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백악관 기자단(WHCA) 주최 만찬 참관기

‘대통령이 국민에게 던지는 웃음’의 精髓 보여줘

  • 글 : 유민호 워싱턴〈Pacific,Inc〉프로그램 디렉터  
글자 크기 조정
  • 스크랩
  • 본문 음성 듣기
  • 글자 크기 조정
URL이 성공적으로 복사되었습니다.
⊙ 만찬 참석비로 500달러 기부, 스폰서에 따라 참가비 달라
⊙ 오바마, 바이든 부통령의 말실수 등 패러디
⊙ WHCA 만찬은 1924년 쿨리지 대통령 때 시작, 케네디 때 여기자 참석 허용,
    클린턴 때부터 대통령 매년 참석

劉敏鎬
⊙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일본 마쓰시타 정경숙 15기.
⊙ SBS 보도국 기자, 일본 경제산업성 연구소(RIETI) 연구원.
    現 워싱턴〈Pacific,Inc〉프로그램 디렉터, 딕 모리스 선거컨설턴트 아시아 담당 소장.
WHCA만찬에 참석한 오바마 대통령 부부. 오마바 오른쪽이 에드윈 첸 WHCA회장, 미셸 오바마의 왼쪽이 코미디언 제이 레노.
한 나라의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서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기준 하나를 손꼽는다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은 3권분립, 언론자유, 인권보장과 같은, 제도적ㆍ헌법적인 기준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필자는 그 같은 전통적인 개념들과 더불어, ‘정치가의 웃음’을 강조하고 싶다. 이는 21세기, 특히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만인(萬人)의 만인에 대해 열린 시대’에 들어서면서 나타난 중요한 기준 중 하나다. ‘정치인의 웃음’ 가운데 특히 중요한 것은 모든 정치가를 대표하는 ‘대통령의 웃음’이다.
 
  ‘대통령의 웃음’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대통령이 스스로 만들어 보이는 웃음이다. 대통령이 많이 웃는 나라일수록 그 나라의 민주주의 수준이 높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나는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보다는 이명박(李明博) 대통령이 더 많이, 더 크게 웃는다고 생각한다. 역대 대통령들을 보면, 민주화의 진행에 따라 대통령이 더 많이 웃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둘째, 국민이 대통령을 소재로 해서 만들어내는 웃음이다. 텔레비전의 정치패러디, 즉 정치풍자극을 연상하면 된다. 어느 정치체제가 독재인지 여부를 측정하는 기준 중 하나는 바로 국민들이 그 나라의 최고지도자를 패러디할 자유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다.
 
  셋째, 대통령이 자기 자신이나 정치를 유머나 조크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국민들에게 선사하는 웃음이다.
 
 
  만찬 참석비로 500달러 기부
 
  매년 봄 워싱턴에서 열리는 백악관기자단(이하 WHCA) 주최 만찬(晩餐)은 ‘대통령이 국민에게’ 던지는 ‘대통령의 웃음’의 정수(精髓)를 접할 수 있는 기회다. WHCA만찬 직후 행해지는 대통령의 연설이야말로, 대통령의 웃음이 갖는 의미와 가치가 어떤 것인지, 왜 인간은 보다 성숙된 민주주의를 향해 계속 나아가야만 하는지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언제부턴가 한국정치의 화두(話頭) 중 하나로 등장한 ‘국격(國格)’이라는 말이 있다. 노무현(盧武鉉) 전 대통령을 통해 뼈저리게 느꼈지만, ‘국가의 품격’은 바로 ‘대통령의 품격’이기도 하다. WHCA만찬은 바로 ‘국가의 품격’, 즉 ‘대통령의 품격’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장소이다. WHCA만찬이 끝난 뒤 시작되는 5분 정도의 짧은 대통령 연설에서 들을 수 있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조크와 유머를 통해, 대통령이 얼마나 밝고 웃음을 즐기는 여유로운 인물인지를 국민들은 느끼게 된다.
 
  WHCA만찬은 행사 한 달 전에 친구인 백악관의 한 외교관련 스태프에게 500달러의 기부금을 내는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워싱턴의 오스카무대’로 불리는 WHCA만찬은 언제부터인가 만찬을 준비하는 각종 단체에 기부금을 내지 않으면 참석할 수 없다. 만찬비용을 낸다는 점에서 참가비를 내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른바 기부금이란 형식으로 식사비 외의 ‘플러스 알파’가 더 필요하게 된다.
 
