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이나 아웃” vs “내 이웃 중국 동포 혐오 말라”
⊙ 2호선·7호선 ‘황금 노선’ 역세권이지만 월세는 서울에서 제일 저렴
⊙ 한국어 전혀 써놓지 않은 가게도… “소수 중국 동포가 문제” 억울함 호소
⊙ 2호선·7호선 ‘황금 노선’ 역세권이지만 월세는 서울에서 제일 저렴
⊙ 한국어 전혀 써놓지 않은 가게도… “소수 중국 동포가 문제” 억울함 호소
- 최근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일대에서는 반중 시위와 반중 반대 시위가 동시에 열리고 있다. 사진=SNS 갈무리
“아가씨 혼자 이런 곳 오면 안 돼요. 오후 4시 전에 얼른 나가야 합니다.”
서울시 영등포구 대림동을 찾은 기자에게 한 시민이 건넨 말이다. 지하철 출구를 올라가다 만난 그는 중국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시에서 태어나 돈을 벌기 위해 30년 전 서울에 왔다고 했다. 그는 “무거운 짐을 들어 줘 고마워서 하는 당부”라며 능숙한 한국어로 기자의 발걸음을 돌리려 애썼다. 대림동은 서울의 중심부를 순환하는 2호선, 이른바 ‘황금 노선’이 지나는 곳임에도 왜 위험하다는 말을 듣게 된 걸까?
“아가씨 혼자 이런 곳 오면 안 돼요.”
지난 8월, 유튜브 채널 ‘워크돌’에서는 여자 아이돌 ‘츠키’가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일대를 순찰 체험하는 영상이 공개됐다. 영상 속 한 휴대전화 대리점에는 중국어로 ‘불법 여권으로 카드 개통(非法护照开卡)’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일반적으로 ‘카(卡·잡)’는 ‘신용카드’를 뜻하는 차자(借字)이지만, 이곳이 휴대전화 매장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포폰에 사용되는 불법 유심 칩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츠키의 영상 속에선 한국어 간판을 찾기 어려웠고, 츠키가 말을 걸면 대부분 중국어로 대답했다. 심지어 한국에 거주하면서도 한국어를 전혀 못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 같은 기현상에 정부의 중국인 무비자 입국 허용 정책이 기름을 부었다. 지난 9월 29일 이재명 정부는 중국 단체 관광객의 한시적 무비자 입국을 허용했다. 이후 명동과 대림동 등 중국인 관광객과 거주민이 많은 지역에서는 “차이나 아웃(China Out)” “무비자 입국 반대”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 시위가 잇따랐다. ‘자유대학’ 등이 제작한 일명 ‘짱북송(짱개·북괴 노래)’이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기도 했다.
국민의힘이 10월 9일 중국인의 의료·선거·부동산 등 이른바 ‘3대 쇼핑’ 방지법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히며 논란은 한층 커졌다. 중국인들이 납부한 건강보험료보다 더 많은 의료 혜택을 누린다는 ‘의료 쇼핑’, 부동산을 투기 목적으로 매입한다는 ‘부동산 쇼핑’, 영주권 취득 후 3년이 지나면 한국에 거주하지 않아도 투표할 수 있다는 ‘선거 쇼핑’이 타깃이다.
이에 맞서 대림동에서는 조선족과 한국인들이 반(反)중국 시위에 대응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내 이웃 중국 동포 혐오 말라” “내 친구 중국인 환영한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서울이면서 중국에 더 가까운 곳, 대림동과 가리봉동은 왜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됐을까? 기자는 직접 두 지역을 찾아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칼부림 환자 많이 온다”
대림역에 내리면 가장 먼저 알싸한 고수 향이 코끝을 자극한다. 중국을 여행했을 때 맡았던 그 냄새다. 이 향은 대림중앙시장 근처로 갈수록 짙어진다.
지하철역을 나서자마자 이색적인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거리엔 한국어보다 중국어 간판이 훨씬 많고, 아예 한국어 표기가 전혀 없는 식당도 적지 않다. 꿩고기·보신탕·중국식 순대 등 한국에선 흔히 보기 힘든 음식들이 도로변 매대와 노점에 진열돼 있다.
인근 구로구 구로동에는 고려대 구로병원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A씨를 만났다. 그는 ‘대림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처음 고대 구로병원에 들어오면 선배들이 당부하는 내용이 있다”며 “대림시장 근처로는 절대 가지 말라는 게 불문율”이라고 말했다.
