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분석

달러화와 위안화의 미래

장기적으로는 複數의 基軸통화 체제로 갈 것

  • 글 : 박승록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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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진타오, “현재의 국제통화제도는 과거의 산물”
⊙ 미국의 경제적 위상 저하, 달러화 약세 불구하고 미국 국채가 가장 안전하다는 신뢰 여전
⊙ 미국, IMF의 SDR 구성하는 바스켓 통화에 위안화 추가 동의
⊙ 기축통화의 조건: 국제적으로 교환수단·가치척도 역할, 자유로운 유출·입 보장, 자본시장 발달,
    기축통화국의 책임과 의무 다할 수 있어야

朴勝祿
⊙ 55세. 고려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노던일리노이대대학원 경제학 박사.
⊙ 산업연구원 책임연구원, 삼성경제연구소 정책연구센터 수석연구원, 베이징사회과학원
    수량경제기술경제연구소 방문학자 역임.
⊙ 저서: 《계량경제학방법론》 《중국 일류기업을 찾아서》 《다시 기술이 미래다》(공저).
은행직원이 각국의 외환을 정리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국제통화체제는 복수의 기축통화체제로 바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이 승리함과 동시에 미국은 세계를 지배하는 강국으로 등장한다. 세계 여러 나라의 장기적인 경제성장 과정을 연구한 앵거스 매디슨(Angus Maddison)의 자료에 의하면 미국은 종전(終戰) 직전이던 1944년 세계 GDP의 35%를 차지하는 세계 역사상 전무후무(前無後無)할 초(超)경제강국이었다. 그 이전 세계를 지배하다시피 했던 대영제국(大英帝國)은 1899년 세계 GDP의 9%를 차지한 것이 최고치였다. 세계 인구의 4.65%를 점유하는 미국의 경제적 지위는 최근(2008년)에도 23.2% 내외를 차지하고 있다. 비록 그 지위가 약화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다른 나라가 감히 범접 못할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이런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세계의 정치·사회·문화를 주도하고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할 수 있었다. 미국의 이런 지위는 미국의 달러화(貨)를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통화로 만들었으며, 대부분 국제간 무역거래에서 결제통화로 사용되게 했다. 동시에 많은 국가는 달러화를 외환(外換)보유액으로 이용하고 또 이를 늘리려고 노력하게 됐다. 1991년말 구(舊)소련이 무너지면서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는 더욱 공고히 됐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지금까지 달러화가 세계의 기축(基軸)통화로서 역할을 해 온 것은 미국의 경제력과 이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미국의 정치·군사적 파워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다.
 
그림 1. 미국, 일본, 중국, 영국의 전 세계 GDP비중 추이
 
  달러 기축통화의 역사는 인플레이션 수출의 역사
 
  제2차 세계대전 무렵까지 계속됐던 대영제국의 정치·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금본위(金本位) 스털링 기축통화제도는 미국이 강대국이 되고 독일 등 유럽국가들의 경제력도 크게 증가하면서 붕괴했다.
 
  제2차 대전 당시 유럽국가들은 전쟁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금(金)의 태환(兌換)을 정지시켰으나, 미국은 금태환을 유지했다. 따라서 많은 자금들이 환율변동의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런던 금융시장에서 미국 금융시장으로 이동했다. 미국은 또한 전쟁물자의 수출을 통해 대규모 흑자(黑字)를 기록했다. 이로 인해 미국의 경제적 위상과 함께 달러화의 위상도 크게 올라갔다.
 