  식사비만이라면 100달러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WHCA만찬 때 저널리스트를 위한 각종 지원기금의 재원(財源)으로 ‘플러스 알파’가 필요하기 때문에, 단순한 참가비가 아닌 기부금인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기부금을 모으는 스폰서가 누구냐에 따라 티켓 액수가 다르다는 점이다. WHCA가 직접 기부금을 모으는 경우는 거의 없다. WHCA에 소속된 언론사나 단체가 스폰서 자격으로 티켓을 받은 뒤, 주변의 관계자들에게 이를 판다. 스폰서들은 기부금을 그러모아 다시 WHCA에 지불하는 ‘다(多)단계 하청(下請)작업’을 맡게 되는 것이다. 백악관도 그 같은 다단계 하청작업을 담당하는, WHCA를 위한 스폰서 중 하나이다.
 
 
  리셉션장은 파워게임의 현장
 
필자의 만찬 참가 티켓.
  5월 1일 저녁 6시, WHCA만찬이 열리는 워싱턴의 힐튼호텔 주변으로 들어서자 이미 중(重)무장한 경호원과 경찰들로 도로 전체가 마비되어 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도로 마비의 주범(主犯)은 할리우드 스타들을 태우고 온 리무진 세단들이었다. 힐튼호텔 입구에는 수백명에 이르는 카메라맨과 10대들이 뒤엉켜 있었다. 이들이 주목하는 사람은 워싱턴 정치나 세계 외교를 좌지우지하는 정치가나 유명 언론인이 아니라, 붉은 카펫에 익숙한 할리우드 스타들이었다. 때마침 록의 전설인 본 조비가 리무진 세단에서 내리자 호텔입구는 10대들의 함성과 카메라의 불빛으로 아수라장이 됐다.
 
  호텔 안으로 들어가자 검색대가 눈에 들어왔다. 턱시도와 이브닝 드레스 차림인 2600명의 초대객은 누구 하나 예외 없이 길게 줄을 선 채 검색을 기다렸다. 필자는 만찬시각에 비해 1시간30분 일찍 도착한 덕분에 검색대를 통과하는 데는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나중에 온 초대객들은 검색을 받는 데 30분 이상 걸렸다고 한다.
 
  지하 1층으로 내려가자 WHCA만찬을 스폰서하는 언론기관이나 단체들 명의의 리셉션 장소가 마련돼 있었다. , <뉴스위크>, <타임>, <로이터>, , <애틀랜틱 저널> 같은 언론사들이 자신의 리셉션장을 따로 마련해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각 언론사는 자신들의 이미지에 걸맞은 장식을 한 리셉션장을 선보였다. <뉴스위크>는 미(美) 전역에서 이뤄진, 다양한 앵글로 잡은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장면을 사진으로 만들어 벽에 걸어두었다.
 
  언론사의 리셉션 장소는 전부 20여 군데로, 만찬식장 주변을 따라 설치돼 있었다. 와인이나 작은 다과들이 제공되는 초대객 한정의 리셉션장은 각자의 파워를 과시하는 보이지 않는 싸움터이다. 자신의 리셉션장에 오바마가 왔다가는지, 정부의 실세(實勢) 가운데 누가 오는지, 할리우드 스타와 월스트리트의 명사 가운데 누가 초대됐는지는 현장에 참석한 기자들을 통해 곧바로 기사화된다.
 
  때마침 <로이터>가 주최한 리셉션장에 글로벌 미디어 황제인 루퍼트 머독이 나이 차가 40세 넘는 중국계 부인과 함께 들어왔다. “머독이 <로이터>를 구입하려는 것이 아닌가”라는 말이 옆에서 들려왔다.
 
  저녁 7시30분에 맞춰 만찬장에 들어서자, 10여 명씩 앉는 테이블 261개가 한눈에 들어왔다. 만찬 테이블은 1번부터 261번까지 고유번호가 적혀 있다. WHCA만찬은 자신이 받은 티켓에 적힌 지정석에서만 식사를 할 수 있다.
 
  만찬 참가비는 대통령 부부가 앉은 중앙무대와 가까울수록 비싸진다. 필자에게 배정된 104번 테이블은 중앙무대에서는 멀지만, 대통령을 정중앙에서 볼 수 있는 자리라는 점에서 마음에 들었다.
 
