는 문제로 생각하니까요. 다만 수업시간에 형사법의 애매모호한 부분이나 비이성적인 부분에 대한 비판과 개선을 말하는 교수님들은 많아요. 특히 우리 베이징대는 전통적으로 개방적이고 자유로운데다가 교수님들은 반골인 편이니까요. 학생들도 그런 부분에 동의는 하지만 그건 국가가 할 수 있는 일이지 저희로서는…. 그렇지만 사회적으로 법률에 대한 관심이 점차 뜨거워지고 있으니 나름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리라는 생각입니다.”
 
  —중국 형사법에 인신 구금에 관한 규정은 어떤가요.
 
  “기본적으로는 무죄 추정의 원칙이나 죄형 법정주의를 원칙으로 삼습니다. 공안이든 검찰이든 인신구금을 할 때는 구류증을 제시해야 하고, 24시간 이내에 그 사실을 가족에게 알려야 합니다. 구류 후에는 3일 내로 영장을 신청해야 하고, 7일 이내에 그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특수상황에서는 신청과 결정에 있어 1~4일간의 연장이 가능하고요. 외국인의 경우는 체포 시 해당 검찰원 소속의 성(省)급 검찰원 및 정부, 외사(外社) 부문의 동의가 있어야 하고, 그 기간도 2개월을 원칙으로 특수한 경우 1개월이나 2개월을 연장할 수 있습니다.”
 
  결국 특수상황으로 가정하면 재판에 회부되기 전 수사기간만 길게는 4개월을 넘길 수 있는 법규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원칙이 지켜지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인 게 더 큰 문제이다. 게다가 일선에서 만나는 공안은 범죄의 혐의가 있는 자를 구금하면 한 달간은 그 사실을 알려줄 의무가 없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법규에 대한 개인적인 착오인지 공공연한 현실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최고인민법원 근처에 자리한 개인 변호사 사무실.
  중국은 서양에 못지않게 아주 일찍부터 법률체제를 구축한 나라이다. 여러 사서(史書)에는 5천 년 전의 하(夏)나라 때부터 죄인을 구금하는 감옥과 그것을 관리하는 색부(穡夫)라는 관직이 보인다. 또 주(周)나라 대에 이르러서는 관리의 음풍(陰風), 무풍(巫風), 난풍(亂風), 즉 문란한 행동에 대해 묵형(墨刑·신체에 글자를 새겨 죄지은 자임을 알리는 형벌)으로 처벌하는 법규를 만들 정도로 자못 세분화되고 엄정했다. 다만 예(禮)를 통치의 근간으로 삼아온 전통은 법의 추상화를 가져와 권력자에게 자의적 해석의 여지를 남겼다.
 
  중국에 근대법이 들어온 기점은 1911년의 신해혁명으로 볼 수 있지만 실제 구체화된 것은 1948년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이 건립된 때로 보아야 할 것이니 우리나라보다는 다소 늦은 편이다. 게다가 중국은 권위적 정치체제의 장기화로 법치보다는 인치가 더 우위에 있은 게 사실이니 법률적 발전이 늦을 수밖에 없었다. 최근에 들어 그런 중국의 법 제도도 점점 선진화의 과정을 밟고는 있지만 아직은 요원하다는 것이 보편적 법상식에서 바라보는 시각이다.
 
  어쨌거나 미래의 주인공이 될 법학도들마저 대부분은 법 정의보다는 경제적 이익을 우선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암울한 일이다. 하지만 경제건 무엇이건 어느 한 분야에서의 발전은 다른 분야의 발전을 이끌고 압박하는 것이 될 터이니 기대해 본다.
 
  전관으로서의 후광과 권위로 독점적이고 특혜적 이익을 기대하는 풍조보다는 앞서가는 적극적 자세로 수요를 창조하는 그들의 태도는 배워야 할 일이다. 법률수요에 앞서 제공하는 지식서비스, 수지와 발전가능성을 먼저 따지고 확인해 기업에 제공하는 적극적 마인드… 역시 자본주의보다 더 자본주의적인 사회주의 경제체제하의 그들이다.
 
  마치 선민(選民)이라도 된 듯한 우월의식에 젖어 사회 전 분야에서 이익을 독점하고 대물림하려는 일부 율사들의 행태가 많은 이의 가슴에 사회적 분노를 쌓게 하는 게 솔직한 우리의 현실 아닐까. 더구나 겉으로는 선인(善人)의 미소를 지으면서, 명확히 드러난 과오에도 기어이 버텨보려는 인사청문회에서 흔히 보는 뻔뻔함이라니. 지금 우쭐해 하는 우리가 오히려 중국의 반면교사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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