  1944년 미국 주도로 영국·프랑스 등은 미국 뉴햄프셔주(州) 브레튼우즈에서 기존의 금 대신 미국 달러화를 국제결제(決濟)에 사용하도록 하는 브레튼우즈 체제를 출범시켰다. 이후 각국은 국제결제를 위해서 달러화를 일정 규모 보유해야만 했다. 국제통화와 금융제도의 안정을 위해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도 설립됐다. 달러화 기축통화 시대의 시작이었다. 미국은 금본위제 체제하에 금태환을 보장하고, 다른 나라들은 달러화에 대해 자국 환율을 고정(peg)하며(금 1온스를 35달러에 고정), 필요한 경우 IMF를 통해 긴급여신(與信)을 제공받기로 했다. 미국의 환율은 변동될 수 있었지만 다른 나라들의 환율이 달러화에 고정되어 있어서 대외(對外)정책에서 미국에 종속된 상태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경제가 회복세를 보이면서 국제통화(通貨)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어났다. 하지만 금의 생산량은 국제통화에 대한 수요증가를 따를 수 없었다. 금의 공급 한계로 국제통화는 달러로 공급될 수밖에 없었고, 이는 필연적으로 달러화의 가치하락을 가져왔다.
 
  국제통화로서 달러화의 공급은 미국의 경상수지(經常收支) 적자(赤字)와 해외투자를 통해서 가능했다. 냉전(冷戰)시대의 군비(軍備)경쟁, 월남전 수행, 복지정책은 경상수지 적자를 더욱 크게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미국은 저금리(低金利)의 국·공채(國·公債)를 발행해 투자자금을 조달한 후 이를 해외에 투자해 높은 수익을 올렸다. 달러화의 과도한 발행은 인플레이션을 다른 국가들에 파급시키기도 했다. 이런 과정에서 달러화의 태환성에 대한 불안이 쌓여 가게 된다. 이런 불안은 결국 1971년 프랑스 등 유럽국가들의 대규모 금태환 요구로 나타났다. 미국이 이에 대해 금태환 금지조치를 단행하면서 미국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한 브레튼우즈 체제는 종말을 맞았다.
 
  미국의 금태환 금지조치의 단행 이후 금본위제도가 폐지되면서 소위 태환성이 없는 법정화폐(fiat money)가 일반화됐다. 국제통화체제는 관리통화제를 기반으로 하는 달러본위제로 변모됐다. 환율제도는 이전의 고정환율제도에서 변동환율제도로 바뀌었다. 하지만 미국의 국제적 지위가 여전하고, 세계통화로서 달러화를 대체할 수 있는 통화가 없기 때문에 달러화는 기축통화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세계경제질서를 결정한 1944년의 브레튼우즈회의.
 
  트리핀의 딜레마
 
  브레튼우즈 체제에서와 같이 달러본위제하에서도 국제 유동성은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와 대외투자를 통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이른바 ‘글로벌 불균형(global imbalance)’의 문제가 대두됐다.
 
  미국은 순대외(純對外) 채무를 자국민들에게 부담시키지 않고 달러화를 계속 발행하여 상환할 수 있었기 때문에 소득 이상의 소비가 가능했다. 신흥개발도상국이나 산유국(産油國)이 미국에서 벌어들인 경상수지 흑자는 미국에 투자되기 위해 환류(Dollar recycling)되면서 글로벌 불균형이 고착화됐다. 이런 글로벌 불균형은 1985년 플라자합의(Plaza Accord)와 1987년 루브르합의를 통해 소폭 해소되기는 했지만, 중국과 개도국의 경상수지 흑자가 늘어나면서 구조적인 불균형이 다시 확대됐다.
 
  이런 현상들은 ‘트리핀의 딜레마(Triffin’s dilemma)’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다. 1950년대 기축통화로서 달러화를 운용하던 미국에서 수년간 경상수지 적자가 이어지자 당시 미국 예일대 교수였던 로버트 트리핀(Robert Triffin)은 “미국이 경상수지 적자를 허용하지 않고 국제 유동성 공급을 중단하면 세계경제는 위축되고, 적자상태가 계속되어 달러화가 과잉 공급되면 달러화의 가치하락을 가져와 준비자산으로서 달러화의 신뢰를 떨어뜨리게 된다”고 경고한 바 있다. 말 그대로 미국은 기축통화국으로서 불가피하게 세계경제의 규모확대에 필요한 국제통화를 공급해야만 했고 이를 위해 경상수지 적자를 감내하고, 대외투자를 확대할 수밖에 없었다는 의미이다. 어쩌면 기축통화국으로서 피할 수 없는 태생적 한계라고도 할 수 있다.
 
