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께 전화 오면 결국 마지막에는 울면서 ‘돈 잘 받았나 금방 또 보내줄게’ 이 말만 반복해”(북한이탈주민 D씨)
⊙ “재북 가족 송금은 외국환거래법 위반… 이 과정에서 보안법 위반 여부까지 조사하는 것”(경찰 안보수사 관계자)
⊙ “‘재북 가족 송금 합법화’ 현실적으로 어려워… 北 정권이 악용할 가능성 매우 높아”(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
⊙ “국정원, 정보 활동 활용할 수도 있기에 대북송금 ‘묵인’한 것”(전 국정원 공작관)
⊙ “현재 탈북민들의 재북 가족 송금은 보안법에 해당될 만큼 불순하거나 의도적이지 않아”(김태훈 사단법인 북한인권 이사장)
⊙ “안보수사대에서는 불법 대북 송금 수사 하지 말라고 분명히 지시”(우종수 국가수사본부장)
⊙ “재북 가족 송금은 외국환거래법 위반… 이 과정에서 보안법 위반 여부까지 조사하는 것”(경찰 안보수사 관계자)
⊙ “‘재북 가족 송금 합법화’ 현실적으로 어려워… 北 정권이 악용할 가능성 매우 높아”(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
⊙ “국정원, 정보 활동 활용할 수도 있기에 대북송금 ‘묵인’한 것”(전 국정원 공작관)
⊙ “현재 탈북민들의 재북 가족 송금은 보안법에 해당될 만큼 불순하거나 의도적이지 않아”(김태훈 사단법인 북한인권 이사장)
⊙ “안보수사대에서는 불법 대북 송금 수사 하지 말라고 분명히 지시”(우종수 국가수사본부장)
- 사진=조선DB
“니 돈 잘 받았다. 니 보내준 돈 땜에 숨 좀 쉬겄다. 잘 지내나? 참말로 보고 싶어 죽겄다야.”
“아이고, 우리 아비(아버지) 올해 결국 세상 떴다… 이렇게라도 소식 전한다.”
“오라비 건강하니까 걱정 마라. 돈 또 보내주면 고맙지… 니 몸 잘 챙기라.”
위 대화는 실제 북한이탈주민(이하 탈북민)들이 브로커를 통해 입수한 재북(在北) 가족의 소식을 담은 스마트폰 녹화 영상을 기자가 얻어 일부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탈북민들의 경우 일가족이 함께 탈북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이렇다 보니 대한민국에 정착한 탈북민들이 재북 가족 혹은 북한에 있는 친구를 위해 대북(對北)송금을 시도하는 행위는 꽤 흔한 일이다.
북한인권정보센터(NKDB)의 〈북한이탈주민 경제사회통합 실태조사(2023)〉 보고서에 따르면 해당 실태조사에 참여한 탈북민 600명 중 60% 이상이 “재북 가족 송금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또 재북 가족 송금 경험이 있는 탈북민들의 송금 총액은 같은 해 기준 29억4100만원에 달했다. 현재 대한민국 법상 탈북민들의 재북 가족 송금은 엄연한 불법(不法)임에도 음지(陰地)에서 여전히 이뤄지고 있다. 그 이유와 배경, 탈북민들의 재북 가족 송금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들을 취재했다.
“감옥 가게 되더라도 송금할 것”
지난 1998년 ‘고난의 행군’ 때 가족을 두고 홀로 탈북한 A씨는 이모의 도움으로 위장 신분증을 사용해 베이징(北京)에서 16년을 살며 중국인 남성과 결혼했다. 이후 A씨는 결혼비자를 통해 지난 2014년에 한국에 정착했고 한국에서 재혼도 하며 새 삶을 꾸렸다. 그는 기자에게 “조선족으로 평생 위장해 살까 고민도 했지만 중국과 한국에서 각각 태어난 자녀를 위해 결국 국정원에 뒤늦게 자수해 지난 2019년에 하나원에 입소했다”고 했다.
퇴소 후 그는 가스검침원으로 근무하며 북한에 남아 있는 혈육(血肉)과 친한 친구에게 꾸준히 돈을 보냈다. 당시 기자와 만났을 때도 A씨는 “얼마 전 브로커를 통해 돈을 송금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외국환거래법 위반으로 지난 2월 1심 판결로 벌금 100만원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고 현재 항소 중이다. A씨는 “재북 가족 송금이 불법인 건 알고 있다. 한데 북한에 있는 내 가족들이 도와달라는데 어떻게 외면하냐. 설령 감옥에 가게 되더라도 (재북 가족) 송금을 중단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A씨는 다른 탈북민들의 송금을 브로커에게 연결해 주는 ‘중개업자’이기도 하다. 지난 2023년까지 그를 거쳐간 돈만 총 2300만원이다. 누적금액이 최소 억에서 최대 몇십억이 오가는 다른 재북 가족 송금 중개업자에 비하면 소액에 가까운 금액이다. 하지만 기자가 보기에 A씨는 중개업자가 아니었다. 그가 다른 브로커에게 돈을 송금하는 과정에서 ‘수수료’를 챙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또한 송금 중개를 ‘영업’이 아닌 선의(善意)의 뜻으로 했다고 강조했다.
“대부분 돈 보내는 인간들(브로커)은 수수료라고 5~10%씩 떼먹는데 내는 그런 거 눈곱만큼도 안 챙기고 다 브로커놈들한테 줬단 말입니다. 내가 중간에서 사람들 엮어준 건 맞지만 이 일 하면서 내 호주머니에 돈 넣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단 말입니다. 왜 그런 줄 압니까. 그 돈이 그냥 돈이 아닙니다. 우리 탈북자들이 죽을 고생해서 번 돈입니다. 그 돈 받아먹는 북조선에 있는 식구들은 그게 숨통 터주는 생명줄이란 말이요. 눈물로 보낸 돈이요. 내 어찌 그걸로 배를 채웁니까.”
‘송금’ 먼저 권유하는 브로커들
지난 1997년 탈북해 캄보디아를 거쳐 2007년에 한국에 입국한 탈북민 B씨도 재북 가족 송금을 의뢰한 탈북민의 돈을 브로커에게 연결해 주는 중개자 역할을 하다 지난 2024년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로 적발돼 현재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지난 2019년부터 2023년까지 B씨의 통장을 거쳐 대북송금 브로커에게 전달된 돈만 약 38억원에 달한다.