― 왜 대림중앙시장 근처에 가면 안 된다고 하던가요?
“치안이 안 좋기 때문입니다. 자전거로 출퇴근하던 교수님 한 분이 계셨는데, 어느 날 길을 잘못 들어 대림중앙시장 쪽으로 가셨다가 칼부림 현장을 목격하셨다고 해요. 그 이후로는 꼭 대중교통으로만 다니신다는 이야기가 ‘족보’처럼 내려옵니다.”
― 대림동과 가장 가까운 종합병원이니 오며 가며 듣는 이야기도 많을 것 같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칼부림으로 팔이 거의 잘릴 정도로 다친 환자가 왔어요. 응급실 환자 중엔 흉기에 의한 부상자가 많습니다. 그래서 직원들 대부분은 늦은 밤엔 절대 밖을 돌아다니지 않습니다. 한국인 직원들은 오피스텔 밀집 지역에서 생활하거나, 치안을 이유로 아예 신도림 쪽에 거주지를 두는 경우가 많아요.”
― 그런 일을 직접 겪은 적도 있나요?
“2년 전, 친구가 집에 놀러 와서 늦게까지 함께 술을 마신 적이 있습니다. 귀갓길에 밤이라 무서워서 손을 꼭 잡고 걸었는데, 길목에 어린이집이 하나 있더라고요. 둘 다 ‘어린이집이 있으니 안전하겠지’라며 그 앞을 지나갔어요. 그런데 다음 날 범죄 뉴스에 그 어린이집 CCTV 화면이 나오더군요. 저희가 지나간 그때 범인이 그 안에 숨어 있었다는 거예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소름이 돋습니다.”
“인플루언서들이 대림동 자주 방문”
기자는 나름 중국 음식을 즐기는 마니아다. 전통 사천(쓰촨) 음식인 마라탕을 좋아하고, 향신료에도 거부감이 없다. 그러나 대림동 거리의 매대에 진열된 음식들은 낯설었다. 대부분 처음 보는 재료들이었고, 한자로 적힌 메뉴도 알아보기 어려웠다. 그나마 순대처럼 보이는 음식을 가리키며 “얼마냐”고 묻자, 가게 주인 B씨는 뜻밖에도 다정한 한국어로 “한국 분이시냐” 물었다.
― 한국인 티가 나나요?
“많이 나죠. 생긴 건 비슷하지만 말투가 다릅니다. 그리고 보통 중국 동포들은 중국어로 얼마냐고 묻지, 한국어로 묻지는 않아요.”
― 한국인들이 대림동에 많이 방문하는 편인가요?
“실제 거주하는 한국인들보다는 중국인들이 훨씬 많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틱톡(TikTok)이나 SNS에 중국 음식이 유행하면서,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중국식 빵(결 따라 찢어지는 식빵)’ 같은 걸 찾으러 인플루언서들이 자주 옵니다.”
B씨는 한국인들이 주로 사간다는 물건들을 보여 줬다. 기자도 SNS에서 본 적 있는 음식들이었다. 순대 맛도 제법 괜찮았다. 다정한 말투 덕분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번역 앱으로 대화
― 요즘 대림동에서 ‘중국인은 나가라’는 집회가 자주 열린다고 하더군요.
“참 속상합니다. 대림동에 중국 동포들이 많이 사는 건 사실이지만, 오랫동안 한국에 자리 잡고 살아온 만큼 억울한 부분도 많아요. 우리는 한국 사람들과 중국 동포들이 함께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요즘은 차별이 너무 심해져서 마음이 아픕니다. 물론 한국 사람들이 우리를 거북해 하는 건 이해합니다. 영화 〈범죄도시〉처럼 중국 동포를 부정적으로 그린 미디어가 많았으니까요.”
― 속상하셨겠군요.
“영화가 처음 나왔을 때 정말 속상했습니다. 폭력적인 사람은 어느 지역에나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강력 사건이 자주 일어나지 않습니까. 우리 동포 사회도 마찬가지예요. 소수가 저지른 일을 미디어가 자꾸 부풀리고 왜곡하는 게 문제입니다.”