  기축통화국으로서 미국의 이런 움직임은 커다란 소비시장을 제공함으로써 유럽 제국(諸國)과 일본, 최근에는 중국의 무역흑자를 가능하게 해준 측면이 있다. 따라서 기축통화국으로서 미국의 달러화 가치하락은 세계경제의 성장을 가져오게 한 원동력이 됐다고도 볼 수 있다.
 
  이런 과정에서 미국은 종종 기축통화국으로서의 지위를 이용하여 인위적으로 다른 나라의 환율절상을 기도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플라자합의이다.
 
그림2. 플라자합의 이후 엔화와 마르크화 환율 추이
 
  플라자합의
 
  플라자합의 당시 미국은 요즘과 마찬가지로 경상수지 적자가 더욱 심화되는 상황을 맞이하여 달러화의 가치하락이 크게 우려됐었다. 특히 대일(對日) 무역수지 적자가 크게 늘어나자 이를 엔화의 저평가 때문으로 보고 일본에 엔화의 가치를 상승시킬 것을 요구하게 된다.
 
  당시 일본 입장에서는 미국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컸고, 무역장벽을 받아들이느냐 환율절상을 하느냐의 선택의 기로(岐路)에서 환율절상(切上)을 선택하게 된다. 환율절상 후 일본은 제조업 전반의 경쟁력 강화, 수출상품의 고급화, 저(低)임금 지역으로의 해외진출과 같은 방법을 통해 생존의 길을 성공적으로 모색하게 된다.
 
  플라자합의 당시 엔화 환율은 238엔/달러였는데 3년 만에 53.8%나 하락한 128엔/달러가 됐다. 이 어려운 과정을 당시 일본이 잘 극복한 것은 그야말로 기적에 가깝다. 플라자합의 당시 일본의 일인당 GDP는 1만1000달러, 외환보유고는 267억 달러, 수출은 1770억 달러 수준으로 오늘날 한국의 경제보다 못한 수준이었다.
 
  오늘날 엔화 환율은 2010년 말 기준으로 87.7엔/달러로서 플라자합의 당시 환율의 36.8%에 불과한 수준으로 절상됐다. 미국 제조업체들은 달러 약세(弱勢)로 높아진 가격경쟁력을 바탕으로 1990년대 들어 해외시장에서 선전(善戰)할 수 있었고, 미국 경제의 회복에 큰 도움이 된 바 있다. 하지만 일본은 제조업의 성공적인 적응에도 불구하고 엔고(高)로 인한 버블붕괴 등으로 지금까지 플라자합의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플라자합의 당시 미국의 무역역조(逆調)를 심화시킨 것이 일본이었다면 요즘 그 역할은 중국이 담당하고 있다. 최근 미국과 중국 간의 위안화 절상을 둘러싼 줄다리기가 벌어지고 있다. 플라자합의 이후 일본경제가 직면했던 어려움과 그 시사점을 파악한 중국의 대응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중국의 누적 對美 무역흑자 2조3000억 달러
 
티머시 가이트너 미국 재무장관이 2010년 10월 6일 브루킹스연구소에서 가진 연설에서 중국의 위안화 절상을 촉구하고 있다.
  지금 세계는 중대한 변화의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그 중심에는 중국의 경제력 부상(浮上)이 자리하고 있다. 중국의 경제적 부상이 더욱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금융위기 이후 미국경제의 침체, 재정위기로 인한 유럽 선진국들의 경기불황과 일본의 장기침체로 주요 선진국들의 경제는 불황의 늪을 헤매고 있는 반면, 중국은 지속적인 성장으로 세계경제에서 위상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중국이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1990년 1.8%, 2000년 3.7%, 2008년 7.6%로 10년마다 세계시장에서의 비중을 2배씩 증가시켜 오고 있다. 과거 일본은 1970년 6.2%, 1980년 8.9%, 1990년 13.6%로 증가하다가 1994~95년 17.6%를 정점(頂點)으로 한 후, 2008년 약 8.1%로 크게 하락했다. 중국의 세계적 위상은 이제 8%대의 일본의 위상을 갖게 된 것이다.
 