B씨 역시 중개자 역할을 한 것은 인정하지만 중개하는 과정에서 수수료를 챙긴 적은 결코 없다고 말했다. 실제 그는 브로커에게 송금할 때 쓰는 계좌와 생활비 통장을 분리해 사용하고 있었다. 중개 시 수수료를 뗐다는 오해가 불거질 시 증명하기 위해서다. B씨는 기자에게 “브로커에게 보낼 돈을 내 돈이라 생각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핵심은 B씨에게 ‘먼저 송금 의뢰 연락이 온다’는 점이다.
― 어떻게 알고 선생님에게 송금을 의뢰하는 걸까요.
“재북 식솔(가족)들도 탈북자들 전화번호나 거기서 활동하는 송금 브로커들을 알거든요. 그래서 어떤 땐 브로커 쪽에서 먼저 탈북자들한테 연락해 ‘돈 좀 보내달라’고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아요. 이후 탈북자들이 송금하겠다고 하면 브로커들이 내 계좌나 전화번호를 알려주는 거지. 근데 말이야, 내한테 송금 부탁하는 탈북자들이랑은 친분이 전혀 없어요. 솔직히 말해 얼굴도 모릅니다. 기껏해야 ‘브로커한테 돈 잘 좀 전해달라’는 문자 한두 개 오는 정도지. 지금은 송금 중개를 그만뒀는데도 여전히 송금 가능하냐고 뜬금없이 연락 오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브로커들이 탈북민에게 먼저 연락을 한다는 그의 말은 사실일까. 기자와 만난 또 다른 탈북민 C씨는 “조·중 국경연선(북한과 중국의 국경 주변)은 중국 쪽 전화신호가 잡혀 한국에 있는 탈북민들과도 전화가 가능하다”며 “국경연선의 브로커들은 소위 해당 지역 주민들의 정보를 꽉 잡고 있다. 그들이 재북 가족들의 소식을 먼저 전해주며 탈북민들에게 돈을 보낼 것을 권유하는 경우는 정말 흔하다”고 했다.
브로커와 결혼한 이유
탈북민 B씨의 두 동생은 지난 2014년 함경북도 청진시(淸津市) 보위부에 끌려간 뒤로 소식이 끊겼다.
그의 남동생이 보위부에 끌려간 이유는 B씨가 보낸 돈으로 산 화물차를 동업자가 “국정원이 준 돈으로 샀다”고 보위부에 허위 밀고했기 때문이다. 남동생은 화물차를 산 자금의 출처를 차마 밝힐 수 없어 결국 보위부에 차량을 그대로 뺏겼다. 이후 B씨는 남동생의 신변이 걱정돼 탈북자금으로 600만원을 브로커를 통해 전달했지만 남동생은 그 돈을 탈북자금이 아닌 화물차를 돌려받기 위해 활용하다 결국 보위부에 끌려갔다. 일은 점점 커져 B씨의 여동생마저 보위부에 붙잡혀 끌려갔다. 정확히 10일 간격이었다.
― 동생들을 살리고 싶었군요.
“동생들이 보위부에 잡혀간 이후 600만원을 또 보냈습니다. 한 브로커가 그 돈이면 내 동생들 몽땅 보위부서 빼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2014년 6월쯤에 허겁지겁 돈 마련해서 보냈다 아닙니까. 그런데 7월에 북에 있는 어매(어머니)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밤 10시였는데 아직도 그때 생각이 아찔하게 생생해요. 나는 돈 보냈으니 잘 해결된 줄로만 알았지. 근데 어매 말이 돈이 전달 안 됐다지 뭡니까. 알고 봤더니 브로커놈들이 사람 바보로 알고 사기를 친 겁니다. 거기다 동생들은 청진시 보위부에서 함북도(함경북도) 보위부로 옮겨졌다더군요. 진짜 앞이 캄캄했지만 내 동생들 구해야지요. 돈이 뭐가 대수입니까. 그래서 어매한테 또 600만원을 보냈습니다. 목숨보다 귀한 게 어딨습니까.”
― 돈을 또 보낸 거군요.
“근데 이번에는 먼저 내 외사촌 좀 찾아달라고 다른 브로커한테 부탁했지. 그래서 외삼촌이랑 외삼촌 딸을 겨우 찾았고, 거기다 200만원을 주고 600만원을 어매한테 꼭 전해달라고 했지요. 다행히 이번엔 어매가 돈을 제대로 받았다고 연락이 왔어요. 그러고 어매가 전화로 네 동생들 이번 추석 전에 꼭 나온다, 진짜 나온다, 너무 걱정 말라고 그렇게 안심을 시켰는데… 시간이 한참 지나고 알았지요. 내 동생들 간첩죄로 보위부에 끌려갔다고.”
B씨는 자신을 도와준 중국 브로커와 결혼도 했다. 하지만 단순 서류상 혼인 관계였다. 그가 결혼한 이유도 결혼비자를 통해 브로커가 한국과 중국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으니 북한에 있는 동생들의 소식을 더 빨리 들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또 B씨는 북한으로 부모님 치료비를 꾸준히 보냈지만 전달이 늦어져 양친(兩親) 모두 지병으로 각각 작년과 올해 사망했다. 그는 “가족이 북한에서 저리 죽어가는데 돈이라도 보내서 살릴 수 있다면 살려야 하는 것 아니냐”며 결국 오열했다.
北에서 오는 전화가 가장 ‘확실’
그렇다면 탈북민들은 재북 가족들에게 돈이 잘 전달됐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브로커에게 돈을 보낸 후 그들이 요구사항을 이행하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돈을 수령할 재북 가족을 지정한 후 가족의 모습을 영상으로 확인하는 식이다. 영상 내용은 재북 가족들이 브로커로부터 돈을 직접 수령 후 세는 모습과 동시에 가족의 근황과 소식을 짧게 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해당 영상은 송금을 의뢰한 탈북민들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신뢰할 수 있는 송금 경로라 판단되면 탈북민들은 송금을 희망하는 다른 탈북민들에게 해당 경로를 소개해 주기도 한다. 탈북민들이 브로커에게 돈을 전달해 주는 중개자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두 번째 방법은 브로커가 재북 가족들에게 돈을 전해주며 휴대폰을 사용해 탈북민들과 통화하도록 하는 것이다. 아래는 탈북민 D씨의 증언이다.