 
  만찬 와인은 15달러짜리 저가품
 
<뉴스위크> 리셉션장에 마련된 오바마 사진.
  자리에 앉는 순간 중앙무대를 눈앞에 둔 무대 앞 테이블에 세계적인 유명인사들이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NBC의 톰 브로카우와 같은 톱 저널리스트를 비롯해, 정치ㆍ경제ㆍ문화ㆍ예술ㆍ금융 등 각 분야의 명사들이 모인 축제의 장소였다. 이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면서 친분을 쌓았다.
 
  WHCA만찬에 매년 참석하고 있다는 <워싱턴 포스트>지의 한 기자는 “만찬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부시 전 대통령 시절에 비해 활기차고 즐겁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민주당을 지지하고 특히 오바마를 따르는 할리우드 스타가 많이 참석했고, 전체 참석자의 평균연령이 공화당 때에 비해 젊어진 것이 그 원인인 듯했다.
 
  만찬의 메뉴는 애피타이저와 두 개의 메인, 디저트로 구성된 풀코스였다. 애피타이저는 캘리포니아산 바질과 꼬마배추, 콩잎, 게살로 구성된 샐러드, 메인은 중국식 프라이드 롤을 연상시키는 버터로 버무려진 야채 롤과, 버지니아산 콩과 펜실베이니아산 버섯이 곁들여진 그릴 참치가 나왔다. 미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요리지만, 대부분 유기농 제품이란 점에서 일반 레스토랑의 음식과 달랐다. 디저트는 초콜릿 토리플과 바질이 들어간 치즈케이크 가운데 선택을 할 수 있었다.
 
  화이트 와인은 베니진저(Benizinger)의 소비뇽 블랑, 레드 와인은 베니진저의 메를로가 나왔다. 캘리포니아 소나마에서 생산된 2007년산 베니진저는 둘 다 15달러 선으로, 미국 어디에서도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저가(低價) 와인이다.
 
  흔히 WHCA만찬이라고 하면 할리우드 스타와 비싼 프랑스식 코스요리, 샴페인을 연상하지만, 실제 WHCA만찬에는 샴페인도, 프랑스 요리도 없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같은 테이블에 앉았던 통신 기자는, “WHCA만찬에서 샴페인이 사라진 것은 프랑스와 관계가 나빠지기 시작한 1960년대부터”라고 말했다.
 
  식사 도중 8시쯤 ‘대통령찬가’와 함께 오바마 대통령 부부가 중앙무대에 나타났다. 오바마 대통령은 검은색 양복에 짙은 푸른색 넥타이를, 미셸 오바마는 붉은 이브닝 드레스를 입었다. 만찬장 전체가 환호와 카메라 불빛으로 뒤덮였다. ‘세상 어떤 정치가도 이처럼 진심에서 우러나는 큰 환대를 받는 경우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만찬은 7시30분에 시작돼 9시에 끝날 예정이었다. 하지만 객석을 오가면서 이뤄지는 유명인사들 간의 대화가 끝없이 이어지는 바람에 만찬은 예정시간을 넘어서도 계속됐다. 중앙무대에서는 대통령 부부와 함께 지원인사로 나온 심야토크쇼의 제왕 NBC 투나잇 쇼의 제이 레노(Jay Leno)가 식사를 하면서 초대된 유명인사들과 함께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WHCA만찬의 하이라이트인 대통령의 연설이 시작된 것은 예정시각을 1시간 정도 넘긴 밤 10시4분이었다. 대통령 연설에 앞서 미셸 오바마가 WHCA가 주는 각종 저널리스트기금 수상식의 메인 호스티스로 무대 중앙에 자리 잡았다.
 
  대통령의 연설은 WHCA의 회장이자 블룸버그의 회장 에드윈 첸(Edwin Chen)이 대통령을 위한 축배를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중국계인 에드윈 첸은 아시아계(系) 최초로 WHCA 회장이 된 인물이다. 전 세계를 놀라게 만드는 중국의 파워는 WHCA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었다.
 
 
  20대 인턴이 대통령 연설 초안 작성에 참여
 
미디어 황제 루퍼트 머독(오른쪽)과 필자.
  WHCA만찬에서 행해지는 대통령의 연설은 앞서 말한 ‘대통령이 국민에게(From President to People)’ 던지는, 대통령이 스스로를 패러디하면서 만들어내는 ‘대통령의 웃음’의 대표적인 케이스이다.
 