  중국이 이렇게 부상하고 있는 반면에 미국이 세계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70년 31.2%, 1980년 23.3%, 1990년 26.2%, 2000년 30.4%에서 2008년 23.4%로 하락하고 있다. 미국의 경제적 위상 하락은 1980년과 1994년도에도 이미 경험한 바 있다. 하지만 최근의 하락세를 반전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중국의 위상 강화가 더욱 빛나 보이게 됐다.
 
  이런 성장세를 반영하여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며, 미국의 위안화 절상압력에 굳건히 버티고 있는 것이다.
 
  분명 미국의 위안화 절상압력에는 대중(對中) 무역역조의 시정이란 의도가 작용하고 있다.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공식적으로 채택한 1993년 이후 중국은 미국과의 무역에서 2001년까지는 수백억 달러 규모, 2002년부터는 1000억 달러 규모, 2005년 이후 지금까지는 2000억 달러 규모의 무역흑자를 보고 있다. 1993년 이후 2010년까지 중국의 대미(對美) 누적 무역흑자 규모는 2조3000억 달러로 중국의 외환보유고 2조8500억 달러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美, 물가상승 고통을 다른 나라에 전가
 
  미국 정부는 금융위기 이후 국내경기 부양을 위해 양적(量的)완화정책(quantitative easing·중앙은행의 금리인하를 통한 경기부양 효과가 한계에 봉착했을 때 국채매입 등을 통해 유동성을 시중에 직접 푸는 정책)을 추진했다. 그런데 최근에도 이를 지속함으로써 글로벌 과잉 유동성을 초래하고 국제간 통화가치 하락경쟁을 유발하고 있다. 이런 미국의 양적완화정책은 디플레이션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라고 하지만, 미국 내 실업(失業)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인위적으로 달러화 약세를 유도해 수출을 늘려 실업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은 달러화 가치하락에 대한 대응으로 위안화의 환율절상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달러화 하락은 미국 국채에 투자한 중국의 손실을 초래하고, 신흥시장에서 원자재(原資材)가격과 자산가격을 상승시키고 있다. 결국 미국의 경제회복을 위해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초래하여 물가상승에 따른 고통을 다른 나라로 떠넘기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로널드 매키넌(Ronald McKinnon)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문에서 “1971년, 2003년, 2010년 미국은 낮은 금리와 달러 평가절하 정책으로 전 세계에 인플레와 자산거품을 야기했다. 또 투기세력들은 미국에서 낮은 금리로 달러를 빌려 선물(先物)시장에 투자, 주요 원자재 가격을 급등시켰다”고 비판했다. 그는 “미국이 1971년부터 세계 기축통화인 달러화를 찍어 내면서 다른 국가들의 불만을 사 왔지만 이를 무시했다”며 “이는 전 세계와 미국 경제를 불안정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결국 미국은 이런 과정을 통해, 중세(中世) 봉건영주가 자신의 성내(城內)에서 화폐주조에 대한 배타적인 독점권을 가짐으로써 화폐주조를 통해 영주의 수입을 챙겼던 ‘세뇨리지(Seigniorage)’ 효과를 챙겼던 것이다.
 