“한 번은 자다가 국제전화번호로 전화가 왔는데 이거 아버지 전화다 싶어서 후다닥 받았는데 딱 2분 통화했어요. 할 말은 많고 시간은 없어서 막 질문만 했습니다. 진짜 우리 아버지 목소리 들으면 막 눈물이 줄줄 납니다. 전화 오면 무슨 말을 해야지 준비는 하는데 정작 통화하면 아무 생각이 안 들어요.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기억이 안 날 정도란 말입니다. 결국 마지막에는 ‘돈 잘 받았나 금방 또 보내줄게’ 이 말만 죽어라 합니다.”
D씨는 기자에게 “조선(북한)에 있을 때 탈북한 동생과 전화 한번 하기 위해 높은 산 정상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휴대용 전탐기(전파탐지기)가 성능이 좋아져 조금만 신호가 노출돼도 위치가 정확히 특정돼 금방 잡힐 수 있기 때문”이라며 “올해 초부터 북한 보위부에 고성능 휴대용 전탐기가 보급된 걸로 아는데 남아 있는 사람들이 참 걱정이다”고 했다. 그는 “탈북민들은 송금 후 확인 방법으로 영상보다는 통화를 통해 근황을 직접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더 크지만 현재로서는 보위부의 감시가 심해져 많이 어려울 것”이라 말했다.
국정원에 협조한 브로커
지난 2010년부터 대북송금 브로커 일을 해온 탈북민 E씨는 “과거 재북 가족 송금의 대부분은 북·중 무역에 종사하는 화교 출신들이 소일거리로 담당했기에 전체 수수료도 10% 미만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송금 수수료가 40~50%까지 올라간 이유로 ‘전문 브로커의 등장’과 ‘코로나19의 영향’을 꼽았다. 안전성을 담보로 수수료를 높게 책정하는 브로커가 등장했고 코로나19 이후로 북·중 무역 종사자들의 왕래가 뜸해지니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예시로 그는 “양강도(兩江道) 쪽을 주 경로로 하는 대북송금은 보위부의 집중단속으로 길이 거의 다 막혔다. 회복하려면 시간이 상당히 걸릴 것”이라고 했다. E씨가 현재 북한으로 돈을 보내는 경로도 양강도가 아닌 타 지역을 이용하고 있다. 여담으로 E씨가 북한 내 송금 가능 경로를 상세히 파악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북·중 무역 종사자들에게 꾸준히 로비를 해왔기 때문이었다.
E씨는 국정원과 협력한 전력도 있다. 북·중 무역 종사자들을 통해 입수한 북한 내부 소식을 국정원에 전달해 혁혁한 성과를 인정받아 포상금을 받기도 했다. 이런 인물인데 지난 2023년 4월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로 자택을 압수수색당했다. 기자가 입수한 당시 경찰의 ‘압수, 수색, 검증을 요하는 사유’는 아래와 같았다.
“대북송금 대금이 재북 가족에게 전달되기 위해서는 북한 내 상선(총책)과의 공모로와 협조(도움)가 반드시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피의자가 이들과 지속적으로 연락하고 있었을 것으로 판단되며 (중략) 감염병 확산에 따른 북한의 국경봉쇄와 집중단속 등의 여파로 중간 수수료가 60%를 넘고 있는 상황에서 대금의 정확(안전)한 전달을 위해서는 북한 내 공범이 수수료 일부를 반국가단체 구성원 등에 제공하였을 가능성이 있고…(이하 생략)”
하지만 경찰은 1년 3개월간의 수사 끝에도 대공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 이럼에도 E씨는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로 벌금 10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았고 현재는 정식재판을 청구해 재판이 진행 중이다. 그는 “탈북민 신분으로 애국하고 싶어 지금까지 이렇게 자발적으로 국정원에 협조도 해온 사람인데 이렇게 나를 간첩으로 모는 건 정말 억울하고 화가 난다”고 말했다.
“국가보안법 위반 가능성을 보는 것”
앞서 소개한 탈북민 A씨와 B씨, E씨는 모두 공통적으로 “지난 2024년 1월 1일 국가정보원법이 개정돼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이 박탈돼 경찰만 대공수사가 가능해진 상황에서 경찰이 간첩을 잡을 능력이 없으니 재북 가족 송금과 엮어서 성과를 내려는 것 아니냐”며 “국정원의 경우 예전부터 탈북민의 재북 가족 송금을 묵인해 왔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주장에 한 경찰 안보수사 관계자는 “성과를 내기 위해 재북 가족 송금 수사를 하는 게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또 재북 가족 송금이 국가보안법이 아닌 외국환거래법 위반으로 입건되는 이유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이 답했다.
“탈북민들의 재북 가족 송금은 외국환거래법 위반에 명확하게 해당됩니다. 그리고 대북송금의 경우 대부분 다수의 브로커가 움직이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이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국가보안법 위반 여부까지 안보경찰이 함께 조사하는 겁니다. 탈북민들의 송금 행위가 인도주의적 관점에 기초한 행동이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형성된 대북송금 경로를 통해 돈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보가 오갈 수도 있고 이 과정에서 대한민국 안보가 위협받을 수 있습니다. 경찰 안보수사 관계자들은 이런 가능성까지 열어두고 수사하는 겁니다.”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구 경찰청 공안문제연구소)에서 25년을 근무한 유동열(柳東烈) 자유민주연구원장은 “경찰에 안보수사 능력이 ‘없다’고 주장하는 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그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경찰의 안보수사 능력은 지난 1987년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을 겪고 많이 떨어졌습니다. 당시 대공수사관들이 적폐(積弊)로 몰렸기 때문이죠. 또 북한은 1990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대한민국에 ‘직접 침투’ 형태로 간첩을 남파(南派)시켰는데 6·15 남북공동선언(김대중 정부) 이후부터는 제3국을 ‘우회 침투’하는 간첩들의 비중이 높아졌습니다. 경찰은 국정원과 달리 해외정보망이 없습니다. 해외를 통해 침투하는 간첩의 경우 경찰이 잡을 방법이 거의 없습니다. 또 노무현(盧武鉉), 문재인(文在寅) 정부를 거치며 대공(對共) 기능을 ‘반(反) 통일 기능’으로 이해해 관련 인력을 축소해 온 점도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현재는 전체 안보경찰 중 15% 정도만 실제 안보수사 경험이 있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재북 가족 송금 합법화, 北 정권이 악용할 것”
유 원장은 “탈북민들의 재북 가족 송금과 송금 경로는 북 보위부도 훤히 알고 있을 것”이라며 사실상 재북 가족 송금 합법화는 매우 어렵다고 지적한다. 북한 정권이 악용할 가능성 또한 주장했다.