― 한국어가 저보다 능숙한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산 지 20년이 넘었어요. 당연히 익숙해질 수밖에 없죠. 한국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TV를 보면서 한국어 말투를 열심히 익혔습니다. 예전에는 중국 동포들끼리만 어울리다 보니 한국어가 서툴렀는데, 함께 살아가려면 우리도 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B씨는 “요즘 대림보다는 가리봉동에 중국 사람들이 더 많이 사는 편”이라며 “전통적인 중국 생활상을 보려면 가리봉동으로 가보라”고 권했다. 그의 말에 따라 가리봉동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도보로 15분 거리로 매우 가까운 곳이다.
가리봉동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낯선 시선이 따라붙었다. 식사를 막 마친 듯한 이들이 야외 의자에 줄지어 앉아 있었고, 그들의 눈빛은 기자를 유심히 관찰하는 듯했다. 왠지 모를 경계심이 느껴져 서둘러 인근 식료품점으로 들어갔다.
가게 안에는 온통 중국 식품뿐이었다. “한국 음료는 없냐”는 기자의 물음을 주인은 알아듣지 못하고 거듭 중국어로만 되물었다. 결국 번역 애플리케이션을 통해서야 대화가 가능했다.
― 한국 식품은 아예 팔지 않는 건가요?
“아예 안 팔지는 않습니다. 중국 동포들을 위한 식료품을 파는 곳일 뿐입니다.”
― 가리봉동에 거주하는 중국 분들의 이야기를 더 들어 보고 싶습니다. 어디로 가면 좋을까요?
“가리봉시장 안쪽으로 들어가면 됩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잘 해줄지는 모르겠습니다.”
가리봉시장 안쪽으로 들어서자 다시 수많은 시선이 따라붙었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도 기자를 반갑게 맞이하는 상인들이 더러 있었다. 골목을 오가는 순찰대의 모습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전통시장이지만 ‘한국 같지 않은 곳’
가리봉시장은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전통시장 같았지만 동시에 ‘한국 같지 않은 곳’이었다. 시장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중국인이었고, 한국인은 기자뿐인 듯했다. 이들은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다가도 곧 중국어로 말을 바꿨다. 두 언어를 섞어 쓰는 모습이 자연스러워 보였다. 대림동은 그래도 간판에 한국어가 함께 적혀 있었지만 가리봉동은 달랐다. 거리엔 중국어 간판만 즐비해 마치 중국의 한 거리에 떨어진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시장을 걷다 보니 환전소와 여행사 간판이 줄지어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중국 면허증 갱신’ ‘영주권 취득’ ‘외국인등록증 연장’ ‘유전자 검사’ ‘국민건강보험용 결혼 공증’ 등의 문구가 눈에 띄었다. 유튜브 영상에서 문제가 됐던 ‘불법 여권으로 카드 개통’ 같은 문구는 보이지 않았다. 가장 눈에 띄는 휴대폰 매장 안으로 들어서자 주인 C씨가 기자를 반갑게 맞았다.
― 최근 문제가 됐던 것이 불법적인 카드 개통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거리를 둘러보니 그런 간판은 보이지 않더군요.
“가리봉동 주민들도 모두 조심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소수만 하는 것이라고 해도 불법은 불법입니다. 모두가 조심하고 있습니다.”
― 카드 개통 등 불법적인 일을 의뢰하는 사람이 많나요?
“솔직히 말해서 요즘도 좀 있습니다. 가끔 불법체류자 몇 명이 찾아와 대포폰이나 대포통장 개통을 묻곤 합니다.”
‘내국인 출입 불가’
몇 시간 동안 대림동과 가리봉동을 둘러본 기자는 마치 순간이동으로 중국 여행을 다녀온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쓰레기 무단 투기 집중 단속 실시’ 같은 안내문조차 모두 중국어로 적혀 있었고, 거리 곳곳의 포스터와 공지문 역시 중국어 일색이었다. 하숙집 임대 광고가 붙은 벽보에는 믿기 어려운 숫자들이 적혀 있었다. 최근 서울의 평균 월세(月貰)가 70만원을 넘어섰다고 하지만, 가리봉동의 월세는 대부분 25만원을 넘지 않았다.