 
  후진타오, “현재의 국제통화제도는 과거의 산물”
 
  작년 서울 G20 정상회의에서 중국 외 많은 나라의 지도자들이 달러의 기축통화로서의 지위에 대해 시비를 걸었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12월 서울 G20 정상회의가 끝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내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는 글로벌 기축통화 문제를 주요 의제로 설정하겠다. 책임감을 갖고 선진국과 신흥국들을 함께 이끌어 가겠다”고 했다. 서울선언문도 “국제경제의 시스템적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국제통화체제를 개선할 방안을 모색하기로 합의했다. 내년에 추가적인 분석과 제안을 검토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은 “달러화를 대체할 글로벌 기축통화 메커니즘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했다.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도 “국제무역 거래에서 달러화를 대체하는 방안을 협의해야 한다”면서 미국 달러화 중심의 세계 금융질서에서의 변화 필요성을 제기했다.
 
  금년 1월 미국 방문을 앞두고 중국의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1월 16일 《월스트리트저널》과 《워싱턴포스트(WP)》와의 공동 서면(書面)인터뷰에서 “달러 유동성은 비교적 안정된 수준으로 유지돼야 한다”면서 현재 미국의 통화정책을 비판했다. 그는 위안화에 대해서 “환율의 변화는 시장의 수급(需給) 등 여러 요인이 만들어 내는 결과”라며 “위안화가 국제통화가 되기 위해서는 매우 긴 과정이 걸릴 것”이라고 했다. 환율문제에 대해 그는 “현재의 국제통화제도는 과거의 산물”이라며 기축통화로서 미국 달러의 역할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에 대해 많은 사람은 중국이 달러화를 대신해 위안화의 기축통화로서의 역할 정립을 시도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중국 경제의 숙제들
 
  중국의 경제력이 앞으로도 크게 증가할 것이란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중국의 경제력이 최근 일본을 능가하기는 했어도 이런 성장세로 미국의 경제규모를 따라잡을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현재 중국의 GDP 규모는 미국의 3분의 1 수준으로 현재와 같은 성장세에다 환율절상이 이루어진다면 20년 내에 미국 수준에 도달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중국의 경제성장 패턴은 주로 투자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향이 강하다. 경제규모가 커짐에 따라 투자증가율이 하락할 경우 성장세는 둔화될 수밖에 없다.
 
  그 외에도 중국경제의 성장에 발목을 잡을 요인들은 많다. 소득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Gini)계수는 0.5가 넘어서 아르헨티나 수준의 빈부(貧富)격차를 보이고 있다. 가장 못사는 구이저우성(貴州省)의 GDP는 상하이(上海)의 7분의 1도 안된다. 이에 따라 일반 민중의 관리나 부자들에 대한 반감이 커지고 있다. 신뢰사회로의 길은 멀고, 고령화(高齡化) 사회의 도래, 인력부족에 따른 임금상승, 환경문제 등은 현재 중국의 성장세를 쉽게 용인하지 않을 요인이다. 설사 경제규모가 미국과 대등해진다고 하더라도 구성원들의 평균소득은 여전히 선진국 수준에 턱없이 모자랄 것이고, 저소득층의 생활고(生活苦)는 여전할 것이다. 이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경제력은 세계에 영향력을 발휘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위안화가 기축통화가 되려면
 
  중국의 위안화가 기축통화가 되려면 경제력뿐만 아니라 몇 가지 중요한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첫째, 세계 여러 국가 사이에서 기축통화로 사용되기 위한 조건은 한 나라 내에서 어떤 물건이 화폐의 역할을 하기 위한 조건과 마찬가지이다. 국가 간 거래에 있어서 다수(多數) 당사자 간에 교환수단과 가치(價値)척도의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하고 가치를 보전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위안화가 기축통화가 되기 위해서는 위안화를 사용하는 것이 다른 통화를 사용하는 것보다 다수가 사용하는 데 따르는 소위 네트워크(network) 효과를 발생시켜 거래비용을 줄여 줄 수 있어야 하며, 각 국가가 위안화를 보유함으로써 가치를 보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이를 위해서는 중국 내·외부로 위안화의 자유로운 유출입(流出入)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는 자본자유화가 완전히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본 유출입의 부작용을 두려워하고, 극도로 이를 통제하는 현재 상황으로 볼 때, 중국의 자본자유화에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셋째, 다른 국가들이 위안화를 보유함으로써 가치를 보전하기 위해서는 위안화 자산을 보유하고 증식할 수 있는 자본시장의 발달이 전제되어야 한다. 즉 위안화 자본시장의 폭과 깊이가 위안화 보유국가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원하는 형태로 자산을 보유할 수 있을 만큼 크고 깊어야 위안화에 기축통화의 역할을 부여하게 된다.
 