“탈북민들이 일정 금액을 한정해서 북한 가족들에게 송금할 수 있게 해달라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합법적 재북 가족 송금 방안’을 만들어도 북한 정권이 수용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단적인 예로 김정은(金正恩)이 지난 2023년 12월 30일에 남북을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선언했지 않습니까. 설령 북한이 우리 측의 제안에 응해 탈북민들이 재북 가족들에게 돈을 보낼 시 ‘북한 노동당 자금’ ‘군사비’ ‘대남선전기구 공작 비용’ 등으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습니까. 북한에 가족이 있는 탈북민들의 사정은 충분히 공감은 됩니다. 하지만 재북 가족 송금을 합법화해 달라는 것은 오히려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차라리 지금처럼 암암리에 브로커를 통해 가족들에게 돈을 전해주는 게 더 낫다고 봅니다.”
전직 국정원 공작관 출신인 F씨는 “탈북민들의 재북 가족 송금을 국정원이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묵인’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쉽게 설명해 국정원도 정보 활동의 범위에서 ‘대북송금 경로를 활용할 수도 있기에 묵인한 것’이라는 얘기다. F씨도 “탈북민들의 송금 취지는 인간적으로 충분히 이해한다”면서도 “안보적 관점에서 리스크가 더 크다. 재북 가족 송금의 합법화는 역설적으로 북한 정권을 이롭게 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대법원까지 갈 각오했다”
김태훈(金泰勳) (사)북한인권 이사장은 지난 2010년 초 탈북민들이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은 사건을 변호한 적이 있다.
당시 김 이사장은 “탈북민들은 순수한 목적으로 북에 남은 가족의 생계비를 보낸 것이기에 위법(違法)은 아니다”고 주장하며 ‘탈북민의 위반 행위(송금)가 특정되지 않는다’는 점과 ‘본래 외국환거래법 입법 취지’ ‘합법적 대북송금 경로 제한’ ‘국제사회의 인도적 행위 인정 및 예외적 허용’ 등을 주장하며 가벌성(처벌 필요성)을 따졌다.
김 이사장은 “(재북 가족 송금이) 위법된다고 하더라도 재북 가족들을 위한 ‘긴급피난’이자 ‘정당행위’임을 주장했다”며 당시 변호 과정을 회고했다. 당시 재판은 대법원까지 가 결국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가 인정돼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당시 재판으로부터 10년 이상이 지났지만 여전히 달라진 게 크게 없다”며 “재북 가족 송금을 하는 탈북민들은 의뢰인이자 동시에 중개자를 자처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의도가 ‘국가보안법’에 해당될 만큼 불순하거나 의도적이지 않다. 그러니 외국환관리법 위반으로만 탈북민들이 처벌받는 것 아니겠느냐”고 강조했다. 현재 탈북민들의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 재판 두 건을 담당하고 있는 박원연(朴原演) 변호사(법무법인 로베리)도 경찰의 송치(送致) 과정을 지적했다.
“지난 2023년경부터 전국 각 경찰청 및 경찰서에서는 탈북민들을 대상으로 대공 혐의점을 찾아 실적을 내려는 경쟁이 공공연했습니다. 실제 탈북민들을 대공수사 관련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하다 재북 가족에 대한 송금 사실이 확인되면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를 우선 적용한 뒤 대공수사를 지속하는 식의 수사 방식이 여러 사례에서 확인되기도 했습니다.”
외국환거래법 ‘8조 1항’
박 변호사는 또 해당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 사건의 핵심을 ‘유무죄’로 좁힐 시 판단은 크게 ‘두 가지 관점’이라고 강조한다. 첫째는 “실체법(實體法)적 측면에서 피고인이 실제로 외국환거래법을 어겼는지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설사 법을 위반했더라도 ‘긴급피난’이나 ‘정당행위’처럼 정당한 사유가 인정되면 처벌을 면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다음은 절차법(節次法)적 측면이다. 이는 형사소송 절차와 관련된 문제다. 현재 대한민국의 형사재판은 ‘증거 중심 재판’ 원칙에 따라 진행된다. 피의자가 외국환거래법을 위반해도 그 사실을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면 무죄가 선고될 수 있다. 탈북민이 북한에 송금했다는 혐의가 있다 하더라도 그 행위를 입증할 명확한 ‘증거’가 없거나 증거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법적 절차를 어겼다면 재판에서는 ‘무죄’가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박 변호사가 탈북민들의 재북 가족 송금이 외국환거래법 위반이 아님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이유는 ‘외국환거래법 8조 1항’에 있다.
외국환거래법 8조 1항에 따르면 ‘외국환 업무를 업으로 하려는 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외국환 업무를 하는 데에 충분한 자본·시설 및 전문인력을 갖추어 미리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등록하여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여기서 외국환거래법이 명시한 ‘외국환 업무를 업으로 하려는 자’는 쉽게 설명해 해당 ‘업’을 통해 영리추구(營利追求)를 해야 하는데 탈북민들이 브로커들에게 직접 돈을 ‘전달’했거나 선의의 이유로 별도의 수수료 없이 타인의 돈을 ‘중개’했다면 이를 과연 외국환거래법 위반으로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 오히려 탈북민들의 재북 가족 송금이 긍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봅니까.