길을 걷다 보니 ‘내국인 출입 불가’라고 써붙인 가게가 눈에 띄었다. 빨간 중국어 아래 한글로 단호한 어조로 적혀 있다. 이들이 말하는 ‘내국인’은 한국인일까 중국인일까? 전자(前者)라면 서울 한복판에서 한국인이 출입할 수 없는 가게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문득 씁쓸해졌다.⊙
서울시 영등포구 대림동을 찾은 기자에게 한 시민이 건넨 말이다. 지하철 출구를 올라가다 만난 그는 중국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시에서 태어나 돈을 벌기 위해 30년 전 서울에 왔다고 했다. 그는 “무거운 짐을 들어 줘 고마워서 하는 당부”라며 능숙한 한국어로 기자의 발걸음을 돌리려 애썼다. 대림동은 서울의 중심부를 순환하는 2호선, 이른바 ‘황금 노선’이 지나는 곳임에도 왜 위험하다는 말을 듣게 된 걸까?
“아가씨 혼자 이런 곳 오면 안 돼요.”
지난 8월, 유튜브 채널 ‘워크돌’에서는 여자 아이돌 ‘츠키’가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일대를 순찰 체험하는 영상이 공개됐다. 영상 속 한 휴대전화 대리점에는 중국어로 ‘불법 여권으로 카드 개통(非法护照开卡)’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일반적으로 ‘카(卡·잡)’는 ‘신용카드’를 뜻하는 차자(借字)이지만, 이곳이 휴대전화 매장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포폰에 사용되는 불법 유심 칩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츠키의 영상 속에선 한국어 간판을 찾기 어려웠고, 츠키가 말을 걸면 대부분 중국어로 대답했다. 심지어 한국에 거주하면서도 한국어를 전혀 못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 같은 기현상에 정부의 중국인 무비자 입국 허용 정책이 기름을 부었다. 지난 9월 29일 이재명 정부는 중국 단체 관광객의 한시적 무비자 입국을 허용했다. 이후 명동과 대림동 등 중국인 관광객과 거주민이 많은 지역에서는 “차이나 아웃(China Out)” “무비자 입국 반대”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 시위가 잇따랐다. ‘자유대학’ 등이 제작한 일명 ‘짱북송(짱개·북괴 노래)’이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기도 했다.
국민의힘이 10월 9일 중국인의 의료·선거·부동산 등 이른바 ‘3대 쇼핑’ 방지법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히며 논란은 한층 커졌다. 중국인들이 납부한 건강보험료보다 더 많은 의료 혜택을 누린다는 ‘의료 쇼핑’, 부동산을 투기 목적으로 매입한다는 ‘부동산 쇼핑’, 영주권 취득 후 3년이 지나면 한국에 거주하지 않아도 투표할 수 있다는 ‘선거 쇼핑’이 타깃이다.
이에 맞서 대림동에서는 조선족과 한국인들이 반(反)중국 시위에 대응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내 이웃 중국 동포 혐오 말라” “내 친구 중국인 환영한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서울이면서 중국에 더 가까운 곳, 대림동과 가리봉동은 왜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됐을까? 기자는 직접 두 지역을 찾아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칼부림 환자 많이 온다”
대림역에 내리면 가장 먼저 알싸한 고수 향이 코끝을 자극한다. 중국을 여행했을 때 맡았던 그 냄새다. 이 향은 대림중앙시장 근처로 갈수록 짙어진다.
지하철역을 나서자마자 이색적인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거리엔 한국어보다 중국어 간판이 훨씬 많고, 아예 한국어 표기가 전혀 없는 식당도 적지 않다. 꿩고기·보신탕·중국식 순대 등 한국에선 흔히 보기 힘든 음식들이 도로변 매대와 노점에 진열돼 있다.
인근 구로구 구로동에는 고려대 구로병원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A씨를 만났다. 그는 ‘대림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처음 고대 구로병원에 들어오면 선배들이 당부하는 내용이 있다”며 “대림시장 근처로는 절대 가지 말라는 게 불문율”이라고 말했다.
― 왜 대림중앙시장 근처에 가면 안 된다고 하던가요?
“치안이 안 좋기 때문입니다. 자전거로 출퇴근하던 교수님 한 분이 계셨는데, 어느 날 길을 잘못 들어 대림중앙시장 쪽으로 가셨다가 칼부림 현장을 목격하셨다고 해요. 그 이후로는 꼭 대중교통으로만 다니신다는 이야기가 ‘족보’처럼 내려옵니다.”