  대통령은 자신을 소재로 기사를 쓰면서 살아가는 저널리스트를 상대로, 미국 정치문화에서 빠뜨릴 수 없는 유머와 위트를 활용한 블랙 스피치를 행한다. 백악관에는 대통령 연설을 담당하는 스피치 라이터 이외에 두 명의 20대 인턴이 대통령 연설의 초안에 관여한다. 대통령의 연설이 너무 어려운 단어나 내용으로 이뤄진 것은 아닌지를 보통 20대 기준에서 점검하기 위해서다. 대통령의 연설 속에 국민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유머나 위트가 적절히 들어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원래 오바마는 성장배경에서 보듯, 모두와 공유(共有)하고 여유를 찾는 모습보다는, 혼자 있기를 좋아하고 뭔가를 열심히 노력하는 ‘의지형 리더’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러나 미국 사회에서 ‘강인한 의지형 리더’는 환영받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심각하게 긴장하기보다는, 하루하루 즐겁고 웃으면서 살자는 것이 보통 미국인들의 생활방식이기 때문이다. 미국민들은 오바마의 성장배경을 존경하기는 하지만, 그런 삶의 방식을 자신들의 일상 속에 받아들이겠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생중계한 올해 WHCA만찬은 오바마에 대한 위와 같은 부정적 이미지를 씻어내는 데 큰 도움이 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뉴욕타임스>가 ‘샴페인과 할리우드 스타로 넘치는 워싱턴의 고급파티’라면서 WHCA만찬을 보이콧했지만, 일반 국민들은 그 같은 ‘이념적’ 주장에 관심이 없다.
 
 
  바이든 부통령의 말실수 패러디
 
오바마 대통령의 비서실장인 램 이매뉴얼(오른쪽)과 필자.
  연설에서 오바마는 먼저 말실수로 인해 항상 미디어로부터 공격을 받는 조 바이든 부통령을 화제로 꺼냈다.
 
  “나는 당초 이 행사에 참석해야 할지 결정을 못했는데 바이든은 ‘나에게 이건 보통 저녁식사가 아니라 매우 중요한 만찬(This is a big [bleeping]... meal)’이라고 조언했다.”
 
  오바마가 말한 ‘중요한(a big)’과 ‘만찬(meal)’ 사이에 들어간 ‘삐’라는 소리는 보통 방송에서 비속어를 감출 때 사용하는 음향효과이다.
 
  오바마는 4월 23일 백악관에서 열린 건강보험개혁법안 서명식에서 들통난 바이든 부통령의 ‘말실수’를 패러디한 것이다. 당시 바이든은 미국 전역에 TV로 생중계된 법안 서명식에서 오바마와 포옹한 뒤 “정말 대단해!(big fucking deal)”라고 귓속말을 했다. 바이든의 이 ‘F욕설’은 미국 국민에게 그대로 전달됐다. 오바마가 얘기한 “This is a big [bleeping]... meal)”에서 “.....”으로 처리한 부분은 ‘fucking’을 대신하는 것인 셈이다.
 
  오바마는 이어 지난 대선(大選)에서 자신과 대결했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을 패러디의 제물로 올렸다.
 
  “매케인 의원은 스스로를 ‘독불장군(매브릭)’으로 인정한(identified) 적이 없다고 말해 왔는데, 애리조나주에서 신분증(ID)이 없으면 어떻게 되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오바마는 최근 미국 전역에서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초강경 이민단속법을 제정한 애리조나주가 매케인의 지역구란 점에 착안, ID가 없는 히스패닉이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매케인에 비유해 청중을 웃음으로 유도했다. 그가 이런 조크를 하면서 스페인어로 ‘아디오스 아미고(Adios Amigos-친구여 잘 가요)’라고 말한 것은 미국 선거에서 유력한 유권자 그룹으로 떠오른 히스패닉 표를 의식한 것이다.
 
 
  대통령의 시구에 대한 상반된 보도
 
블룸버그 뉴욕시장(오른쪽)과 필자. 블룸버그 시장은 이날 만찬이 끝날 무렵 뉴욕차량테러 미수사건으로 곤욕을 치렀다.
  오바마는 이어 “금융업과 GM과 크라이슬러를 비롯한 모든 사람이 자신에게 도와달라고 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미디어산업도 구원을 요청하고 있다”면서 “나는 결코 ‘전지전능한 사람(Miracle Worker)’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오바마는 비디오를 통해 자신을 지지하는 매체와 반대하는 매체가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주었다.
 