“대한민국 헌법은 북한 당국이 아닌 북한 주민에 대해서는 모두 대한민국 국민의 법적 지위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대한민국의 영토이나 입법·사법·행정이 미치지 못하는 지역이라는 거죠. 따라서 북한 조선노동당 등 반국가 세력과 이들의 통치를 받고 있는 북한 주민은 분리해서 보아야 하는 게 옳습니다. 또 북한 주민 개개인의 생계 목적으로 연간 최대 300만원 정도 소액의 돈이 가는 게 북한이라는 반국가 단체를 얼마나 이롭게 할까요. 오히려 북한 당국이 ‘지양’하는 남한의 자금이 흘러들어 오는 겁니다. 궁극적으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동경하게 만든다는 측면도 있다는 것을 분명 고려해야 합니다.”⊙
“아이고, 우리 아비(아버지) 올해 결국 세상 떴다… 이렇게라도 소식 전한다.”
“오라비 건강하니까 걱정 마라. 돈 또 보내주면 고맙지… 니 몸 잘 챙기라.”
위 대화는 실제 북한이탈주민(이하 탈북민)들이 브로커를 통해 입수한 재북(在北) 가족의 소식을 담은 스마트폰 녹화 영상을 기자가 얻어 일부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탈북민들의 경우 일가족이 함께 탈북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이렇다 보니 대한민국에 정착한 탈북민들이 재북 가족 혹은 북한에 있는 친구를 위해 대북(對北)송금을 시도하는 행위는 꽤 흔한 일이다.
북한인권정보센터(NKDB)의 〈북한이탈주민 경제사회통합 실태조사(2023)〉 보고서에 따르면 해당 실태조사에 참여한 탈북민 600명 중 60% 이상이 “재북 가족 송금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또 재북 가족 송금 경험이 있는 탈북민들의 송금 총액은 같은 해 기준 29억4100만원에 달했다. 현재 대한민국 법상 탈북민들의 재북 가족 송금은 엄연한 불법(不法)임에도 음지(陰地)에서 여전히 이뤄지고 있다. 그 이유와 배경, 탈북민들의 재북 가족 송금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들을 취재했다.
“감옥 가게 되더라도 송금할 것”
지난 1998년 ‘고난의 행군’ 때 가족을 두고 홀로 탈북한 A씨는 이모의 도움으로 위장 신분증을 사용해 베이징(北京)에서 16년을 살며 중국인 남성과 결혼했다. 이후 A씨는 결혼비자를 통해 지난 2014년에 한국에 정착했고 한국에서 재혼도 하며 새 삶을 꾸렸다. 그는 기자에게 “조선족으로 평생 위장해 살까 고민도 했지만 중국과 한국에서 각각 태어난 자녀를 위해 결국 국정원에 뒤늦게 자수해 지난 2019년에 하나원에 입소했다”고 했다.
퇴소 후 그는 가스검침원으로 근무하며 북한에 남아 있는 혈육(血肉)과 친한 친구에게 꾸준히 돈을 보냈다. 당시 기자와 만났을 때도 A씨는 “얼마 전 브로커를 통해 돈을 송금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외국환거래법 위반으로 지난 2월 1심 판결로 벌금 100만원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고 현재 항소 중이다. A씨는 “재북 가족 송금이 불법인 건 알고 있다. 한데 북한에 있는 내 가족들이 도와달라는데 어떻게 외면하냐. 설령 감옥에 가게 되더라도 (재북 가족) 송금을 중단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A씨는 다른 탈북민들의 송금을 브로커에게 연결해 주는 ‘중개업자’이기도 하다. 지난 2023년까지 그를 거쳐간 돈만 총 2300만원이다. 누적금액이 최소 억에서 최대 몇십억이 오가는 다른 재북 가족 송금 중개업자에 비하면 소액에 가까운 금액이다. 하지만 기자가 보기에 A씨는 중개업자가 아니었다. 그가 다른 브로커에게 돈을 송금하는 과정에서 ‘수수료’를 챙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또한 송금 중개를 ‘영업’이 아닌 선의(善意)의 뜻으로 했다고 강조했다.
“대부분 돈 보내는 인간들(브로커)은 수수료라고 5~10%씩 떼먹는데 내는 그런 거 눈곱만큼도 안 챙기고 다 브로커놈들한테 줬단 말입니다. 내가 중간에서 사람들 엮어준 건 맞지만 이 일 하면서 내 호주머니에 돈 넣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단 말입니다. 왜 그런 줄 압니까. 그 돈이 그냥 돈이 아닙니다. 우리 탈북자들이 죽을 고생해서 번 돈입니다. 그 돈 받아먹는 북조선에 있는 식구들은 그게 숨통 터주는 생명줄이란 말이요. 눈물로 보낸 돈이요. 내 어찌 그걸로 배를 채웁니까.”
‘송금’ 먼저 권유하는 브로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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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북민 A씨가 재북 가족 송금 시 요청을 담은 문자. 문자에 적힌 ‘3000원’은 위안화로 현재 한화 기준 약 58만원 정도다. |
B씨 역시 중개자 역할을 한 것은 인정하지만 중개하는 과정에서 수수료를 챙긴 적은 결코 없다고 말했다. 실제 그는 브로커에게 송금할 때 쓰는 계좌와 생활비 통장을 분리해 사용하고 있었다. 중개 시 수수료를 뗐다는 오해가 불거질 시 증명하기 위해서다. B씨는 기자에게 “브로커에게 보낼 돈을 내 돈이라 생각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핵심은 B씨에게 ‘먼저 송금 의뢰 연락이 온다’는 점이다.
― 어떻게 알고 선생님에게 송금을 의뢰하는 걸까요.
“재북 식솔(가족)들도 탈북자들 전화번호나 거기서 활동하는 송금 브로커들을 알거든요. 그래서 어떤 땐 브로커 쪽에서 먼저 탈북자들한테 연락해 ‘돈 좀 보내달라’고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아요. 이후 탈북자들이 송금하겠다고 하면 브로커들이 내 계좌나 전화번호를 알려주는 거지. 근데 말이야, 내한테 송금 부탁하는 탈북자들이랑은 친분이 전혀 없어요. 솔직히 말해 얼굴도 모릅니다. 기껏해야 ‘브로커한테 돈 잘 좀 전해달라’는 문자 한두 개 오는 정도지. 지금은 송금 중개를 그만뒀는데도 여전히 송금 가능하냐고 뜬금없이 연락 오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브로커들이 탈북민에게 먼저 연락을 한다는 그의 말은 사실일까. 기자와 만난 또 다른 탈북민 C씨는 “조·중 국경연선(북한과 중국의 국경 주변)은 중국 쪽 전화신호가 잡혀 한국에 있는 탈북민들과도 전화가 가능하다”며 “국경연선의 브로커들은 소위 해당 지역 주민들의 정보를 꽉 잡고 있다. 그들이 재북 가족들의 소식을 먼저 전해주며 탈북민들에게 돈을 보낼 것을 권유하는 경우는 정말 흔하다”고 했다.