― 대림동과 가장 가까운 종합병원이니 오며 가며 듣는 이야기도 많을 것 같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칼부림으로 팔이 거의 잘릴 정도로 다친 환자가 왔어요. 응급실 환자 중엔 흉기에 의한 부상자가 많습니다. 그래서 직원들 대부분은 늦은 밤엔 절대 밖을 돌아다니지 않습니다. 한국인 직원들은 오피스텔 밀집 지역에서 생활하거나, 치안을 이유로 아예 신도림 쪽에 거주지를 두는 경우가 많아요.”
― 그런 일을 직접 겪은 적도 있나요?
“2년 전, 친구가 집에 놀러 와서 늦게까지 함께 술을 마신 적이 있습니다. 귀갓길에 밤이라 무서워서 손을 꼭 잡고 걸었는데, 길목에 어린이집이 하나 있더라고요. 둘 다 ‘어린이집이 있으니 안전하겠지’라며 그 앞을 지나갔어요. 그런데 다음 날 범죄 뉴스에 그 어린이집 CCTV 화면이 나오더군요. 저희가 지나간 그때 범인이 그 안에 숨어 있었다는 거예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소름이 돋습니다.”
대림동과 가리봉동의 역사
대림동은 대림중앙시장을 중심으로 조선족과 중국 동북 3성(省) 출신 상인들의 가게가 밀집해 있다. 두 지역 모두 199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평범한 서민 주거지였다. 그러나 1999년 무렵부터 중국 식자재점과 국제전화방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고, 2000년대 초중반에는 조선족 밀집 지역으로 변모했다. 한반도에 뿌리를 둔 조선족은 중국 국적을 가진 중국인으로, 중국 정부가 공인한 한족(漢族) 외 55개 소수민족 중 하나다. 2000년대 중반, 가리봉동 재개발 계획이 등장하면서 한국에서 경제적으로 성공한 일부 중국인들이 낙후된 가리봉동을 떠나 보다 나은 주거 환경을 찾아 대림2동으로 이동했다. 그 결과 대림역 12번 출구 일대와 대림중앙시장은 자연스럽게 ‘차이나타운’으로 자리 잡았다. 이곳의 정치적 성향은 더불어민주당 지지세가 강하다. 특히 조선족 거주민이 많은 대림2동에서 그 색이 더욱 짙다. 실제로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낙선)은 대림2동에서 50.98%의 득표율을 기록했는데, 이는 영등포구 내 모든 동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였다. 다만 귀화(歸化)하지 않은 조선족을 비롯한 외국인은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에, “대림동 선거의 표심은 지방 선거를 제외하면 100% 원주민 표심”이라는 분석도 있다. 물론 외국계 주민이라도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다. 가리봉동은 재개발이 지연되면서 여전히 낙후된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인근에는 ‘연변거리’와 가리봉시장이 자리해 있으며, 최근 서울시 통계에 따르면 조선족 포함 외국인 비율이 28.9%였다. 2017년 영화 〈범죄도시〉가 이 지역을 배경으로 조선족 폭력조직원 소탕 이야기를 다뤘다가 ‘혐오적’이라는 비판을 받은 것도 이 같은 지역적 특성과 무관하지 않다. |
“인플루언서들이 대림동 자주 방문”
기자는 나름 중국 음식을 즐기는 마니아다. 전통 사천(쓰촨) 음식인 마라탕을 좋아하고, 향신료에도 거부감이 없다. 그러나 대림동 거리의 매대에 진열된 음식들은 낯설었다. 대부분 처음 보는 재료들이었고, 한자로 적힌 메뉴도 알아보기 어려웠다. 그나마 순대처럼 보이는 음식을 가리키며 “얼마냐”고 묻자, 가게 주인 B씨는 뜻밖에도 다정한 한국어로 “한국 분이시냐” 물었다.
― 한국인 티가 나나요?
“많이 나죠. 생긴 건 비슷하지만 말투가 다릅니다. 그리고 보통 중국 동포들은 중국어로 얼마냐고 묻지, 한국어로 묻지는 않아요.”
― 한국인들이 대림동에 많이 방문하는 편인가요?
“실제 거주하는 한국인들보다는 중국인들이 훨씬 많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틱톡(TikTok)이나 SNS에 중국 음식이 유행하면서,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중국식 빵(결 따라 찢어지는 식빵)’ 같은 걸 찾으러 인플루언서들이 자주 옵니다.”