  지난 4월 초 미(美)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워싱턴 내셔널스와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개막전 시구식에 참가한 자신에 대한 서로 다른 평가가 조크의 대상이었다.
 
  “(나를 반대하는) 보수성향의 폭스뉴스는 ‘대통령이 너무 왼쪽으로 치우치게 볼을 던졌다’고 전했고, (나를 지지하는) MSNBC는 ‘대통령이 안타를 칠 수 없도록 던졌다’고 보도했다.”
 
  오바마는 자신의 지지율이 지난 9개월 동안 계속 떨어지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그렇지만 나의 고향(하와이)에서는 계속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약 8분간 계속된 오바마의 연설은 4번의 박수와 10번의 웃음으로 도중에 중단됐다. 청중의 박수와 웃음이 없었다면 4분 만에 끝냈을 만한 연설이었다.
 
  필자는 다음날 하루종일 MSNBC를 통해 대통령의 연설을 분석해 보았다. 외국인인 필자로서는 그제야 겨우 이해한 조크도 있지만, 대통령의 연설은 미국에서 초등학교를 나온 사람 정도라면 누구나 웃을 수밖에 없는 풀뿌리 조크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오바마의 연설 후에는 제이 레노의 유머와 재담이 20분 정도 계속됐다. WHCA만찬이 완전히 끝난 것은 밤 11시20분이 넘어서였다.
 
  만찬이 끝나는 즉시, 갑자기 수많은 기자들이 블룸버그 뉴욕시장에게 몰려들었다. 만찬 도중 계속 전화를 받고 있던 블룸버그 시장은 뭔가를 기자들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폭탄차량이 발견됐다”는 말이 누군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아이폰을 열어 보니, 어느새 뉴욕 폭탄테러 미수(未遂)관련 뉴스가 전 사이트를 지배하고 있었다. ‘국가의 품격’, ‘대통령의 품격’도 탈레반의 폭탄테러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조간신문에는 ‘폭탄테러 중 고급호텔에서 만찬을 즐긴 턱시도 차림의 뉴욕시장’이란 기사가 블룸버그 시장의 사진과 함께 실려 있었다.⊙
 
▣ WHCA만찬의 어제와 오늘
 
  1924년 쿨리지 대통령 때 만찬 시작
 
1950년대 백악관기자단. 전부 백인남성으로만 구성돼 있다.
  WHCA는 1914년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백악관은 제1차세계대전의 와중에서 대(對)국민 언론홍보가 절실했다. 고립주의를 주창하던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참전을 주장하는 의회 측 인사의 입장에 맞서기 위해 정기적인 기자회견을 준비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의회담당 기자가 백악관을 동시에 커버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따라서 의회기자단은 윌슨 대통령의 기자회견에 참석하는 기자명부를 자신들이 결정하려고 했다.
 
  WHCA는 의회기자단의 방침에 반발, 대통령 기자회견 참석자를 자신들이 직접 결정하겠다고 선언했다. WHCA 창설은 백악관기자단이 의회기자단으로부터 독립한다는 의미인 동시에, 대통령이라는 헌법기관이 의회에 비교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WHCA가 공식적으로 출범한 것은 1920년이다. 초대(初代) 회장은 1914년부터 백악관기자단 독립을 주장해 온 <워싱턴 스타>(WS)지의 W.W. 프라이스 기자였다.
 