브로커와 결혼한 이유
탈북민 B씨의 두 동생은 지난 2014년 함경북도 청진시(淸津市) 보위부에 끌려간 뒤로 소식이 끊겼다.
그의 남동생이 보위부에 끌려간 이유는 B씨가 보낸 돈으로 산 화물차를 동업자가 “국정원이 준 돈으로 샀다”고 보위부에 허위 밀고했기 때문이다. 남동생은 화물차를 산 자금의 출처를 차마 밝힐 수 없어 결국 보위부에 차량을 그대로 뺏겼다. 이후 B씨는 남동생의 신변이 걱정돼 탈북자금으로 600만원을 브로커를 통해 전달했지만 남동생은 그 돈을 탈북자금이 아닌 화물차를 돌려받기 위해 활용하다 결국 보위부에 끌려갔다. 일은 점점 커져 B씨의 여동생마저 보위부에 붙잡혀 끌려갔다. 정확히 10일 간격이었다.
― 동생들을 살리고 싶었군요.
“동생들이 보위부에 잡혀간 이후 600만원을 또 보냈습니다. 한 브로커가 그 돈이면 내 동생들 몽땅 보위부서 빼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2014년 6월쯤에 허겁지겁 돈 마련해서 보냈다 아닙니까. 그런데 7월에 북에 있는 어매(어머니)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밤 10시였는데 아직도 그때 생각이 아찔하게 생생해요. 나는 돈 보냈으니 잘 해결된 줄로만 알았지. 근데 어매 말이 돈이 전달 안 됐다지 뭡니까. 알고 봤더니 브로커놈들이 사람 바보로 알고 사기를 친 겁니다. 거기다 동생들은 청진시 보위부에서 함북도(함경북도) 보위부로 옮겨졌다더군요. 진짜 앞이 캄캄했지만 내 동생들 구해야지요. 돈이 뭐가 대수입니까. 그래서 어매한테 또 600만원을 보냈습니다. 목숨보다 귀한 게 어딨습니까.”
― 돈을 또 보낸 거군요.
“근데 이번에는 먼저 내 외사촌 좀 찾아달라고 다른 브로커한테 부탁했지. 그래서 외삼촌이랑 외삼촌 딸을 겨우 찾았고, 거기다 200만원을 주고 600만원을 어매한테 꼭 전해달라고 했지요. 다행히 이번엔 어매가 돈을 제대로 받았다고 연락이 왔어요. 그러고 어매가 전화로 네 동생들 이번 추석 전에 꼭 나온다, 진짜 나온다, 너무 걱정 말라고 그렇게 안심을 시켰는데… 시간이 한참 지나고 알았지요. 내 동생들 간첩죄로 보위부에 끌려갔다고.”
B씨는 자신을 도와준 중국 브로커와 결혼도 했다. 하지만 단순 서류상 혼인 관계였다. 그가 결혼한 이유도 결혼비자를 통해 브로커가 한국과 중국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으니 북한에 있는 동생들의 소식을 더 빨리 들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또 B씨는 북한으로 부모님 치료비를 꾸준히 보냈지만 전달이 늦어져 양친(兩親) 모두 지병으로 각각 작년과 올해 사망했다. 그는 “가족이 북한에서 저리 죽어가는데 돈이라도 보내서 살릴 수 있다면 살려야 하는 것 아니냐”며 결국 오열했다.
北에서 오는 전화가 가장 ‘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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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로커가 재북 가족에게 돈을 건네주며 찍은 영상을 캡처한 것이다. |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브로커에게 돈을 보낸 후 그들이 요구사항을 이행하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돈을 수령할 재북 가족을 지정한 후 가족의 모습을 영상으로 확인하는 식이다. 영상 내용은 재북 가족들이 브로커로부터 돈을 직접 수령 후 세는 모습과 동시에 가족의 근황과 소식을 짧게 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해당 영상은 송금을 의뢰한 탈북민들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신뢰할 수 있는 송금 경로라 판단되면 탈북민들은 송금을 희망하는 다른 탈북민들에게 해당 경로를 소개해 주기도 한다. 탈북민들이 브로커에게 돈을 전달해 주는 중개자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두 번째 방법은 브로커가 재북 가족들에게 돈을 전해주며 휴대폰을 사용해 탈북민들과 통화하도록 하는 것이다. 아래는 탈북민 D씨의 증언이다.
“한 번은 자다가 국제전화번호로 전화가 왔는데 이거 아버지 전화다 싶어서 후다닥 받았는데 딱 2분 통화했어요. 할 말은 많고 시간은 없어서 막 질문만 했습니다. 진짜 우리 아버지 목소리 들으면 막 눈물이 줄줄 납니다. 전화 오면 무슨 말을 해야지 준비는 하는데 정작 통화하면 아무 생각이 안 들어요.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기억이 안 날 정도란 말입니다. 결국 마지막에는 ‘돈 잘 받았나 금방 또 보내줄게’ 이 말만 죽어라 합니다.”
D씨는 기자에게 “조선(북한)에 있을 때 탈북한 동생과 전화 한번 하기 위해 높은 산 정상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휴대용 전탐기(전파탐지기)가 성능이 좋아져 조금만 신호가 노출돼도 위치가 정확히 특정돼 금방 잡힐 수 있기 때문”이라며 “올해 초부터 북한 보위부에 고성능 휴대용 전탐기가 보급된 걸로 아는데 남아 있는 사람들이 참 걱정이다”고 했다. 그는 “탈북민들은 송금 후 확인 방법으로 영상보다는 통화를 통해 근황을 직접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더 크지만 현재로서는 보위부의 감시가 심해져 많이 어려울 것”이라 말했다.