  현재 중국의 주식시장은 초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위안화 표시 채권시장은 이제 시작단계일 뿐이다. 외환시장은 고정환율제도를 취함에 따라 발전의 초기단계에 있다. 이들 자산시장이 성숙되려면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이는 한국의 자본시장 발달의 역사를 보더라도 충분히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국제사회가 중국을 신뢰하고, 기축통화국으로서의 지위를 신임할 수 있도록 기축통화국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중국은 아직 경제력에서의 가능성만 가지고 있을 뿐 이들 분야에서의 여건은 크게 부족하다.
 
 
  빚이 많아서 주인 노릇 하는 미국
 
  만약 중국의 위안화가 유일한 기축통화가 됐다고 해 보자. 중국은 세계경제의 지속적인 성장과 더불어 증가하게 될 국제유동성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중국의 장기적인 경상수지 적자가 불가피해진다.
 
  앞서 설명했던 트리핀의 딜레마를 극복하기는 힘들다. 중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가능해질 정도로 중국의 내수(內需)시장이 커지기는 더욱 힘들다. 중국 전체의 경제규모는 크더라도 구성원들의 소비역량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위안화의 해외 유통량 증대에 따른 중국내 통화정책 구사의 어려움, 위안화 수요의 증가에 대한 인플레이션 가능성, 자본자유화에 따른 서구 금융자본의 투기적 활동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도 관건이다.
 
  중국은 천문학적인 규모의 외환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활용하는 문제도 있다. 중국은 현재 미국이 발행한 국채 약 14조 달러 가운데 7%에 못 미치는 9000억 달러의 미(美)국채를 보유하고 있다.
 
  중국은 중국으로 흘러 들어오는 막대한 달러가 위안화 통화증발(增發)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해외 원자재 확보, 해외기업 인수, 외국의 국채매입 등 안간힘을 쓰고 있다. 위안화가 기축통화가 될 경우 중국의 채권(債券)시장이 발달하지 못한 상태에서 어디에 투자할 수 있을까.
 
  결국 상당기간 중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미국 국채가 가장 안전하다는 믿음을 가질 것이다. 불만이 있더라도 여전히 기축통화로서 달러화의 존재를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다.
 
  달러화는 여전히 국제통화로서 기득권을 누리고 있다. 막대한 외국자본이 미국에 투자되고 있는 한 달러화의 위상을 크게 위협할 통화는 없어 보인다. 케인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은행에서 1000파운드를 빌리면 은행이 주인이고, 100만 파운드를 빌리면 빌린 사람이 주인이다.”
 
  미국은 기축통화국으로서 만성적(慢性的)인 경상수지 적자라는 빚을 지고 있다. 이렇게 진 빚들은 미국에 환류되어 기축통화국으로서의 지위 강화에 활용되고 있다. 빚이 많아서 주인 노릇을 하게 된 것이다.
 
 
  국제통화로 위상 높아져 가는 위안화
 
  그렇다면 중국의 위안화는 어떻게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최근 위안화 절상과 관련하여 신경전을 벌였던 미국과 중국은 위안화의 국제적 지위향상에 대한 합의를 했다. 미국이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SDR)을 구성하는 바스켓 통화에 위안화를 추가하는 것을 지지한 것이다. 위안화를 기존 SDR 통화 바스켓에 포함된 미국 달러화, 유로화, 일본 엔화, 영국 파운드화와 대등한 국제통화로 인정한 것이다. 일종의 중국 달래기에 나선 것이다.
 