 
  케네디 때부터 여성 기자 참석 허용
 
  오늘날처럼 대통령이 참가하는 WHCA만찬이 처음 열린 것은 1924년이다. 평소 기사나 가십을 통해 대통령을 공격하고 비난하지만, 이날만은 휴전(休戰)을 하고 ‘기자 대 대통령’으로서가 아니라 친구로서 즐겁게 지내자는 것이 그 취지였다. 이 같은 생각에 처음으로 응한 대통령은 캘빈 쿨리지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술과 노래가 있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평소와는 다른 모습을 기자들에게 보여주었다. WHCA만찬에 가면 대통령의 블랙조크와 유머를 들을 수 있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기 시작했다. WHCA만찬은 출발 때부터 워싱턴을 대표하는 최대 최고의 파티로 자리 잡았다. 최고급 요리가 끝난 뒤에는 백악관 전속 군악단의 음악과 영화가 포함된 오락이 심야까지 제공됐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전쟁기간 동안 백악관 밖의 만찬이나 오락행사에는 전부 불참했지만, WHCA만찬은 빠짐없이 참석했다. 그는 WHCA만찬에 참석한 기자들과 함께 블랙 유머를 즐기거나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전쟁 중에 샴페인을 터트리고 함께 노래를 부른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루스벨트는 그 같은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어두워지고 무거워지기 쉬운 때니까 더더욱 즐겁고 밝은 모습으로 생활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여성 기자의 참석이 허용된 것은 1962년 케네디 대통령이 취임한 후부터였다. 원래 WHCA는 철저하게 백인 남성 위주로 구성된 영국식 신사클럽이었다. 여성만이 아니라, 유대인ㆍ흑인ㆍ아시아인의 출입을 암암리에 금지하는 곳이 WHCA였다. 가톨릭 신자인 케네디는 “여성기자의 참가를 허용하지 않을 경우 만찬에 가지 않겠다”고 위협(?), 결국 여성기자도 WHCA만찬에 초대받게 만들었다.
 
  케네디의 도움으로 WHCA에 가입해 만찬에 참석한 여기자는 지난 6월 유대인 비하 발언으로 백악관기자를 사직한 헬렌 토머스(89)이다. 1942년 <워싱턴 데일리>지 기자로 시작, 최근까지 칼럼니스트로서 백악관을 담당했던 그는 올해 WHCA만찬 때에도, 식사시각 1시간 전부터 혼자 식사 테이블에 앉아서 오바마 대통령을 기다리는, ‘발 빠른 기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클린턴 때부터 대통령 매년 참석
 
  최근 들어 WHCA만찬에 대통령이 참석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되고 있지만, 실제로 대통령이 봄에 열리는 WHCA만찬에 한 해도 빠짐없이 참가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이후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WHCA만찬은 대통령이 임기 중 많으면 2번 정도 들르는 행사였다.
 
  WHCA만찬이 대통령이 매년 얼굴을 내미는 행사로 자리 잡은 것은 ‘파티 애니멀(Party Animal)’, 즉 ‘파티광(狂)’으로 불린 클린턴 대통령 때부터였다. WHCA만찬 참가자를 종전의 기자나 백악관 직원뿐 아니라, 할리우드 스타로까지 확대시킨 것도 클린턴이다. 할리우드 스타의 90%가 클린턴을 지지하는 상황에서 백악관 담당기자가 아니라 영화ㆍ음악ㆍ패션 관계자들이 WHCA만찬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했다. 클린턴은 로비스트와 월스트리트 금융인 등 자신의 지지자들도 WHCA만찬에 초대, 참가자 규모를 대폭 확대했다.
 
  클린턴 이후 WHCA만찬은 현재 워싱턴에서 가장 큰 파티공간을 가진 호텔 중 하나인 코네티컷가(街) 소재 워싱턴 힐튼호텔 지하실에서 열린다. 이 호텔은 10인용 테이블 300개가 한꺼번에 들어가 3000명이 동시에 식사를 즐길 수 있는 초대형 호텔이다.
 
  WHCA만찬이 미국민 전체의 관심사로 등장한 것도 이때부터다. 이와 함께 돈과 스타, 정치가가 함께 어울리는 WHCA만찬이 부패의 온상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 같은 점을 고려해 WHCA는 참신한 아이디어를 WHCA만찬에 끼워 넣게 됐다. 1990년대 중반, WHCA만찬은 저널리즘에 관계하거나 취재와 관련해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 전 세계의 유능한 기자들을 발굴해 수상하는, ‘저널리즘의 오스카 무대’로 기능하게 됐다. 대통령 부인은 여기서 시상식 호스티스 역할을 맡았다. 이번 WHCA만찬에서 미셸 오바마는, 컬럼비아대학이 제공한 3만1000달러의 연구기금을 이스라엘 출신 저널리스트에게 제공하는 등, 전부 6개의 기금을 전 세계 기자들과 저널리즘을 전공하는 학생이나 연구원에게 전달했다.
  • 스크랩
URL이 성공적으로 복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