국정원에 협조한 브로커
지난 2010년부터 대북송금 브로커 일을 해온 탈북민 E씨는 “과거 재북 가족 송금의 대부분은 북·중 무역에 종사하는 화교 출신들이 소일거리로 담당했기에 전체 수수료도 10% 미만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송금 수수료가 40~50%까지 올라간 이유로 ‘전문 브로커의 등장’과 ‘코로나19의 영향’을 꼽았다. 안전성을 담보로 수수료를 높게 책정하는 브로커가 등장했고 코로나19 이후로 북·중 무역 종사자들의 왕래가 뜸해지니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예시로 그는 “양강도(兩江道) 쪽을 주 경로로 하는 대북송금은 보위부의 집중단속으로 길이 거의 다 막혔다. 회복하려면 시간이 상당히 걸릴 것”이라고 했다. E씨가 현재 북한으로 돈을 보내는 경로도 양강도가 아닌 타 지역을 이용하고 있다. 여담으로 E씨가 북한 내 송금 가능 경로를 상세히 파악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북·중 무역 종사자들에게 꾸준히 로비를 해왔기 때문이었다.
E씨는 국정원과 협력한 전력도 있다. 북·중 무역 종사자들을 통해 입수한 북한 내부 소식을 국정원에 전달해 혁혁한 성과를 인정받아 포상금을 받기도 했다. 이런 인물인데 지난 2023년 4월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로 자택을 압수수색당했다. 기자가 입수한 당시 경찰의 ‘압수, 수색, 검증을 요하는 사유’는 아래와 같았다.
“대북송금 대금이 재북 가족에게 전달되기 위해서는 북한 내 상선(총책)과의 공모로와 협조(도움)가 반드시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피의자가 이들과 지속적으로 연락하고 있었을 것으로 판단되며 (중략) 감염병 확산에 따른 북한의 국경봉쇄와 집중단속 등의 여파로 중간 수수료가 60%를 넘고 있는 상황에서 대금의 정확(안전)한 전달을 위해서는 북한 내 공범이 수수료 일부를 반국가단체 구성원 등에 제공하였을 가능성이 있고…(이하 생략)”
하지만 경찰은 1년 3개월간의 수사 끝에도 대공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 이럼에도 E씨는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로 벌금 10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았고 현재는 정식재판을 청구해 재판이 진행 중이다. 그는 “탈북민 신분으로 애국하고 싶어 지금까지 이렇게 자발적으로 국정원에 협조도 해온 사람인데 이렇게 나를 간첩으로 모는 건 정말 억울하고 화가 난다”고 말했다.
“국가보안법 위반 가능성을 보는 것”
앞서 소개한 탈북민 A씨와 B씨, E씨는 모두 공통적으로 “지난 2024년 1월 1일 국가정보원법이 개정돼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이 박탈돼 경찰만 대공수사가 가능해진 상황에서 경찰이 간첩을 잡을 능력이 없으니 재북 가족 송금과 엮어서 성과를 내려는 것 아니냐”며 “국정원의 경우 예전부터 탈북민의 재북 가족 송금을 묵인해 왔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주장에 한 경찰 안보수사 관계자는 “성과를 내기 위해 재북 가족 송금 수사를 하는 게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또 재북 가족 송금이 국가보안법이 아닌 외국환거래법 위반으로 입건되는 이유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이 답했다.
“탈북민들의 재북 가족 송금은 외국환거래법 위반에 명확하게 해당됩니다. 그리고 대북송금의 경우 대부분 다수의 브로커가 움직이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이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국가보안법 위반 여부까지 안보경찰이 함께 조사하는 겁니다. 탈북민들의 송금 행위가 인도주의적 관점에 기초한 행동이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형성된 대북송금 경로를 통해 돈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보가 오갈 수도 있고 이 과정에서 대한민국 안보가 위협받을 수 있습니다. 경찰 안보수사 관계자들은 이런 가능성까지 열어두고 수사하는 겁니다.”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구 경찰청 공안문제연구소)에서 25년을 근무한 유동열(柳東烈) 자유민주연구원장은 “경찰에 안보수사 능력이 ‘없다’고 주장하는 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그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경찰의 안보수사 능력은 지난 1987년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을 겪고 많이 떨어졌습니다. 당시 대공수사관들이 적폐(積弊)로 몰렸기 때문이죠. 또 북한은 1990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대한민국에 ‘직접 침투’ 형태로 간첩을 남파(南派)시켰는데 6·15 남북공동선언(김대중 정부) 이후부터는 제3국을 ‘우회 침투’하는 간첩들의 비중이 높아졌습니다. 경찰은 국정원과 달리 해외정보망이 없습니다. 해외를 통해 침투하는 간첩의 경우 경찰이 잡을 방법이 거의 없습니다. 또 노무현(盧武鉉), 문재인(文在寅) 정부를 거치며 대공(對共) 기능을 ‘반(反) 통일 기능’으로 이해해 관련 인력을 축소해 온 점도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현재는 전체 안보경찰 중 15% 정도만 실제 안보수사 경험이 있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재북 가족 송금 합법화, 北 정권이 악용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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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동열 원장, 김태훈 변호사, 박원연 변호사. |
“탈북민들이 일정 금액을 한정해서 북한 가족들에게 송금할 수 있게 해달라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합법적 재북 가족 송금 방안’을 만들어도 북한 정권이 수용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단적인 예로 김정은(金正恩)이 지난 2023년 12월 30일에 남북을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선언했지 않습니까. 설령 북한이 우리 측의 제안에 응해 탈북민들이 재북 가족들에게 돈을 보낼 시 ‘북한 노동당 자금’ ‘군사비’ ‘대남선전기구 공작 비용’ 등으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습니까. 북한에 가족이 있는 탈북민들의 사정은 충분히 공감은 됩니다. 하지만 재북 가족 송금을 합법화해 달라는 것은 오히려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차라리 지금처럼 암암리에 브로커를 통해 가족들에게 돈을 전해주는 게 더 낫다고 봅니다.”