  중국은 천문학적인 무역흑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위안화 국제화를 추진해 오고 있다.
 
  2009년 7월 1일부터 처음 시작된 상하이·광저우·선전·주하이·둥관 5개 도시와 홍콩·마카오·아세안 간에 실시된 위안화를 이용한 무역결제가 그것이다. 이후 위안화 무역결제는 베이징 등 20개 성·광역시와 전 세계로 실시지역과 대상이 확대됐다. 이에 따라 현재 위안화 무역결제 규모는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크게 확대되고 있다.
 
  중국의 위안화 국제화 전략으로서 위안화의 자본시장 개방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 2010년 7월 홍콩에서 위안화 금융상품 판매가 시작됐다. 위안화 표시 채권의 판매가 시작된 것이다. 중국의 중국은행(Bank of China)은 미국에서 위안화 예금과 송금업무도 시작했다.
 
  이런 노력에는 위안화가 장차 기축통화가 될 수 있는 기초를 만들겠다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주된 의도는 아시아 지역에서 위안화의 지위 향상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뉴스위크》 편집장인 파리드 자카리아(Fareed Zakaria)는 《미국 이후의 세계(The Post American World)》라는 책에서 지난 500년 동안 3번의 힘의 균형을 바꾼 대이동이 있었다고 말한다. 15~18세기 서방의 부상, 19세기 미국의 부상, 그리고 최근에 경험하고 있는 ‘엄청난 힘의 대이동’이 그것이라고 했다. 최근의 힘의 이동은 미국의 쇠락이 아니라 ‘나머지들의 부상(The rise of the rest)’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나머지’란 누구인가. 당연히 경제력에서 일본을 추월하고 20년 내에 미국을 추월할지도 모른다는 중국이 첫 손가락에 꼽힌다. 인도·브라질·러시아도 나머지의 반열에 들어간다.
 
  2008년 전 세계를 강타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달러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가 추락하면서 위안화의 기축통화에 대한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금년에 프랑스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서도 기축통화의 재(再)구축을 위한 시도는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중국 위안화 단일의 기축통화는 앞서 언급한 여러 여건상 불가능하다.
 
 
  複數의 기축통화 체체 가능성 높아
 
  기축통화 개편 논의는 국제통화기금의 SDR이나 새로운 초(超)국적 통화(가령 방코)를 새 기축통화로 활용하는 방안이 검토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다 가능성 있는 것은 현재의 미국 달러화 하나의 체제에서 달러, 위안화, 유로 등 다수통화 체제로 이행하는 복수(複數)의 기축통화 체제로 귀착될 가능성이 높다.
 
  복수통화 시스템은 단일 기축통화국의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경상수지적자 압력을 감소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여러 나라로 하여금 외환보유를 다변화(多邊化)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에서 이상적(理想的)인 통화체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복수통화 체제는 단기적인 환율의 변동성을 높이고, 화폐전쟁(currency wars)의 범위를 크게 증가시킬 가능성이 있다. 아울러 세계적인 유동성 공급도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로 남게 될 것이다.
 
  따라서 복수통화 체제는 최상(the best)의 통화체제가 될 수도 있지만 최악(the worst)의 것이 될 수도 있다. 다자간 체제 내에서 협조체제를 잘 구축하느냐에 따라 그 성패(成敗) 여하가 결정될 것이다.
 
  다자간 협조체제는 환율 자체보다는 통화정책과 유동성 공급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복수 기축통화 체제로 가는 과정에서도 갑작스런 외환보유의 다변화, 유동성 부족, 지속적인 무역불균형과 같은 특별한 위험을 피하기 위해 국제협조를 강화하고 다방면에서 감시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 이런 위험성들은 위안화의 점진적인 국제화를 위한 중국의 전략이나 강화된 감시에 의해 충분히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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