B씨는 한국인들이 주로 사간다는 물건들을 보여 줬다. 기자도 SNS에서 본 적 있는 음식들이었다. 순대 맛도 제법 괜찮았다. 다정한 말투 덕분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번역 앱으로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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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영등포구 대림중앙시장에 위치한 가게 매대에서 한국 식품은 찾아볼 수 없다. 모두 생소한 중국 식품·식재료들이다. |
“참 속상합니다. 대림동에 중국 동포들이 많이 사는 건 사실이지만, 오랫동안 한국에 자리 잡고 살아온 만큼 억울한 부분도 많아요. 우리는 한국 사람들과 중국 동포들이 함께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요즘은 차별이 너무 심해져서 마음이 아픕니다. 물론 한국 사람들이 우리를 거북해 하는 건 이해합니다. 영화 〈범죄도시〉처럼 중국 동포를 부정적으로 그린 미디어가 많았으니까요.”
― 속상하셨겠군요.
“영화가 처음 나왔을 때 정말 속상했습니다. 폭력적인 사람은 어느 지역에나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강력 사건이 자주 일어나지 않습니까. 우리 동포 사회도 마찬가지예요. 소수가 저지른 일을 미디어가 자꾸 부풀리고 왜곡하는 게 문제입니다.”
― 한국어가 저보다 능숙한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산 지 20년이 넘었어요. 당연히 익숙해질 수밖에 없죠. 한국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TV를 보면서 한국어 말투를 열심히 익혔습니다. 예전에는 중국 동포들끼리만 어울리다 보니 한국어가 서툴렀는데, 함께 살아가려면 우리도 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B씨는 “요즘 대림보다는 가리봉동에 중국 사람들이 더 많이 사는 편”이라며 “전통적인 중국 생활상을 보려면 가리봉동으로 가보라”고 권했다. 그의 말에 따라 가리봉동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도보로 15분 거리로 매우 가까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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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거리에서 만난 순찰대. |
가게 안에는 온통 중국 식품뿐이었다. “한국 음료는 없냐”는 기자의 물음을 주인은 알아듣지 못하고 거듭 중국어로만 되물었다. 결국 번역 애플리케이션을 통해서야 대화가 가능했다.
― 한국 식품은 아예 팔지 않는 건가요?
“아예 안 팔지는 않습니다. 중국 동포들을 위한 식료품을 파는 곳일 뿐입니다.”
― 가리봉동에 거주하는 중국 분들의 이야기를 더 들어 보고 싶습니다. 어디로 가면 좋을까요?
“가리봉시장 안쪽으로 들어가면 됩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잘 해줄지는 모르겠습니다.”
가리봉시장 안쪽으로 들어서자 다시 수많은 시선이 따라붙었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도 기자를 반갑게 맞이하는 상인들이 더러 있었다. 골목을 오가는 순찰대의 모습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전통시장이지만 ‘한국 같지 않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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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에 위치한 한 여행사. |
시장을 걷다 보니 환전소와 여행사 간판이 줄지어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중국 면허증 갱신’ ‘영주권 취득’ ‘외국인등록증 연장’ ‘유전자 검사’ ‘국민건강보험용 결혼 공증’ 등의 문구가 눈에 띄었다. 유튜브 영상에서 문제가 됐던 ‘불법 여권으로 카드 개통’ 같은 문구는 보이지 않았다. 가장 눈에 띄는 휴대폰 매장 안으로 들어서자 주인 C씨가 기자를 반갑게 맞았다.
― 최근 문제가 됐던 것이 불법적인 카드 개통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거리를 둘러보니 그런 간판은 보이지 않더군요.
“가리봉동 주민들도 모두 조심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소수만 하는 것이라고 해도 불법은 불법입니다. 모두가 조심하고 있습니다.”
― 카드 개통 등 불법적인 일을 의뢰하는 사람이 많나요?
“솔직히 말해서 요즘도 좀 있습니다. 가끔 불법체류자 몇 명이 찾아와 대포폰이나 대포통장 개통을 묻곤 합니다.”
‘내국인 출입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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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의 한 점포에는 ‘내국인 출입 불가’ 문구가 붙어 있다. |
길을 걷다 보니 ‘내국인 출입 불가’라고 써붙인 가게가 눈에 띄었다. 빨간 중국어 아래 한글로 단호한 어조로 적혀 있다. 이들이 말하는 ‘내국인’은 한국인일까 중국인일까? 전자(前者)라면 서울 한복판에서 한국인이 출입할 수 없는 가게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문득 씁쓸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