전직 국정원 공작관 출신인 F씨는 “탈북민들의 재북 가족 송금을 국정원이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묵인’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쉽게 설명해 국정원도 정보 활동의 범위에서 ‘대북송금 경로를 활용할 수도 있기에 묵인한 것’이라는 얘기다. F씨도 “탈북민들의 송금 취지는 인간적으로 충분히 이해한다”면서도 “안보적 관점에서 리스크가 더 크다. 재북 가족 송금의 합법화는 역설적으로 북한 정권을 이롭게 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대법원까지 갈 각오했다”
김태훈(金泰勳) (사)북한인권 이사장은 지난 2010년 초 탈북민들이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은 사건을 변호한 적이 있다.
당시 김 이사장은 “탈북민들은 순수한 목적으로 북에 남은 가족의 생계비를 보낸 것이기에 위법(違法)은 아니다”고 주장하며 ‘탈북민의 위반 행위(송금)가 특정되지 않는다’는 점과 ‘본래 외국환거래법 입법 취지’ ‘합법적 대북송금 경로 제한’ ‘국제사회의 인도적 행위 인정 및 예외적 허용’ 등을 주장하며 가벌성(처벌 필요성)을 따졌다.
김 이사장은 “(재북 가족 송금이) 위법된다고 하더라도 재북 가족들을 위한 ‘긴급피난’이자 ‘정당행위’임을 주장했다”며 당시 변호 과정을 회고했다. 당시 재판은 대법원까지 가 결국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가 인정돼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당시 재판으로부터 10년 이상이 지났지만 여전히 달라진 게 크게 없다”며 “재북 가족 송금을 하는 탈북민들은 의뢰인이자 동시에 중개자를 자처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의도가 ‘국가보안법’에 해당될 만큼 불순하거나 의도적이지 않다. 그러니 외국환관리법 위반으로만 탈북민들이 처벌받는 것 아니겠느냐”고 강조했다. 현재 탈북민들의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 재판 두 건을 담당하고 있는 박원연(朴原演) 변호사(법무법인 로베리)도 경찰의 송치(送致) 과정을 지적했다.
“지난 2023년경부터 전국 각 경찰청 및 경찰서에서는 탈북민들을 대상으로 대공 혐의점을 찾아 실적을 내려는 경쟁이 공공연했습니다. 실제 탈북민들을 대공수사 관련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하다 재북 가족에 대한 송금 사실이 확인되면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를 우선 적용한 뒤 대공수사를 지속하는 식의 수사 방식이 여러 사례에서 확인되기도 했습니다.”
외국환거래법 ‘8조 1항’
박 변호사는 또 해당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 사건의 핵심을 ‘유무죄’로 좁힐 시 판단은 크게 ‘두 가지 관점’이라고 강조한다. 첫째는 “실체법(實體法)적 측면에서 피고인이 실제로 외국환거래법을 어겼는지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설사 법을 위반했더라도 ‘긴급피난’이나 ‘정당행위’처럼 정당한 사유가 인정되면 처벌을 면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다음은 절차법(節次法)적 측면이다. 이는 형사소송 절차와 관련된 문제다. 현재 대한민국의 형사재판은 ‘증거 중심 재판’ 원칙에 따라 진행된다. 피의자가 외국환거래법을 위반해도 그 사실을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면 무죄가 선고될 수 있다. 탈북민이 북한에 송금했다는 혐의가 있다 하더라도 그 행위를 입증할 명확한 ‘증거’가 없거나 증거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법적 절차를 어겼다면 재판에서는 ‘무죄’가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박 변호사가 탈북민들의 재북 가족 송금이 외국환거래법 위반이 아님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이유는 ‘외국환거래법 8조 1항’에 있다.
외국환거래법 8조 1항에 따르면 ‘외국환 업무를 업으로 하려는 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외국환 업무를 하는 데에 충분한 자본·시설 및 전문인력을 갖추어 미리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등록하여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여기서 외국환거래법이 명시한 ‘외국환 업무를 업으로 하려는 자’는 쉽게 설명해 해당 ‘업’을 통해 영리추구(營利追求)를 해야 하는데 탈북민들이 브로커들에게 직접 돈을 ‘전달’했거나 선의의 이유로 별도의 수수료 없이 타인의 돈을 ‘중개’했다면 이를 과연 외국환거래법 위반으로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 오히려 탈북민들의 재북 가족 송금이 긍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봅니까.
“대한민국 헌법은 북한 당국이 아닌 북한 주민에 대해서는 모두 대한민국 국민의 법적 지위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대한민국의 영토이나 입법·사법·행정이 미치지 못하는 지역이라는 거죠. 따라서 북한 조선노동당 등 반국가 세력과 이들의 통치를 받고 있는 북한 주민은 분리해서 보아야 하는 게 옳습니다. 또 북한 주민 개개인의 생계 목적으로 연간 최대 300만원 정도 소액의 돈이 가는 게 북한이라는 반국가 단체를 얼마나 이롭게 할까요. 오히려 북한 당국이 ‘지양’하는 남한의 자금이 흘러들어 오는 겁니다. 궁극적으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동경하게 만든다는 측면도 있다는 것을 분명 고려해야 합니다.”⊙
| 경찰의 북한 가족 송금 수사의 입장은? 국정원법 개정 이후 북한이탈주민들의 재북 가족 송금 관련 수사는 누가 어떻게 하고 있을까. 지난 2024년 10월 11일 국회 행안위 국정감사에서 경찰청 우종수 국가수사본부장은 “일체 관련 수사를 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선 경찰에서는 계속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이날 행안위의 질의 내용이다. 우종수 국가수사본부장: 작년 정보위 때도 문제가 됐었습니다. 과거 저희가 대북수사권이 오기 전에 일부 외국환거래법, 불법 대북송금에 대해서 수사한 것이 있지만 작년 국감에서 문제가 돼서 올해부터는 일체 관련 수사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 신정훈 행안위원장(민주당):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금 계속 언론에서나 탈북민들이 굉장히 이 문제에 대해서 두려움에 떨고 있고 굉장히 불안해하고 있는 사실은 무엇입니까. 우종수 국가수사본부장: 제가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안보수사대에서는 저희가 이런 돈 송금하는 불법 대북송금에 대한 수사를 하지 말라고 분명히 저희가 지시했고요. 다만 일반 수사 부서에서 과연 연관 사건을 수사하는지 아니면 접수가 돼서 수사를 하고 있는지 여부는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